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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C44 – 북학의 (北學議) / 박제가(朴齊家, 1750~1815)

C44 – 북학의 (北學議) / 박제가(朴齊家, 1750~1815)

 (출전: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개혁사상가였던 박제가의 경제적 구국의 방책과 국가의 부강책을 담은 기행문적 대문장. 박제가는 이 책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리학적 명분론과 도덕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청의 문물제도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상공업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박제가의 사상은 성호학파의 토지경제 사상과는 또 다른 실학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절약보다 소비가 생산을 촉진시킨다는 박제가의 상업관은 소비가 곧 미덕임을 내세운 케인즈의 이론을 연상케하는,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우부승지를 지낸 박평의 서자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시. 서. 화에 뛰어나 문명을 떨쳤으나, 조선시대의 신분차별은 그의 출세길을 막고 있었다. 10살 때 부친의 죽음으로 인해 모친은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매를 키워 나갔다. 그는 그림. 글씨 그리고 시로써 자신의 처지를 달래곤 했는데 중국의 불운한 시인 굴원의 이소경을 읽곤 했다 한다. 

 소년시절부터 날린 그의 명성으로 19세 때부터는 박지원 등의 북학파들과 교유할 수 있었는데,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실의 비리를 알게 되었고 경구치세의 학문에 눈을 떴다. 그는 국가개혁을 시도했던 신라의 최치원, 조선의 조헌을 추앙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 당시 유교적 절대 계몽군주인 정조는 학풍을 진작시키고 국가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규장각(현재 창덕궁 내 비원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부용정 맞은편에 위치)을 설치했는데, 정조는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등 실력있는 서자들을 규장각의 검서 직책에 등용하여 학문적 보좌를 받았다. 이에 박제가는 규장각에 소장된 책들을 밤낮 없이 읽어가며 동료들과 토론을 즐겼다. 이후 13년간 임금을 보좌하면서, 지나친 독서로 시력을 잃기도 했다. 그는 규장각에 들기 전인 29세 때(1778)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중국을 다녀온 것을 포함하여 모두 4차례나 청을 방문했다. 이때 청의 이주원. 반정균 등과 사귀며 식견을 넓혔으며, 처음 방문 후 이용후생을 위한 방략으로 북학의를 저술하였다. 그는 정조에게 양반. 유학자들을 도태시켜 생산계층으로 전환시키고, 상공업의 국가적 장려를 통해 부국을 꾀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국가정책으로 시행되기에는 보수세력의 벽이 너무 두꺼웠다. 

 그러나 두 차례나 그의 북학이론에 관심을 보여주었던 정조는 그를 부여현감이라는 외직으로 돌리고, 49세 때 북학의를 간추려 올리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박제가는 진북학의를 올렸다. 하지만 정조가 죽자 상황은 반전되어 안동김씨들은 정조의 측근 세력인 남인 시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으면서 천주교를 구실로 반대편을 탄압하였다. 그 와중에서 박제가도 4년간의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유배에서 풀려난 지 한달 후, 나라의 부강을 위해 중상주의를 제창했던 개혁자 박제가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하게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b. 실학사상

 조선 후기에 발생한 실학의 학문적 성격과 실학파들의 사상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의 이익과 정약용 편에서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실학파 중에서도 박제가와 그 주변인물들이 주장했던 상공업 중심의 부국안민론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농촌의 건전한 발전을 토대로 한 사회개혁을 주장한 경세치용학파(유형원. 이익. 정약용)와는 달리, 서울의 도심적 분위기에서 자란 일파는 상공업의 발전을 통하여 사회의 번영을 이룩해보려는 이용후생의 학문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실학의 새로운 발전모습인데, 이것을 북학(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유래)이라고도 한다. 

 이용후생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유수원이 있는데, 그의 저술인 우서에서 문답의 형식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박지원을 들 수 있는데, 그가 지은 열하일기는 1780년에 청나라로 가는 사신을 수행했을 때의 여행기로서 그 문물의 소개를 통하여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홍대용은 청에 다녀온 후 연기라는 기행문을 썼고, 특히 실옹과 허자의 문답형식으로 우주와 인간의 문제 등을 논한 그의 의산문답은 많은 주목을 끌었다. 

 이들과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박제가와 이덕무도 각기 청에 갔던 견문을 쓴 북학의와 연기가 있는데, 특히 북학의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항목별로 그 시대가 당면한 제반문제의 개혁을 언급한 명저다. 이들은 대체로 청의 수도인 연경(북경, 베이징)에 다녀온 일이 있어 그 기행문을 남기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보고 들은 청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청의 문화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북학자들의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청의 문화에 대한 예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개혁에 대한 강한 의욕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저서에는 당시의 양반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양반유학자를 비판하는 반면에 상공업이나 농업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상공업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술향상으로 생산을 촉진시키고, 수레나 배와 같은 교통수단을 발전시켜 국내외에 있어서의 상품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경쟁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공업은 신분적 차별 없이 이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균등한 교육에 의해 직업적 관리를 양성하여, 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상적 관료기구를 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신분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른 분업을 실시하여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c. 북학의의 내용

 본서는 내편과 외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에서는 청의 차. 선. 도로. 교량. 목축. 시정 등 생활주변의 기구. 시설 등의 문제를 39개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우리도 빈곤을 벗어나서 부강하게 살려면 이와 같은 청의 문물제도를 배워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외편에서는 밭거름. 뽕. 농잠총론. 과거론. 재부론. 병론 등 17항의 정책과 제도에 관한 것을 수록하여 농업정책을 개선하고 선박을 이용해서 해외 여러 나라와 무역하여 국가의 부강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제가는 북학의 서문에서 청의 습속 중에서 우리 나라에서 시행할 만한 것과 날마다 쓰기에 편리한 것을 듣고 보는 대로 적고, 이로운 것과 폐가 되는 것을 논한 다음, 맹자가 진량에 대해 말한 것을 본따서 북학의라 이름한다고 밝히고 있다. 진량은 전국시대에 남중국에 살았던 농본주의자로, 북중국의 공자 학문을 배우겠다는 뜻으로 북학이라 했는데, 박제가는 청의 문화를 배운다는 뜻으로 북학 이라 이름한 것 같다. 


