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조금씩배워보자/孟子

盡心章句下 - 26 <受之而已矣> 20151120

<受之而已矣> 20151120


26-01 孟子曰 逃墨必歸於楊 逃楊必歸於儒 歸斯受之而已矣

        맹자왈 도묵필귀어양 도양필귀어유 귀사수지이이의

逃(도)도망할/墨(묵)먹,(미)교활할/楊(양)버들/儒(유)선비/斯(사)이, 천할


맹자가 말하기를 “묵자의 설을 피하면 반드시 양자에게로 돌아오고, 양자의 설을 피하면 반드시 유교로 돌아올 것이니 한번 돌아만 오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26-02 今之與楊墨辯者 如追放豚 旣入其苙 又從而招之

        금지여양묵변자 여추방돈 기입기립 우종이초지

豚(돈)돼지/苙(립,입)구릿대,짐승우리/招(초)부를,결박하다,묶다


 그런데 요즈음 양·묵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풀어놓은 돼지를 쫓을 제, 돼

지는 벌써 우리 속으로 들어 왔건만, 또다시 이를 불러들이려 한다.”


- 참고자료 :

중국 사상가 묵자(중국의 예수)와 양자(중국의 리처드 도킨스) 

(최인호의 유림 4권 '맹자편' 中)

'...내가 왜 싸우고 싶어서 싸우겠느냐. 이미 양주와 묵적의 언론이 세상에 가득 차서 천하의 언론은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으니 나는 이를 두려워해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방자한 말을 몰아내며, 사설을 내세우지 못하게 하려던 것...'

'공맹사상' 이라고까지 불리는 유교[유학]의 커다란 스승인 맹자가 남긴 말이다.

제자 공도자가 호전적이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스승 맹자에게 '스승님은 어째서 그렇게 논쟁하기를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맹자의 대답이었다.

이와 같이, 공자가 활약한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약 150년이 흘러 맹자가 활동했을 때, 이미 중국천하는 양주[양자]와 묵적[묵자]의 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묵자는 어떤 사람인가.

요즘 개봉하는 '묵공' 이란 영화,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는 일본의 동명만화가 원작인 묵공은, 실존하는 '혁리' 라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혁리가 바로 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묵자는 중국의 예수라고까지 평가받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전세계 최초로 '겸애설'[모든 이를 사랑한다]를 주창한 사람이며, 이는 '원수마저 사랑하라'라고 말한 예수보다 몇백년을 앞선 선구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묵자는 조금 달랐는데, 철저한 약자의 편이되 절대 남을 침해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영화 '묵공'에서도 나오듯,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강한 자를 막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대국 초의 왕이 약소국 송을 치려 할 때 묵자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대장군 공수반과 모의전쟁을 벌여 백전백승한 후, 초왕의 의지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항상 '실천역행'[말과 행동을 같게 한다]을 중히 여겼던 묵가는 그 스승부터 제자까지 모두가 하층민들이나 할 법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살았기에, 묵자의 수제자 중 한사람인 금골희는 기록에 '묵자를 따른 지 3년이 되자 얼굴과 온 손과 발이 새카맣게 되어 버렸다' 라고 했다.

이렇듯 실천을 중시하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부르짖은 묵자였으나, 그 시대의 대학자인 양자와 맹자와는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이는 양자와 맹자 사이도 마찬가지다.

묵자는 맹자를 '허례허식에 치중해 말만 앞서는 위선자' 라고 비난했으며, 맹자는 묵자를 '위아래도 모르는 천박한 놈' 이라고 욕했다.

[그러나 묵자는 원래 유가 사람이었다. 유가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학파를 만든 것이다.]

그럼 양자는 어떠한가.

맹자가 공자의 유학의 정통계승자라면 양자는 노자가 만든 노가의 정통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노가의 가장 대표적인 '무위론'을 심화 발전시킨 양자는, 처음부터 묵자의 '겸애설'을 실행 불가능한 공리공론으로 보고 맹렬히 비난한다.

오히려 양자는 이렇게 비웃기까지 한다. '나의 털 하나를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소리다. 이기적인 소리 맞다. 양자는 끝까지 이기주의를 주창하고 개인주의를 부르짖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기주의'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묵자가 '겸애설' 로써 극단적인 이타주의를 부르짖었다면 양자는 '내 털 하나도 뽑아줄 순 없다'[위아설]라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부르짖었으므로 둘은 전혀 정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양자는 또한 그리스의 소피스트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쾌락을 중히 여기는.

'여씨춘추'에서는 양자를 '자기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한비자' 에서는 '물건을 가볍게 여기고 생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경물중생의 선비다' 라고 했다.

양자는 말했다. '몸의 터럭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피부를 모으면 장기만큼 중요해질진대, 어찌 나의 것 가운데에서 귀히 여기지 않을 것이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실은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 라고 외치는 노자의 '무위론'을 첨예화시킨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노자는 일찌기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고, 창으로 엿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짐작할 수 있다. 도리어 파고들수록 아는 것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가지 않고 알며 보지 않고도 차이를 이해하고 하지 않고도 이룬다' 라고 하였다.

결국 노자와 양자의 이론을 축약하자면 이렇다.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도[道] 이다.'

나는 유교를 신봉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유교를 정신적 뿌리로 두었지만, 내 삶은 양자적 삶을 살았다.

유림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나랑 이토록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상가가 이미 몇천년이나 전에 있었을 줄은.

나 또한 그렇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것은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과는 틀리다. '자기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묵자의 도, 겸애설도 좋다. 하지만 난 양주의 도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이 좋아서 남도 사랑하는 인생, 얼마나 좋은가?

생은 즐기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있는 데 그 내용의 핵심인 즉 자기 복제 전달의 본능을 가진 유전자는 모두 이기적이다. 만일 유전자가 이타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유전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 준이생각 : 다시 묵적과 양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맹자와 더불어 세 사람이 거의 한시대를 살면서 서로들 참 안친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맹자를 통해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 다른 시각을 보고자 위의 참고 자료를 올려 본다. 꼭 유교가 바르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각 사상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을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했던가는 꼭 알아야 공부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맹자로 돌아 와서... 이미 양주와 묵적은 제대로 된 사상이 아니라고 ‘진도 나간 부분인데, 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냐’ 그것은 이미 잡아서 우리속에 가두어 놓은 돼지를 또 묶으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리석고 무용한 일이다...(맹자선생님 참 까칠하시네)



- Music Today : https://www.youtube.com/watch?v=TUD_wltlH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