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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E05 –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E05 –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출전: 동서고전 200선 해제3 / 반덕진 / 가람기획)


 20세기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두번째 작품으로, 작가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한 젊은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가 종교적 구속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로운 예술을 위해 예술의 신인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기원하면서, 파리로 떠날 때까지의 예술가로서의 성장과정을 그린 교양 성장소설이다. 세계 문학사에 <의식의 흐름>을 새겨넣은 대표적 모더니스트인 작가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소설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도약과 그의 예술세계 창조를 향한 웅비를 고무적으로 다루고 있다.


a. 우울한 천재작가

 버지니아 울프 프루스트와 함께 20세기 문학사에 <의식의 흐름>을 새겨넣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의 중류가정에서 태어났다. 정치적이고 성악과 농담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카톨릭 신앙이 두터우며 피아노를 잘 치는 어머니로부터 독자적인 언어감각과 음악성을 이어받았다. 여섯 살 때 예수회에서 설립한 클롱고즈 우드 칼리지 부속학교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실직으로 퇴교했다. 1893년 벨비디어 칼리지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5년간 줄곧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고, 1896년(14세)에 낸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영역본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의 가장 오래된 글로 알려져 있다.

16세 되던 1898년 예수회 학교인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영문과에 입학했다. 고고한 상념에 사로잡혀 동료학우들과의 교우를 거부한 채 대학시절 동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3개 국어를 완전히 마스터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조이스의 대학시절은 종교에 대한 최초의 회의와 함께 편협한 국수주의적 애국심에 대한 저항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때 예이츠의 <태서린 백작부인>을 공격하는 동료학우들의 항의문에 서명을 거부하고, 몇 편의 논문과 수필을 발표하여 서서히 비평적이고 심미안적인 문학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03년 모친의 급환으로 파리에서 급히 귀국했으나, 임종의 자리에서 기도해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이미 신앙을 버린 몸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는데, 이 일로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해 아내가 될 노라를 알게 되었고, 각지를 전전하며 영어교사 생활을 하며 생활해나갔다. 1903년부터 써왔던 <더블린 사람들>을 둘러싸고 아일랜드 출판사와 생긴 갈등으로 두번 다시 고국 땅을 밟지 않았다.

  결국 <더블린 사람들>은 1916년(34세)에 가서야 출판이 이루어졌다. 작가로서 처음 쓴 단편 작품집으로서는 너무나 긴 진통 끝의 결실이였다. 그동안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대표적 시인 예이츠와 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에즈라 파운드와 늘 교신했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미국 출판은 에즈라 파운드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구나 뒷날 알게 된 엘리어트 등 수많은 문인들이 그의 천재적인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들 조이스의 불운한 일대기는 하마터면 세상에 빛을 못 볼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극도로 궁핍했고 게다가 지독한 근시였던 탓에 쉬지 않고 거듭되는 안질과 열 차례가 넘는 수술은 조이스로 하여금 점점 더 깊은 자기결벽증의 폐쇄적 증상으로 빠져들게 했다.

  또한 그의 몇 편의 대작들은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의 영향으로 발표되기까지 숱한 난관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난해하여 좀처럼 쉽게 감동을 얻기 힘든 상징예술의 정수가 되었다. 따라서 조이스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의 흐름>의 문체와 기법상의 문체, 그에 따른 보들레르적인 상징과 구조, 또한 그의 독특한 심미안적 예술론의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1922년(40세) 파리에서 <율리시즈>를 출판하고 1939년(57세) 마지막 작품 <피네건의 경야>를 발표했다. 후자의 경우 12번이나 고쳐 쓴 곳도 있다 한다.

