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48 – 데카메론 (Decameron, 부제: "Principe Galeotto") / 보카치오(G. Boccacio, 1313 ~ 1375)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단테의 (신곡)에 비해 (인곡)으로 불리어지는 작품.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흑사병이 돌자 이를 피해 10명의 남녀가 교외의 별장에서 머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 1인당 1편씩 열흘간 이야기한 것을 기록한 (데카메론)은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중세적 시각과는 달리 보통사람의 육체적 욕망을 제재로 하고 있다. 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100편의 이야기는 외설과 교훈, 풍자와 관용, 로맨스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교차하면서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하는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3대 인문주의자 보카치오는 서정시, 서사시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다. 단테의 (신곡)에 비해 (인곡)이라 불리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1313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체르탈도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서 보내다가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가 있던 피렌체에 가서 살았다는 설이 있다.

1321년에 단테가 죽었을 때 보카치오는 8세였으며 가정교사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이 교사가 열렬한 단테 숭배자였으므로 어릴 때부터 말년에 피렌체 시의 요청으로 (신곡)을 강의하게 되었을 때까지 중세 최대의 문학자는 단테였다. 보카치오는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시를 지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직업을 잇게 하기 위해 보카치오가 12세가 되자 상업술을 가르칠 목적으로 나폴리로 보냈다. 문화의 중심지인 나폴리에서 보카치오는 정서적 생활에 반해 상업술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 공부에만 전념했다. 1333년의 부활제 전야, 그는 나폴리의 로베르토 왕의 딸인 미모의 마리아를 만났다. 첫눈에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일생을 통해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늘 피아메타라는 이름으로 마리아를 그리워하고 찬양했다. 1350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피렌체 공화정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아 중요한 외교관 직책을 맡기도 했다. 이때 그는 로마 교황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황제와 황후 등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동안에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문주의의 창시자인 페트라르카와 친교를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데카메론)은 1348년에서 1353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문단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민중으로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곧 외국에까지 퍼졌고, 거리의 변사들까지도 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정도였다. 인쇄술도 없고 종이도 귀한 시대에 설화형식의 단편소설이 퍼진 것이었다.1348년 피렌체에서 괴질 페스트가 만연하여 수만 명의 시민이 죽어갔으며, 부유층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할 형편이었다. 환자와 미처 피신하지 못한 빈곤한 사람들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카치오 또한 그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그 자신은 나폴리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그 참담한 광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다. 교외의 화려한 별장으로 피난 가 10일 동안 계속 매일 열 명의 남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꾸며 (데카메론)을 쓴 것이다. 이 소설을  10일 이야기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정신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대체로 문장표현이 거친 편이다. 이야기에 때때로 나오는 외설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생활을 솔직히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나오게 된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데카메론)에 나오는 100편의 이야기는,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스운 이야기로부터 도덕적인 훈화,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의 수도자들에 대한 풍자, 그리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 등 아주 다채롭다.

1370년 보카치오는 교화인 체르탈도에 돌아와 머무르다가, 1373년에 피렌테 영주의 부탁으로 성 스테파노 디 바디아 성당에서 단테의 (신곡)을 상의했다. 그것은 보카치오가 소년 단테의 위대성에 대해 강력한 인상을 받았으며, 평생토록 단테를 존경했음을 증명한 일이었다. 보카치오는 몇달 후 병 때문에 체르탈도에 돌아와 있다가 1375년 12월에 숨을 거두었다.


a.작품의 주요내용

1348년경 페스트가 피렌체를 휩쓸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꽃의 도시라 불리던 피렌체는 페허가 되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피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황량하게 시체만 뒹구는 도시의 어느 성당 안에서는 7명의 귀부인이 모여 살아갈 궁리를 모색하던 끝에 피난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들만이 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남자들을 같이 데려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이들이 토의하던 도중에 세 명의 잘생긴 청년이 성당을 찾아오게 된다. 여자들에게 설명을 들은 청년들이 찬성을 하고, 이리하여 열 명의 남녀는 교외에 있는 피에졸 언덕의 별장으로 가게 된다.

별장에 도착한 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2주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수난날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쉬시로 했기 때문에 총 백 편의 이야기를 서로가 하게 된다. 또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 부르는 발라드가 매일 한 편씩 총 열 곡이 된다.

한 사람씩 번갈아하며 하는 이야기는 변화가 풍부하고 그 무대에고 유럽 각지에서 동방에까지 걸쳐 있으며, 인물이나 성격기질 따위도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또 이야기의 내용도 우스운 이야기, 비련 이아기, 잔혹한 이야기,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이야기 등 기발한 줄거리와 기상천외한 장면이 교차되고, 아이러니와 풍자, 간지러운 선정적인 무드를 풍기면서 진행된다. 그 속에는 중세의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려는 애욕의 기쁨이 대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봉건적인 세력에 대한 신흥 부르주아 서민계층의 쌓이고 쌓인 울분이 깔려 있고 그것이 너털웃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섹스의 해방과 기쁨, 성직자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조소, 낡은 지배계급에 대한 서민의 평등한 감정이다. 여기에 나타난 여성의 매력은 그때까지 천상적인 플라토닉한 베일을 벗겨버리고 육욕과 직결되는 매력일 뿐 아니라, 간통조차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으로 시인되고 있다. 사랑의 모험이나 테크닉, 소위 색정 이야기는 이 책의 이름을 높게 만든 특색이기도 하다. 또 신의 권위로 서민에겐 금욕과 인내를 강요하면서도 성직의 특권으로 현세적인 인간의 욕망에 도취되어 있던 교회나 신부의 타락과 기만성이 비웃음거리로 통렬히 폭로되어 있다. 이것은 이윽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까지도 의심하는 부르주아의 허무적인 의식이 현실적으로 죽음이란 보편적인 사실과 대치된다.여기서는 제왕이나 교황도 똑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란 합리적인 해석이 나온다. 그러므로 마부가 왕비를 범하는 논리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적인 실리주의로부터 인간의 가치란 벼슬이 아닌 재능이므로 합리적인 두뇌가 존중된다. 선량한 우둔함보다 스마트한 잔꾀가 모럴로서 인정되고 속는 자보다 속이는 자가 갈채를 받는다.

이 책은 당시에도 너무 음란하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그 말에 대해 작가는 세상의 부인들이 좀더 도덕적인 화제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도 좀더 도덕적인 것을 썼을 것이다 라고 응수했다. 이말로 미루어 보면 이 책이 애로틱한 사랑의 모험이나 음란한 이야기로 메워져 있는 까닭도 수긍이 간다.


b.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데카메론)은 토막 이야기가 형식을 취해 10일 100회의 기상 천외한 단편 이야기들을 엮어냄으로써 초서나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후세의 유럽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문학사상 이처럼 모방변형표절을 당한 작품은 없다. 존스의 말에 의하면 각국에서 100여 종의 유사작품이 나왔다고 한다.

(데카메론)은 작품 속에 넘치는 통렬한 성직자 비판정신으로 말미암아 보카치오의 가치관이 인간의 사랑에 두어져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똑같이 격렬한 교황권력 비판을  하느님의 사랑 에 기준을 두면서 전개한 단테의 (신곡)(신성한 비극)에 비해 종종 (인곡)(인간의 희극)이라고 일컬어진다. 한때 이 작품이 카톨릭 윤리에 어긋난다 하여 소외된 적이 있으나 소위 사실주의 문학관이 대두됨에 따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 작품은 10일 동안에 전개되는 열 편의 발라드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세분화된 이야기가 독립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격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연관된 사회적 현실의 바탕은 엄연히 한 작품으로 존립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는 완전한 의미에서 문학적인 창작이 아니라, 그 당시 떠돌던 이야기와 보카치오 자신이 이전에 써놓았던 소설들의 집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무작위로 모은 이야기가 질서를 지키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작가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예술론에 입각한 통일성과 인간의 지성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성을 초월한 인상을 주는 조건이 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고발정신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신랄한 풍자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뚜렷이 읽을 수가 있기에 더욱 더 새로운 오늘날에도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보카치오가 고대문학과 고대역사의 보존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때까지 신부나 수도자의 손에만 독차지되었던 고대작품들은 자칫하면 그 보존조차 걱정되는 상태에 있었다. 보카치오는 각 수도원을 찾아 다니며 이것을 손수 베껴 후세의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또 라틴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호메로스 등의 고전문헌을 해독하려 한 점에서 페트라르카에 못지않은 최대의 인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책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으로 씌어진 최초의 작품으로 이런 점에서 중세와 인연을 끊은 근대의 인간적인 자각을 연

여명이라 평가되고 있다.



B047 – 신곡  (神曲, La divina commedia) / 단테(Dante Alighieri, 1265 ~ 1321)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세의 모든 학문을 총괄하고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쌓은 장편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저술한 불멸의 고전.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방문하여 천태만상의 인간들의 죄와 벌을 목격하고, 구원의 여인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의 비전을 보는 것을 중심 플롯으로 하는  신곡 은 단테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와 당대의 정치상황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독교가 삶의 틀이었던 중세의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a.작자의 생애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일컬어지는 단테, 그리고 (신곡)은 밀턴의 (실락원)이나 번연의 (천로역정) 등과 더불어 최상의 기독교 문학이라 불리어진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유럽 중세문학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출신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대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게 되었다. 세레명은 두란테(Durante)인데, 후에 생략하여 단테(Dante)라고 고쳤다. 단테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계모의 손에 키워져 그는 모성애를 알지 못한 채 동경의 마음만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했으나 장남인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게 된 단테는 책임감이 있고 학구심에 불타는,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신곡)에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지옥, 연옥을 안내하는 데서도 나타나듯, 단테는 그리스 로마 고전작가들의 문장을 규범으로 삼았다. 동시에 새로운 사조에도 민감했다. 당시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일어난 속어시에 눈을 돌렸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시법을 익혀 그 분야에서 제 1인자임을 자인했다.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베아트리체는 그가 9세가 되던 해에 만났다. 그후에도 단테는 그녀의 모습을 가슴 속에 새기며 성장했는데, 고독한 청년의 마음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현실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연인이었기에 그 사랑은 더 깊었고 어느덧 성모 신앙과도 같은 마음의 지주가 되었다.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녀는 단테의 영원한 연인이 되고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승화되었다.

단테의 역작 (신생)은 그녀가 죽은 뒤인 1292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책 끝머리에서 그녀에게 품은 지극한 사랑에 부응할 예술작품을 쓰겠다는 결의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있어서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단테의 청춘시대는 이상과 같이 교우와 학문과 시와 슬픈 사랑속에서 지나갔다. 그러나 필생의 대작 신곡의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앞길에는 뜻하지 않은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테가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참가한 것은 1295년 카피타노 델포플로의 일원이 되면서부터였다. 동시에 그는 통령선출 심의위원회의 고문을 겸했고  의사 약제사 조합 에도 가입했다. 이것은 귀족 출신자가 공적 정치활동을 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또 이듬해에는 1백인 위원회 위원이 되고, 그뒤 3년간 도시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단테에게 있어서 운명의 해라고 할 수 있는 1300년 그가 (신곡) 서두에서 노래한 인생의 반을 맞이한 해다. 그의 나이 35세, 그해 6월 14일 그는 도시국가의 최고지위인 통령에 선출되었다. 공직에 참여한 지 불과 5년인 그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이 제도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피렌체 공화국이 채택한 것으로, 시내 6지구를 대표하는 6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무렵 피렌체에서는 집권세력인 겔프 당이 백당과 흑당으로 갈려 또다시 격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백파에 속해 있던 단테는 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2명의 피렌체인과 함께 로마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 동안에 국내의 사태가 급전했다. 흑파가 정권을 잡아 백파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1302년 1월 27일, 그는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되어 벌금과 공직추방, 그리고 2년간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출두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단테는 출두하지 않았다. 이에 3월 10일에는 영구추방이 결정되는 한편, 시 정부에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가혹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런 이유로 단테는 그리운 조국의 땅을 두번 다시 밟지 못했다. 1302년 봄은 단테에게 있어서 정말 쓰라린 시기였다. 고국에 돌아가 마음의 준비라도 한 뒤 처벌을 받았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텐데 여행길에서 가혹한 추방의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단테는 고독한 천애의 표랑생활이 시작되었다.

단테는 이 무렵 대서사시 (신곡)의 완성을 목표로 하여 외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추방 후 얼마 되지 않아 붓을 들기 시작한 걸작은 (지옥) (연옥)으로 진행되어 마침내 (천국)의 가경으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편은 특히 신학적인 논의를 초래할 만한 대목인 만큼 용의주도한 학문적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맑은 심경에 도달한 시인은 한걸음 한걸음 정진해나갔다.

1315년 피렌체 공화국은 단테가 개심의 뜻을 보이고 일정기간 금고형에 응한다면 은사를 내리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단테가 이를 거절하자 또 다시 그의 죄상을 추인함과 아울러 자식들에 대해서도 영구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만년의 단테에게는 파란 많은 반생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조용한 안주의 땅 라벤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1317년 여름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 기도 노벨로 공의 작은 궁전이 그를 따뜻이 예우해주었던 것이다.

1321년 여름,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이웃나라 베네치아 공화국과 불화가 시작되자 기도 노벨로 공은 그 화평교섭을 단테에게 요청했는데, 단테는 이 교섭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말레리아에 걸려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은 9월 13일 밤 파란 많은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에 탈고되었다. 기도 노벨로 공은 이 시인의 머리 위에 월계수 화관을 정중히 바쳤다. 그의 관은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단테가 숨진 이후 뒤늦게 단테의 위대성을 깨달은 피렌체 시민들은 단테의 유골을 옮겨가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자, 그 대신 사원에 등을 달고 해마다 단테가 세상을 떠난 날 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그렇게도 피렌체의 개관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단테의 소망이 후에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셈이다. 단테의 사후 수년 뒤 피렌체에서는 국보와 같은 대인물을 이유 없이 괴롭힌 것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사원이나 일반에게 널리 읽도록 하고, 주해하게 했다. 그리하여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가 이를 최초로 주해했다.


b.작품의 주요내용

지옥편: 9개 지옥으로 분류

연옥편: 하의 연옥, 상의 연옥, 지상낙원 하의 연옥(제1환도--제7환도)

천국편: 제1천--제10천

(신곡)은 단테가 작중의 인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지옥과 연옥천국 등 내세의 영혼의 세계를 두루 편력하면서 내세의 이상한 모습을 모두 목격하고 거기서 심판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모습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35세 되던 해 성 금요일 전날 밤 단테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언덕 위에 빛이 비쳐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막아 올라갈 수 없었다. 그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길을 인도했다. 그는 우선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 이 산의 꼭대기에서 단테를 베아트리체를 따라간 단테는 천국에 이르러 성 베르나르의 안내로 천상 속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맛보게 된다는 줄거리의 내용이다. 전 일정은 7일 6시간이다.


1. 지옥편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로 이곳에 있는 영혼들은 죽을 때까지 악과 이웃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지옥에 이르기 전에 지옥의 안뜰이라고 하는 컴컴한 들판이 있는데, 여기는 태만한 자들이 있다. 이어 카론이 사공이 되어 지키고 있는 아케론강이 나타난다. 이 강은 지옥문을 지나 곧이어 펼쳐지는 지옥 안뜰과 본 지옥을 구분짓고 있다.

제1지옥: 이곳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무신론자 이교도들이 벌을 받는 곳인데, 아담, 하와,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 왕 등은 특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호메로스, 헥토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등이 그 지옥에 있었다.

제2지옥: 여기서부터가 진짜 지옥인데 여기에는 애욕의 죄를 지은 자들의 지옥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 즉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 원인이 된 미녀 헬레나 등이 등장한다. 반인반수의 얼굴을 한 한 미노스가 공정하게 심사를 한다.

제3지옥: 이곳은 미식가와 폭식가의 지옥으로 실컷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체르베로스라는 삼두견이 살을 찢고 있었다.

제4지옥: 재산을 모은 자와 낭비자가 모여 있는 지옥이다.

제5지옥: 여기는 분노에 몸을 맡긴 자들의 지옥이다.

제6지옥: 이곳부터 하부지옥이다. 독신죄, 이교도의 쾌락을 생활최고의 원리라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벌받고 있다.

제7지옥: 이곳에는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미노타우루스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

제8지옥: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자를 사기친 죄인들이 있는데 10개의 골짜기로 나뉘어져 있다.

제9지옥: 반역의 죄, 폭정의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 아우를 살해한 카인, 단테의 정적인 황제당의 죄상을 다룬다.


2. 연옥편

연옥은 정죄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Peccata), 곧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폭식 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제를 받게 되고 이어 지상낙원으로 오를 수 있다. 이 연옥에서 정죄하고 있는 죄들이 지옥에서 벌받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것임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지옥의 죄들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것이고 연옥의 죄들은 구원받은 영혼들로서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서 이곳에서 정죄할 수 있는 죄인 것이다. 이 지상낙원은 지상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교회와 군주국의 보편적인 권력들을 조화시킬 줄 안다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엠피레오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는 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신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3. 천국편

천국은 빛과 춤과 노래와 완전한 덕이 있는 왕국이다. 여기 있는 영혼들의 본거지는 정화천이나, 단테가 도착하자 그에게 축복의 여러 계층을 알려주기 위해 각각 그들에게 적합한 지역으로 내려가 그를 맞는다. 천당은 10개의 천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8천에서 영혼의 구원에 가장 중요한 신학상의 질문을 받는다. 성 베드로가 신앙에 대해, 성 야고보가 희망에 대해, 성 요한이 사랑에 대해 각각 질문하는데, 단테는 훌륭히 합격하여 제9천으로 승천한다. 베아트리체는 여기서 관조

의 상징인 성 베르나르에게 안내역을 넘겨준다. 새로운 안내역 성 베르나르는 성모 마리아에게 단테의 염원을 무언중에 전달하고 이리하여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게 되어,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시성의 눈앞에 하나의 바퀴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셋이면서 하나인 바퀴가 빛을 낸다. 그 바퀴 속에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 배례하며 법열에 취한다. 성자들의 기도하는 동작은 마치 대성당의 집사를 집례하는 성직자들의 조용한 동작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하여 단테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신곡)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신곡)은 풍부한 지식과 깊은 인생체험을 가진 희귀한 재능에 의해 씌어진 중세문학의 보석이다.


c.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신곡)은 조국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해 방랑지에서 19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전곡 14,233행 100가로 나누고, 다시 (지옥)편 34가(서곡 포함),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구성되어 있다. 33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가 속죄에 오른 연령에 해당하는 수이며 100은 완전수 10의 자승수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신곡은 일시에 발표된 것이 아니고 (지옥)편이 1300--1308년에, (연옥)편이 1313년에, 천국편은 사후에 유고작으로 발표되었다. 

제명은 최초에는 (코메디아Comedia)라고만 발표되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 후세인들이 내용이 숭고함에 연유하여 디비나(Divina;신성한)를 붙여 신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작자가 코메디아라고 붙인 것은 시가 고뇌와 증오로부터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그친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며, 그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회오와 증오로부터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그친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며, 그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회오와 정화로 다시 염원의 복지에 도달한다는, 항상 정진의 여로를 그린 자유의식의 일대 신비적종교적 환상의 시다. 단테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청춘기에 큰 영향을 중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고한 플라토닉 러브에서 연유되는데, 그의 사망이 준 충격을 종교적 차원에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애사건은 위대한 작품을 쓰게 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 10년 동안에 걸친 단테의 타락한 생활에 대해서는 (신곡) 첫머리의 캄캄한 숲을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지상낙원에 모습을 나타내어 단테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지옥)편과 (연옥)편에 걸쳐 단테의 동반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상징한다. 천국을 편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간적 능력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천국까지 인도자의 구실을 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베아트리체는  신앙의 지식과  신학 및 종교적 상념 을 상징하고 있다.

(신곡)에서 골짜기는 (지옥)편, 언덕은 (연옥)편, 하늘은 (천국)편을 시사한다. 아홉 구역으로 분류된 지옥은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의 세계이다. 일곱 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그 죄를 깨끗하게 하는 곳이다. 열 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는 천국은 인간들이 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그 결말은 기쁨으로 넘쳐흐른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지옥에 울고, 연옥에서 기대했으며, 천국에서 웃었다.

또 하나는 추방당해서 20년이나 표랑한 그로서 정치이상과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작용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다음으로는 언어학적 의의이다. 라틴 어가 주로 사용되던 당시에 단테는 토속어인 이탈리아 어로 (신곡)을 쓴 것도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이는 당대의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유럽에 민족주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자료는 성서, 그리스로마의 모든 고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오거스틴의 신학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곡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창작 중 하나이며 인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이다. 이로써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 어로부터 분리, 국민문학이 완성되며 단테는 국민문학의 비조가 되었다. 괴테도 이 시를 가리켜 인간의 손으로 된 최고의 것 이라 했고, 헤겔, 쇼펜하우어, 셀링 같은 철학가도 이 연구를 평생 동안 놓지 않았다. 중세기 사상의 총괄인 동시에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의 지적 심오, 신비주의자의 정신적 비약, 문예부흥의 선구자로서의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을 인곡 이라 한 것은 단테의 (신곡)에 대한 대칭 개념이며, 보카치오, 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작가로 지칭하는 것도 그의 문학이 모든 중세사상을 총체적으로 정리, 새로운 세계로 비약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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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출처: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17-07-28 22:42:06


동음이의어·다의어/ㅅ



1. 新曲

2. 神曲

2.1.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2.1.1. 신곡 읽기의 어려움

2.1.2. 신곡 읽기의 즐거움

2.1.3. 줄거리

2.1.3.1. 지옥편

2.1.3.2. 연옥편

2.1.3.3. 천국편

2.2. 아사키 1집 앨범, 혹은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

2.3.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에서 나오는 노래

2.4. 일본의 인터넷 용어

3. 神麯


1. 新曲[편집]


새로 나온 노래.

단테 신곡 들어봤어? / 어 노래 좋더라


2. 神曲[편집]


2.1.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Michelino_DanteAndHisPoem.jpg


단테 알리기에리의 시집으로 단테가 저승 세상(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게 줄거리.


영어로 하면 Divine Comedy다. 본래 고전 시대 그리스에서 Comoidia(코미디의 어원)라는 말은 희극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비극과는 반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극 장르를 의미했다. 또한 극중의 단테가 천국에 이르게 되므로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다. 또 당대에 진지한 책은 전부 라틴어로 쓰여졌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적힌 것은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당시 단테가 이탈리아 방언을 섞어서 만든 이탈리아어로 쓴 이 책은 commedia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절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죄인들을 비웃으며 개드립을 치는 내용이 아니다.[1]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단테는 <희곡(La Commedia)>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1555년 베니스판 이래 희곡 앞에 "Divinia"가 추가되어 <신곡>이 되었다.[2]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옥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각각 3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서곡이 더해져[3] 총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문어인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여져 이탈리아어의 생성과 발전이 있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근대까지 유명한 저작들은 모두 라틴어로 쓰여졌다는 점을 볼 때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당대에 당시의 지역 언어로 작품을 쓴 덕에 이탈리아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실제로 당대의 이탈리아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미노타우르스나 케르베로스 등이 지옥의 악마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웬만한 고어물 저리 가랄 정도의 잔인한 묘사로 인해 말이 많다. 또한 무함마드와 그의 사위 알리가 기독교의 분열을 조장한 죄로 지옥에 있다는 설정 때문에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취급이 안 좋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종교차별, 우월주의의 구역질나는 시를 명작이라고 언급하는 게 어이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다만 이건 시대가 시대니 그러려니 하자. 교황을 포함한 성직자들도 대놓고 지옥에 있다고 묘사한 등 과연 700년 전에 쓴 게 맞는지 파격적인 점도 많아서인가, 곳곳에서 금서로 지정할 때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가 대접받고 있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트로이 전쟁에 대해 호메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는 것.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가 원래 트로이 옹호론자였고 그것에 영향을 받았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단테는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로마의 제정과 기독교의 이상이 절대적으로 조화되기를 꿈꾸었다.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의 고향인 트로이를 옹호하고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삼은 것은 어느 것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복합적인 원천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고통 없는 림보에서 편히 지내고,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이스카리옷 유다와 동급의 처벌을 받고 있는 등, 로마 제정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단테의 신곡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지옥이나 천국을 바라본 게 아닌 개인적인, 즉 주관적인 시점에서 쓰여진 부분이 더 많음을 알 수 있고, 이 때문에 단테가 말하는 지옥, 연옥, 천국은 실제의 모습으로서 비추어지기보다는 문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지옥편에 비해 연옥편과 천국편은 난해한 내용으로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천국편은 특히 수비학적이나 신비주의적 묘사, 중세 시대 신학적 관점이 잔뜩 들어있어서 혼란스럽게 하고, 특히 3주덕(믿음 소망 사랑)이 나오면 미친다(...). 애초에 단테도 천국편의 시작에서 천국편은 '좀 되는' 사람만 읽으라 말하는데 하단의 신곡 읽기의 어려움 문단에 자세히 설명되 있지만 천국편은 해석본의 각주 보느라 머리가 아파온다(...).

서양에서는 Comedia Divina라고 해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따로 분리해서 파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지옥편의 세계에 대한 묘사는 촥촥 들어오는데 연옥과 천국은 뭔가 두루뭉실하며 이해가 안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가리켜서 '현실이 지옥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더라.


지옥편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단테 클럽'이라는 소설 등 많은 이야기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로뎅의 '지옥의 문'도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고전 RPG 울티마 시리즈의 4편도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단테스 인페르노도 제목부터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게임.


한국의 '새벗' 이란 출판사[4]에서 아동용(!)으로 이 책을 번안한 적이 있다. 제목은 '낮도 밤도 없는 곳'. 주인공은 한국인 소년으로, 원작에서는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인도하는데 한국판에서는 김삿갓(…)이 길을 인도하신다. 대체 조선의 김삿갓과 기독교의 지옥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겠지만, 아마도 저자가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인을 꼽느라고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지옥편에서는 원서를 그대로 따르는 편이지만, 한국인 독자에게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한국인 죄인(주인공의 옆집 아저씨)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김삿갓이 지옥과 연옥[5]을 안내하고 천국편은 주인공의 어릴적 담임 선생님이 인도하시는데, 원서든 한국판이든 연옥편과 천국편은 재미가 덜하다(…). 삽화가 옛날식이라 붓과 먹을 사용해 아동이 보기에 무리가 없지만, 삽화가의 필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겉보기에 엉성해 보여도 굉장히 그로테스크해서 무섭다(…). 특히 얼굴이 돌아간 죄수들의 모습은 삽화와 소설을 같이 읽어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


게임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의 테러조직 벨뜨로는 이 작품의 빠 수준(…)이긴 하다만 현실은 그저 "이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깨닫게 해주겠다능!" 이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는 주제에 감히 이 작품의 구절들을 지껄이며 테러를 벌이고 다니는 중2병 환자들.


이 신곡과 비교해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人曲, Human comedy)'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선 지옥편 하나만 파는 학과도 있는 모양이다(…). 단테의 작품만 연구하는 학자가 따로 있을 정도니 그만큼 서양문학연구계에서 인정받는 대작이라고 봐야 한다.

단테의 신곡이 이처럼 대작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서양문화의 두 원류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하나로 통합한 고전작품이기 때문이다.


1d4chan에서는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 지옥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 최초의 자캐 삽입 팬픽을 쓴 거니까[6]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다(...)고 까고 있다. 단테 항목에는 대신 Warhammer 40,000의 등장 인물인 챕터 마스터 단테가 설명되어있다.


세인트☆영멘에서는 하계에 머무르는 영들을 위한 천계 관광 가이드북으로 소개되는데, 하필 1권이 지옥편이라 다들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오는 사람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구성이라고...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다며 흔히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보통 정치적 무관심이나 잘못된 형태의 양비론을 비판할 때 인용한다. 그런데 정작 신곡에서는 이런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비슷한 문구를 찾자면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았지만 반항하지도 않은, 불쌍한 영혼과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언급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아니라 연옥에 가깝다. 위치도 림보보다 오히려 더 위에 있다.


이렇게 왜곡된 이유에 대해선 존 F. 케네디에게 책임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케네디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및 1963년 평화봉사단 연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한 형태로 저 문구를 언급하였다. 케네디가 단순히 신곡의 구절을 잘못 읽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는다.


2.1.1. 신곡 읽기의 어려움[편집]


단테의 신곡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끝까지 읽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다. 괜히 단테학자들이 있는게 아니다.


작품과 주변적 상황의 이해-당시 언어, 문학의 특징 단테의 짠내나는 인생과 당시 피렌체의 상황, 단테 이전의 고전들에 대한 지식 등등이 필요하다.[7] 이것을 계기로 다른 교양상식을 키울 수 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복잡성-거의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와 단테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이러니 일반적으로 등장 인물을 물으면 단테와 버질, 비아트리체 정도만 나올 수밖에.

그리스 로마의 신화 및 고전 작품들의 인용- 위에 언급된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요 베르길리우스, 토마스 아퀴나스등에 대한 단테 나름대로 받아들인 관념론이 나온다.

서사시의 전통-굳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호메로스만 생각해보자.

미주의 압박. 예전 번역본은 한 곡이 끝나면 주석이 마지막에 몰아서 기재 되 있어서 한 곡 읽고 주석 보고(...) 요즘 책은 한 페이지 아래에 깔끔하게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신곡을 읽는건지 주석을 읽는건지 구분이 안된다(...)


2.1.2. 신곡 읽기의 즐거움[편집]


서로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음 - 최소 문자적, 알레고리, 도덕적, 신비적의 네 가지 방법론으로 읽을 수 있다.

생생하고 효과적인 묘사 - 지옥의 묘사가 매우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사디스트?

여러 교양과 지식을 넓힐 수 있음 - 중세 민중들의 세계관이나 당시 지리, 천문학 등. 물론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지만, 어디서 아는 척 좀 할만하다. 근데 신곡을 완전히 마스터할 정도면 아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지식인이 된다.

죄인들과 선인들의 모습은 일종의 사회적 풍자라고 볼 수 있기도 해서, 단테 본인과 당대의 정치관을 알아볼 수 있다.


2.1.3. 줄거리[편집]


단테가 35세 때 밤날에 길을 걷다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영어로는 버질)가 내려와 지옥, 연옥을 안내하고, 이후 베아트리체가 그를 이끌어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2.1.3.1. 지옥편[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50px.png

이 문단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지옥편(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단테가 35세 때 밤날에 길을 걷다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영어로는 버질)가 나타나 단테를 구해주고 그를 지옥으로 인도해준다. 지옥의 뱃사공 카론이 꾸물거리는 죄인들을 노로 후려 차며 배에 태우고 있다.


이후 단테는 그를 지나서 지옥의 문과 거기에 새겨진 글귀를 보게 된다.[8] 가장 유명한 구절인 제 3곡 첫번째 부분은 마지막의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라샤떼 오녜 스페란자, 보이 낀뜨라떼: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9]


(나무위키에 기재되어 있던 역본)

나를 지나는 사람은 비탄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하느님의 권능과 최고의 지성과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 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민음사 역본)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의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홍신문화사 역본)[10]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한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파멸한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 최고의 지혜, 그리고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오직 무궁(無窮)이 있을 뿐,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학원출판사 역본(1984년출판)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있거든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 가거라.

