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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D01 – 서문

D01 – 서문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3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서문

  하늘의 소리로 '사람의 도'를 밝힌 동서양의 고전을 통한 '마음 공부' 인류 역사 이래,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에 의해 뒷받침되는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유례없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자연은 물론 우주까지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문명과 역사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진보는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가질 수 있다.


    문명에 대한 성찰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현대문명과 역사의 진보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 가치가 결핍된 물질문명의 발전은 이대로 좋은가, 물질적 풍요가 결과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의 죽음만이 아닌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의 물질적 욕구충족과 무절제한 자연정복이 과연 인간의 이상이고, 참다운 진보일 수 있는가.

  그동안 우리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경제발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보다 더욱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소홀히 해왔다. 삭막한 무한경쟁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심지어 '나'조차도 잃어버렸다.

  경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국토가 황폐해간다는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이제 옛날처럼 나비와 벌이 날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은 오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맞이하는 봄은 약동하는 봄이 아니라, 고요한 봄 (silent spring)이다. 아니, 죽음의 정적만이 흐르는 '침묵의 봄'이다.


    정신적 빈곤

  그러나 환경파괴 못지않게 우리의 심성도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지고 있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희박해지고 있다. 인간존중에 기반하는 정신적 가치관 대신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적 가치 못지않게 정신적 가치 역시 중요하다. 인간다운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진리, 정의, 인간의 존엄성 등은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 가야 할 정신적 이상이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의 포기는 인간의 포기를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내면적으로 고갈되고 철학적으로 빈곤하다. 현대문명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며 우리의 삶은 그만큼 얕고 허전하다.

  오늘의 문명은 정보는 풍요해도 정신이 빈곤하다. 특히 오늘의 청소년들은 깊은 사색보다 가벼운 쾌락에 탐닉한다. 그들은 도덕적 사회적 지적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순간적 욕망을 채워가며 살고자 한다. 그들의 목적은 진리탐구, 도덕적 성취, 사회적 봉사 등 정신적 가치의 창조에 앞서, 가벼운 멋을 내고 사는 데 있는 듯하다. 무거운 책을 읽기보다 가벼운 만화를 가까이 한다. 사고력의 성장이 중단된 채 감각만 발달하는 청소년들, 그들을 어찌할 것인가.


    교양교육의 중요성

  그러면 오늘날 젊은이들의 정신적 사상적 혼란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철학의 부재와 이로 인한 현재의 교육제도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고교시절에 문제 푸는 기계가 되어버린 그들은 일단 대학에 오면 전문지식의 습득에만 관심을 둘 뿐 폭넓은 독서와 교양은 뒷전이다. 학생들간에는 입학 후 쓰지 않고,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소위 '3무주의'가 팽배해 있다. 따라서 인간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바람직한 가치관이나 인생관의 설계가 굳건하지 못하다.

