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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끄적/주절주절

할머니의 장례식에 다녀 와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장례식에 다녀 봤지만 이렇게 가서 상복을 입고 상주가 되어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는 이야기 인지...내가 잘 알고 따르던 분들의 죽음들...

특히 국민학교 5, 6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손선생님이 간으로 돌아가신게 내가 중3때 일이었다.     그때 죽음에 대해서 느꼈던 막연한 감정들... '이제는 아무때나 불쑥 불쑥 찾아 뵙고 이야기도 듣고 밥도 얻어먹던 분이 이제 세상에서 없어지신거구나... '

그리고 할머니...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때 친히 우리 집에 오셔서 쌈지돈 모아 놓으셨던 돈을 내게 주시면서 열심히 공부하거래이 라고 하시던게 어쩌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할머니의   다섯 자식중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시던 우리 아버지때문이셨던지 특히 우리 삼형제에게 관심을 많이 보여셨던걸로 기억된다. 92수를 사시고 편안한게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제시대때 태어나셔서 30대에 해방을 보시고 한국동란도 겪으시고 일본에도 가서서 조금 사시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다섯자식을 혼자서 다 키우시느라 허리가 거의 90도 가깝게 휘어셨다. 전형적인 우리세대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한다.

할머니에게서 난 4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은 모두다 시집 장가 다 가셔서 그 밑에 각각 3~5명씩의 자녀들이 있고 그 중에서 또 결혼을 하여 나처럼 1~3명씩의 손주들을 보셨다. 대가족을 할머니 밑에 두셨으니 할머니는 즐거우셨을까?

 모두들 제 살기 바빠 제대로 찾아 뵙지도 못하고 한번 모시고 여행도 못다녀 본게 자식들의 태만이나 과실일까 아니면 이 나라, 이   세상이 이 나라의 자식들에게 뒤집어 쒸우는 짐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