파멸의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 없나니

오직 무긍만이 있을 뿐, 나는 무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구글 번역본)

나로 말미암아 너희는 불행의 도시로 빠져 나간다.

나를 통하여 당신은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됩니다.

예를 들어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통해서.


내 직물 이동의 창시자 :

나를 뒤엎 으려면 힘의 신의 임무가 있었다.

최극 지혜, 그리고 원시 사랑.


나보다 먼저 만드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물건을 저장하는 것이었다.

영원하고 영원한 나는 견디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십시오.


(이탈리아어 원본)

Per me si va ne la citta dolente,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fecemi la divina podestate,

la somma sapienza e 'l primo amore.


Dinanzi a me non fuor cose create

se non etterne, e io etterno duro.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영어 역본)

Through me you pass into the city of woe: 

Through me you pass into eternal pain: 

Through me among the people lost for aye. 


Justice the founder of my fabric moved: 

To rear me was the task of Power divine, 

Supremest Wisdom, and primeval Love. 


Before me things create were none, save things 

Eternal, and eternal I endure.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예수가 내려오기 전의 그리스/로마 시대의 위인들도 등장하는데, 단순히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도덕적인 문제들로 인해 추락한 것으로 묘사되며, 같은 연유로 연옥이나 천국에 있는 비기독교인들도 보인다. 천국만큼은 안 되더라도 적어도 고통이 없는 림보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헥토르, 살라흐 앗 딘 같은 인물은 궁전에서 살며 대접받는다. 다만 그들도 생활은 편할지라도 천국에 가서 하느님을 대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지옥에는 단테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던 사람이나 그의 정치적 라이벌도 많이 들어있다(…). 심지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살아 있었는데도 영혼은 이미 지옥에 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뭐야 이거. 단테가 지옥의 몇몇 죄인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것도 특징. 반대로 몇몇 죄인들에겐 꼴 좋다는 식으로 비웃어주기도 한다.


지옥의 최하층에는 마왕 루키페르가 파묻혀 있다. 루키페르는 그 입에 3명의 악인을 물고 있는데, 가운데에 물려있는 것은 이스카리옷 유다이고, 양 옆에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물려 있다.


루키페르의 몸을 타고 올라가(…) 지옥을 빠져나가고 나면 연옥산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루키페르의 몸이 지구 한 가운데에 있어서 아래 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 작중 단테도 이 부분에서 약간 헷갈려한다. 연옥산을 오르는 내용이 연옥편이다. 연옥산을 오른 다음에는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대신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와 함께 천국을 여행하게 된다. 이 부분이 천국편.


지옥의 구조는 다음과 같으며 역피라미드의 원추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들 계속 추가바람.


지옥의 문

아케론 강

뱃사공 카론이 죄인들을 강너머 지옥으로 실어나른다.[11] 강주변에는 생전에 어느편에도 가담하려들지 않았던 기회주의자들이 생전의 죄과에 대한 업보로 말벌, 말파리등 독충, 해충들에게 마구 쏘이며 한 폭의 깃발 뒤를 우르르 쫓아다니는 벌을 받고 있다.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이런 자들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나. 이들 중 '겁을 먹고 큰 지위를 버린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해설에 의하면 이 사람이 교황 첼레스티노 5세라고 한다(...)교황을 지옥에 처넣는 단테의 위엄[12][13]

제1층: 림보(변옥, Limbo)

고대인이나 아기 등 세례성사는 받지 않은 선한 자가 가는 곳으로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고 고급대우를 받으나 대신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비록 지옥이지만 죄를 짓지 않은 아기, 또는 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운이 아주 좋으면 연옥을 갈 수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 들를 수 있는 정도인 듯(단테의 길잡이 베르길리우스 등). 잠깐 모든 희망을 버리라면서[14]

등장인물: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자 대부분(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제논, 디오스코리데스, 오르페우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15], 히포크라테스, 리노스, 키케로[16], 세네카[17], 갈레노스 등등. 에피쿠로스 양반은 6층으로 낙오되셨다. 안습.), 엘렉트라, 카밀라, 펜테실레이아, 라티누스 왕과 라비니아 공주[18], 유니우스 브루투스[19], 루크레티아[20], 율리아, 마르차[21], 코르넬리아[22], 율리우스 카이사르, 살라흐 앗 딘, 이븐 루시드#, 이븐 시나@ 등. 그 외에도 아이네이아스, 헥토르 등의 트로이 측 인물들[23], 위대한 다섯 시인 중 4명(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24]

미노스의 심판 - 여기서부터는 진짜 죄인들이 떨어지는 지옥으로 꼬리 달린 괴물 미노스가 망자의 죄를 판단해 그 꼬리로 자신의 몸을 감는 횟수대로 그에 해당하는 층으로 떨어져간다.

제2층 색욕 지옥

색욕에 빠져 간통 등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놓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시도 때도 없이 폭풍에 흽쓸려야 한다.

등장인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또는 프란체스카 다 플렌타)와 그녀의 남편의 동생이다 연인인 파올로 말라테스타[25], 세미라미스, 디도, 클레오파트라, 헬레나와 파리스, 아킬레우스 헥토르는 바로 위 림보에 있건만... 그나마 그리스 측 영웅 중에는 제일 좋은 대우다, 트리스탄 이졸데는?

제3층 폭식 지옥

폭음폭식과 중독에 빠진 자가 가는 곳. 죄인들이 더러운 비를 맞고 흙탕물에 누워 신음하고 있으며 케르베로스가 시도 때도 없이 죄인들을 물어뜯는다.

등장인물: '치아코'[26]라는 별명을 쓰는 피렌체 출신 남자, 교황 보니파시오 8세[27]

제4층 탐욕 지옥

탐욕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에 늑대의 모습을 한 부(富)의 악마 '플루투스'가 짖어댔지만 베르길리우스의 일갈에 깨갱한다. 탐욕 지옥에는 재물로 죄를 지은 자들, 즉 낭비가 심했거나 인색했던 죄인들이 갇혀 있다. 가슴으로 무거운 짐[28]을 굴리면서 서로 몸이 부딪히면 서로의 죄를 탓한다. 성직자들도 여기에 많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단테가 알 만한 사람도 있을것이지만 이미 얼굴이 시커멓게 칠해진 상태라 알아볼 수가 없다.

제5층 분노 지옥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곳. 스틱스 강[29]이 주변을 두르고 있으며 중심부에는 디스의 성벽이 있다. 죄인들은 이 스틱스 강에 빠져 서로를 물어뜯으며 허우적대고 있다.

등장인물: 플레기아스[30] 필리포 아르젠티[31]

제6층부터 시작되는 지옥의 하부는 특별히 '디스 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디스 시에 진입하려 할 때 악마들이 단테 일행을 방해하나[32], 천사의 도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위의 지옥들이 간접적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인들이 간 곳이라면 여기부터는 이곳부터는 직접 피해를 끼친 사람들이 간다.

제6층 이단 지옥

이단자들이 가는 곳. 죄인들은 뜨거운 관 속에서 신음하며, 죄악의 정도에 따라 열의 세기가 심해진다.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면 관의 뚜껑이 영원히 닫힐 것이라고...

등장인물: 에피쿠로스[33], 파리나타 델리 우베르티[34], 카발칸테 데이 카발칸티[35], 프리드리히 2세[36], 이름 모를 추기경[37], 교황 아나스타시오 2세[38]#

6옥에서 7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미노타우르스가 막고 있지만 역시 베르길리우스의 일갈로 물리친다(...)

제7층 폭력 지옥

폭력을 휘두른 자들이 타인에게 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하느님과 자연에게 해를 끼친 자로 나뉘어져 고통받고 있다.

제1원 플레게톤 강 - 타인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는 곳. 폭군과 독재자들도 여기에 있다. 죄인들은 끓고 있는 피의 강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죄악의 정도에 따라 다른 깊이에 놓여진다. 강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자들은 켄타우르스가 화살로 쏘아 맞춘다.

등장인물: 알렉산더 대왕[39], 디오니시우스 1세[40], 에첼리노 다 로마노[41], 오피초 다 에스테[42], 구이도 드 몽포르[43], 아틸라, 피로스 1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44], 리니에르 다 모르네토/리니에르 파초[45] 그리고 켄타우로스인 케이론, 네소스[46], 폴루스[47]

제2원 자살자의 숲 -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자살자들과 재산 탕진자들)이 가는 곳. 자신의 육신을 저버린 죄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에 최후의 심판 후에도 몸을 되찾지 못하고 나무가 된 자신들에 스스로의 육신을 매달게 된다. 재산 탕진자들은 숲 속에서 괴물에게 쫓긴다. 다만 신념에 따라 자살한 사람들은 예외. 예를 들어 로마 시대 카이사르에 맞서 공화정을 옹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카토. 단테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카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는지, 그를 림보도 아니고 연옥의 섬을 지키는 수호자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다른 망자들과는 달리 연옥의 산을 올라갈 수는 없다고.

제3원 - 하느님과 자연 순리에 해를 끼친 자들이 가는 곳. 신성 모독자, 동성애자[48], 고리대금업자[49]들이 뜨거운 사막 위에서 불의 비를 맞으며 고통받고 있다. [50]] ]

제8층 사기 지옥 (말레볼지아)

사기로 주변 사람들을 파멸으로 몰아놓은 자가 10개의 구덩이에서 10종류의 벌을 받고 있는 곳.

제1원 - 인신매매자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제2원 - 아첨꾼들은 오물에 처박혀 역한 냄새를 맡고 오염된 손으로 자신의 몸을 긁으며 신음하고 있다.

제3원 - 성직 매매자들은 거꾸로 처박히고 발에 불이 붙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다음 대상자가 이 지옥에 떨어지면 현재 벌받는 죄인은 밑으로 떨어진다.[51]

제4원 - 마법사, 점쟁이, 거짓 예언가들은 머리가 뒤로 뒤틀린 상태로 걷고 있다.[52]

제5원 - 탐관오리(부패한 정치인들)들은 끓는 역청 속에 빠진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악마들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악마들은 인간인 단테를 잡으려고 하지만 악마의 대장이 그들을 막으며, 단테와 버질 일행을 에스코트 할 열 명의 악마를 뽑는다. 여기서 악마들을 따돌리고 빛의 속도로 도망치는(…) 용자스러운 죄인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를 잡으려다가 놓쳐서 알리키노라는 악마와 칼카브리나 라는 악마가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역청에 빠져 버린다.[53] 다른 악마들이 재빨리 갈퀴로 건저내지만 이미 속까지 까맣게 타버렸다. 단테 일행은 이 광경을 보고 악마들을 내버려둔 채 자기들끼리 갈 길을 간다.

제6원 - 제5원에서 한참 깎아지른 절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구역. 악마들은 단테 일행을 추격하지만, 버질은 단테를 안고 절벽 밑을 미끄러지듯 뛰어내려간다.[54] 위선자들은 겉은 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속은 납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옷을 입고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유대인 제사장은 땅바닥에 못박힌 채로 다른 죄인들한테 끊임없이 밟혀야 한다. 베르길리우스에게 제6원의 한 죄인에게서 제5원과 6원을 잇는 다리는 끊어져 있다고 말하자 베르길리우스는 악마들이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한다. 그리고 단테와 함께 맨몸으로 절벽을 올라 7원으로 건너간다. 지친 단테에게 여기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 독촉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덤.

제7원 - 도둑들은 뱀과 도마뱀 같은 파충류들에게 물리고 있으며 자신들도 끊임없이 뱀과 도마뱀으로 변한다.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저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발이 6개 달린 뱀이 덤벼들어

우리 밑으로 다가온 세 망령 중 하나를 휘감았다.


가운뎃발로 배를 휘감고 

앞발로 두 팔을 움켜잡더니,

두 뺨을 이리저리 물어뜯었다.


......(중략).......


마치 뜨거운 초가 녹아내리듯

두 몸은 서로 엉키더니 색깔이 뒤섞여

이전에 지녔던 각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중략).........


다른 두 망령이 그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저런, 아뇰로. 네 몸이 변하고 있어!

완전히 둘이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아닌걸!"

제8원 - 사기와 기만을 저지른 자들은 화염에 휩싸여 괴로워한다.

등장인물: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관[55]

제9원 - 분열을 조장한 자들은 구역을 끝없이 돌며 악마들에게 칼로 썰리고 재생하길 반복한다.

등장인물: 무함마드와 그 사촌 알리[56]

제10원 - 위조자들은 온갖 종류의 질병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이 질병 중에는 정신병도 포함된다.[57]

제9층 배반 지옥

지옥 가장 깊숙히 있는 곳. 지옥의 강들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코키투스라는 얼음 호수[58]다. 국가, 가족, 친구, 스승, 은인 등을 배신한 배신자들이 가는 곳으로 영원히 차가운 얼음 속에 쳐박혀 신음해야 한다. 루시퍼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1구역 '카이나' - 가족과 친족들을 배반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제2구역 '안테노라' - 조국, 정치적 신념 또는 동료들을 배반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제3구역 '프톨로메아' - 손님[59]을 배신한 사람들이 얼굴만 뺀 채로 얼음속에 누워 갇혀 있다.[60] 왜 손님을 배신한 죄가 따로 있는지는 접대의 관습 참조.

제4구역 '주데카' - 유래는 이스카리옷 유다. 자기 은인은 배반한 배반자들이 몸 전체가 얼음 속에 쳐박혀 있다. 그래서 말도 못 건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루시퍼가 얼음 속에 앉아 있는 곳이다. 지구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루시퍼의 하체(…) 쪽으로 내려가면 남반구[61][62]의 연옥섬으로 갈 수 있다.

등장인물: 이스카리옷 유다, 마르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롱기누스 카시우스.[63] 루시퍼는 이 3명을 야금야금 씹고 있다.

2.1.3.2. 연옥편[편집]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대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다시 햇살을 받으며 연옥(煉獄, Purgatorio)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연옥의 구조는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할당되어 있다. 참회가 늦었던 자들은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연옥의 바깥에서 그 세월 만큼 기다려야 한다.


문지기 천사는 P 일곱 개를 단테의 이마에 새겨준다. 이것은 '죄'를 뜻하는 'Pecatti'의 머릿글자로, 대죄가 일곱 가지이기 때문에 일곱 개를 새긴 것이다. 단테가 각 층을 통과할 때마다 천사들이 하나씩 지워준다. 지옥편에 비해 평화로운 분위기로 그려져서 그렇지, 방법 자체만 놓고 보면 지옥편 못지 않게 그로테스크한 형벌도 있다.


제1층 - 교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등에 바위를 짊어지고 있다. 바위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가슴이 무릎에 닿을 정도. 죄의 무게에 따라 바위의 무게도 다르다고 한다.

등장인물: 오데리시[64]

제2층 - 질투의 죄를 지은 자들이 눈꺼풀이 철사로 눈이 꿰매진 채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사피아, 구이도 델 두카, 리니에르 다 칼볼리

제3층 - 분노의 죄인들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롬바르디아 사람 마르코

제4층 - 나태의 죄인들이 계속 달려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산제노 수도원장

제5층 - 탐욕의 죄인들이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등장인물: 교황 하드리아노 5세, 위그 카페, 스타티우스[65]

제6층 - 탐식의 죄인들이 비쩍 마른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다.

등장인물: 포레세 도나티

제7층 - 색욕의 죄인들이 둘레를 돌며 인사하며 서로의 죄를 각인시키고 있다.


연옥의 꼭대기에서 단테는 지상 천국에 도달하여 성서와 교리를 상징하는 행진을 목격한 후, 마침내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2.1.3.3. 천국편[편집]


천국은 옛 유럽인들의 믿음에 따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하늘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며, 각각의 죄에 따라 벌을 받는 지옥과 연옥처럼 각각의 선에 따라 행복을 누리고 있다. 등장 인물 중 단테와 말을 나눈 자는 볼드 처리.


화염천 - 지구와 달의 중간 경로

제1영역 월성천 - 착하긴 한데 끝까지 충실하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피카르다 도나티[66], 콘스탄자 왕비.

제2영역 수성천 - 야심있는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유스티니아누스 1세, 로메오.

제3영역 금성천 - 사랑에 불탄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샤를 마르텔, 쿠니차 다 로마노, 포르케 드 마르셀, 유녀 라합.

제4영역 태양천 - 지혜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토마스 아퀴나스, 대 알베르토, 그라치아노, 피에트로, 솔로몬, 디오니시오, 파올로 오로시오, 세비니오 보에시오, 이시도로, 베다, 리카르도 산 빅토르, 시지에리 드 브라방, 보나벤투라, 일루미나토, 아우구스티노[67], 우고 다 산 비토레, 피에트로 만지아도레, 교황 요한 21세, 예언자 나산, 대주교 안셀모, 요한 크리소스토모, 도나토, 라바노, 지오바키노.

제5영역 화성천 - 용감한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카치아구이다[68], 여호수아, 마카베오, 샤를마뉴 대제, 오를란도, 구일리엘모, 레노아르도, 고티프레디, 로베르토 구이스카르도.

제6영역 목성천 - 정의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독수리(다윗, 트라야누스, 히즈키야, 콘스탄티누스 1세, 구일리엘모 2세, 리페우스).[69] 목성천에 등장하는 영혼들은 천국의 다른 하늘들과는 다르게 개개인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독수리의 일부로서 등장하며, 독수리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로 나와 자신의 어느 부위에 어느 영혼이 속해 있는지 말해 준다.

제7영역 토성천 - 사색에 빠진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베드로 다미아노, 베네딕토.

제8영역 항성천 - 단테는 쌍둥이자리(단테의 별자리)에서 지구와 지금까지의 천국의 7 영역이 다 보인다고 한다. 또 사도들과 삼주덕(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서 의논한다.

등장인물 : 초대 교황 베드로, 야곱, 사도 요한, 아담.

제9영역 원동천 - 물리적 우주의 마지막 영역.

등장인물 : 세라핌, 케루빔을 비롯한 천사들.

최고, 지고(至高)천 - 하느님의 영역이자 천국 그 자체. 천국의 모든 영혼들의 본 거주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단테는 하느님의 모습을 산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빛에 감싸진다(...).

등장인물: 하느님/예수, 노인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성모 마리아, 이브, 라헬, 사라, 레베카, 유디트, 룻, 베아트리체, 세례자 요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우구스티노[70], 가브리엘 천사, 아담, 루치아 등.

2.2. 아사키 1집 앨범, 혹은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편집]


神曲 항목을 참조.


2.3.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에서 나오는 노래[편집]


정령들의 힘을 채워주고, 때론 감정을 고양시킨다. 연주자가 원하는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약하지만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신곡의 유무로 정령의 힘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외로 천국, 지옥편의 이름이 붙은 특수한 신곡이 따로 있다. 알려진 작곡자는 처음 정령악사가 되었다던 단테.


2.4. 일본의 인터넷 용어[편집]


명곡의 한 단계 위.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에서 널리 퍼졌지만 그 전에도 있었던 단어. 니코동의 특성상 주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관련곡이 신곡으로 자주 언급된다. 팬들의 특성상 AKB48과 같은 남성향 여자 아이돌의 노래도 신곡으로 불린다. AKB48의 두번째 베스트 앨범의 제목이 "신곡들"일 정도.


니코동에서는 곡이 자기 마음에 들면 신곡 타령을 하는 등 남용되는 바람에 노골적으로 불쾌해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에 따라 같은 발음(카미쿄쿠)을 사용하는 종이 노래(紙曲)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주관적인 개념이라 어떤 사람한테는 신곡인 게 다른 사람한테는 쓰레기곡일 수 있다. 특히 태그 전쟁이 치열. 해당 곡의 팬들이 신곡 태그를 붙이면 태그 타고 들어온 사람이 "별로 좋은 곡도 아닌데" 하면서 지워 놓는 식.


비슷한 표현으로 良曲(양곡)등의 표현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갓곡' 정도.



B046 –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Iliad, Odyssey) / 호메로스(Homeros, BC 800년경)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두 작품 모두 트로이 전쟁과 그 여파를 다룬 한 쌍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신과 영웅에 대한 찬양과 인간정서의 심오한 표현이 도달하는 시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서양정신이 문학이라는 형태를 통해 표현된 최초의 사례로서 문화사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서사시들에서 헬라스 세계의 통일성과 영웅주의 상징을 발견했고, 도덕적 가르침과 실제적인 지혜의 원천을 보았으며, 이 작품들은 우리가 아는바 서양문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a.생애와 작품

서양 최고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작자로 알려진 그리스의 시성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재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 또는 개인이 아니고 편력시인의 집단명, 장님인 걸식 시인이라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 두 서사시가 과연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데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인 헤로도토스의 저서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증거를 비롯, 근대의 역사학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및 언어학상의 조사연구에 의해 호메로스는 실재 인물이고, 이 두 서사시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었다. 

이 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기원전 900-800년경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변의 스미르나 또는 키오스 섬에서 살았으며,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의 시인들은 음유시인들로서, 군중 앞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시들은 구전, 전승되었다. 호메로스도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장님 음유시인으로, 자기 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구비문학을 집대성하여 자신의 천재성과 위대한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이 두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완성했다.

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두 편의 서사시는 완전한 예술적 구성으로 당시 문화에 대한 지주적 존재였고, 서구의 시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그의 이름은 시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문예사적인 면에서의 두 서사시는 다 함께 용의 주도하게 짜여진 플롯, 시적 음악성, 상상력에의 호소, 성격묘사의 박진감, 정서적 긴장감 등에서 수준 높은 문학성이 깃들어 있다.

 

b.서양사상의 2대 원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영국의 비평가 매튜 아널드는 세계역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서양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2개의 지주를 그리스 정신과 크리스트교 정신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 사상은 인간 중심사상으로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존중하고 인간의 현세적 의미의 긍정과 자아를 강조하여 후에 서양의 철학과 과학문학(사실주의)예술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반면 크리스트교 사상은 신 중심으로 특히 영성과 덕성을 존중하고 내세적인 성격을 띠는데, 이는 뒤에 신학과 예술문학(낭만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 등은 그리스 신화나 크리스트교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그 이해가 어렵고, 번연의 (천로역정)도 크리스트교 사상이 그 밑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역사나 철학 등을 통해 접근할 수도 있으나, 우선 흥미있고 자유로운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그리스 신화를 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문명의 모든 분야, 곧 문학조형예술회화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자들도 그들의 추론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해결책으로 신화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신화는 이성과 신앙의 중간에서 고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들에게는 영원이나 내세의 개념이 없었기에 인간보다 더 많은 신을 섬겼다. 그들은 신도 인간과 똑같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질투하는 존재로 보았다. 다만 불사라는 점만 달라, 신들은 불사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먹고 발효된 벌꿀로 만든 넥타를 마실 뿐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이라는 독특한 신관을 가졌다.

인간의 감정과 지혜의 보고인 그리스 신화가 오늘날 인류공동의 재산으로 남게 된 것은 호메로스를 비롯한 몇몇 사람의 공로가 그 밑받침이 되었다.

먼저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 신화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의 신과 영웅들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신화에 활력과 생명력을 주었고, 이어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일과 나날),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인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신화를 충분한 이성적 고찰에 의해 심화시켰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대한 현재의 체계적인 모습은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c.트로이 전쟁과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공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한 쌍의 서사시들이다. 그런데 18세기까지만 해도 호메로스의 두 작품에 기록되었던 그리스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에게 해 문명(미케네 문명과 크레타 문명)이 과연 실재했을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슐리만은 어릴 적부터 호메로스의 시 속에 그려진 트로이에 흥미를 갖고, 언젠가는 트로이의 웅장한 성벽을 발굴하리라 결심하고 돈을 모은 다음, 드디어 40세가 되어서야 소년시절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870년 그는 호메로스가 그의 시에서 묘사한 트로이의 유적들을 발굴하여 그 실재성을 입증했던 것이다.

그러면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의 공통적인 배경인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의 결혼신장에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난 그는 이 사과를 최고의 미인에게 라는 말과 함께 황금 사과를 식장 안에 던졌다. 이에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 딸들인 아케나와 아프로디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곤란하자 축하차 온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권을 주었다. 자기가 선택받기 위해 헤라는 재물과 권력을, 아테나는 무인의 영광을,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의 최고의 미인을 제의하자 결국 아프로디테가 선택된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의 최고의 미인은 헬레나였는데,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파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나를 트로이로 납치하자, 메넬라오스의 친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트로이 원정대가 출발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원정을 피하기 위해 정신이상을 가장했으나 곧 탄로가 났고, 아킬레우스도 여장을 하여 피했으나 오디세우스에 발각되어 함께 원정대에 참여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비록 자기 아들이 발꿈치를 제외하고는 불사신이지만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피신을 시켰던 것이다. 그후 전쟁 10년째에 발생하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사랑과 분노, 그리고 트로이의 총대장 헥토르의 죽음을 다룬 것이 (일리아드)이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10년동안 방랑하면서 온갖 모험을 하고 20년 동안 수절해온 부인 페넬로페와 상봉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다.


d.(일리아드)

 1. 등장인물

아킬레우스: 그리스의 젊은 영웅으로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여 적장 헥토르를 죽이고 복수를 하는 인물.

헥토르: 선량한 마음을 지닌 트로이 군의 용장으로 용감한 성격을 지닌 인물.

테티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여신으로 아킬레우스를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

아가멤논: 그리스 군의 총수로 성직자 크리세스의 딸을 해방하라는 아킬레우스의 부탁을 거절하여 신으로부터 전염병을 불러오게 한 인물.


 2. 주요내용

아폴론의 신관 크리세스는 포로가 된 딸의 석방을 그리스군의 총수 아가멤논에게 간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신에게 복수를 청했다. 신은 전염병을 그리스 군에게 보내 많은 병사가 앓게 되었다. 이에 고심하던 그리스 군 제1의 용사 아킬레우스는 회의를 열고 전염병의 원인을 예언자로부터 교시받아 아가멤논에게 소녀의 반환을 부탁했다. 그러나 화가 난 아가멤논은 아길레우스의 여자 브리세이스를 탈취한다. 명예를 훼손당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 때문에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통해 대신 제우스에게 그리스 군의 패배를 청원하고 전쟁에서 물러나 버린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받은 묘욕을 갚기 위해 제우스에게 그리스 군의 패배를 약속하도록 한다. 이윽고 그리스 군의 전세가 약화되어 아가멤논은 보물과 함께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여자를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때 트로인 군은 그리스 군의 진지로 육박하여 많은 배에 불을 지르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정하여 트로이 군을 패주시키지만, 트로이의 대장 헥토르에게 패해 갑옷을 빼앗긴다.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자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복수를 다짐하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헥토르를 죽이면 아킬레우스도 죽게 된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외친다. 

기선을 제압한 트로이 군사는 아킬레우스의 고함에 놀라 진군을 멈추고 야영한다. 아킬레우스는 분노를 풀고 아가멤논과 화해하게 되지만, 앞서 화해를 거절했을 때 이미 비극의 씨는 뿌려져 있었다. 아길레우스는 전차를 타고 싸울 준비를 한다. 이때 불사의 명마 크산토스는 그에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예고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한편 트로이 군은 성내로 후퇴하고 헥토르만 성 밖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싸움터에 있는 사람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신 아폴론 뿐이었다. 헥토르는 쫓아오는 아킬레우스를 맞이하며 싸우게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해버린다. 두 사람은 트로이의 거리를 쫓고 쫓기면서 세 번을 돌고, 결국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헥토르는 자신이 죽으면 매장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아킬레우스는 이를 거절하고 그의 시체를 끌고간다.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매일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돌지만, 신 아폴론은 헥토르의 시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러한 폭거를 중지하도록 테티스를 보내 아킬레우스에게 전한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제우스의 명에 따라 헤르메스 신에 이끌려 황금을 실은 마차를 끌고 밤에 평원을 가로질러 아킬레우스의 진영에 도착한다. 젊은 영웅 아킬레우스는 노왕을 정중히 맞이했으나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의 불행을 알고 슬퍼한다. 새벽에 프리아모스 왕이 성내로 도착하자 트로이는 온통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젊은 영웅 헥토르의 장례는 장엄하게 거행된다.


 3. 작품 해설

(일리아드)는 그리스 군의 트로이 공격 10년 중의 불과 수십일간의 사건을 15,693행으로 표현한 장편 서사시다. 이와 같이 (일리아드)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격전 중의 일어나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노여움과 그 결과 생긴 친구의 죽음과 그 복수를 중심으로 하고, 이 두 사건을 통해 알킬레우스의 순수한 용자다운 성격이 차례차례로 부각된다. 그의 너무나도 저돌적인 마음은 신들조차도 막을 수 없다. 그와 대조적인 존재가 헥토르다. 그 상냥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행동에 의해 아킬레우스 이상으로 그의 용기를 그리고 있다. 두 젊은 용사는 자신들의 운명을 알면서도 끝까지 용사다운 정열과 순수한 행동으로 일관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진실된 의지와 인간의 비극을 일깨우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장편 서사시는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록하고 거의 모든 작품들의 전형이 되었으며, 오늘날 현존하는 작품, 즉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의 선조가 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호메로스가 그리스 신들과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썼다는 자체로 새로운 역사의 실마리, 즉 트로이 전쟁이 실존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신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들의 정신에 존재해 있었고, 이것이 작품으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오디세이아)

 1. 등장인물

오디세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아테네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를 괴롭히는 청혼자들을 물리치는 용감한 무사. 

페넬로페: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궁내의 청혼자들이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하고 20년 동안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

텔레마코스: 오디세우스의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를 구한 용감한 소년.

아테네: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가슴 아파하여 그를 구해주고 도와주는 여신.


 2. 작품의 주요내용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되었으나 지혜가 많은 영웅 오디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대신 제우스는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가슴 아파하는 여신 아테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를 귀향시키고자 한다. 한편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에서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에게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청혼자들이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위도식하며 궁전의 재물을 탐하고 살림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에게대항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신 아테네의 권고로 은밀히 오디세우스의 행방을 찾으러 집을 떠나 어렵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듣는다. 여신 칼리프소는 오디세우스를 자기의 섬에 붙들어놓고 못 가게 말리고 있었지만 제우스의 명령으로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풀어준다. 그러나 배가 바다의 신 포세아돈이 일으킨 폭풍으로 침몰하게 되고, 간신히 살아난 파이에쿠스 인들의 나라에 표류해 도착하게 된다. 마침 강으로 빨래하러 나왔던이 나라의 공주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도와서 아르키노스 왕의 환대를 받게 해준다. 오디세우스는 왕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애꾸눈 거인인 퀴플로프스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람을 돼지로 바꾸어버리는 마녀 카르케와 함께 1년간 지낸 이야기 등의 모험담을 이야기해준다.

