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19 – 사기열전(史記列傳) / 사마천(司馬遷) (BC 145?~?)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사기>는 사마천이 이능사건과 관련하여 죽음보다 수치스런 궁형(宮刑)을 당하면서 완성한 불멸의 고전이다. <사기>는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고 역사정신에 투철했던 한 인간이 빚어낸 인간승리의 결정체다. <사기열전>이란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서술방법인 기전체사서의 효시가 된 <사기> 중에서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에는 사마천의 역사관.세계관.인간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제반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씌어진 <사기열전>은 역사서이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철학서이기도 하다.


a.생 애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를 헤로도트라고 한다. 반면에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 사마천은 <동양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후반시대의 역사가인 반고와 함께 역사학의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사마천은 대대로 사관을 지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 즉 천체를 관측하여 달력을 만들고 문헌이나 기록루를 관리하는 직에 있었다. 사마담은 사관의 지의가 점차 기술적으로 천시되고 옛기록이 사라져가는 것에 깊은 비애를 느끼고 사서편찬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어릴 적부터 역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그의 아버지에 의해 의도적으로 역사가로서의 소양을 키워나갔다. 그는 이미 10대에 고문서에 통달했으며 20대에는 천하를 주유하며 주요 사적지를 직접 답사, 각지의 전승과 풍속, 중요인물 등의 체험담 들을 채록하는 등 귀중한 체험을 했다. 그후 낭중의 벼슬에 올라 무제를 수행, 사자로서 출장을 거듭하게 되니 전국 각지에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버지 사마담은 한무제가 거행한 태산에서의 봉선(흙을 쌓아 담을 만들어 하늘과 산천에 제사지내는 일)의식에 태사의 직책에 있으면서도 참석을 허락받지 못해 괴롭게 여기다가 분사했는데, 죽기 전에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역사를 기록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천문.제사의 직을 관장하는 태사령이 봉선의 대의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녕 큰일임에 틀림없고 죽을 정도로 발분한 것도 당연하다.

 BC 108년 아버지를 이어 태사령에 임면된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의 집필을 결심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남아있던 <시경> <상서> <춘추> <전국책> 등과 궁중에 비장되어 있는 각종 서적.상소문.국가의포도문 등을 섭렵,<사기>의 집필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예기치 않은 재난이 닥쳐왔다. BC 99년 한나라 장군 이능이 훙노와 싸우다가 패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능의 처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단죄를 주장하는 무제와 일가멸족의 의견이 대세인 상황에서 사마천이 홀로 이능의 충절과 용감함을 들어 변호하자 격분한 무제는 사형을 선고했다.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천하의 사마천은 감옥 속에서 <<용감하고 비겁하고 강하고 약한 것은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는 손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당시에는 사형을 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50만 전을 내든지 아니면 생식기를 절단하는 <궁형>을 받는 일이었다. 넉넉치 못했던 사마천은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궁형을 택했다. 2년여의 옥중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뜻밖에도 한무제의 측근에서 일하게 되었다. 중서령이라는 높은 벼슬로 복귀했는데,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이는 그가 환관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뒤 정신적 타격에도 굴하지 않고 분발하여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의문을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 속에서 찾고자 하여 마침내 20년간의 산고 끝에 <사기> 130권을 완성했다. 이처럼 사관의 가문에서 출생, 천하주유, 부친의 유언, 저술 착수, 이능사건과 궁형, 사명감으로 완성된 책이 <사기>다. 그때가 BC 97년. 탁월한 재능과 예리한 관찰력, 거기에 인생의 가혹한 체험을 겪은 사마천에 의해 <사기>는 불멸의 역사서로 남게 된 것이다.


b.사마천의 역사관

 먼저 사마천의 역사연구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그의 편지의 일부를 보자.<<겸손치 못한 일이나 저는 감히 저의 무능한 문장으로 세상에 흩어져 없어져버린 구문을 수집하여 그 행해졌던 일을 대략 상고하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하여 성패와 흥망의 원리를 살펴 모두 130편을 저술했습니다. 저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한서>).>> 이 글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역사연구란 폭넓은 역사적 자료에 의거해야 하며 아울러 이러한 자료를 사실과 서로 검증하여, 일의 성패와 국가의 흥망원인에 대해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역사가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료의 진위감별력,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료와 진실에 근거하여 사실대로 쓰는 데 과감해야 한다. 사학자들은 절대로 주위의 압력이나 회유에 굴복해서는 안되며 객관적인 역사서술에 용감해야 하는데, 사마천은 두 방면에서 모두 뛰어난 모범이 되었다고 후세사가들은 평했다. 그는 이처럼 <사기>를 저술하면서 객관적 판단이나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구분하여 서술하는, 즉 주관적 판단이나 감상은 언제나 본문 끝에다 <태사공월>이라고 써서 역사가로서의 엄정함을 갖추었다.


   2. 사마천은 역사연구에 있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사기>에서 밝혔다. 즉, 역사연구에 있어 시대상황의 변화와 개인이 서로 만나게 되는 관계에 대해 연구했던 것이다. 인간사의 성패나 국가의 흥망은 인간 자신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하늘과 신의 뜻에 의한 것인가? 이에 대한 사마천의 태도는 분명하다. 즉,인간은 역사의 주체이지 객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역사에 있어 인간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천명사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예로 사마천은 항우가 패배하여 자살하기 직전 하늘의 뜻으로 돌리며 <<하늘이 나를 망친 것이지 나의 탓이 아니다>>라고 한 데 대해, 항우가 패하여 죽은 것이지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며 오직 그 스스로 일을 그르쳤다고 평가했다.


   3. 사마천은 역사연구에 있어 마땅히 <<고금의 변화에 통달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역사발전과정과 법칙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란 발전적이고 변화적이며 역사의 각 마디는 상호연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기>는 통사체제를 활용하여 중국역사시대부터 한에 이르는 3천 년의 인류역사를 일관되게 서술한 최초의 책이며,아울러 이 한 폭의 역사의 그림책 속에서 각 시기의 특색 및 예법.제도.인물의 변천을 드러내었다. 바로 이것이 사마천의 <고금에 통달하는> 사상을 보여준 것이다.


