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31 – 송강가사(松江歌辭) / 정철(鄭澈, 1536 - 1593)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일상적인 우리말을 구사해 한문학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정서를 그려낸 한 폭의 진경산수화와 같은 작품집. <송강가사>는 가사문학의 주옥 같은 절창을 담은 송강 정철의 국문 시가집으로, 고전시가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관동별곡사미인곡 등 4편의 가사작품과 훈민가를 포함한 79수의 시조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영욕과 부침이 반복된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자연과 인간, 꿈과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형상화하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한 한국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a.송강의 생애
우리 국문학사상 쌍벽으로 꼽히는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를 두고 일반적으로 <장가의 송강>과 <단가의 고산>으로 알려져 있으나, 어떤 이는 단가에서조차 송강의 절대우위를 선언하기도 한다. 단가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면 송각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가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조선시대의 문인으로 호는 송강. 동령부 판관을 지낸 부친과 대사간(시간원의 장)의 딸을 부모로 하여 4남 2년 중 4남으로 서울 삼청동에서 출생했다. 그의 큰누나는 인종의 숙의(왕비 다음), 작은누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손자인 계림대군의 부인이었다. 왕실과 이렇게 가까운 처지이니 그는 어릴 때부터 자유스럽게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고, 특히 인종의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은 그보다 나이가 두 살 아래여서 소꿉친구로 어울렸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송강이 10세(1545) 되던 해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8세의 경원대군이 임금이 되니 그가 명종인데, 임금이 어려서 그의 어머니 문정왕후는 영악한 여자여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그의 집안도 화를 당해 일가가 몰락하게 되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송강은 유년취학이 어려웠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부친이 석방되어 전라도 담양으로 함께 내려 오면서부터였는데 그의 나이 16세였다. 이후 10년간 여기에 살면서 김인후 기대승 등에게 수학했다. 이때가 송강에게 있어서 가장 꿈에 부푼 시기였다. 그것은 다감한 소년시절을 성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학문을 닦고 시재를 펼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성원 고경명 백광훈 등과 사귄 것도 이 시기였다.
26세 때 진사시험에 일등한 송강은 다음해(1562) 별시문과에도 장원하여 그의 문재를 떨쳤다. 이때부터 벼슬길에 오른 송강은 이후 파란만장한 운명을 맞이한다. 관직에 등용된 이후 도승지, 예조판서, 좌의정 등의 요직에 오르지만, 동서분쟁은 더욱 악화되어 송강은 어느새 서인파의 우두머리가 되어 동인과 마찰이 불가피했고 이로 인해 여러 번 유배생활도 했다.
45세 때 강원도 순찰사가 된 송강은 임지에 부임하여 화려한 관동의 풍경을 두루 소요하면서 유명한 <관동별곡>을 썼고, 백성을 선도하기 위해 <훈민가> 16수를 지었다.
이듬해 서울로 돌아와 성균관의 대사성, 전라도 관찰사, 예조판서 등의 자리에 오르지만, 사헌부와 사간원이 술을 즐기고 포용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탄핵하여 담양으로 다시 내려와 독서와 자연을 벗삼았다. 정치적으로는 비참한 시기였으나 그의 작가 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보람찬 시기였다. 그 유명한 <사미인곡> <속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후세에 길이 남을 가사들을 지었기 때문이다.
54세 때 전주에서 서인 출신인 동인의 정여립이 모반사건을 일으키자 그 반대에 있는 송강은 서인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을 추방했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선조에게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주장하여 선조의 노여움을 사 다시 귀양길에 오른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피난길을 떠나던 중 개성에 이르러 개성사람들의 요구로 송강은 석방되어 남하하다가 북상하는 선조와 마주쳤다. 그는 충청전라도 관찰사로 임명되고 다음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황달병에 걸려 신음하다가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송강의 일생을 대별해보면 #1파란 많은 관계생활 #2이에 따른 유배생활 #3은거와 창작생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문집으로 <송강집> <송강가사> 등이 있다.
b.<송강가사>의 내용
상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송강가사>는 상권 총 24장에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장진주사>가 실려 있고, 하권 총 20장에 <단가>라는 제목으 훈민가 16수등 총 77수가 실려 있다. 그 밖에 107수의 시조를 남겼다. 송강의 문학작품은 대체로 시조나 단가보다 장가가 더 유명한데, 그의 장가는 추종을 물허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단가는 도덕적 교훈의 성격을 띠고 있어 문학적 가치는 높지 않다. 역대로 많은 문인이나 관리들은 그의 가사를 즐겨 읊었는데, 특히 관동기생들은 필수적으로 암기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는 그 유명한 4대가사에 관해 살펴본다.