아르키노스 왕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여신 아테네로부터 페넬로페에게 청혼한 청혼자들의 폭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략을 써서 그들을 물리치기로 한다.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거지의 모습으로 바꾸어 충성스런 양돈가 에오마이오스의 오두막으로 보낸다. 그곳으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찾아온다. 오디세우스는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텔레마코스와 함께 청혼자들을 퇴치하기 위해 계략을 짠다. 텔레마코스는 궁전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귀환을 비밀에 부친다.

오디세우스는 거지행색을 하고 궁전으로 들어가 페넬로페와 시녀들 앞에 나타난다. 일찍이 오디세우스의 유모였던 노파가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기다가 발에 난 상처를 보고 한눈에 그를 알아본다. 하지만 궁전에는 청혼자들과 내통하는 시녀들이 있어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비밀에 부쳐달라고 노파에게 말한다. 한편 시달림에 못 이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강한 활로 12개의 도끼를 관통할 수 있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궁전의 넓은 방에 모인 청혼자들은 차례로 이것을 시도하지만 한 사람도 시위에 살을 메기기 위해 활을 휘게 하지 못한다. 이어 오디세우스가 나서서 자신이 해보겠다고 제의한다. 청혼자들은 거절하지만 페넬로페는 이를 허락한다. 텔레마코스로부터 활을 건네 받은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활시위에 활을 메긴 뒤 12개의 도끼를 보기 좋게 관통시킨다. 그러자 실내에 모여 있던 청혼자들은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선언하고 나서 그는 방 안에 있던 청혼자들을 하나씩 없앤다. 텔레마코스도 무장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싸운다. 넓은 방은 삽시간에 도살장으로 변하고 청혼자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만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재회를 하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이튿날 오디세우스는 포도원으로 가서 연로한 아버지 라에르테스와 재회한다. 여기에 피살된 청혼자들의 가족들이 쳐들어오지만 여신 아테네의 중재로 화평이 맺어진다.


 3, 작품해설

12,110행의 (오디세이아)의 대서사시는 각각 24권으로 그리스 알파벳 순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가 함락된 후 지혜로 유명한 오디세우스가 돌아가는 도중에 경험하는 10년 동안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그는 괴물이나 악한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또한 신에서 노예들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유형의 인물도 만나게 된다. 그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고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등 그가 겪는 갖가지 모험은 곧 인생의 축소판이나 크게 다름없다. 항해도중 그가 겪게 되는 방황과 모험은 인간이라면 으레 겪게 되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의 모험에는 유혹과 도전, 투쟁과 고통, 그리고 승리가 깃들어 있다.오디세우스의 삶의 여정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겪게 되는 것은 갖가지 고통과 역경, 좌절과 절망, 순간적인 기쁨과 승리감의 총화가 곧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호메로스의 유머와 슬픔, 스릴의 아기자기한 맛,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수법을 구사하여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신축자재한 문체와 필치, 구성의 치밀함과 스케일의 방대함을 맛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시는 그가 발표한 뒤 곧 국민적인 서사시가 되었고, 그 언어와 기법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라틴 문학을 비롯하여 근대문학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서구문학 전체가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의 언어는 오랜 전통의 결과인 기교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순박함과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와 명쾌함은 성좌처럼 빛난다.



B045 – 아큐정전 (阿Q正傳) / 노신 (魯迅 루쉰,1881 ~ 1936)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국현대소설의 아버지인 노신의 중편소설로 과거 구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아큐 라는 중국의 전형인물을 주인공으로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봉건사회의 몰락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인의 나약 석비 극성 비굴성 등 중국인의 약점을 고발하여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주인공의 정신승리법 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자학을 뜻하는 말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반봉건반제의 기치 아래 전개된 54 운동의 기수가 되고, 중국혁명의 사막인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중국민중의 길고 긴 잠을 깨운 그는 문학으로 중국인의 우매성을 해부했다.


a.생애와 작품활동

중국의 작가사상가인 노신은 1881년 예부터 절경으로 소문난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주수인. 필명인 노신은 투르게네프의 루딘을 모방한 것이었다. 당시 이름만 대도 다 알아주던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 가족과 하인들의 애지중지 속에서 자랐다. 출생배경인 이런 노선이 급진적인 혁명사상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글 잘하는 수재로 소문난 노신이 13세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한 과거시험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아버지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병을 얻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의 동시에 모두 사망,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된다. 훗날 노신은 나는 그때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진면목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충격을 회고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 소흥은 실패로 끝난 두 혁명인 태평천국의 난(1861)과 신해혁명의 중심 영향권에 들었고, 당시 중국대륙을 유린한 외세진출의 통로 앞에 늘 놓여 있었다. 급진 혁명사상에 눈뜬 노신이 신학문을 배워 쓰러져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길을 오른 것은 스무 살인 1900년, 당시 우매한 중국 한의술 때문에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 노신은 서양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구국을 생각했다. 그러나 세균학 시간에 우연히 본 러일전쟁 시사영화에서 한 중국인이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경한 하고 있는 중국군중을 본 뒤, 그는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민족적 자각을 지키는 일, 즉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고 의학을 중단하고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후 신문화운동에 참여하여 동경에서 (신생)을 발간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동생 주작인과 공동으로 성외소설집을 번역했다. 성외소설이란 당시 외국(유럽) 소설을 의미한다. 이때 그는 유럽의 약소민족의 문학, 슬라브 민족의 저항시, 니체 철학에 심취했다. 잠시 귀향하여 인습적인 결혼을 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북경에 가서 채원배에 초청되어 교육부 직원으로 일하면서 처녀작 (광인일기)(1918)를 썼다. 잡지 (신청년)에서 활동하는 한편 백화운동문화혁명에 참가했으며, 북경대학 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경사 도서관장을 겸했다. (광인일기)는 낡은 봉건왕조를 청산하려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중국 신문예를 탄생시키는 출발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발표된 (아큐정전)은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소설로서,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냉철하게 묘사한다. 찬반이 일어나지만 반봉건의 신문화운동을 기원하는 젊은 진보파들에 의해 옹호되었으며, 54 운동, 비공 운동의 기수로 앞장서기 시작한다.

1925년에는 청년지도기관인 주명사를 설립하여 계속 문학혁명에 앞방섰으며, 그가 관계한 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그에 동참, 당시 단기서 정부의 탄압(체포령)을 피해 북경을 탈출하여 교직을 광동 중산대학으로 옮겼다. 1927년 4월 국공분열 후 다시 국민당의 탄압이 시작되자 불안한 사회정세를 피해 상해조계에 숨어서 운동을 계속했다. 1931년 여름에는 뉴욕에서 열린 노동자문화 연합대회의 중국측 명예주석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그는 북경대학 근무 당시의 제자 허광평과의 동거로 중국 인습을 깨뜨렸다. 그는 중국작가동맹 좌익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극좌(창조사채양사)와 대립하여 참된 프롤레타리아 문학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문학은 초기의 소설에서 차츰 평론수필로 옮겨갔고, 이른바 쫓겨 다니면서 발바닥으로 쓰는 시기를 맞았다. 우의 양실추두형 등의 예술 지상주의를 계승한 임어당의 공격을 받았다. 중일전쟁 발발의 전년 1936년, 폐결핵과 천식이 악화되어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만국 빈의관에 옮겨 1만 명의 조객과 7천의 옹위를 받으면서 만국공묘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비석에는  민족혼 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b.노신의 문학세계

중국문학사에 수많은 별들이 있으나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흔치 않다. 그것은 노신이 누구보다 강렬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평생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또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많지 않다. 노신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 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껴안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노신의 문학생애는 전후 2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기(1918--1927)는 실험적 문학창작기로서 이 기간에는 (광인일기) (약) (고향) (아큐정전) 등 노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들이 나왔다. 후기(1928--1936)는 문학 논쟁기로 단평, 장갑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체를 개발했으며, 노신이 문단의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노신은 혁명가 이전에 뛰어난 문학가로서의 정신이 더욱 추앙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짧고, 가장 길다는 것이 (아큐정전)이지만 이것도 중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취를 더하며 그 깊은 뜻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장의 에세이조차에서도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비록 혁명을 위한 문학일지라도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지 않는 향기 높은 문학, 그것이 노신문학의 위대성이다. 문학이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읽히지 않는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이 아니다.

노신은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운동에 대하여)란 글에서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적 혁명전쟁 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내세워 기치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 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노신은 불행한 사람들의 정신개조를 생각하고 소설을 썼지, 결코 정치를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인간이 바뀌지 않고는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는 그 정신이 중국민족의 전형으로서 이 소설을 쓰게 한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을 묘사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음으로써 노신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용기를 불어넣는 점이다.

그가 남긴 문학은 체제가 어떻게 바뀌던 불멸이다. 사회 때문에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변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금세기 사가들이 노신을 중국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영수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신중국 정신건설의 지주라고 하기도 하고 중국 근대문학의 시점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c.작품의 주요내용

아큐는 이름도 성도 없이 조씨 댁에 얹혀살면서 조씨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인물로 떠돌이패의 한 사람이다. 전형적 노예근성을 지닌 무지몽매한 쿨리(중국 하층민)의 상징이다. 아큐에 대해서는 이름과 출신지, 그리고 행적에 관해서도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는 집도 없이 웨이장에 있는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는 일과는 달리 매우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어서, 마을사람들이 그를 건드려도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일관한다. 그의 신체적인 결함은 머리가 조금 벗겨진 대머리라는 것이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결점에 대해서 언급해, 노름에서 많은 돈을 잃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큐는 매사에 자신있게 처신했고 따라서 자연히 승리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아큐가 유명해진 것은 마을의 세도가 자오씨의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난 뒤부터다. 그에게는 매우 싫어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거지인 왕과 첸, 그리고 지주인 첸가의 아들이 그들이다. 특히 첸가의 아들은 서양식 학교와 일본유학을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 듯했고, 변발도 잘라버렸기 때문에 아큐는 그를 양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아큐의 욕이 그의 귀에 들어가 화가 난 첸의 아들이 지팡이로 아큐를 두들겨 팬 것이다.

아큐는 장난도 몹시 즐겼다. 한번은 그가 비구니를 놀리려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는데,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큐가 여자를 안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큐의 변화는 자오씨의 집에 쌀을 찧으러 갔을 때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자오씨의 집에서 일하는 젊은 과부 우마에게 수작을 걸어, 우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오씨는 아큐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고, 결국 아큐는 금 2천 문과 이불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그런 아큐는 우마와의 사건이 있은 후부터 잘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여자들은 아큐만 보아도 도망갔고, 남자들은 아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전에는 친하던 사당 당지기도 아큐를 보면 언짢아하고, 더구나 그를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가 당시 웨이장으로 돌아온 것은 중추절 직후였는데, 그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 산 옷에다 모든 거래를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여자들은 아큐가 가지고 온 물건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은근히 만나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큐가 도둑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러한 흥미는 자연히 시들해지고 말았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 9월 14일에 뜸으로 갑판을 위장한 파이 어른의 배가 자오씨의 선착장에 닿게 되었다. 혁명당을 피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아큐는 혁명당을 알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혁명당에 놀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아큐는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4, 5일이 지나자 민심은 가라앉고 혁명당이 온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안심하게 된다. 아큐가 혁명당에 가입하기 위해 첸가의 아들을 찾아간 날 밤에 자오씨의 집이 습격을 당했다. 아큐는 자신을 내쫓은 자오씨에 대해서 감정이 있었고, 마을사람들도 자오씨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속으로는 기뻐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두려운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아큐가 체포되었는데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몰라도 아큐가 자오씨의 집을 습격한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아큐는 생전 처음 붓을 들고, 서명하는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군중 속에 서 있는 우마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큐는 무수한 인파들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았다.


d.작품해설

이 작품은 신해혁명 전후의 무기력한 중국인을 회화화한 작품으로 노신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잡게 해준 대표작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싱거운 이야기에 불과하나, 이 작품이 그려내는 이른바  정신승리법 이라는 독특한 인간심성과 작품의 바탕이 된 시대성 때문이다. 신해혁명의 쓰디쓴 좌절을 맞본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버리는(소화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아큐를 보고, 모두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청조말기의 침체된 봉건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노신은 등장 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호도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승리법 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기탄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써 질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인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민족 결의를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아큐정전)은 작가의 이러한 구국혼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다. 따라서 어리석고 불쌍한 아큐, 그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려 보였다. 그런 아큐의 모습이 그때도 그랬지만 중국민중들에게는 각성 보다 위안을 더 많이 주고 있어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닌 수가 없다.

노신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푸념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여운으로 남아 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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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출전: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17-07-16 12:28:3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StoryofAQreprint.jpg


중국어:阿Q正傳

영어: The True Story of Ah Q

프랑스어: La Véritable Histoire de Ah Q

독일어: Die wahre Geschichte von A Q

몽골어: А-Кьюгийн үнэн түүх 

일본어:阿Q正伝(あきゅせいでん)


중국 작가 노신(魯迅, 루쉰)이 쓴 찌질열전 소설로 중국 현대 소설에선 처음으로 유럽이나 여러 나라로 번역, 수출되면서 중국 문학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아구이(아Quei, 줄여서 아Q[1])라는 인물의 인생을 그린 단편 소설로 성밖 낡은 사당에서 살며 낮에는 마을로 들어와 노가다를 하고, 번 돈을 술과 도박에 꼴아박는다. 툭하면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잡역부 아Q가 신해혁명에 꼽사리 끼며 인생역전...을 할 뻔하다가(그나마도 도둑 패거리와 결탁한 것) 나중에는 하지도 않은 뇌내망상 속 강도짓을 자백하고 총살당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아Q는 당시 중국인들의 패배 근성, 노예 근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루쉰이 중국 인민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청 말에 서구 열강에게 쥐어터지면서도 천조라는 타이틀을 고집하며 근대화를 거부, 중체서용이니 동도서기니 하는 피상적 모방을 비판한 작품이다.


아Q는 깡패들에게 얻어 맞아도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격이다."라고 하며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저들이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므로 내가 정신적으로는 저들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을 사용하며, 그 정신승리법이 깨질 때마다 새로운 정신승리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에는 한계가 있는법. 아무리 거짓말을 거짓말로 숨기려고 해봤자 결국 거짓말도 극단에 다다르면 '이건 다 내가 꾸며낸 거짓말일 뿐이구나.'라는 당연한 진리에 도달한다. 합리적 회의의 끝이자 극단이 '적어도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는구나. 세상이란 그렇게 거짓말투성이인 건 아니구나.'라면 비논리적 자기합리화의 끝은 '결국 난 자기합리화를 했던 것뿐. 다 나의 뇌내망상이였을 뿐, 물질세계는 내 생각과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구나.'를 깨닫고 자살하는 것이다.(...)징하다 하지만 여승이나 어린 아이 같은 "약자"에게는 강한 척하며 폭력을 휘둘러 그들을 괴롭힌다. 우리가 말하는 정신승리법, 정신승리란 말은 이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아Q는 피해의식도 엄청 강했는데 특히 머리의 흉터에 대해 엄청난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흉터라는 말을 할 때에만 발끈하다가, 점점 뇌내망상이 심해져 나중에는 '빛나다', '밝다' 등등의 말까지 자신의 흉터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니가 무슨 주원장이냐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조작왕 모 BJ가 생각난다면 그건 기분 탓일 게다.


아Q정전에서 루쉰은 아Q나 소D 등의 인물상을 통해 중국인의 우매하고 꽉 막힌 성향을 풍자한다. 미장 마을의 하층민들 모두는 깨어날 줄 모르는 중국 인민들을 대변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소D로, 아Q가 조씨 댁에서 식모를 건드리다 쫒겨난 후 아Q 몫의 품팔이를 하는 인물이다. 소D는 '아Q에서 정신승리만 뺀' 인물로 아Q처럼 왜소하고 별 볼 일 없는 하층민이며 아Q처럼 피해 의식과 노예 근성에 사로잡힌 자였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이런 특성으로 루쉰은 그 당시부터 찌질이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라고 하며 극찬했다. 아Q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비판, 혹은 비하할 때 즐겨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루쉰이 워낙 중국에서 대접받는 작가인지라 중국인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린 이 소설 역시 중국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한다. 극복해야 할 인간상, 반면교사의 의미로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교육되는 듯하다.


이전에 중국에서 나온 영화 《아Q정전》의 마지막 장면에는 "아Q는 자손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자손이 아주 많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아Q의 자손이 있다." 라는 씁쓸한 말이 나온다. 요즘에는 normal majority라고 불린다. 아무것도 하는것이 없이 남을 욕하거나 남을 따라하거나 하는 깨인 대중을 욕보이는 멍청한 대중을 뜻한다. normal이란 평범하다는 긍정적 뜻 외에도 아무런 특색이 없다는 부정적인 뜻도 있다. 아Q는 종잡을 수 없이 아무 특색이 없다는것을 풍자한 이름이므로 얼추 들어맞다.


프랑스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로맹 롤랑(1866~1944)은 이 작품을 엄청나게 호평했는데, "가련한 아Q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보통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상대도 못하는 중국인들을 다루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디 중국인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아Q란 모습은 현대인들, 많은 사람들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왕가위의 영화 아비정전(아B정전)의 제목은 바로 이 소설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다. 



[1] 루쉰 시대의 로마자 표기법 Quei는 현재의 한어병음방안의 gui(kuei)(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구이")에 해당하는 표기이다. 아Q정전 초반부에서 여기에 대응시키려 한 글자들이 "桂貴"(모두 guie)에 해당 됨을 보면 알 수 있다.



B044 – 홍루몽 (紅樓夢) / 조설근 (曹雪芹, 1715? ~ 1763?)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조설근의 120회본 90만자라는 엄청난 양 속에 가보옥을 중심으로 총 448명이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장회체 소설이다. 전반80회까지 조설근이 쓰고 후반 40회는 고악이 썼다고 한다. 남녀 주인공의 애정비극과 귀족가정의 흥망사가 주요내용이나, 청대 귀족 가정의 문화 풍속 교육 혼인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귀족사회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자 예술적 기교도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a.생애

중국 청나라의 소설가 조설근의 이름은 점, 호가 설근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작종 직물의 직조구입공급 등의 일을 맡아보았고 황제의 이목이 되다시피 했다. 그의 조부의 두 딸은 왕비로 선발되어 궁중에 들어갔다. 이로 보아 조씨의 가문은 호화롭게 지냈으리라고 추축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설근의 조부 조인은 시사화곡에 능한 명사이자 이름난 장서가였다. (전당시)는 바로 그가 주도하여 찍어낸 것이다. 조인은 조설근의 문학수양에 도움을 주었다. 조인이 죽은 후 조설근 부친의 형제들이 조부가 하던 일을 맡아 했는데 그 무렵은 왕실내부의 싸움이 격렬한 때였다. 그의 집안도 싸움에 연루되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조설근이 살았다.

그는 13세 이전까지는 남경에서 임금의 은혜와 조상의 덕분으로 비단옷을 입고 고량진미의 호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3세 이후 북경으로 이사한 후 온 집안이 죽을 먹으며 외상술을 마시는 처지에 몰렸다. 귀족가정은 조설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선 심각한 계급의 낙인을 찍어놓았는데, 그는 자기 본래의 계급에 대한 향수의 정을 품게 되고, 그의 세계관은 허무적이고 비관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족가문의 흥성으로부터 쇠망에 이르는 엄청난 변화와 그 자신이 겪은 빈곤한 생활이 그의 사상감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의 본래 계급의 추악한 면에 대해 심각한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생활과 인식은 그의 (홍루몽) 창작에 충분한 생활적 기초를 제공했다.

(홍루몽)은 그가 만년에 곤궁한 상태에서 어릴 적의 추억을 바탕으로 약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나 마무리를 하지는 못했다. (홍루몽) 창작에 대해  10년 동안 보면서 다섯 번이나 수정을 했다. 실로 글자마다 피어난 10년의 고생이 예사롭지 않도다 라고 말했다. 생활이 어려운데다가 단 하나뿐인 어린 자식마저 요절하니, 작자는 그 고통 때문에 병이 나서 (홍루몽)을 80회까지밖에 못 쓰고 50세도 못되어 세상을 하직한다. 그가 세상을 뜨면서 남긴 것이란 벽에 걸린 거문고와 칼 한 자루 뿐이었고 하며, 그의 부인은 의탁할 곳이 없게 되고 써놓은 원고도 정리할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장례도 한두 벗이 대강 지냈다고 한다. 후에 고악이 40회를 덧붙여 (홍루몽)은 120회본이 되었다.


b.홍루몽의 성립

(석두기) (금옥록)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홍루몽)은 120회, 90만자라는 엄청난 양 속에 가보옥을 중심으로 총 448명이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소설이다. 18세기 초 백년망족이요 시예지가로 불리는 가가, 그 중에서도 영국공 가원과 영국공 가원 집안에서 겨우 8년 동안 벌어지는 인간 및 가세의 흥망쇠사로서, 다시 줄거리를 좁히면 영국부의 주재자인 가정의 2남인 가보옥, 그의 고종사촌인 임대옥과 외종사촌인 설보채가 여자들의 왕국인 대관원에 살면서 벌어지는 삼각연애의 비극이다. 즉, 가보옥과 임대옥의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이다. 가보옥은 귀족가정의 반역자로 봉건도덕의 범위를 벗어나 행동하는 과벽한 성격의 소유자요, 임대옥은 우수와 병이 많은 재녀로 애정을 지상시하고, 설보채는 현숙다정한 숙녀로서 여덕을 표방함으로써 그 개성이 선명하다.

여기서 보옥을 사이에 두고 암투가 벌어지는데, 보옥의 조모는 보옥이 대옥을 사랑함을 알면서도 그녀의 병약을 빙자해 보채와 결혼시키자 이를 안 대옥은 피를 토하며 죽고, 보옥 또한 대옥의 죽음에 상심한 나머지 명예와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기에 이른다. 한편 (홍루몽)의 구성과 성격에 있어 조설근의 자전석 소설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홍루몽)은 곧 그의 가문의 부침이요 조설근 개인의 체험이다. 따라서 (홍루몽)은 인생의 부귀귀천을 바라 보면서 남녀의 애정과 가정의 갈등을 그린 회한과 애상의 책이지, 결코 시대를 풍자하고 역사를 반영한 소설은 아니다.


c.작품 내용

과거가 가씨 성을 가진 두 형제는 국가의 창업기에 공을 세워 영국공과 영국공의 벼슬을 받아 그들의 대저택에서는 지금 그들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영국부의 주재자인 가정의 2남인 가보옥은 태어날 때 아름답고 투명한 5색이 찬란한 구슬을 입에 품고 출생했다 하여 보옥이라 이름 지었다. 살갗이 희고 귀공자다운 우아함에 보는 사람마다 모두 귀여워했다. 보옥은 매우 영악했는데  여자의 몸은 물로 되어 있으나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되어 있다. 나는 여자아이를 보면 시원스러우나 남자의 몸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고 말할 정도였다.

보옥의 누나는 궁중의 귀비로 들어갔으며 친정에 다니러 온 기념으로 뒤뜰에 대관원이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대관원에서 보옥은 그의 아름다운 누이들, 사촌자매들과 함께 그곳에서 살며 꽃을 사랑하고 시와 술 음악을 즐기는 생활을 계속한다. 보옥을 둘러싼 젊은 미녀들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여자는 임대옥과 설보채 두 사람이었다. 대옥은 고종사촌으로, 일찍 조실부모하여 보옥과 함께 자랐다. 우수가 담긴 찌추린 얼굴과 지나칠 만큼 날카로운 신경을 가진 감상적인 그녀와는 달리, 보채는 남경의 부호집에서 태어난 만큼 대범하고 침착하며 합리적인 여자다. 미모에 있어서도 대옥에 못지않은 모란꽃 같은 여자였다. 대관원에는 이들 말고도 많은 미녀들이 있었다. 보옥은 이러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지만 가씨집안도 비극적인 운명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한다. 자살사건이 잇따르자 다감다정한 소년 보옥은 혼자 상심에 젖는다(이상이 80회 줄거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옥은 구슬을 잃어버려 넋을 잃고 바보와 같은 상태가 되는데 이를 돕고자 보옥의 혼담이 진행된다. 병약한 대옥을 택하지 않고 보채를 맞아들이자 대옥은 실망한 나머지 보옥이 결혼하는 날 피를 토하고 죽는다. 한편 보옥은 결혼 상대자가 대옥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보채임을 알고 비관한 나머지 병을 앓는다. 그 즈음에는 이미 대관원도 쇠퇴해버린다. 보옥의 병세가 점점 악화될 즈음 어느 날 한 승려가 보옥이 잃어버린 구슬을 가지고 나타나자 보옥은 다시 소생하여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후 갑자기 행실이 좋아지고 학문에 열중하여 장원급제한다. 보채는 당시 임신중이었으나 시험장에서 나온 보옥은 그대로 집에도 들르지 않고 출가한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d.(홍루몽)의 작품성

(홍루몽)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유토피아와 인간세계, 대관원의 세계와 그 밖의 세계 등 양면의 세계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가운데 인간의 현실을 허무와 무상으로 종결짓고 있다. 이 작품에서 조설근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수법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낭만주의 수법으로 신비의 색채를 깔았고, 사실주의 수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성격을 전달했다. 동시에 그 제재 또한 늘 두 가지 주선을 지키고 있다. 하나는 삼각으로 벌어지는 애정이요, 하나는 가씨가 몰락하는 사회적 변동이다. 하나는 낭만 이상유토피아의 추구요, 다른 하나는 현실과 오염과 음욕 등 쇠락이다.

이처럼 (홍루몽)은 전체적으로 탈속의 의지가 번지르한 가운데 작자의 인생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그는 만년에 이미 사회개조의 능력이나 사회에의 적응력을 상실하여 현실로부터의 도피는 불가피했다. 한편 그에게도 예술적 방법을 통한 사회에의 적극 참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윤리나 교육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반영으로서 시대가 주는 교훈이 그것이다. 즉, 그는 종교나 운명으로 통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현실을 통해서 군주시대의 외척귀족 등이 문란한 사치와 호화로부터 몰락하는 과정을 폭로했고, 나아가서 장원과 농노들의 경제적 빈곤상을 넌지시 파헤치기도 했다.

이밖에도 (홍루몽)은 가정에 있어 5대가 동거하는 대가족제도의 종법도덕이 붕괴하는 말로를, 정치에 있어서 법의 강조를, 혼인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사회에 있어서 3계층을, 종교에 있어 불교도교로의 편향을, 경제에 있어 세가의 몰락 원인을 직접 간접으로 설파하여 후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 바도 적지 않다.

90만 자나 되는 대하소설이 복잡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선명한 개성과 구성 면에서 예술적 성공요인이 되고 있다. 비극소설이 일반적으로 시작해서 종결까지 한 차례의 클라이맥스를 갖게 되는 데 반해, (홍루몽)은 스토리가 변할 때마다 클라이맥스를 거듭해서 보여주다가 끝내는 파멸에 돌입했다. 

또 하나는 대화를 통해서 훨씬 생동적인 분위기 전달을 꾀한 점이다. 이밖에도 수사 및 기교에 있어 외곽으로부터 서서히 핵심으로 몰고가는 방법이나, 한가지 사건의 묘사로써 기타 사건을 연대시키는 일석이조법, 서로 관계없는 일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순통시키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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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출전: 나무위키)



1. 개요[편집]


紅樓夢 / Dream of the Red Chamber


중국의 고전소설. 청나라 때 조설근(曹雪斤)이 저술한 장편소설. 그리고 중국문학의 결정체이자 끝판왕.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1715~1763)이 쓴 고전소설. 등장인물만 500명에 달하며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이 되었다. 많은 중국 학자들도 홍루몽에 대해 연구해 "홍학"(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중국사대기서에서 수호전의 에로 동인지 금병매를 제외시킨 '사대명저'의 하나로 친다. 사실 홍루몽의 문학적 가치는 다른 사대기서보다 더 높으며 인기도 가장 많다.


2. 제목[편집]


소설의 제목인 '홍루몽(紅樓夢)'의 뜻을 직역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며, 紅樓는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며[1] 작중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으나 이들은 거의 모두 안습한 결말을 맞는다(...). 즉 홍루몽이라는 제목은 주역들의 안습한 결말과 함께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설근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가장 먼저 언급된 제목인 <석두기>는 주인공인 가보옥이 여와가 쓰다가 남은 돌의 화신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승록>은 속세의 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된 <풍월보감>과 <금릉십이차(금릉십이채)>는 각각 작중에서 언급 및 등장한 보물 및 등장인물들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이 <홍루몽>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청대에 일시적으로 홍루몽이 금서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옥연>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3.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편집]


홍루몽의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의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1791년 정위원이 기존의 80회본에 고악이 쓴 40회본을 결합해서 120회본으로 간행한 것이 "정갑본"이고, 이듬해에 이 120회본을 개정한 것이 "정을본"이라 한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 이전에는 필사본의 형태로 유포되었는데, 문제는 작가인 조설근이 원고가 출간되기 전에 사망해 버려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설근이 최초로 작성한 원고 중 유실된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못한 정위원은 지인인 고악(1763~1815)에게 흩어진 필사본의 내용을 수집,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1791년과 1792년에 거쳐 '홍루몽'이라는 제목이 붙은 120회본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악은 자신이 쓴 후반부가 조설근의 원고를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고악이 진시를 통과하고 한림원에 들어가기도 할 정도의 정통 한학자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조설근이 쓴 80회본까지만 읽었을 때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조설근이 쓴 부분까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많은 자칭 후속편 동인지들이 나돌았는데, 정위원이 그 가운데 가장 작품성 있는 고악의 버전을 공식 후속편으로 '지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실된 내용이 많았던 탓에, 2006년에는 중국에서 고악이 후반부 40회의 내용을 변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기사 링크


4. 국내 출판본[편집]


국내의 홍루몽 번역은 1884년 역관 이종태를 위시한 문사들이 120회본을 처음 완역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로 홍루몽이 완역된 사례이다. 그 이후에도 국내에 여러 차례 번역되었으나 대개 불완전한 번역 내지는 일어 번역본의 중역인 경우가 많았는데, 1990년대에 연변대학의 조선족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된 현대어 완역본이 예하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청계출판사 판과 나남출판사 판이 2000년대에 들어 출간되었다. 번역의 정확성은 1990년 나온 예하출판사 판이 좋은 평을 듣고 있으나,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절판된 상태라 그 희소성 때문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책팔이들에 의해서 100만 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나남출판사 판본과 비교할 때 둘 중 하나가 떨어진다기보다는 각 판본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정도라 굳이 일부러 저 가격을 지불하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에 올재에서 연변대학 번역본이 교보문고에서 한정으로 풀렸고, 같은 번역집단의 수호지가 2015년에 한정으로 팔다 2016년에 상시판매로 풀린걸 보면 홍루몽도 상시판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2013년에는 솔출판사에서 7권으로 구성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5. 줄거리[편집]


홍루몽의 줄거리는 난징인 금릉을 기원으로 둔 부유한 가(賈)씨 일족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는 영국공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차(설보채)[2]의 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3]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4]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5]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병크들[6]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진시황이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다,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잉여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남성 가문원들이 대부분 잉여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7]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은 그거 먹는 건가요? 취급을 하며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를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임대옥은 돌이 가보옥으로 태어나기 전에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을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의 눈물로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자신도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하였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미소녀였으나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설보차(설보채)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8]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태어났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고 두 명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의 봉호를 받은 가원춘은 특별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 공간으로 두기 아깝다고 여겨 가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가보옥은 임대옥, 설보차와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각각 거처를 두게 되어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나이를 먹게 되자, 가보옥은 설보채에게도 일정한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치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차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왕희봉과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이 돌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 가보옥은 정줄놓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귀비 가원춘도 같은 시기에 병사하자 사태군 등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보옥의 측근 시녀였던 화습인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감정이 보통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9]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것을 알게된 가보옥은 멘탈붕괴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문원들의 병크가 겹친 결과 가씨 가문은 공작위들과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10],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렸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가보옥은 한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한채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6. 등장 인물[편집]


등장인물의 수는 주역부터 조역, 이름만 언급되는 단역까지 포함하여 500여 명에 달하며, 주요 인물들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다. 남성 인물들도 여럿 등장하지만 대부분 막장이며 주색잡기에 빠져 지내는 잉여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왕희봉의 남편인 가련과 설보차(설보채)의 오빠인 설반.