   4. 네번째, 사마천은 역사연구에 있어 마땅히 역사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품격을 지닌 <<일가의 말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사학은 일종의 고지식함을 많이 지니고 있어 역사서는 천편일률적이고 역사가는 개성이 부족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의 대부분이 정치세력의 영향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사마천은 후대사람들의 모범이 되어 매우 힘원한 영향을 미쳤다. 사마천은 우수한 역사가로서 <사기>에서 대단히 개성적인 품격을 형성했는데, 그 결과가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술방법이다. 비록 공자가 편년체(연대중심의 역사서술방법, <사기> 이전의 모든 역사책의 서술방법이었으나 <사기>이후 기전체가 유행하고 송나라 때 사마광의 <자치통감>이후 편년체의 편찬방법이 보다 완벽해져서 다시 새롭게 주목을 받는다)로 지었다는 <춘추>를 참고했다 해도 그 역사서술 방식이나 태도에 있어 크게 다른 기전체라는 독특한 방법을 개발했던 것이다.


c.<사기>의 내용


 <사기>는 처음 <태사공서>라 불려지다가 위.진 시대에 와서 <사기>라 약칭되었다. 이 책은 중국의 고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그 당시까지의 3천 년 역사를 인물중심으로 다룬 통사(기전체 사서)로,본기 12권,표 10권, 서 8권, 세가30권, 열전 70권 등 총 130권(10권은 그후 소실)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기>란 제왕의 일대기, <세가>는 제후의 일대기, <열전>은 그아래에서 역사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고,<표>는 연대기,<서>는 역법이나 경제 등의 제도사이다. 이중<열전> 70권은 이 책의 백미로서 사회 각계각층 그리고 각 방면의 중요한 인물 및 주변국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사공자전>편이 있는데, 이것은 사마천 자신의 가계와 사적을 서술하고 이 책의 편찬과정과 의미, 그리고 저자의 사학적인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본기>는 역대왕조의 역사를 제왕을 중심으로 쓴 연대기다. 황제의 첫머리에 <5제본기>로부터 시작하여 하.은.주.진.한의 5대에 걸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는 서술이 간략하고 내려울수록 사료가 풍부하여 자세히 기록했다.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비록 황제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천하에 그 영향력을 떨쳤던 항우를 <항우본기>로 <진기>와 <한기>사이에 설정한 것과, 한나라의 2.3대 군주인 효제,소제는 본기로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구구한 이럼 점으로 볼 때 사마천의 견해는 유학파와는 달리 실증적인 특색을 지녔던 듯하다.

 <세가> 30권은 선진 이후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를 거듭한 봉건제후국의 역사다. 주나라의 봉건제후는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복잡한 역사를 엮어내는 제왕을 중심으로 한 <주본기>만 가지고는 이 시대 제후국의 활동을 충분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세가>란 차례를 세우고 각 나라별로 제후국의 역사를 서술했다. 그렇다고 해서 <본기>에 대해 <세가>를 세운 것은 단지 주나라의 봉건제를 수술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한 예외로서 공자와 진승(진나라를 치기 위해 제일 먼저 봉기한 민중의 지도다)이 세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공자는 제후는 아니었고 진승은 권력투쟁에서 실패한 무장임에도 <세가>로 대우한 것은 문화사에서 공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정치사에서 진승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같다.

 <열전>의 서술은 사마천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부분이며 70권으로 되어 있다. 그는 <열전> 저술의 목적을 <<의를 돕고 결연히 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을 위해 70여 편의  열전을 짓는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가 전국시대 이후의 역사의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인물들의 생애를 깊은 통찰력,예리한 판단력,풍부한 상상력 등을 구사하여 다채로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역사의 질서를 내면으로부터 뒷받침하는 뜻에서 각 개인의 구체적인 행동을 서술하고 있다. 사마천은 그와 같은 질서의 세계를 현실에서 권력을 잡은 자의 구체적인 권력지배의 세계와 혼동하지 않았다. 차라리 개인의 구체적인 권력자 행위는 그와 같은 질서이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행위의 동기,심성이란 관점에서 날카롭게 비판된다. 특히 그와 같은 시대를 산 권신들의 행동에 대한 비판적 서술에는 가차없으며, 비록 평민이라도 그가 이념하는 질서세계를 유지하는 데 참여한 자를 위해서는 특별히 <열전>을 세워서 이를 기록하고 있다. <유협열전> <유림열전> <자객열전> <호리열전> <화식열전>등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중국을 둘러싼 이민족을 열전의 단위로 삼아서 서술한 것이 있는데, <조선열전>을 비롯한 <흉노열전> <남월동월열전> <서남이 열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사위 민족과의 교섭이 잦았기 때문이며 그들의 실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실리적 견지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나, 중화사상의 표현으로 왕화가 미치는 곳이라 하여 더욱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조선열전>에는 특히 무제의 한사군설치를 둘러싸고 우리 나라의 청천강 유역에서 한군과 위만조선군이 충돌한 사건을 소상히 다루고 있다. 대략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마천은 52만 자에 달하는 저작을 완성했다. 우리는 여기서 궁형의 고통을 참아가며 <사기>를 완성하고 아울러 과거에 대한 서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줌과 동시에 삶의 존재의미를 이 저술 속에서 승화시킨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d.공헌


 사마천의 중국문화에 대한 공헌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대하다. 중국이 사상사.문학사.천문학사에서 특히 그렇다. 이는 사마천 자신의 천재성에 그 연원을 찾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 밖에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를 그가 산 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진.한 이래 정치적인 분열상태가 종식되고 사상적으로도 백가쟁명은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하여 구사회의 역사.문화를 총괄하고, 거기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요구가 필연적으로 싹트게 된다. <태사공자서>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던 책 중의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사마천을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격찬해 마지않는 것은 그가 사학분야에 미친 공헌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의 역사문헌인 <상서>와 <춘추>에서는 개인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 개인을 유교의 훈계담이나 정치법률에 붙여 제2차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기>의 출현으로 종래의 교훈적인 역사가 과학적인 학문의 수준으로 발전하여 유교의 경에서 사학을 독립시킨 것이다. 이라하여 경과 사는 한대부터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사가경과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마천과 후한의 반고에 의해서이다. 사마천의 뚜렷한 업적 중의 하나는 기전체(紀傳體)를 통해 역사서술을 시도한 점이다. <기전체>란 본기와 열전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사마천에 의해 새로이 창안된 이 기전체의 서술체제는 중국 정사체에 계승되면서 송의 사마광의 <자치통감> 이후 나타난 연대 중심의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이후 동양 역사서술의 전형이 되었다.

