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oh column: Brewing coffee inside moka pot is a finicky art

(originated from : http://www.sctimes.com/story/life/food/2014/09/03/teoh-column-brewing-coffee-inside-moka-pot-finicky-art/15004337/)


Moka pots, sometimes called a stovetop espresso maker, isn't really an espresso maker. It's a small (or large) steel pot, broken into three primary compartments: the lower compartment for water, a small filter and holder for the coffee grounds, and the top where the pressured brew is squeezed through and kept.


It's my most infuriating method of brewing right now, as it's really simple to execute but nightmarishly hard to brew a good cup of coffee.


The idea of the moka pot is to have heated water pushed up a small pipe due to pressure, through coffee grounds, upward into the container that then holds the brew.


In some ways it's similar to a vacuum pot in that both have relatively consistent heat and pressure, but where the vacuum pot has the grinds seeping in heated water, the moka pot has a short extraction period as the water is pushed past the coffee grinds rapidly with pressure.


While it's called the stovetop espresso machine or maker, it doesn't provide anywhere close to the same amount of pressure that espresso machines do. You're unlikely to get the creamy foamy layer known as crema from a moka pot, and it ordinarily has a lighter body than actual espresso.


The tricky thing about moka pots is that not only are there many different polarized recipes and approaches, each small variation is amplified in taste. I've even heard that moka pot recipes are sometimes considered family secrets in Italy. I'm not entirely convinced that's untrue.


Many recipes called for preheated water on low heat to brew the coffee. At the same time, other brewers swear by using cold water, with medium-high heat. I've found that this often heats up the coffee grounds as well and draws out the burnt taste more.



Some recipes ask for the coffee to be as coarse as they would be for a Chemex coffeemaker, while others recommend slightly coarser than an espresso grind. But the aftereffect of a coarser grind is a watery brew, while a fine grind might leak through the filter.


Most caution against tamping the grinds down, as that could create too much resistance during the brewing process. But tamping the grinds down also provide a longer extraction process, bringing more flavors out.


There are recipes that suggest keeping the lid closed; others ask to have it open. Numerous say to remove the pot from heat once gurgling from the water chamber is heard, while countless others say to keep it on low heat up until the brew starts looking light yellow.


Unlike a French press, a vacuum pot, or even an Aeropress where you can brew for a varying number of people, moka pots can only brew for the number of people it's sized for.


You can't buy a 3-cup moka pot and use it to brew less than three cups, as it requires the entire coffee grind holder to be filled in order to work properly.


In short, the moka pot is a rigid, finicky and frequently maddening method of brewing coffee.


I'm nearly convinced that I could tarnish and spoil a moka brew just by accidentally sneezing while standing by it.


But all the complaining and ranting aside, I've not had such great fun brewing coffee in recent memory. It feels like playing Sudoku with coffee, where every little change affects numerous other instances.


I predict it'll be many more columns before I find the recipe that suits my taste, and I'll stick with my tried-and-true brewing tools until then, but if you're a moka pot user and you have suggestions to send my way, message me on Twitter @jkteoh or email me at jteoh@stcloudtimes.com.


Until I figure it out though, I'm sticking to the Aeropress for my morning brews.


2.2톤의 차체 무게에 이런 연비가 나오는게 신기하다


어젯밤 토론에 나왔던 전원책 변호사...
어쩌면 현재 이 땅에 무지렁이 궁민들 딱 그 수준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화가 치밀기도 하면서 연민의 감정도 동시에 느껴진다. 밀치면 안된다. 이런 사람도 감복시키면서 품에 안고 밝은 세상으로 가는 거인이 나왔으면 좋겠다.


감쪽같이 사라진 꿩에 대한 추측

1. 지역 검역 수의사 : 아마도 동네 고양이가 물어 갔을 듯

2. 공사직원 : 누군가 먹으려고 가져 갔을지도

3. 십장님 : 아마도 약 같은 거 먹고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날아 갔을런지

4. 나 : 주변에 맴도는 매를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2017. 1. 3.


