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26 –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고전경제학의 창시자인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개인의 이익추구와 국부증진의 조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분석한 경제학의 고전이다. 이 책에서 그는 각종 관세와 규제조치 등을 강조하던 중상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필연적 승리를 예언했다. 그리고 시장기구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 분권화되고 경제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사회질서가 정착되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경제현상을 역사. 문화. 정치. 사회의 측면에서 고찰하여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방면의 교양도 얻게 하고 있다.


a.생애

 영국의 사회과학자,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스코틀란드의 커콜디에서 세관관리의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사상적으로 진보한 글래스고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도덕철학자 해치슨의 자유주의 사상과 망드빌로부터 사익과 공익의 자연조화 사상을, 흄으로부터 무역평형론을 비판적으로 배웠다. 1751년 모교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취임하여 해치슨 교수의 후임으로 도덕철학 강의를 맡은 그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자를 펴내 유럽 전체에 명성을 떨쳤다. 여기서 그는 인간행위의 타당성을 제3자적 존재인 관찰자 에 의한 동감 여부로 고찰하려 했다.

 1764년 청년공작 버클루의 개인교사로서 3년간 프랑스를 여행하며 당시의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자유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대가들인 데이비드 흄, 달랑베르, 튀르고, 콩디악, 케네, 볼테르 등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의 폭을 넓혔다. 그리하여 귀국 후에 고향에서 <국부론> 집필에 전념하여 10년 만인 미국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6년에 발표했다. 87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의 총장에 선임되고,90년 죽음에 가까워진 것을 안 그는 죽기 전 미완성 원고가 후세에 잘못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초고를 소각시키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삶을 마감했다. 두툼한 입술, 큼직한 매부리코, 불완정한 걸음걸이 등 외견상 지성적인 풍모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독서와 집필에만 몰두했다.

 그가 생전에 발간한 저서는 2권뿐이고 소장했던 장서는 대부분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이며, 근대의 인문. 사회. 자연 등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으나 경제학에 관한 장서는 매우 적은 것 또한 흥미롭다. 3천 여 권에 달하는 그의 장서는 대부분 에든버러 대학에 보관되어 있고 그가 마지막 눈을 감은 에든버러의 집은 오늘날까지 애덤 스미스의 집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b.사상의 성립

 그의 사상의 근대의 대표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고전의 인문학 소양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 그로티우스, 홉스, 로크, 흄, 루소 등에게서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을 배우면서 <도덕감정론>을 통해 독자적인 동감이론을 전개했다. 즉, 어떤 행위나 감정은 그것을 보고 있는 관찰자의 동감의 받음으로써 시인된다. 행위자는 관찰자의 동감을 얻고자 하는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관찰자로부터 동감을 얻지 못하는 행위는 자기규제하려고 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의 관계가 공평하게 시작된다면 자연히 부정이 자기규제되고 또 정의가 지켜지게 되어 국가의 강제력이 필요없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자연법학을 전개하려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과 통치의 양식이 편의의 세계인 경제의 양상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고 보고 분업론을 기초로 한 경제분석에 착수했다.

 <국부론>은 이 법학강의의 후반부분을 따로 떼어 자세하게 보완한 것이다. 이 책에서 케네로부터 배운 재생산. 자본축적의 관점을 보완하고 또 미국독립전쟁의 원인을 밝힘으로써 타개책을 제시했다. 이처럼 국부론은 자연법학의 일환으로서 보다 세련된 법과 통치와 국제관계의 행태를 논증한 저술이다.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맡겨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히 균형이 유지된다는 시장기구에 대한 신뢰감도 개방된 인간관계 속에서 원활하게 작용한다는 앞서의 동감이론을 의해서 뒷받침된 견해였다.

