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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C43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Ie siècle) / 브로델(Femand Braudel, 1902~1985)

C43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Ie siècle) / 브로델(Femand Braudel, 1902~1985)

 (출전: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서양 근대초기의 경제적 삶을 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3층 구도 속에서 파악한다. 물질문명 은 자급자족의 하부경제이며, 그 위에 투명하고 규칙성을 지닌 교류의 장소인 경제생활이 있고, 맨 위에 불투명한 독점의 세계인 자본주의가 있다. 일상생활의 구조를 경제사에 결합시키고 자본주의를 특이하게  반시장으로 보는 동시에, 세계경제라는 총체적 시각을 제공한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서유럽에서 일어난 이유를 인간의 모든 경험, 활동, 사건들을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프랑스의 역사가 브로델은 1902년 프랑스의 로렌 지방의 옛 그대로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파리 등 여러 곳에서 고등학교의 교사를 지냈으며, 지중해 세계에 강한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가 독일에 패망하던 해인 1940년(38세)에 프랑스 육군중위로 싸우다가 독일군의 표로가 되어 1945년까지 뤼베크 수용소에 있었다. 그 안에서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여 쓴 16세기 지중해 역사인  필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로 1947년 소르본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는 논문에서 역사를 장파. 중파. 단파의 3층 구조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고, 특히 장기적인 지속상을 중시하는 점에서 전통적 역사학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지중해 세계가 집필되고, 물질문명이 간행되기까지의 30년 동안 브로델은 문자 그대로 거장의 층계를 착실하게 밟아 올라 갔다. 즉, 아날 학파의 1세대인 페브르의 뒤를 이어, 1949년(47세)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1956년(54세)부터는 고등학술연구원 제6부문의 책임자가 되었고, 아날 학파의 중심적 존재로서 역사학과 여러 인간과학과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84년(82세)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었다.


b. 아날 학파와 브로델의 역사관

 1929년 사회경제사 연보를 창간하여, 역사적 세계의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인식에 획기적 기여를 하고 있는 프랑스의 아날 학파는 제1세대인 페브르와 블로크를 거쳐 제2세대를 대표하는 브로델에 의해 그 이론체계를 대략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아날의 제1세대인 페뷔르의 역사학이 심리적이었던 반면, 블로크의 사학은 사회적이었으나 기본적으로 이들은 관념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브로델은 그들과 다르게 어떤 사건들 밑에 깔려 있는 기후. 지리. 인구. 교통. 통신 등의 지리학적 요인들을 중시하였고, 브로델의 지리학적 역사는 가장 프랑스적인 역사, 즉 새로운 역사였다. 브로델에 의하면 역사는 시간적 지속에 비례하여, 순식간의 역사(사건사), 주기적 역사(변동사), 장기지속의 역사(구조사)로 나뉘어진다. 개별적 사상과 사회상황을 중요시하며, 역사를 전체적 관련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브로델과 아날 학파의 진정한 역사인식은 무엇보다도 장기 지속, 즉 구조의 파악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주장된다. 

 그런데 이 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들은 명확한 개념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지리적 제조건. 공간. 조직. 경제. 생활. 정신적. 문화적. 심리학적 테두리까지도 포함함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개인적 생애나 사건의 역사(정치사)의 관점에서 볼 때는 변화가 없는 정체되고 있는 듯한 현상들, 즉 백년 혹은 몇 세기의 오랜 시간 속에서 지극히 완만하게 흐르고 있는 관습과 같은 것들이다. 브로델의 방법론은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변천하는 시대의 밑바닥에 있어 사회와 인간을 규제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구조는 영속하는 것이며 때때로 한 세기 이상 지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를 가로막고 방해하고, 그리하여 그 흐름을 좌우하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그러면서 흐름을 좌우하는 것, 그것은 제도나 사상체계. 학문. 예술 등의 고급문화보다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기록되지 않는 단기적인 변화를 초월한 공시적 세계에 속한다. 아날 학파는 그것을 민중의 무의식의 집합심리나 일상생활에서 브로델의 이른바 물질문명속에서 찾는다. 브로델을 위시한 아날 학파는 여러 세대 내지 몇 세기에 걸쳐 이어지면서 육체화되고 관습화되고 사회화된 것들을 찾아 사회사를 서술하는데, 그들은 그 대상을 즐겨 중세나 18세기 이전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 속에서 찾는다. 산업혁명 이후 현대에서의 사회의 극대화 현상 및 대중화 상황은 국가권력 내지는 체제의 상층집단의 향배를 주제로 한 전통사학의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되거니와 이제 아날 학파에 의해 사회, 즉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중의 일상생활이 바로 역사인식의 최대의 주제가 된 것이다. 