달성기념.... 오늘 아침 출근길, 신호 대기중 ^^



평균 연비 14.6 km가 왜 내게 의미를 지니는가 ?

일단 이 차의 공식 연비는 도심지/고속도로 평균 14.6 이다.

그리고 당초 시승차로서 11386 km 를 달렸던 차를 받을 때, 평균연비가 13.6km 로 찍혀 있었다. 

이 차를 2016. 9. 13. 날자에 받아서 이제 약 704km를 달려서 평균연비 = 공식연비로 찍은 것이다.  

내 나름의 의미로는 이제 완전히 초기 상태로 리셋된 것과 같은 거랄까, 뭐 그런 느낌이다. 


올해 단종되고, 후속모델은 이와 같은 마초적이고 살짝 투박한 맛이 없는 여느 고급차 처럼 이쁘게 빠진 곡선이라서 내 취향에 맞지는 않았고,

국내 수입된 차량은 완판.

전국에 시승차 두대만 남았는데, 모두 D4(전륜 모델)... 그래서 자연스레 D5(4륜 모델)의 꿈은 접고

(D5의 사륜 구동의 마초적인 모습, 그리고 좀 더 고급진 카오디오는 그래도 여운을 길게 남긴다.)

다른 한대는 검정색...이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제외.

그러고 선택된 이 차. 

Volvo XC70 라인의 마지막 모델, 그리고 마지막 판매 차량을 시승차량이기에 할인도 큰 폭으로 받아서 살 수 있었다.

이제 최소 15년은 나의 충실한 발이 되어 줄 말...또는 차 



2016. 9. 22.



재산권과 생존권, 무엇이 더 소중한가? 

우리도 모르게 나의 재산이 타인의 생존보다 더 소중하다고 은연중에 생각케 되어 온거나 아닐까 싶다.... 부끄럽다




[아침을 열며]홈리스들에게 집을 준 핀란드 - 경향신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9181507001&code=970100&med_id=khan

세상 살다 보면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 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뉴스에 묻혀지고,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져 가고...

어찌 보면 크다란 사건도 아니지만.... 기사를 읽으면 마음이 크게 움직여지는 기사들이 있다. 아래 기사처럼...


"40대 아빠는 일용직 건설노무자다.  지금은 가출한 외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8살 장애아 아들이 있다. 둘이서 산다. 혼자 아들을 집에 두기 애처러운 아빠는 아들을 1톤 트럭에 태우고 함께 다닌다. 어느날 귀가길에 교통사고로 두사람이 함께 목숨을 읽는다." 

너무 슬픈 현실의 한토막인거 같다. 

....


(왠지 가까우면 상가집에도 가서 곡이라도 하고 싶어지지 않나?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너무 애처로와서...
사랑도 낭만도 없이 수고로움과 눈물만 남은...)




장애 아들 차 태워 일하러 다니다 함께 숨진 아빠

"장애 있는 아들 혼자 둘 수 없어" 건설일용직 일하던 임씨 부자, 귀가 중 숨져

16.09.06 16:22l최종 업데이트 16.09.06 16:22l연합뉴스(yonhap)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차근호 기자 = 아내는 가출했다. 40대 아빠는 장애가 있는 8살 아들을 집에 혼자 둘 수 없었다.

건설일용직으로 공사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아빠는 학교가 파하면 아들을 차에 태우고 다녔다. 

트럭을 타고 동고동락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안락한 삶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함께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6일 오전 1시 49분께 부산 사상구 낙동대로 한 모텔 앞에서 임아무개(47)씨가 몰던 1t 트럭이 정차해 있는 25t 탑차(운전자 최아무개·50)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아버지 임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들(8)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다.

기사 관련 사진


▲ 부자 목숨 앗아간 교통사고 현장 6일 새벽 부산 사상구 낙동대로에서 25t 탑차를 추돌해 심하게 부서진 1t 트럭. 40대 운전자와 뇌병변 2급 장애가 있는 8세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6.9.6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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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결과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임씨는 9년 전 외국인 여성과 결혼해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내는 3년 전 뇌병변 2급인 아들을 두고 가출해 연락이 두절됐다.