그리고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결말이 영 좋지 못하다(...). 왕희봉의 경우 일족이 몰락하고 후원자인 가모(사태군)마저 노환으로 사망하자 권력을 잃고 병까지 겹쳐 안습한 죽음을 맞은데다가 딸인 가교저는 인신매매단에 팔려갈 뻔 했으며[11], 영국공 가사의 딸인 가영춘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요절했고 가보옥을 짝사랑했던 비구니인 묘옥은 도적단에게 검열삭제당한 후 행방불명, 가보옥의 측근 시녀 중 한 명인 청문은 다른 하인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 후 병사[12]했으며 임대옥은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병이 악화되어[13] 선물받았던 손수건과 자신이 쓴 시집을 태우고 죽어 버렸다(...). 


작중에서 죽지 않은 캐릭터도 안습한 결말을 맞는 게 대부분이며, 가보옥은 계략에 휘말려 설보차를 임대옥으로 착각하고 아내로 맞았다가 멘붕에 빠진 후 아내를 두고 가출해 버렸고 녕국공 가진의 여동생인 가석춘은 현시창스러운 상황을 보고 비구니가 되었다. 가보옥의 형수인 이환은 아예 시작부터 과부로 등장했으며 사상운은 결혼 직후 남편이 요절해 버렸다. 이환과 사상운, 그리고 설보차의 경우 과부의 개가를 금지하던 풍습과 맞물려 그야말로 현시창인 상황.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간 수호전의 양산박 108호걸들처럼 한꺼번에 많은 인물들이 사망 또는 퇴장하지는 않지만, 작중에서 인물들이 죽거나 퇴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구체적으로 처절하게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가 임대옥과 왕희봉으로 여러 회에 거쳐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그 외의 정보는 홍루몽/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할 것.


7. 작가에 대하여[편집]


작가인 조설근은 팔기군 정백기에 소속된 한족 출신으로, 선조는 오늘날의 랴오닝 성에 거주하다가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정복되어 한인 팔기에 편입되었다. 이후 조설근의 증조모가 강희제의 유모가 되면서 황실과 연이 닿게 되었고, 조설근의 할아버지인 조인(삼국시대의 조인과는 당연히 다른 인물이다)의 대에 이르러서는 난징일대를 관리하는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다른 가문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영하였다. 


하지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가 즉위한 후, 조씨 가문은 옹정제가 벌인 숙청작업에 휘말려 망했어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조설근의 대에 이르러서는 베이징으로 가문 전체가 이주하였으며 조설근 자신은 베이징 외곽의 기인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홍루몽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나 조설근은 이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필사본으로 유포되던 홍루몽이 활자본으로 출간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 년이 지나서였다.


민국시대의 학자인 후스(胡適, 1891~1962)등의 연구로는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전적인 소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조설근이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8. 홍학(紅學)의 역사[편집]


본격 대륙의 설정싸움


홍루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당대 중국의 독자들은 임대옥vs설보차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와 같은 VS놀이에서부터 조설근 및 홍루몽에 최초로 평론을 단 지연재[14]의 실존인물 여부, 판본 연구,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 및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논쟁을 벌였고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홍학(홍루몽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겨난 홍학계의 분파는 평점파와 색은파였는데, 평점파는 홍루몽의 내용에 대한 감상, 평론을 통해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색은파는 책의 내용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청복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거나 강희제~옹정제 교체기간의 권력다툼에 대한 은유, 심지어 순치제와 후궁 동악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등의 괴랄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후스(胡適, 1891~1962)는 기존 홍학, 특히 색은파의 해석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였고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소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후스의 견해를 지지한 이들에 의해 고증파라는 분파가 생겼는데, 고증파는 연구를 통해 조설근의 실존여부를 밝히는 한편 홍루몽의 판본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같은 시기에 루쉰 등은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홍루몽을 평가하려 했고 이들은 비평파로 불리게 된다.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홍학의 명맥은 계속 이어졌으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어서 홍학의 여러 분파들 중에서 특히 고증파가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고 4인방은 홍루몽을 반봉건적 내용이 담긴 소설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였다. 이후 4인방이 실각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홍학 연구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9. 대중매체에서[편집]


1998년에 대만에서 <紅樓夢之十二金釵>#라는 제목의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있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중국에서 <红楼梦:林黛玉与北静王>이라는 제목으로 비주얼 노벨화되기도 했다.##


1977년에는 쇼 브라더스에서 금옥양연홍루몽(金玉良緣紅樓夢)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임청하의 초기 주연작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임청하는 남주인공인(…) 가보옥을 연기했다.


또한, 1977년과 1987년, 2010년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는데, 1987년판 드라마에서 임대옥을 연기했던 진효욱(陈晓旭,1965~2007)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뒤 암으로 사망하자 중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에서 리메이크한 홍루몽의 가극판이 이듬해 중국에서 순회 상연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측의 기록으로는 1961년에 조령출의 대본과 이면상의 작곡으로 완성되었고, 평양예술단에서 상연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저 두 인물 모두 친일파-월북 루트를 타면서 능숙한 처세술로 평생 잘 먹고 잘 산 케이스로 손꼽힌다.)


다만 저 가극도 북한에서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는데, 북한과 중국이 우호 관계였을 때 창작되었다가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고 난 뒤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공연 목록에서 버로우하고 말았다. 이후 1970년대부터 뽀글이가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기존 가극이 가진 봉건성을 타파하겠네 어쩌네 하면서 '혁명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밀어주게 되자 거의 듣보잡이 되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을 최고 권력자의 지시로 다시 리메이크해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가서 순회공연을 한다는 것은 북한 음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북한이 중국에게 더욱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씨왕조 치하의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작중 가씨 일족의 막장행보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과 묘하게 연관되어있다. The Garden of the Forking Path라는 작품은 유 춘이라는 중국인 스파이가 독일에게 정보를 흘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인데, 이 유 춘이라는 캐릭터의 묘사가 홍루몽에 나온 비슷한 이름의 캐릭터와 흡사하다.


영화 스잔나(1967년)[15]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이 극중극으로 홍루몽의 임대옥을 연기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영화는 유독 국내에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인기를 크게 끌었고, 여주인공 스잔나 역으로 출연했던 이청(李菁) 은 이 영화 한 편으로 국내에서 인기스타가 되었으며, 내한하여 몇 편의 영화를 찍기도 하였다. 올드팬들에게는 이청이라기 보다는 리칭이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겠지만...... 


문명 5의 두 번째 확장팩인 멋진 신세계에서는 위인의 유형으로 위대한 작가가 추가된 후 랜덤으로 출현하는 작가의 이름 중에 조설근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동방프로젝트 온리전 행사 중 관서지방에서 개최되는 동방홍루몽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름이 똑같다. 딱히 큰 관련은 없지만 이름 자체는 여기서 따온 듯하다.



[1] 절대 홍등가가 아니다! 중국에서 홍등가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단어는 청루이다.

[2] 이름에 쓰인 釵(비녀 채)는 채 또는 차로 읽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국내에 번역된 홍루몽의 번역본들에서는 설보채 또는 설보차로 표기가 제각각이며 청계출판사는 설보채, 나남출판사와 솔출판사는 설보차로 번역했다.

[3]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임대옥<가보옥<설보차의 순서로 1~2살씩 많다.

[4] 형제 중에서 형이 녕국공, 동생이 영국공의 작위를 받았다.

[5] 가보옥이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부모자식뻘이었다.

[6] 작중에서 묘사된 모습은 주색잡기와 사치는 기본인데다 밖에서는 권력을 악용하며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뇌물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며, 안에서는 똥군기, 내리갈굼, 근친상간, 집단괴롭힘 신부 속이기와 같은 막장이 벌어지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헬게이트

[7] 여와는 36,501개의 돌을 만들었으나 하늘을 복구할 때 36,500개의 돌이 사용된 탓에 한 개가 남아 버렸다.

[8] 가보옥의 어머니와 설보차의 어머니는 친자매였다.

[9]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의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면사포를 푹 눌러쓴 채 얼굴을 가려야 했던데다가, 왕희봉 등이 진짜 신부가 설보차라는 것에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에 가보옥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0] 나중에 작위를 돌려받긴 했다.

[11] 다행히 팔려가기 직전에 왕희봉에게 신세를 진 사람에 의해 구출되었다.

[12] 병에 걸려 앓아누운 상태에서 말 그대로 맨몸으로 쫓겨났으며, 가보옥은 "그 몸으로 쫓겨난 건 난초를 돼지우리에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한탄했다.

[13] 작중에서 얼굴에 열기가 올라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거나, 피 섞인 가래를 뱉고 각혈을 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결핵으로 여겨진다.

[14] 지연재에 대해서는 조설근의 가족설, 친척설, 지인설 등의 가설만 제기되었을 뿐 평론을 제외하면 자료가 부족하여 실존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

[15] 홍콩 영화이며 1976년작인 사랑의 스잔나와는 다른 작품이다.


B043 – 서유기 (西遊記) / 오승은 (吳承恩, 1500 ~ 1582)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국 명대의 오승은이 이전의 자료를 취합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편찬한 소설로, 삼장법사 및 손오공 등이 81종의 고난을 겪으면서 불경을 가져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한한 중국적인 상상력과 낭만적 정신이 나타나 있는 중국 최초의 소설이다. 작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낭만감성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사실은 이들의 성격이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서유기의 성립과 저자

중국의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이 소설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당나라 태종 때 현장삼장(596--664)이 서역을 거쳐 인도에 가서 전후 17년 동안에 100여 나라를 순방한 끝에 600여 부의 산스크리트 어 불교경전을 중국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여행기 (대당서역기)를 지었다. 이 여행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것인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아서, 당나라 말엽(7세기 이후)에는 이미 그것을 신비스럽게 전설화시킨 설화까지 민간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시대와 더불어 꼬리가 붙어서 자꾸 늘어났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최고의 텍스트는 (대당삼장취경시화, 大唐三藏取經詩) 3권으로 남송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문장이 예스럽지만 줄거리가 간단하여 (서유기)의 축소판 같다. 손오공도 후행자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고, 사오정도 심사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원말이 되어 거기에 살을 더 붙인 이야기로 된 책이 간행된 듯하며, 그 단편이 명나라의 (영락대전) 속에도 들어 있는데, 여기서는 후행자도 다시 손오공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원대에는 이 이야기가 극에 도입되어 양경현의 (서유기잡극) 같은 것이 생겨났다.

저자 오승은은 이들 민간에서 발달된 설화를 근거로 삼아서 100회의 장편소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오승은의 조부는 학관벼슬을 지냈으나 부친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던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영민하여 많은 책을 읽었으며 붓을 들면 시문이 이루어졌으나 과거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43세 때 어머미가 늙고 가정이 가난하여 조그만 벼슬을 했을 뿐 글을 팔아 자급자족하는 청빈한 생활을 했다.

이런 생활경력은 그로 하여금 당시 민중들이 당하는 질고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민중의 불행은 모두 지배층이 조성한 것 임을 알고 일찍이 사악한 것을 베는 칼을 휘둘러 나라와 인민을 해치는 악당들을 없애버리려고 했으나 힘이 모자람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영웅과 호걸들에게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호할 희망을 기탁했다. 이런 사상을 갖고 있는데다가 어려서부터 야사나 신화 이야기를 즐겨하던 그는 중년시절에 지괴소설 (우정지)(제목만 전해짐)를 썼고, 만년에는 (서유기)를 써서 당시 사회의 암흑성을 폭로, 풍자한 동시에 그에 대한 반항자의 형상을 부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유가의 봉건사상이 있었고 작가의 이러한 극적인 사상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b.주요 등장인물

손오공: 화과산에서 태어난 돌원숭이로 5백 년 동안 오행산 밑에 깔려 있다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천축구에 사는 삼장의 제자가 된다. 

저팔계: 천궁의 천봉원수로서 월궁의 상아를 건드린 죄로 하계에 태어난다. 입이 뾰족하고 이빨이 삐져나온데다 귀가 커서 돼지의 모습이다.

사오정: 천궁의 권렴대장으로 죄받아 하계로 내려와 유사하의 요괴가 된다.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삼장의 제자가 된다.

삼장법사: 전생에는 여래의 제자인 금성장로였으며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난다. 후에 정과를 얻어 전단 공덕불이 된다.


c.주요 내용

이야기는 3부로 나누어진다. #1 손오공이 천궁에서 심술궂게 행동하는 이야기(1--7회) #2 당태종이 지옥을 순례하는 이야기(8--12회) #3 삼장법사와 3종자가 인도를 향해가는 도중에서 만난 81가지의 대란(13-100회)

화과산 바위에서 태어난 원숭이가 신선 밑에서 수업을 쌓은 뒤 손오공이란 이름을 받는다. 그는 한번 공중제비를 돌면 10만 8천리를 날아간다는 술법(근두운)이나 자기 몸을 여러 개로 분산시키는 신외신의 술법 등 72가지의 도술을 터득한 뒤, 바다 밑 용궁의 용왕에게 금테를 두른 무게 1만 3천 5백 근짜리 여의봉(일격에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다)을 얻는다. 이 여의봉은 크기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막대기다. 신통한 힘을 얻은 손오공은 천궁으로 달려가서 제천대성이라 자처하며 심통을 부린다. 천궁에서 이를 말리지 못하고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마침내 서방정토의 석가여래의 법력으로 손오공을 오행산 밑에 가두어버린다. 그뒤 5백 년이 지나 당의 삼장법사는 당태종의 명령을 받고 서방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떠나게 되었다. 법사는 오행산 기슭을 지나다가 그 산 밑에 깔려 있는 손오공을 구출해준다. 이래서 손오공은 삼장의 제자가 되어 인도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이어서 저팔계라는 돼지의 영물과 사오정이라는 물귀신의 영물들이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다. 이것들은 모두 천상에서 쫓겨나 요괴의 무리 가운데 숨어 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백마 한 마리, 이것 역시 천상에서 추방당한 용의 화신이다. 삼장법사는 이 용마를 타고 3종자를 거느리고 인도를 향해 가는데, 도중에서 81가지의 크고 작은 난을 만나게 되어 온갖 요괴화신들과 싸운다. 손오공은 그때마다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그다지 도움이 못되는 저팔계나 사오정과 힘을 합쳐서 스승인 삼장법사를 지킨다. 마침내 인도에 무사히 도착, 많은 경전을 얻어가지고 일행은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 공으로 주종 4인과 백마는 모두 훌륭하게 성불한다.


d.작품해설

삼장법사와 3종자란 멤버의 구성이 재미있다.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은 역시 손오공인데 천의무봉하고 난폭하다. 행동이 민첩해서 대단히 통쾌하다. 그러나 약은 만큼 매우 타산적인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연법칙의 제한에서 벗어나 절대적 자유 의 경지에 이른다. 이런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경지는 봉건적인 압박에서 벗어나며 자연을 정복하고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쥐려는 당시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저팔계는 돼지의 영물이니만큼 본래 대단히 착하고 정직한 자다. 톡톡히 천심도 가지고 있으나 어쨌든 음식과 여자라면 주책이 없다. 몸이 둔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다. 항상 손오공에게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뒷처리를 맞기지만 애교가 있어서 이 녀석이 모습을 나타내기만 하면 독자는 배꼽을 쥐게 된다. 

그런데 사오정은 말이 없어 묵상하는 철학자 같다. 멋은 없으나 매우 성실하고 온순한 영물이다. 이 3종자는 이미 원대의 설화 속에서 나오지만, 거기에다 이만큼 명확한 성격을 부여한 것은 오승은의 공적이라 하겠다. 한편 삼장은 실제로는 그와 같은 모험적인 대여행을 해낸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요괴나 악마와 직면했을 경우 오직 합장하고 염불밖에 외지 못하는 매우 무기력한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소설에 나오는 대개의 주인공들, 예를 들면 (삼국지연의)의 유비나 (수호지)의 송강 등이 모두 어리석게 보일 만큼 무기력한 인물(이것은 중국 사람이 생각하는 덕자의 상이기도 하다. 사려깊은 행위가 겉으로는 이렇게 표현된다)의 대명사란 점에서 미루어볼 때 흥미롭다.

(서유기)에서 기발한 구성과 묘미 있는 문장이 가장 발휘된 곳은 81난의 장면일 것이다. 실로 오만가지의 요괴와 악마들이 삼장일행의 앞길을 가로막고 손오공 등이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물리치며 뚫고 나가는데, 그 변화무쌍한 장면의 변화가 의표를 찔러서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심의 싸움(57--58회), 화염산의 싸움(59--61회) 등 작자의 공상은 신출귀몰하면서도 매우 동화적인 색채에 넘쳐 있다. 그 까닭은 작가 오승은이 문장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해서 세상을 우습게 풍자하는 성격도 작용한 것 같다. 악마와 싸우는 장면 등에도 유머가 넘쳐 저절로 웃음짓게 된다. 그 때문에 신선은 물론 악마나 요괴들까지 모두 인간미가 넘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명대 이후 소위 신마소설 이 숱하게 나왔으나 모두 (서유기)를 능가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서유기)의 예술성과 평가

(서유기)는 독특한 예술적 풍치를 갖춘 걸출한 낭만주의적 고전소설이다. 작자는 사회생활에 기초한 자기의 염원의 이상을 대담한 환상과 낭만적인 수법으로 표현했다. 그는 신화 전설 잡극 및 자신의 풍부한 상상을 결부시켜 신화적인 손오공 등 인물형상을 창조했을 뿐더러 그들의 활동무대인 천궁 등 신화세계를 그려냈으며, 그들의 투쟁대상인 각종 신선과 요마의 형상을 그려냈다.

(서유기)의 낭만주의적 특색은 또 인물형상을 부각함에 있어서 인간의 개성, 동물의 특징과 초자연적인 신성을 하나의 형상에 잘 융화시킨 데서 표현되었다. 자유를 사랑하고 신권에 반항하며 인간을 해치는 요괴와 투쟁하는 손오공의 정신은 봉건통치를 반대하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유머와 풍자는 (서유기)의 또 한 가지 예술적 특색이다. 손오공은 이런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것은 또한 손오공의 낙관주의적인 정신과 투쟁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손오공과 저팔계의 전형적 형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손오공이 천궁을 뒤흔들다 세 번만에 파초선을 얻어내다 백골정을 세 번 치다 이야기들은 일반대중들 사이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서유기)를 비평한 책으로는 청나라 오일자의 (서유진전), 장서신의 (서유정지), 오원도인(유일명)의 (서유원지) 등이 있다. 모두가 서유기의 주된 뜻을 해석하고 유학을 해명하기 위해, 또는 불교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도교를 선전하기 위해 썼다는 등 갖가지로 평하고 있다. 그러나 작자 자신은 별로 그처럼 어렵게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닌 듯하다. 작자는 원래 유학을 배운 선비로서 심심풀이로 이 소설을 쓴 것이다. 5행설을 이따금 섞고 있으나 특히 도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자의 불교에 대한 지식이 어설퍼서 당시의 상식 이상의 것이 아니다. 유불선 3교의 혼합은 당시의 풍조이기도 하나 작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직 우습고 재미있게 소설을 꾸미면서 붓장난을 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 듯하다.

(서유기)의 속작으로서는 (후서유기) 6권 40회가 있다. 작자는 알 수 없으나 명말청초의 것인 듯하다. 내용은 화과산에 또 돌원숭이가 태어나 신통력을 얻은 후 소성이라 자칭하며 대전화상을 따라 인도로 향한다. 도중에 저일계와 사미를 만나 함께 여러 악마를 정복하고 영산에 도달, 마침내 진해를 얻어서 돌아온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요컨대 (서유기)의 재탕에 불과하며 문장도 신통치 않다. 

그러나 (서유보)는 걸작이다. 모두 16회로 명말청초의 문인 동설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서유기) 제61회의 뒤를 이어 손오공이 시주를 받으러 가서 청어의 영물에게 홀려 몽경에 들어간다. 거기서 손오공은 진시황을 찾아 화염산을 달리고 만경루에 들어가 물구나무서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구한다. 또한 미녀로 변하거나 염라대왕으로 변하기도 하나 마침내 허공주인의 부름으로 몽경을 떠나면서 전부가 허무임을 깨닫는다는 것이 그 줄거리다. 이 책은 명나라 말엽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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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遊記 / Journey to the West  (출전 : 나무위키)


1. 개요

2. 각국의 서유기

2.1. 대한민국

2.2. 일본

2.3. 그 밖의 나라

3. 주요 등장인물

4. 등장하는 국가

5. 대중문화 속의 서유기

6. 각색

6.1. 주요 파생작품들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승은이 지은 중국의 고전소설. 당나라 승려 현장(삼장)법사가 서역에 불경을 얻으러 가면서 81가지 고생을 겪는 수난기이다. 단편으로는 서유보가 있고 속편으로 후서유기가 존재하지만, 둘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장르로 분류한다면 로드 무비다. 같이 4대 기서로 손꼽히는 《수호지》, 《삼국지》처럼, 《서유기》 이전에도 작품의 바탕이 되는 무수히 많은 설화들, 극본, 전설 등이 있는데, 작자인 오승은이 거의 혼신의 힘을 쥐어짜서 이들을 엮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어낸 작품.


전반적으로 비장미 넘치는 영웅들의 영고성패(榮枯成敗)를 다룬 대하소설 같은 《삼국지》나, 백성들을 쥐어짜는 권력가들에 대한 분노와, 법과 질서를 마음껏 유린하는 피카레스크적 전개를 지닌 《수호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색다른 작품. 전반적으로, 읽다보면 겉으로는 판타지/개그물 같은 작품인 듯하지만, 내용을 깊이 파보면 상당히 깊이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이해하기에 따라 다른 것이며, 가볍게 판타지/개그물로 즐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무능한 황제부터 시작하여 관리나 도적에 이르기까지, 평범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유린하는 힘 있는 자들을 활계를 통해 풍자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바르게 쓰여야할 깊이 있는 가르침을 오히려 혹세무민하는 데 악용하여, 관리나 도적 같이 백성들을 쥐어짜는 유불도의 인물들을 삼장의 고난과 모험으로 대차게 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곡해되고 있는 세상의 여러 가르침의 본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다루는가 하면, 또 살뜰하게 손오공이 이런 쳐 죽일 놈들을 무수히 때려잡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대리만족까지 시키고 있다. 애초에 작자로 칭해지는 오승은은 명나라가 한창 개막장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에, 탐관오리 누명까지 쓰면서 졸지에 잉여가 된 인물이기에, 대차게 깔 거리는 차고 넘치는 양반이었다. 이러한 분노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


완역판을 보면 알겠지만, 오늘날의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있는 개그물이다.[1] 포인트는 손오공의 발목을 잡는 무능한 울보 현장법사.[2] 초반에는 손오공의 뻔뻔함과 잔혹성이 싫어지지만, 나중에는 귀 얇고 몸 얇은 현장이 발암이다[3]. 《지 더구나 》의 현장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려졌나 보면 참 보면 하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손오공에 대한 질투심 + 아둔함으로 무장한 저팔계.


사실 중국어를 이용한 언어유희도 상당히 많이 등장. 손오공이 가장 처음 얻은 벼슬명인 필마온 자체가 언어유희이다.[4] 그 외에도 중국어에선 토지(土地)와 제자(徒弟, 도제)가 동음이의어라서, 삼장법사가 악몽을 꾼 뒤 깨어나서, ‘으아아! 제자들아!’ 라고 부르면 저팔계가 투덜거리며 일어나면서, "아따, 스승님은 무슨 꿈을 꾸셨길래 토지신[5]을 찾으십니까?" 라며 중얼거린다.


도교와 불교의 신선(부처)들이 우수수 등장하는 크로스오버의 선구자적 작품이며, 그럼에도 전혀 이야기 진행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논어의 "공자께선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 라는 가르침에 의해 이 작품에 대한 취급은 그다지…. 그래도 작중에서 유교를 무시하지도 않고, 공자를 선생으로 칭하긴 한다.


사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실상 삼장법사 갈굼이다. 사실 서천이란 곳은 손오공은 하루에도 네댓 번은 족히 날아서 왕복할 수 있으며,[6] 그보다 느린 저팔계나 사오정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진경은 고난 끝에 얻어야 성의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삼장법사가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서천까지 가야하는 것. 손오공의 목적은 '서천으로 가는 것'이 아닌 '삼장법사를 서천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이다.[7][8][9] 게다가 손오공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요괴가 아니라 삼장법사다.[10][11] 작중에서 요괴가 먼 곳으로 납치해간 걸 도로 데려오거나, 요괴가 꼼수를 부리자 어쩔 수 없이 손오공이 삼장법사 일행을 순식간에 산 너머로 이동시킨 것을 빼면, 단 한 번도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도술로 이동시킨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고생하는 곳은 커다란 강.


게다가 스포 주의 마지막에 서천에 도착한 그들은 마침내 원하던 진경도 얻고 편하게 구름 타고 당나라로 돌아가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이 삼장법사가 겪은 고난의 수[12]를 보니 80개로 딱 한 개가 모자라고, 걸린 날짜도 8일 정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한 번 떨구라고 한다.[13] 행보관이냐! 그렇게 해서 영감대왕과 싸웠던 통천하 부근에서 한번 떨궈서, 강 건너다가 그때 만났던 자라를 만나 고생하게 만들고[14] 며칠 지나자 다시 구름에 태워서 남은 길은 마저 편하게 가게 해주어 5천 48일의 수를 맞추는데, 이 무슨 고약한 심보인가. 그것도 마지막에 아난, 가섭 두 존자[15]가 자신들에게 선물을 달라고 했다가 주지 않자 삐쳐서 아무 것도 안 써진 진경인 무자진경을 줬다가, 삼장법사가 탁발할 때 쓰던 밥그릇[16]을 시주하자 제대로 된 진경을 주기까지 했었다. 주기 싫은 건가?[17][18]


중국 본토에서 만든 애니메이션도 있다. 대륙답지 않게 자연스럽다 후술하는 대로 무려 1941년에 중국에서 아시아 최초인 유성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장법사의 부하들은 오늘날로 따지면 하나같이 고관대작들밖에 없다. 이들이 삼장을 만나기 이전의 직함들이라는 게 오늘날로 따지면 대통령, 해군참모총장, 수도방위사령관이다.


손오공(孫悟空): 제천대성(齊天大聖: 원숭이로 이루어진 화과국을 다스리는 임금 및 72동 요괴들을 통솔하는 맹주, 천계에서 벼슬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화내며 돌아가 버린다. 이에 진노한 상제가 벌을 주려 잡아오려다가 천병(天兵)들이 줄줄이 깨지자, 달래는 의미에서 준 벼슬이름도 제천대성으로 명실상부 상제 다음의 지위에 맞먹는다. 실권은 없는 명예직이지만.)[19]

저팔계(豬八戒): 천봉원수(天蓬元帥: 하늘의 강인 은하수를 지키는 수군사령관)

사오정(沙悟淨): 권렴대장(卷簾大將: 옥황상제의 궁전을 지키는 경비총책임자)


2. 각국의 서유기[편집]


2.1. 대한민국[편집]


고려 말, 조선 초의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 언해, 노걸대》에서 《서유기》가 언급된다. 이 문헌은 서유기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최초의 문헌으로, 서유기의 수용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 사상이 거의 지배적이던 시기라, 서유기의 존재가 크게 알려지지 못한 편이나, 조선 시대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었다. 궁궐 지붕 위에 액을 막기 위해 세우는 잡상들 중에 대당사부(삼장),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 등 서유기의 주인공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1798년(정조 22년) 무렵 제작된 경남 양산 통도사 용화전(龍華殿) 벽화에서, 《서유기》의 주요 장면을 소재로 한 그림이 확인되었으며, 《서유기》가 석탑의 부조 형태로 표현된 예도 있다.


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으나(물론 《금병매》보다는 훨씬 높았지만), 근현대에 들어 일본의 서적이나 사상 등이 들어옴에 따라 서유기 또한 인지도가 올라갔다.


국내에는 주로 아동용의 다이제스트 버전의 소설이 널리 알려진 편이라서, 81가지 고행이 전부 등장하지 않는 책이 많다. 현재 원전을 번역한 10권 분량의 소설이 2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20]


참고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번역한 서유기도 필독을 권한다. 상당히 유려한 문체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 원작을 충실히 고증하면서, 현 시대의 병맛이 짬뽕된 작품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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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박영일 감독이 맡은 선화공주와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건 37분 정도로 잘려나간 버젼임을 알아두자. 삼부비디오를 통해 출시한 비디오판을 보면 원래 시간은 70분 정도니 절반 가까이 잘려나갔다. 참고로 이 애니 동화에 참여한 게 바로 김청기. 잠뿌리는 그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한 수작이라고 호평했다.


그밖에 1978년작인 한헌명 감독이 맡은 손오공과 별들의 전쟁이란 작품도 있다. 포스터와 달리 공주가 아니라 삼장법사가 주역(?)이다. 여기서 살생을 금하라던 삼장이 손오공에게 외계인에게는 가차없이 해치우라고 말을 하여 손오공이 살생을 금하라고 했잖습니까? 이러자 삼장법사가 하던 명대사.


