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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E08 –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 포크너(W. Faulkner, 1897~1962)

E08 –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 포크너(W. Faulkner, 1897~1962)

(출전: 동서고전 200선 해제3 / 반덕진 / 가람기획)


 이 작품은 20세기 초 미국 남부 귀족사회의 명문인 톰슨 가의 붕괴를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의 영향을 받은 포크너가 그 특유의 기법으로 그린 소설이다. 혈육지간의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네 사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으로 구성된, 인간의 심층심리를 고도의 기법으로 파헤친 작품으로 난해하지만 읽어 낸 데 대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준다.


a.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포크너는 미국의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1902년 미시시피 주립대학이 있는 옥스퍼드 시로 이사하여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의 집에는 디킨스 등을 비롯한 영국 고전이 상당히 소장되어 있었다. 그는 정상적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는 대신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하여 상상력을 키워 나갔다. 당시 이웃집 소녀인 에스텔 올드햄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으로 할아버지의 은행에 근무했다. 그러나 에스텔은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동양으로 떠났다.

 한편 또 다른 이웃이었던 필립 스톤이 그 가족의 법률고문이 되면서 그의 독서에 조언을 해주었고, 옥스퍼드에 알려져 있지 않던 상징주의나 모더니즘 전통의 많은 책들, 예를 들면 보들레르, 베를렌, 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또한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엘리어트 등의 글도 읽었다.

 1918년 그 역시 헤밍웨이 등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처럼 1차대전에 참전하나 부상을 입고 중위로 명예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미시시피 대학에 특별 학생으로 1년간 다녔고, 뉴욕의 서점에서 잠깐 근무한 적도 있으며,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목수일도 했다. 마침내는 대학교 우체국장도 하며 2년간 여러 가지 잡무에 종사했다. 그가 교내 우체국에서 사퇴하던 1924년(27세)에 그의 대표적 시집 <대리석의 목신>을 간행했다.

 그는 1925년 유럽 여행중 뉴올리언스에서 6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명성을 날리던 셔우드 앤더슨과 친교하게 되었고, 그의 협조를 얻어 뉴욕에서 그의 처녀작 <병사의 보수>를 간행했다. 그의 문체는 세기말적 사조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그 당시 미국에선 이 사조가 아직도 무르익지 못한 시기였다. 제2의 작품은 <모기>인데,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풍자소설이다.

 1929년(32세) 포크너는 <사토리스>를 씀으로써 작가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사토리스가 혹은 포크너가의 조상 때부터 자기세대에 이르기까지의 전설적 얘기이며, 스토리의 중심은 젊은 베이야드인데, 소위로 전쟁에 참여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그후 그가 쓴 여러 작품의 원천이 된 책이다.

 그해 6월 결혼에 실패한 후 중국에서 돌아와 있던 지난날의 연인인 에스텔 올드햄과 결혼하여 생활에서도 안정을 찾았다. 그의 대표작들은 대개 그 시기에 창작되었다. 10월에는 그의 대표작 <음향과 분노>가 간행되었고, 1930년에는 <성단>을 간행했는데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절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포크너는 본국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더 호평을 받았다. 말로는 <성단>의 서문을 썼으며, 사르트르는 포크너에 관한 평론을 썼다. 1946년(49세)엔 포크너 연구가 시작되고 잡지마다 포크너에 관한 평론이 실리게 되었으며 1950년(53세)엔 노벨 문학상이 수여되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자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으리라는 예언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는 퓰리처상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다.