1. <관동별곡>
송강이 45세 되던 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한 후 산수 풍경 고사 풍속 등을 읊은 것으로 가사문학의 백미를 이루는 대표작이다. 총 294구로 된 장가로 고래로부터 묘사와 조어의 기묘함을 들어 <악보의 절조>라고까지 평을 받은 가사다. 용어는 34언의 어조에 맞추어져 있으며, 한문어투가 비교적 적고 사용된 한자도 대개 우리말화한 것이다. 특히 감탄사의 중첩사용과 대귀법의 묘, 적절한 생략법의 구사는 뛰어난 문장의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저자가 정치생활 중 비교적 득의한 시대의 것 인만큼 가사 전체의 분위기가 명쾌하고 화려하다.
강호에 병이 깁퍼 죽림에 누었더니
관동팔백리에 방면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연추문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 옥절이 압패셧다
로 시작되는 <관동별곡>을 두고 조윤제는 <사>의 호탕비장함과 <조>의 유창한 흐름을 들어 한국장가의 제1등이라 했고, 이병기는 기풍의 웅장함을, 김사엽은 우리말의 자유자재한 구사를 들어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했다.
그러나 이보다 25년이나 앞서 나온 백광홍의 <관서별곡>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이를 모방한 것이 발견된다. 제명과 내용, 저체적인 체제나 표현 등이 유사한 점이 많다. 때문에 <관동별곡>역시 <관서별곡>과 동공이곡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다만 송강의 <관동별곡>은 짜임새가 좀더 공교하고 가락의 흐름이나 조어의 기술이 보다 유창하며 세련되어 보이고 표현기교도 참신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관서별곡>을 토대로 하여 이를 재구성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관동별곡>은 이후 조우인의 <속관동별곡>과 위세직의 <금당별곡>에 영향을 주어 그 맥이 이어지는데, <관동별곡>이 끼친 영향도 지대함을 알 수 있다.
2. <사미인곡>
이 작품은 송강이 50세 되던 해 당파싸움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조정에서 물러나 4년간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 은거하며 자신의 처지와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다 기탁하여 고백한 것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2음보 1구가 총 126구에 달하고 34조의 음수율이 주졸을 이룬다. 구성은 #1서사 #2본사: 춘원하원추원동원 #3결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본사는 춘원하원추원동원 등으로 계절에 따라 짜여져 총 6단락으로 구분된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담양으로 퇴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둘이 짝짓기)했다.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고 싶으나 임금의 심정이 어떤 상태인지 의구하는 뜻을 읊었다.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함을 노래했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중에서 청광의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했다. 결서에서는 임의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계 옮기겠다고 읊었다.
전편을 통하여 한 여인의 독백으로 되어 있고, 여성적인 행위 정조 어투 어감 등을 살리면서
봄여름가을겨울에 맞는 소재를 빌려 작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표현했다.
이몸이 생겨날 때 임을 따라 생겼으니
한 평생 연분인 줄 하늘도 모르던가
나 한몸 젊어 있고 임 한분 날 괴오시니
이마음 이사랑은 견줄데 전혀 없다
로 시작되는 <사미인곡>은 사용된 시어나 묘사 또한 비범한 것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가히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한 작품>>으로 평가했고, 김만중은 그의 <서포만필>에서 <속미인곡> <관동별곡>과 함께 <<동방의 이소(중국의 굴원의 작품)요, 자고로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3편 뿐이다>>라고 절찬한 바 있다.
한편 <사미인곡>의 문학적 영향문제는 일반적으로 굴원의 <이소>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사미인>이라는 제명도 <이소>의 제9장에 있는 <사미인>이라는 편명과 같으며 <이소>의 충군적 내용이 이와 흡사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언어표현기법형식구조 등 모든 면에서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이나 독창성이 뛰어난 걸작이라 하겠다.
한편 후대에 이르러 이 작품을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들이 나타났는데, 정철의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김춘택의 <별사미인곡>,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양사언의 <미인별곡> 등이 그것이다.