 <사기>의 사료로서의 가치는 <사기>에 기록된 천년 전의 은나라 계보가 갑골문자의 발굴을 통해 정확히 확인된 바 있다. 또한 1974년 진시황의 지하궁전이라 하여 세계의 8대 불가사의로 알려지고 있는 진시황릉의 동쪽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대규모 병마용갱의 발견 역시 <사기>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해준 셈이 되었다. <사기>제6권에 <<37년 9월에 진시황을 여산에 묻었다. 시황은 즉위 초에 지하수맥 3개를 끊고 그곳에 동을 흘려서 그위에다 관을 설치했다. 접근하는 자가 있을 경우 화살이 저절로 쏘아지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기>가 단순한 역사서적만은 아니다. 전편에 보이는 유려하고 생동감있는 문장 속에 무수한 인간들의 인생역정이 서술되고, 왕에서 서민까지, 역사의 주연에서 조연까지 이들 개성적 인물들이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인간관계에 주목,곧 인간에게 있어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역사서술의 형식을 빌어 기술하면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밝히고, 나아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사서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탐구의 서적이다.

 사마천은 기전체 문학의 창시자임과 동시에 이른바 우수한 전기문학작가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고도의 언어예술을 갖추고 시대의 언어를 구사하여 역사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생동감 있고도 간결하게 각인했다. <<역사가들이 부른, 만고에 빛날 노래이자 운이 없는 굴원의 <이소>다.>> 이것은 노신이 <사기>에 보낸 찬사이자, <사기>의 탁월한 문학성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중국문학사상 문학가로서의 사마천은 시인 굴원과 비교된다. 이것은 양자의 처지가 비슷란 것만은 아니고 그들의 작품에 내재하는 현실주의적 정신이 매우 유사한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국의 사실을 소재로 한 역사산문을 높은 단계로까지 끌어올려놓은 공로 또한 크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 이때의 심정을 뒷날 친구인 임안에게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역경을 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킨 그이 투철한 역사정신을 음미해보자.


 <<나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몸입니다. 진작 죽었어야 할 것을 이제까지 버티어온 것은 아버지의 유명인 <사기>의 찬술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온갖 수치와 굴욕을 참아가면서 나는 밤낮으로 이 일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내가 듣건대 그 옛날 문왕을 이리에 갇혀서 <주역>을 풀었고, 공자는 곤궁함 속에서 <춘추>를 지었고, 굴원은 추방되어 <이소>를 쓰고<자구명은 <국어>를 지었고, 손자는 다리를 끊기고<병서>를 썼다고...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뜻하는 바를 알리기 위해 이런 글들을  썼던 것입니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세상에 흩어져 있는 전고를 모으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사적을 조사하여 그 성패와 흥망의 배후에 깃든 이치를 규명코자 모두 130편을 저술했습니다. 저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극형을 받으면서도 태연스럽게 부끄러운 빛조차 띠지 않고, 만약 이 책을 완성하여 명산에 소장하고 지식인들에게 전달 할 수 있다면 저의 수치도 충분히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설령이 몸이 산산조각이 난다 한들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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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사마천(司馬遷)


소경인 임안에게 보내는 답서-사마천(司馬遷)


史公牛馬走(태사공우마주) : 태사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사마천재배언소경족하) : 사마천이 삼가 소경족하에게 재배하며 말씀드립니다

曩者辱賜書(낭자욕사서) : 저번에 외람되이 서신을 보내셔서

敎以順於接物(교이순어접물) : 교우 관계를 신중히 하고

推賢進士爲務(추현진사위무) :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는데 힘쓰라는 가르침을 잊을 주셨습니다

意氣懃懃懇懇(의기근근간간) : 말씀이 간곡하셔서 

若望僕不相師(약망복불상사) : 제가 따르지 않을 것 같아 원망하시는 듯했는데

而用流俗人之言(이용류속인지언) :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僕非敢如此也(복비감여차야) : 제가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僕雖罷駑(복수파노) :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역상측문장자지유풍의) : 어른들의 유풍을 어렴풋이나마 들었습니다 

顧自以爲身殘處穢(고자이위신잔처예) : 그러나 돌아보면 스스로 궁형을 당하고 이름이 더럽혀져

動而見尤(동이견우) : 걸핏하면 허물을 입고

欲益反損(욕익반손) : 잘 하려고 하지만 일을 그르칩니다

是以獨鬱悒而與誰語(시이독울읍이여수어) : 그러니 혼자 수심에 잠길 뿐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諺曰(언왈) : 속담에 이르기를

誰爲爲之(수위위지) :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孰令聽之(숙령청지) : 또 누구에게 기를 기울이겠는가?”라고 했습니다

蓋鍾子期死(개종자기사) : 종자기가 죽자

伯牙終身不復鼓琴(백아종신불복고금) : 백아는 죽을 때까지 거문고를 타지 않았습니다

何則(하칙) : 왜 그랬을까요

士爲知己者用(사위지기자용) :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女爲說己者容(여위설기자용) : 여자는 자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밉니다

若僕大質已虧缺矣(약복대질이휴결의) : 저처럼 몸이 망가지면

雖才懷隨和行若由夷(수재회수화행약유이) : 록 재능이 수후주나 비화씨벽 같고

終不可以爲榮(종불가이위영) : 행실이 허유 백이처럼 고결히도 끝내 영광스럽지 못하고

適足以見笑而自點耳(적족이견소이자점이) :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 당해 스스로 더럽힐 뿐입니다

書辭宜答(서사의답) : 당신의 서신에 회답을 드려야 했는데

會東從上來(회동종상래) : 공교롭게 임금님을 따라 동쪽에서 장안으로 오게 되고

又迫賤事(우박천사) : 또 잡다한 일도 생겼습니다

相見日淺(상견일천) : 만나 뵐 기회도 적었고

卒卒無須臾之閒(졸졸무수유지한) : 또 매우 바빠 틈을 내어

得竭志意(득갈지의) :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今少卿抱不測之罪(금소경포불측지죄) : 지금 당신께서 생사가 달린 큰 죄를 지으신지

