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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E02 – 아에네이스(Aeneis) /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 70--BC 19)

E02 – 아에네이스(Aeneis) /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 70--BC 19)

(출전: 동서고전 200선 해제3 / 반덕진 / 가람기획)


 <아에네이스>는 로마 건국에 관한 서사시로, 트로이의 영웅이자 로마의 건국 시조인 아에네이스가 트로이 멸망 후 로마에 정착할 때까지의 고난과 사건, 그리고 사랑을 그린 미완성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아에네아스를 미의 여신 베누스(비너스,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묘사하여, 로마 황제에게 신통성을 부여하고, 로마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래의 국가건설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쟁취하려는 영웅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a. 진지하고 목가적인 시인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하고 천국에 있는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해준 베르길리우스. 그는 북이탈리아 만토바 부근 안데스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폭넓은 교육을 받았다. 그의 청년기는 로마 공화정 말기로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혼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격동과는 관계없이 그는 시작에 몰두했다, 그는 수줍음이 많고, 건강이 좋지 못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생애의 전반부를 학자이자 은자로 살았다.

  29~33세에 10편으로 된 <전원시>를 완성했는데, 여기에는 3개의 세계, 즉 그리스의 목가시인 테오크리토스가 노래한 시칠리아의 목자의 세계, 베르길리우스가 창조한 목자의 이상향 아르카디아, 내란의 혼란 속에 있는 현실의 로마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 책으로 당시의 유력한 정치가문인의 보호자였던 마에케나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아우구스투스의 신임을 얻었다.

  31세~41년에 완성한 <농경시> 4권은 헤시오도스의 교훈시에서 비롯된 시로 예술 후원자였던 마에케나스 재상에게 바쳤다. 여기에서는 농경 과수재배 목축 양봉 등을 차례로 읊었으며, 농경의 기원 원인 본질 실천에 대해 깊이 고찰했다.

제4절에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언급하여 헬레니즘 시대의 독특한 그리스 시 기법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천하를 평정한다. 이에 베르길리우스는 오랫동안 구상해왔던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을 장편 서사시 <아에네이스>에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로마의 국민적 서사시로 구상하여, 오랫동안의 내란을 수습하고 평화를 실현시킨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기 위한 의도로 씌어진 것이다.

  이 작품은 트로이의 영웅 아에네아스를 등장시켜 그의 인물상과 행동을 통해 로마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11년 동안 전념했던 이 작품은 결국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다. 그는 불태워버리라는 간곡한 유언을 남겼으나 아우구스투스가 이를 저지했다 한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번영과 신의 현명한 섭리를 믿었으며, 고대 영웅들의 언행을 통해 높은 윤리적 세계관을 강조했다. 그의 시에 있어 호메로스의 영향이 뚜렷하지만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갖고 있었고, 특히 그리스 신화와 로마 역사화의 교묘한 음합은 시인의 독창적인 착상에서 비롯되었다. 사망 후 나폴리에 묻혔고, 중세에는 위대한 시인예언자로 숭배되었다.


b. 로마의 정통성과 황제의 신격화를 위해 저술

 베르길리우스가 <아에네이스>를 저술하게 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동시대 인물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 시대의 사회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12차 삼두정치

 삼두정치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정치형태로, 용병을 사병화한 군인정치가들의 정치를 말한다. 제1차 삼두정치(60—50 BC)는 케사르(시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정치를 말하는데, 크라수스는 전쟁에서 전사하고, 남은 두 사람이 대결하여 케사르가 승리한다. 그러나 케사르의 일당독재가 계속되자 공화파인 브루투스 일당이 케사르를 암살한다.

  케사르 암살 후 그의 부하인 안토니우스와, 케사르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가 이끄는 제2차 삼두정치가 수립된다. 이들은 로마의 영토를 3분하여 각각 통치하다가,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의 지휘하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를 악티움 해전에서 격파, 공화정에 종지부를 찍고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시대를 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개혁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는 새 제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다. 그러나 공화제 말기의 키케로 시대의 문인들은 이전의 공화정에 향수를 느껴 아마도 침묵을 지켰거나 또는 아우구스투스에 대해 반대했지만, 신세대들은 새 시대의 영감을 받아들였다.

