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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끄적/책읽기

[첫사랑, 투르게네프]

닥치는대로 읽다 보니, 이번이 두번째 읽은 것이다.


나(16세, 대입준비생이니 우리식으로 따지면 재수생이나 고3 정도의 시기라 보면 될 듯)와 아랫집에 이사온 몰락한 귀족가문의 딸(지나이다)에 얽힌 첫사랑 이야기.

잘생기고 멋진 아빠를 두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이 많고 부유한 여자와 결혼한 잘생긴 남자가 그의 아버지이고 어느날 아래채에 이사온 천박한 백작 부인과 그녀의 천사 같은 딸(21세). 첫눈에 그 아름다움에 반하고 그 성격에 정신없이 끌려 버리게 된 주인공은 그녀에게 구혼(?)하는 남자들과 함께 떠들썩한 열병같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짝사랑을 하지만 결국은 그녀와의 쓸쓸한 이별을 뒤로하고.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연애의 불꽃을 태웠던 남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간이 좀 흐른 뒤 먼저 아버지가 죽고, 다시 얼마후 지나이다의 죽음의 소식을 듣는다. 

....

무심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는 들었노라,

그리고 나 또한 무심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노라.

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에도 구속을 받지 않는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며, 비애조차 그대에게는 어울린다. 그대는 대담하며 자부심이 강하다. 

그대는 '보아라, 사람들아, 세상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좋은 시절도 흘러가 드디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대가 차지했던 모든 것은 햇빛을 받은 흰 밀랍처럼, 

또는 눈처럼 녹아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그대가 지니는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이든 해내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충만한 힘을 다른 어느 것에도 기울여 보지 못하고 

바람결에 따라 흩날려 보내는--그런 점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누구나가 다 스스로를 진심으로 낭비자라 믿고 있는--그런 점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마음 속으로부터

"아, 만일 내가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해 냈을텐데!"

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믿는--그런 점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낭만파 연애소설의 하나로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직막에 짤막하게 

어느 가난한 이름없는 노파의 죽음 이야기를 그리고 

다시 이를 지나이다의 죽음과 겹친다.


만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타오르는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던 몹시도 짧은 인생을 살았던 지나이다와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죽음의 순간에 필적할 만한 온갖 괴로움을 겪으며 평생을 살아왔던 누더기 추한 노파와의 죽음...

이 둘이 그려내는 묘한 이중주....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인가...그랬던 것이었던가...


....

그리하여 최후의 의식이 번쩍했다가 꺼졌을 때, 비로소 노파의 

눈에서도 죽음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의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이 가난한 노파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지나이다의 최후가 연상되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고 싶어졌던 것이다.

....



201504




아래 사진은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염문설을 만들었던...아마도 투르게네프가 평생을 사랑했던 거 같은 스페인 출신의 오페라 여가수 Pauline Viard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