 말년의 그는 <도덕감정론>을 대폭 증보개정하여 동감이론에 입각한 자기규제론의 완성을 보았으나, 자연법칙의 체계적 저술은 <국부론>을 제외하고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다.


c.<국부론>의 내용

 하버드 대학의 갤브레이드 교수(<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에 의해 <성경> 및 <자본론>과 더불어 인류가 언제나 인용할 수 있는 3대 참고서적 중의 하나로 평가된 <국부론>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상식의 보고로 교양을 넓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부론>은 <여러 나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의 약칭이다. 그는 국부론의 첫머리에서 부는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으로 규정함으로써  국부의 크기는 그 나라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중상주의(관세와 규제조치 등 각종 법률과 규제를 통해 소비자를 희생시키고 상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줌)를 근본적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오직 농업만이 부를 생산한다는 중농주의 학파의 오류를 지적하고, 자유방임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필연적 승리를 예언했다. 전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부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편에서는 <노동생산력 개선의 원인들과 그 노동생산물이 모든 계급에게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라는 제목 아래, 분업론. 가치 및 가격론, 생산과 분배론을 밝히고 있다. 제2편에서 자본의 성질. 축적. 사용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고, 제3편에서는 각국의 국부의 증진과정을 설명하고, 제4편에서는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라는 제목으로 중상주의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중농학파에 대한 호의적 비판을 다루고 있으며, 제5편에서는 왕 또는 국가의 세입, 즉 국가재정에 관해 말하고 있다.

 제1편과 2편에서는 그의 경제이론을 밝히고 있는데 그는 국부론의 서문에서 모든 국민이 해마다 하는 노동은 모든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자원인데, 이들 필수품과 편의품은 국민의 노동의 직접적 생산물이든가 아니면 그 생산물로써 타국에서 구입한 재화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 스미스는 국부(국민소득)의 원천은 국민의 노동에 있다는 노동가치설의 입장에서 국민소득의 개념을 파악하고, #2 국민소득은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등 실물형태의 최종소비재에 의해 구성된다고 봄으로써 국민소득의 개념을 유통과정에서 찾으려 했던 중상주의 경제사상을 배격하고 있다.

 그런데 국부인 생활필수품과 생활편의품을 증가시키는 길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 보고 이를 위해 노동의 분업문제(제1편 1장-3장)로 그의 관심을 옮겨간다. 그 예로서 핀 제조업을 들고 있다. 당시 영국에서 한 사람의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 1개 내지 20개의 핀을 만들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제조공정을 18단계로 나누어 분업하면 1인당 하루 평균 4,800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분업에 의한 교환의 발달,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의 화폐의 성립(제1편 4장)과 거기서 관찰되는 상품의 교환가치 법칙의 문제(제1편 5-7장)로 시선을 돌린다.

 스미스는 상품의 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누었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물은 교환가치가 전혀 없고 사용가치가 별로 없는 다이아몬드는 큰 교환가치를 지닌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물과 다이아몬드에 관한 스미스의 이율배반론이라 한다. 학설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스미스의 이율배반론 가운데 사용가치(효용)를 중요시하여 상품의 가치문제를 체계적으로 규정한 학파는 후에 한계효용학파가 되었고, 반면에 사용가치를 경제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하고 주로 교환가치를 궁극적으로 규제하는 객관적 실체가 무엇인가를 추구한 학파는 후에 노동가치설 내지는 생산비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늘날 한계효용학설과 노동가치설로 분기하게 된 경제학의 흐름에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스미스 자신은 노동가치설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교환가치의 척도에 대해 스미스는 서로 다른 2가지 주장을 하고 있는데, 재화의 교환가치는

그 재화가 구매, 또는 지배하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한다는 지배노동가치설과 재화의 진정한 가격은 그 상품에 투하된 노동량의 크기라고 주장하는 투하노동가치설이 그것이다. 스미스는 이 양 자간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으나 후에 리카도가 투하노동가치설로서 정리했다.  

 한편 스미스는 가치론에서 가격을 자연가격 (임금. 이윤. 지대의 합)과 시장 내에서 재화의 수급에 의해 변동되는 시장가격으로 나누고, 이 시장가격이 일정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 배후에 자연가격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적 가격통제가 언제나 최고의 독점가격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국민대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데 반해 자유경쟁에 의한 자연가격은 최저가격이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같이 자유경쟁은 그의 이론과 실천 면이 동시에 전제되고 있다.  또한 자연가격을 임금. 이윤 . 지대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고 임금. 이윤. 지대의 자연율을 밝히는 것이 그의 분배론이다. 