   상업의 중요성

  내편의 시정항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상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현재 논자들은 백성들이 오직 상리만을 숭상하는데, 모든 백성을 귀농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상업은 사민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사농고의 유무를 상통시키는 것이니, 상업은 1/4 이상이 된다. 어민은 고기를 잡으면서 농업에 종사할 수 없고, 협민은 나무하면서 농업에 종사할 수 없다. 이제 모든 백성들이 농업에만 종사한다면 농민의 생활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종래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절약과 근검을 배격하였다. 즉, 쓸 줄 모르면 생산할 줄 모르고, 생산할 줄 모르면 민생은 더욱 피폐해진다고 하면서 상업과 농업 및 수공업의 유기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재물은 샘물과 같다. 퍼내면 차 있고 버려두면 마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단옷을 입지 않으면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어 여공이 적어지고,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기교를 좋아하지 않으면 공장과 도야의 일이 없어져 기술과 재주도 사라지게 된다. 또 농사가 황폐해서 농법을 잃고 상리가 박하여 그 업을 잃으면 사민이 모두 곤궁해져서 서로 유기적인 협조가 무너진다. 

 그는 상업이 발달하려면 차선과 도로를 개선하고 교통을 편리하게 한 후, 물자의 거래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차선 항에서 그는 이 교통수단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보급시킬 것을 역설하고, 교통이 발달되면 전국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상품유통이 활발해지고 물가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화폐의 유통이 촉진된다고 보았다. 또 서양의 중상주의처럼 수입을 제한하고 수출장려를 강조하였으며, 상품규격을 통일하고, 금은의 축적이 국부의 기초이므로 은의 해외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무역의 중요성

  외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통상을 통하여 개국할 것을 주장한 통강남 절강상박의(通江南浙江商舶議)항이다. 쇄국시대에 개국을 부르짖은 이 글은 청과 통상을 시작하여 결국엔 해외 여러 나라와 통상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서해안에 무역항을 개설하여 밀무역을 양성화시키고, 중국의 산동 방향과 절강. 광동 등 남중국의 물자 집산지와 무역을 하고, 더 국력이 자라게 되면 그 대상국을 확장시켜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와도 통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역항에서는 외국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통상활동에 필요한 중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를 사대부에게 습득시키라 하고, 아울러 외국무역의 이점까지도 덧붙였다. 생활의 개선과 외국무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농업과 수공업을 통한, 질적으로 우수하고 양적으로 충분한 상품생산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것을 위해 그는 강력한 국가적 후원 아래 발달된 청나라의 농업. 수공업기술과 도구를 받아들여, 서울 주변에서 농업시험장과 철공소를 두어 새로운 농. 공업기술을 연구. 보급하여야 하며, 국가의 지원 아래 상품의 대량생산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론만이 아니고 그는 몸소 생활필수품의 제조기술과 영농방법을 직접 연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선백성들의 고식적인 의식구조를 개조하고, 번거로운 습속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전통적인 주자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풍수지리설 따위의 허위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상에서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논술한 국내상업 및 외국무역의 장려. 수입금지 및 수출장려. 은의 해외유출 금지, 대량생산, 제품규격의 규제, 전국적 시장확대, 농공상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후원에 대한 견해는 서구의 중상주의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d. 사상적 평가

  북학의를 읽다 보면 두 가지 점이 거슬린다. 첫째는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되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고려하는 지혜가 부족하고, 또 하나는 중국문화에 심취한 나머지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배워야만 중국문화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비주체적인 입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점 때문일 것이다.

 첫번째는 과거제도. 국방제도 등 부국강병을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사회구원의 의지를 밝힌 점이다. 그는 북학의 서문에서 지금 백성의 생활이 날마다 곤궁해지고 나라의 재물이 날마다 궁핍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소매에 손만 끼고 앉아서 이를 구하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통탄하고 있다. 

 두번째는 근대지향성을 들 수 있다. 상공업의 발달, 금속화폐의 유통촉진, 신분제의 해소, 외국무역의 강화, 문호개방 등은 19세기 후반의 개화사상가인 박규수. 김옥균 등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우리 나라 개화사상에 미친 영향이 크다.

 세번째는 피지배 대중의 이익을 대변한 사상이라는 점이다. 지배계층의 원리인 성리학이 강조하던 수기치인의 범위를 넘어, 정치. 경제. 군사 등 각 분야에서 민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피지배계층의 이익을 신장시키기 위한 각종 이론을 제시한 점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현실개혁적 조처들이 한때 정조의 관심을 끌었으나, 그것이 현실정치 속에 구현되기에는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이 너무 집요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또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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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騷經(이소경)-屈原(굴원)


이별의 우수


 


帝高陽之苗裔兮(제고양지묘예혜) : 고양 임금의 후예이며

朕皇考曰伯庸(짐황고왈백용) : 내 아버지는 백용이라 하신다.

攝提貞于孟陬兮(섭제정우맹추혜) : 인녕의 정월달

惟庚寅吾以降(유경인오이강) : 겅인 일에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皇覽揆余初度兮(황람규여초도혜) : 아버지는 나를 낳은 때를 헤아려

肇錫余以嘉名(조석여이가명) : 나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셨으니

名余曰正則兮(명여왈정칙혜) : 이름은 “정칙”이라 하고

字余曰靈均(자여왈령균) : 자는 “영균”이라 하셨다.

紛吾既有此內美兮(분오기유차내미혜) : 게다가 나는 고운 성품을 지녔고

又重之以脩能(우중지이수능) : 또 그 위에다 훌륭한 재능을 닦았다.

扈江離與辟芷兮(호강리여벽지혜) : 강리와 벽지를 몸에 걸치고

紉秋蘭以為佩(인추란이위패) : 추란을 꿰어서 놀이개를 만들어 몽에 찬다.

汩余若將不及兮(율여약장불급혜) : 바삐 나는 쫓기는 듯 

恐年歲之不吾與(공년세지불오여) :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가 두려워

朝搴阰之木蘭兮(조건비지목란혜) : 아침에는 언덕의 목란을 캐고

夕攬洲之宿莽(석람주지숙망) : 저녁에는 섬의 숙모를 캐노라.