  이때 베르길리우스는 무의미한 내전이 종식된 데 안도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감사를 느꼈다. 아우구스투스는 국내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했으며 로마 인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용기 절약 의무등 새로운 덕목을 고취시켰다. 이처럼 아우구스투스 체제가 약속해주는 로마의 재건에 대해 열광을 느낀 베르길리우스는, 이제 자신이 평소 준비해온 로마 건국을 찬양한 장편 서사시 <아에네이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기원전 31--기원후 14)는 라틴 문학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새 제국의 시와 산문의 발달에 알맞은 사회적 지적 풍토를 이루어놓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가 리비우스는 <로마 건국사>를 쓰고, 호라티우스는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베르길리우스는 지중해를 통일한 조국 로마에 역사적 후광을 부여하고 그리스에 대한 민족적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신화적인 전설을 만들어냈다. 사실 아에네아스는 그리스의 적이었던 트로이 인이고 전쟁 뒤 그의 행적에 관한 뚜렷한 전설이 없었으므로 위대한 로마를 건설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에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율리우스라고도 불렸으므로 율리우스

케사르(시저)와 그의 조카인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에네아스의 후손임을 자처했다. 오비디우스는 한 술 더 떠서 <변신 이야기>로 로마 황제를 신격화시켰다.


c. 로마 건국 서사시

 <아에네아스의 노래>란 뜻의 이 작품은 12노래로 되어 있고 각 노래마다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어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전반부는 주인공 아에네아스가 그리스 군에게 패한 후 유민이 되어 고국 트로이에서 로마에 정착할 때까지의 방황을 그렸고, 후반부는 새 조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다루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반부는 <오디세이아>요, 후반부는 <일리아드>라 해도 좋을 만큼 두 서사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로이 멸망 후 아에네아스의 오랜 망명, 끝없는 표류, 이탈리아에 도착, 전쟁과 정착의 이야기, 그밖에도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위대한 선배 시인에게서 차용해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호메로스의 표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밝혀둘 것은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복제판이기 때문에 신들의 이름만 다소 다를 뿐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저자가 로마 인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를 로마식으로 해야 하나 그리스 명칭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어 본서에서는 로마식을 원칙으로 하되 괄호안에 그리스 명칭을 첨가했다. 예를 들면 유피테르(제우스), 베누스(아프로디테) 등으로 표기했다.


   아에네아스의 방랑과 사랑

 트로이는 그리스 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었다. 미의 여신 베누스(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자 트로이의 총대장 헥토르에 이어 제2인자인 아에네아스는 전쟁중에 아내를 잃어버리고, 부친과 아들, 그리고 살아남은 트로이 인들과 함께 로마 건국의 천명을 받고 트로이를 탈출한다.

일행을 태운 21척의 배는 7년 동안 바다 위를 표류한 뒤 이탈리아 땅에 접근하게 되었으나, 여신 유노(제우스의 본처인 헤라)가 방해하여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닿는다. 유노는 이 마지막 남은 세력을 파괴하여 로마 건국을 방해하려는 것이었다.

  아에네아스는 카르타고의 디도 여왕의 친절한 환대를 받는다. 이렇게 작가는 교묘하게 로마와 카르타고의 두 민족의 연합을 시도한다.

디도는 베누스의 의도대로 아에네아스에 매혹되어 호화스런 잔치를 베풀고 트로이 함락과 그후 표류 이야기를 청해 듣는다.

  트로이는 그리스의 목마계략에 빠져 아에네아스는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는 그의 아내 클레우사의 망령의 예언에 의해 트로이 인들을 이끌고 조국을 떠난 것이다. 그들은 아폴로 신으로부터 <<영원한 어머니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이것을 크레타 섬으로 해석하고 국가건설을 시도했으나 현지에서 역병이 돌아 실패한다. 그리고 참된 어머니의 땅은 이탈리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탈리아로 향해 가는 도중 그들은 헬레누스와 그 아내 안드로마케의 환영을 받고, 시칠리아 섬에서 아에네아스의 부친 안키세스를 잃게 된 경위를 말한다.