 제1편 8장에서는 노동의 임금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임금은 먼저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계약에 의해 그 수준이 결정된다. 많이 받으려는 노동자와 적게 주려는 자본가 사이에 때로는 분쟁이 일어나 자본가는 여러 강점에 의해 노동자보다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선다. 그러나 임금에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최저한계가 있어 이를 임금의 자연율 이라 한다. 임금의 자연율은 노동자 자신 및 그 가족의 생활유지비에 의해 결정되며 보통 인도에 벗어나지 않는 최저율이라고 스미스는 말했다. 그리고 노동자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의 임금은 자연율이상으로 올라간다. 임금의 등귀로 노동자생활이 윤택해지면 노동인구가 증가 하여 노동공급이 노동수요를 초과하므로 임금은 다시 자연율로 하락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스미스 이후 리카도와 라살에 의해 발전된 소위 임금철칙의 근본명제다.

 제9장에서는 자본가의 이윤에 관해 논한다. 이윤은 노동자가 원료에 부가한 가치 라고 보아 착취설을 취하는 듯하지만, 원료 및 임금을 선불한 대가로 기업가가 당연히 얻는 가치부분으로 보았다. 현실의 이윤은 자본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므로 어떤 나라에 있어서도 자본이 증대함에 따라 자본의 투하에서 얻어지는 이윤은 필수적으로 감소한다고 보고, 그 원인을 스미스는 임금의 증대와 자본가 간의 경쟁에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스미스는 이윤을 가치의 분해부분으로 보지만, 다른 면에서는 가치의 구성부분으로 보기도 한다. 즉, 실제로 높은 이윤은 높은 임금보다도 생산물의 가치를 현저하게 높이는 경향도 있다고.

 제11장에서는 토지의 지대에 관해 지대는 토지경작에 소비된 노동생산물로부터 최초의 공제분 이라는 노동가치설적 지대론을 전개하기도 하고, 지대는 가격의 변동을 가져온다는 생산비설적 지대론을 펴기도 한다. 또 한편 스미스는 한 국가의 지대가 전부 사유화되자 지주는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밭 갈지 않는 곳에서 거두어들이려 하고 천연의 산물에까지 지대를 요구한다고 하여 절대지대설의 근본사상을 주장하기도 하고,  특수한 생산물, 예를 들면 농산물 중 식물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항상 부족하므로 일종의 독점가격이 형성되고 따라서 실제생산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지대가 된다 는 식으로 통설적 차액지대설과 독점가격설 중 수요초과설을 절충한 차액지대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7-10장에서 스미스는 분배설을 설명하고 세 소득간의 대립을 간단히 논급하고 있다.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농산물의 실질가격은 등귀하나 공산물의 실질가격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주는 2중의 이득을 보고 노동자는 그의 임금이 높아지며 구매하는 재화가격의 일부가 하락되어 이득을 얻는 반면, 상인 및 공장주는 이윤율이 저하되어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득을 싸고도는 계급의 이해대립에 대한 스미스의 문제는 리카도와 마르크스에 의해 더욱 명확해진다. 제2편에는 자본의 성질. 축적. 사용에 관한 그의 경제이론이 서술되어 있다. 자본이란 이윤을 목적으로 투하되는 재화 이며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구분된다. 고정자본은 노동요구. 건물. 토지 등으로 소유자의 손을 떠나지 않고 이윤을 올리는 자본이고 유동자본은 그 반대다. 다음에 스미스는 사회구성원의 노동을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생산적 노동이란 소비자의 전 가치를 하나의 이윤을 붙여서 재생산하는 노동,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 노동이 끝난 후 적어도 어느 시간까지 존속하는 특정대상물 또는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 이라 규정하고, 군주. 관리. 군인 등의 지배계급을 비생산 계급이라 규정했다.