 그는 헤밍웨이보다 1년 뒤에 죽었고, 그의 죽음은 미국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만든 한 세대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b. 요크나파토파의 신화

 포크너는 그의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무책임한 선동가, 정신 착란자, 심지어 영어를 마스터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무지와 악덕퇴폐에 대한 강한 흥미로 이루어져 있으며, 될 대로 되어 버린 남부사회에 대한 환멸절망을 반영한 정신착란 자살 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계보를 이루고 있는 요크나파토파 신화에 관해서는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요크나파토파 고을은 미시시피 주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가공적이며, 실제적인 지방이기도 하다. 그는 이 북부 미시시피의 지리와 주민과 연혁 등에 관한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자기의 작품 속에서 가감변형하여 요크나파토파란 군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포크너가 불가사의한 남부의 실상을 묘사하려고 설정한 요크나파토파 지방을 이해하려면 <사토리스>에서 1951년에 발표한 <수녀를 위한 진혼가>에 이르기까지 9편의 장편과 단편 30여 편을 읽어야 그 일관된 주제, 그 유기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요크나파토파 신화에 나타난 내용을 주제상으로 분류하여 다섯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 첫째는 남부의 전설적인 얘기, 즉 인디언의 생태와 남북전쟁의 이야기들이며 이것을 나타낸 작품은 <수녀를 위한 진혼가><모세여, 내려가 주십시오><불멸의 인간상><압살롬! 압살롬!> 등이다.

둘째는 남북전쟁 이후 구세대의 몰락과 사회변천을 묘사한 것으로 <음향과 분노>와 <사토리스>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백인의 빈한한 생태와 그들이 강인하고 무지하고 교활한 점을 묘사한 것으로 <내가 누워서 죽을 때><마을><8월의 햇빛> 등이 그것이며 넷째는 현 남부사회의 퇴폐상을 그린 것으로써 <성단>과 <8월의 햇빛>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부사회의 제반문제 근저에 흐르는 흑인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무덤으로의 침입자> <모세여. 내려가 주십시요><8월의 햇빛>등이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요크나파토파 군을 설정하여 작품을 써낸 그의 의도는 분명치 않지만, 그중 하나는 자기의 고향에 대해서 내린 예리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무지몽매한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학대와 비인간적인 노예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남북전쟁, 이에 따르는 봉건제도의 파괴 등에서 우리는 포크너의 역사관 내지는 그의 남부(과거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그렇게 단순치 않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외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남부의 자기 고향에 무조건 애착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남부인의 긍지와 향수를 풍기는 대화는 그의 작중인물의 얘기 속에 흔히 볼 수 있다.


c. 미국 남부 명문가의 몰락과정 묘사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여 명문 컴프슨 가의 몰락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3부는 컴프슨 가의 3형제들의 독백을 통해 가족사가 전개되고, 마지막 부분은 작가 자신의 객관적 묘사로 마감하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면서 많은 인물들을 통해 미국 남부의 풍속을 담아냈다.


   제1부

 1928년 4월 7일. 컴프슨 가의 셋째아들인 33세의 백치 벤지의 머리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컴프슨 가의 몰락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벤지의 의식은 갈팡질팡하여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남부농원의 귀족인 컴프슨 가는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비록 세 아들과 외동딸이 살고 있기는 하나, 집안은 몰락할 대로 몰락해 버린 뒤였다. 벤지는 어렸을 때부터 백치였는데, 흑인 하인인 러스트의 보호를 받으며 골프를 구경하러 갔다가, 화원의 울타리에 있는 대못에 옷이 걸려 위험에 직면했을 때 러스트가 구출해준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모습과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회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회상 속에서는 부유한 남부의 귀족인 컴프슨 가가 몰락해가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제2부

 1910년 6월 2일. 제1부보다 18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서 벤지의 큰형 퀘틴의 움직임과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 주로 여동생 캐디에 관한 일들이 <의식의 흐름>의 서술법에 따라 묘사되고 있다. 특히 하버드 대학생인 장남 퀘틴이 강에 투신자살하기까지의 의식이 서술되고 있다. 자살하기 직전까지 퀘틴의 마음을 괴롭히던 것은 여동생 캐디였다. 그녀는 성도덕을 무시한 채, 15세가 되던 때부터 여러 남자를 거쳐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혼식 한달전에 이미 사생아를 지닌 채, 이를 숨기고 돈 많은 은행가인 허버트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퀘틴은 어려서부터 누이동생을 매우 사랑했고, 이러한 동생의 행동을 미워하면서도 근친상간의 죄를 짓지나 않았는가 하는 마음의 가책까지 느끼고 있다. 그는 복수하려고 상대 남자를 불러냈으나 그 남자를 죽이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이 강으로 뛰어든다.