涉旬月(섭순월) : 한 달이 지나 12월이

迫季冬(박계동) : 가까워졌습니다

僕又薄從上雍(복우박종상옹) : 저는 또 임금님을 모시고 옹지역으로 가게 되어

恐卒然不可爲諱(공졸연불가위휘) : 당신께서 뜻밖에 죽음을 당할까 걱정됩니다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시복종이불득서분만이효좌우) : 이렇게 되어 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고민을 끝내 당신에게 알리지 못하면

則長逝者魂魄(칙장서자혼백) : 저 세상으로 간 당신의 혼백에

私恨無窮(사한무궁) : 한없이 유감스러울 것입니다

請略陳固陋(청략진고루) : 이제 저의 비루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闕然久不報(궐연구불보) : 오랫동안 끌어오다가 아제서야 답장하게 되었으니

幸勿爲過(행물위과) : 허물로 여기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僕聞之(복문지) : 제가 듣건대

脩身者(수신자) : 수신이란

智之符也(지지부야) : 지혜가 쌓인 것이고

愛施者(애시자) :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이

仁之端也(인지단야) : 인의 시작이며

取與者(취여자) : 주고받는 것을 엄격히 하는 것이

義之表也(의지표야) : 의의 표현이고

恥辱者(치욕자) : 수치를 알고 욕된 것을 참는 것이

勇之決也(용지결야) : 용기 있다는 증거이며

立名者(입명자) :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行之極也(행지극야) : 행동의 극치라고 들었습니다

士有此五者(사유차오자) : 선비는 이 다섯 가지를 갖추고

然後可以託於世(연후가이탁어세) : 그렇게 된 뒤에 세상에 나갈 수 있고

而列於君子之林矣(이열어군자지림의) : 군자의 행렬에 설 수 있습니다

故禍莫憯於欲利(고화막참어욕리) : 그래서 재앙 중에서 이익을 탐하는 것보다 더 비통한 것이 없고

悲莫痛於傷心(비막통어상심) : 슬픔 중에서 상심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며

行莫醜於辱先(행막추어욕선) : 행동 중에서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 없고

詬莫大於宮刑(후막대어궁형) : 부끄러움 중에서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없습니다

刑餘之人(형여지인) : 형을 받은 사람이

無所比數(무소비수) : 보통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非一世也(비일세야) : 지금 한 세상 뿐이 아니라

所從來遠矣(소종래원의) :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昔衛靈公與雍渠同載(석위령공여옹거동재) : 전에 위나라 영공과 환관인 옹거가 같이 수레를 타고자

孔子適陳(공자적진) : 공자께서 화가 나셔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셨습니다

商鞅因景監見(상앙인경감견) : 상앙이 환관인 경감의 소개로 진나라 효공을 만나자

趙良寒心(조량한심) : 조량이 상앙을 한심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同子參乘(동자삼승) : 환관인 조담이 문제를 모시고 수레에 오르자

袁絲變色(원사변색) : 원사가 화가 나 안색이 변했습니다

自古而恥之(자고이치지) : 옛날부터 환관을 멸시 했었습니다

夫以中才之人(부이중재지인) : 보통 사람들도

事有關於宦豎(사유관어환수) : 모든 일에 환관이 연관되면

莫不傷氣(막불상기) : 기가 상한다고 여기는데 

而況於慷慨之士乎(이황어강개지사호) : 기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如今朝廷雖乏人(여금조정수핍인) : 지금 비록 조정에 인재가 모자라지만

奈何令刀鋸之餘(내하령도거지여) : 궁형을 받은 제가 어떻게 

薦天下豪俊哉(천천하호준재) : 천하의 호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僕賴先人緖業(복뢰선인서업) : 저는 선인이 남기신 공로에 힘입어

得待罪輦轂下(득대죄연곡하) : 경성에서 일을 한 지

二十餘年矣(이십여년의) :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所以自惟(소이자유) :

上之(상지) : 위로는

不能納忠效信(불능납충효신) : 충성과 신의를 다하고

有奇策才力之譽(유기책재력지예) : 훌륭한 책략을 올려 재능이 있다는 이름을 날렸어도

自結明主(자결명주) : 현명하신 임금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次之(차지) : 다음으로는

又不能拾遺補闕(우불능습유보궐) : 또 잘못을 바로잡고

招賢進能(초현진능) :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천거하며

顯巖穴之士(현암혈지사) : 은거하고 있는 훌륭한 선비를 세상에 드러나게 할 수 없습니다

外之(외지) : 대외적으로는

又不能備行伍(우불능비행오) : 군대를 거느리고

攻城野戰(공성야전) :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우며

有斬將搴旗之功(유참장건기지공) : 적장의 목을 베고 기를 빼앗는 공로도 세울 수 없습니다

下之(하지) : 아래로는

不能積日累勞(불능적일루로) : 오랜 세월 공을 쌓아서

取尊官厚祿(취존관후록) : 높은 관직이나 후한 봉록을 받아

以爲宗族交遊光寵(이위종족교유광총) : 친척이나 친구들이 영광으로 생각사게 할 수 없습니다

四者無一遂(사자무일수) :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고

苟合取容(구합취용) : 남의 비이나 맞추고 영합해서

無所短長之效(무소단장지효) :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한 것이

可見如此矣(가견여차의) : 이와 같습니다

嚮者(향자) : 전에

僕亦常廁下大夫之列(복역상측하대부지열) : 제가 하대부 서열에 있을 때

陪外廷末議(배외정말의) : 외정 말석에 참여하였습니다

不以此時引維綱(부이차시인유강) : 그때 법도를 바로잡지 못하고

盡思慮(진사려) : 생각도 깊이 하지 못하여

今已虧形(금이휴형) : 지금 몸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爲掃除之隸(위소제지례) : 청소나 하는 노예처럼

在闒茸之中(재탑용지중) : 천한 사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乃欲仰首伸眉(내욕앙수신미) : 이에 고개를 들고 슬픈 눈썹을 펴고서

論列是非(론열시비) :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不亦輕朝廷(불역경조정) : 이는 조정을 무시하고

羞當世之士邪(수당세지사사) : 당세의 재능 있는 선비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嗟乎(차호) : 아