日月忽其不淹兮(일월홀기불엄혜) : 세월은 쉼 없이 흘러

春與秋其代序(춘여추기대서) : 봄과 가을이 교대로 바뀌어 

惟草木之零落兮(유초목지령락혜) : 초목이 시들어 떨어지니

恐美人之遲暮 (恐美人之遲暮 ) : 임이 내게 늦게 오심이 두려워진다.

不撫壯而棄穢兮(불무장이기예혜) : 젊고 건강할 동안에 더러움을 버리지 않고

何不改此度(하불개차도) : 어찌 이것을 고치지 않으실까?

乘騏驥以馳騁兮(승기기이치빙혜) : 준마 타고 달리시면 

來吾道夫先路 (來吾道夫先路 ) : 나는 앞길을 안내 하리라.

昔三后之純粹兮(석삼후지순수혜) : 옛 삼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덕행이여

固眾芳之所在(고중방지소재) : 정말로 많은 꽃이 있는 곳이라.

雜申椒與菌桂兮(잡신초여균계혜) : 신초와 군계가 섞여 있어

豈維紉夫蕙茞(기유인부혜茞) : 어찌 혜초와 백지만 꿰었으랴.

彼堯舜之耿介兮(피요순지경개혜) : 저 요순의 빛나는 덕행이여

既遵道而得路(기준도이득로) : 이미 도리를 쫓아 제 길을 얻었니.

何桀紂之猖披兮(하걸주지창피혜) : 어찌 걸왕과 주왕의 창피스런 행동이fi

夫唯捷徑以窘步(부유첩경이군보) : 오직 지름길로만 허둥대는가?

惟夫黨人之偷樂兮(유부당인지투악혜) : 즐거움만 탐하는 무리여

路幽昧以險隘(로유매이험애) : 길이 어둡고 험난해도

豈余身之憚殃兮(기여신지탄앙혜) : 어찌 내 일신의 재앙만 꺼리랴.

恐皇輿之敗績(공황여지패적) : 임금님 수레 엎어질까 두려워라.


忽奔走以先後兮(홀분주이선후혜) : 바삐 달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及前王之踵武(급전왕지종무) : 선왕의 뒤를 따른다.

荃不察余之中情兮(전불찰여지중정혜) : 임은 내 마음속을 살피지도 않고

反信讒而齌怒(반신참이제노) : 도리어 모함만 믿고 화를 내신다.

余固知謇謇之為患兮(여고지건건지위환혜) : 나는 직언이 해로움이 됨을 알고서도

忍而不能舍也(인이불능사야) : 차마 버려둘 수가 없다.

指九天以為正兮(지구천이위정혜) : 맹세코 하늘은 아시리라.

夫唯靈脩之故也(부유령수지고야) : 오직 수행의 까닭임을

曰黃昏以為期兮(왈황혼이위기혜) : “황혼으로 약속으로 정한다”하더니

羌中道而改路(강중도이개로) : 낮에 중도에서 길을 고치셨다.

初既與余成言兮(초기여여성언혜) : 처음에는 내게 약속하시더니

後悔遁而有他(후회둔이유타) : 나중에 돌아서 딴 마음 가지실 줄이야

余既不難夫離別兮(여기불난부리별혜) : 나는야 이별이 어렵지 않지만

傷靈脩之數化(상령수지수화) : 임의 잦은 이별에 가슴 아파라.


余既滋蘭之九畹兮(여기자란지구원혜) : 나는 이미 구원의 난초를 기르고

又樹蕙之百畝(우수혜지백무) : 또 백무의 혜초도 심었다.

畦留夷與揭車兮(휴류이여게차혜) : 유이와 게차를 밭두둑으로 나누고

雜杜衡與芳芷(잡두형여방지) : 두형과 방지도 섞어 심었노라.

冀枝葉之峻茂兮(기지엽지준무혜) :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기를 바라고 

願俟時乎吾將刈(원사시호오장예) : 때 기다려 나는 베려했더니

雖萎絕其亦何傷兮(수위절기역하상혜) : 시들어버린들 그 무엇이 슬프랴.

哀眾芳之蕪穢(애중방지무예) : 수많은 꽃향기가 잡초에 묻혀 슬퍼도다.


眾皆競進以貪婪兮(중개경진이탐람혜) : 많은 사람들 다투어 탐욕을 부린다.

憑不猒乎求索(빙불염호구색) : 만족하지 못 하여 탐색한다.

羌內恕己以量人兮(강내서기이량인혜) : 내 마음 속 밝히듯 남을 생각함이여

各興心而嫉妒(각흥심이질투) : 각자 마음 속에 이는 마음 질투이어라.

忽馳騖以追逐兮(홀치무이추축혜) : 바쁘게 달려 쫓아감이여

非余心之所急(비여심지소급) : 내 마음에 절실한 것은 아니다.

老冉冉其將至兮(로염염기장지혜) : 늙음이 천천히 장차 다가옴이여

恐脩名之不立(공수명지불립) : 훌륭한 이름 남기지 못할까 두렵다.

昭飲木蘭之墜露兮(소음목란지추로혜) : 아침엔 목란에 구르는 이슬 먹고

夕餐秋菊之落英(석찬추국지락영) :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지는 꽃잎 먹는다.

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구여정기신과이련요혜) : 내 마음 정말 곱고 뛰어나면

長顑頷亦何傷(장함함역하상) : 오랫동안 조금 초췌한들 어찌 마음이 상하겠는가?

攬木根以結茞兮(람목근이결채혜) : 나무뿌리 캐어서 백지를 묶어

貫薜荔之落蕊(관벽려지락예) : 벽려의 뜰어진 꽃술을 꿰어서 

矯菌桂以紉蕙兮(교균계이인혜혜) : 균계를 바루어 혜초를 엮노라.

索胡繩之纚纚(색호승지리리) : 호승으로 꼬아 만든 어여쁜 끈

謇吾法夫前脩兮(건오법부전수혜) : 아, 나는 그 옛날 현인을 본받음이여

非世俗之所服(비세속지소복) : 세속의 옷도 아니어서

雖不周於今之人兮(수불주어금지인혜) : 요즈음 사람에게는 맞지 않아도

願依彭咸之遺則(원의팽함지유칙) : 팽함이 남긴 법도를 따르리라.