처음에는 여동생의 도움으로 아들을 돌봤지만, 올해 초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주변의 도움 없이 임씨 혼자 아들을 보살폈다. 

혼자 아들을 돌보면서 생계도 꾸려야 했던 임씨는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임씨는 아들이 학교수업을 마치면 차에 태우고 다니며 공사판을 전전했다. 

고된 노동 중에도 틈틈이 아들이 잘 있는지 살피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지극하게 보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의 형수는 "정시 출퇴근하는 일반 직장은 아들이 아프거나 할 경우 갑자기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임씨가 일용직 일을 택했다"면서 "아들이 남들처럼 정상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늘 미안하다고 말했고, 입버릇처럼 '아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임씨는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영세민 아파트에 살았고 임씨가 이날 운전한 차량도 한달 전 병으로 숨진 형에게 물려받아 사용하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어린이 보호장비(카시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임씨와 아들이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바람에 각각 운전대와 대시보드를 강하게 충격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밤길이기는 하지만 사고 현장 주변 조명이 밝아 불법 정차한 25t 탑차가 잘 보이는 편이었고, 주변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장면을 분석한 결과 임씨의 트럭이 사고 전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급하게 바꾸려 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졸음운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25t 탑차 운전자 최씨는 사고 현장 주변 업체에 설탕을 배달하려고 전날 밤 인천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업체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느라 차를 불법 정차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임씨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려던 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근처에 있는 다른 형의 가게나 부산 북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왜 공부를 하는가 ?
가장 착각하는 것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험을 왜 잘 보아야 되지? 좋은 성적과 좋은 시험결과를 통해 좋은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기 위해서 ? 그러면 좋은 학교, 좋은 과에는 왜 가야되지 ? 취업이 잘되고 안정된 직장과 고 소득을 위해서 ?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 결국은 돈 벌기 위해서? 

그렇다면 돈은 왜 많이 벌어야 하는가? 가지고 싶은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 그것이 행복일까? 부자일수록 행복할까? 세계 100대 부자들도 1등부터 차례로 조금씩 덜 행복할까?
누구나 살면서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복, 이것은 모두가 원하는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라고 감히 말해도 된다. 그 행복의 내용과 형태는 이 세상 사는 사람수 만큼이나 다양하고, 그위에 또 인생의 역정속에 수많은 순간마다 그 행복의 형태도 조금씩 틀려진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행복은 ‘모두의 행복’이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행복할수 있기 때문이다. 나, 우리 가족, 나의 지인, 또는 친척, 나아가서 학교, 지방, 국가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행복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사고를 가지게 되면 이 세상은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생명가진 모든 것은 모두 준엄하고 행복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의 행복을 무시해도 된다면 어떻게 도둑이나 강도, 사기, 살인, 등 이 모든 것을 다스릴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힘있고 돈있고 젊은 사람만이 활개치고 다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참하게 살아야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이 지구 위에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이 어딘가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우리 인간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약육강식과 무자비함과 피의 역사였다는 것, 지구상 동쪽 한 구석에 조용하게만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바로 우리의 역사 마저 착취와 탄압의 역사였었다. 하지만 그런 역사였다고 해도, 이 세상이 그렇게 아비규환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 사람들의 역사가 바로 휴머니티의 역사고 지상에 사랑의 혈액을 돌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려면, 스스로 강해야 된다. 돈도 있어야 되고, 건강해야 되고, 힘도 있어야 된다. 그래야 스스로 자신과 가족과 지인과 사회를 위해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다.
그래 좋은 대학, 좋은 과, 좋은 직장과 안정되고 고소득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이 세상에 있다. 그래야만 된다.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꼭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모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길을 가야 더 쉽게 행복의 길로 갈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살려면, 알아야 한다.
자신과 가족과 모두가 행복해 지길 원한다면 알아야 하고, 슬기로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지금(초,중,고 시절)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야 되는가? 바로 이때가 인생의 시점에서 가장 공부하기 좋을 때이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쓸데 없는 편견과 아무 쓸모 없는 대부분이 거짓인 지식때문에 제대로 된 공부를 방해 받을 일도 없다. 책 좀 읽고, 밤새워 공부하고 싶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일도 없다. 머릿속은 봄에 땅속에서 한껏 물을 빨아 올려서 잎을 틔워 내는 나무처럼, 싹을 지상위로 밀어 올리는 풀처럼, 마른 수풀에 번져 나가는 들불처럼 빨아 들이는 모든 지식과 경험은 평생을 가지고 갈수 있게 하드웨어(머리의 가장 한가운데 선명하게 기록되어짐)에 저장되는 것이다. 너무도 쉽게 이해되고 너무도 쉽게 외워지고, 너무도 맑고 빠르게 이해된다. 그래서 초,중, 고 시절에 돈벌러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책읽고 공부하기를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초중고 시절. 난 그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마음도 커고, 자아도 자라는 시절이기도 하지만, 또한 몸도 커는 시기다. 운동해야 된다. 즐겁게 공부하고 즐겁게 책읽고 즐겁게 뛰어 다니며 운동해야 된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야 된다. 그 꿈 또한 자신의 공부와 운동과 책읽기와 함께 자라 날 것이다. 항상 궁금해 해야한다. ‘왜?’