오공아, 살생을 금하는 건 지구인에게만 해당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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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비디오로는 SF 서유기 스타징가처럼 나와서 헷깔리게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없다》라는 책자에서 이 비디오 표지를 싣으면서 이 애니가 SF 서유기 스타징가 표절작처럼 엉터리로 쓰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외계인 나오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 이외에는 오히려 원작 서유기랑 매우 비슷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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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표절이 아니라 무단도용이 하나 있긴 하다. 이 포스터에 SF 서유기 스타징가에 나오는 사 조고가 타는 우주전투기를 멋대로 도용했다. 하지만 정작 애니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으니 표절은 절대 아니다. 꼴에 애니메이터들이 썼다면서 작품 확인도 안하고 썼다

날아라 슈퍼보드도 결국 서유기가 원작인 셈.그러고 보면 삼국지와 더불어 한,중,일 3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1967년에 한국영화 손오공과 철선공주가 만들어졌고 후술하는 대로 KBS인형극 서유기도 만들어졌듯이 여러 미디어로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2.2. 일본[편집]


묘하게도 일찌감치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서유기의 판본이 일본에 있을 정도다. 불교가 일상화된 사회와 환상적인 분위기, 기묘한 스타일의 모험삼장법사의 기묘한 모험에다, 거기에 일본에서 친숙한 원숭이 주인공(…)이라는 요소가 일본인들에게 꼭 맞아 떨어졌는지, 일본 사람들이 더 좋아해서 여러 차례 일본에서 TV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묘하게 삼장법사가 여성화되어서 이후엔 여자 삼장법사로 누가 나오느냐로 화젯거리가 변질된 면이 없지 않지만.[21] 가장 유명한 것은 78년부터 80년 사이에 방영된 니혼 TV 《서유기》.[22] BBC에서 79년부터 이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서구(西歐)에 본격적으로 《서유기》가 알려진 것은 이때. 참고로 BBC에서는 『MONKEY』(…)라는 무식하고도 간단무쌍하기 짝이 없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참고로 이박사의 노래로 알려진 《몽키 매직》은 사실 일본 드라마 서유기 1기 때의 오프닝 곡이다. 7~80년대 일본의 인기밴드였던 고다이고(Go Diego)가 불렀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로 그렸는데, 제목은 《나의 손오공》.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80년대 초반에 KBS-2에서 방영했고 이후 리메이크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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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극장판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국내에 《손오공 돌원숭이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더빙 개봉된 바 있다.


사실상 현대 만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품. 일단 소년만화에는 비록 뒤로 갈수록 이름 빼면 아무 관련도 없는 만화가 돼버리지만 그 유명한 《드래곤볼》이 있고, 청년 만화 쪽에선 《최유기》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2.3. 그 밖의 나라[편집]


영국에선 데이먼 알반과 제이미 휴레트 손에 뮤지컬 화 되었다!


파일:external/pds25.egloos.com/e0006522_5798286e39565.jpg 파일:external/pds21.egloos.com/e0006522_57982844d33c2.jpg

미국에서 아부도(Abudoe Software)라는 업체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도스 및 윈도 3.1, 95게임이라, 지금 실행하자면 도스박스를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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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미원 인터렉티브라는 업체에서 《손오공탐험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정식 발매된 바 있다. 원제목은 《Wu Kung: A Legendary Adventure》. 문제는 그야말로 망해서 지금은 희귀게임이 되어서인지, 이베이에서 100달러가 넘는 값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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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식은 전형적인 당시 어드벤처 게임 형식. 게임이 짧은 편이고 난이도가 좀 있긴 하다. 공략을 보면 쉽긴 하지만. 손오공은 중국 발음인 Sūn Wùkōng(쑨우쿵)으로 제대로 나오는 반면에, 저팔계는 에디, 사오정은 시모어라는 영어 이름으로 나온다.


3. 주요 등장인물[편집]


손오공(손행자)

삼장법사(현장법사)

저팔계(저오능)

사오정

백마

인간계(당나라)

당태종 이세민 - 서유기 본편의 당나라 시대는 모두 이 사람의 재위기간이다. 경하 용왕과 얽힌 일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저승에 대해 알게 되고 중생을 구원할 진경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삼장법사에게 경을 가지러 서천에 다녀오도록 명하고, 의형제를 맺는다.

위징 - 당태종의 신하인 동시에 옥황상제의 명도 받드는 명신(名臣). 옥황상제의 명에 따라 경하 용왕의 사형을 맏는다. 경하 용왕은 당태종에게 위징을 사형 집행을 못하게 붙잡아놓아 달라고 부탁하고 당태종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당태종은 그가 말한 사형 시각쯤에 위징에게 바둑을 두자고 하는데, 바둑을 두던 위징이 잠이 들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위징이 혼 만 빠져나가 사형을 집행, 경하 용왕의 목을 쳐버린 것. 이 일로 당태종이 경하 용왕 귀신의 시달림에 죽게 되자, 저승의 판관으로 있는 의형제 최각을 알려주면서 당태종이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해준다.

장초, 이정 – 어찌 보면 만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학문은 뛰어나지만 벼슬엔 뜻이 없어서 장초는 물가에, 이정은 산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둘이서 길을 가면서 서로 어부로서의 삶과 사냥꾼 + 나무꾼으로서의 삶 중 뭐가 더 좋은지 시를 읊으며 옥신각신한다. 그런데 헤어지려는 순간 장초가 장안의 어느 도사에게 금잉어를 한 마리 주면서 어디서 물고기가 잘 잡히는지 말해주는데 그게 백발백중이라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다고 자랑을 하고, 근무시간인데 두 사람 말싸움하는 걸 느긋하게 듣고 자빠져있던 순찰하던 야차가 그걸 듣고는 깜짝 놀라 경하 용왕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결국 당태종이 죽다 살아나고, 삼장법사는 서천에 경을 가지러 가는 계기가 된다.(…)

원수성 - 그 당시 흠천감 장관 원천광의 숙부로, 장안에서 제일가는 점쟁이다. 장초에게 금잉어 한 마리를 받는 대신 그날그날 물고기가 잘 잡히는 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것 때문에 젊은 선비로 변장하고 찾아온 경하 용왕과 내기를 하게 되고, 내기에선 지지만 경하 용왕은 천명을 어겼으니 사형을 당할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용왕이 데꿀멍하곤 살 방법을 알려달라고 빌자, 당태종에게 부탁해서 위징이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준다. 아마 그렇게 해도 어차피 죽게 되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희망고문 쩌네.

천계(도교)

옥황상제 - 이래저래 손오공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인물. 손오공이 태어나면서 쏜 빛 때문에 깜짝 놀란 것부터 시작해서 기껏 불러 올려서 벼슬자리를 줬더니 연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천궁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 때문에 식겁한다. 손오공이 오백년 넘게 오행산에 봉인되었다가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 뒤로는 가끔 와서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을 빼곤 골치를 덜 썩여서 그나마 다행.

사해용왕

마앙태자 - 서해 용왕의 아들이다. 타룡 에피소드에서 손오공 일행을 도와 싸워 이긴다. 그 후 쇠머리 귀신 에피소드에서 코뿔소 요괴들이 서해로 도주하자 다시 참전한다.

경하 용왕 - 경하를 다스리는 용왕. 어느 날 부하 야차(물귀신) 하나가 원수성이라는 도사가 물고기가 잘 잡히는 자리를 예언해준다는 보고를 하고, 그걸 듣고는 그놈 때문에 수족(水族)이 씨가 마르겠다고 발끈한다. 그런데 원수성을 엿 먹이겠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명(天命)을 어기는 병크를 저질러버린다.[23]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생기자, 사형 담당관인 위징을 붙잡아 놓아달라고 당태종에게 애걸한다. 그러나 당태종이 실패하자, 귀신이 되어서도 그걸 트집삼아 저승에서 삼자대면을 하자고 당태종을 못살게 군다. 결국 이 것 때문에 당태종은 병을 얻어 사망하지만 위징, 최각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경하 용왕은 당태종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냥 환생당한다. 여러모로 찌질한 용왕. 여담으로 자식이 여덟 명이나 있는데, 그 중 막내인 타룡이 또 문제아라 후반부에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려 한다.

태상노군 - 작 중 가장 고생하는 신선. 손오공이 천계에서 깽판 부리던 시절, 실컷 고생하며 거의 다 구워가던 단약(丹藥)을 손오공이 술김에 죄다 처먹어버린다. 이에 빡쳐 손오공을 잡아다가 팔괘로에 넣고 구워 죽이려했으나 실패하고 팔괘로만 뒤집어진다.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혀있다가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 뒤에도 두 시종은 관세음보살님이 삼장법사 일행한테 시련을 준다고 빌려 금각은각형제가 되서 길을 막으러 가질 않나, 타고 다니는 자가용(?)인 판각청우도 금강탁을 훔쳐다가 도망가서 독각시가 된 데다가, 나중엔 대뜸 손오공이 찾아오더니 사람을 살려내는 단약을 달라고 어거지를 써서 결국 준다.(…) 처음엔 안 주려다가 손오공이 순순히 물러나니, 저거 물러난 다음 죄다 훔치러 오는 거 아닌가 걱정해서.(…)

탁탑천왕 이정

나타

이랑진군

태백금성 - 천계 최고의 대인배. 손오공의 세력이 커지자, 하늘에 벼슬자리를 하나 주어 달래자고 제안하고 손오공을 데리러 갔던 인물이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안 손오공이 필마온 자리를 내팽개치자 다른 신하들이 그를 처단하자고 하지만, 태백금성만이 그를 잘 타일러서 제천대성으로 삼고 반도원 복숭아지기를 시키자고 하기도 했다. 근데 그 결과는… 그 뒤로도 삼장법사 일행의 서천행에 가끔씩 나타나 도움을 준다. 이런 인물이기에, 그 손오공도 태백금성만큼은 존중해주고 그의 말은 거의 따라준다. 저팔계 역시 술에 대취해 월궁(月宮) 항아(姮娥)를 희롱했을 때, 태백금성 덕분에 가까스로 사형만은 면했었기에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진원대선

왕천군

이십팔수

불교

석가모니 - 부처님. 초반 천계의 연회에 참석하러 왔다가 손오공이 깽판을 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제압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유명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일화로 단숨에 손오공을 손 밑에 깔아뭉개고, 손을 오행산으로 바꾼 뒤 부적을 붙여 완전히 제압한다.

관세음보살 -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을 받들어 삼장법사가 서천으로 진경을 구하러 오도록 하고 관리하는 중간관리직보살. 작 중 손오공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가장 많이 도움을 준다. 가짜 손오공 육이미후 사건 때를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이분 선에서 사건이 해결될 정도.

지장보살

목타

보현보살

수보리 - 손오공의 첫 스승. 손오공이 영특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것을 보고 수제자로 기르지만 자랑하기 좋아하는 품성을 보고는 언젠가 분명 사고를 칠 놈이라는 걸 알아보고 파문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어디가서 자신에게서 도술을 배웠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손오공은 비록 쫓겨났지만 그 말만큼은 지켜서 손오공이 누구에게서 도술을 배웠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요괴

혼세마왕

우마왕

홍해아

금각은각형제

삼청관 도사

흑풍괴

나찰녀

남산대왕

가짜 손오공

칠대성

구령원성

독각시

새태세

영감대왕

풍류괴

황풍마왕

황포괴

칠절산 구렁이

구두충

황미대왕

사타동의 세 마왕

쇠머리 귀신

청모사자

백골정

우융왕

사타왕

붕마왕


4. 등장하는 국가[편집]


보상국: 황포괴와 싸운 곳.

오래국: 손오공이 태어난 곳인 화과산이 여기에 소속되어있다. 손오공이 도술을 배운 후 이 나라 도성에서 무기들을 훔쳐 부하 원숭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오계국: 문수보살이 데리고 있던 청모사자가 왕을 죽이고 대신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손오공은 왕을 살려내 다시 왕좌에 앉히고 청모사자는 문수보살이 데려간다.

차지국: 삼청관 도사들과 겨룬 곳. 저 요괴들에 의해 숭도억불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나 이후 삼교(유,불,도)를 고루 숭상하게 된다.

서량여국: 여자들만이 사는 나라. 오우 야오 유후. 남자가 없지만 '자모하'라 불리는 강물을 떠 마시면 임신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멋모르고 자모하 물을 마신 삼장과 팔계가 임신하자, 손오공과 사오정은 낙태천을 지키고 있던 여의진선[24]을 제압하고 물을 떠와 아이를 지운다. 안 지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후 도성을 지나갈 때 서량여국 여왕이 삼장에게 홀랑 반해 청혼한다. 삼장 일행은 계교를 써서 거짓으로 장가들 것처럼 흉내를 내다가 냅다 도망친다. 그런데 갑자기 웬 암컷 전갈 요괴가 나타나 삼장법사를 납치해가긴 하지만, 어쨌든 손오공 일행은 이렇게 서량여국을 벗어났고 여왕도 결국 삼장법사를 포기한다.

제새국: 구두충과 싸운 곳.

주자국: 새태세와 싸운 곳.

비구국: 집집마다 새장 속에 어린아이를 넣어 기르는 곳. 국왕의 병을 어린아이 1만 명의 간을 뽑아 만든 약으로 고쳐야 한다기에, 각 집마다 약으로 쓸 어린아이를 그렇게 가두어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손오공은 아이 1만 명을 감추어 두고, 국왕은 삼장의 간을 뽑아 약으로 먹으려 한다. 손오공은 그런 간악한 의견을 내는 요괴를 제압하는데, 그 요괴의 정체는 남극성노인이 타고 다니던 흰 사슴. 결국 국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국왕의 병은 남극성노인이 선물한 대추 세 알로 완치된다.

멸법국(滅法國): 이름 그대로 불교를 멸하려는 나라. 멸법국왕은 불교 승려 1만 명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삼장 일행이 오기 전까지 9,996명을 처형했다. 삼장 일행 네 명을 처형하면 딱 1만 명을 채우게 되는데, 이 사연을 들은 손오공은 일행을 장사치로 변장시키고 큰 나무 궤짝을 구해 그 안에서 네 명이 포개져 잔다. 그런데 도둑떼가 들이닥쳐 삼장 일행이 든 궤짝과 용마를 훔쳐 좋아라고 가다가 군대에게 들켜 도망가고, 궤짝은 국왕에게 보고할 량으로 궁정으로 옮겨진다. 정체가 들통나면 처형당할 것을 걱정한 일행을 위해서 손오공은 꾀를 내어, 상자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분신술을 펼쳐 궁정 인물들의 머리카락을 남녀 할 것 없이 홀라당 밀어내 몽땅 까까중으로 만들어 놓는다. 다음날 아침 멸법국왕은 이 변괴를 겪고 천벌이라 여긴다.[25] 이후 삼장 일행과 대면한 멸법국왕은 개심하여 나라 이름을 흠법국(欽法國)으로 바꾸고, 불교를 숭상하기로 한다. 물론 불교만 숭상하는 게 아니고, 유, 불, 도교를 모두 고루 받들기로 한 것.

천축국: 인도

사합리국: 화염산 에피소드에서, 저팔계가 "서역에는 사합리국이라는 해가 지는 곳이 있는데, 엄청 덥다더라."라는 식으로 지나가듯 언급한다. 시칠리아라는 설도 있는데 근거는 희박하다. 애초에 작가인 오승은이 머나먼 유럽에 있는 시칠리아에 대해 알았을 턱이 없다.


5. 대중문화 속의 서유기[편집]


수많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이용한 배틀을 선보인다는 점 때문에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경향이 많아서, 만화는 물론 영화, 인형극 등 다양한 매체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본고장 중국만 해도, 아시아 첫 장편 애니로 바로 이 《서유기》를 1941년에 유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정도이다! 《철선부채 공주(鉄扇公主)》가 바로 중국 첫 장편 애니로, 유튜브에도 72분 풀버전으로 올라와 있다. 만뢰명(萬籟鳴), 만고섬(萬古蟾) 감독(쌍둥이 형제)이 만들었던 작품.


80년대에는 KBS에서 방영된 《어린이 인형극판 서유기》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푸른하늘 날아라~ 손오공 손오공 악당들을 물리쳐라 손오공 손오공 여의봉을 휘두르면 겁낼 것이 없네 겁낼 것이 없네 저팔계 사오정은 초능력 삼총사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셋이라면 세상은 우리세상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 ~~라는 주제가를 아직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바로 《날아라 슈퍼보드》나 《나의 손오공》에서 손오공을 연기한 박영남이 여기서도 손오공을 연기했었다. 90년대에는 만화가 허영만이 서유기를 참신하게 재해석한 작품인 《날아라 슈퍼보드》로 빅히트를 쳤다.


실사 영상화 작품들 중에도 원전의 스토리라인을 따르지 않고 변주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유진위 감독, 주성치 주연의 《서유기-월광보합》과 《서유기-선리기연》은 명작으로 꼽힌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인 《서유기-항마편》 역시 중국 영화사(映畵史)상 가장 빠르게 한화로 1,700억 원을 벌어들인 성공작이다.


TVB에서 제작하고 장위건이 주연을 맡은 《신무협 서유기》는, 《서유기》 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한국에 잘 알려진 드라마이다. OBS와 iTV에서 방영해주었으며, 《서유기》의 스토리를 가장 잘 반영한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Ninja Theory에서 제작중인 《Enslaved: Odyssey to the West》는 미래판 서유기라고 할 수 있다. 로봇들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주인공 멍키가 트립이라는 여자에 의해 머리에 고리가 씌어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서쪽으로 함께 가게 된다는 내용.


6. 각색[편집]


《서유기》는 《삼국지연의》보다 훨씬 많은 각색이 시도되는 작품[26]으로, 기본적으로 핵심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고 플롯이 매우 느슨하기 때문에 각색이 쉬운 편이다.


일단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역할만 있으면 대략 《서유기》다운 꼴은 되며, 플롯은 중간의 고난을 줄이거나 변형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탄력성 있게 대응할 수 있다. 각색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삼국지》와는 달리 대놓고 컨셉을 판타지로 잡았기 때문에,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상당히 자유롭다. 그런 데다가 누구의 관점이냐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지는 삼국지와는 달리, 《서유기》는 손오공이 주인공이라는 고정적인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창작하기가 《삼국지》보다 훨씬 쉽다. 사실상 《서유기》는 항상 손오공이 고정적인 주인공이다. 이말년도 그래서 삼국지를 다 그려놓고도, 삼국지가 아닌 서유기를 발표했다.


6.1. 주요 파생작품들[편집]


《Dear Monkey 서유기》

《SF 서유기 스타징가[27]

《S.Y.K ~신설서유기~》

《SECRET JOURNEY》

《갓 오브 하이스쿨》[28]

《고우영 서유기》

《날아라 슈퍼보드》[29]

《도라에몽 극장판 노비타의 패러랠서유기》

《드래곤볼》

《드래곤 킹덤》

《록맨 메가 월드》

오리지널 보스 버스터로드.G, 메가워터.S, 하이퍼스톰.H

《마법천자문》

《몽키 매직》

《무쌍 오로치 마왕재림》, 《무쌍 오로치Z》

《반 서유기》

《삼투사》

《손손》

《서울 손오공》 - 신문수화백의 명랑만화 각색.

《서유기(KOEI)》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서유기 ~여행의 끝~》

《서유기 월드》

《서유기-월광보합》/서유기-선리기연》 - 이 작품 이후로 중국판 짝퉁비슷한 영화에서 손오공 이미지가 다 비슷해졌다.

《서유기-정전대성》

《서유기 리턴즈》(주연 김병만)

《서유기전 대원왕》 - 테라다 카츠야가 그린 작품. 굉장한 디테일에 오공, 팔계 등이 리얼한 짐승형태로 그려지고 피와 살이 튀는 물건이다.

《서유항마록》

《서유석액전》

《서유요원전》

《서환유기》 - RTHK의 풍자 TV쇼인 두조신문의 오프닝, 엔딩코너로 삽입된 서유기 패러디(?). 삼장법사와 손오공 분장을 한 진행자가 그날의 방송분에 관련한 멘트를 한다.

《신서유기》

《신서유기 손오공 대전비인》#

《신 무협 서유기》

《아소봇토 전기 고쿠》

《오공도》

《오공의 대모험》 - 1980년대 초반, 손오공하면 많이 기억하는 이미지. 동아제약에서 생산하는 건강식품인 미니막스의 표지로 쓰였을 정도였다.(이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때였지만.) 여기서는 사오정이 다른 작품과는 달리 할아버지 캐릭터다.

《이말년 서유기》 원작을 알아도 스포일러를 못한다 카더라.

《이스트 로드 퀘스트》

《인슬레이브드》

《최유기》

《채지충 서유기》

《파라티로 서유기》

《후서유기》


7. 관련 문서[편집]


사유기

북유기 / 남유기 / 동유기

신서유기



[1] 한편으로는 요괴와 인간의 혼혈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을 때려죽이는 등, 근대적 관점에서만 볼 때는 몰상식하고 잔인하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도 많다.

[2] 요괴 상대든, 인간 상대든 전투력은 0에 수렴하며, 심심하면 인질로 잡혀가는 히로인 포지션(…). 게다가 잡혀가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일반인들과 교제할 때에는 스님이라는 신분이 도움이 되는 편이다. 일반인이 손오공 일행을 보면 아예 요괴라고 피해다니니까.

[3] 아닌게 아니라 읽다보면 현장이 요괴들에게 납치되어 감금된 장면을 보고 "당해도 싸다!"란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보면 대개가 현장의 외골수적 원리원칙주의, 즉 불교의 계율에 너무나도 집착하여 일어난게 원인이다.

[4] 해당 문서 참조.

[5] 작중에서 토지신을 '토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6] 사실 그것때문에 지루함을 느낀 손오공은 도망을 시도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용왕의 외침을 듣고 참게된다는...

[7] 혜초가 인도를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은 4년이다.

[8] 당연히 지명이 동음이의어고 다른 거지만, 충남 서천도 남부지역에서 서쪽이다!!!! 舒[펼 서

[9] 《이말년 서유기》 댓글에 실제로, 장항선 서천은 대한민국에서도 오래 걸리지만, 중국에서 도보로 오니 얼마나 멀겠냐는 드립도 있다.-_- 여러분 정차횟수 적은 역은 시간을 놓치면 이렇게 곤란합니다

[10] 이 때문에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은 불경 배달 따위가 아니라,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초강력 마물인 손오공을 인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반 우스개 주장도 있다.

[11] 작품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요괴가 변신해서 일행 유인 → 손오공은 대번에 간파하고 혼내거나 걍 가자고 함 → 삼장이 혼내면서 요괴 도와주라고 함 → PROFIT(…) 저팔계 합류 이후엔 삼장과 저팔계가 쌍으로 손오공을 갈군다.(…)

[12] 삼장법사가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일이 제 1의 고난이다. 그 이후로 겪은 모든 고난들이 일일이 기록되어있다.

[13] 고난의 수를 구구 팔십일, 81개의 수효에 맞춰야 완성되며, 여행에 걸린 날짜는 5천 40일로 나눠준 진경 5천 48권에 비해 8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고생 한 번 더 시키라고 한 것.

[14] 영감대왕항목 참조.

[15] 석가모니의 제자이자 1대, 2대 의발전인(衣鉢傳人)인 그 가섭과 아난 맞다.

[16] 이래봬도 당태종이 삼장을 배웅하며 준 물건이다.

[17] 귀중한 불경을 너무 싸게 주면 후손이 벌 받는다는 핑계를 대는데(판본/번역본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이런 목적인 것도 있다), 이는 사실 저자 오승은이 천계나 서천에서도 뇌물이 존재한다고 비꼬는 의미로 그랬다고도 한다. 실제로 작중에서 부처를 호위하는 신장(神將)들이 이걸 보면서 가섭과 아난을 보고 손가락질하자, 둘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못한다. 여담으로, 이들이 가짜 무자경을 주는 것을 알아채고, 손오공 일행을 간접적으로 도와준 존재는 전불(석가모니 이전 시대의 부처)인 연등불.

[18] 가섭과 아난이 석가모니를 대신해, 삼장법사가 없는 몸에서도 내려놓을 줄 아는지를 시험해 보았다는 설도 존재한다.

[19] 실제로 원숭이 중에서는 상당수의 종류가 단체생활을 하고 실제로 리더도 있다.

[20] 하나(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임홍빈 역본)은 문어체로, 다른 하나(솔출판사에서 낸 서울대학교 번역조 역본)는 구어체(문장의 말투를 XX요 식으로 끝냈는데, 대하소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물론 구어체를 잘 살려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방식이 더 좋다는 평가도 있으니 읽는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로 번역했다.

[21]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 배우를 썼지만 일단 남캐 설정이다. 이 기믹은 매우 흥해서 일본에서는 삼장법사를 여성적인, 아니면 여자로 그려 넣는 게 대세가 되었다. 일본 드라마 《서유기》 1대 삼장법사는 나츠메 마사코(夏目雅子)로, 1985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의 삼장법사에 대해서는 추가 바람. 2006년 후지테레비의 삼장법사는 후카츠 에리.

[22] 젊은 세대에게는 후지테레비에서 2006년에 방영한 카토리 싱고 주연의 드라마도 유명하긴 하지만….

[23] 원수성이 내일 몇 시에 어느 정도의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하자, 용왕이 그게 맞으면 복채를 주고 틀리면 집을 박살내겠다고 내기를 건다. 그러곤 돌아와서 비를 내리는 건 자기 관할인데 그걸 어떻게 맞히냐고 낄낄대는데, 갑자기 그 일대에 비가 안 온 지 좀 됐으니 몇 시에 어느 정도 내리라는 원수성의 예언과 딱 맞는 천명이 내려온다. 거기서 그냥 졌다는 걸 인정했으면 쪽만 팔리고 끝났을 텐데, 괜히 이기겠답시고 시간도 다르게, 비의 양도 다르게 내린다.

[24] 우마왕의 아우이자 홍해아의 삼촌이다. 홍해아가 관세음보살의 수하로 들어간 것에 앙심을 품어 물을 떠가지 못하게 막았다.

[25] 여담으로 이 왕이 승려 1만 명을 죽이기로 한 이유는, 예전에 어떤 스님에게 모욕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6] 영화나 드라마야 말할 것도 없고 만화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경우 삼국지는 코에이 테크모의 삼국지 시리즈가 과반수인 반면, 서유기는 많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만화의 경우, 서유기는 《이말년 서유기》, 《날아라 슈퍼보드》, 《서유기 스타징가》, 《최유기》 등 정말 많지만, 《삼국지》의 경우 《고우영 삼국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등 《서유기》만큼 많지는 않다.

[27] 국내에서는 《오로라 공주와 우주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방영되었다. ‘대우주~ 대우주~ 옳은 세상 밝은 나라 세우러 간다~’ 라는 주제가를 기억하는 분들 있을 것이다. 이후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TV 방영되었다.

[28] 주인공인 진모리의 정체가 손오공이며, 과거 언급을 종합해봤을 때 기본적인 틀에 몇가지 추가적인 설정만 붙었다고 봐야한다. 천계에서 깽판을 쳤던 건 여기선 천마대전으로 바뀌었으며, 마지막 부처가 되기 전 석가여래와 싸워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차이.

[29] 연재 초반에는 《미스터 손》이라는 제목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에 만화의 타이틀을 교체했다. 아마도 애니화와 관련되어 임팩트가 있는 제목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드래곤볼》과 비슷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사실 초반에 손오공이 천계와 저승 등에서 깽판치는 부분 이후의 주인공은 미스터 손과 미로라는 소녀였다. 스커트의 그림자로 까맣게 칠해버리긴 했지만, 국내 만화로는 드물게 팬티노출이나 다름없는 각도의 연출(미로가 산에 깔린 미스터 손의 발을 밟고 놀라는 장면)도 있었고, 미로가 손오공을 유혹하는 듯한 장면이나, 미로의 목욕장면 비슷한 것도 있었다. 《드래곤볼》과 유사한 분위기이긴 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당시 연재본을 본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느닷없이 중간에 미로가 사라지고 삼장법사가 갑툭튀한다. 이 시기는 제목이 바뀐 것이 거의 일치한다. 왜 바뀌었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나오지 않았고,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만화의 성공과 애니화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으로 볼 때,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긴 하다. 그러나 확실하진 않다는 것에 주의. 여담이지만, 허영만의 다른 만화 《제7구단》은 실사화되면서 《미스터 고》로 바뀌었다.


B042 – 수호전 (水滸傳) / 시내암 (施耐庵, 1296 ~ 1370)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 등과 함께 명대의 4대기서로 현재도 민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 중국 명대의 시내암이 역사적으로 구전되어오던, 송강 이하 108인의 양산박 영웅들의 이야기와 전설을 모아서 편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삼국지)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본격적인 소설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에는 관료중심적이던 중국사회의 사고형식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출현하여 기존질서의 모순을 지적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a.(수호전)의 성립

중국 명나라 때의 장편소설로 중국의 4대기서 중 걸작으로 꼽힌다. 북송말기인 1121년에 송강이 이끄는 대도적단이 난을 일으켰으나 패전, 투항했다는 기사가 (송사)에 실려 있다. 이 송강의 난을 제재로 한 강해가 점차 발전했고, 원말과 명초에 일단의 형태를 갖춘 것이 (수호전)이다.  수호란 물가란 뜻으로, 송강이 양산박이란 호수를 근거지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이미 남송때에는 36인의 걸물들의 얼굴과 별명이 고정되어 노지심 무송 양지 등 활약이 많은 호걸들의 에피소드가 강담의 레파토리로 등장했다. 또 원대의 잡극으로도 많이 각색되어 여러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종의 역사소설 (선화유사, 大宋宣和遺事)에는 (수호전)의 원형이라고도 할 송강 등 36인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이 소설의 기초가 상당히 민간에 이야깃거리로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기왕에 있었던 이야기를 집대성하여 한 편의 장편소설로 꾸며진 것은 원말 명초의 시내암에 의해서인데, 그에 대한 역사기록이 없다. 또 시내암의 원작을 나관중이 보충했다는 설도 있다. 판본은 70회본, 100회본, 120회본 세 가지가 있으나 120회분이 수호설화에 가장 가깝다.


b.주요 등장인물

중국에 (수호전)에 대한 평가는 농민봉기를 그린 문학이란 평가뿐이다. 이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천자의 초안을 받고 귀순했으며 같은 농민봉기군인 방납을 토벌하는 쪽에선 송강에 대한 평가다. 그래서 봉기군의 송강과 방납토벌군의 송강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송강: 의협심이 있으며 호걸들과 사귀기 좋아하고 효성도 지극하다. 운성현의 하급관리를 지낸 검고 왜소한 사나이를 호한들이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양산박의 조개등과의 연계가 탄로난 다음 첩 염파석을 죽이고 강주에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술에 취해서 반시를 읊었다. 형장에서 양산박 호한들의 구조를 받고 마침내 그들의 수령이 된다.

소설에서의 위치는 (삼국지연의)의 유비와 (서유기)의 삼장법사에 비유되지만, 양자의 선의와 무능에다가 김성탄의 (제5자서수호지)에서 사악 이라고 평하는 이면성을 가진 점이 다르다. 전반의 송강과 귀순한 뒤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마지막에 독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마신 다음 모반할 가능성이 짙은 난폭한 이규에게도 마시게 하여 죽음에 동행하게 한 후반의 송강은 성격에 일관성이 없다.

