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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道德經

道德經 - 58 [其政悶悶, 其民淳淳]

58.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悶(민)답답할,1. 답답하다 2. 깨닫지 못하다 3. (사리에)어둡다 4. 번민하다(煩悶--) 5. 혼미하다(昏迷--) 6. 민망하다(憫惘--) 7. 뒤섞이다 8. 번민(煩悶) 9. 혼미(昏迷)한 모양/淳(순)순박할,1. 순박하다(淳朴ㆍ淳樸ㆍ醇朴--) 2. 깨끗하다, 맑다 3. (인정이)도탑다(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 4. 크다 5. 짜다, 소금기가 있다 6. (물을)대다 7. (물을)뿌리다 8. 흠뻑 적시다 a..../察(찰)살필/缺(결)이지러질,없다, 모자라다, 부족하다 (규)머리띠/倚(의)의지할, 치우치다, 기울다, 맡기다, 믿다, 인하다,(기)기이할/伏(복)엎드릴, (부)안을/極(극)극진할, 다할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刿,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시이성인방이불할  렴이불귀

奇(기)기특할,(의)의지할 /妖(요)요사할/刿(귀,궤)상처 입힐/割(할)벨, 나누다,가르다/廉(렴,염)청렴할, 살필/复 [fù]번체 (復) 겹옷 복, 돌아올 복 1.[형용사] 중복되다. 되풀이되다. 반복되다. 2.[형용사] 복잡하다. 번잡하다. ↔[单(dān)] 3.[부사] 다시. 또. 도로.


直而不肆, 光而不燿. 

직이불사  광이불요

肆(사)방자할/燿(요)빛날, (삭)녹일




- 참고 : 다스림이 어둡고 답답한데도, 백성은 순박, 질박하고, 다스림이 꼼꼼하고 자상한데도, 백성은 모자란다 아우성이다. 화는 복이 의지하는 바이고, 복은 그 안에 화가 숨는게로구나!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정해진 것은 없다. 올바름이 기이한 것이 되고, 착한것이 다시 요망해지니, 백성들이 미혹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리하여 성인은 방정하지만 해를 끼치지 않고, 모가 있어도 베지 않으며, 강직하지만 방자하지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다.



- 참고자료 : [출처 : http://www.zxuew.cn/daodejing/]

—————————原文版—————————


其(qí)政(zhèng)闷(mèn)闷(mèn),其(qí)民(mín)淳(chún)淳(chún);

其(qí)政(zhèng)察(chá)察(chá),其(qí)民(mín)缺(quē)缺(quē)。

是(shì)以(yǐ)圣(shèng)人(rén)方(fāng)而(ér)不(bù)割(gē),

廉(lián)而(ér)不(bù)刿(guì),直(zhí)而(ér)不(bù)肆(sì),

光(guāng)而(ér)不(bù)耀(yào)。

祸(huò)兮(xī)福(fú)之(zhī)所(suǒ)倚(yǐ),

福(fú)兮(xī)祸(huò)之(zhī)所(suǒ)伏(fú)。

孰(shú)知(zhī)其(qí)极(jí)?

其(qí)无(wú)正(zhèng)也(yě)。

正(zhèng)复(fù)为(wéi)奇(qí),善(shàn)复(fù)为(wéi)妖(yāo)。

人(rén)之(zhī)迷(mí),其(qí)日(rì)固(gù)久(jiǔ)。


[译文]


“其政闷闷,其民淳淳;其政察察,其民缺缺。”


从政者能够做到无为宽厚(例如:“善者,吾善之;不善者,吾亦善之;德善。信者,吾信之;不信者,吾亦信之;德信。”),这样可使百姓安居乐业行善积德天下太平。若从政者总去斤斤计较越多设施刑法,百姓就会变得狡猾缺少大智慧都是小聪明。 (吾不知用何词来阐明寓意,用心去体会吧!)정치를 하는 이가 능히 충분히 무위관후(넓고 두터이 무위를 실현)를 하면(예를 들면 : 선한자,나는 그를 선하게 대하고 : 불선자, 나 또한 그를 선하게 대하고 : 덕자. 신자, 나는 그를 믿음으로 대하고 : 불신자, 나 또한 그를 믿음으로 대한다 : 덕과 신), 이리하면 백성들로 하여금 편히 살고 즐거이 일하고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 천하 태평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정치를 하는 자가 시시콜콜 따지면서 점점 더 많은 형법을 만들어 시행한다면, 백성은 교활하게 변하여 적거나 큰 지혜는 모자라고 모두 잔꾀를 부리게 될 것이다.