長太息以掩涕兮(장태식이엄체혜) : 긴 한숨에 눈물 가림이여

哀民生之多艱(애민생지다간) : 백성의 삶에 어려움 많음이 슬프다.

余雖好脩姱以鞿羈兮(여수호수과이기기혜) :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받는 속박이여

謇朝誶而夕替(건조수이석체) : 아, 아침에 간하고 저녁에 쫓겨났다.

既替余以蕙纕兮(기체여이혜양혜) : 내가 쫓겨남은 혜초 띠 때문이라

又申之以攬茞(우신지이람茞) : 또 게다가 남채 때문 

亦余心之所善兮(역여심지소선혜) : 또한 내 마음의 착함이여 

雖九死其猶未悔(수구사기유미회) : 아홉 번 죽더라도 후회 없으리라.

怨靈脩之浩蕩兮(원령수지호탕혜) : 원망스러워라 임의 분별없음이여

終不察夫民心(종불찰부민심) : 끝내 백성의 마음을 살피지 않으십니다.

眾女嫉余之蛾眉兮(중녀질여지아미혜) : 여러 계집들 내 고운 눈썹을 질투하여

謠諑謂余以善淫(요착위여이선음) : 나를 음란하다고 헐뜯는다.

固時俗之工巧兮(고시속지공교혜) : 진정 요즈음 세속의 공교함이여

偭規矩而改錯(면규구이개착) : 그림쇠 버리고 마음대로 고쳐버린다.

背繩墨以追曲兮(배승묵이추곡혜) : 먹주을 버려두고 굽은 길 따라

競周容以為度(경주용이위도) : 다투어 비위 맞추는 것을 길로 삼는다.

忳鬱邑余侘傺兮(돈울읍여차제혜) : 우수에 쌓여 나는 실의한 속에서

吾獨窮困乎此時也(오독궁곤호차시야) : 나만 이 세상이 괴로우니

寧溘死以流亡兮(녕합사이류망혜) : 차라리 죽어 물에 흘러 없어질지언정

余不忍為此態也(여불인위차태야) : 나는 차마 이런 짓 할 수가 없다.

鷙鳥之不群兮(지조지불군혜) : 새매가 무리짓지 않음이여

自前世而固然(자전세이고연) : 전세부터 본래 그러 했었다. 

何方圜之能周兮(하방환지능주혜) : 어찌 네모와 동그라미가 맞을까?

夫孰異道而相安(부숙이도이상안) : 그 누가 길이 다른데도 서로 편안할 수 있으랴

屈心而抑志兮(굴심이억지혜) : 마음 굽히고 뜻 억눌림이여

忍尤而攘詬(인우이양후) : 허물 참고 꾸짖음을 물리친다.

伏清白以死直兮(복청백이사직혜) : 청백함에 굴복하고 정직함으로 죽음이여

固前聖之所厚(고전성지소후) : 진실로 옛 성인의 두터운 마음이라.

悔相道之不察兮(회상도지불찰혜) : 길을 잘 살피지 못함을 후회하여

延佇乎吾將反(연저호오장반) : 머뭇거리며 나는 돌아가려한다.

回朕車以復路兮(회짐차이부로혜) : 내 수레를 돌려 내 길로 돌아감이여

及行迷之未遠(급행미지미원) : 잘 못 던 길 더 멀어지기 전에

步余馬於蘭皋兮(보여마어란고혜) : 내 말을 난초 우거진 못에 거닐게 하고

馳椒丘且焉止息(치초구차언지식) : 산초 언덕을 달리게 하려 여기 잠깐 쉬게 하리라.

進不入以離尤兮(진불입이리우혜) : 나아가 들어가지 못하고 허물만 당함이여

退將復脩吾初服(퇴장부수오초복) : 물러나 다시 내 처음 옷을 가다듬으리라.


製芰荷以為衣兮(제기하이위의혜) : 마름과 연잎으로 옷을 지어 저고리 만듦이여

集芙蓉以為裳(집부용이위상) : 부용을 모야 치마 만든다.

不吾知其亦已兮(불오지기역이혜) :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 또한 그만이어랴.

苟余情其信芳(구여정기신방) : 진실로 내 마음 향기로우면 

高余冠之岌岌兮(고여관지급급혜) : 내 갓을 우뚝 높임이고

長余佩之陸離(장여패지륙리) : 내 노리개 길게 늘이리

芳與澤其雜糅兮(방여택기잡유혜) : 향기와 악취 섞여 얽혀도

唯昭質其猶未虧(유소질기유미휴) : 오직 맑은 성품 이지러지지 않으리라.

忽反顧以遊目兮(홀반고이유목혜) : 문득 고개 돌려 돌아보며 

將往觀乎四荒(장왕관호사황) : 사방 거친 곳으로 찾아가 보리라.

佩繽紛其繁飾兮(패빈분기번식혜) : 노리개 번화하게 꾸미며 차니

芳菲菲其彌章(방비비기미장) : 향기가 물씬 풍겨 가득하다.

民生各有所樂兮(민생각유소악혜) : 사람의 삶에 저마다 좋아하는 것 있음이여

余獨好脩以為常(여독호수이위상) : 나는 착함이 좋아 법도로 삼고

雖體解吾猶未變兮(수체해오유미변혜) : 비록 내 몸이 찢겨져도 변하지 않으리니

豈余心之可懲(기여심지가징) : 어찌 내 마음 두려움 있으랴.


女嬃之嬋媛兮(녀수지선원혜) : 누님은 마음에 꺼려함이여

申申其詈予(신신기리여) : 거듭거듭 나를 꾸짖기를

曰鯀婞直以亡身兮(왈곤행직이망신혜) : “곤은 강직해서 몸을 망쳐

終然殀乎羽之野(종연요호우지야) : 끝내는 우산 들팡에서 요절한다“고 하니

汝何博謇而好脩兮(여하박건이호수혜) : 너는 어찌 충간함을 좋아하고 착함을 좋아하여

紛獨有此姱節(분독유차과절) : 혼자만 이런 좋은 절개를 지녔는가?