3. <성산별곡>
이 작품은 송강이 16세부터 27세에 등과할 때까지 10년간 낙향해 있던 곡인 성산이란 지명을 제목으로 하여 쓴 작품이다. 성산은 현재의 전남 담양에 해당한다. 여기서 송강은 그의 친척인 김성원이 지은 식영정과 서하당 등의 정자에서 지은 작품으로, 동문수학하던 친한 벗이자 친척이던 김성원의 은둔 풍류생활을 칭송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주위의 경치를 노래했다.
<성산별곡>의 내용은 성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계로 나누어 노래하고 여기서 자연과 짝하여 독서탄현으로 풍류를 즐기는 주인공을 찬미한 내용이다. 그 구성은 #1서사 #2춘사 #3하사 #4추사 #5동사 #6결사로 되어 있는데, 이 가사의 특색은 한 계절을 한 단위로 하여 엮어놓은 점이다. 총 169구로 된 이 가사는 송강 가사 중에서도 그리 평가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성산가단>을 활성화하고 동 가단을 송강문학의 산실로 만들어 우리 문학사를 크게 빛내주었다는 점에서 그 제작의 의의는 크다고 생각한다.
푸른 시내 흰 물결이 정자안을 둘렀으니
천손의 비단폭을 그 뉘가 베어내어
이엇는 듯 펼쳐놓은 듯 야단스런 경치로다
산중에 달력없어 계절을 모르더니
눈앞의 풍경이 사철따라 전개되니
듣고 보는 일이 모두 선계로다
이병기는 이 가사의 짜임새가 공교하다고 했고, 김사엽은 순수한 생활상과 그의 개성이 비교적 풍부하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가사는 구성은 물론 조사법표현기교 등에 있어 송순의 <면양정가>의 영향을 받은 동공이곡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4. 속미인곡
이 작품은 작가의 나이 50세에서 54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두 선녀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남편과 이별하고 지상으로 내려와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정을 읊은 것으로 2음보를 1구로 하여 96구에 해당하며 기본율조는 34조로 되어 있다.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오구려
백옥경 좋은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날도 다 저무는데 누굴 보러 가시는고
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사미인곡>의 속편이다. 그러나 <사미인곡>보다 언어의 구사와 시의의 간절함이 더욱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사미인곡>에서는 한자숙어와 전고가 간혹 섞여 있는 데 반하여 <속미인곡>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연군의 뜻을, 임을 이별한 한 여인의 애달픈 심정에 의탁시킨 이 노래는 <사미인곡>과 같이 서정적 자아의 독백으로 이끌어 간 것이 아니라 보조적 인물을 설정하여 대화체로 진행시켰다는 점에서 참신한 맛을 볼 수도 있다. 특히 <사미인곡>의 결사는, <<임이야 나를 몰라주실지라도 나의 충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일방적인 연군의 소극성을 보였지만, <속미인곡>은 보다 적극적으로 임까지도
오래도록 구슬프게 하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속미인곡>은 <사미인곡>을 지을 때보다 작자의 생각이 한결 원숙해진 후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김만중도 전후 미인곡 중 <속미인곡>이 더 고상하다고 했는데, 이는 <속미인곡>의 표현이 지니는 진솔성과 간결함 때문이라 하겠다.
c.송강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선풍도골 같은 뛰어난 용모와 괴벽에 가까운 강직한 성격, 그리고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대쪽 같은 송강의 성격은 불의를 용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정치가의 필수 조건인 관용과 아량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천적인 기질은 자연히 술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초연히 속세를 떠나 시와 술로써 인생을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그는 정치인으로서보다 시인으로 더 대성한 사람이며,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 국문학에는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송강가사>는 종래의 한자투어의 형태를 탈피하여 44조 운율에 의하여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했으며, 그의 호탕하고도 비장한 시풍은 우리 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송강의 작품에 대해서는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형용의 묘와 말의 기이함은 참으로 악보의 절조임에 틀림없다>>고 했고,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우리 나라 노래 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하며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송강문학의 의의와 국문학적 위상을 점검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반적으로 한문학이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문학을 문학답게 만들어낸 사람 중 하나가 송강이고 그의 문학이었다. 우리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15세기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문학의 성장발전에 획기적인 촉매제가 되긴 했으나, 송강 당시만 해도 아직 한문학의 풍토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문학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막대하다.