  현대처럼 학문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보편적인 교양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대학이 추구하는 두 가지 이념인 '전문인 양성'과 '인격자 양성'은 대립적인 개념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전문과 교양의 상호 조화적 전개를 통해 교양으로 하여금 전문을 보완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과학기술 입국이라는 구호 아래 과학기술의 절대적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대학의 교양교육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물질적인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적 가치를 가질 뿐, 그 자체가 목적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참된 가치를 식별하는 안목이 없으면 과학은 폭군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은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인류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과학기술은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쥐라기 공원'에서 보지 않았는가? 다행히도 최근 대학 스스로 현실의 위기를 실감하고 교양교육의 강화를 의해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대에서는 교양교육의 내실화 방안으로 '동서고전 200선'을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94학년도에 인문 사회과학분야의 학생들에게 고전강좌를 개설한 바 있다. 그 결과 교육적 효과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96학년도부터는 교양과정의 전체 학생들에게 확대할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고려대에서도 '바른 교육 큰 사람 만들기 위한 교육선언'을 발표하고, 교양과정에서 '명심보감'등을 교재로 인간성 교육에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대학에만 국한되어서는 목적 달성이 어렵다. 초중고는 물론 직장과 각 사회단체, 그리고 언론 등으로 확대되어 인간성 회복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적인 인간상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이상적인 인간상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본뜨고 닮고 싶은 바람직한 인간상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일선학교와 가정에서는 역경을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은 '인간승리'의 주역들을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하여, 학생들이 항상 본받고 행위의 기준으로 삼게 해야 한다. '참된 목표가 없으면 우리의 열정은 그릇된 목표에 쏟게 된다.'는 몽테뉴의 말이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학생들의 이상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려 했던 공자나, 유배지에서 눈물을 머금고 국민을 위한 행정을 펼 것을 역설한 정약용, 그리고 허약한 육체를 평생 동안 규칙적인 생활로 잘 관리하여 80세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만하면 족하다"라고 정신적 만족감을 표명한 칸트 등 우리의 정신 세계를 지배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의 우상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무한한 꿈과 지적 호기심을 심어 주는 과학자나, 투철한 사명감에 입각하여 자신의 젊음을 인류문화 발전에 바친 위대한 교육자, 그리고 남다른 근면과 성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업가들의 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감동적인 한 권의 책

  그럼 학생들에게 어떻게 그러한 인간상을 제시해야 할까. 몇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이 직접 독서를 통해 만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즉, 자신이 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자신의 이상을 달성한 사람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어떤 보상이나 지위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성취만을 위해 초지일관한 '감동적인 인간상'을 직접 대면케 하여, 소비적인 방향으로 배출구를 찾고 있는 그들의 에너지를 창조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책 속에서 마주하는 정신적 스승들의 진솔한 음성은 그들에게 신선한 지적   격을 주게 되어, 그들의 의식과 가치관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독서의 생활화를 통해 자꾸만 밖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들떠 있는 세상의 분위기를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하겠다.

  내 마음이 평온하면 나를 대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게 되고, 상대방의 마음을 순화시켜주게 된다. 내가 느낀 정신적 만족감은 나도 모르게 밖으로 발산되어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꽃향기 속에 들어와 있는 향긋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필자가 동서고전 200선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역사상 존재했던 위대한 문학가와 사상가들은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기의 마음을

밝혔던 분들이었다. 모든 공부 중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마음 공부'가 으뜸이다.


    고전 읽기 활성화

  특히 서양의 사상가나 문학가들은 어릴 적부터 그리스나 라틴 고전을 탐독했고, 동양의 사상가들은 사서삼경을 비롯한 중국의 고전을 필수적으로 숙독하여, 그들의 정신적 성장의 토대로 삼았다. 고전은 그들에게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음은 물론,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의 지적 탐구 작업이 한계에 부딪히면, 그들은 언제고 고전의 샘물을 마시고 영감을 얻었다. 고전 앞에 그들은 영원한 학생이었다.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전범으로 삼아야 할 동서고전들이 제시되어 있다. 비록 동서고전 200선이 그 내용에 있어 난해하고 무거운 점이 없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권 한권 읽어나가는 동안 새로운 지혜의 눈이 열리고 사고의 깊이가 더해가는 지적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신 없이 살아오느라 깊이 생각하지도, 철저히 진실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성실하지도 못했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다 조용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데 있다. 그러한 속에서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수정하고, 정신적 풍요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수정해야 한다.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했으나 정신적으로 빈곤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는 오늘날 그의 존재마저 기억 속에 사라졌지만, 위대한 사상과 문학을 발전시킨 중국문명은 인류의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로마제국은 오늘날 관광객들이 찾는 폐허로 남아 있지만, 로마군에 정복된 그리스는 그가 남긴 철학적 사유로 인류역사에 영원히 빛나고 있다. 정신이 결여된 물질문명은 얼마나 허망한가. 공자와 석가모니, 쾨테와 셰익스피어가 없는 인류 지성사는 얼마나 공허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영원히 샘솟는 지성의 샘물을 주신 지적 스승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새해 아침에 반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