 제3편은 각국의 경제사로서 각국의 국부증진 과정이라는 제목 아래 제1장에서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 제2장에서는 로마제국 멸망 후 유럽의 낡은 체제에 의한 농업의 억압, 제3장에서는 로마제국 몰락 후 크고 작은 도시의 발흥과 발전, 제4장에서는 도시의 상업은 농촌의 개량에 어떻게 공헌했는가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4편과 5편에서 그의 경제정책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경제발전의 순서에는 사물의 자연적 과정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경제정책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경제적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중상주의적 통제 및 독점에 반대의 화살을 던진다. #1 도제법 및 거주법의 철폐와 노동이동 #2 토지소유권을 제한하는 상속한정법. 장자상속법의 철폐 #3 지방 관세장벽의 철폐와 국내산업의 자유 #4 관세 및 장려금의 철폐와 무역의 자유 등을 요구했다. 그는 이러한 제한과 속박을 철폐하면 각 개인은 정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제심에 따라 자유롭게 노동과 자본을 자유 경쟁하게 되고 사회전체의 후생을 촉진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의 경제생활에 간섭하지 말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해 각종 공공사업이나 국방 및 치안만을 담당할 것을 주장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국부론>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것은 부(국민총생산)의 원천이 무엇이며, 부의 증대를 가져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있다. 결국 부의 원천은 모든 국민의 해마다의 노동과 분업에 의한 노동생산력의 증대로 보고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d.사상적 영향

 그의 이론은 독창적이기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학설을 종합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방법론상의 특징은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깊이 파고드는 과학적 태도와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실제 참여하여 이해관계를 가진 자의 눈에 비친 것을 그대로 분류하여 기술하는 비과학적 태도가 병립되어 있다. 상품경제에 있어서 화폐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등 이론상의 혼란도 가끔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 스미스의 사상적 영향은 지대하다. 이를 요약해보면, #1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개인의 이익추구와 국부증진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제창과, #2 최초로 경제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켰고 그 후 부르주아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의 이론적 토대 역할을 한 점, #3 그의 사상이 그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신분제도에 근거를 둔 낡아빠진 관습이나 중앙정부의 계획 없이도 자유방임 시장에서는 개인의 이기적 욕망추구와 국부의 증진이라는 사회적 공동선이 보이지 않는 손의 축복에 의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일관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의 생각에 따르면 정부는 작은 정부를 이상적으로 보고, 정부는  단순명백한 자연적 자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치안담당 등 최소한의 임무만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영국의 사회상황은 소수만이 점점 더 부유해지고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공정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이에 대해 그는 자유방임 시장이 당장 모든 사람은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결국 대중을 빈곤으로부터 구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하는 것으로 그쳤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애덤 스미스가 중상주의의 어둠을 헤치고 발견한 훌륭한 신세계는 결점없는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주의 정부의 불합리하고 자의적인 전횡에 맞서 합리성과 질서의 필연적인 승리를 예언하는 세계관의 일대전진이었다. 이기심과 경쟁의 상호작용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것을 지적한 사람은 스미스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시장이 어떻게 사회를 유지시키는가를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나라의 부와 대중의 생활을 발전적으로 촉진시키는 이론을 확립하지는 못했다. 

 애덤 스미스는 죽었지만 그의 사상은 인류의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조화로운 세계관을 정립하고서도 조화롭지 않은 현실 사회의 계급투쟁을 직시한 그의 사상은 제자들에게 계승되면서 적대적인 두 갈래의 사상으로 분열되었다. 모두 애덤 스미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두 진영의 사상가들은 스승의 사상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배격했다. 즉,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은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에 계승하면서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 발전한다. 반면 그의 제자들은 스미스의 노동가치설을 완전히 배격하고  모든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효용을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을 근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일에 열중한 주류 경제학자들(마셜, 케인스, 프리드만)이 그들이다. 경제사상의 역사는 이 두 진영 사이의 사상적 대결의 역사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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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


최근 수정 시각: 2017-06-21 17:34:00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a/Wealth_of_Nations.jpg


《국부론》은 좋은 책이 아니다. 위대한 책이다.

토드 부크홀츠



1. 개요

2. 시대상

3. 주요내용

3.1. 분업

3.2. 이기심의 긍정

3.3. 보이지 않는 손

4. 국부론 원서

4.1. 번역

5.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애덤 스미스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감정론"보다 후세 사람들에게 더 각광을 받은 책.


원제는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일상 대화에서 원제를 말하기에는 원제가 꽤나 길기 때문에 일상 대화나 비격식적인 글에서는 국부론(國富論)으로 짧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에서도 The Wealth of Nations로 줄여서 부른다.


1776년 영국의 학자 애덤 스미스가 찰스 타운센드 공작의 아들을 개인과외하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1769년에 영국에 귀국한 뒤 7년간 커콜디에서 자신의 서재에 파묻혀 지내 쓴 책이다. '경제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에 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탄생[1] [2]과 기초를 닦은 것과 동시에, 고전 경제학의 시발점,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한 번은 읽어 볼 만한 명저다[3] 적어도 경제학을 접하고 있는 사람은 이 책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을 모르고 경제학을 아예 모르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은 아는 사람이 많은데, 바로 이 《국부론》에서 나온 말이다.