 페뷔르는 역사란 본래 사회사였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지난날의 개별적 역사로서의 사회(경제)사와는 구별되는 그 심층에 이르기까지 사회에 의해 규정된 인간들의 전체상을 규명하는 진정한 사회사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브로델의 15~18세기의 물질. 문명. 경제.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c.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내용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많은 그림. 사진. 지도. 도표 등의 방대한 자료와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저술되어 있다.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경제학은 생산 및 교환의 메커니즘을 특징으로 하는 시장경제에 의존한다. 그 명료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의 아래층에는 불투명하나마 거대하고 기본적인 물물교환에서 이루어진 하부경제 지대가 존재한다(이 하부경제 지대를 브로델은 물질생산 또는 물질문명이라고 부른다).

한편 시장경제의 위층에는 활발한 사회집단을 이룬 특권적 행위자(16세기 제노바나 18세기 암스테르담의 대상인 등)에 의해 구축된 자본주의의 영역이 있다. 이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의 삼층구조를 통해, 브로델은 15세기에 걸친 경제현실을 세계화한 시간과 공간을 관통한 비교사적 관점에서 규명한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장경제의 상황에 관한 해독을 통해 근. 현대사회의 테두리가 보인다고 브로델은 확신한다. 


   제1권 일상생활의 구조

 제1권의 제1장은 세계인구를 추계하고 2, 3, 4장에서는 기술의 문제를, 7, 8장에서는 화폐와 도시를 다룬다. 그러면 본권의 주제이며 브로델을 비롯하여 아날 학파의 역사인식에 있어 최대의 초점인 일상생활이란 무엇인가. 본권의 머리말에서 브로델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해준다.

  일상생활이란 시간 및 공간 속에 끼여 들어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사실이다. 잡다한 것은 되풀이되고 그리고 되풀이되는 동안에 일반성이 되며 보다 정확하게는 구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층에 끼여 들고 끝없이 지속을 계속하는 존재양식 및 행동양식의 특징을 이룬다. 때로는 몇 가지의 에피소드에 접하기만 하여도 일상사의 등화표지에 불이 켜지고 갖가지의 생활양식을 비춰준다. 일상생활 의 심층적 파악을 통해서 의. 식. 주 등 몇 세기에 걸친 생활내용이 문명의 성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이해된다. 브로델 이전의 어느 역사가도 이러한 관찰을 하지 못했다.


   제2권 교환의 기능

 제2권에서는 물물교환에서부터 자본주의에까지 이르는 교환의 기증이 분석된다. 즉, 제1권의 주제가 비경제였다면 여기의 주제는 경제다. 특히 상업자본에 중점을 두며 관습적인 경제와 자본주의적인 고등경제가 비교. 논술되었다. 제1, 2장에서는 자본주의 이전의 장인 행상. 상점. 거래소 등이 취급되고 거기에서부터 브로델은 교환의 법칙을 도출하고자 한다. 제3, 4장에서는 생산과 자본주의의 문제가, 5장에서는 경제가 자본주의가 전체의 집합으로서의 사회의 테두리 속에서 재인식된다. 제2권의 목적은 역사의 접합점. 진화 그리고 전통적 질서를 유지하는 갖가지의 거대한 힘, 사르트르가 말하는 완만한 강한 힘; 을 식별하기 위한 시도였다. 