(2) 우리 문학 소산의 요람지가 되어 우리 문학사를크게 빛내준 <성산가단>을 송강이 활성화시켰다는 점이다. 송강은 당시 시가활동의 무대였던 식영정 서하당 소쇄원 환벽당 등 이른바 성산가단에 출입하면서 활발한 시가 활동을 폈는데, 앞서 언급한 <성산별곡>을 비롯, 많은 단가한시가 여기서 산출되었다.
(3) 송강처럼 문학에서 우리말의 고유미를 발견하고 이를 대담하게 활용한 작가도 드물다. 즉, 그의 국어활용술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이 때문에 그의 문학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자로 하여금 친근감을 갖게 했다. 김만중이 송강의 문학을 높이 평가한 것(특히 속미인곡)도 송강의 이 국어활용술에 있었던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4) 송강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계보를 형성했다. 조우인 위세직 김상용 등에 영향을 주어 이들로 하여금 <매호별곡> <송관동별곡> <조우인> <별사미인곡> <훈계자손가> <오륜가> 등의 시가를 낳게 하여 그 계보를 형성한 것을 보게 했다.
위와 같은 점에서 송강과 그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상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식영정 경내에 있는 표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위대한 시인은 종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위에 시를 쓴다.
이곳 식영정 마루턱에 서면 바람도 옛운율로 불고
냇물도 푸른 글씨가 되어 흐르나니
우리는 지금 풀 한포기 흙 한줌에서
송강의 가사 성산별곡을 온몸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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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東동八팔百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어와 聖셩恩은이야 가디록 罔망極극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라 慶경會회 南남門문 라보며,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 셧다.
平평丘구驛역 을 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稚티岳악이 여긔로다.
2.
昭쇼陽양江강 린 믈이 어드러로 든단 말고.
孤고臣신 去거國국에 白髮발도 하도 할샤.
東동州 밤 계오 새와 北븍寬관亭뎡의 올나니,
三삼角각山산 第뎨一일峰봉이 마면 뵈리로다.
弓궁王왕 大대闕궐 터희 烏오鵲쟉이 지지괴니,
千쳔古고 興흥亡망을 아다, 몰다.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3.
營영中듕이 無무事하고 時시節졀이 三삼月월인 제,
花화川쳔 시내길히 楓풍岳악으로 버더 잇다.
行행裝장을 다 티고 石셕逕경의 막대 디퍼,
百川쳔洞동 겨 두고 萬만瀑폭洞동 드러가니,
銀은 무지게, 玉옥 龍룡의 초리,
섯돌며 는 소리 十십里리의 자시니,
들을 제 우레러니 보니 눈이로다.
4.
金금剛강臺 우層층의 仙션鶴학이 삿기 치니,
春츈風풍 玉옥笛뎍聲셩의 첫을 돗던디,
縞호衣의玄현裳샹이 半반空공의 소소 니,
西셔湖호 녯 主쥬人인을 반겨셔 넘노
5.
小쇼香향爐노 大대香향爐노 눈 아래 구버보고,
正졍陽양寺 眞진歇헐臺 고텨 올나 안마리,
廬녀山산 眞진面면目목이 여긔야 다 뵈다.
어와, 造조化화翁옹이 헌토 헌할샤.
날거든 디 마나, 셧거든 솟디 마나.
芙부蓉용을 고잣 , 白백玉옥을 믓것 ,
東동溟명을 박차 , 北북極극을 괴왓 .
놉흘시고 望망高고臺, 외로올샤 穴혈望망峰봉이
하늘의 추미러 므 일을 로리라
千쳔萬만劫겁 디나록 구필 줄 모다.
어와 너여이고, 너 니 잇는가
6.
開心심臺 고텨 올나 衆듕香향城셩 라보며,
萬만二이千쳔峰봉을 歷녁歷녁히 혀여니
峰봉마다 쳐 잇고 긋마다 서린 긔운,
거든 조티 마나, 조커든 디 마나.
뎌 긔운 흐터 내야 人인傑걸을 고쟈.
形형容용도 그지업고 體톄勢셰도 하도 할샤.
天텬地디 삼기실 제 自然연이 되연마,
이제 와 보게 되니 有유情정도 有유情정샤.
毗비盧로峰봉 上샹上샹頭두의 올라 보니 긔 뉘신고.
東동山산 泰태山산이 어야 놉돗던고.
魯노國국 조븐 줄도 우리 모거든,
넙거나 넙은 天텬下하 엇야 젹닷말고.
어와 뎌 디위 어이면 알 거이고.
오디 못거니 려가미 고이가
7.
