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6 – 창조적 진화 (Evolution Creatrice) /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 - 1941)
(출전: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이 과학만능의 사조가 팽배하던 19세기 말에 과학적 인식의 기초가 되는 이성과 지성의 오류와 한계를 지적하고, 분석적 사고보다는 직관적 통찰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에서 빚어진 본서는, 생명은 끊임 없는 창조적 활동으로 지속되며 그것은 언제나 생성되고 있는 과정이므로, 완성된 세계를 가정하는 기계론이나 목적론으로서는 생명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사상을 그 핵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생물은 물질적 결합의 복잡한 기계적 원인에 의해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적 비약 에 의해 창조적으로 진화해간다는 것이다.
a. 생애와 작품활동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제임스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읽어보셨습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날까지 씌어진 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라며 신에게 감사했다 한다. 베르그송은 프랑스 유심론의 집대성자이며, 칸트의 관념론에 대립하는 실재론으로 20세기 사상을 준비한 독창적 사상가이자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이다. 베르그송은 음악교사의 아들로 파리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 과학, 수학, 기하학 등에서 발군의 천재성을 보였다. 그 시절에 사회적 진화론을 주장한 스펜서의 (제1원리)를 탐독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스펜서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기계론적 이론의 한계를 발견하고 철저한 비판의 입장에 선다. 대학생활중에는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으며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혼자서 명상하고 연구에 몰두하였다. 22세 때 학업을 마치고 철학교사 자격을 얻어 오랫동안 고교교사로 재직하였다. 고교교사로 재직하면서 운동과 지속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며 (시간과 자유의지)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어 1896년에는 (물질과 기억)을 쓰고, 1900년에는 학자로는 영예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된다.
처음에는 그리스 철학을 강의하고, 후에는 현대철학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그의 강의는 수강생들을 크게 감명시켜, 창가나 복도에도 그의 강의를 듣기 휘한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1907년 (창조적 진화)를 써서 하룻밤 사이에 철학계의 거물이 되었다. 이 책은 여러 나라에 변역 소개되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28년(69세)에는 아름다운 문체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그 수상 이유는 가장 심각한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철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을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1932년 마지막 대작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쓰고 1937년에는 파리에서 개최된 제9회 국제철학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를 받았다. 이때 그는 우리는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41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 점령하에서 나는 너무 오래 산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고통으로 받으면서도, 나치에 의해 박해 받는 유태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으며, 카톨릭 편에 선 적은 결코 없었다. 베르그송은 생의 철학자로서 시인인 폐기, 소설가, 프루스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으로 표현된 베르그송의 사상적인 평가까지 받고 있다.
b. 생의 철학과 엘랑 비탈
생의 철학 : 17-8세기 시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계몽철학과 과학적 지성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영국에서는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로, 프랑스에서는 콩트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로 나타났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합리론과 관념론의 주지주의적이고 이성적인 경향에 반대하고, 인간의 현실생활 자체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유물론, 생의 철학, 실존주의 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생의 철학은 계몽철학의 주지주의와 헤겔의 이성주의와 관점을 배격하고, 인간의 의지를 중시한 반이성주의 철학으로, 생철학자들은 생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직관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을 통하여 생의 의의, 가치, 본질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즉, 생의 철학은 주정주의, 주의주의 비합리주의, 반이성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철학 사조다. 이처럼 콩트의 실증주의의 칸트나 헤겔의 이성주의적 인식론을 비판하면서, 오성에 의한 직관을 중시한 사람들로는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 딜타이, 슈바이처, 짐멜 등이 있다. 이중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과 우주가 온통 생의 의지 (살려는 의지)로 가득 찼다고 보았고,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 대신 권력의지 를 주장했다. 반면 베르그송은 생명의 비약 (엘랑 비탈, élan vital)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엘랑 비탈 : 베르그송은 1907년(48세) (창조적 신화)를 통해 생물의 진화는 동물과 식물이라는 2대방향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맨 앞에 의식 있는 인간이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진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의 내면에는 항상 움직이면서 예측 불가능한 충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을 그는 엘랑 비탈 이라 불렀다. 이것은 항상 연속적으로 생겨나는 생명의 비약이라 보았는데, 이 엘랑 비탈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창조적 진화다. 생명과 반대되는 것은 물질이다. 이렇게 진화하다 보면 마침내 죽음까지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이 세계에 충만한 생명의 힘은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되어 끊임없이 비약하고 약진할 것이다. 베르그송은 이처럼 생명을 모든 존재의 기반이라고 보았다.