송강은 (수호지)의 영웅들 중에서도 드물게 여자를 가까이한 인물로 그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풍채가 별로 좋지 않은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앞선 문헌에는 그런 묘사가 없다. 유비에게는 한실의 후예라는 좋은 배경이 있고 삼장법사에게는 손오공을 길들이는 긴고주가 있었지만 송강에게는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소설 후반은 전반부의 그답지 않게 활발하며 자주 폭음하면서 영웅들을 충성에 연결시키고 방랑토벌에서 일당의 해산과 수습까지 맡도록 해서 송강게 기초한 부분이 많은 전반부와 괴리가 생겼다.

이규 무송 노지심: 이규는 옥졸이었으나 강호에 나서 양산박의 보병두령이 되고 성품이 직선적이고 성미가 불 같아 실수도 하지만 그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의 안위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고 자신의 믿는 바를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형이다. 생각도 없이 서둘러 모반을 외쳐서 언제나 송강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흑선풍. 무송은 호랑이를 손으로 때려잡은 행자. 노지심은 성품이 강직하고 힘이 장사인데 미녀 김취련을 구하고자 정대관을 한주먹에 요절내고 피신하여 중이 되었다가 양산박에 들어간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불의에 무관심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규 무송 노지심은 (삼국지연의)의 장비, (서유기)의 손오공 같은 인물 인물로, 김성탄에게도 최상의 인물로 꼽히고 민중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

오용 주무 공손승: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역할을 세 사람이 분담하고 있으나, 지다성 오용의 지는 돋보이지 않고 신기군사 주무의 군사로서의 역할도 애매하며, 입운룡 공손승의 요만 지나치게 돌출해서 흠이다.

조개 양지 임충: 양산박의 제2대 수령 탁탑천왕 조개, 그는 시골 부호출신으로 하급관리를 지냈으나 의로운 일을 하고 양산박에 들어가 두목이 된다. 어느 순간에 인간의 운명은 전혀 다르게 변할 수 있으나, 운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석강에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호한들 속에 낀 청면수 양지, 양지는 무과를 거쳐 제사관이 된다. 나라에 충성하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녹림객(綠林客, 화적이나 도둑을 달리 이르는 말)이 된다.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비록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구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 뻔한 표자두 임충은 체제에서 쫓겨난 체제 쪽의 인물이다.


c.주요 내용

북송 인종시대, 천하에 전염이 돌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져 있었다. 조정에서는 대장군 홍신에게 칙서를 주어 용호산 상청궁에 가서 사한천사를 모셔 오게 했다. 그의 힘을 빌어 이 액운을 없애려 함이었다. 그러나 홍신은 그 현지 가까이 가서 금단으로 봉인되어 있는 복마전 을 열게 했다. 그러자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한 줄기 검은 구름이 지붕을 뚫고 뻗쳐올랐다. 이리하여 갇혀 있던 36천강성과 72지살성 등 108명(한 사람 한사람의 운명이 모두 하늘의 별자리와 결부되어 있다)의 호걸들이 각지에 흩어져 파란만장을 일으킨다.

송강을 필두로 노준의 오용 무송 임충 등 여러 호걸들이 각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호걸들의 전신은 관리 무관 학자 농민 상인 어부 도둑 건달 등 각계각층이었다. 이들은 휘종의 난세를 무대로 강자를 무찌르고 약자를 돕는 의협심과 반골적인 정신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부패한 관료들에게 압박을 받아 몸을 의탁할 곳이 없게 되자, 각지로부터 108인의 호걸들이 산동에 있는 양산박에 모여들었다.

그 호걸들 중에서도 노지심은 천하 대장사였다. 그는 지주의 외동딸이 산적들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을 구출해주었다. 일단 산적두목을 무찌른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은 고마워하면서도 산적들이 떼로 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을 했다. 그때 노지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인 양반, 걱정일랑 마십시오. 그런 녀석들 천 명이나 이 천명은 와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겠소. 내 말을 믿지 못하면 이 석장을 들어보시오. 그 석장은 길이가 5척이나 되었다. 누구 하나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노지심은 그것을 새털이나 들듯 가볍게 들어올려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 도둑질의 제1인자 시천, 꾀에 있어서는 제갈량보다 한 수 위라는 오용 등 108명이 벌이는 사건은 형형색색이다.

그들은 송강을 수령으로 받들고 의를 맹세하며(71회까지), 진압차 온 관군을 계속 무찔러서 그 위력을 과시한 후 조정에 귀순한다(81회까지). 그후 양산박의 무리들은 북방을 압박하고 있는 요(거란)나라를 제압하는 데 공을 세우고(110회까지), 이때까지는 108명 중 희생자가 없었으나, 강남의 반란군인 방납의 진압(119회)에 이르러서는 여러 장군들이 차례로 쓰러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도 출가하여 27명만이 귀환한다. 그러나 간신의 음모로 송강이 음독살해 당하자 의를 맹세했던 형제들은 흩어지게 된다(120회).

가장 중요한 부분은 71회의 호걸들이 다 모이는 장면인데, 독자에게 인상 깊은 배역들이 차례차례로 등장하여 눈부신 스토리를 전개하고, 이어서 하나씩 교묘하게 양산박으로 이끌려들어가는 대목의 구상은 탁월하다. 수호지적인 영웅의 처절한 이미지와 잘 부합되어 이 책에서 볼 것은 거의 이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 108인 중에는 탐욕스런 고관이 긁어모은 불의의 재물을 기막힌 꾀를 써서 탈취한 일당, 체포되기 직전에 놓인 호걸을 의로써 구했으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집요한 첩한테 시달리다가 죽이고 달아나는 하급관리 송강, 살인 등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도적의 무리 속에 끼어드는 호걸, 못된 상관한테 박해를 당하다가 양산박으로 몸을 피하는 무관, 토벌 나온 관군에서 몸을 빼내고 도적떼에 가담하는 용장, 근본부터 도적으로 생겨난 놈, 거기에 여자호걸까지 끼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들이 천하를 횡행하면서 저지르는 사건도 가지가지이지만 두드러지는 것은 전편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살인 이야기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수호전 영웅의 본질에 뿌리박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므로 한편 (수호전)에서는 송강의 전설에 따라다니는 반관정신이 농후하게 계승되어 있어서 그들의 의협심이 강조되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 통쾌한 민중의 영웅은 선량한 약자인 청중이나 독자에게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학대받는 약자의 이상화된 영웅이라고 단순히 규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108인의 괴상한 호걸들이 때로는 대범하게 때로는 흉악하게 난동하는 그 세계에는 에네르기화한 즉흥성과 집단적 상상력의 불투명한 폭력이 관념의 베일로 가리는 일 없이 크게 피어나고 있으며, 허구의 방자함은 예술적으로 해방된 정신을 느끼게 한다. 특히 본서의 전반부에서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시정의 생활을 그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영웅과는 다른 현실감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70회에 가까워지면 기왕에 존재했던 이얏기거리도 거의 바닥이 날 판이라, 108의 머릿수를 맞추기에 작가는 애를 먹는 꼴이 되어 조정에서 파견된 정벌군의 무장이 도적떼로 전향하는 부분은 어색하고 귀족스러운 냄새까지 난다. 71회 직후부터 이야기는 귀순-공업-비극적인 결말로 들어가는데, 이 부분은 전반부의 필치와 내면적으로 계속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누르고 이미 마련된 각본대로 꾸며나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71회 이전과는 변질되어버렸다고 해도 좋을 듯하고, 91~110회의 전호와 왕경을 정벌하는 이야기는 엉터리로서 후세에 억지로 늘인 듯한 감이 든다. (수호전)의 문장은 대체로 문어적인 간결함이 남은 구어체로 강담의 어조가 가장 여실히 보존되고 있다.


d.(수호전)의 영향

(수호전)의 영향은 문학작품만이 아닌 정치사회군사예술 등 온갖 분야에 걸쳐 있다. 한 예로 도적이나 반역자 중에는 (수호전)에 나오는 호걸들의 이름을 그대로 자칭한 자도 있었으며, 20세기 와서도 모택동의 게릴라 전술에 양산박 도적들의 유격전술을 그 원리 면에 있어서 그대로 답습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중국의 소설사적 견지에서 이 작품을 보면 송대에 성행한 새로운 민간문예를 배경으로 성립된 구어소설 중 정점을 이루고 있으며, (삼국지연의)와 더불어 명대 장편소설의 선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거칠면서도 순진한 평민적인 호걸상)은 역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이탁오 등 일부 반역적인 문인들의 새로운 문학관과 인생관의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 (수호전)은 그후 문학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영웅인물의 부각 및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결합에 좋은 계시를 주었다.

한편 (수호전)은 민중들 속에서 널리 애독되고 유전되면서 거대하고 다방면적인 영향을 일으켰다. 우선 명청의 계급투쟁, 특히 농민봉기에 대해 크게 고무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자성 봉기, 태평천국, 의화단 봉기, 심지어 비밀리에 조직되었던 반청조직인 천지회 등은 수호전 영웅들의 반항정신에서 거대한 힘을 얻었고 풍부한 투쟁경험과 다종다양한 투쟁방법을 배웠다.

(수호전)이 이와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봉건지배계급은 그것을 증오하면서 금지시키는 등 그 영향력을 극소화하려 했다. (수호전)은 도적을 가르치는 책이며 요사한 말로 뭇사람을 유혹하니 제자들이 보게 해서는 안된다 라고 했으며, 심지어  (수호전) 작자의 후손은 벙어리가 되라 라고 저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명대의 숭정연간에는 (수호전)을 엄금한다는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으며 그후에도 엄금했다. 봉건지배계급의 여용문인인 유만춘은 소설 (탕구지)를 써서 (수호전)의 영향을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봉건지배계급은 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수호전)의 영향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중국의 개화 이후 여기에 그려진 호걸들의 모습은 중국 남성의 이상적인 이미지로 등장했고, 혁명과 전쟁을 거듭하는 동안에 위대한 고전문학의 유산으로 재평가 받기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의 (홍길동전)이나 (임꺽정전)도 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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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滸傳 (출전:나무위키)


1. 제목[편집]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 고전의 양대산맥으로 인정받는 소설로 영문 제목으로는 Water margin 또는 All men are brothers.[1] 코에이에서는 수호지의 제목을 Bandit Kings of Ancient China라고 번역했다.


원나라 말 시내암이 원작, 그리고 삼국지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이 손질하여 만들어졌다는 설이 대세지만, 시내암이 실존인물이었는지 불분명하다.


국내에는 흔히 삼국지, 초한지 등과 묶으려고 그랬는지 수호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제목은 수호지(志)가 아니라 수호전(傳)이다. 삼국지와 초한지는 왕조를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에 '지'가 붙지만, 수호전은 인물 중심의 이야기(傳)이기 때문.[2] 그런데 위키에 존재하는 등장인물 항목은 대개 '○○(수호지)'이지 '○○(수호전)'이 아니다.


2. 판본 성립사[편집]


나관중본과 모종강본으로 간단히 구분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수호전의 판본 성립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아래에 언급한 세 판본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판본이 있으나 듣보잡에 가깝다.[3] 일본에서는 120회본이 수입되었기 때문에 120회본이 가장 널리 읽히지만,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것은 70회본이다.


100회본 : 수호전의 가장 초기 판본으로 송나라가 요나라한테 당한 설움을 소설로나마 풀어보고자 하는 성향이 가장 강한 판본. 양산박의 두령들이 이사사의 도움으로 모두 사면되어 죄를 용서받고 송 조정에 귀순하여 요, 방납을 토벌한다.

120회본 : 명나라 말에 양정견이 정리한 판본. 120회본은 요 정벌과 방납 토벌 사이에 전호, 왕경 토벌이 추가되었다. 송강이 전호 토벌 과정에서 새로 동료로 맞은 인물들이 왕경 토벌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떠나버려서 다시 본래의 108 두령들 밖에 남지 않게되고 교도청과 마령이 왕경 토벌 이후에 송강의 휘하를 떠나 나진인의 제자가 되는데 정작 나진인과 면식이 없는 이들을 나진인에게 소개해줘야 할 공손승은 이들과 바로 함께 떠나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방랍 토벌 직전에서야 떠나는 등 본래의 100회본과 이야기를 끼워맞추려 하다 보니 생긴 어색한 설정이 많이 등장한다. 또한, 전호토벌전에서 등장하는 경영 등의 인물이 108성에 끼지 못하는것도 이들이 120회본에서 추가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70회본 : 청대 초기의 문학비평가인 김성탄이 정리한 판본. 김성탄은 도적을 미화하는 내용은 사회에 좋지 않고, 뒷부분의 내용 자체도 너무 산만하여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서, 송강의 반역시 등 일부를 제외한 시(詩)와 사(詞)를 모조리 삭제하고, 108성 집결 이후의 후반부를 뚝 잘라서 70회로 정리하였다. 70회본은 노준의가 불길한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난다.[4] 또한, 김성탄은 70회까지가 시내암의 저작이고 그 뒷부분은 나관중이 가필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에 대해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문헌학적으로 보았을 때는 뒷부분도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이나, 문학의 입장에서는 김성탄의 심미안에 수긍할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아닌게 아니라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진 후반부에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산만해진다.


3. 줄거리[편집]


도입부는 송인종 시대부터 시작, 송인종은 나라에 역병이 돌자 태위 홍신에게 장천사를 찾아가 역병을 물리칠 것을 부탁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런데 홍신이 장천사의 복마전에서 장천사가 봉인해두었던 36천강 72지살의 108 마성(魔星)을 실수로 봉인에서 풀어버리고, 봉인에서 깨어난 108 마성은 세상으로 흩어진다. 인종은 크게 걱정하지만, 장천사는 인종에게는 문곡성(文曲星)과 무곡성(武曲星)이 있으니 인종 당대에는 108 마성이 발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5] 다만, 후세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때는 중국 북송 송휘종 치세, 세상이 혼란해지고 황제는 무능하여 간신들과 어울려 충신들을 멀리하고, 황제의 측근이었던 고구가 모든 실권을 쥐고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과거에 풀려났던 108 마왕들이 현세에 108 호걸들로 강림하여 양산박을 본거지로 삼고 폭정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줄거리.


초반에는 108 마왕 중 주축이 되는 무송, 노지심, 임충, 양지 등을 중심으로 무협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중반부에는 108인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송강이 주인공이 되며 후에는 108 호걸들이 양산박에 결집하고 조정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내용이다. 개성이 뚜렷한 108명의 호걸들과 거칠지만 풍부한 어휘 등으로 옛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도 대중적으로 읽히고 있다. 108인 중 다수가 독립된 야담, 전설의 주인공이며[6], 말하자면 저스티스 리그나 어벤저스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요 사상은 '사해(四海)는 모두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양산박 호걸 108명은 모두 의형제를 맺어 서로를 호형호제한다. 양산박의 주요 이념은 '체천행도(替天行道)'이다. 즉,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라는 뜻으로, 부패한 북송 조정을 개혁하고 어려운 백성을 구휼하고자 한다. 특히, 주인공인 송강을 비롯한 조정 관리, 장수 출신 인물들은 황제(휘종)가 양산박을 인정하여 조정에 귀의하고자 하며, 천하가 혼란하여 부득이하게 도적이 되어 고구를 비롯한 탐관오리를 척결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양산박은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100% 의적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물론 북송 조정은 아예 답이 없는 상태. 그래서 수호지를 안티 히어로 작품 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동아시아의 주된 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의 요소도 적잖이 반영되어 있다. 체천행도(유), 노지심과 무송, 등원각(불), 공손승과 그의 스승 나진인 그리고 108성, 올안광의 태을혼천상진(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설 전개 동안 거의 한 명도 죽지 않던 양산박의 호걸들이 마지막 전투인 방납의 반란 사건에서 70명 가까이 우수수 죽어버리는 걸 보면[7], 이것도 소드마스터 야마토 식의 결말이라 해야할지도. 사실 양산박이 시대와 장소를 달리한 당시 창궐하던 산적과 호걸들의 얘기들을 억지로 끌어모은 것이라서 행적을 알수 없거나 가상의 인물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어쩔수 없이 쉽게 죽어나가는 것이다.


4. 국내 출판본[편집]


국내에서는 이문열이 편역을 해서 출판한 10권짜리 이문열 평역 수호지가 가장 많이 읽힌다. 처음 나왔을 때는 70회본이 기준이어서 6권만 나왔고 뒤에 가서야 120회본에 기초해 4권이 추가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10권은 상당 부분을 진침의 수호후전 요약과 작가의 양산박 기행으로 때웠다.


이문열 편역판 6권까지 편역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김성탄본은 70회 완결로, 호걸이 모이는 부분까지다. 관군의 수차례의 침입을 물리치고[8] 이후 자발적으로[9] 송에 귀순하고 요 → 전호 → 왕경 → 방납 순으로 정벌을 나서는 부분은 김성탄본이 아닌 다른 판본(100회본, 120회본)을 근간으로 편역했는데, 원래 100회본은 당대 역사에 맞추어 요 → 방납으로 진행되었고 이것이 인기를 끌자 중간에 가상의 역적인 전호, 왕경을 넣었던 120회가 만들어졌다.


호걸이 모이기 전까지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문장의 정채로움이나 사건의 짜임새가 김성탄본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국내에 번역된 수호지는 어린이용까지도 대체로 뒷부분의 이야기도 수호지 본편으로 쳐주어서 같이 묶어내는 듯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범위에서는 1978년에 금성출판사에서 김하중 역 수호전으로 나온 70회본이 최초의 완역으로 추정된다. 이 판본은 90년대까지도 금성출판사의 여러 세계문학전집에 재수록되었다. 전통적인 장회 구성에 충실하고 역자의 문장도 매우 훌륭하다. 다만 90년대 이후로는 세계문학전집의 일부로만 출간되어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1990년 12월에 청년사에서 연변대학의 조선족 역자들이 번역한 120회본 수호전을 신역 수호지라는 제목으로 7권으로 나눠 출판했다. 이 판본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120회본 번역이다. 이후 2014년 7월에 홍정욱 씨가 운영하는 올재재단에서 4권으로 편집하여 수호지라는 이름으로 소량 발매한 후 품절된 상태였다가 많은 독자들의 재발행 요청이 있자, 올재 셀렉션즈로 재출간했다. 이 번역은 교수신문에서 나온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 다른 번역본들이 너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추천본으로 뽑혔다.[10] 연변대학 판본은 120회본을 유일하게 장회 구성에 따라서 완역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그러나 조선족 번역이라 출판사에서 다소 수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낯선 문화어가 더러 쓰였다.[11] 그리고 제목도 수호'지'로 해버리는 바람에 모처럼의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에 흠이 되었다.[12]


2012년 10월에 글항아리에서 방영학, 송도진이 번역한 김성탄의 70회 판본을 6권짜리 수호전으로 번역해서 나왔다. 전통적인 장회구성에 따라 완역했다.[13] 연변대학본과 같은 문화어 문제도 없다. 김성탄의 발문과 수호전 인물평까지 옮겼기 때문에, 이를 통해 김성탄의 수호전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71회 이후 부분은 차후 번역할 계획이 있었던 듯 하나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김성탄 70회본을 기준으로 한다면, 김하중 역에서도 빠졌던 발문과 인물평을 모두 포함했기 때문에, 최초의 김성탄 역 완역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다만, 최초의 수호전 완역이라고 과장해서 광고한다면 분명히 오류다.


그외 팔봉 김기진의 번역(수호후전을 합친 164회본 기준)이 있었으며, 기타 번역들은 대부분 원문을 축약해서 번역하였다.


아마도 시내암의 원형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생각되는 100회본의 한국어 번역은 현재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고우영 수호지에서는 고렴을 때려잡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여기가 수호지 이야기의 1/3이다' 하는 식으로 뒷부분을 예견하는 대사를 이것저것 집어 넣은 걸 볼 때, 연중은 역시 의도치 않았던 것인듯. 고우영 수호지의 경우 1973년부터 연재를 했지만 노준의 등장 직전, 정확히는 사진을 구하러 출발하는 장면까지 그린 직후 군사정권의 압박에 의해 중단되었다. 2000년부터 리메이크 판으로 수호지 2000을 연재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되었다. 후에 자음과 모음을 통해 새로 그린 20권짜리 수호지가 나왔으나 결국 고우영의 사망으로 미완성이 되어버렸다.


5. 역사적 사실과의 관련[편집]


송나라 시대의 역사서인 <송사>에 송강 등 도적의 괴수 36인이 귀순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방랍이 강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14]


즉, 송강이 조정에 항거하다 귀순한 것과 방랍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부분만이 사실이었다는 소리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실존인물로는 송강 이외 36인(이 36인도 어떠한 사람이 실존인물인지 분분하다.), 양지, 이충, 임충, 유당, 왕륜, 방납, 여사낭, 정마왕(수호전에서는 정표), 고구, 동관, 양전, 채경, 양사성, 후몽, 장숙야, 이사사 등이 있다.


6. 삼국지연의와의 공통점?[편집]


나관중이 손질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삼국지연의에서 차용한 듯한 요소들이 많다. 주인공 송강은 유비와, 오용은 제갈량, 이규는 장비와 이미지가 중복된다. 주동의 별명인 미염공은 관우의 별명이기도 하며, 관승은 아예 관우의 후손으로 등장하여 청룡언월도를 사용한다. 임충은 장비의 무기인 장팔사모를 사용하고, 여방과 곽성 등은 여포의 무기인 방천화극을 사용한다. 그리고 연의에서 나온 가상진법인 장사팔괘진이 나온다. 요나라와의 진법 싸움에서의 모습을 보면 요나라는 조인의 위군에 대비되고 주무는 서서에 대비된다. 조조, 손권에 매치되는 캐릭터가 없다. 여포는 있는데. 본격 촉빠여포빠 소설. 여방, 곽성이 증도 한 명한테도 쩔쩔매는 걸 보면 여포까가 아닐까?


7. 평가[편집]


중국사대기서의 하나로 꼽히며, 또 다른 사대기서인 금병매의 모체가 되는 작품이다.[15]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연의를 읽지 말라고 한다. (원래는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나이 들어서는 수호전을 읽어라'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수호전은 정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니 젊음 자체가 발산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삼국연의에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으니 이미 삶의 연륜이 쌓인 노회한 사람들에게 불필요하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큰 인기를 누리는 삼국지연의와 달리 수호전은 상대적으로 한 단계 낮은 평가를 받거나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7.1. 범죄 미화[편집]


도적, 건달, 살인범 등 범죄자를 미화한다. 양산박 108호걸들은 완전한 악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인물이 많다. 인육, 유아 살해, 불륜 등 미풍양속에 어긋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호걸들 저지르는 범죄가 부패한 송나라 조정의 관리들이 하는 짓과 대등할 지경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소설이 유행하는 것을 경계하던 문인들이 항상 예시로 들곤 했던 게 수호전이었다. 특히, 108호걸 중 일부가 잡혀갈 경우, 무고한 민간인들조차 대량학살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노준의가 옥에 갇혔을 때는 구하는 과정에서 그 성에 있던 민간인의 1/3이 피해를 입었고, 그 중 5만 여 명이 죽었다.[16] 이 정도면 미풍양속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수호지에서 인기 많은 캐릭터 중 하나인 이규의 행적은 싸이코패스 살인마 수준이다[17].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요소 때문에 유교적인 영웅의 전형상에 갇혀버리기 쉬운 다른 고전소설보다 훨씬 더 '진솔한 인간상'을 드러낸다.


여담으로 이러한 점 때문에 수호전이 일종의 전근대 암흑가를 소재로 한 '무서운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른바 '무서운 수호전' 이론으로, 본래는 훨씬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이야기였지만, 출판화 되면서 오히려 점차 순화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범죄자보다 더 심한 암군이 더 미화되었다는 점은 알아두자.


7.2. 주축이 없는 스토리[편집]


이야기에 중심이 없다. 108영웅이 다 모이기 전까지는 옴니버스 형식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예를 들어 노지심이 어디서 뭘 했다가 무송이 반금련을 때려잡았다가 송강이 유배를 갔다가…


그런데 사실 소설을 꼼꼼히 읽어 보면 이 이야기들은 독립되어 있지만 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이는 것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7.3. 비중 조절 실패[편집]


등장인물의 비중 조절에 실패했다. 양산박 108호걸 중 주연급인 활약을 보이는 인물은 천강성 36명 정도이며, 지살성 72명은 엑스트라 같은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18] 그러나 지살성인데도 천강성보다 비중이 높은 주귀, 호삼랑같은 인물이 있어 분류기준이 확실히가 않다. 여방과 곽성, 공왕과 정득손, 한도와 팽기 등 양산형 인물이 짝을 지어 나오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이름만 나오고 거의 등장도 하지않아 "이런 인물도 있었나?"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방랍의 난에 우르르 떼죽음을 당한다.


사실 이것은 100화와 120화의 설정 구멍 때문에 그렇다. 100회본에서는 방납 토벌 때 108명만 나오지만 120회에서는 전호토벌 때 가담한 주역급 멤버가 중간에 나오기 때문에 아예 명단에서 짜르고 대부분 왕경 토벌때 사망처리했다. 예외는 왕경 토벌이 끝난 직후에 떠나는 교도청과 마령, 동경으로 귀환하지만 방납 토벌 직전 임신을 이유로 남게 되는 경영, 임신한 경영을 돌보는 섭청.


7.4. 호평[편집]


이런 단점도 있지만 여성의 비중도 제법 있고 등장인물들의 마초스러운 성격 등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현대인에게 거부감이 들만한 내용이 많지만 이 작품이 고전 소설이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산주의 중국 시절에는 반봉건적인 내용 때문에 정부 인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마오쩌둥도 즐겨 읽었다. 하지만 송강 등은 끝내는 황제 체제를 인정하고 봉건 질서에 영합했기 때문에 제정과 결탁하여 혁명을 망친 반동적인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송강이 투항한 이후 반란군을 토벌하는 대목은 수호전으로 인정하지 않는 쪽도 있다.


7.5. 교훈[편집]


수호전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교훈은, 세상의 평판만 쫓다 보면 몸이 망한다는 것이다. 송강의 판단 착오로 인해서 108호걸들은 지리멸렬 꽃처럼 산화해 갔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관군과 정부를 믿지 말라는 것이 이 소설 최대의 교훈이다.[19] 즉 이왕 칼을 뽑았으면 뒤엎으라는 이야기다. 칼을 뽑아 든 순간 이미 기존 기득권 세력, 관군, 조정과는 결별이다. 다시는 화해가 불가능하다. 아울러 원수를 눈 앞에 두었으면 반드시 죽여야 후환이 없다. 고구를 죽이려는 임충, 양지를 말린 것은 송강의 큰 실수이다. 물론 양산박의 전력이 송나라 정부군에 비하면 열세임을 감안하면 고구를 죽여서 송나라와 싸우겠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방랍만 해도 계속 적대하다 망한것을 보면… 더욱이 송강은 송나라 조정이 죽인게 아니라 간신들이 죽인거다. 송나라 조정은 호걸들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나마 스핀오프, 후속작인 수호후전에서는 고구도 송강처럼 독살을 당한다. 채경도 역사에서는 쫓겨나서 귀양가는 도중에 죽고 가문이 망한다. 뭐 역사이나 소설이나 실질적인 원흉인 송휘종이랑 북송 역시 금나라에게 망하니 고구나 송강한테는 배드엔딩이 맞다. 나중에 금나라도 베드엔딩 크리 안녕하세요? 원 세조 쿠빌라이 칸입니다. 금나라도 조지고 송나라 잔당인 남송도 조지러 왔어요 ^^ (실제 1279년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는 남송을 박살내고 중국 통일에 성공한다.)


다만 고전소설적 관점에서 보면 이부분은 구천현녀가 송강에게 하늘의 부름에 따라가라고 말한 탓이다. 도입부를 보면 알지만, 송강 등 108호걸은 본래 봉인되어 있던 '마왕'이 인간으로 환생한 존재다. 그들에게는 마왕의 본성에 따라서 지상을 혼돈, 파괴, 망각에 빠뜨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천도에 따라서 살 것인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이 제시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마왕의 환생이라 지금까지는 이렇게 마귀처럼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거의 셈레이미판 옥박사의 "괴물인 채로 죽진 않겠다" 급의 선택이다.


8. 여담[편집]


삼국지에서 삼국지평화와 비슷하게 수호전에도 그 프로토타입 격인 대송선화유사가 있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알겠지만. 작중인물이 3형제나 4형제, 5형제면 무조건 둘째, 셋째, 다섯째는 무조건 공기가 된다(…). 덤으로 첫째와 넷째는 먼저 죽는다는 법칙이 있다.(…)[20] 이게 무슨 공기, 사망플래그가 아니고


이 소설과 삼국지연의를 동시에 비판한 중국의 '쌍전(원제 쌍전비판)'이라는 책도 있다. 위의 '폭력 미화'와 동시에 여성의 '기물화'를 주요 비판 소재로 삼았다.


9. 모에선[편집]


유명한 소설이니만큼, 모에선을 피할 순 없다.


파일:attachment/수호전/d0060527_4c273702d19f5.jpg


모에선을 쬔 작품 중 두근두근 양산박 학원이란 게 있는데, 별하늘에 걸린 다리의 TVA에서 오락실이 나왔을 때 등장한 바 있다. 36명의 미소녀가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는 일단 오용, 주동, 임충, 유당, 양지, 이규, 사진 정도만 나왔다. 참고로 탈의 마작 게임이며 위의 사진 모습과는 다르다.


10. 등장인물[편집]


수호전/등장인물 문서 참조.

11. 관련 작품[편집]


11.1. 게임[편집]


수호전 시리즈

수호전 천명의 맹세

수호전 천도 108성

수호연무

수호지 for Kakao

환상수호전 시리즈

11.2. 만화[편집]


고우영 수호지

요코야마 미츠테루 수호전

이스크라 (2번 항목)

신 중화일미[21]

11.3. 관련 소설[편집]


금병매 - 수호지의 스핀오프이자 리부트 작품. 한 마디로 수호지판 에로 동인지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봐도 좋다. 작품성과 사회비판의 요소가 적절한 작품으로 봐도 부족하지 않다. 이른바 중국사대기서로 불릴 정도니…

수호후전

청나라 사람인 진침이 쓴 작품으로 수호전의 후속작 성격을 띄는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살아남은 32명의 호걸들(실제로는 33명이지만 육화사에 남은 무송은 제외)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다시 뭉치면서 채경, 동관, 고구 등 간신들을 처단하고 섬라국으로 건너가 반란군 무리를 평정한 다음 이준을 왕으로 삼아 평생을 누리게 되는 내용이다. 원전의 결말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애초에 살아남은 호걸들이 다시 뭉친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작품이라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수호별전

왕중문이라는 중국 소설가가 수호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1983년에 저술한 장편 소설이자 스핀오프작으로, 총 5부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방랍의 난을 중심 사건으로 삼고 있으며 2부부터 4부까지는 수호전 원판의 요 정벌 ~ 최후까지를, 5부에서는 왕정륙을 주연으로 삼아 남은 양산박 108호걸의 분투기를 다루고 있다. 원판 수호전에 비하면 역사적 고증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평이다. 한국에서도 고려원을 통해 1부 전체가 번역되어 발매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다. 역자는 임홍빈.