   제3권 세계시간

제3권에서는 세계 속을 끊임없이 유통하고 있는 세계시간과 지역 내적인 연관 및 교환에 의해 유기적인 통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경제에 관해 논의한다. 이 부분은 사회학자가 만든 개념에 대한 역사학자로서의 교정이라 볼 수 있는데, 그는 세계경제를 경제적으로 자율적이고, 본질적으로 자족적이며, 내적연결과 교환을 통해 유기적 일체성을 부여 받는 지구상의 일부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중심부. 준주변부 그리고 주변부라는 세 개의 불평등한 권역으로 나뉘며, 중심부의 중심은 베니스_앙베르_제노이_암스테르담_런던_뉴욕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는 자본주의에서 노예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생산양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중심부와 준주변부 사이의 불평등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심부. 준주변부. 주변부가 하나의 경제 속에 속한다는 것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브로델은 지리적으로 닫힌 세계 속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인지를 주목한다. 역사의 흐름을 상승 하강하는 장기적 사이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복잡 다단한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d. 본서의 의의

 위에서 본 것처럼 브로델은 이 획기적 저서에서 역사적 시간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지리적 시간인데 이것은 기후. 식물. 간선교통로 등 거의 변화가 없는 장기적 시간으로서 환경 생태계의 역사다. 여기서 아날 학파의 제3세대에 의한 심성사 연구와 관련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자연적 풍토나 지리적 환경이 브로델에 있어 정념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사회적 시간인데, 이것은 경제적 주기, 사회제도, 문화등 사회집단과 사회구조가 완만하게 변동하는 사회적 역사다.

 셋째는 개인적 시간으로, 이것은 개인의 일생을 척도 삼아 측정할 수 있는 단기적 시간이며 정치사. 사건사다. 그는 이상 세 가지 시간층이 필리페 2세 시대에 있어 어떻게 역사의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가를 기술하였다. 

 브로델은 역사에서 시간의 복충성 문제와 시간의 계층이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역사와 사회과학_장기지속(1958)이라는 논문에서 더욱 이론적으로 탐구하여  새로운 역사학의 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일상성의 모든 측면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비교역사학의 뛰어난 상상력에 인도되면서 문명과 사회의 구도를, 그리고 사회적 인간, 인간적 사회의 실상을 눈에 보일 듯이 펼쳐준 이 현대의 고전은 라뒤리, 르 고프, 아리에스, 망드루, 두비 등 아날 학파의 제3세대에 훌륭하게 이어지고 있다.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아날 학파와 사회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야 하는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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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학파 (출처 : doopedia)

[Annales School]


1929년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L.페브르와 M.블로크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 연보》(1946년에는 '아날 ·경제 ·사회 ·문명'으로, 1994년에는 다시 '아날 ·역사와 사회과학'으로 제명 변경)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

랑케의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 역사학은 역사철학이나 낭만주의적 역사서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사료의 정확성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역사학의 폭과 깊이를 축소시키는, 그 부정적 측면을 노출하여, 결국 인문사회과학의 세계에서 자료제공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학의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는 뒤르켐의 사회학, 비달 드 라 블라슈(Vidal de Blache)의 인문지리, 철학자인 H.베르의 역사적 종합 등이 인문사회과학을 주도하는 가운데, F.시미앙이 제기한 ‘역사가들의 3가지 우상(정치 ·개인 ·연대)’에 대한 논박, 그리고 이러한 도전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수용은 새로운 역사학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학파의 정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범한 이 학파가 역사학 안팎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은 제2세대인 F.브로델에 의해서이다. 그가 1949년에 발표한 《지중해》는, 지중해세계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 ‘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지리적인 삶, 그리고 그 위에서 완만하게 주기적으로 변하는 사회 경제적인 삶, 그리고 표면의 거품과 같은 정치적인 삶을 구조적이며 총체적으로 그린 아날학파의 교과서였다. 이후 G.뒤비, E.르 루아 라뒤리, J.르 고프 등의 제3세대는, 이러한 브로델의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집단심성(集團心性)에 대한 연구를 아날학파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R.샤르티에는 문화현상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제4세대를 이끌고 있다.


이 학파는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 변동에 대한 설명 등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학파는 1970년대에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말에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최근에는 국내의 관심도 더욱 높아져, 브로델의 대작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까치, 1995)를 위시한 이 학파의 주요 연구업적들이 활발히 번역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