c. (창조적 진화)의 내용
(창조적 진화)는 이러한 방법론에 근거해서 초기의 저서(시간과 자유의지)와 (물질과 기억)에서 얻은 결론을 수용하고, 다시 생명과 물질에 대한 실증적 사실을 토대로 만유를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질서잡은 것으로, 그의 철학 거의 전체계가 웅장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거의 전체 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책 이후 25년 동안 기독교 신비체험가들에 대한 엄밀한 철학적 성찰을 한 후에 나온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그가 기독교의 창조성을 인정하고 ; 사랑의 비약 을 통한 열린 사회의 이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이 갖는 중요한 철학사적 의의는 영원한 상 아래서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우위의 형이상학에 근본적으로 반대해, 지속의 상 아래서 생성과 변화를 근원적 실재로 파악하는 역동적 형이상학을 구축한데 있다. 유동하는 실재를 불변성과 부동성의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 칸트의 물자체, 근대물리학의 기계적 우주관 등을 배격하고 그는 실재성을 부단한 생성과 운동, 그리고 창조의 과정 속에서 파악한다. 본서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는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며 그 전부를 간단히 요약하기는 어려우므로 본서의 일관된 주요 테마만을 다루기로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물 및 우리 사회에 대하여 품고 있는 견해 속에 부단히 비연속성을 도입하는 지성의 본성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본서가 생명 및 진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지성을 그 발생과 기능에서 고찰하여 그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다. 저자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 자연철학의 주요 과오는 생명진화를 하등한 형태에서 고등한 형태로 향하는 일직선적 진화로 보고, 식물적, 동물적, 인간적 생명을 동일한 경향의 단계로 생각한 점에 있다고 한다. 또한 이 견해는 본능과 지성을 동일선상의 진화단계의 차이로 보면서, 본능에는 아무런 정신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인식의 유일하고 또 최고의 능력으로서 지성밖에 인정하지 않는 주지철학의 전통이 생긴다. 철학상의 그릇된 견해는 대부분 거기서 유래하고 있다. 저자가 새로이 제창하고 있는 생명진화관의 문제점은 이상 3종의 생명형태는 같은 근원적 생명활동의 지상적인 3개의 현현이므로, 첫째로는 본능과 지성은 동일근원에서 발한 것이고 같은 성질의 것이라는 점, 즉 본능도 지성과 마찬가지로 정신에 속한다는 점, 둘째로는 지성도 또한 생명진화의 한 소산으로서 물질에 작용하는 실천적 역할을 그 본래의 기능으로 삼고 있다는 점, 셋째로는 순수인식의 능력으로서는 직관 외에는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진화과정 전체를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발생시키는 생명의 비약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자고 제안했다. 즉 진화란 기계적이 아니라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이 발전과정에서 베르그송은 2가지의 흐름을 추적했다. 하나는 본능을 통해 곤충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지성의 진화를 통해 인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이 2가지 길은 모두 세계전체에서 똑같은 생명의 비약이 활동하는 방식이다. 그의 생명이론과 진화론은 당시에 유행했던 사조, 즉 생명현상을 물리화학적 현상으로 환원하려는 유물론과, 진화의 과정을 우연적 변이와 환경의 요인으로 설명하는 다윈류의 기계론적 진화론은 물론, 목적론적 진화론도 모두 배격한다. 기계론의 비판을 들면, 예컨대 터널의 구조는 산의 지세에 따라 결정되지만 그렇다고 산이 터널의 원인 자체가 아니듯이, 생명의 진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의 필연성에 좌우되기는 하나, 진화의 원동력은 독립적인 원리인 것이다. 진화의 과정은 물질의 저항을 보다 효과적으로 극복하려는 생명의 내적 원리에 근거한 것으로, 그 과정은 비약적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서로 모순되는 두 개념의 합성어인 창조적 진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이렇다. 진화의 과정이 이전의 어떤 형태의 기계론이나 목적론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사고에 대한 영화촬영술적 기계론과 기계론의 환상)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장에서 철학적 사유의 역사 전체를 검토하면서, 그 동안의 모든 철학이 생성의 본성과 중요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정적 불연속적 개념을 끌어들여 실재의 본성을 왜곡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장구한 세월을 통해 지성 일변도로 진화해 온 인간의 의식 속에 거의 퇴화된,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가능태로서의 직관력을 이용했다. 따라서 인식론 차원에서 철학의 소임은 이러한 직관력을 개발하고 사물을 개념적 분석으로서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d. 베르그송 철학의 의의