2. 시대상[편집]


《국부론》이 나오던 당시, 전통적으로 우수한 토지를 바탕으로 중농주의를 채택한 프랑스나, 신대륙을 바탕으로 넘쳐나는 금과 새로운 문물들을 중점으로 한 상업 즉, 중상주의를 밀어붙인 에스파냐가 아닌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성장한 영국이 세계적 부국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부의 원천은 토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중세는 토지가 많을수록 부자이던 시대였다. 그러다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식민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과 새로운 문물들은 그간 땅만 있으면 돈이 굴러오던 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즉 무역업이란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애초부터 서유럽 지방 중에서도 기름진 땅을 독차지하는 프랑스도, 가장 먼저 신대륙을 발견해 독점무역을 해오던 에스파냐도 아닌 듣보잡 섬나라에 불과하던 영국이 산업혁명 이후 이 두 나라를 제치고 부국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일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돈이 움직이는 현상을 설명해야 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책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3. 주요내용[편집]


3.1. 분업[편집]



현대에 와서 분업을 하지 않는 공장을 찾는게 더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공장은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데 여러가지의 공정을 거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4세기 그리스 작가 크세노폰(Xenophon)의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에서 이미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근대에 들어서 윌리엄 페티 경(Sir William Petty)이 네덜란드 조선소의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견문하여 분업의 이점을 재발견하여 이후 분업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분석한 결과, 3가지의 특징을 알아냈다.


생산성 향상

하나의 예시를 들어서 핀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이곳에서 일하는 공돌이A는 하루에 핀 20개를 만들 수 있다. A랑 똑같은 수준의 공돌이가 10명이 있다고 하면, 공돌이를 갈면 모르지만 이 핀 공장은 하루에 200개 이상의 핀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 핀 공장이 공정을 18개로 나누어 공돌이 10명에게 작업을 시켰더니(10명을 어떻게 18가지의 공정으로 나눌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4]하루에 약 48,000개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분업 하나만으로 생산성이 무려 240배로 뛰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분업에 의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1) 전문화된 노동자들이 숙련도가 향상되기 때문이고, 2)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할 때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3)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작업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구나 기계류를 고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화폐의 사용

분업을 일으키는 것은 한 물품을 다른 물품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인간의 기질이므로, 교환 경제가 확장됨에 따라 분업의 수준 또한 높아진다. 그러나 물물 교환 시대에는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 다른 사람이 잉여로 가진 물품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양조업자가 육류를 필요로 하면서, 도축업자가 맥주를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런 교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교환을 거절하지 않을 특정 상품을 갖고 거래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며, 초기에는 가축, 소금, 조개 껍데기 등이 이용되었으나[5] 결국 내구성이 높아 장기간 보존이 용이하고 가치의 손실없이 분할할 수 있는 금속이 선호되었다.


처음에는 금은동철이 아무런 표시도 없는 덩어리째로 사용되었으나 거래할 때마다 중량을 재고 금속의 순도를 매번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필요성에서 중량이 일정하고 순도가 표시된 금속 화폐인 주화가 등장하였다. 주화는 중량을 재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 개수를 세어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물물교환이 사라지고 화폐가 사용되면서 상품의 교환가치를 화폐로 평가하게 되었다. 즉 화폐는 그 자체로는 사회의 수입이 아니지만, 자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그것에 의해 구매할 수 있는 재화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점차 화폐가 상업의 보편적인 매개체가 되고 모든 종류의 재화가 매매되거나 교환되면서 시장이 형성될 기초를 형성했다.


규모의 경제 및 시장 사회의 형성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 사회에서는 한 마을이 제공하는 수요의 규모는 지나치게 협소하기 때문에, 하나의 마을에서 독립된 직종으로서 대장장이, 석공, 목수, 도축업자, 양조업자 등을 유지할 수 없었고, 각각의 농장 혹은 가족 내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일을 몸소 해내야 했다. 예를 들면 스미스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외진 고지 내륙 지역에서는 못 제조업자와 같은 직업이 존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했다. 하루 1천 개의 못을 제조하는 제조업자는 1년 300일을 일하면 30만 개의 못을 제조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고지에서는 단 하루치인 1천 개의 못도 판매할 수 없었다.


