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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끄적/주절주절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에 대해



인간이란 문화라는 바다속에 사는 동물이다. 문화는 과거의 인간 지식과 역사의 합이며 그것이 현재에 작용하는 형태이며 이 속에 사는 인간은 다시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쓰 나가고 있다.
읽고 쓴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과 미래를 잇는 타임머신의 기능을 한다. 읽는 것은 언제과 과거와의 접점을 가지고 있고 쓴다는 것은 항상 쓰는 시점과 비교하여 미래와 접점을 가지고 있다. 활자화된 내용은 이미 순간에 사라지는 생명체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듣고 말하기는 읽고 쓰는 것에 비해 바로 ‘지금’, 즉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현재’라는 것 또한 아주 짧은 순간의 과거와 미래의 딱 중간의 찰나 이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일정수준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할수 없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란 것이 바로 지금 인류의 관점에서 볼때는 분명히 과오와 얼룩도 있긴 하지만 쌓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양한 사건과 삶의 합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원튼 원하지 않든 이 속의 문화의 내용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이렇게 개개인 또는 일군의 인간에게 문화를 이입하는 행위가 바로 ‘교육’이다.
따라서 교육이란 것은 새로운 인간사회의 신참 구성원(이를테면 아이, 어른 할 것없이)에게 스스로 삶을 지속토록 하는 힘을 주는 행위이다. 교육을 통해서 구성원은 사회속에 자신의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교육은 인간의 삶의 필수 과제다.
시간의 축에서 볼때, 읽고 쓰기, 그리고 듣고 말하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처럼, 다시 이는 대상으로서도 뚜렷이 구분된다.
읽고 쓰기는 ‘활자’에, 그리고 말하기 듣기는 ‘인간’과 관련되어 있다. 활자는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며 사물을 통해 스스로의 영구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소리’는 대기의 순간적인 울림으로서 그 속성-순간성, 찰라성-을 벗어 날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읽고 쓰기, 듣기와 말하기 이 네가지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얼마나 확실히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네가지 기본 행위 가운데에는 바로 사고하는 자신(또는 자아)이 있다. 이 네가지는 바로 생각하는 자신을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직,간접 경험을 통해 지혜로운 사고를 가지고 그 지혜를 타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할 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또는 인간관계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궁극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바른 인간의 삶 - 지혜롭고 착하고 소박하고 성실하고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창조하는 삶 -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아교육과 성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라는 것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바로 삶의 가장 기본이고 본체에 가까운 것이다.
읽고 쓰기, 듣기와 말하기는 바로 교육, 또는 공부의 궁극의 목표이고 그 수단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바로 성장하는 자아가 있다. 이 모든것은 서로 하나다.
읽어서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쓰고, 타인의 의견을 정중히 들어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겸손하면서도 정확히 말하여 전달하고. 그러면서 이 네가지 행위속에 진실과 거짓을 짚어내는 능력, 더 나은 방안이 있을수 있으며 그것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 인간에게 이 외에 더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