1940년 2차 대전중 파리가 함락되자 가족들과 함께 취리히로 돌아와 그곳에서 죽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2개의 정기간행물 중

한 곳에서는 전적으로 <피네건의 경야>만을 다룬다는 사실을 그가 알면 기뻐할 것이다.


b. 의식의 내면을 추구한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등은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인간의 내면적 의식을 추구한 현대소설의 선구자들이다. 그들은 종래의 근대 전통문학이 고수해왔던 사실주의, 자연주의의 소설형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인간의 복잡미묘한 내부의식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그들의 작품은 한편으로 난삽하고 실험적이어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문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상징주의와 정신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이스와 울프 두 사람은 날카로운 감수성과 함께 병적일 만큼 결벽증이 심한 실험주의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두 작가가 서로 교유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두 사람이 교유관계를 맺고있던 문인들을 생각해볼 때 그 실험주의적인 문학세계에 대해 서로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두 작가는 1차 대전의 충격을 맛보았고, 1900년대 초기의 세계적인 경제위기, 사회불안 등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관한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c. 한 예술가의 내면의식의 성장사

 이 소설은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가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예술가가 자신의 천직임을 발견한다는 내용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린 시절의 불분명한 의식을 동화체로 시작하여 차츰 의식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거쳐 결국 자신이 희망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예술가의 생활을 위해 스스로 망명의 길을 택하는 순간까지 한 예술가의 의식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내면화된 문체, 즉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창시한 것으로서, 그리고 마지막에 예술의 신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아일랜드 민족을 인류와 직결시키는 과감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것이며, 후일의 작품 <율리시즈>의 서장에 해당한다.


   제1장

 이 소설의 첫머리는 스티븐의 유년시절이 잠시 환상처럼 일렁이고 난 뒤 바로 학교생활로 펼쳐진다. 스티븐은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미 우리는 그가 겪은 친구들로부터의 소외를 엿볼 수 있다. 육체적으로 작고 연약한 그는 급우들이 즐기는 난폭한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는 왜소하고 눈이 나쁜데다, 집안도 변변치 못해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로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놀림감은, 의외의 불운에 의해 오히려 역전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라틴 어 시간이었는데, 스티븐은 이전에 안경을 깨뜨렸기 때문에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그날의 작문쓰기에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 교육감독으로 들어왔던 무서운 돌런 신부의 눈에 띄어, <게으른 꼬마 꾀보>로 취급당한채 자초지종의 전말을 얘기할 새도 없이 혹독한 매를 맞게 된다. 급우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장에게 이르라고 충동질을 한다. 스티븐은 자기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교장실을 노크하게 되고 교장선생님의 위로를 받고 나온다. 스티븐 디달러스는 이 일, 즉 그들의 적에게 일격을 가한 그 용기로 인하여 급우들에게 작은 영웅으로 환영을 받게 된다.

  스티븐의 이러한 성장기는 특히 당시에 처해 있던 조국 아일랜드의 문제와 스티븐의 우상이자 애국자인 파넬(아일랜드 독립당의 당수였으나 간통사건으로 실각했음)의 죽음에 대해, 파넬을 지지하는 아버지와 반대하는 신부들간의 대립으로 그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받았다. 즉, 그는 그가 예술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종교는 한 가지 세속적 장애물이라고 자각한다.


   제2장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티븐은 예술지향의 한 젊은이로 차차 성장해간다. 부친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스티븐은 집에 머물면서 산보, 유희, 그리고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그는 고독의 기쁨을 즐기며,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스티븐은 이제 중학교인 벨비디어 칼리지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그의 고독은 급우들에 의해 한층 더해진다. 교실 밖에서 친구들과 타협하기를 거절하고 이러한 거절은 친구들의 야유에 의해 한층 고조된다. 예를 들면 급우들과 위대한 시인을 두고 테니슨이냐, 바이런이냐라는 문제로 다투었다. 테니슨을 선호하는 친구들에 맞서 그는 한 예술가의 위대성은 개인적인 도덕률이나 이단에 무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하여 그는 곤욕을 당하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게 하는 힘을 느끼기도 한다.

  스티븐은 그의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그 대신 마음속에서 타는 욕망의 불꽃이 그를 압도하려 하자 그의 마음은 이 격렬한 갈망을 억제하려 무척 애를 쓴다. 그리하여 그는 밤거리를 헤매다 불가피하게 매춘부와 성적 체험을 하게 된다. 동정의 상실은 순수하고 결벽한 스티븐의 양심을 크게 짓이겨놓았다.