薋菉葹以盈室兮(자록시이영실혜) : 납가세, 조개풀, 도꼬마리 방안에 가득함이여

判獨離而不服(판독리이불복) : 판연히 혼자만 떨어져 복종하지 아니 한다.

眾不可戶說兮(중불가호설혜) : 많은 사람을 일일이 설득할 수 없음이여

孰云察余之中情(숙운찰여지중정) : 누가 우리 마음속을 살펴줄까?

世並舉而好朋兮(세병거이호붕혜) : 세상은 온통 패거리만 좋아함이여

夫何煢獨而不予聽(부하경독이불여청) : 그 어찌 외로이 혼자 내 말을 듣지 않을까?


依前聖以節中兮(의전성이절중혜) : 엣 성인 따라서 중정을 행하여

喟憑心而歷玆(위빙심이력자) : 아, 마음대로 이 세상 다니면서

濟沅湘以南征兮(제원상이남정혜) : 원수와 상수를 건너 남으로 가서

就重華而敶詞(취중화이진사) : 중화님께 나아가 말씀 올리리나.

啟九辯與九歌兮(계구변여구가혜) : 게는 구변과 구가를 얻었지만

夏康娛以自縱(하강오이자종) : 하나라 왕들은 즐기며 스스로 방탕하여

不顧難以圖後兮(불고난이도후혜) : 환난을 돌아보아 뒷날을 도모하지 않아

五子用失乎家巷(오자용실호가항) : 다섯 아들은 집을 잃고 헤매고 다니누나 

羿淫遊以佚畋兮(예음유이일전혜) : 후에는 방탕하여 돌아다니며 사냥에 빠져

又好射夫封狐(우호사부봉호) : 또한 활쏘기를 좋아하여 여우만 기르네.

固亂流其鮮終兮(고란류기선종혜) : 본래 음란한 기풍은 좋은 결과 더무니

浞又貪夫厥家(착우탐부궐가) : 한착이 또 그 아내를 탐하였다. 

澆身被服強圉兮(요신피복강어혜) : 요는 몸이 굳세고 힘이 장사여서

縱欲而不忍(종욕이불인) : 욕심을 따라 참지 못하여

日康娛而自忘兮(일강오이자망혜) : 날마다 즐겨 자신을 잊었다.

厥首用夫顛隕(궐수용부전운) : 그리하여 그 목이 잘려 떨어졌다.

夏桀之常違兮(하걸지상위혜) : 하나라 걸왕은 항상 도리에 어긋나 

乃遂焉而逢殃(내수언이봉앙) : 마침내 재앙을 만났다.

后辛之菹醢兮(후신지저해혜) : 신임금은 인육을 소금에 절이어 

殷宗用而不長(은종용이불장) : 은 왕조 오래가지 못하였네.

湯禹儼而祗敬兮(탕우엄이지경혜) : 탕왕과 우왕 존엄하고 공경스러웠다.

周論道而莫差(주론도이막차) : 주나라는 도리어 도를 논하고 어긋남이 없어

舉賢而授能兮(거현이수능혜) : 현인을 천거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어

循繩墨而不頗(순승묵이불파) : 보도 따라 치우침이 없었네.

皇天無私阿兮(황천무사아혜) : 하늘은 사사로움 없어서

覽民德焉錯輔(람민덕언착보) : 백성의 덕 보시고 도울 사람 내리시니

夫維聖哲之茂行兮(부유성철지무행혜) : 성인과 철인의 거룩한 행동에 달려있다.


苟得用此下土(구득용차하토) : 진실로 이 세상 땅을 차지할 수 있으니

瞻前而顧後兮(첨전이고후혜) : 앞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아

相觀民之計極(상관민지계극) : 백성의 갈 길을 살핀다.

夫孰非義而可用兮(부숙비의이가용혜) : 누가 의롭지 않은데 쓰여지며

孰非善而可服(숙비선이가복) : 누가 착하지 않고서 감복시킬 수 있을까?

阽余身而危死兮(점여신이위사혜) : 내 몸 위태로워 죽을 지라도

覽余初其猶未悔(람여초기유미회) : 나의 처음 뜻 보고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았다.

不量鑿而正枘兮(불량착이정예혜) : 도끼 구멍도 헤아리지 않고 자루 맞추어

固前脩以菹醢(고전수이저해) : 정말로 옛 현인 소금에 절여졌다. 

曾歔欷余鬱邑兮(증허희여울읍혜) : 거듭 흐느껴지고 가슴 메인다.


哀朕時之不當(애짐시지불당) : 네가 때를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고

攬茹蕙以掩涕兮(람여혜이엄체혜) : 두약과 혜초를 뜯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도 

霑余襟之浪浪(점여금지랑랑) : 내 옷깃을 적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네

跪敷衽以陳辭兮(궤부임이진사혜) : 무릎 꿇고 옷섶을 펼치고 말씀을 올려

耿吾既得此中正(경오기득차중정) : 환하게 나는 이미 중정을 얻었다.

駟玉虯以乘鷖兮(사옥규이승예혜) : 네 마리 흰 규룡에 봉황수레 타고

溘埃風余上征(합애풍여상정) : 바람에 티끌 날리며 올라간다.

朝發軔於蒼梧兮(조발인어창오혜) : 아침에 창오를 떠나 저녁에 현포에 이르러

夕余至乎縣圃(석여지호현포) : 잠시 이곳 천문에 와

欲少留此靈瑣兮(욕소류차령쇄혜) : 이곳 영쇄에 잠시 머물려하나?

日忽忽其將暮(일홀홀기장모) : 날이 벌써 저물려 한다.

吾令羲和弭節兮(오령희화미절혜) : 나는 희화에게 속력을 늦추게 하여

望崦嵫而勿迫(망엄자이물박) : 엄자산 쪽으로 접근하지 않게 하고

路曼曼其脩遠兮(로만만기수원혜) : 길은 까마득하고 멀어서

吾將上下而求索(오장상하이구색) : 나는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찾아다닌다.