수상 수송이 발달하면서 대량의 화물이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당시 마부2명이 모는 말8필의 광궤 4륜마차는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를 4톤의 화물을 싣고 6주일만에 왕복하는 반면, 화물 200톤을 적재한 선박은 불과 6~8명의 선원만 필요로 하면서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200톤의 화물을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운송하려면, 육로로는 100명의 생계비와 말400필, 마차50대의 유지비가 소요되는 반면, 수로로 옮길 때는 불과 6~8명의 생계비와 200톤급 선박1척의 유지비만 소요된다.


수운의 발달로 수송비용이 폭락하면서 하천과 연안을 낀 도시들에서부터 분업이 확립되고 상업 사회가 형성되었다. 더 이상 이웃 농촌에서만 원자재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게 된 도시들은 멀리 떨어진 지방 및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몇몇의 한정된 촌락을 벗어난 더 넓은 범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들은 대량의 수요를 요구하는 전문적인 제조업 업종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또한 농촌의 잉여 생산물을 위해 대규모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농촌의 경작과 개량에 자극을 주기까지 했다.


한편 그 자체가 상거래의 안전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도시의 상업과 제조업은 농촌에 질서와 선정,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도입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외국 무역과 제조업이 도입되기 전, 대지주는 소유지의 잉여 생산물을 교환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다수의 가신, 식객을 부양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잉여 생산물의 소비자가 대지주와 그 부하들로 한정된 상태에서는 농노나 소작인들도 대지주에게 종속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외국 무역에 의한 제조업이 확립되자, 대지주들은 특히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차 가신과 필요없는 소작인을 해고했으며, 동시에 보유한 토지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나머지 소작인들에게 토지 개량을 위한 장기 차지계약을 인정하게 되었다. 소작인은 장기간 토지 차용권을 보유하고, 잉여 생산물을 소비할 시장이라는 대안이 존재함으로써 지주로부터 독립했고, 해고된 가신들은 대지주가 농촌을 폭력과 권력으로 지배하는데 더 이상 이용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일상의 정치를 교란할 권세가들이 사라져 가고 농민이 종속에서 해방되면서 도시와 같이 사법과 행정이 확립되었다.


산업 혁명에 따른 대량생산으로 애덤 스미스의 견해가 확증을 얻게 되었다.

과거 중세시대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공업의 대부분은 가내수공업이 주류를 이루웠고, 그나마 복잡한 공정도 동네 대장간에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렇기때문에 모든 공산품의 가격이 상당히 고가를 형성하여 대부분의 공산품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같은 물건이라도 그날 공돌이의 컨디션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났기 때문에 분명 같은 상품이라도 퀄리티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흔했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러 공정으로 쪼개진 공장은, 수작업보다 퀄리티가 높은 공산품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다. 당장 위의 핀만해도 분업만으로 240배가 뛰었는데, 증기기관으로 자동화까지 되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는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된 저품질&높은가격의 공산품을 빠른속도로 대체했으며, 과거 특권층의 전유물이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도 더욱 양질의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그만큼 공산품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이 활성화되며, 규모가 팽창하게 되어 시장이 경제를 주도하게되는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의 시초이기도 하다.


3.2. 이기심의 긍정[편집]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발전을 가져왔다고 보았다. 흔히 이기심은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국부론의 관점에서는 이기심이 없으면 경제발전도 없다. 이것으로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 국부론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한다.

이익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기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한정적인 자원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기위해 노력한다.

자원은 한정돼있기 때문에, 이를 가지기 위한 경쟁이 생기게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보다 더 좋은 방법을 끝없이 연구한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3.3. 보이지 않는 손[편집]


But the annual revenue of every society is always precisely equal to the exchangeable value of the whole annual produce of its industry, or rather is precisely the same thing with that exchangeable value. As every individual, therefore, endeavours as much as he can both to employ his capital in the support of domestic industry, and so to direct that industry that its produce may be of the greatest value; every individual necessarily labours to render the annual revenue of the society as great as he can. He generally, indeed, neither intends to promote the public interest, nor knows how much he is promoting it. By preferring the support of domestic to that of foreign industry, he intends only his own security; and by directing that industry in such a manner as its produce may be of the greatest value, he intends only his own gain, and he is in this, as in many other cases,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 Nor is it always the worse for the society that it was no part of it. By pursuing his own interest he frequently promotes that of the society more effectually than when he really intends to promote it. I have never known much good done by those who affected to trade for the public good. It is an affectation, indeed, not very common among merchants, and very few words need be employed in dissuading them from it.