圓원通통골 길 獅子峰봉을 자가니,
그 알 너러바회 化화龍룡쇠 되여셰라.
千쳔年년 老노龍룡이 구구 서려 이셔,
晝듀夜야의 흘녀 내여 滄창海예 니어시니,
風풍雲운을 언제 어더 三삼日일雨우 디련다.
陰음崖애예 이온 플을 다 살와 내여라
8.
磨마訶하衍연 妙묘吉길祥샹 雁안門문재 너머 디여,
외나모 근 리 佛블頂뎡臺 올라니,
千쳔尋심絶졀壁벽을 半반空공애 셰여 두고,
銀은河하水슈 한 구 촌촌이 버혀 내여,
실티 플텨이셔 뵈티 거러시니,
圖도經경 열 두 구, 내 보매 여러히라.
李니謫뎍仙션 이제 이셔 고텨 의논게 되면,
廬녀山산이 여긔도곤 낫단 말 못려니.
9.
山산中듕을 양 보랴, 東동海로 가쟈라.
籃남輿여緩완步보야 山산映영樓누의 올나니,
玲녕瓏농碧벽溪계와 數수聲셩啼뎨鳥됴 離니別별을 怨
원 ,
旌졍旗긔를 티니 五오色이 넘노 ,
鼓고角각을 섯부니 海雲운이 다 것 듯
鳴명沙사길 니근 이 醉취仙션을 빗기 시러,
바다 겻 두고 海棠당花화로 드러가니,
白鷗구야 디 마라, 네 버딘 줄 엇디 아.
10.
金금闌난窟굴 도라드러 叢총石셕亭뎡 올라니,
白玉옥樓누 남은 기동 다만 네히 셔 잇고야.
工공倕슈의 셩녕인가, 鬼귀斧부로 다가
구태야 六뉵面면은 므어슬 象샹톳던고.
11.
高고城셩을란 뎌만 두고 三삼日일浦포 자가니,
丹단書셔 宛완然연되 四仙션은 어 가니.
예 사흘 머믄 後후의 어 가 머믈고.
仙션遊유潭담 永영郎냥湖호 거긔나 가 잇가.
淸쳥澗간亭뎡 萬만景경臺 몃 고 안돗던고,
12.
梨니花화 셔 디고 졉동새 슬피 울 제,
洛낙山산東동畔반으로 義의相샹臺예 올라 안자,
日일出츌을 보리라 밤듕만 니러니,
祥샹雲운이 집픠 동, 六뉵龍뇽이 바퇴 동,
바다 날 제는 萬만國국이 일위더니,
天텬中듕의 티니 毫호髮발을 혜리로다.
아마도 녈구름 근쳐의 머믈셰라.
詩시仙션은 어 가고 咳唾타만 나맛니.
天텬地디間간壯장 긔별 셔히도 셔이고.
13.
斜샤陽양 峴현山산의 텩튝을 므니와
羽우蓋개芝지輪륜이 鏡경浦포로 려가니,
十십里리 氷빙紈환을 다리고 고텨 다려,
長댱松숑 울흔 소개 슬장 펴뎌시니,
믈결도 자도 잘샤 모래 혜리로다.
孤고舟쥬解纜람야 亭뎡子 우 올나가니,
江강門문橋교 너믄 겨 大대洋양이 거긔로다
從둉容용댜 이氣긔像샹,闊활遠원댜 뎌 境경界계,
이도곤 어듸 잇닷 말고.
紅홍粧장 古고事 헌타 리로다.
江강陵능 大대都도護호風풍俗쇽이 됴흘시고,
節졀孝효旌졍門문이 골골이 버러시니
比비屋옥可가封봉이 이제도 잇다 다.
14.
眞진珠쥬館관 竹듁西셔樓루 五오十십川쳔 린 믈이
太태白백山산 그림재 東동海해로 다마 가니,
하리 漢한江강의 木목覓멱의 다히고져.
王왕程뎡이 有유限고 風풍景경이 못 슬믜니,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愁수도 둘 듸 업다.
仙션槎사 워 내여 斗두牛우로 向향살가,
仙션人인을 려 丹단穴혈의 머므살가
15.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이니 하 밧근 므서신고.
득 노 고래, 뉘라셔 놀내관,
블거니 거니 어즈러이 구디고.
銀은山산을 것거 내여 六뉵合합의 리 ,
五오月월 長댱天텬의 白雪셜은 므 일고.
16.
