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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E15 – 양철북 (Die Blechtrommdl, The Tin Drum) / 그라스(Gunter Grass, 1927~2015)

E15 – 양철북 (Die Blechtrommdl, The Tin Drum) / 그라스(Gunter Grass, 1927~2015)

(출전: 동서고전 200선 해제3 / 반덕진 / 가람기획)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난쟁이라는 <탈사회적 존재>의 눈을 통해 악의 세계를 밑바닥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나치의 토대가 된 소시민 계층의 부패한 모습과 정치적 무의식을 고발하고, 다른 한편 과거의 죄악을 의도적으로 망각하려는 전후 서독사회의 몰역사적 기회주의적 태도에 저항한다.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소시민 계층의 몰락과정과 나치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전후 서독사회를 형상화한 전후의 위대한 역사소설의 하나다.


a. 문학활동과 정치참여 병행

 20세기 후반기 독일 최대의 작가로 평가되는 귄터 그라스는 1927년 그의 문학적 원천인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단치히 교외에서 작은 식료품 가계를 경영했다. 그래서 그라스는 어린 시절부터 소시민의 비참한 환경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라스의 사상과 작품에 있어서 <소시민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는 이러한 체험에 기인한다. <양철북>의 주인공 소년 오스칼은 양철북을 힘껏 두드리면서 거친 반항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도 소시민적인 절망성이 엿보인다.

 10세에 나치 소년단에 가입하게 되고 2차대전 중인 17세의 어린나이에 전차병으로 일선에 끌려갔다가 가벼운 부상을 당해 미군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가 18세에 겨우 풀려나왔다. 나치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저항적 도를 교육을 받은 젊은이에게 패전은 곧 새로운 각성의 시작이었다. 그라스가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저항적 태도를 취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쓰라린 체험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뒷날 <<그때부터 나는 겨우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한적이 있는데, 그는 이때부터 나치의 추악상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전후 독일인들이 경제발전에 매진함으로써 과거의 죄를 잊으려는 경향에 대해 강한 저항을 느꼈다. 그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깊이 통찰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양철북>의 제3부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후 그라스는 농부로서, 광산의 광부로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갔다. 1946년(19세) 조각공부를 위해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석판화와 동판화를 공부했다. 그라스는 조형예술뿐만 아니라 재즈 그룹 멤버로도 활약했다. 1956년(29세)에는 독일을 떠나 부인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은 1959년(32세) <양철북>이 발표되면서부터다. 그라스는 이 작품 하나로 전후 독일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그는 1960년(33세) 베를린으로 돌아와 1961년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빌리 프란트를 도와 선거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때부터 10년간에 걸쳐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작가로서의 직업과 시민으로서의 정치활동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선언이나 저항을 해서는 표현해서는 안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신적 우월감을 버리고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1970년대 초부터는 정치에서 다소 물러선 후 다시 집필을 시작하여 <넙치>(1977)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역량을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이지만, 다루는 주제와 비판정신은 매우 냉혹하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b. 20세기 전반기의 독일역사 형상화

 이 작품은 전후 서독 문학의 최대의 수확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나치 독일, 전쟁, 패전 등으로 단절되었던 위대한 독일 장편소설의 전통이 이 작품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오스칼이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20세기 전반기의 독일역사를 형상화한 <허구적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간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나치의 등장과정을, 제2부는 제2차대전과 나치의 몰락을, 제3부는 전후사회를 다룬다. 이중 제2부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 내용을 요약해 본다.

  30세의 오스칼 마첼라트는 서독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회상록을 쓰고 있다. 그는 1899년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할머니는 감자밭에서 4겹의 치마 밑에 어느 방화범을 숨겨주게 되는데, 그 방화범과 외할머니 사이에서 오스칼의 어머니가 태어난다.

  오스칼은 1924년 단치히 교외의 랑푸르 라베스베크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아버지 마첼라트를 법률상의 아버지로만 인정할 뿐, 실제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촌이자 애인인 브론스키로 믿고 있다. 오스칼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성인의 지각을 갖추고 있다. 오스칼은 아버지라고 자칭하는 사나이가 요구하는 억지 장사꾼이 되지 않기 위해 세 살 때 성장을 멈춘다. 그는 소시민 사회의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소시민 사회 속에서 예정된 삶을 거부하려고 그는 영원한 세 살배기로 살아남기로 하고 결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성장을 멈추게 한다.