飲余馬於咸池兮(음여마어함지혜) : 나의 말에게 함지에서 물을 먹이고 

總余轡乎扶桑(총여비호부상) : 고삐를 부상에 매어놓고 

折若木以拂日兮(절약목이불일혜) : 약목을 꺾어서 해를 털어내고

聊逍遙以相羊(료소요이상양) : 잠시 거닐며 배회하노라

前望舒使先驅兮(전망서사선구혜) : 앞에는 망서를 길잡이 삼고

後飛廉使奔屬(후비렴사분속) : 뒤에는 비렴을 따라오게 하여

鸞皇為余先戒兮(란황위여선계혜) : 난새와 봉황새 나를 위해 앞길을 지키는데

雷師告余以未具(뢰사고여이미구) : 천둥의 신은 내게 준비가 덜 되었다 한다.


吾令鳳鳥飛騰兮(오령봉조비등혜) : 나는 봉황새를 높이 날게 하여

繼之以日夜(계지이일야) : 밤낮으로 계속 날아간다.

飄風屯其相離兮(표풍둔기상리혜) : 회오리바람은 불어 모였다가 흩어지고

帥雲霓而來御(수운예이래어) : 구름과 무지개를 맞이해 이끌어온다.

紛總總其離合兮(분총총기리합혜) : 자욱이 몰려들었다가 떨어져나간다. 

斑陸離其上下(반륙리기상하) : 자욱이 떨어지며 상하로 오르락내리락 한다.

吾令帝閽開關兮(오령제혼개관혜) : 내가 하늘 문지기에게 문 열어달라고 하니 

倚閶闔而望予(의창합이망여) : 천문에 기대어 나를 바라본다.

時曖曖其將罷兮(시애애기장파혜) : 때는 어둑어둑 해가 지려하는데

結幽蘭而延佇(결유란이연저) : 그윽한 남초에 묶이어 우두커니 서있다.

世溷濁而不分兮(세혼탁이불분혜) : 세상은 혼탁해 분별이 없고

好蔽美而嫉妒(호폐미이질투) : 미덕은 가려지고 시기질투만 한다.


朝吾將濟於白水兮(조오장제어백수혜) : 아침에 나는 백수를 건너려하네

登閬風而繫馬(등랑풍이계마) : 낭풍산에 올라 말을 매어놓고

忽反顧以流涕兮(홀반고이류체혜) : 문득 돌아보니 눈물이 흘러내린다.

哀高丘之無女(애고구지무녀) : 높은 언덕에 여자 없음이 서러워하며 

溘吾遊此春宮兮(합오유차춘궁혜) : 곧 나는 이러한 봄날의 궁전에 노닌다.

折瓊枝以繼佩(절경지이계패) : 보석 같은 꽃가지 꺾어서 노리개에 이어서 

及榮華之未落兮(급영화지미락혜) : 이 화려한 꽃이 시들기 전에 

相下女之可詒(상하녀지가이) : 이 꽃을 바칠 하계의 여자를 찾으리라.

吾令豐隆乘雲兮(오령풍륭승운혜) : 나는 풍륭을 시켜서 구름을 탄다.


求宓妃之所在(구복비지소재) : 복비가 있는 곳을 찾아

解佩纕以結言兮(해패양이결언혜) : 노리개 띠를 풀어 말을 건넨다.

吾令蹇脩以為理(오령건수이위리) : 나는 건수를 중매쟁이로 삼으려 했는데

紛總總其離合兮(분총총기리합혜) : 자욱이 몰려들었다가 떨어져나간다.

忽緯繣其難遷(홀위획기난천) : 얼핏 어긋나서 돌이키기 어려워라.

夕歸次於窮石兮(석귀차어궁석혜) : 저녁에는 궁석산에 들어와 묵고

朝濯髮乎洧盤(조탁발호유반) : 아침에는 유반 머리 감는다.

保厥美以驕傲兮(보궐미이교오혜) : 그 아름다움에 교만하여 

日康娛以淫遊(일강오이음유) : 날마다 편히 즐기며 마음대로 논다.


雖信美而無禮兮(수신미이무례혜) : 정말 아름다워도 예절이 없고

來違棄而改求(래위기이개구) : 돌아와 버려두고 다시 구하리라. 

覽相觀於四極兮(람상관어사극혜) : 사방을 끝까지 돌아보고

周流乎天余乃下(주류호천여내하) : 하늘을 돌아 나는 내려왔다.

望瑤臺之偃蹇兮(망요대지언건혜) : 높이 솟은 요대를 바라보니

見有娀之佚女(견유융지일녀) : 유융의 미녀 보이고

吾令鴆為媒兮(오령짐위매혜) : 나는 짐새를 중배장이 삼았는데

鴆告余以不好(짐고여이불호) : 짐새는 내게 나쁘다고 하고

雄鳩之鳴逝兮(웅구지명서혜) : 숫 비둘기는 울며 날아가지만

余猶惡其佻巧(여유악기조교) : 나는 또 그 경박함이 싫도다.

心猶豫而狐疑兮(심유예이호의혜) : 주저하고 망설이는 내 마음이여


欲自適而不可(욕자적이불가) :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 없다.

鳳皇既受詒兮(봉황기수이혜) : 봉황이 벌써 해를 받아갔지만

恐高辛之先我(공고신지선아) : 고신씨가 나를 앞서 갈까 두려워라.

欲遠集而無所止兮(욕원집이무소지혜) : 멀리 떠나려 해도 갈 곳이 없어

聊浮遊以逍遙(료부유이소요) : 잠시 놀면서 떠돌아 다닌다.

及少康之未家兮(급소강지미가혜) : 소강이 아직 장가들기 전에

留有虞之二姚(류유우지이요) : 우유씨의 두 딸을 남겨 두었다.

理弱而媒拙兮(리약이매졸혜) : 중매가 어설프고 서툴어서

恐導言之不固(공도언지불고) : 전하는 말 확실하지 못할까 두려워라.

世溷濁而嫉賢兮(세혼탁이질현혜) : 세상이 혼탁해 어진 사람 질투하여

好蔽美而稱惡(호폐미이칭악) : 미덕을 가리고 악함만 들추어낸다.


閨中既以邃遠兮(규중기이수원혜) : 안방은 이미 깊고도 멀어

哲王又不寤(철왕우불오) : 밝은 임금 또한 깨어나지 못해

懷朕情而不發兮(회짐정이불발혜) : 내 마음 품은채로 펴지도 못 한다.