이성과 지성 대신 직관 중시 19세기 후반의 서유럽 사상이 기계적인 분석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져버릴 위험성이 커지자, 그는 분석적 방법보다 직관적 인식을 주장하고 아무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고 보았다. 즉, 생명의 근원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성장하며 항상 새로운 자기자신을 창조해나가는 힘에 있다고 보고, 인간의 지성은 이 끊임없이 변하는 진정한 실재를 파악하지 못하며, 예술가가 갖는 직관력에 의해 비로소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결정론에 대한 반발인 베르그송의 생명주의 철학은 프랑스의 유심론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다윈과 스펜서 등의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단순한 적자생존론과 자연선택설이 아닌 생명의 창조적 진화를 주장하였다. 즉, 생명의 진화는 필연이 아니라 자유와 창조에 의해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의 파악은 지성이나 체험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직관만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그는 이성에 근거한 체계와 사실에 근거한 이론을 분명히 구분한다.
그의 눈에는 서양의 전통적 철학의 대부분은 사실에 대한 충실한 조화보다는 이성의 논리와 그 정합성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러한 결함은 그가 극복하고자 한 20세기 초의 실증주의, 과학주의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왜냐하면 과학의 분석적 사고는 화이트헤드가 지적한 것처럼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결정론 비판 -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통해서 이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과학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과학적 만능사상에 반격을 가하였다. 특히 기계론적, 유물론적 방법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였다. 그의 관점은 일종의 우주활력설로서, 생의 비약, 즉 생명 그 자체이며, 진화는 물질의 지배를 벗어나고 자아의식을 이룩하려는 생명의 에너지다. 이러한 베르그송의 사상은 당대에 열광적인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생명 비약의 이론이 기계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과학주의가 제시하는 암울한 세계관을 극복하고, 정신의 자유와 창조, 그리고 희망의 지평으로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의 열렬한 예찬자였던 제임스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아침의 미풍을 들이마시고, 새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말한 것은 이 책의 시대적 의미를 잘 표현한 것이다. 그의 사상은 학파를 형성하지는 않았으나, 20세기의 철학, 문학, 예술일반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전반에 간행된 철학적 저작으로서 본서만큼 광범하게 양향을 미친 저작도 드물다. 그것은 단지 철학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학문, 사상, 행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 미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 있어서 20세기 초엽의 사상계는 찬반의 어느 쪽이든 간에 베르그송의 신철학을 중심으로 한 열정적 논의로 지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그송 철학은 그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등장으로 청년들의 인기를 잃었지만, 그의 철학이 드러내는 세계상의 생생함과 다양함은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획일화 되어가는 오늘날, 인간이 목적으로서가 아닌 수단으로 전작 해가는 현실 속에서 신선한 베르그송의 철학을 접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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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주의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자 主知主義
분야 문학/현대문학
유형 개념용어
시대 근대
집필자 문덕수
[정의]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을 중요시하는 창작 태도 또는 그 경향.