져근덧 밤이 드러 風풍浪낭이 定뎡거,
扶부桑상咫지尺쳑의 明명月월을 기리니,
瑞셔光광千쳔丈댱 이 뵈 숨고야.
珠쥬簾렴을 고텨 것고, 玉옥階계 다시 쓸며,
啓계明명星셩 돗도록 곳초 안자 라보니,
白백蓮년花화 한 가지를 뉘라셔 보내신고.
일이 됴흔 世세界계 대되 다 뵈고져.
流뉴霞하酒쥬 득 부어 다려 무론 말이,
英영雄웅은 어 가며, 四仙션은 긔 뉘러니,
아나 맛나 보아 녯 긔별 뭇쟈 니,
仙션山산 東동海예 갈 길히 머도 멀샤.
17.
松숑根근을 볘여 누어 픗을 얼픗 드니,
애 사이 날려 닐온 말이,
그를 내 모랴, 上샹界계예 眞진仙션이라.
黃황庭뎡經경一일字 엇디 그 닐거 두고,
人인間간의 내려와셔 우리 오다.
져근덧 가디 마오. 이 술 잔 머거 보오.
北북斗두星셩 기우려 滄챵海水슈 부어 내여,
저 먹고 날 머겨 서너 잔 거후로니,
和화風풍이 習습習습야 兩냥腋을 추혀 드니,
九구萬만里리 長댱空공애 저기면 리로다.
이 술 가져다가 四海예 고로 화,
億억萬만蒼창生을 다 醉케 근 後후의,
그제야 고텨 맛나 한 잔 쟛고야.
말디쟈 鶴학을 고 九구空공의 올나가니,
空공中듕 玉옥蕭쇼 소 어제런가 그제런가.
나도 을 여 바다 구버보니,
기픠 모거니 인들 엇디 알리.
明명月월이 千천山산萬만落낙의 아니 비쵠 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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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인곡(思美人曲) ◈
《해설》본문 정철
<송강가사(松江歌辭) 이선본(李選本)>
목 차 [숨기기]
1. 序詞
2. 春詞
3. 夏詞
4. 秋詞
5. 冬詞
1. 序詞
1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2 緣연分분이며 하 모 일이런가.
3 나 나 졈어 잇고 님 나 날 괴시니,
4 이 이 랑 견졸 노여 업다.
5 平평生애 願원요 녜쟈 얏더니,
6 늙거야 므 일로 외오 두고 글이고.
7 엇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8 그 더 엇디야 下하界계예 려오니,
9 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三삼年년일쇠.
10 臙연脂지 粉분 잇마 눌 위야 고이 고.
11 음의 친 실음 疊텹疊텹이 혀 이셔,
12 짓니 한숨이오 디니 눈물이라.
13 人인生은 有유限 시도 그지업다.
14 無무心심 歲셰月월은 믈 흐 고야.
15 炎염涼냥이 아라 가 고텨 오니,
16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2. 春詞
1 東동風풍이 건듯 부러 積젹雪셜을 헤텨 내니,
2 窓창 밧긔 심근 梅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3 득 冷淡담 暗암香향은 므 일고.
4 黃황昏혼의 이 조차 벼마 빗최니,
5 늣기 반기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6 뎌 梅花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보내오져.
7 님이 너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3. 夏詞
1 디고 새 닙 나니 綠녹陰음이 렷,
2 羅나幃위 寂젹寞막고 繡슈幕막이 뷔여 잇다.
3 芙부蓉용을 거더 노코 孔공雀쟉을 둘러 두니,
4 득 시 한 날은 엇디 기돗던고.
5 鴛원鴦앙錦금 버혀 노코 五오色線션 플텨 내여,
6 금자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7 手슈品품은 니와 制졔度도도 시고.
8 珊산瑚호樹슈 지게 우 白玉옥函함의 다마 두고,
9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라보니,
10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11 千쳔里리 萬만里리 길 뉘라셔 자 갈고.
12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4. 秋詞
1 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녈 제,
2 危위樓루에 혼자 올나 水슈晶정簾념을 거든마리,
3 東동山산의 이 나고 北븍極극의 별이 뵈니,
4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5 淸쳥光광을 픠워 내여 鳳봉凰황樓누의 븟티고져.
6 樓누 우 거러 두고 八팔荒황의 다 비최여,
7 深심山산 窮궁谷곡 졈낫티 그쇼셔.