余焉能忍與此終古(여언능인여차종고) : 내가 어찌 이들과 끝까지 참고 살 수 있을까?

索藑茅以筳篿兮(색경모이정전혜) : 경모초 구하여 접대를 만들어서

命靈氛為余占之(명령분위여점지) : 영분에게 날 위해서 점을 치게 하니

曰兩美其必合兮(왈량미기필합혜) : 아름다운 두 사람 합쳐질 것이라 한다.

孰信脩而慕之(숙신수이모지) : 진실로 아름다우면 누가 생각하지 않으리

思九州之博大兮(사구주지박대혜) : 구주의 넓고 큰 땅 생각하면

豈唯是其有女(기유시기유녀) : 어찌 이곳에만 미인이 있으랴. 

曰勉遠逝而無狐疑兮(왈면원서이무호의혜) : 애써 멀리 떠나 망설이지 말라 하니

孰求美而釋女(숙구미이석녀) : 누가 아름다운 사람을 찾으면서 그대를 버리랴. 

何所獨無芳草兮(하소독무방초혜) : 어디인들 향기로운 풀 없는 곳 있으랴.

爾何懷乎故宇(이하회호고우) : 그대는 어이하여 옛 집만 생각하나

世幽昧以昡曜兮(세유매이현요혜) : 세상은 어둑하여 빛은 어지러이 빛난다.

孰云察余之善惡(숙운찰여지선악) : 누가 우리의 선악을 살핀다고 했는가?

民好惡其不同兮(민호악기불동혜) : 사람의 좋아함과 싫어함은 각기 다르지만

惟此黨人其獨異(유차당인기독이) : 오직 이들의 무리는 특별히 달라서

戶服艾以盈要兮(호복애이영요혜) : 누구나 쑥을 허리에 가득 두르고

謂幽蘭其不可佩(위유란기불가패) : 그윽한 난초는 두를 수가 없다고 하는구나.

覽察草木其猶未得兮(람찰초목기유미득혜) : 풀과 나무도 제대로 살지 못하거늘

豈珵美之能當(기정미지능당) : 어찌 어찌 구슬 보는 눈이 바르랴. 

蘇糞壤以充幃兮(소분양이충위혜) : 썪은 흙을 주워 향주머니 채우고 

謂申椒其不芳(위신초기불방) : 신초를 향기 없다고 하는구나.


欲從靈氛之吉占兮(욕종령분지길점혜) : 영분의 길점을 따르려고 해도

心猶豫而狐疑(심유예이호의) : 주저되고 망서려지는 마음

巫咸將夕降兮(무함장석강혜) : 무함이 저녁에 내려오면

懷椒糈而要之(회초서이요지) : 산초와 고운 쌀 품고 그대를 맞으리라.

百神翳其備降兮(백신예기비강혜) : 온갖 신이 하늘을 덮고 내려와서

九疑繽其並迎(구의빈기병영) : 구의산 신령을 줄지어 맞아들이고

皇剡剡其揚靈兮(황섬섬기양령혜) : 천신은 번쩍번쩍 신령스런 기운을 드 날린다.


告余以吉故(고여이길고) : 나에게 길한 까닭을 말해 주기를 

曰勉陞降以上下兮(왈면승강이상하혜) : 힘써 위아래 오르내리며 

求矩矱之所同(구구확지소동) : 법도를 같이하는 이를 찾는다.

湯禹嚴而求合兮(탕우엄이구합혜) : 탕왕과 우왕은 엄숙하여 뜻 맞는 이 구하여

摯咎繇而能調(지구요이능조) : 지와 고요와 조화를 이우었도다.


苟中情其好脩兮(구중정기호수혜) : 정말로 마음속으로 착한 것 좋아하지만

又何必用夫行媒(우하필용부행매) : 또 어찌 반드시 중매를 해야 하는가?

說操築於傅巖兮(설조축어부암혜) : 부열은 부암에서 흙 달구질하다가

武丁用而不疑(무정용이불의) : 무정에서 등용되어 신임을 받았다.

呂望之鼓刀兮(려망지고도혜) : 여망은 칼을 치다가

遭周文而得舉(조주문이득거) : 주 문왕을 만나 천거되었고

甯戚之謳歌兮(녕척지구가혜) : 영척은 노래 부르다가 

齊桓聞以該輔(제환문이해보) : 제 환공이 듣고 보좌관 삼았다.

及年歲之未晏兮(급년세지미안혜) : 나이 더 늦기 전에

時亦猶其未央(시역유기미앙) : 계절이 다 가기 전에

恐鵜鴃之先鳴兮(공제격지선명혜) : 소쩍새 먼저 울까 두려워라.

使夫百草為之不芳(사부백초위지불방) : 저 온갖 풀들 향기 잊을까 두렵고

何瓊佩之偃蹇兮(하경패지언건혜) : 얼마나 보석놀이개가 고운가?

眾薆然而蔽之(중애연이폐지) : 사람들 모려와 덮어 가리고

惟此黨人之不諒兮(유차당인지불량혜) : 이 무리들 너그럽지 못 하여

恐嫉妒而折之(공질투이절지) : 질투에 꺾여버릴까 두려워노라.


時繽紛其變易兮(시빈분기변역혜) : 세속은 어지러워 쉽게 변하는데

又何可以淹留(우하가이엄류) : 또 어찌 오래 머물 수 있겠는가?

蘭芷變而不芳兮(란지변이불방혜) : 난초와 백지 변하여 향기롭지 못하고

荃蕙化而為茅(전혜화이위모) : 전풀과 해초 변하여 띠풀로 되었도다.

何昔日之芳草兮(하석일지방초혜) : 어찌 지난날 향기롭던 풀이

今直為此蕭艾也(금직위차소애야) : 지금은 이러한 쑥덤불이 되었는가?

豈其有他故兮(기기유타고혜) : 그 어찌 다른 까닭이 있으랴. 

莫好脩之害也(막호수지해야) : 착함을 좋아하지 않은 해로움이라.

余以蘭為可恃兮(여이란위가시혜) : 나는 난초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羌無實而容長(강무실이용장) : 아 속은 비고 겉모양만 길도다. 