  이야기를 들은 여왕 디도는 여신 베누스와 유노가 이끄는 대로 아에네아스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아에네아스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디도는 아에네아스를 위해 사냥대회를 개최했다. 그날 여신 유노가 보낸 폭풍우로 동굴에 피신한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아에네아스는 유피테르(제우스)로부터 부여받은 로마 건국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여왕의 간청을 물리치고 탈출을 도모했다. 그를 잃게 된 여왕은 슬픔에 잠긴 나머지 저주 속에 자살했다.

  아에네아스 일행은 부친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시 시칠리아섬에 돌아와 부친 1주기 추도경기를 개최했다. 그러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여자들은 유노의 충동을 받아 배에 불을 질렀다. 배 4척이 불에 타고 말았지만 아에네아스의 기도 덕분으로 다른 배들은 유피테르가 내린 비에 무사하여 그는 적은 수의 부하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향하게 되었다.

  긴 항해 끝에 일행은 쿠마에 상륙했다. 아에네아스는 무녀 시뷸라에게 부친의 넋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그녀를 따라 하계로 내려갔다. 그는 여왕 디도 및 부친 안키세스의 넋과 상봉했다. 부친은 앞으로 위대한 로마 건국은 아에네아스로부터 비롯될 것임을 말하고, 건국자 로물루스로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이르기까지의 로마의 미래 지도자들에 대해 언급했다.

  아에네아스는 시뷸라와 함께 <상아의 문>을 지나 지상으로 되돌아와 티베르 강으로 출발했다. 이 땅의 지배자 라티누스 왕에게는 라비니아라는 딸이 있어 구혼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민족 출신과 결혼해야 한다는 신탁에 의해 왕은 아에네아스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신 유노는 이 사실을 기뻐하지 않고 구혼자 중 한 명인 투르누스 왕자를 충동질하여 트로이 인과 이탈리아 인 사이의 전쟁을 부채질했다. 아에네아스는 꿈에 나타난 티베르 강의 신의 경고에 따라 에우안데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에우안데르는 파라티누스 언덕의 도시(로마)를 보여주며 원군과 동맹을 약속하면서 격려해주었다.


   적과의 싸움

 여신 베누스는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만들게 한 무기를 그의 아들 아에네아스에게 주었다. 그중 방패에는 미래 로마의 역사 사건이 예언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에네아스가 원군을 구하러 떠난 사이에 적장 투르누스는 트로이 군의 배에 불을 지르고 진지를 포위했다. 이어 양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투르누스는 한때 트로이 지역까지 공격해 들어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큰 타격을 입게 되고 그 자신은 강을 헤엄쳐 가까스로 탈출했다.

  천상에서는 신들의 회의가 열리지만 신들 역시 신통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피테르는 인간세계의 일은 인간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정한다. 아에네아스는 동맹군을 이끌고 티베르 강을 내려가 용감하게 싸웠다. 격전으로 양군 모두 피해를 입었다. 도중에 잠시 휴전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싸움을 걸어온 투르누스도 용감한 여전사 카밀라가 전사하자 점차 힘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아에네아스 편의 전력은 강화되어 계속 이탈리아의 거리에 불을 질렀다.

  투르누스는 아에네아스에게 1대 1의 승부를 신청했다. 이에 응하여 두 장군은 힘을 겨루게 되었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의 싸움이 계속되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다가 아에네아스가 던진 창에 투르누스는 중상을 입게 되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투르누스를 보자 아에네아스는 동정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이 옛 친구의 것임을 보고 분노하여 죽이고 만다. 이처럼 미완성인 채로 이

