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조금씩배워보자/道德經

道德經 - 28 [大制不割]

baraboda 2016. 1. 11. 14:06

28.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婴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谿(계)시내,산골짜기,(혜)다툴/離(리,이)떠날,떼어 놓다, 갈라지다, 흩어지다, 가르다, (려,여)붙을,(치)교룡/孀(상)홀어머니, 과부,수절하다/兒(예)성씨,(아)아이/婴(영)어린아이/婴兒 영아, 젖먹이, 갓난아기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忒(특)틀릴,어긋나다,의심하다,사악하다,변하다,매우/弋(익)주살,홰,말뚝,빼앗다,사냥하다/極(극)극진할,다할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辱(욕)욕될,1. 욕되다(辱--), 수치스럽다(羞恥---) 2. 더럽히다, 욕(辱)되게 하다 3. 모욕(侮辱)을 당하다(當--) 4. 욕보이다(辱---) 5. 무덥다 6. 황공하다(惶恐--) 7. 거스르다 8. 치욕(恥辱), 수치(羞恥)/乃(내)이에,곧,도리어,비로소,도리어,다만(애)노젓는 소리/樸(박)순박(淳朴ㆍ淳樸ㆍ醇朴)할,질박하다,다듬다,통나무,바탕,(복)나무빽빽할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大制不割-制,制作器物,引申为政治;割,割裂。此句意为:完整的政治是不割裂的。


- 참고 : 남자됨과 여자됨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어,

덕이 언제나 나뉘지 않으면,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희고 검은 것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모양이 된다.천하의 모양이 되어, 덕이 언제나 어긋나지 않으면, 다시 무극으로 돌아간다.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어,

덕이 비로소 늘 넉넉해지면, 다시 통나무로 돌아간다.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되고, 성인을 그릇으로 쓰면, 장관이 된다. 이렇기에 크게 만드는 것은 쪼개지 않는다.



- 참고자료 : 그 숫컷됨을 알면서도 그 암컷됨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떠나지 아니하니, 그리하면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간다. 그 밝음을 알면서도 그 어둠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어긋나질 아니하니, 그리하면 다시 가 없는 데로 되돌아간다. 그 영예를 알면서도 그 굴욕을 지키면 천하의 골이 된다. 천하의 골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이에 족하니, 그리하면 다시 질박한 통나무로 되돌아간다. 통나무에 끌질을 하면, 온갖 그릇이 생겨난다. 성인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여 세속적 다스림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그러므로 위대한 다스림은 자름이 없는 것이다.


* “박산위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삶에는 “이중성”이 숨어있다. 삶속에는 이미 죽음이 포섭되어 있다고 하는 그 이중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는 모든 순간에 나는 죽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할 줄 알면서도 약할 수 있는 것, 때릴 수 있으면서도 맞아주는 것, 이러한 이중성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지혜의 양면성이다. 인생에는 밝음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어둠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터무니없는 억울한 상황이 계속 닥친다. 노자는 말한다. “밝음을 알되 그 어둠을 지키라” 어두움을 지킬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천하의 모범이 된다.


* 통나무란 그 질박한 원래의 참된 모습을 말한다. 그 참된 원래 모습이 흩어지게 되면 백가지 형태가 생겨나고 온갖 특이한 종류가 생겨난다. 그것을 그릇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박산위기”는 문명의 질서의 창조로 보고, 그 문명의 질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정치제도나 문물을“관장(官長)”이라 본 것이다. “대제불할(大制不割)” 위대한 다스림은 가름이 없고 자름이 없는 것이다. 위대한 다스림이란 천하의 마음으로써 그 마음을 삼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른다 함이 있을 수 있을 손가?



- 준이해석 : 그 수컷성을 알면서 그 암컷성을 지켜 천하의 골짜기가 되게하라, 천하의 골짜기가 되게 하라, 늘 덕이 떠나지 않게 하여 갓난아이로 다시 돌아 가라.  그 흰 것을 알고 그 검음을 지켜, 천하의 기준이 되게 하라, 천하의 기준이 되게 하라, 늘 덕이 어긋나지 않게 하여 무극(끝이 없음, 도가에서 말하는 천지사물의 근원 상태)으로 다시 돌아 가라. 그 영화로움을 알고, 그 욕됨을 지키어(내어), 천하의 계곡이 되게 하라, 천하의 계곡이 되게 하라, 늘 덕이 이내 충분케 하여 통나무樸로 다시 돌아 가라, 통나무는 부숴지면 그릇이 된다.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즉 관장(지도자)이 된다, 따라서 큰 다스림(大制)은 나뉨이 없다(不割).


- 준이생각 : 수컷과 암컷, 백과 흑, 영화와 굴욕,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들을 어느 한쪽을 알면서도, 다른 한쪽 또한 지키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골짜기가 되게 하고 규범이 되게 하고 계곡이 되게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언제나 덕이 떨어지지 않고, 어긋나지 않고, 이내 충만하게 하여 갓난아이, 무극, 통나무 이러한 것으로 돌아 가라고 했다. 이러한 댓구를 통해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본시 덕이라고 부르는 것은(물론 도가에서), 수컷과 암컷, 백과 흑, 영화와 굴욕, 어찌 보면 대별자로 보이는 것들 모두이고, 심지어 이러한 개념들 또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덕으로서 간주 될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반된 성질들이 한 몸이 된 덕의 근원은 마치 갓 태어난 갓난아이나, 이 세상만물의 법칙이나,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커다란 통나무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지금 힘든 시간들이 계속해서 불어 닥친다고,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될 일이라 본다. 정치가 어지럽고 세상의 금전만능주의가 더럽다 하더라고 이를 외면하고 못 본 체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노자의 말씀을 통해 보자면 이 모든 한쪽 성질은 반드시 그 반대 성질의 또 다른 표현이자, 씨앗이기도 하고, 매개 이기도 하고, 더 넓은 시간과 공간의 잣대를 대어 본다면 하나의 소용돌이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