[내용]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기존의 문화와 전통을 부정하는 반역의 고뇌에서 감각과 관능의 세계로 도피하여 탐미주의(耽美主義) 또는 주정주의(主情主義) 쪽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필요에 의해 지성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하고, 유럽 문명의 전통을 재생하며, 정신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문학적 태도가 생겨났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지주의는 첫째 지성의 절대적 우위, 둘째 탐미주의·주의주의(主意主義)·주정주의의 반대, 셋째 전통적 질서의 회복과 현대문명의 위기극복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이지(理智, intellect)와 주지(主知, intelligence)를 구별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구별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주지는 이 둘을 포함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지성의 ‘절대적 우위’란 내용면에서 보면 문학작품 속의 지적 요소, 시사적(時事的) 현상, 과학적·사상적 내용 등을 의미하고, 방법면에서 보면 질서의식에 의거하여 감정이나 본능에 대한 통제나 억제 작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주지주의는 내용도 중요하나 그 방법의 의식적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탐미주의나 주의주의(主意主義) 및 주정주의의 반대란 노만주의나 감상주의 같은 감정적·감상적(感傷的) 문학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반노만주의 태도를 가리킨다.), 또 한편 본능적·영감적 동기를 문학에서 배제하고 의식적·비평적 문학이라야 함을 의미한다. 본능은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연발생적이나 주지는 의식적 방법을 중시한다.
여기서 낭만적 천재의 개념도 부정된다. 전통의 회복과 현대문명의 위기 극복의 시도는 주지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프랑스의 주지주의는 발레리(Valery, P.)를 정점으로 하고, 영국의 주지주의는 흄(Hulme, T.E.)·엘리엇(Eliot, T.S.)·리드(Read, H.)·헉슬리(Huxley, A.L.)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은 새로운 질서 회복의 의도에서 직관적으로 추구된 사상이며, 흄의 사상적 기초에서 정립된 엘리엇의 전통과 정통(正統, orthodox)은 황폐화된 현대문명의 구제라는 의식이 그 밑에 깔려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 The Waste Land>(1922)와 논문 <전통과 개인적 재능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은 이 방면의 중요 문헌이다.
주지주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즉, 이미지즘(imagism)과 주지주의의 구별, 모더니즘(moderism)과 주지주의를 동일개념으로 보는 오류(주지주의도 모더니즘의 한 경향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미지즘은 주지주의의 전단계로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한 운동이다.
그 특성으로 정확한 사물의 언어(이 점에서 이미지즘은 사물시, 즉 physical poetry이다), 그룹의 선전 활동, 새로운 리듬과 자유시의 시도, 지성적 태도 등을 들 수 있으나, 주지주의에 오면 감각과 사상의 통합(이러한 시를 形而上詩, 즉 metaphysical poetry라고 함.), 객관적 상관물, 중층묘사(multiple description), 강력한 전통의식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주지주의를 이론면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비평가는 최재서(崔載瑞)이고, 비평과 더불어 작품으로 실천한 시인은 김기림(金起林)이다. 최재서의 <현대주지주의문학이론(現代主智主義文學理論)의 건설>(조선일보, 1934.5.2.)은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과 고전적 인간관, 엘리엇의 전통론과 시의 비개성설을 소개한 것이고, 김기림의 <예술에 있어서의 리얼리티 모럴 문제>(조선일보, 1933.10.21.∼24.)도 주지주의와 관련된 논문이다.
이밖에도 이양하(李敭河)의 리처즈(Richards, I.A.) 소개, 한세광(韓世光)의 이미지스트와 엘리엇 소개, 주지주의 기타 시의 번역 등이 이 무렵부터 계속되었고, 특히 김기림의 장시 <기상도 氣象圖>(彰文社, 1936)는 엘리엇의 <황무지>의 영향을 받은 이 무렵 주지주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죽음과 재생의 패턴으로 구성한 이 시는 이미지의 동시적 병치,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의 방법, 풍자와 아이러니, 의식의 흐름의 수법, 사상과 감각의 통합 등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형이상학적 시의 길을 열어놓은 이 장시 이후, 김광섭(金珖燮)·김현승(金顯承) 등의 주지주의 시인들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