宽厚 [kuānhòu]1.[형용사] 넓고 두텁다.2.[형용사] (남에게) 너그럽고 후하다. 관대하다.3.[형용사] (소리가) 낮고 굵다./斤斤计较 [jīnjīnjìjiào]1.[성어] 자질구레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을 시시콜콜 따지다. ≒[一毛不拔(yìmáobùbá), 睚眦必报(yázìbìbào), 锱铢必较(zīzhūbìjiào)]/狡猾 [jiǎohuá]1.[형용사] 교활하다. 간교하다. ≒[刁滑(diāohuá)]↔[忠实(zhōngshí), 诚实(chéngshí), 老实(lǎoshi)]/小聪明 [xiǎocōngming]  발음 듣기   단어장 추가

1.[명사][폄하어] 잔머리. 잔재주. 잔꾀.


“祸兮福之所倚,福兮祸之所伏。孰知其极?”


福中有祸,祸中有福,谁能知道究竟那?복가운데에 화가 있고, 화 가운데 복이 있다, 누가 능히 궁극을 알겠는가 ?


“其无正也。正复为奇,善复为妖。人之迷,其日固久。”


正的可以变为邪,善良可以变为恶。人们迷惑而不知其理太久了。정한 것은 변화가능하다, 선량함은 악으로 변화 가능하다. 사람들은 미혹스럽고 그 연유를 모르는 것이 매우 오래 되었다.


“是以圣人方而不割,廉而不刿,直而不肆,光而不耀。”


所以圣人方正而不割,锐利而不伤人,直率而不放肆,光耀而不耀眼刺人。따라서 성인은 방정(반듯반듯)하나 나누지 아니하고, 예리하나 사람을 상하게 아니하고, 직솔하나 방자하지 아니 하며, 광휘로우나 사람들의 눈을 상하게 아니 한다. 


 [长篇大论]


哑巴吃密之悟道

哑巴 [yǎba] 1.[명사] 벙어리. 2.[동사] 말하기 거북하거나 하기 싫어서 한 마디도 하지 않다./密 [mì]1.[형용사] (간격이나 거리가) 가깝다. 빽빽하다. 조밀하다. 촘촘하다.2.[형용사] (관계가) 가깝다. 친하다. 밀접하다. 친밀하다. (감정이) 깊다.3.[형용사] 세밀하다. 치밀하다. 면밀하다. 정밀하다. 꼼꼼하다./悟道 [wùdào]1.[동사][불교] 도를 깨치다. 오도(悟道)하다. 진리〔철리(哲理)·도리〕를 깨닫다.


有一个学僧,恭恭敬敬地请教慈受禅师:“禅者悟道时,对于悟得的境界和感受,说得出来吗?”


慈受:“既是‘悟’道,说不出来。”


学僧:“说不出来的时候,像什么呢?”


慈受:“像哑巴吃蜜!”


学僧觉得很有道理,但随即又产生了一个新的疑问:“一个禅者没有悟道时,但他善于言辞,说得头头是道,他说的能够算悟吗?”

头头是道 [tóutóushìdào]1.[성어] 말하는〔일하는〕 것이 조리가 정연하다. ↔[语无伦次(yǔwúlúncì)]


慈受:“既然还没有悟道,说出的怎算做禅悟呢?”


学僧:“但是他说的听起来好像也蛮有道理呀,如果不算做禅悟,那他是什么呢?”

蛮 [mán]번체 (蠻) 남쪽 오랑캐 만1.[명사] 오랑캐. [옛날, 중국의 남방 민족에 대한 호칭]

2.[형용사] 야만적이다. 무지막지하다. 막돼먹다. 사리를 따지지 않다.3.[형용사] (일처리 등이) 거칠다. 난폭하다.


慈受:“鹦鹉学舌!”

鹦鹉学舌 [yīngwǔxuéshé]1.[성어] 앵무새가 말을 흉내내다.2.[성어,비유,폄하어] 자기의 주관이 없이 앵무새처럼 남을 따라 하다.


