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조금씩배워보자/道德經

道德經 - 10 [載營魄抱一]

baraboda 2015. 12. 10. 17:19

10.載營魄抱一,能無離乎. 專氣致柔,能嬰兒乎. 滌除玄覽,能無疵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전기지유 능영아호  척제현람 능무자호

載(재)실을,(대)떠받들/魄(백)넋,(박)재강,(탁)영락할/抱(포)안을, 던질/致(치)이를, 빽빽할/柔(유)부드러울/嬰(영)어린아이/滌(척)씻을,(조)물이름/除(제)덜,(여)음력사월/疵(자)허물,(제)노려볼,(새)앓을/專专[ zhuān ]오로지 전,전문적이다, 독점하다,오로지


愛民治國,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애민치국 능무지호  천문개합  능무자호  명백사달  능무위호

闔(합)문짝/雌(자)암컷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 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恃(시)믿을,시어머니,[ shì ]의지하다, 믿다/宰(재)재상,[ zǎi ]주관하다, 주재하다, 도살하다,잡다, 바가지 씌우다/畜(축)짐승, 쌓을,(휵)기를,[ xù ]기르다,치다,[ chù ]금수, 짐승


- 참고 :마음으로 도를 안아 그것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가? 본능에 맡기고 부드러움에 이르러 어린아이처럼 될 수 있는가? 현묘함을 본 것마저 씻어내어 흠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무위로 할 수 있는가? 감각이 느껴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에 훤해도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가?


- 참고2 :  <왕필주석>:  載, 猶處也. 營魄, 人之常居處也. 一, 人之眞也. 言人能處常居之宅, 抱一淸神 能常無離乎 則萬物自賓也. 專, 任也. 致, 極也. 言任自然之氣, 致至柔之和, 能若 兒之無所欲乎. 則物全而性得矣. 玄, 物之極也. 言能滌除邪飾, 至於極覽, 能不以物介其明, 疵(之)其神乎 則終與玄同也. 任術以求成, 運數以求匿者, 智也. 玄覽無疵, 猶絶聖也. 治國無以智, 猶棄智也. 能無以智乎. 則民不 而國治之也. 天門, 謂天下之所由從也. 開闔, 治亂之際也. 或開或闔, 經通於天下, 故曰天門開闔也. 雌應而不(倡)<唱>, 因而不爲. 言天門開闔能爲雌乎. 則物自賓而處自安矣. 言至明四達, 無迷無惑, 能無以爲乎. 則物化矣. 所謂道常無爲, 侯王若能守 則萬物<將>自化. 不塞其原也. 不禁其性也. 不塞其原, 則物自生, 何功之有. 不禁其性, 則物自濟, 何爲之恃. 物自長足, 不吾宰成, 有德無主, 非玄而何. 凡言玄德, 皆有德而不知其主, 出乎幽冥.


- 참고 3 : 

載營魄抱一,能無離乎?

承載著營魄而精神專一,能夠永遠不離開嗎?

此言精神專一,形魄不離道,經常守靜無為。

載營魄抱一:即四十二章所言「萬物負陰而抱陽」。載即負,負載、承載。《說文》:「營,市居也」。營魄即形魄,人形體之所居。魂為陽,魄為陰。《說文》:「魄,陰神也。」「魂,陽氣也。」抱一,即抱陽,陽指人之靈魂、精神。用「一」字有專一之義。又「道生一」,一為道之所生,最近於道。抱一者,即是守道。



- 참고 : 載營魄抱一,能無離乎﹖

 身體承載著魂魄並且修成「吾道一以貫之」的聖人後,就能永遠不離開世間嗎?

專氣致柔,能嬰兒乎﹖

 專心修練至柔養生的氣功,就能永遠擁有像嬰兒一樣不老的身體嗎?

滌除玄覽,能無疵乎﹖

 洗滌掃除房舍並全部仔細檢查過,就能永遠沒有污點嗎?

愛國治民,能無知乎﹖

 愛護國家治理百姓,就能永遠巧詐不生嗎?

天門開闔,能無雌乎﹖

 天道的運作,能永遠只有陽剛而沒有陰柔嗎?

明白四達,能無為乎﹖

 通曉了道理,就能永遠沒有偏私嗎?

有大智慧的人能「知常」(眾生本是一體),即使明知這世界一直在「正復為奇,善復為妖」的變化,但仍知其不可而為之。

生之,畜之。

 幫助他的子民永續生存,自然茁壯。

生而不有,為而不恃,長而不宰,是謂玄德。

 幫助他們存活而不佔為己有,有大作為而不自恃居功,使他們成長獨立而不宰制他們。這樣,只做自己該做的而不去要求回報。這只是在做累世輪迴中的功德啊。


- 참고자료 : 땅의 형체를 한 몸에 싣고 하늘의 하나를 껴안는다. 그것이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를 집중시켜 부드러움을 이루어 갓난아기가 될 수 있는가? 가믈한 거울을 깨끗이 씻어 티가 없이 할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 앎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힘에 암컷으로 머물 수 있는가? 명백히 깨달아 통달함에 함으로써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도는 창조하고, 덕은 축적하네. 낳으면서도 낳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을 내 뜻대로 만들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네, 이것을 일컬어 가믈한 덕이라 하네.


* 인간의 몸은 하늘과 땅의 묘합이다. 기를 집중하여 갓난아기와 같은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가? 

* 현람(玄覽)이란 우주적 거울을 말하는데, 그것은 곧 우리의 “마음”을 뜻한다. 도는 끊임없이 생성하는 우주의 과정이다.

* 도(道)는 “길”이요, 덕(德)은 “얻음”이다. 얻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도라는 보편자의 생성의 모습에서 내가 얻어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축(畜)이란 덕(德)을 이루는 과정이다. 축은 일시적인 축적이 아니요, 끊임없이 축적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 준이해석 : 영백(혼백의 조화로운 상태가 아닐까?)을 업고 일(여기서 1이라 함은 최고의 수준, 즉 성인의 경지)을 안고서(이루고) 이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오로지 기를 부드러움에 이르게 하여 영아(가장 조화롭고 순수한 기의 상태라고 함)처럼 될 수 있는가? 현람(자연의 오묘함을 보다)을 씻어 제거하여 허물이 없어 질 수 있을까?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무지할 수 있을까? 하늘문이 열리고 닫힘에 암컷이 없을 수 있을까?  도리를 통달하여 무위할 수 있을까? 낳고 기르면서 낳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위하면서 의지하지 않고 기르면서 죽이지 않는 것, 이를 현덕(무궁하여 검은 덕)이라 한다. 


- 준이생각 : 어찌 보면 지고지선의 도를 통달 하고도, 이를 과감히 떨쳐 내 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갈 수 있는 용기 또는 의지를 묻고 있다. 이는 바로 최대의 허의 자연이고 최고의 무위의 경지가 아닐까 한다...고 말 하면서도 실은 이렇게 떨쳐 버려야 하는 최고의 경지에 단 한번이라도 올라 가 보고픈 마음이다. 노자는 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지만,  필부로서는 이정도의 발끝이라도 넘겨보고픈 마음으로 마음을 수양하고 생활을 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