인간이란 문화라는 바다속에 사는 동물이다. 문화는 과거의 인간 지식과 역사의 합이며 그것이 현재에 작용하는 형태이며 이 속에 사는 인간은 다시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쓰 나가고 있다.
읽고 쓴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과 미래를 잇는 타임머신의 기능을 한다. 읽는 것은 언제과 과거와의 접점을 가지고 있고 쓴다는 것은 항상 쓰는 시점과 비교하여 미래와 접점을 가지고 있다. 활자화된 내용은 이미 순간에 사라지는 생명체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듣고 말하기는 읽고 쓰는 것에 비해 바로 ‘지금’, 즉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현재’라는 것 또한 아주 짧은 순간의 과거와 미래의 딱 중간의 찰나 이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일정수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할수 없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란 것이 바로 지금 인류의 관점에서 볼때는 분명히 과오와 얼룩도 있긴 하지만 쌓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사건과 삶의 합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원튼 원하지 않든 이 속의 문화의 내용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이렇게 개개인 또는 일군의 인간에게 문화를 이입하는 행위가 바로 ‘교육’이다.
따라서 교육이란 것은 새로운 인간사회의 신참 구성원(이를테면 아이, 어른 할 것없이)에게 스스로 삶을 지속토록 하는 힘을 주는 행위이다. 교육을 통해서 구성원은 사회속에 자신의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교육은 인간의 삶의 필수 과제다.
시간의 축에서 볼때, 읽고 쓰기, 그리고 듣고 말하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처럼, 다시 이는 대상으로서도 뚜렷이 구분된다.
읽고 쓰기는 ‘활자’에, 그리고 말하기 듣기는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활자는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며 사물을 통해 스스로의 영구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소리’는 대기의 순간적인 울림으로서 그 속성-순간성, 찰라성-을 벗어 날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읽고 쓰기, 듣기와 말하기 이 네가지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얼마나 확실히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네가지 기본 행위 가운데에는 바로 사고하는 자신(또는 자아)이 있다. 이 네가지는 바로 생각하는 자신을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직,간접 경험을 통해 지혜로운 사고를 가지고 그 지혜를 타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또는 인간관계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궁극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바른 인간의 삶 - 지혜롭고 착하고 소박하고 성실하고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창조하는 삶 -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아교육과 성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라는 것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바로 삶의 가장 기본이고 본체에 가까운 것이다.
읽고 쓰기, 듣기와 말하기는 바로 교육, 또는 공부의 궁극의 목표이고 그 수단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바로 성장하는 자아가 있다. 이 모든것은 서로 하나다.
읽어서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쓰고, 타인의 의견을 정중히 들어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겸손하면서도 정확히 말하여 전달하고. 그러면서 이 네가지 행위속에 진실과 거짓을 짚어내는 능력, 더 나은 방안이 있을수 있으며 그것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인간에게 이 외에 더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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