 그의 키는 94cm에서 성장이 멈춘다. 나치가 붕괴하는 1945년까지 그는 성장하지 않은 채, 세 살배기의 시점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세 살이 된 생일날, 그는 양철북 하나를 선물받는다. 그는 항상 이북을 치고 다니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깨뜨릴 수 있는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북을 빼앗으려는 자에 대해서는 목소리로 저항한다.

 어머니는 1937년 브로스키와 불륜관계가 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생선을 먹은 뒤 결국 황달로 죽는다. 어머니가 죽은 후 오스칼의 아버지 마첼라트는 자신의 가계에서 일할 마리아를 고용한다. 오스칼은 마리아를 애인으로 삼고자 한다. 아버지는 오스칼의 애인인 마리아와 재혼한다. 오스칼은 훗날 이 계모와 결혼하려고 하나 그녀가 응하지 않는다.

  오스칼은 음악광대 베브라와 함께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로 간다. 그곳에서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난쟁이들로 구성된 나치 위문단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공연에 참여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나치 당원이던 아버지 마첼라트가 나치의 휘장을 목에 삼킨 채 러시아 병사에 의해 살해된다. 그의 장례식에서 오스칼은 마첼라트의 무덤 속에 자신의 북과 북채를 묻어버리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즉, 독일의 패배와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계모와 함께 단치히를 떠나 화물열차를 타고 서독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으로 소설의 2부가 끝난다. 여기까지가 영화화되어 있다.

 서독에 온 오스칼은 뒤셀도르프 근교에서 화폐개혁과 암거래 시장을 경험한다. 오스칼은 직업을 찾는다. 처음에는 묘비석을 깎는 석공장에서 석수로, 나중에는 미술대학에서 모델로 일한다.

  그의 성장은 다시 121cm에서 중단된다. 그는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고, 등에 혹이 난 난쟁이가 된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소리로 유리를 깨는 능력도 사라진다. 그후 그는 다시 북을 잡는다. 그는 북 연주자로서 그 분야의 스타가 된다. 그후 그는 애매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혐의자로 체포된다. 그는 정신이상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수상록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54년 30세의 생일날, 그는 2년간의 집필을 끝내는데, 이것으로 소설도 끝난다.

  유유히 흐르는 바이크셀 강 연안의 민요적 목가적인 세계를 비롯하여 나치의 대두, 독일의 몰락, 전후의 혼란 등이 양철북을 두르리면 의식의 세계에 힘차게 되살아난다. 소시민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악의 집단에 의한 소시민의 몰락은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난쟁이 오스칼의 인생회고는 독자들을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속으로 몰고갈 것이다.


c. 인간의 의식을 일깨운 난쟁이의 양철북

  20세기 독일의 역사, 특히 나치와 제3공화국을 상징적으로 다룬 역사소설인 <양철북>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이 작품은 나치의 <비극적인 역사>와의 대결을 전제로 할 때만 궁극적 메시지를 추출해낼 수 있다.

  어른들의 세계로 대표되는 기존체제에 대한 부정과 반항으로 스스로 성장을 멈춘 오스칼은 키가 작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상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된다. 즉, 사물의 밑을 관찰하는 <앙각의 퍼스펙팁>를 갖는다. 오스칼의 이러한 시각은 사물을 아래로부터 폭로하고 변형시키며 전통적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기능을 갖고 있다. 오스칼은 이러한 독특한 시각을 이용하여 소시민 사회의 부패한 모습을 폭로하는 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오스칼은 <아래에서> 소시민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단의 <뒤에서> 나치즘의 서구성과 기만성을 꿰뚫어본다. 그라스는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연단을 뒤에서 본 일이 있는가? 일찍이 연단을 뒤에서 본 사람은 연단 위에서 거행되는 어떠한 마술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연단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꾸며진 허상을 폭로한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주인공 오스칼은 그 개인이 아니라 보편이 집약된 존재이다. 그라스 자신의 체험과 의식은 물론 하나의 계층, 한 시대 전체의 체험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된 모델이라는 점이다. 즉,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 위에 역사적 사실들을 일치시켜 역사과정을 시간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스칼의 출생은 나치 세력의 강화를, 오스칼의 어머니의 죽음은 자유도시 단치히의

