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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조금씩배워보자/동서고전 200선

B003 – [화담집] 서경덕(1489--1546)

B003 – [화담집] 서경덕(1489--1546)


평생을 학문과 제자들의 양성에 전념한 <기철학> 의 완성자인 서경덕의 성리학설과 시문을 그의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화담집>은 18세기 청나라의 건륭제가 거국적이고 필생의 사업으로 편찬한 <사고전서>안에 한국인의 개인 저서로서는 유일하게 소개되었을 정도로 국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책으로, 우리는 이 책에서 중국 성리학의 단순한 수용이 아닌 한국 성리학의독자적인 이해과정과 치밀한 철학적 사유의 백미와 함게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며 안빈낙도하는 한 철학자의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a.생애


  10년 동안 면벽수도한 지족선사는 나에게 하룻밤에 무너졌지만 화담선생은 내가 가까이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분의 마음과 몸을 어지럽히지 않으셨다. 성인이시로다 고 감복한 것은 당대 최고의 명기였던 황진이었다. 황진이의 유혹을 사제간의 관계로 승화시킨 화담 서경덕은 누구인가?

 조선 전기의 학자로 황진이.박연폭포와 함게 송도삼절로 불린다. 유년기의 호담은 명석한 두뇌, 고감한 성격, 정직한 마음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14세에 개성의 어느 선생님을 찾아가 글을 배웠는데, <상서>의 기삼백(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에 이르러 선생이 이 대목은 나도 배우지 못했고 세상사람 누구도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하자 화담은 보름 동안 궁리 끝에 스스로 해득했으며, 18세에는 <대학>을 읽고 격물치지(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의 원리를 깨달았다. 이때 감격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격물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고, 그날부터 화담은 천지만물의 명칭을 하나하나 써서 서재 벽위에 붙여놓고 날마다 궁리격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화담의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어린 시절 어느 봄날에 나물을 캐기 위해 들에 나갔다가 새끼 종달새를 목격한 데서 비롯되었다. 종달새는 날이 지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점차로 공중 높이 나는 현상을 주시하고 그 이치를 궁리하기에 이른다. 어린 화담의 종달새 관찰은 결국 후일 그의 이른바  기철학 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재로 작용한다.

 후일 그가 밝힌 종달새의 비상은 새의 가벼운 깃털을 이용하여 상승하는 지기 에 힘입어 날아오른다고 풀이했다. 새의 무게는 원래 하강하려는 것이 자연적 성질이나, 하늘의 양기 와 땅의  음기 가 서로 교호작용을 하는 데에 힘입어 그 가운데의 새는 상승과 하강의 날기를 자유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문적 방법으로 화담은 약 3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20세가 되던 해에 나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번 저지른 과오를 두 번 범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21세가 되던 해에는 매일 서재에서 혼자 단정히 앉아 사색에 열중하던 나머지 밥맛도 몰랐고 잠도 잘 자지 못해, 이렇게 3년 동안 공부를 하는 동안 문지방도 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사색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으나 천성적으로 탐구심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명성이 조정으로 알려지자 31세 되던 중종 14년 조광조에 의해 현량과에 응시하도록 추천받았으나 사양하고 학문연구에만 전력했다. 43세  때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수습훈련을 받던 중 벼슬을 단념하고 개성 송악산의 화담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한다. 

 언젠가 화담은 제자 이지함(<토정비결>의 저자)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찾아가, 조정의 벼슬을 거절하고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살아가는 남명 조식을 만난다. 중앙에서 벼슬을 지내며 주리파와 주기파의 정통을 이은 이황과 이이에 비해 조식과 서경덕은 일종의 방계였다. 이황과 조식은 같은 경상도에 살면서 때로는 우정을, 때로는 냉전의 상태를 유지했으며, 이이와 서경덕은 같은 경기도 출신으로 한때 이이가 서경덕의 학설을 배우기도 했지만 서경덕의 이론을 일부 반박하기도 했다. 

 그후로도 몇번 조정에서 벼슬을 권고했으나 그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고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했다. 그런 유유자적한 생활 속에서 마침내 그의 학문과 철학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다. 56세에 병이 깊어지자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옛 성현들의 말은 선유들이 다 주석해 놓았으니 그 이상 내가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이 미처 설파하지 못한 것만 저서로 남기겠다. 지금 내 병이 이렇게 위독하니 나의 학설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원리기설> <이기설> <태극설> <귀신사생설> 등 4편의 논설을 지었다.


b.화담의 사상과 <화담집>


 현재 <화담선생문집>으로 전하는 <화담집>은 본집 2권과 부록 2권으로 꾸며져 있다. 화담 자신이 저술한 것은 본집 2권이며 부록 2권은 그의 연보.비명을 비롯한 여러 형식의 추모문으로 후인이 써모은 것이다. 본집 2권 중 권 1은 시문을 모은 것이고, 권2는 각종 싯구.잡저.명문을 모아 그의 철학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잡저에 있는 <원리기설> <이기설> <태허설> <귀신사생설>의 논문 4편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마지막으로 쓴 자신의 철학적 서술이어서 <화담집>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 토대로 그이 사상을 정리해본다.