嗟乎(차호) : 아, 

如僕尙何言哉(여복상하언재) : 저와 같은 천한 사람이

尙何言哉(상하언재) :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且事本末(차사본말) : 게다가 일의 본말도

未易明也(미역명야) :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僕少貧不羈之材(복소빈불기지재) : 젊었을 때 좀 출중한 재응이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長無鄕曲之譽(장무향곡지예) : 그러나 장성하고 난 후로는 시골구석에서도 훌륭한 평판조차 없습니다

主上幸以先人之故(주상행이선인지고) : 다행히 임금께서 저의 선친의 연고로

使得奏薄伎(사득주박기) : 태사의 일을 이어받게 하시어

出入周衛之中(출입주위지중) : 궁중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僕以爲戴盆何以望天(복이위대분하이망천) : 저는 두 일을 겸직해서 할 수 없다고 여기고

故絶賓客之知(고절빈객지지) :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亡室家之業(망실가지업) : 집안일도 잊어버렸습니다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일야사갈기불초지재력) : 밤낮으로 불초한 능력을 다하고

務一心營職(무일심영직) : 일심으로 자구에 힘써

以求親媚於主上(이구친미어주상) : 임금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이사내유대류불연자부) :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

夫僕與李陵(부복여이릉) : 저와 이릉은

俱居門下(구거문하) : 같은 같은 시중이었으나

素非能相善也(소비능상선야) : 평소 서로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趣舍異路(취사이로) : 서로 자기의 길을 걸어

未嘗銜盃酒(미상함배주) : 일찍이 함께 술을 마시며

接慇懃之餘懽(접은근지여환) : 은근한 기쁨을 나눠 본 적도 없습니다

然僕觀其爲人(연복관기위인) :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릉은 사람됨을 보건데

自守奇士(자수기사) : 비범한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事親孝(사친효) : 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與士信(여사신) : 사람과 사귐에 신의가 있고

臨財廉(임재렴) : 재물에 임해서 청렴하며

取與義(취여의) : 주고받는 데는 의롭고

分別有讓(분별유양) : 분별함에 겸양이 있고

恭儉下人(공검하인) : 아랫사람에게 공손했습니다

常思奮不顧身(상사분불고신) : 항상 분발해 일을 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以徇國家之急(이순국가지급) : 국가의 위험함에 군령을 내림은

其素所蓄積也(기소소축적야) : 그것이 평소에 쌓은 바였습니다

僕以爲有國士之風(복이위유국사지풍) : 저는 국사의 위풍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부인신출만사불고일생지계) : 무릇 신하된 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인생의 책략을 내어

赴公家之難(부공가지난) : 조정의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斯以奇矣(사이기의) : 비로소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今擧事一不當(금거사일부당) : 지금은 일을 하다가 한 가지만 잘못되어도

而全軀保妻子之臣(이전구보처자지신) : 자신과 처자만 보호하려는 신하들이

隨而媒糱其短(수이매얼기단) : 멋대로 그 잘못을 날조합니다

僕誠私心痛之(복성사심통지) : 정말 속으로 이런 일을 통탄스럽게 생각합니다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차이릉제보졸불만오천) : 게다가 이륭은 오천 명도 안되는 보병을 거느리고 

深踐戎馬之地(심천융마지지) : 적진 깊숙이 들어가

足歷王庭(족력왕정) : 흉노 군주의 근거지까지 갔으니

垂餌虎口(수이호구) : 이는 먹이를 호랑이 입에 늘어드린 것과 같습니다

橫挑彊胡(횡도강호) : 그렇지만 막강한 오랑캐에게 도전하여

仰億萬之師(앙억만지사) : 수십만 군사를 올려다보고

與單于連戰十有餘日(여단우련전십유여일) : 흉노의 왕과 연이어 10여 일을 싸웠는데

所殺過當(소살과당) : 죽인 적군의 수가

虜救死扶傷不給(로구사부상불급) : 죽은 아군의 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旃裘之君長咸震怖(전구지군장함진포) : 적군이 사상자를 구하려 오지도 못하자 흉노의 왕이 매우 놀라

乃悉徵其左右賢王(내실징기좌우현왕) : 측근의 현왕을 부르고

擧引弓之人(거인궁지인) : 궁인을 일으켜

一國共攻而圍之(일국공공이위지) : 거국적으로 이릉을 공격하고 포위했습니다

轉鬪千里(전투천리) : 아군은 천리 길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다

矢盡道窮(시진도궁) : 화살도 다 떨어지고 도로도 막히게 되었으며

救兵不至(구병불지) : 구원병이 끊기고

士卒死傷如積(사졸사상여적) : 사상자도 들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然陵一呼勞(연릉일호로) : 그러나 이릉이 군사들을 큰 소리로 위로하자

軍士無不起(군사무불기) : 모두 분기 하지 않음이 없었어

躬自流涕(궁자류체) : 절로 감격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沬血飮泣(매혈음읍) : 온 얼굴에 피눈물을 뒤집어쓰고

更張空弮(갱장공환) : 소리 죽여 울면서 빈 활을 잡고

冒白刃(모백인) : 시퍼런 칼도 무릅쓰고

北嚮爭死敵者(북향쟁사적자) : 북쪽을 향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陵未沒時(릉미몰시) : 이릉이 전쟁에서 패배당하지 않은 사실을

使有來報(사유래보) : 사자가 와 보고하자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한공경왕후개봉상상수) : 한나의 공경과 완후가 술잔을 들어 천자께 축하를 드렸습니다

後數日(후수일) : 며칠 후

陵敗書聞(릉패서문) : 이릉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主上爲之食不甘味(주상위지식불감미) : 천자께서는 식사를 하시기는 하나 맛을 모르시고

聽朝不怡(청조불이) : 조회에 참석하나 기쁜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大臣憂懼(대신우구) : 대신들도 걱정하고 두려워

不知所出(불지소출) :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僕竊不自料其卑賤(복절불자료기비천) : 저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見主上慘愴怛悼(견주상참창달도) : 천자께서 몹시 슬퍼하시는 것을 뵙고

誠欲效其款款之愚(성욕효기관관지우) : 저의 자그마한 충성이나마 다하려 했습니다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이위이릉소여사대부절감분소) : 이릉은 사대부들과 본래부터 동고동락하여