서사시의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늑대에게 양육된 로마 건국자

 이 작품은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으나 로마의 건국신화는 계속된다. 아에네아스는 라틴 원주민과 트로이 인들의 단결을 위해 트로이 인들로 하여금 라틴식의 이름을 갖도록 하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왕위를 이어가며 라틴 인들을 지배했다. 그의 13대 후손 알바의 왕 프로카스 때 두 자식간에 반목이 일어나 동생 아물리우스가 형인 누미토르를 몰아내고 왕이 된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누미토르의 아들을 살해하고 외딸인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신전의 수녀로 만들어 누미토르의 가계를 단절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레아 실비아가 베스타의 신전에 바칠 물을 얻기 위해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의 숲에 갔을 때 갑자기 늑대가 나타나 동굴 속으로 피했다. 그런데 이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마르스가 나타나 교합을 갖는다. 이래서 실비아는 처녀의 몸으로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이에 아물리우스는 크게 노하여 실비아와 아이들을 강물에 던져 죽이려 했다. 그러나 신하는 차마 어린 아이들을 죽일 수 없어 광주리에 두 아기를 담아서 티베르 강에 띄웠다. 다행히 티베르 강이 범람하여 쌍둥이를 실은 광주리가 무화과나무에 걸리게 되고, 이때 물을 마시러 온 늑대가 배고파 울고 있는 두 아기를 발견했다. 그 늑대는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동굴로 데리고 가서 양육했다. 어느 날 양치기가 동굴 속에 있는 두 아이를 데려다가 키웠는데, 이 두 형제가 바로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였다.

  이 두 형제는 양치기로부터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분개하여 아물리우스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복위시켰다. 그후 로물루스는 도시건설을 둘러싸고 레무스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움이 일어났다. 마침내 레무스를 물리친 로물루스는 로마 시를 창건하게 되었는데, 그가 전설상의 로마의 제1대 왕이다.


d. 호메로스와 단테의 가교 역할

 이 서사시는 로마 건국의 이념과 그 과정을 노래한 장엄하고 감격적인 인간정신의 산물이다. 작가는 트로이에서 출발하여 카르타고와 시칠리아를 거쳐 티베르 강에 도착하게 되는 아에네아스의 여정을 통해, 그의 애국심과 영웅심, 그리고 신에 대한 복종심을 그리면서 이러한 그의 성품이 로마 건설의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을 엮는 3대 인물인 아에네아스 디도 투르누스는 비평가들 사이에 끊임없는 혼동과 추측을 불러왔다. 많은 독자들은 아에네아스의 다소 냉담한 성격에 거부감을 느끼고 열정적인 디도와 격렬한 투르누스에게 공감을 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듯 로마 시인이 창조한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은 인물이 디도다. 카르타고의 여왕으로서 로마적 생활방식과 대조를 보인 그녀는

독자들에게 너무나 진한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아에네아스가 그러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로마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아에네아스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듯하다. 아에네아스는 개인적 국가적인 품격의 형상화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경건하여 신의 소박한 신봉자이며 무한한 공감을 주는 인간의 벗이다. 처음에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역시 그는 용감했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민족의 시조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힘겨운 문제를 잘 극복해나간다. 정치가이며 군주로서 민족의 흥망을 다스리며 국가 백년대계의 지고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아우구스투스 이래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위대한 정신적 바탕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는 마치 인류의 이상향처럼 인식되어왔다. 수많은 시인 묵객 정치가 철학자들이 로마를 동경하며 로마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사람들은 황홀감과 경이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이 위대한 로마, 이 기적적인 로마의 건국 서사시가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구전적인 설화를 집대성하여 인류 최초의 서사시를 원형적인 수법으로 완성한 호메로스에 비해,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를 취사선택하여 다시 인간예술의 극치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사건의 처리를 원형적으로 보는 데 비하여, 베르길리우스는 인간 예술의 기교를 최대한 활용하여 로마형의 새로운 서사시 장르를 이룩한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로마의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이 즐겨 암송하는 시가 되고, 단테에게는 <신곡>의 모티브를 제공해주었으며, 오늘 우리가 읽는 소설이나 시에 나타난 애정의 표현이나 사건의 구성, 기교의 활용이 이미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음을 볼 때, 고전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