그러나 모든 사회의 연간 수입은 언제나 그 사회의 산업에서 생산하는 연간 총 생산량의 교환 가치와 정확히 같다. 또는 차라리 교환 가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본을 국내 산업의 지원에 사용하고, 또 그 산업에서 최대의 이윤을 산출하고자 한다면,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연간 수입을 만들려 노력하게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분명히 개인은 공공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시키려고 하지는 않으며, 얼마나 증진시키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외국 산업보다 국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안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며, 그 산업을 운영하는 것도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경우와 같이, 개인은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의도치 않았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의도치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증진시키려 할 때 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은 더 자주, 더 효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나는 공공 이익을 위해 거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크게 이익이 되는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는 상인들 사이에선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러지 말라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6]

- <The Wealth of Nations> book 4, chapter 2, pag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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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국부론 내용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내용. 흔히 알고있는 내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 작용하여, 시장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로 알고있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경제활동이 조정된다고 보았다. 각 경제 주체들은 가격 변동에 따라 행동을 조절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익을 위해 최대한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즉, 말 그대로 시장이 제대로 기능한다면 가격에 의해 모든 생산주체와 소비주체는 조절되며, 어떠한 제품의 가격에 따라 그 제품의 공급과 수요가 형성되고, 조절된다는 말이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으로 하여금 모든 시장 참가자가 열심히 일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거래되는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이 소수가 아닌 시장 참가자 전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시장이었다. 이렇게되면 생산자는 최적의 가격으로 최적의 이윤을, 소비자는 최적의 가격으로 최대의 만족을 이루는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게 되며, 이를 유지하는 힘이 바로 시장 속의 가격 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았다.


스미스가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한 "보이는 손"은 정부와 같은 특정의 집단 혹은 소수의 이익집단이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들의 의지대로 가격이 임의로 조절되거나, 독점현상으로 자원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아, 시장의 순기능을 막아버리는 현상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미스는, 정부는 국방, 사법, 공공 토목사업 같이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나 개인이 하려고 하지 않을 일만을 해야 하며, 길드같은 특정 집단이 법을 등에 업고 자원을 독점하여(chartered monopoly) 시장 유통을 통제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경제학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오직 선동을 위해 혹세무민에 여념이 없는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신자유주의의 원흉으로 중상모략을 당하는 애덤 스미스는 이 책 내용대로면 소위 지식인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것을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손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기업들의 담합과 독점을 내팽겨치라는 의미가 아니라 (행간을 읽어보면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독점을 억제하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 당시의 독점은 중상주의에 의한 독점이었으므로 국가의 개입은 오히려 독점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개념의 초보적인 형태는 사마천이 2000년 전에 주장한 바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자연지험(自然之驗)사상을 주장하며 “물건이 싸면 비싸질 징후고, 비싸면 싸질 징후라서 각기 제 업을 좋아하고 제 일을 즐거워한다. 이는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아서 밤낮 쉴 새가 없고, 부르지 않아도 절로 오고, 구하지 않아도 백성이 만들어낸다”고 하였으며, 월나라의 사례를 들며 개인의 영리추구와 이기심이 부국강병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또 장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은 단 한 번밖에 안 나온다.[8] 국부론의 주된 논지는 '귀족들과 대상인들의 창고에 쌓여있는 금의 양이 아닌, 사회 각계각층, 중심지 및 지방에 얼마나 재화가 확산되어 있는가가 진정한 국부의 척도이다'라는 것이며, 자유로운 다원적 시장경제가 이러한 의미의 국부 창출에 핵심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요컨데 재화가 사회특권층의 금고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있어야 시장경제가 돌아가고 총생산(=국부)이 늘어난다는 것.. 오늘날에야 당연한 소리같지만,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취급되어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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