   1.우주관


 화담은 우주공간에 충만해 있는 하나의 원기를 형이상학적 대상으로 삼았다. 기는 우리말로 기운 이요, 물리학적 용어로 에너지다. 이런 의미에서 화담은 참다운 과학적 철학자였다. 그가 말하는 태허는 곧 우주다. 이 기 는 우주에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이 기 와 태허가 별개의 두 물건이 아니다. 기가 곧 태허요 태허는 곧 기다. 기는 우주의 질량이므로 만일 기가 없어지면 우주는 곧 파멸된다. 알다시피 이와 기는 우주와 인간의 근본원리를 규명하는 성리학의 중심개념으로 중국의 주자는 원리인 이와 그 작용인 기로 우주를 설명했는데, 화담은 정반대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형체가 없는 태허(우주생성의 이전상태)를 선천 이라 하니, 그것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쥐면 비어 있고 잡으면 없다. 이 태허에는 단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인데 후천에는 기 속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동이 일어나며 동시에 개벽이 일어난다. 이 같은 동작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그렇게 시키는가? 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이것을 이의 기라 한다.  주자학의 이선기후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기에 내재하는 법칙으로 보았다.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우주구조에 대해 우주구면의 반경은 우주의 전질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질량이 0이 되면 반경도 따라서 0이 된다. 우주의 물질과 이것을 담아놓은 공간도 다 소실되고 또 커지기도 한다는 말과 같은 우주관이다. 화담은 말하기를  이것은 주염계와 장모거와 소강절이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한 자도 써내지 못한 경지 라고 크게 자부한 것이다.

 

   2.현상계


 우주본체에서 적연부동하고 있던 일기는 어떻게 현상계로 내려와서 만물을 움직여 생성하게 하는가? 화담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일기는 저 스스로를 포함한다. 이는 무엇이냐? 그것은 음기와 양기요 동과 정이다 라고 했다. 일기는 우주공간에서 적연부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플라톤의 이른바 순수형상인 이데아와 같은 존재가 아니요, 발하려 하나 아직 발하지 않고 동하려 하나 아직 동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는 순수동작이다. 그러므로 화담은 <역전계사>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느끼어 마침내 통한다. 여기서 소극적인 음기와 적극적인 양기가 생기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천하만물을 생성, 발전케 한다.


   3.이기설


 중국의 정주학파나 우리 나라의 퇴계학파는 이와 기를 둘로 나누어 결코 일물이 아니라 했다. 그러나 화담은 기밖에 이란 없다. 이란 것은 기의 주재다. 주재란 것은 밖에서 기를 주재한 것이 아니요, 기의 움직임이 그러한 까닭에 정당성을 가리키어 이것을 주재라 한다. 이는 기보다 선행할 수 없다. 기는 본래 무시한 것이니 이도 본래 무시한 것이다. 만일 이가 기보다 선행한다고 하면 이것은 기가 유한 것이다 고 했다. 화담은 이를 기 속에 포함시켜 둘로 보지 않았다. 이것은 화담이 장모거의 기와 주자의 이를 지양, 통일하여 일원적으로 본 것이다. 이야말로 그의 독창적이 면이 돋보인다.


   4.일기장존설-기불멸설


 화담은 또 우주공간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운동은 있지만 그 기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 했다. 기가 한곳으로 모이면 하나의 물건이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물건이 소멸한다. 비유하면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물로 환원하는 것과 같다. 화담은 또 말하기를 일편향촉의 기라도 그것이 눈앞에 흩어지는 것을 보지만 그 남은 기운은 마침내 흩어지지 않는다. (물질불변설)고 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에서 하나의 촛불이 연소작용을 할 때에 그것이 타서 없어지지만 거기서 나오는 모든 에너지, 즉 위치 에너지와 열 에너지와 광 에너지 등등의 총화는 촛불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과 같다고 하는 이론과 같다. 이런 것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 한다.

그러므로 화담의  기장존설 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 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화담이 주장한 학설의 요지다.


c.화담사상의 영향 및 평가


 먼저 외국에서의 평가를 보자. 화담은 자기의 저술이 문체는 졸렬할지 모르나 천년 이래 성현들이 미처 전하지 못한 진리만을 후학에 전하기 위해 쓰며,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먼 외국까지 전달되어 동방에 학자가 나타났음을 알리고자 쓴다고 자부했는데, 이는 청나라의 <사고전서>안에 한국인의 개인저서로서는 유일하게 <화담집>이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의 뜻은 과연 적중하여 2백 년이 넘은 후대에 중국에서 빛을 보고 실현된 것이다.