   제3장

 그러나 뉘우침은 즉시 찾아왔다. 종교적 묵도기간에 신부는 지옥과 영원한 저주에 대해 무서운 설교를 행한다. 신부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양심을 깊게 파헤치자 그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신부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이처럼 엄숙한 기도주간을 통하여 오염되었던 그의 몸과 마음은 씻겨지고 이번에는 청순한 금욕생활에 들어간다. 이러한 종교적인 충격은 이 작품 뒷부분의 예술론과 함께 급한 호흡을 보이는 의식의 절정을 이룬다. 이때부터 그의 예술가로서의 소양에 굳건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제4장

 스티븐은 어느 날 신부로부터 신학교의 진학을 권유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신부로서 적당치 않음을 의식하면서 그 제의를 거절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야말로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지혜를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종교적 세계로 은퇴하는 것보다는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신과의 불화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추락천사 루시퍼(Lucifer)와, 부친인 다이달로스의 충고를 무시하고 하늘을 너무 높이 날다 지상에 추락한 이카로스(Ikaros)의 운명을 실감하면서 그는 종교를 버리고 예술에 종사하기로 결심한다. 즉, 신부가 아니고 그리스 신화의 명장 다이달로스(Daidalos)로서의, 즉 예술가로서의 길을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명상하면서 행복에 넘쳐 홀로 바닷가를 거닌다.


   제5장

 이렇게 그의 생활은 미에 대한 열렬한 추구와 신앙인으로서의 성스런 몸가짐을 가꾸면서 자기의 미래를 탐색한다. 이 무렵에 친구인 린치와 예술과 미에 대하여 주고받은 대화는 그의 예술에 대한 감각과 사유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후 스티븐은 성직에 대한 심한 회의에 잠기게 된다. 아일랜드의 교회 및 신부의 생활과 자기의 예술관과의 괴리를 느끼고, 드디어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수 있는 예술, 자유로운 예술의 획득을 위해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스티븐은 자신의 일기 속에 예술의 신 다이달로스에게 다음과 같은 기도를 적어넣었다.

  <<늙으신 아버지시여, 늙으신 기술자이시여, 지금 그리고 영원토록 저를 도와주소서.>>

  이렇게 하여 그리스 신화의 명장 다이달로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고, 그를 구속하고 있던 전통과 인습의 그물로부터의 최후의 해방을 선포한다. 어린 새가 둥지우리를 떠나며 자초한 망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d. 20세기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품

 이 소설은 종교적인 가정에서 출생하여 한때는 신학생이 되려다가 예술의 미에 눈을 뜨게 되어 마침내 그것에 인생을 걸게 된 작가 조이스의 정신적 성장단계를 다정다감한 청년 스티븐을 통하여 진지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사에 있어서 근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과 현대문학의 한 분기점을 이루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산문시와도 같은 함축미와 일관된 상징, 정교하게 짜여진 횡적 구성, 형식적인 전통을 거부하는 이지적인 실험 정신은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현대소설의 귀감이다.

  이 소설은 조이스의 성장과정을 다룬 일종의 자전적인 정신사가 의식의 축을 이루고 있다. 한 예술가의 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여 소설기법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것은 이전의 소설들의 주된 흐름인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현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인간존재의 내면세계를 투영하고 있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들은 이와같이 등장인물들의 성격 창조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의 내면세계를 밀도있게 추적하면서 현대소설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셈이다.

  현대소설은 인간의 현실적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반영인 근대소설과는 달리, 인간의 심리세계로 그 시선이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이스의 소설들에서 일관된 사건이나 성격구성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작품 속에 흐르는 의식의 양태를 독자들이 나름대로 종합하고 정리하여 일관적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주인공 디달러스의 성장기에 대한 파악도 <의식의 흐름>을 통한 정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유년시절부터 신부들에 의해 교육되는 엄격한 학교생활, 대학에서의 예술에 대한 심취와 자기각성, 인격형성, 그리고 유학의 길에 오르는 시간적 흐름이 바로 주인공의 의식변화에 초점이 맞춰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주인공의 의식변화와 내성적 성격의 변화에 소설적 형식의 기법이 가미되어 있는 셈이다.

  한편 이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T. S. 엘리어트의 스승)의 도움으로 <에고이스트>지에 연재되었고, 1916년 미국에서, 17년 영국에서 각각 출판되었다. 조이스는 뛰어난 구성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주인공 스티븐 디달러스의 <영원히 미숙한> 정신을 통해 형식주의와 종교나 맹목적인 애국에 대담한 반기를 들고, 역시 <미숙한> 채로 그의 심미안적 예술관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