   제3부

 1928년 4월 6일. 이 부분의 주인공은 제이슨으로 현재의 컴프슨 가는 퀘틴의 동생인 제이슨이 맡고 있었다. 그는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으로 병을 앓는 어머니와 동생 벤지, 캐디의 사생아인 퀘틴(자살한 퀘틴과 동명), 그리고 오래 전부터 컴프슨 가에서 일해오던 흑인 하인 딜시와 함께 살면서 갖은 생활고를 겪고 있다. 그런데 제이슨 4세는 그들 형제중에서 가장 이기적이다. 그는 자라면서 점점

퀘틴의 성격을 닮아가는 조카 퀘틴을 보며, 자신의 신상에 무슨 해가 미칠 것 같아 매우 불안하다. 제이슨은 사생아 퀘틴에게 무자비하며 캐디가 보내는 양육비까지 가로채 저축한다. 그러나 퀘틴은 그 돈을 훔쳐내어 곡마단 패와 달아난다. 제이슨은 뒤를 쫓아 갔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제4부

 1928년 4월 8일. 제1부의 하루 후의 일이다. 이 부분은 등장인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눈으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 집의 흑인 하녀 딜시를 중심으로 한 객관적인 묘사로 일관되는데, 이 흑인 할머니는 작가가 찬미하는 미덕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로서, 그녀의 인내와 애정은 자기 중심적인 컴프슨가 사람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동정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건전한 윤리관을 가진 인물이다. 1928년 4월 28일 부활절 예배를 보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되고 있다.


d. 복잡한 실험적 기법의 난해한 명작

 작가는 이작품에서 처녀성을 잃고 집안의 체면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이혼당하고 거기다가 아이까지 빼앗기고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외동딸 캐디의 생활방식을 축으로 남부 명가의 붕괴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 등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복잡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서 포크너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옛 전통을 수호하려는 퀘틴과 컴프슨 부인, 산업주의에 편승하여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제이슨, 애정의 손길이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캐디 등 남부인들의 모습을 통해 남부의 산업화에 따르는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새로운 절대적 가치관의 부재상태를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지극히 난삽하고 어려운 작품이다.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제임스 조이스 류의 <의식의 흐름>기법과 프로이트 심리학 등을 원용하여 당시로서는 극히 독창적인 창작 기교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4개의 장이 시간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고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인물들의 움직임과 함께 어지러울 정도로 교체되므로 같은 수법을 쓴 어느 소설보다도 동적이다. 뿐만 아니라 각 장의 주인공들은 백치, 자살 직전의 청년, 물욕적인 30대 남자 등 성격과 상황이 전혀 다르므로 각각 사용하고 있는 문체나 기교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각기 독특한 색조로 구분해서 묘사되고 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20세기 초 미국 남부 귀족사회의 명문인 컴프슨 일가의 몰락과정 속에 혈육지간의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네 사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으로 구성된 인간의 심층심리를 고도의 기법으로 파헤친 난해한 명작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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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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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영어: Lost Generation, 로스트제너레이션)[1] 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상실세대(喪失世代), 길 잃은 세대라고도 한다.