5. 冬詞
1 乾건坤곤이 閉폐塞야 白雪셜이 비친 제,
2 사은니와 새도 긋처 잇다.
3 瀟쇼湘상 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4 玉옥樓누 高고處쳐야 더옥 닐너 므리.
5 陽양春츈을 부처 내여 님 겨신 쏘이고져.
6 茅모簷쳠 비쵠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7 紅홍裳샹을 니믜고 翠취袖슈 반만 거더
8 日일暮모脩슈竹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9 댜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10 靑쳥燈등 거론 겻 鈿뎐箜공篌후 노하 두고,
11 의나 님을 보려 밧고 비겨시니,
12 鴦앙衾금도 도 샤 이 밤은 언제 샐고.
13 도 열두 , 도 셜흔 날,
14 져근덧 각 마라 이 시 닛쟈 니,
15 의 쳐이셔 骨골髓슈의 텨시니,
16 扁편鵲쟉이 열히 오다 이병을 엇디리.
17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18 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19 곳나모 가지마다 간 죡죡 안니다가,
20 향 므든 애로 님의 오 올므리라.
21 님이야 날인 줄 모셔도 내 님 조려 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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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美人曲 (속미인곡) ◈
《해설》본문
1 뎨 가 뎌 각시
2 본 듯도 뎌이고.
3 天텬上샹 白玉옥京경을
4 엇디야 離니別별고,
5 다 뎌 져믄 날의
6 눌을 보라 가시고.
7 어와 네여이고
8 내 셜 드러보오.
9 내 얼굴 내 거동이
10 님 괴얌즉 가마
11 엇딘디 날 보시고
12 네로다 녀기실
13 나도 님을 미더
14 군디 전혀 업서
15 이야 교야
16 어러이 구돗디
17 반기시 비치
18 녜와 엇디 다신고.
19 누어 각고
20 니러 안자 혜여니
21 내 몸의 지은 죄
22 뫼티 혀시니
23 하히라 원망며
24 사이라 허믈랴
25 셜워 플텨 혜니
26 造조物믈의 타시로다.
27 글란 각 마오.
28 친 일이 이셔이다.
29 님을 뫼셔 이셔
30 님의 일을 내 알거니
31 믈 얼굴이
32 편실 적 몃 날일고.
33 春츈寒한 苦고熱열은
34 엇디야 디내시며
35 秋추日일冬동天텬은
36 뉘라셔 뫼셧고.
37 粥쥭朝조飯반 朝죠夕셕 뫼
38 녜와 티 셰시가.
39 기나긴 밤의
40 은 엇디 자시고.
41 님 다히 消쇼息식을
42 아므려나 아쟈 니
43 오도 거의로다.
44 일이나 사 올가.
45 내 마 둘 업다.
46 어드러로 가쟛 말고.
47 잡거니 밀거니
48 놉픈 뫼 올라가니
49 구롬은니와
50 안개 므 일고.
51 山산川쳔이 어둡거니
52 日일月월을 엇디 보며
53 咫지尺쳑을 모거든
54 千쳔里리를 라보랴.
55 하리 물의 가
56 길히나 보쟈 니
57 람이야 믈결이야
58 어둥졍 된뎌이고.
59 샤공은 어 가고
60 븬 만 걸렷니.
61 江강天텬의 혼자 서서
62 디 구버 보니
63 님다히 消쇼息식이
64 더옥 아득뎌이고.
65 茅모簽쳠 자리의
66 밤듕만 도라오니
67 半반壁벽靑쳥燈등은
68 눌 위야 갓고.
69 오며 리며
70 헤며 바니니
71 져근뎟 力녁盡진야
72 풋을 간 드니
73 精졍誠셩이 지극야
74 의 님을 보니
75 玉옥 얼굴이
76 半반이나마 늘거셰라.
77 의 머근 말
78 슬장 쟈 니
79 눈믈이 바라 나니
80 말인들 어이며
81 情졍을 못다야
82 목이조차 몌여니
83 오뎐된 鷄계聲셩의
84 잠은 엇디 돗던고.
85 어와, 虛허事로다.
86 이 님이 어 간고.
87 결의 니러 안자
88 窓창을 열고 라보니
89 어엿븐 그림재
90 날 조 이로다.
91 하리 싀여디여
92 落낙月월이나 되야이셔
93 님 겨신 窓창 안
94 번드시 비최리라.
95 각시님 이야니와
96 구 비나 되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