 퇴계는 일찍이 말하기를 화담은 다른 주석한 책을 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연구하여 이런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하나의 특이한 일이다라고 평한 바 있고, 퇴계의  이기이원론적 주리론 과 화담의  이기일원론 을 통일하여  이기이원론적 주기론 (이와 기는 일이면서 이이요 이이면서 일이다)을 확립한 율곡은  화담의 이와 기가 서로 떠나지 않는다는 묘처에 이르러서는 일목요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책만 보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러므로 화담의 이기설은 옛 성현들이 다 전하지 못한 묘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백사 이항복은 일찍이 임금께 드리는 글에서 신이 듣기로 서경덕은 총명한 자질로 그의 학문은 황무지를 개척했고 격물치지의 이치를 사색하여 다 체득했습니다. 한 걸음에 도학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당대 호걸의 선비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근세 유신들이 그를 이황과 서로 견줄만하다고 합니다 고 말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의 학문하는 자세다. 그는 어려서부터 권위적 학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반드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실증이나 납득할 수 있는 사색으로서 확인하고 넘어갔다. 선생이 어느 한 구절을 소홀히 넘기면, 만일 알지 못할 것이라면 선유가 왜 이곳에 써서 전하려 했을까? 하고 그 뜻을 알려고 애썼다.  독서란 사색하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궁리하지 않는 독서란 소용없는 일이라고 분연히 다짐하곤 했다.

 그의 학설이 독창적이란 점에서 불교의 원효와, 그리고 그의 자연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실험자세(종달새의 비상현상에 대한 관찰과 사색 등)는 피사탑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통해 기존의 물체 낙하운동법칙을 수정한 갈릴레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화담은 당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그의 문하에선 일류석학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박순.허엽.박민헌 등은 명문 출신으로 벼슬을 지낸 부류들이고, 이지함(명문출신으로 잠시 벼슬을 지냄).강문우.정개청 등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임종시에 한 제자가 선생님, 지금 생각이 어떠십니까? 하고 묻자 살고 죽는 이치는 이미 안 지 오래다. 생각이 편안하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영육이 함께 이제 태허의 기를 마치 고향에로의 복귀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분명히 기의 세계에서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화담은 한국유학에 있어서 기철학의 전통을 수립한 대표적인 자연주의 유학자이며 조선조의 청빈한 숨은 선비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鬼神死生論](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210)

분야 종교·철학/유학

유형 작품

시대 조선

성격 논설

창작연도/발표연도 1544년

작가 서경덕

집필자 한형조

 

 

[정의]

서경덕(徐敬德)이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영혼의 문제를 자신의 독특한 기(氣) 개념을 중심으로 해명한 논문.

[내용]

그의 만년 무렵인 56세 때의 글이다. 『화담집』에 수록되어 있다.

생사와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정자(程子), 장횡거(張橫渠), 그리고 주자(朱子)의 상세한 논의가 있었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지적하지 않아 아쉽다고 운을 떼었다. 이는 후학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치도록 한 배려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대개는 일면만을 고집하거나 찌꺼기만을 붙들고 헤매는 형국이었다. 그는 그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비로소 천고의 의문을 깨트릴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죽음과 삶, 사람과 귀신의 차이는 결국 기의 모이고 흩어짐[氣之聚散]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전혀 다른 이질적 세계로의 여행이나 급격한 충격이 아닌, 동일한 실재의 연속적 운동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실재하는 유일한 근원 존재는 기(氣)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한 기는 정지된 실재가 아니라 부단히 자기 운동을 하는데 그 맥동의 파장이 수많은 생명을 낳고 또 거두어간다. 결국 생명은 기의 모임이고 죽음은 기의 흩어짐이다.

유의할 것은 죽음과 더불어 기는 흩어지되 결코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같은 미물도 그 기는 마침내 흩어지는 법이 없거늘 하물며 인간의 정신지각(精神知覺)같은 크고 오랜 기임에랴.” 죽음이란 없다는 것, 여기가 이기(理氣)의 극히 오묘한 자리이다.

그가 이 통찰에 거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박이정(朴頤正)·허태휘(許太輝) 등 문도들에게 “내가 하는 논의가 비록 촌스런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천성(千聖)이 모두 전하지 못한 자리를 간파하고 있다. 중간에 유실하지 말고 후세에 전한다면 문명의 변방인 동방에도 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고 말하였다.

 

[참고문헌]

『화담집(花潭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