能得人死力(능득인사력) : 다른 사람들의 사력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雖古之名將不能過也(수고지명장불능과야) : 이런 점은 비록 옛날의 명징이라 할지라도 이릉보다 못합니다

身雖陷敗(신수함패) : 그가 적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彼觀其意(피관기의) : 속뜻을 보건대

且欲得其當而報於漢(차욕득기당이보어한) : 적당한 기회를 기다렸다가 나라에 보답하려 하고 있습니다

事已無可奈何(사이무가내하) : 사태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지만

其所嶊敗(기소최패) : 그가 적을 무찌른 공로는

功亦足以暴於天下矣(공역족이폭어천하의) : 세상에 나타내기에 충분합니다

僕懷欲陳之而未有路(복회욕진지이미유로) : 제가 이러한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適會召問(적회소문) : 우연히 부르시고 하문하시어

卽以此指推言陵之功(즉이차지추언릉지공) : 이러한 취지에서 이릉의 공로를 말씀드려

欲以廣主上之意(욕이광주상지의) : 천자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塞睚眦之辭(색애자지사) : 원성을 막으려 했지만

未能盡明(미능진명) : 명백히 설명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明主不曉(명주불효) : 천자께서 저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시고

以爲僕沮貳師(이위복저이사) : 제가 이사 장군을 모함하고

而爲李陵遊說(이위이릉유설) : 이릉을 위해서 유세한다고 여기시어

遂下於理(수하어리) : 영옥을 맡은 관리에게 저를 넘기셨습니다

拳拳之忠(권권지충) : 간절한 저의 충성심을

終不能自列(종불능자열) : 끝내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因爲誣上(인위무상) : 그래서 천자를 속인다고

卒從吏議(졸종리의) : 여겨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家貧貨賂不足以自贖(가빈화뢰불족이자속) : 집이 가난하여 속죄할 수도 없습니다

交遊莫救(교유막구) : 평소 교제하던 사람들도 구해주려고 하지 않고

左右親近(좌우친근) : 측근에 있던 사람들도

不爲一言(불위일언) : 저를 위해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身非木石(신비목석) : 제가 목석처럼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獨與法吏爲伍(독여법리위오) : 옥리와 함께

深幽囹圄之中(심유령어지중) : 깊은 옥중에 갇혀 있으니

誰可告愬者(수가고소자) : 누가 억울하게 겪은 이런 고통을 이야기해 주겠습니까

此眞少卿所親見(차진소경소친견) : 이것은 당신께서 친히 보신 바이니

僕行事豈不然乎(복행사기불연호) : 저의 사정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李陵旣生降(이릉기생강) : 이릉이 살아서 적에게 항복하여

隤其家聲(퇴기가성) : 그 가뭄의 명성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而僕又佴之蠶室(이복우이지잠실) : 저도 궁형을 시행하는 밀실로 불려가

重爲天下觀笑(중위천하관소) :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悲夫(비부) : 슬프고

悲夫(비부) : 슬픕니다 세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사미이일이위속인언야) :  상 사람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僕之先(복지선) : 저의 선친께서는

非有剖符丹書之功(비유부부단서지공) : 부부나 단서를 가질 만한 공로가 없습니다

文史星歷(문사성력) : 천문·태사·율력과 같은 일을 담당하였는데

近乎卜祝之閒(근호복축지한) : 점치는 일과 비슷합니다

固主上所戲弄(고주상소희롱) :  이러한 일은 본래 천자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倡優所畜(창우소축) : 광대를 양성하는 것 같아

流俗之所輕也(유속지소경야) : 세상 사람들이 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假令僕伏法受誅(가령복복법수주) : 만약 제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음을 받는다 하더라도

若九牛亡一毛(약구우망일모) : 아홉 마리의 소리에서 털 하나 잃어버리는 것과 같고

與螻蟻何以異(여루의하이이) : 땅강아지나 개미와 같은 미천한 것이 죽는 것과 다름이 무엇이겠습니까

而世又不與能死節者(이세우불여능사절자) : 게다가 사람들은 저를 절개를 지켜 죽은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特以爲智窮罪極(특이위지궁죄극) : 생각이 모자라 죄가 극에 달해

不能自免卒就死耳(불능자면졸취사이) : 마침내 스스로 죽임에 나가 면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何也(하야) : 왜 그렇겠습니까

素所自樹立使然也(소소자수입사연야) : 평소에 스스로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人固有一死(인고유일사) :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는데

或重於太山(혹중어태산) :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或輕於鴻毛(혹경어홍모) :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 하나보다 더 가볍습니다

用之所趨異也(용지소추이야) : 이는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太上不辱先(태상불욕선) : 가장 훌륭한 죽음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其次不辱身(기차불욕신) : 그 다음이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其次不辱理色(기차불욕리색) : 그 다음은 이치에 어긋나거나 얼굴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其次不辱辭令(기차불욕사령) : 그 다음이 언사에 욕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其次詘體受辱(기차굴체수욕) : 그 다음은 무릎을 끊기고 욕 당하는 것이고

其次易服受辱(기차역복수욕) : 그 다음이 죄수복을 입고 욕 당하는 것입니다

其次關木索(기차관목색) : 그 다음이 죄인이 되어 형틀을 쓰고 밧줄로 묶여서

被箠楚受辱(피추초수욕) :  곤장을 맞으며 욕을 당하는 것이고

其次剔毛髮(기차척모발) : 그 다음이 머리를 깎이고

嬰金鐵受辱(영금철수욕) :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맞으며 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其次毁肌膚(기차훼기부) : 그 다음이 살갗을 훼손당하고

斷肢體受辱(단지체수욕) : 몸을 잘리는 욕 당하는 것이고

最下腐刑極矣(최하부형극의) : 가장 나쁜 것이 궁형을 받는 것입니다

傳曰(전왈) : 옛 책에 이르기를

刑不上大夫(형불상대부) : ‘대부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차언사절불가불면려야) : 이 말은 선비의 절개는 강제로 어쩔 수 없다는 뜻입니다