学僧:“哑巴吃蜜和鹦鹉学舌,有什么不同呢?弟子愚笨,请老师讲具体一点儿。”

愚笨 [yúbèn]1.[형용사] 우둔하다. 어리석다. 둔하다. 굼뜨다. 미련하다. ↔[乖觉(guāijué), 乖巧(guāiqiǎo)]


慈受:“哑巴吃蜜,甜在心头,是深深地领悟了禅理,这是‘知’,如人饮水,冷暖自知;鹦鹉学舌,语音虽似,却毫无意义,这是‘不知’,好像小孩子学说话,并不了解其中的含义。”


学僧:“啊,是这样,那么面对那些没有领悟禅理的人,怎么对他们说法呢?”


慈受:“自己知道的给他知道,自己不知道的不要给他知道。”


学僧:“老师,那您现在是‘知’还是‘不知’?”


慈受:“我现在是哑巴吃黄连,有苦说不出;也如鹦鹉学讲话,讲得非常像。你说我是知还是不知呢?”

黄连 [huánglián]1.[명사][식물] 황련. 깽깽이풀. [뿌리는 약용함]


学僧很受启发,礼谢而去。

启发 [qǐfā]1.[명사] 계발. 깨우침. 영감. ≒[启示(qǐshì), 启迪(qǐdí)]2.[동사] 일깨우다. 계발하다. 시사하다. 영감을 주다. 불어넣다.



- 준이해석 : 그 정치는 답답하고 어두운데 그 백성은 순박하고, 그 정치가 꼼꼼히 잘 살피는데 그 백성은 이지러지고 모자란다. 화禍라는 것은 복이 기대는 곳이고, 복福이라는 것은 화가 엎드리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 그것은 정하여 진 것이 없다. 바름은 다시 비스듬해지고, 선함은 다시 요사스러워 지고, 사람들이 미혹스러워 하는 그 나날이 오래도록 굳어 왔다. 그리하여 성인은 반듯하면서도 나누려 하지 않고, 살피면서도 상처 입히지 않고, 올곧으면서도 방자하지 않고, 빛나면서도 눈부시지 않는다.


- 준이생각 : 바로 앞 장에서 배운 바로는 정치를 함에 무욕,무위, 무사로 한다면 백성은 절로 순박해지고, 부유해지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번장에서는 대뜸, 정치가 사리를 분별 못하여 답답하고 어두운데도 백성들이 순박하고, 정치가 두루두루 잘 살피는 꼼꼼한 정치를 하는데도 백성들은 헐벗고 가난하여 모자란다고 울부짖는다고 한다.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여기서 도교의 중요한 사상이 숨어 있다. 화와 복 마저도 실은 하나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 화는 복이 기대는 것이고 복은 화가 엎드리는 곳이라는 것은 결국 이 둘은 하나이지만 세상에 나타 나는 모습은 이 둘과 그 사이의 수많은 상위 변경상태의 하나일 뿐이란 말이 아니겠는가 하고 느껴진다. 그 극의 모습을 누가 알겠는가 ? 아무도 모른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이젠 정의와 불평등(奇), 선함과 요사스러움같은 것에 대해서도 서로 서로 모습을 바꾸어 감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미혹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래도록 그리 하여 와서 이미 굳어 간다는 것도 말한다. 그렇기에 성인은 이 모든 본성을 알기에 그 나타나는 단면의 모습을 보고 이러쿵 저러쿵, 화내고 기뻐하고 억울해 하고 흐믓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듯하고 전체를 하나로 보면서,  이리저리 나누려 하지 않고, 청렴하게 살피면서도 그것을 상처 입히려 하지 않고, 바르고 올곧으면서도 방자하게 나대지 않으며, 은은하게 빛나면서도 사람들을 미혹하는 눈부심을 주지는 않는다. 이렇게 표현 하였다. 정말 이 정도 수준이면 도인이 아니고 뭘까 하고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나라의 화두 두마디는 내가 보기엔 ‘헬조선’과 ‘각자도생’이다. 내 나름의 의견은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오랜 세월 쌓여 와서 만들어진 생지옥인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오랫동안 침략적 외세와 내부의 분열에 기인한 내전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고 국토가 황폐해져 버린 이라크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총만 없는 전쟁터에 사는 거나 다를바 없다고 본다. 자살자의 수가 비슷한 기간의 전쟁으로 사망한 인간들의 합보다도 더 많다고 한다. 총만 없지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죽여 나가는 사회인 것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재벌도, 월급쟁이도, 가난한 민초도, 학생들도, 정치인들도, 이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