목차  [숨기기] 

1 직접적 계기

2 배경

2.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2.2 획일화

2.2.1 금주운동

2.2.2 쿠클럭스클랜

2.2.3 기독교 근본주의

3 특징

4 이 시기의 작가와 대표적 작품

5 비트 제너레이션 [ beat generation ]

6 같이 보기

7 각주

8 참고문헌

9 외부 링크

직접적 계기[편집]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는데, 오늘날에는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에 건너가서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배경[편집]

제1차 세계대전 이후[편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적인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20년대 미국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은 전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상황으로 상당한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며 그 기술이 경제적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변화는 자동차 보급의 확산이었다. 자동차는 당시 미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신분의 척도 역할을 하였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20년대 경제적 번영 그리고 그로 인한 물질주의의 우세는 개인들의 획일화 또는 표준화를 가져왔다.


획일화[편집]

그리고 이런 물질주의와 획일화는 쿠 클럭스 클랜(KKK), 금주운동, 교조주의인 기독교 근본주의운동의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금주운동[편집]

미국에서 금주 운동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는 엄법(Blue law)을 통해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였고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삶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민이 급증하면서 술의 제조와 판매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따라서 금주운동은 이민 배척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쿠클럭스클랜[편집]

또한 남북 전쟁이후 남부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쿠 클럭스 클랜은 20년대 보수주의와 전통주의의 물결을 타고 확산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편집]

특히 획일화의 경향은 당시 근본주의 신앙 운동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더 이상 미국은 정착 초기의 청교도주의를 유지할 수 없었고, 새로운 이민의 증가는 새로운 신앙들의 유입을 의미하였는데, 기독교 근본주의는 점점 미국 사회의 종교적인 동질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닌 감성과 무의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으며, 그런 관심의 확산은 경제적 발전과 발맞추어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즉 20년대는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불어 닥친 '재즈 시대'(Jazz Age)였다. 특히 흔히 '길 잃은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일군의 작가들은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은 대부분 제1차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전쟁을 통해 인간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20년대 미국에 팽배해있던 물질만능주의는 그들의 회의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머물러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살롱에 출입하였다. 스타인은 이들을 기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의미에서 '길 잃은 세대'라고 칭하였다.


특징[편집]

상실세대는 미국 작가들과 달리 경제적 위기를 이유로 새로운 인력의 유입을 거부하는 사회체제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선배 세대에게는 능력 발휘의 기회를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동료 및 후배 세대와는 생존을 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전쟁 후유증에 비유할 만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또한 이 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가치관이 더이상 전후세대와 연결되지 못했고, 하딩 대통령의 '정상 복귀' 정책 아래에서 절망적으로 편협하고, 물질주의에 물들고, 정서적으로 황폐해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신적 소외를 느끼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시기의 작가와 대표적 작품[편집]

이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는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존 더스 패서스, e.e. 커밍스, 아치볼드 매클리시, 하트 크레인 등과 1920년대에 파리를 문학 활동의 중심지로 삼았던 그 밖의 많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을 결코 문학의 한 파(派)로 볼 수는 없다. 1930년대에 이들이 다른 쪽으로 전향하자 그들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전후 시기의 독특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의 마지막에 나온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라 Tender Is the Night〉(1934)와 더스 패서스의 〈거금 The Big Money〉(1936)이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 [ beat generation ][편집]

 비트 제너레이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중심으로 대두된 보헤미안적인 문학가․예술가들의 그룹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들은 현대의 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원시적인 빈곤을 감수함으로써 개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색채가 짙으며, 재즈․술․마약․동양적인 선(禪) 등에 의한 도취에 의하여 '지복(至福:beatitude)'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1956년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장시 《울부짖음 Howl》, 1957년 잭 케루악(Jack Kerouac) 의 장편소설 《길 위에서》이 발표되고 나서 이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 이 일파에는 그 밖에 시인 L.펄링게티, 소설가 G.스나이더, M.매클루어, K.렉스로스, W.S.버로스, N.메일러 등 여러 연령층의 작가 ․시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반체제적 태도를 고집하고, 극한적인 부정에 입각하여 새로운 정신적 계시를 체득하려고 하였다. 미국 로맨티시즘의 한 변형으로도 생각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