猛虎在深山(맹호재심산) :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에 있으면

百獸震恐(백수진공) : 모든 짐승이 두려워 떱니다

及在檻穽之中(급재함정지중) : 그러나 우리에 같혀 있게 되면 

搖尾而求食(요미이구식) : 꼬리나 흔들며 먹이를 구하게 되는데

積威約之漸也(적위약지점야) : 이것은 굴복 당해 호랑이의 위엄이 점점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故士有畵地爲牢(고사유화지위뢰) : 그래서 선비는 땅 위에다 선을 그어 감옥으로 삼는다 해도

勢不可入(세불가입) : 기개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削木爲吏(삭목위리) : 나무를 깎아 법관으로 삼는다 해도

議不可對(의불가대) : 논의 때문에 그 심문을 받지  않는 것이니

定計於鮮也(정계어선야) : 이것은 이미 계획된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今交手足(금교수족) : 저는 지금 손발이 묶이고

受木索(수목색) : 머리에는 형구를 쓰고

暴肌膚(폭기부) : 몸을 다 드러내고

受榜箠(수방추) : 채찍을 맞으며

幽於圜牆之中(유어환장지중) :  옥에 갖혀 있게 되었습니다

當此之時(당차지시) : 이러한 때를 당하여

見獄吏則頭槍地(견옥리칙두창지) : 옥리를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視徒隸則正惕息(시도례칙정척식) : 교도관을 보면 놀래어 가슴이 뛰는데

何者(하자) :왜 그렇겠습니까

積威約之勢也(적위약지세야) : 오랫동안 감옥에 갖힌 기세 때문입니다

及以至是(급이지시) :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言不辱者(언불욕자) : 욕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所謂强顔耳(소위강안이) :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이니

曷足貴乎(갈족귀호) :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且西伯伯也(차서백백야) : 문왕은 서백으로 계실 때

拘於羑里(구어유리) : 강리에 갇혔었고

李斯相也(이사상야) : 이사는 재상 노릇 할 때

具于五刑(구우오형) : 오형을 받았습니다

淮陰王也(회음왕야) : 회음왕은

受械於陳(수계어진) : 진 지역에서 체포되었고

彭越․張敖(彭越․장오) : 팽월과 장오는

南面稱孤(남면칭고) :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다가

繫獄抵罪(계옥저죄) : 옥에 같혔습니다

絳侯誅諸呂(강후주제려) : 강후로 봉하여진 주발은

權傾五伯(권경오백) : 여씨 일족을 평정하였으나

囚於請室(수어청실) : 청실에 같히게 되었고

魏其大將也(위기대장야) :  두영은 대장이었으나

衣赭衣(의자의) : 죄인의 옷을 입고

關三木(관삼목) : 몸에는 삼목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季布爲朱家鉗奴(계포위주가겸노) :  계포는 주씨 가문의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고

灌夫受辱於居室(관부수욕어거실) : 관부는 감옥에서 욕을 당했습니다

此人皆身至王侯將相(차인개신지왕후장상) : 이분들은 각각 황제·제후·장군·제상에 올라

聲聞鄰國(성문린국) : 이웃나라까지 명성을 떨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及罪至罔加(급죄지망가) : 그러나 죄를 지어 법에 저촉되었는데도

不能引決自裁(불능인결자재) : 우유부단하여 자결하지 못하고

在塵埃之中(재진애지중) : 세속에서 구차하게 살았습니다

古今一體(고금일체) : 이러한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니

安在其不辱也(안재기불욕야) : 어찌 욕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由此言之(유차언지) : 이로 말하건대

勇怯(용겁) : 용감한 것과 겁이 많은 것은

勢也(세야) : 정세에 좌우되는 것이고

强弱(강약) : 강하고 약한 것은

形也(형야) : 당신의 형세에 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審矣(심의) : 살피건데

何足怪乎(하족괴호) : 이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부인불능조자재승묵지외) : 범 앞에 서기전에 자결하지 못하고

以稍陵遲(이초릉지) : 우유부단하여

至於鞭箠之間(지어편추지간) : 매를 맞고서

乃欲引節(내욕인절) : 자결하겨고 하니

斯不亦遠乎(사불역원호) : 역시 너무 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고인소이중시형어대부자) : 옛 사람들이 대부에게 법을 적용할 대 신중을 기했던 까닭은

殆爲此也(태위차야) : 이러한 것을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夫人情莫不貪生惡死(부인정막불탐생악사) : 사람의 마음은 살고 싶어 하고 죽기를 꺼리며

念父母(념부모) : 부모를 생각하고

顧妻子(고처자) : 처자를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至激於義理者不然(지격어의리자불연) : 그러나 의리에 감동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乃有所不得已也(내유소불득이야) : 이는 부득이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僕不幸(금복불행) : 지금 저는 매우 불행합니다

早失父母(조실부모) : 부모님을 일직 여의고

無兄弟之親(무형제지친) : 형제도 없으며

獨身孤立(독신고립) : 홀로 되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소경시복어처자하여재) :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 대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且勇者不必死節(차용자불필사절) : 또 용감한 사람만이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怯夫慕義(겁부모의) : 유약한 사람도 능히 의를 사모하면

何處不勉焉(하처불면언) : 어찌 힘쓰지 못하하겠습니까

僕雖怯懦(복수겁나) : 제가 비록 겁이 많아

欲苟活(욕구활) : 구차하게 목숨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亦頗識去就之分矣(역파식거취지분의) : 또한 생사의 명분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하지자심익류설지욕재) : 어찌 스스로 감옥 안에 갇혀 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且夫臧獲婢妾(차부장획비첩) : 종이나 옆에서 시중드는 계집도

由能引決(유능인결) : 오리려 자결할 수 있는데

況僕之不得已乎(황복지불득이호) : 어찌 제가 할 수 없겠습니까

所以隱忍苟活(소이은인구활) : 제가 욕됨을 참고 구차히 목숨을 보존하면서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유어분토지중이불사자) : 더러운 감옥에 갇혀서도 오히려 사양하지 않은 것은

恨私心有所不盡(한사심유소불진) : 개인적인 생각을 다 표현해 내지 못했고

鄙陋沒世(비루몰세) : 비루하게 죽으면

而文采不表於後世也(이문채불표어후세야) : 후대에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古者(고자) : 예전에

富貴而名摩滅(부귀이명마멸) : 부귀하면서도 이름을 내지 못한 인물이

不可勝記(불가승기) : 수없이 많았지만

唯倜儻非常之人稱焉(유척당비상지인칭언) :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범한 인물만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蓋文王拘而演周易(개문왕구이연주역) : 문왕께서 구금되시어 주역을 풀이하셨고