委厥美以從俗兮(위궐미이종속혜) : 그 아름다움을 버리고 속됨만 쫓으니

苟得列乎眾芳(구득렬호중방) : 구차스럽게 흔한 꽃 속에 줄을 서는구나.

椒專佞以慢慆兮(초전녕이만도혜) : 산초나무는 아첨하고 오만하고

樧又欲充夫佩幃(살우욕충부패위) : 수유나무도 향주머니 채우려하니

既干進而務入兮(기간진이무입혜) : 이미 벼슬 찾아 등용되기를 힘쓰니

又何芳之能祗(우하방지능지) : 또 어찌 언제 향기를 높이랴.

固時俗之流從兮(고시속지류종혜) : 진정 시속의 흐름을 따라

又孰能無變化(우숙능무변화) : 누가 변하지 않겠는가?

覽椒蘭其若玆兮(람초란기약자혜) : 산초와 난초도 그러한데

又況揭車與江離(우황게차여강리) : 하물며 게차와 강리에 있어서야

惟玆佩之可貴兮(유자패지가귀혜) : 오직이 노리개를 귀하게 여김이여

委厥美而歷玆(위궐미이력자) : 그 아름다움 버림받아 이에 이르고 

芳菲菲而難虧兮(방비비이난휴혜) : 꽃향기 물씬물씬 줄어들지 않고

芬至今猶未沬(분지금유미매) : 꽃내음 아직도 가시지 않았도다.

和調度以自娛兮(화조도이자오혜) : 태도를 온화하게 가져 스스로 즐겨

聊浮游而求女(료부유이구녀) : 잠깐 동안만 떠돌며 미녀를 구하리라

及余飾之方壯兮(급여식지방장혜) : 내 치장이 한참 향기로울 때

周流觀乎上下(주류관호상하) : 천하를 두루 다니며 찾아보리라.


靈氛既告余以吉占兮(령분기고여이길점혜) : 영분이 이미 나에게 길한 점괘를 주어

歷吉日乎吾將行(력길일호오장행) : 좋은 날을 가려서 나는 떠나리라.

折瓊枝以為羞兮(절경지이위수혜) : 경지를 꺾어 반찬 삼고

精瓊爢以為粻(정경미이위장) : 옥가루 빻아서 양식 삼으리라.

為余駕飛龍兮(위여가비룡혜) : 나를 위해 비룡을 끌게 하고

雜瑤象以為車(잡요상이위차) : 옥과 상아를 섞어 수레를 만들어보나

何離心之可同兮(하리심지가동혜) : 어찌 떠난 마음 하나가 되랴.

吾將遠逝以自疏(오장원서이자소) : 나는 멀리 떠나 스스로 멀어지리라.

邅吾道夫崑崙兮(전오도부곤륜혜) : 내 길을 돌아서 나는 곧 곤륜산 바라보며

路脩遠以周流(로수원이주류) : 길은 아득하여 돌고 돌아서

揚雲霓之晻藹兮(양운예지엄애혜) : 구름과 무지개 날려 하늘을 가린다.

鳴玉鸞之啾啾(명옥란지추추) : 옥란 소리 울리더니 

朝發軔於天津兮(조발인어천진혜) : 아침에 은하수 나루를 떠나

夕余至乎西極(석여지호서극) : 저녁에 서쪽 끝에 이른다.

鳳皇翼其承旂兮(봉황익기승기혜) : 봉황은 공손히 깃발을 받들고

高翱翔之翼翼(고고상지익익) : 높이 날아 가지런히 간다.

忽吾行此流沙兮(홀오행차류사혜) : 홀연히 나는 이 흐르는 모래를 걸어

遵赤水而容與(준적수이용여) : 적수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麾蛟龍使梁津兮(휘교룡사량진혜) : 교룡을 부려 나루에 다리 놓아

詔西皇使涉予(조서황사섭여) : 서황에게 나를 건너 주게 하리라.

路脩遠以多艱兮(로수원이다간혜) : 길은 멀고멀어 어려움이 많아

騰眾車使徑待(등중차사경대) : 수레를 지름길로 나와 기다리게 한다. 

路不周以左轉兮(로불주이좌전혜) : 부주산 왼쪽으로 돌아

指西海以為期(지서해이위기) : 서해를 가리키며 만날 약속을 했노라.

屯余車其千乘兮(둔여차기천승혜) : 내 수레가 천대나 몰리어

齊玉軑而並馳(제옥대이병치) : 옥 바퀴 나란히 달리고

駕八龍之婉婉兮(가팔룡지완완혜) : 꿈틀거리는 여덟용을 몰아

載雲旗之委蛇(재운기지위사) : 휘날리는 구름 깃발 꽂고 간다.

抑志而弭節兮(억지이미절혜) : 마음을 누르고 걸음을 늦추어도

神高馳之邈邈(신고치지막막) : 넋은 높이 날아 아득하게 달린다.

奏九歌而舞韶兮(주구가이무소혜) : 구가를 타고 구소에 춤추며

聊假日以媮樂(료가일이유악) : 잠시 시간을 빌어 즐기노라.

陟陞皇之赫戲兮(척승황지혁희혜) : 햇빛 휘황한 하늘로 오르니

忽臨睨夫舊鄉(홀림예부구향) : 갑자기 저 먼 고향이 내려 보인다.

僕夫悲余馬懷兮(복부비여마회혜) : 종도 슬퍼하고 내 말도 그리워한다

蜷局顧而不行(권국고이불행) : 뒤돌아보며 나아가지 못하노라.


亂曰(란왈) : 난사에 이르기를

已矣哉(이의재) : 모든 것 다 끝이 났다.

國無人莫我知兮(국무인막아지혜) : 나라에 사람 없어 날 알아주지 않는데

又何懷乎故都(우하회호고도) : 어찌 고향을 그리워할까?

既莫足與為美政兮(기막족여위미정혜) : 이미 함께 좋은 정치 할 만한 이 없는데

吾將從彭咸之所居(오장종팽함지소거) : 내가 정차 팽함이 있는 곳을 찾아가리라.




출처: http://hwalove.tistory.com/entry/離騷經이소경-屈原굴원-1 [빈막(賓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