몰락을 유태인 마르쿠스의 죽음은 유태인 박해를 그리고 독일인 마첼라트의 죽음은 나치의 종말을 암시하고 있다.


d. 소시민의 정치적 무관심 질타

소시민 사회 속에서 예정된 소시민적 삶을 거부하고 영원한 세살배기로 남기로 결심한 오스칼을 <소시민 계층의 메가폰>으로 볼 때, 우리는 작품 전체를 통일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독일 소시민 계층은 악화일로에 있는 그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절망하여 나치즘을 받아들인다. 오스칼이 소시민 사회의 예정된 행로를 거부하고 북에만 매달린다는 사실은 몰락하는 소시민계층이 협소한 소시민적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으로 상징되는 공격적인 나치즘에 매달린다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고 있다.

  오스칼이 지닌 <유리 파괴의 목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올바로 조명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강요된 이유에서만 비명을 질러 유리를 깨던 그가 1932년 단치히의 스토크 탑에 올라가 <아무런 이유도 강요도 없이> 시립극장의 유리를 깨는 것은 나치의 집권이 임박했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목소리는 <기적의 병기>로 둔갑되어 전쟁무기로 이용된다. 이제 소시민 사회의 공격적 분위기는

전쟁이라는 집단적 폭력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소설의 1, 2부에 나타나는 오스칼의 <북>과 <유리파괴의 목소리>는 그의 시대사적 기능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오스칼은 공격적인 시대의 분위기를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치의 축소판으로서 나치 독일이 전쟁이라는 대영역에서 행한 것을 소시민적 환경의 소영역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이 중단되었던 오스칼은 나치 몰락 후에 다시 성장하나 정상적인 키에는 이르지 못하고, 전후 독일사회에서는 등에 혹이 달린 불구자가 된다. 이러한 오스탈의 신체변화는 또 하나의 다른 시대사를 상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1927년 오스칼의 성장중단은 독일 소시민 계층이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함을 의미하며, 나치가 멸망한 1945년 후 오스칼은 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데 이는 나치 치하에서 어떠한 정치적 책임감이나 역사의식도 지니지 못하던 소시민 계층이 그 <세 살배기 수준>을 벗어나 이제 비로소 정상성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e. 전쟁의 책임의식 일깨워

  침략과 야만의 시대가 지난 후 오스칼과 그의 동시대인들의 삶에는 평온이 찾아온다. 그러나 전후에도 오스칼의 키는 121cm에 멈추고 거기다가 등에 혹까지 붙은 불구자가 된다. 이는 전후 서독사회가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고 함으로써 과거청산에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오스칼의 신체적 불구는 역사의 상처로 계속 남게 된다. 이는 심각한 동요를 겪은 독일사회의 반영으로 사회적 병이 개인의 병으로 전이된 것이다. 그의 병은 과거를 기피하려는 전후 서독사회의 병인 것이다.

  나치의 붕괴와 함께 오스칼의 공격적 자질이었던 <북>과 <유리파괴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그는 전후의 새로운 사회에서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오스칼은 위에서 언급한 반역사적 사회풍조에 반항하여 다시 북을 두드리는데, 이번에는 오스칼의 공격적인 자질의 상징이었던 북이 새로운 역할, 즉 독일인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독일의 소시민들이 나치즘을 받아들이고, 전후 과거를 기피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 오스칼만이 주변세계와 개개의 사건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오스칼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나치의 토대가 된 소시민 게층의 부패한 모습과 정치적 무의식을 고발하고,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죄악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전후 독일사회의 몰역사적 기회주의적 태도에 저항하려 했다. 이런 의미에서 <양철북>은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소시민 계층의 몰락과정을 형상화한 <소시민 계층의 만가>이며 나치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전후 사회에 대한 <비탄의 노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