仲尼厄而作春秋(중니액이작춘추) : 공자께서 곤궁하셨을 때 춘추를 저술하셨습니다

屈原放逐(굴원방축) : 굴원은 추방을 당하고서

乃賦離騷(내부이소) : 이소를 지었고

在丘失明(재구실명) : 좌구명은 눈이 먼 후에

厥有國語(궐유국어) : 국어를 편찬했습니다 답답하고

孫子臏脚(손자빈각) : 손자는 다리를 잘린 후에

兵法脩列(병법수열) : 병법을 논했고

不韋遷蜀(불위천촉) : 여불위가 촉으로 쫓겨난 뒤에

世傳呂覽(세전여람) : 여씨춘추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韓非囚秦(한비수진) : 한비는 진나라에 갇힌 뒤에

說難孤憤(설난고분) : 세난과 고분을 지었고

詩三百篇(시삼백편) : 시경 300편도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대저성현발분지소위작야) : 대개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此人皆意有鬱結(차인개의유울결) : 이러한 분들은 뜻이 있었으나 막혀 답답하고

不得通其道(불득통기도) : 자기의 견해와 도리를 전할 방법이 없어

故述往事(고술왕사) : 지난 일을 서술하여

思來者(사래자) : 후인들을 생각하였습니다

乃如左丘無目(내여좌구무목) : 좌구명은 눈이 멀고

孫子斷足(손자단족) : 손자는 다리를 잘려

終不可用(종불가용) : 끝내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자

退而論書策(퇴이논서책) : 물러나 책을 써서

以舒其憤(이서기분) : 마음속의 울분을 풀고

思垂空文以自見(사수공문이자견) :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僕竊不遜(복절불손) : 요즈음 저는 불손하게도

近自託於無能之辭(근자탁어무능지사) : 쓸 줄 모르는 문장에 기탁하여

網羅天下放失舊聞(망라천하방실구문) : 예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누락된 이야기를 망라하여

略考其行事(약고기행사) : 간략하게 고증하고

綜其終始(종기종시) : 시작과 결말을 종합하여

稽其成敗興壞之紀(계기성패흥괴지기) : 성공·실패·흥성·쇠망의 이치를 고찰하고자 했습니다

上計軒轅(상계헌원) : 그리하여 위로는 현원에서

下至于玆(하지우자) :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爲十表(위십표) : 표 10편

本紀十二(본기십이) : 본기 12편

書八章(서팔장) : 서 8장

世家三十(세가삼십) : 세가 30편

列傳七十(열전칠십) : 열전 70편 등

凡百三十篇(범백삼십편) : 도합 130편을 지어

亦欲以究天人之際(역욕이구천인지제) : 천도와 인사의 관계를 궁구하고

通古今之變(통고금지변) : 고금의 변화를 살펴

成一家之言(성일가지언) : 일가의 문장을 이루려 했습니다

草創未就(초창미취) : 그러나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會遭此禍(회조차화) :  이런 재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惜其不成(석기불성) : 이 일을 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是以就極刑而無慍色(시이취극형이무온색) : 애비록 극형을 당했으나 노기를 띠지 않은 것은 석히 여겨

僕誠以著此書(복성이저차서) : 제가 이 책을 저술하여

藏諸名山(장제명산) : 명산에 간직해 두었다가

傳之其人(전지기인) :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에게 전하여

通邑大都(통읍대도) : 모든 고을과 도시에 알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則僕償前辱之責(칙복상전욕지책) : 이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욕됨을 참고 자결하지 않았다는 책망을 보상받게 될 것이다

雖萬被戮(수만피륙) : 비록 수만 번 죽임을 당해도

豈有悔哉(기유회재) : 어찌 후회스러움이 있겠습니까

然此可爲智者道(연차가위지자도) : 그러나 슬기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지만

難爲俗人言也(난위속인언야) : 일반 사람에게는 하기 어렵습니다


且負下未易居(차부하미역거) :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어려우며

下流多謗議(하류다방의) : 천박한 사람은 비방받기가 쉬운 법입니다

僕以口語遇遭此禍(복이구어우조차화) :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重爲鄕里所戮笑(중위향리소륙소) :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以汙辱先人(이오욕선인) : 조상을 욕되게 했으니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역하면목복상부모구묘호) : 무슨 명목으로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가겠습니까

雖累百世(수루백세) : 수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垢彌甚耳(구미심이) : 수치만 더 심해질 뿐입니다

是以腸一日而九迴(시이장일일이구회) : 이로 인하여 근심스런 마음이 하루에도 수없이 생기고

居則忽忽若有所亡(거칙홀홀약유소망) : 집에 있으면 정신이 몽룡하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으며

出則不知其所往(출칙불지기소왕) : 문을 나서며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每念斯恥(매념사치) :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汗未嘗不發背沾衣也(한미상불발배첨의야) : 등에서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십니다

身直爲閨閤之臣(신직위규합지신) : 환관과 같은 신하가 되었으니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영득자인어심장암혈사) : 어찌 스스로 은거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故且從俗浮沈(고차종속부심) :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과

與時俯仰(여시부앙) : 시대의 파고를 따라

以通其狂惑(이통기광혹) : 행동하며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습니다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금소경내교이추현진사) : 지금 소경께서 저에게 현인을 추천하라고 하셨는데

無乃與僕私心刺謬乎(무내여복사심자류호) :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반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금수욕자조탁만사이자식) : 지금 비록 제가 미사여구로 제 자신을 숨다 해도,

無益於俗(무익어속) :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不信(불신) : 사람들도 불신할 것이니

適足取辱耳(적족취욕이) : 도리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취할 뿐입니다

要之(요지) :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死日然後是非乃定(사일연후시비내정) : 죽은 후에나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입니다

書不能悉意(서불능실의) : 글로써는 저의 생각을 다 쓸 수 없어

略陳固陋(약진고루) : 비루한 생각을 간략하게 적는 바입니다

謹再拜(근재배) : 삼가 재배드립니다.



출처: http://hwalove.tistory.com/entry/卷五-15報任少卿書-司馬遷 [빈막(賓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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