탕구지

헤이트물(…). 70회본에서 이어지며 양산박을 토벌해서 다 죽이는 내용이다.

호접몽전

대한민국의 판타지 소설 작가, 청빙 최영진의 작품. 단, 작품의 배경은 삼국지 시대이며 수호전은 덤이라는 느낌이다. 실제로 진짜 양산박이 아니라 양산박의 힘을 받은 현대 인물들이 등장한다.


* 후수호전


송강과 노준의가 쌍둥이로 환생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각각 환생 호걸들을 만나 다른 산채를 찾아 제 2의 양산박을 만드는 이야기. 그런데 연청은 살아있다..


11.4. 애니메이션[편집]


자이언트 로보

데몬킹스

11.5. 영화[편집]


고대수와 손신(2014)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고대수, 손신.


고상조 시천(2010)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시천.


굉천뢰 능진(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능진.


금전표자 탕륭(2014)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탕륭.


김대견과 소양(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김대견, 소양.


뇌횡과 주동(2009)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뇌횡, 주동.


대도 관승(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관승.


몰우전 장청(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장청(몰우전).


벽력화 진명(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진명.


상문신 포욱(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포욱.


석장군 석용(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석용.


수호지 강철 보갑(2012)

황조권 감독의 작품. 주인공은 서녕. 원제는 금창수 서녕.


수호지 바람의 영웅 금모견(2012)

황조권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단경주. 원제는 금모견 단경주.


수호지 영웅천하 손립(2011)

황조권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손립. 원제는 병울지 손립.


수호전(1972)

노준의와 연청이 누명을 쓰고 위험을 겪다가 양산박의 영웅들에 의해 목숨을 구하고 원한을 푸는 부분까지 다룬 작품. 장철 감독의 3부작 중 2부. 쇼 브라더스와 친분이 있던 로저 코먼에 의해 미국에서도 개봉됐는데, 역시 로저 코먼 답게 120분짜리 영화를 79분으로 만들고 대사를 전부 수정하고, 오리지널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닌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중국풍 음악을 넣어서 개봉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수호전지영웅본색(1992)

주인공은 임충. 양가휘 왕조현 주연


수호전지영웅호색 (1999)

수호지의 에피소드를 각색한 옴니버스 에로영화다(…) 해설하는 영감님이 은근히 호쾌하다


수호지 가면영웅 귀두(2011)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두흥. 원제는 귀검아 두흥.


수호지 강호의 장청(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장청(채원자). 원제는 채원자 장청.


수호지 귀족영웅 노준의(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노준의. 원제는 옥기린 노준의.


수호지 명포배선(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배선. 원제는 철면공목 배선.


수호지 명포영웅 호연작(2011)

황조권 감독의 작품. 주인공은 호연작. 원제는 쌍편 호연작.


수호지 무사조씨(2011)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조개. 원제는 조개. 네이버에서는 제작년도가 2009년으로 기입되었지만 중국 측에서는 2011년으로 되어있다.


수호지 불사영웅 석수(2010)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석수. 원제는 반명삼랑 석수. 네이버에서는 제작년도가 2010년으로 기입되었지만 중국 측에서는 2009년으로 되어있다.


수호지 신비술사(2009)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안도전, 왕정륙. 원제는 안도전과 왕정륙.


수호지 의적유당(2009)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유당. 원제는 적발귀 유당.


수호지 천하대인(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시진. 원제는 시진.


수호지 천하호걸 고대수(2011)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고대수. 원제는 모대충 고대수.


수호지 태극영웅 소이광(2008)

황조권 감독의 작품. 주인공은 화영. 원제는 소이광 화영.


신산자 장경(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장경.


신투 시천(2010)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시천.


양웅과 석수(2010)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시천.


일지화와 철비박(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채경, 채복.


입운룡 공손승(2010)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공손승.


청면수 양지(2008)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양지.


청안호 이운(2014)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이운.


추군마 선찬(2014)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선찬.


쾌활림(1972)

무송이 반금련을 죽인 직후부터 양산박의 들어가기까지의 일을 다룬 작품. 장철 감독의 3부작 중 1부.


탕구지(1975)

쾌활림에서 방랍의 난을 진압하러 갔다가 대부분 목숨을 잃는 일을 다룬 작품. 장철 감독의 3부작 중 3부.


한지홀률 주귀(2013)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주귀.


호삼랑과 왜각호 왕영(2008)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호삼랑, 왕영.


혼세마왕 번서(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번서.


험도신 욱보사(2012)

류신의 감독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욱보사.


11.6. TV 드라마[편집]


홍콩 TVB 수호영웅전(1992) - 20부작

수호전(1996)

장소림 감독 제작인 43부작으로 국내에서는 신 수호지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되었다. 삼국지를 제작한 중국 CCTV의 98년도 최대 야심작으로서 기획에서 제작까지 총 5년이나 소요된 작품이다. 특히 엔딩의 OST인 호한가(好漢歌)는 신나고 흥겨워서 인기있었다. 중국 드라마 중에서 액션이 사실적으로 표현된터라, 폭력적이고 잔혹한 장면까지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1998년 5월까지 총 40여회에 걸쳐 방송이 되었는데, 중국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수호전(2011) - 86부작

양산박 인물들이 일부만 등장하는 1996년작과는 달리 108호걸이 모두 등장하는 위엄을 과시했다. 하지만 신삼국도 그렇고 너무 무협적인 요소에 치중해 비현실적인 장면이 많아 실제 송나라의 느낌을 잘살린 전작보다 현실감이 떨어졌다. 대신 양산박 호걸들이 너무 막장이지 않도록 상당한 순화가 되었다.


수호지의 무송(2013)

원제는 무송으로 국내에서는 CHING에서 방영했다.


11.7. 기타[편집]


유희왕/OCG - 염성(유희왕)

영웅은 공부 따원 안 한다네 오타가 아니다!

배한성의 고전열전 - 수호지

GTA 외전 - 수호전

회권수호전 양산호걸일백영팔(絵巻水滸伝 梁山豪傑壱百零八)

파일:external/img3.douban.com/s3380741.jpg

- 코에이 삼국지 초기작의 패키지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던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 마사고 키미야正子公也의 일러스트집. 수호전 일러스트로 가장 널리퍼진 일러스트가 이 작품이다. 나무위키에서도 수호전 인물의 상당수 이미지를 이 일러스트를 기재하고 있을 정도.[22]



[1] '사해(四海)는 모두 형제'의 영어 번역.

[2] 열전(列傳)이 무슨 내용을 담는 편성인지 생각해보자.

[3] 기타 판본 중 팔봉 김기진의 번역본에서 사용한 164회본은 120회본에 진침의 수호후전을 합친 것이다.

[4] 이 내용은 100회본과 120회본에는 없는, 70회본에만 나오는 창작이다.

[5] 여기서 문곡성은 포청천으로 유명한 포증이고, 무곡성은 서하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대원수 적청이다. 당시를 다룬 일화에서는 반드시 언급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현재의 인지도는 포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어설프게 아는 경우에는 흉노와 전투에서 활약한 전한 시대의 장군 위청과 헛갈리기도 한다. 여담으로 고려에도 문곡성에 비견된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닌 강감찬.

[6] 특히 사진, 임충, 연청 등의 독립된 에피소드가 존재하지만 막상 다 모인 후의 군사집단 양산박에서는 어쩌다가 가끔 나오는 캐릭터들이 그렇다.

[7] 59명이 전사했고, 10명이 병으로 사망했다. 심지어 진군 도중에 물에 빠져 익사하거나 독사에게 물려 독이 퍼져 죽는 경우도 있다.

[8] 실제로도 송나라의 군대가 정말 형편 없었다. 송나라보다 국력이 뒤쳐지는 베트남이랑 서하를 못 이겨서 빌빌거린 것을 생각해 보자.

[9] 관군에게 잡혀서가 아니다. 지방군대나 사적인 민병대가 아닌 중앙 친위 정규군을 수차례 격파하고 송의 수군을 전멸시키고 사령관인 동관과 고구를 사로잡을 정도. 물론 저 두 지휘관이 무능한것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10] 그러나 당시 선정자들은 이문열 역 등의 편역들만 언급한 것으로 볼 때, 김하중 역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11] 예컨대 봉은 '몽치'로 번역했다.

[12]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수호지라는 제목은 올재에서 재발매했을 때도 유지되었다.

[13] 단, 현대의 독자들에게 낯설다고 생각했는지, 각 회의 회목 원문은 각주로 처리했다.

[14] 그 외에 군관인 송강이 별도로 활동한 흔적이 있는데, 이게 본문의 그 송강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인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15] 이전 버전에 사대기서에 포함되는 것이 금병매인지, 홍루몽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적혔으나, 사대기서에 들어가는 것은 금병매가 맞다. 홍루몽이 대중성에서나 문학성에서나 금병매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틀림없으나, 애초에 사대기서라는 개념 자체가 청나라 건륭제 때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소설 네 가지를 선정한 것이다. 선정 당시에 홍루몽은 막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16] 이부분은 양중서가 부풀려서 쓴 것이다. 물론 1/3가 죽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갈 정도로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17] 당장 이분이 휘두르고 다니셨던 무기가 전부, 즉 도끼다!

[18] 사실 천강성이라고 다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장횡이나 양지도 꽤나 묻히지만 이 분야의 톱은 사진이 대표적. 특히나 사진은 등장시점이나 뭐나 주인공 분위기를 풍기나 노지심 편으로 이야기가 넘어간 이후 비중이 공기 수준으로 추락해버린다.

[19] 물론 작품의 배경인 북송 말기가 단단히 부패하여 국가 막장 테크가 진행중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20] 다만 3형제면 첫째, 둘째, 셋째 순으로 죽는다. 그 예가 축씨 3걸.

[21] 뒷요리계는 양산박의 후신을 자처하며 등장 인물들의 별호도 수호지의 인물들과 맞춘다.

[22] 몇몇 고전 화풍의 그림은 중국 화가인 대돈방의 작품이다.


B041 –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 나관중 (羅貫中, 1330 ~ 1400년경)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국 4대기서(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시내암(施耐庵)과 나관중(羅貫中)의 <수호지(水滸志)>, 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의 <금병매(金甁梅)>)의 하나.  명대의 나관중이 지은 중국 최초의 장편소설로,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중국 문학작품인 (삼국지연의)는 걸출한 소설문학인 동시에 인생의 철학서요, 최고의 병법서다. 이 소설은 100년간의 한말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치밀히 묘사함으로써 그동안 감추어왔던 정치적 군사적 상층사회의 내부모순을 역사상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는 데에도 큰 의의를 갖는다. 또한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을 통해 중국인의 각종 지혜와 사유방식을 소개하고 있는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a.(삼국지연의)의 성립

중국 역사장편소설 (삼국지연의)는 184년부터 280년까지, 즉 후한 말부터 위촉오 3국 정립시대를 거쳐 진나라에 의한 천하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유비 관우 장비 등 세 인물의 무용담과 제갈공명의 지모를 중심으로 하고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에 기초하면서  70의 사실에 30의 허구 를 섞어서 만든 소설이다. (수호전) (금병매) (서유기)와 함께 4대기서 중 하나로, 여기에 등장하는 문무를 겸비한 의리의 관우, 온후한 인군인 유비, 호탕한 호걸인 장비, 불세출의 대군사인 제갈량, 침착하고 용감한 조운(조자룡), 무용무적의 여포, 지장인 주유, 출중한 정치적 능력을 소유했으나 권모술수에 능한 모습으로 묘사된 조조 등은 중국민중이 대망하는 여러 유형의 영웅상이다.

예부터 중국인들 사이에 흥미있는 이야기로 전해내려오다 9세기 말에는 연극으로 꾸며진 흔적이 있고, 송대에는 전문적인 배우까지 나왔다. 삼국지는 적어도 수백 년간의 이야기꾼들, 저잣거리의 재간꾼은 물론 불우한 서생과 문사 등 중국인들의 공동 저서로, 나관중은 그 대표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책으로 엮어 나온 것은 3단계를 거친다.

#1 (삼국지평화)의 성립과 간행으로 이것은 담화용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한 듯하며 읽을 거리로서는 매우 유치했다. 이 (평화)를 바탕으로 해서 소설로 꾸민 것이 

#2 명나라 초기의 나관중에 의한 (삼국지연의)다. 황당한 부분을 고치고 촉한정통론의 입장에서 유비 조조의 선악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 (삼국지평화)에서의 장비 중심을 관우 중심으로 다시 쓰는 한편, (삼국지)의 배송지의 주석이나 삼국극 민간설화까지도 이용해서 10배 정도 늘려 (삼국지연의)를 만들었다. 이 나관중의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24권 240절로 된 (홍치본) 또는 (가정본)인데, 그후 (이탁오평본)이 나온다.

#3 청나라 초기의 모성산모종강 부자에 의한 (모종강본)의 간행으로 이 책이 다른 책을 압도하여 정본이 되었다. 중화민국의 아동도서관 간본은 (모종강본)을 정본으로 한 것이며, 1988년에 나온 우리 나라의 이문열 평역 (삼국지)도 이것을 역본으로 쓴 것이다.


b.주요 내용

후한 말기 조정에서는 환관이 실권을 잡고 정치가 혼란하여 백성들의 불평은 극에 달해 있었다. 도교 성향의 신흥종교의 교조인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는 이 틈을 타서 181년에 황건의 난을 일으킨다. 한나라 왕실의 후예이나 몰락하여 민간에 살고 있던 유비는 관우 장비 두 장사와  도원결의를 한 후 무리를 모아서 관군을 따라 싸움터에 간다. 황건적의 반란은 유비 조조 손견의 분투와 그밖의 여러 장수의 노력으로 겨우 평정되었지만, 난중에서 세력을 얻은 지방관이 각지에서 할거하여 기세를 올리는 바람에 한 왕실은 또다시 위태로워진다. 한번은 원소를 맹주로 삼아 연합군을 조직한 군웅이 임금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던 동탁을 치지만, 내분을 일으켜서 해산한 뒤에는 완전히 무정부상태가 되어 원소 원술 공손찬 여포 유표 손견 등이 서로 패권을 다투기에 이른다. 그 가운데서도 조조가 차츰 세력을 얻어 군웅을 멸하고 특히 기주의 영주인 원소를  관도의 싸움에서 격파한 후부터 천하를 통일할 형세를 보인다. 조조는 황제를 등에 업자 그 상대자는 아버지 손견, 형 손책의 뒤를 이어 강남을 다스리는 손권이 있을 뿐이었다. 유비는 각지를 전전한 후 유표에게 의탁하는데, 이 사이에 남양에 숨어사는 제갈량(공명)을  삼고초려로 맞아들여 군사로 삼았다. 유표가 죽은 뒤 그 아들 유종은 조조에게 투항했으며, 유비는 당양에서 조조의 군사와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한때는 외아들 유선까지 난군 속에 잊어버렸으나 부하인 조운(자룡)이 단신으로 뛰어들어 유선을 건져내고, 장비가 단 20기로 적을 장판교에서 막아내는  초인적인 활동에다 유표의 또 다른 아들로 강하를 지키던 유기가 구원병을 이끌고 달려오는 바람에 겨우 위험을 벗어나 하구성으로 들어간다.

기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손권의 진영에서는 화전 양파로 갈려서 다투던 바람에 손권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숙 주유 등의 강경한 주장과 공명의 교묘한 설득으로 싸우기로 결정하고 유비와 손잡고 조조와 맞섰다. 연합군은 공명 주유 등의 계략을 실행, (삼국지)의 압권에 해당하는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의 군대를 화공으로 무찔러 대승한다. 유비는 그 사이에 기주를 점령했으나 이곳을 둘러싸고 손권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유비와 손권의 누이동생과 정략결혼을 성사시켰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유비는 익주를 정복하여 근거지로 하지만 손권이 기주를 지키는 관우를 죽이고 이 지방을 점령한다. 이 무렵 조조는 병사하고 그 아들 조비가 뒤를 이어 한나라 헌제를 폐하고 위제의 자리에 오른다. 유비는 한의 뒤를 이어 성도에서 황제에 올랐다. 나라 이름은 한이나 영토가 파촉에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촉으로 불린다. 그뒤 손권도 오나라 형제를 칭하여 3국분립이 이루어졌다. 유비는 공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제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도중에 장비가 암살되고 유비도 오나라 장수 육손과 이능에게 싸우다 패해 백제성에서 병사한다. 

유비의 후계자인 유선은 어리석어서 국정의 책임은 모두 공명에게 맡겨진다. 공명은 5로로 쳐들어오는 위군을 격퇴하고, 남만왕 맹획을 7번 사로잡았다가 7번 놓아주어서 심복시킨 후 오나라와 화를 맺고 오로지 위와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인다. 6번 둔산에 출진하나 그때마다 위의 명장 사마의에게 저지되어 마침내 오장원에서 병으로 쓰러진다. 그후 3국은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쇠약해지고 사마의 1족만이 세력을 얻는다. 264년 위는 촉한을 멸망시키나, 265년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제를 폐하고 제위에 올라 나라를 진이라 했다. 진나라는 280년에 오를 멸망시켜 이로써 3국의 분립은 끝났다.


c.등장인물에 대한 재조명

이 소설에 묘사된 400여 명의 인물 가운데 주요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생동하는 예술적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전형적인 인물들은 곧 작자의 사상적 경향이 구체화되어 표현된 것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를 옹호하고 조조를 배척하는 옹유반조 의 경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봉건 전통사상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유행하는 민중사관은 조조를 재평가함과 동시에 유비 집단, 특히 제갈량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여러가지로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곽말약 이래 복권되기 시작한 조조는 이제 혁명가 또는 민중의 대변자 로 격상되고, 유비 집단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가치체계에 고집스럽게 집착한 보수주의자들 이며, 부패하고 타락한 한왕조를 되살리려고 애쓴 반동집단으로까지 격하되고, 그 핵심인물인 제갈량은  반동집단에 논리를 제공한 몽상가 또는 대의보다는 일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인재가 풍부하고 지배체제의 기반이 잡힌 위나 오보다는 후발집단으로 인재난에 허덕이는 촉을 책한 야심가로까지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1. 조조

조조에 대한 평가는 나관중과 (삼국지)의 저자 진수간에 다소 다르다. 진수는 조조를 다소 긍정적을 서술했으나, 나관중은 조조의 양면성을 다루되 다소 엄격했다. 조조가 걸출한 정치가요, 군사가이면서 한편 잔혹한 압제자였던 사실에 맞춰 소설속에서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먼저 정치가로서의 조조는 고도로 세련된 정치적 기술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흔히 조조를 평가할 때 협천자 영제후 란 구절을 쓴다. 그것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했다는 뜻인데, 이는 조조가 권력의 속성과 전통성의 관계를 그만큼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조조는 오랜 기간 실권을 잡았어도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없었다. 또한 정치가로서의 조조는 지극히 민중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고 곡식을 풀어 백성을 부양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백성들을 무리하게 혹사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서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르되, 일단 한번 등용하면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았다. 그 결과는 그가 그 시대에 가장 많은 인재들을 거느릴 수 있었고, 뒷날 제갈량은 자기의 동학들이 조조의 아래의 미관말직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아직도 그런 자리에 있다니, 도대체 위에는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있단 말인가 하고 탄식했다 한다. 한마디로 말해 조조는 현실적인정치가로서의 모든 자질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은 전략가로서의 조조는 항상 소수로써 다수를 이기고 약세로서 강세를 극복해왔다. 여포에게 거의 잡히게 된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장계취계(상대편의 계략을 미리 알아채고 그것을 이용하는 계략) 로 결국 마릉산에서 여포에게 대승하고 위기를 승리로 바꾸는 임기응변의 능력을 보인다.

또한 조조는 당대의 문장가였다. 문장가로서의 조조는 두 아들인 조비 조식과 함께 중국문학사에 기록될 정도다. 원래는 20여권의 방대한 양을 남겼으나, 아쉽게도 지금 남은 것은 30여 편의 시와 백여편의 문장이나 포고뿐이다.

한편 조조의 부정적 성격도 여실히 묘사되어 있다. 즉, 여백사의 전 가족을 몰살시킨 다음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 수는 있어도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해서는 안된다 라며 이기적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성격은 유비와 대비될 때 더욱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정치가로서, 전략가로서, 문장가로서 그처럼 뛰어난 조조가 오늘날 민중들의 의식 속에 간사하고 교활한 인물로 남아있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1 한민족의 정통사관을 점령하려 했던 나관중이 혈통을 근거로 당시 국력으로 보아 조조의 1/5정도이던 유비에게 정통성을 부여한 결과 조조를 엑스트라의 위치로 전락시켰다. 마치 이순신 장군을 실제 이상으로 평가하기 위해 원균 장군을 악역을 내세운 우리처럼 말이다. 중국의 곽말약은 조조를 민중적인 혁명아로 내세운 반면 유비를 보수반동집단의 우두머리로 격하시켰고, 일본의 작가 진순신은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의)를 구상한 적이 있었다 한다. 

#2 통치자의 인간형에 대한 동양인들의 기호가 유교의 영향으로 조조의 재사형 보다는 한고조 유방이나 유비와 같은  덕장형 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조조는 한 몸에 너무 많은 재능을 갖추고 있었고, 그 중 한 가지만 가졌어도 그 분야에서 뛰어날 수 있다고 믿는 범인들의 시기심도 작용했으리라.


 2. 유비

중국의 역대 창업자 중 그만큼 해놓은 일에 비해 민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인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민중적 인기의 근원을 그의 출신에서 찾는다. 고귀한 혈통이면서 삶의 밑바닥부터 출발하고 있는 그는 그의 대역이었던 출신 성분이 낮은 조조와 대비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를 둘러싼 집단들의 성격이 법과 제도보다 인정이나 의리와 같은 1차원적인 감정으로 형성되어 있어 수백 년 동안 관료제에 시달려온 민중들에게 호감을 살 수도 있었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정통성에 있어 유리한 유비의 혈통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의 리더십의 형태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한고조 유방의  덕치(무위이 능) 를 선호했는데, 유방 자신은 이렇다 할 재주가 없으나 단지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이 출중했던 것이다. 그가 내세운 게 도가의 원리에 따른 무위의 통치 였다. 2백년 이상 존속한 왕조의 창업자는 대개가 도가형의 치자가 많았다. 좀 비약해서 말한다면, 대부부늬 수명 긴 왕조는 도가형의 창업자로 시작해 유가형의 치자로 유지되다 그 유가형의 타락으로 망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유비에게 보이는 통치의 원리가 바로 도가형이다. (삼국지)에 그가 법률을 반포하고 제도를 정했다는 기록은 거의 보기 어렵다. 그가 지향한 것은 무위의 치였고 그 이 사표는 한고조 유방이었다. 따라서 백성들에게는 다재다능에 힘입은 조조의 유위의 치 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한 통치자였을 것이다.

그밖에 유비의 민중적 인기를 더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조조는 법가적 원칙에 벗어나면 가차없이 희생시켰으나(관우에게는 예외), 유비는 남달리 눈물이 많았고,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 집단의 결속을 굳게 했다. 이러한 그의 인적 결속은 은연중에 민중들에게 전해졌으며, 또 나관중은 여기에 그를 인덕을 겸비한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그의 집단에 남다른 호감을 갖게 했다. 그에 대한 정사의 평도 대개 그러하다.  유비는 속이 넓고 굳세면서도 남에게 너그럽고 후했다. 사람을 알아보고 선비를 잘 대접해 한고조의 풍도가 있었으며 영웅의 기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작은 정에 집착하여 소탐대실하는 일도 있었고, 사람을 부리는 기교가 지나쳐 냉정한 관찰자에게 역겨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형주를 차지한데 이어 또 서천을 빼앗아 한참 치솟던 기세가 어이없이 꺾이고, 결국 그의 촉이 3국 중에서 가장 허약한 나라로 주저앉고 만 것은 그런 결점들의 결과가 아니었는지, 게다가 유비의 과거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정치이념은 근대적 이념에 물든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못마땅한 데가 없는 것이 아니다.


 3. 제갈량

사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만큼 걸출하게 묘사된 인물은 없다. 그는 무궁한 지혜, 탁월한 재능, 그 신기묘산의 용병술, 천하의 대세를 헤아리는 안목, 상대방의 내심을 읽어내는 통찰력, 당당하고 화려한 말솜씨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그를 비판하는 논거는 삼고초려의 부인, 천하삼분론의 독창성 부인, 관우와의 권력투쟁에서 보인 야심가적 기질, 군사적 요충지역을 마속에게 맡긴 용병술에 대한 의심 등이 그것이다. 나관중은 그를 (삼국지연의)에서 동남풍을 빌고 구름을 마음대로 부르는 도교적인 술사로 부각시켜, 한실 중흥에 몸을 바친 그의 충의가 초인적 신비에 가리고 있으며,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비범함까지 의심받게 했다. 물론 제갈량이 자란 산동성은 예부터 도교의 성지였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그가 도교와 방술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짐작은 된다.

진수는 바로 그 제갈량에게 죽은 진식의 아들인데도 제갈량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제갈량은 나라의 승상으로서 백성을 따뜻이 어루만지고 예의와 규범을 보여주었으며, 벼슬자리를 줄여 백성의 짐을 덜고 권위와 제도에 따랐다. 법을 어기거나 일을 게을리한 자는 비록 가까운 자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고, 죄를 지었어도 스스로 빌고 용서를 구하는 자는 그 죄가 무거워도 놓아 주었으며, 교묘한 말로 변명하려는 자는 비록 그 죄가 가벼워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제갈량이 젊은 시절 몰두했던 법가의 한 전형을 보는 듯하다. 거기다가 한 국가의 승상이면서도 사후 재산이 겨우 뽕나무 800그루에 밭 50고랑이라는 그 검소와 무욕을 상기하면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신비한 술사로서의 묘사도 그의 면모를 손상시키지 못한다. 예부터 중국의 병가들은 전쟁에서 지형과 기후를 중히 여긴 전통이 있고, 제갈량도 마찬가지여서 거기에 관해 세밀한 관찰과 정보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10년간의 은둔 후에 유비의 삼고초려에 의해 세상에 나오면서 유비, 그대는 기어이 나를 수고는 많고 얻을 것이 적은 그대의 꿈속으로 끌어들이고 마는구려. 지난 겨울 내내 달갑지 않은 명운을 피하고자 애썼지만 결국 그대를 따라 나설 수 밖에 없소 라는 공명의 이 지탄은 촉의 운명을 미리 예감이나 한 듯하다. 충신으로서의 제갈량보다 신비스런 제갈량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 은혜를 입고 감격을 이길 길 없어 이제부터 출진하려 하옵니다. 표를 바치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로 시작하는 그의 (출사표) 한 편에는 대의에 모든 것을 바쳐 생사를 잊고 선악을 초월하는 불꽃 같은 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삶이 이룩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담겨져 있다. 한실중흥의 대의에 불타는 고결하고 깨끗한 의지, 자나깨나 한왕조에 대한 지고지순한 충성, 이 모든 것이 가히 감동적이다.


 4. 관우

제갈공명과 함께 삼국지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가 지닌 충성과 의리는 동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관공 또는 관성제라고 하여 신의 경지에까지 찬양하기도 한다. 특히 유비에 대한 충의의 화신 을 보여주는 오관참장이나 지난날 은혜를 입은 조조에게 군법을 어겨가며 그를 살려주는 화용도의 이야기는 충효사상을 중시하는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를 모시는 관왕묘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잠시 조조의 신세를 지면서 그를 아끼는 조조로부터 유혹을 받았으나 끝내 유비를 잊지 않고 돌아가는가 하면, 또한 조조에게 진 신세를 보답할 것을 잊지 않아 그의 생명을 살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군령을 어기면서까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조조를 놓아주는 그의 의리는 천하를 위한 대의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 끌린 소의라 할 수 있겠다.

대국을 볼 줄 모르고 마침내 살신의 화는 물론 오촉 연맹의 파괴까지를 몰고 오는 그의 처신은 개인적인 의리와 그에 대한 사소한 공명심에 집착하는 관우의 또 다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5. 장비

관우와 항상 대립되고 교양이 부족하고 천박하지만 사랑스러운 난폭자로 묘사된다. (수호전)에서 말하면 이규에 해당될 것이다. 단순하고 난폭하긴 하나 어진 사람을 존경해서 유비에 대한 충성을 관우 못지않다. 두주불사로 부하를 다스림에 있어 사랑보다 채찍이 앞서 유비는 언제나 그 점을 충고했다. 부하의 손에 죽은 그의 최후는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장판교 일전에서 단신으로 조조 군사를 막아내는 위용은 독자들에 대한 강한 인상을 준다.


d.(삼국지연의)의 예술성과 가치

중국의 역사에서 이야기거리가 될 만한 시대로 말하면 (열국지)의 내용이 되는 춘추전국시대는 너무 번잡하고, 항우와 유방의 다툼을 내용으로 하는 (초한지)의 시대는 단조로운 감이 있고, 오직 삼국시대는 번잡하지도 단조롭지도 않고 호화찬란한 무용과 책략이 재미있는 설화의 재료로 가장 좋았던 까닭으로 (삼국지연의)가 뛰어나다고 할 수도 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문학사, 특히 소설의 발전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연의란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이 책이 장편역사소설의 길을 열어놓은 후 역사소설이 크게 흥성했다. 희곡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남겼는데, 통계에 의하면 경극 가운데만 하여도 삼국 이야기를 제재로 한 희곡이 140여 편이 된다고 한다. 그밖에 (삼국지연의)의 영향 하에 반백화의 비교적 알기 쉬운 역사소설이 대량으로 출현했다.

(삼국지연의)는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남겼는데 군사와 정치의 교과서로 쓰이기도 했다. 청나라 초기에는 만주어로 번역되어 청군에게 읽혔으며, 이자성이나 태평천국 등 농민군들도 이 책을 유일한 교과서로 삼아 싸웠다고 한다. 이 책의 이데올로기적 바탕인 전통왕조에 대한 충성은 민족독립의 사상과 연결되어 명나라 말기에는 군사의 사기를 고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젊은이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은이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 라는 말도 생겼다. 아마도 (수호전)의 음욕과 잔학성이 젊은이들의 인격형성에 미칠 영향을 염려한 것과, 노인들의 머리에 지략과 잔꾀가 늘어나는 것을 경계한 뜻일 것이다.

(삼국지)에는 능력이 있는데도 기회가 오지 않아 뜻을 펴지 못할 때 쓰는 비육지탄, 출중한 것을 가리키는 백미, 버릴 수도 쓸 수도 없을 때 쓰는 계륵, 임금과 신하 간의 우정을 나타내는 수어지교, 지극한 정성을 나타내는 삼고초려 등 많은 고사성어의 원산지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각 시대의 인민들은 도원결의를 본받아 서로 믿으며 생사를 같이하는 풍조가 면면히 이어져왔고, 이와 반대로 봉건 통치자들은 충의를 이용하여 봉건황제에게 충성하고 인민들의 투쟁의식을 마비시키려고 했다. 청대의 통치자들이 도처에 관우의 사당을 지은 것도 이런 의도였다. 민국에 들어와 54운동 시대에는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으나 근래에 와서 다시 높이 평가 받기에 이르렀다. 최근 곽말약은 조조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희곡 (채문희)를 썼다. 

그러나 황건 농민봉기를 부정하는 태도, 관념론적 영웅사관, 지나친 신비주의적 경향, 숙명론 등은 비판의 소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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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演義 (출처:나무위키)

1. 개요[편집]


원나라 ~ 명나라대의 선비인 나관중이 저술한 역사소설[1]로 흔히들 삼국지연의라고 부르지만 본래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삼국연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냥 삼국지라고만 해도 역사책보다 본 문서의 연의를 가리킬 때가 더 많다.[2] 중국의 서적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서적 중 하나이며, 이른바 중국사대기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동아시아권에서 현재까지도 자주 읽히는 고전소설.


“진나라 평양후 진수가 남긴 역사 전기를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 (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


삼국지연의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첫머리의 글. 삼국지연의는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책이라는 사실을 극명히 알 수 있다. 연의(演義)라는 말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나 창극"이라는 뜻이다. 즉, 제목을 의역하자면 "역사소설 삼국지"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실제 역사는 절대로 이와 똑같지 않다. 따라서 정사 삼국지나 자치통감, 후한서 등 정식 역사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연의를 역사서로 받아들이면 엄청나게 잘못된 선입견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의 굵은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어느정도 참고가치가 있으며 "연의는 무조건 거짓이고 정사는 그 반대다" 라는 마인드로 추측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2. 줄거리[편집]


도원결의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동탁 토벌전

삼영전여포

군웅할거

계교 전투

서주 대학살

관도대전

삼고초려

천하삼분지계

적벽대전

이릉대전

도원종언

칠종칠금

추풍오장원

천하 통일

3. 상세[편집]


"천하의 대세는 오랫동안 나뉘어지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3]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 초한지의 배경이 되는 시황제 사후의 시기 다음으로 대대적인 난세가 일어난 후한말~진초 까지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일명 삼국지. 삼국지만 읽으면 그 시대에 유독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삼국지의 내용만 주목받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중국이 난세가 되면 그 정도 숫자의 인재들은 항상 나타났다. 삼국지의 내용이 끝나고 바로 다음 시대가 되면 이민족들이 북쪽에서 떼거지로 내려온다. 물론 청나라의 고증학자인 조익[4]의 의견처럼 50년 남짓되는 시간에 많은 숫자의 인재가 몰려 '인재밀도'는 다른 시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그 시대의 인재라는 사람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력은 별 거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학문적으로는 훈고학, 경학의 시조로 꼽히는 정현, 논어의 주석을 남긴 하안, 노자의 주석을 남긴 왕필,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 춘추좌전집해를 남긴 두예, 해서의 개조로 꼽히는 종요, 문학에서 유명했던 조조, 조식, 중경신부를 만든 순욱, 정치적으로는 위나라와 서진을 건국한 조비와 사마염, 둔전제를 건의한 한호나 구품관인법을 제정한 진군, 사회적으로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 오두미도를 전파한 장로, 베트남과 관련해서 영향을 끼친 사섭 정도밖에는 손꼽히는 인물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론 과도하게 삼국시대에만 몰린 관심(빠질)을 비판하는 의도야 이해하지만 후대에 준 영향만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전국시대나 한국의 후삼국시대, 바로 앞 시대 중 하나인 초한전쟁시기를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도 대단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후대에 까지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인물은 많지 않다는 것. 문학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그 시대를 만든 삼국의 군주들인 유비, 손권이 조조보다 영향력이 못하다고 할 수도 없다. 제갈량 같은 인물은 저 중에 들어가지 못하는데도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다.[5] 물론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삼국시대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시대는 아니었고, 삼국시대만 특별히 더 대단한 인물들이 활동했던건 아니므로 과도한 빠질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무조건 별볼일 없는 시대, 별볼일 없는 인물들이란 시각도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인 것이다.


또한 나관중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1천 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관중이 당시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전문가는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의 전반적 분위기는 후한 말 당시의 느낌보다는 원나라 말기의 느낌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조조의 백만 대군' 드립이나 관우가 송대 이후에나 등장하는 청룡도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원나라 말기 쯤 되면 중국에서는 민중봉기가 크게 일어나면 보통 규모가 수십만 명 정도였다. 말 그대로 대륙 스케일.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동양 최고의 고전이자 필독도서로 인정받는 소설이며[6], 그 덕분에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정사 삼국지와 연의를 헷갈리는 이가 많을 정도.


나관중 이전에도 삼국지 이야기는 인기가 많았고,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았던 인물도 많았다. 그 사람들의 대본을 묶은 것이 바로 삼국지평화.[7] 정사를 뼈대로 하되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담이나 설화등을 채용하여 재미의 추구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대략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는 청나라 학자 장학성(章學誠)의 평이다. 대한민국 사극과 비교하면 이것만도 감사하다 관우 신앙의 기폭제가 되었고 촉한정통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현대 삼국지의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소설. 다만 이 모든 것을 나관중 개인이 정립시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이미지를 채용했을 뿐. 삼국지연의의 기반으로 평가받는 삼국지평화에서도 이미 이와 같은 방향성은 확립되어 있었다.


한때 촉빠위까 움직임 때문에 많이 까였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오히려 나관중의 시각이 현대의 어설픈 이들보다 백 배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리어 나관중은 숨겨진 촉까가 아니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번역본 등에서는 대부분 누락되지만 원본에서는 각 화가 끝날 때마다 드라마 마지막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끝내면서 "그 다음을 알고 싶다면 다음 편을 보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8] 이후의 연의 판본도 모두 이 방식을 빌리고 있으며, 이것은 황석영 삼국지에서 재현되어 있다. 심지어 쌀과 소금의 시대라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서양 작가가 이 문구를 빌려오기도 했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이런 문구를 빌려썼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일단 유비다. 유비가 살아생전동안 쭉 유비로 주인공을 이어오다가 유비가 사망하는 시점에서 제갈량이 주인공으로 변경된다. 또한 그 상태에서 주인공인 제갈량은 사마의와 겨루게 되고 제갈량이 사망하면 주인공 자리를 강유에게로 넘기게 된다. 강유는 종회의 반란 직후까지 주인공으로 활약하다가 사망하며, 삼국지연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실상 종료된다. 까와 빠의 개념을 떠나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이렇게 변경된다. 사실 100년 가까이 되는 기간이 삼국지 시대의 흐름인지라 한 명이 주인공을 차지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기도 하다.[9]


그런데 대부분의 삼국지연의는 정비석 삼국지라든가 고우영 삼국지라든가 대부분 제갈량이 사망하면 완결된다. 연의의 시작이 184년 황건적의 난이고 제갈량이 죽은 건 234년으로 딱 50년이다. 제갈량 사후에 진이 삼국을 통일한 것이 280년이므로 실제로 제갈량의 죽음은 역사상에서 보면 중간 반환점 정도인 셈이다.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 제갈량이 사망한 후 사마염이 최대한 얌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씨, 조씨, 손씨들을 비웃는 장면 하나가 끝이며 사마염이 중국 전토를 도적질 통일했다는 한 마디만 나오고 완결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번역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문서를 참고.


3.1. 과연 연의는 촉빠인가[편집]


삼국지연의가 촉빠라는 설은 아무튼 송대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는 촉한정통론이 대세였고, 제갈량이나 관우는 유교적 충신의 모범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촉의 인물이 높게 평가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이에 대해 일본의 동양사학자 가토 도루(加藤徹) 교수의 견해가 흥미롭다. 그는 ‘남자’를 뜻하는 男(남), 漢(한), 士(사), 俠(협)의 예를 들며 男은 女의 상대로서 남자, 漢은 땀과 피를 흘리는 뜨거운 남자, 士는 높은 뜻을 품은 사대부의 남자, 俠은 신의를 위해 목숨도 태연히 버리는 남자라면서, 사서 ≪삼국지≫와 소설 ≪삼국연의≫가 재미있는 것은 漢ㆍ士ㆍ俠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중 최고의 ‘협’으로 유비를, 이상적인 ‘사’로 제갈공명을 꼽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인은 역사에서 미학(美學)을 찾는데, 천하쟁탈전에서 이기더라도 왕조의 수명은 얼마가지 않으나 역사라는 캔버스에 그려진 의(義)의 미학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비와 공명은 죽을 때까지 완고하게 자신의 미학에 얽매인 인물이었다. 유비는 촉(蜀) 땅에 웅거한 뒤에도 협(俠)의 용병 정신을 유지했고, 공명은 사대부로 사(士)의 미학을 관철시켰다. 유비와 공명은 최고의 협(俠)과 사(士)의 조합이었으며, 이는 후세만이 아니라 동시대 상대국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라는 대하드라마에서 이들이 주인공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다.[10]


일단 실제 역사서와 비교해 봤을 때 촉한의 인물들에게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으며, 이들의 행동을 미화하거나 업적을 날조 부풀리는 대목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교의 기준을 정사에 맞춘다면 연의는 다분히 촉빠적인 성향을 띄고 있으며, 이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교의 대상을 원대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창작물, 단적으로 삼국지평화와 비교한다면 연의는 상당히 발전한 점이 많은 작품으로서 상대적으로 삼국시대의 세 세력을 균형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국지연의는 단순히 유관장 중심의 통속적인 영웅물이던 삼국지평화 수준을 뛰어넘어, 군상극적인 특성을 가진 복합적이고 비극적 요소를 갖춘 '군웅물'로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거지만 삼국지연의란 작품은 본래 나관중이 그런 내용으로 써서 사람들이 그렇게 알게 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관중이 그런 내용으로 쓴 작품이다. 흔히 보이는 촉까들이나 '촉빠 나관중의 고의 왜곡' 같은 거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잊고 있는(혹은 아예 모르는)것. 누가 왜곡을 해서가 아니라 애당초 그 작품이 태어난 땅에서는 민심 자체가 늘 촉한 쪽에 기울어 있었다는 이야기, 당장 삼국지평화의 묘사를 보면 연의는 그 시대 작품치고 굉장히 다른 세력을 우대한 작품이다.


삼국지연의는 이전과는 달리 조조를 "단순하기 짝이 없는 평면적인 악당"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연의의 조조는 군사적인 재능과 뛰어난 지략을 갖춘 영웅으로서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되, 내면적으론 형식적인 충심을 지녔으나 그 밑으로 끝없는 야망을 품고 있고, 의외로 인정많은 면을 지녔으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서슴없이 희생시키는 잔혹함을 동시에 갖춘 대단히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반론이 있다. 물론 조조는 이미 예전부터 악인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정사 등에 표현된 그의 장점도 버리지 않고 표현했다. 조조가 죽는 장면을 보면 그의 과거의 악행의 응보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조조 본인은 죽을 것 같자 신하들이 하늘에 제를 올려보자고 하자 "하늘이 정한 천명이니 제를 올려도 소용없다"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처첩들에게 스스로 살림을 해서 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조조가 죽고 난 뒤 삽입된 업중가에선 "지략도 뛰어나고 문장도 잘 짓고 부하들과도 사이가 좋고, 이만한 사람이 그냥 신하로만 있겠냐"고 얘기하고 무정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또 업중가의 마지막 구절은 죽은 사람 가지고 평하기 좋아하는 서생들을 무덤 속에선 비웃는다라고 얘기하며 끝난다. 단순 악역이라기엔 너무나도 당당한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보통 외면의 재능이 있으면 내면으로도 좋은 품성을 가지고, 외면이 찌질하면 내면도 찌질하기 마련인 고대 소설에서 이처럼 복합적인 인물은 찾기 어렵다. 물론 당시에는 "겉과 속이 다른 간웅"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컸겠지만, 이런 묘사는 "유교적 도덕성"에 둔감해진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조조의 평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거기다가 삼국지평화에서는 같은 장면이라도 조조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게 한두 장면이 아닌데, 일례로 관우가 유비를 찾아 떠나려고 하자 조조는 관우를 계략을 써서 잡으려고 하고, 헌제의 아들을 길가에서 참수시키는 등 완전한 악역으로 등장했다.


또 이전의 삼국지 관련작에서는, 조조를 제외한 위나라 인물은 지극히 비중이 적었다. 심지어 삼국지평화에서는 조조가 "나에게는 모사가 없다"라고 한탄하는 장면까지 있다. 사실상 창작물의 세계에서 위나라의 신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왠지 장료가 모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에 반해서 연의에서는 곽가 등의 위나라 측 인물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감을 주고 있다.


오의 경우도 이전의 삼국지 관련작에서는 단순히 손견이 잠시 출연하거나, 적벽대전에 이름을 올리거나, 관우의 죽음이나 이릉 전투에서 약간 등장하는 정도였지만, 연의에서는 오나라의 성립이나 멸망까지 잘 묘사하고 있다. 단, 손권 말년의 후계자를 둘러싼 삽질과 황실 내부의 암투가 빠져버리고, 마지막 황제 손호의 막장 행각도 대충 넘어가 실제역사보다 나아 보이게 되었다. 아마도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강남에서 일어나 천하를 차지한 명대에 쓰여진 소설이라 같은 강남 기반의 오를 까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삼국지는 군담소설이다보니 대놓고 쌈박질하거나 메인 플롯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만큼 굳이 다뤄야 할 필요를 못 느낀 나관중이 그냥 빼놓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를 보면 위나 오의 인물들이 명백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짤막하게나마 많다.[11] 이런 부분에서 위나 오의 인물들은 각자 용기와 지혜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어 그 전의 삼국지평화와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주인공은 촉이되 다른 세력도 최소한 자신들의 에피소드에서만큼은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있다.


유비의 경우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에 버금가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군략에도 뒤지지 않는 효웅으로 평가받는데 반하여 연의에서는 전장에서의 활약은 전부 관우, 장비, 조운이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전략적인 면은 죄다 제갈량의 뛰어난 지혜덕인 것으로 바꿔 놓아, 아무 활약이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제갈량이 기용되기 전의 승리조차 제갈량 기용 후로 슬그머니 옮겨 가며 공로를 빼앗겼다.[12] 게다가 툭하면 울거나 신세한탄이나 늘어 놓아, 현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찌질이로 보일 지경이다. 거기다가 정사에서는 유비군도 적벽대전에 참전했고(연합군 병력도 유비군 2만, 손권군 3만으로 별로 밀리지도 않는다) 주유의 남군 공략도 도와줬는데도 불구하고 연의에선 적벽대전은 강건너 불구경하다 퇴각하는 조조군 뒷치기나 하고, 남군은 주유가 부상입으면서 필사적으로 싸워 조인을 몰아내자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성만 낼름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손권이 계속 형주 돌려달라고 하는게 정사보다 연의가 더 정당성있어 보일 지경. 이 정도까지 오면 나관중이 위빠라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조조는 희대의 영웅으로, 유비는 인덕인덕 거리기만 하고 능력 없으며 최대한 찌질하게 보이도록 해놨다.


나관중이 유교와 수호지의 영향을 받아, 유비를 무보다는 문에 치중하는 유학의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잡은 데다가, '스스로 나서기 보다는 호걸들을 조정하는 역'인 수호지의 송강과 비슷한 인물상으로 그리려 하다보니 현대 독자들의 눈에는 찌질하게 보이게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13] 이렇게 인덕을 강조하기 위해서 유비의 묘사는 팔이 길고, 귓볼이 두툼한 등 부처의 81상과 닮은 모습을 제법 보인다.


그러나 인덕이 강조되었다고 하지만, 근대 이후 유비는 중국인들에게조차 무능하지만 음흉한 인물로 여겨지니[14], 이렇듯 유비의 묘사는 소설을 위해서 많이 달라진 감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정리하면, 유불도 삼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정서에서 보자면 그들에게 가장 완벽한 군주는 요, 순 임금이다. 즉 '무위의 치'[15] 군주는 자비로움과 포용의 태도로 모두를 감싸안을 뿐 마구잡이로 군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사의 유비는 능력과 결단성도 뛰어난 편이나 이러한 면들이 연의에서는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전대의 한고제 유방과도 상당히 비슷한 경우, 유방 역시 정치적인 능력, 식견, 인용술, 야심, 군사적인 능력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초한지 등 창작물에서는 군림하지 않으며 한발짝 뒤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부하들을 쓰는 모습만 강조되며 그리고 이후 토사구팽까지 무능력하고 음흉해 보이는 것과 같은 경우.


약간만 더 부연해 보자면 유비의 이런 캐릭터 상 정립은 시대가 지나면서 강고해진 촉한정통론이 유학 관점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유비일당과 제갈량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명분과 실리를 다 쟁취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줄타기하고 싸운 면모는 슬쩍 묻히고 유능한 선비 출신 신하(->제갈량)와 인덕있는 군주 유비라는 이상적인 군신관계 위주로 부각되어 가면서 생긴 일이기도 하다. 제갈량은 당대 이후로 최고의 재상이자 선비로서 치국의 근본을 안 인물이라며 사후에도 자국이나 적국에서나 칭송받은 인물이다. 당장 삼국을 통일한 서진의 초대군주 사마염부터가 '야, 제갈량만한 신하 어디 없냐?'라고 했을 정도에 제갈량이 남긴 팔진도를 장수들에게 학습시키는 면모를 보였고 서진시기부터 시작해 많은 선비들이 그를 흠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였다. 


이런데다가 제갈량이 애당초 출사한 과정이라는거 자체가 재야에 묻혀있던 '선비'가 '이상적인 군주'의 인정을 받아 등용되어 여차하면 니가 왕 하란 식으로 '전적인 신임'을 받고, 마음껏 원없이 자신의 이상과 능력을 펼치며 후대에도 명성을 날린다는 이상적인 얘기고[16]여기에 그렇잖아도 북벌을 하고 싶어 안달하던 송나라 이후 한족의 분위기까지(한국으로 따지면 병자호란 이후 사회분위기) 영합하게 되면 선비들한텐 제갈량이야말로 꿈의 화신 같은 게 된다. 기본적으로 삼국지연의 같은 소설은 당대 관직진출이 좌절된 선비들이 주로 쓰던 것이었고 때문에 더 나아가 제갈량은 선비의 사표 중의 사표가 되어야 하고 그를 등용한 군주의 캐릭터 해석도 유가적인 이상의 극치인 군주 중의 군주다운 뭔가가 필요해지는 것으로 유비의 캐릭터 정립은 바로 이런식으로 이루어진것이다. 여기에 관우 신앙까지 겹쳐져서 '그 관우'가 섬겼던 유비라는 군주 자체가 더욱 이상화되는 과정은 덤이다.


단, 나관중의 원작에 모종강 부자가 주석을 달면서 점차 친촉/반위적인 내용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나관중의 관심이 "영웅 쟁패"였다면, 모종강 부자의 그것은 "권선징악"에 가까웠다.[17] 또한 루쉰이 정리한 차이점에 따르면 나관중 본은 촉에 불리하거나 덜 멋진(…) 부분이 많다. 오랜 떡밥이던 "안량이 유비에게 관우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말을 걸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은 나관중 본에서만 나오며 모종강 본은 삭제되어있다. 또한 손부인이 유비의 패배 소식을 듣고 자살하는 것은 모종강 본에서 추가된 것이며 심지어 나관중 본은 제갈첨이 등애에게 항복할까 망설이는 부분까지 있다. 한 마디로 나관중은 촉의 인물들도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 등을 묘사했지만 모종강 본에 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촉이 되는 것이다. 모종강의 인지도가 나관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나관중이 자신과 관계 없는 부분까지 욕먹는 것.


제갈량의 북벌도 촉이 크게 패한 건 1차 북벌 한 번 밖에 없고 나머지 북벌에서 일어난 전투는 거의 다 이기거나 큰 피해없이 후퇴했는데 연의에선 진창에서 학소가 제갈량을 완벽히 발라버리고 사마의도 위수에서 한 번 제갈량의 작전을 간파해 큰 피해를 입히는 걸로 바뀌었다. 정작 정사에서 진창 전투는 좀 찔러보다가 안 되니까 그냥 물러난 것에 가깝고 사마의는 전투로는 제갈량을 한 번도 못 이겼다.


끝으로 정사를 참고하면서도 진나라 사관이었던 진수가 차마 건들 수 없었던 사마씨의 찬탈이나 기전체 사료의 특성인 뒤죽박죽한 부분들(예컨데 합비전투)을 나름대로 매끄럽게 정리함으로서 정사보다도 서술이 낫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없진 않다. 당대에 이런 민담 수준을 뛰어넘는 고퀄리티의 역사 소설을 남길 수 있다는게 놀라운 지경. 현대 사극 작가들은 반성하도록 하자


참고

/피해자

/수혜자

삼국지연의/이명

삼국지/연표

삼국지/가공인물

3.2. 형성에 관하여[편집]


작가 나관중은 "민담"을 많이 인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삼국지연의를 그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의외로 민담의 비중은 적고, 많은 부분이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창작 과정을 거쳐서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본이 되는 삼국지평화의 내용 자체가 삼국지 연의의 총량중 10% 수준이다. 마개조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사실상 재창작.


실제로 가정본(1522년의 판본) 삼국지통속연의의 서문을 써준 장대기는 나관중이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연의를 편차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다만 현대의 연구에서는 정사 삼국지를 직접 참조하였다기보다는 자치통감의 축약본을 직접적인 자료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사 삼국지는 기전체라서 구조가 복잡하여 자료로 쓰기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편년체 형식인 자치통감이 이야기를 만드는 자료로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난 원나라 시대에는 민간에 전해지는 역사를 바탕으로 평화를 만들어 이야기꾼에게 구연하게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류가 많고 너무나 저속하여 교양있는 사군자들이 대부분 싫어했다. 그래서 동원 땅 출신의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신중하게 취사선택하여 편찬하고 삼국지통속연의라 이름했다. 그 문장은 심오하지 않고, 말투는 그다지 속되지 않으며, 사실을 기록하여 역사 본연의 모습에 접근했다. 독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 가정본 《삼국지통속연의》 서문 / 부산대 삼국지문화기행 교재에서 인용.


오히려 삼국지연의 이후 시대에 발생하는 민담이나 파생작품들은 대부분 삼국지연의에 기초하여 연의를 일부 변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3.2.1. 모종강본[편집]


삼국지연의에 대해 논할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판본이 바로 모종강본 판본이다. 청나라 강희 연간에 모종강 부자가 엮은 판본으로, 현대 한중일에서 가장 잘알려진 판본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고전소설의 특성상 모종강의 임의적 판단에 의해 삭제되거나 추가되거나 개편된 장면도 많다. 때문에 나관중본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반쯤 까야 제맛으로 통하는 판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삼국지가 울고있네>의 저자로 잘 알려진 리동혁 역시 극렬 모종강까이고[18], 한국에서도 황석영 삼국지에서 나관중본을 역본으로 쓴 이후, 모종강본의 주가가 많이 내려갔다.[19]


그런데 그렇다고 모종강본이 삼국지연의의 품질을 떨어트린 저열한 판본인가 하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판단하기엔 여러모로 난점이 많다. 모종강본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소설로서의 매력이다. 나관중본에서 관우의 최후(라기보다는 리타이어) 장면은 싸우다말고 승천하는 것으로 처리되는 등[20] 구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었지만, 모종강본에서는 이를 소설에 맞게 각색했다.[21] 특히 소설로서의 재미는 극렬 모종강까인 리동혁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모종강본이 나온 다음 소설로서의 질이 훨씬 올라갔으니 말인데, 나관중본은 사실 소설로서는 어수선한 데가 많았다. 품격으로 보아 나관중본은 아직 구전 이야기의 냄새가 짙다면 모종강본은 글을 아는 사람들도 볼 만했다.

리동혁, <삼국지가 울고있네>


무려 20여가지나 난립하던 삼국지연의 판본들이, 나중에는 모종강본 기준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만 보더라도 이 판본의 위력을 알 수 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청대 이후 한자문화권에서 사랑받은 삼국지연의란 대체로 모종강본을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리동혁의 모종강 비판에 대해 삼국지연의 전문가인 정원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가정본을 나관중(원)본이라 호칭할 뿐만 아니라, 가정본이 모종강본보다 우수하다는 표현을 수차에 걸쳐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견해이다. 그렇다면 모종강본 출현 이후 3백 년 동안 가정본은 어디 가고 모종강본이 독서계의 주도권을 잡았단 말인가. 가정본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모종강본이 유일한 통행본이 되었다면 모종강본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다.

출처


다만 소설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모종강본에서 호오가 갈리는 것은, 소설의 주제의식과 메시지가 나관중본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관중본은 '통속연의'라는 말 그대로, 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가까웠다. 즉 인물 개개인의 '멋짐'이라는 통속적인 면을 보여주던 소설이였다. 그런데 모종강은 여기서 강한 주제 의식을 넣기 위해, 촉한에는 버프를, 위에는 너프를 가한 것이다. 때문에 나관중본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구시대적이고 케케묵은 가치관이 책에 배여버렸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모종강본을 좋아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이런 강력한 주제의식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사실 권선징악이라는게 정말 구시대적이고 케케묵은 가치관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황실이라는 이유로 한의 적통을 자처하는 유비가 어딜봐서 선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전근대 동아시아에 공화주의가 보급된 것도 아니기에 너무 가혹한 잣대일 순 있다. 그리고 위선적이라고 비판도 많이 받지만 작중에서 그나마 주인공이라고 현대가치관으로도 긍정적인 인덕을 내세우는 군주는 유비 정도고 조조라고 딱히 민중을 위하는 혁명가도 아니다. 또 위에서도 나온 얘기인데 이러니 저러느니 해도 한때 엄청 격하된 조조 재평가의 시작은 이 삼국지연의고 모종강본이라고 이걸 아예 죽여놓지는 않았다.서주대학살조차 안 나오는게 삼국연의인데 당장 조조의 캐릭터가 확립된 유명한 여백사 에피소드가 나오는 4화에서 모종강의 서시평을 보자


조조가 백사 일가 사람들을 죽인 것은 실수였으므로 양해해줄 수 도 있다. 그러나 백사까지 죽이는 데 이르러서는 그 악독함은 극에 달했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차라리 내가 남을 배반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도록 하겠다"고까지 말하는데, 독자들은 이에 이르러서는 그를 나무라고 욕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시험 삼아 천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감히 입을 열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도덕과 학문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 말을 뒤집어서 "차라리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지언정, 내가 남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듣는이는 나쁘지 않겠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로 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조조의 이 두 마디 말을 몰래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조조는 말과 마음이 일치한 소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무리들은 입은 옳아도 마음이 글러서, 그 말과 행동이 직설적이고 통쾌한 조조보다 도리어 못하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것이 오히려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다."


-삼국지연의 4회, 모종강의 서시평-


감히 말하건데, 과거 왕침의 위서부터 오늘날 소위 조조를 재평가하는 수많은 관련매체에 이르기까지 모종강의 이 평가를 능가하는 해석이 나왔던가? 아니 오히려 현대의 조조 재평가들이라는 것들이 나관중과 모종강이 수백년전 짜놓은 그물에 걸려 허우적 거리는 꼴이 아닌가?


한편 모종강본의 특징 중 하나는 각 화마다 실린 서시평들과, 본문 중간중간에 마치 나무위키 주석과 취소선 드립(...)마냥 적혀있는 협평들이다. 서시평은 각 화에 대한 모종강의 감상이고, 협평은 적절한 해설과 농담이 섞인 문장들이다. 1화의 몇몇 협평들 예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협평은 괄호 안에 굵게 표시)


건녕 2년 4월 보름날, 황제가 온덕전에 나와 옥좌에 앉으려고 할 때 전각 모퉁이로부터 광풍이 일더니 푸른 구덩이 한 마리가 대들보 위에서 스르르 내려와서 옥좌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백사(白蛇)를 베어죽인 후 한나라가 일어났는데[22], 청사(靑蛇)가 나타나자 한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청사와 백사가 멀찍이서 서로 대(對)를 이루고 있다.)

광화 원년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일이 있었다.(이 징조는 더욱 환관들에게 들어맞는 것이다. 남자가 거세를 당하는 것은 곧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는 것이다. 환관들이 정사에 관여하는 것은 곧 암컷이 또 수컷으로 변하는 것이다.)

황제는 일개 환관에 지나지 않는 장양을 높여서 아버지라 부르기까지 했다.(이러한 장씨 아비가 있으므로, 자연히 장각 등 장씨 형제 세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당주(황건적)는 곧장 궁중으로 가서 거사계획을 고해 바쳤다.(환관은 반대로 첩자가 되고, 첩자는 반대로 자수를 하는데, 이를 통해 내부의 도적이 바같의 도적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덕 曰: 나는 본래 한 황실의 종친으로 성은 유, 이름은 비라고 하오. 지금 들으니 황건적이 난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도적들을 깨트려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뜻은 있으나 다만 내게 힘이 없어서 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서 길게 탄식을 했던 것이오."

장비 曰: "나에게 어느 정도 재산이 있으니 고을 안의 용사들을 불러 모아 공과 함께 큰일을 도모해보는 게 어떻겠소?"(결국 재산이 있는 사람은 큰일을 하기가 쉽다.)

황제는 대장군 하진을 불러서 군사를 동원하여 마원의를 잡아다가 목을 베도록 했다. 그 다음에는 봉서 등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하옥시키도록 했다.(왜 즉시 죽여 버리지 않는가?)


또한 탐관오리 독오가 유비에게 뇌물을 요구하다가 트러블이 일어나고는 장비에게 털리는 유명한 에피소드에서는 이런식으로 드립을 치기도 했다.


독오가 큰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다: "네가 황제의 종친을 사칭하면서 공적을 거짓으로 보고하는가? 이번에 조정에서 조서를 내린 것도 바로 너 같은 엉터리 관리들을 가려내서 퇴출시키려는 것이다."

(중략)

독오가 사정했다: "현덕공, 제발 날 좀 살려주십시오!"(내가 어찌 감히! 나는 본래 황제를 사칭하고 공적을 거짓 보고했던 사람인데 어찌 감히 공을 구해줄 수 있겠는가?)

현덕은 본디 마음이 인자한 사람인지라 급히 장비를 꾸짖어 매질하는 손을 멈추도록 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진짜로 협평의 용도는 나무위키 주석 및 취소선과 같다(...) 권선징악적 주제라는 평 때문에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협평의 문체는 매우 유쾌하고 농담이 많은 편.


4. 비극적 성격[편집]


삼국지연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 작품이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謀事在人成事在天, 모사재인성사재천) - 제갈량


사마염이 중국을 통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은 결국 유비, 조조 등 모든 영웅들의 노력이 대부분 허사로 끝났음을 보여주며, 뒷사람들 탄식하며 공연히 가슴 설레네!(後人憑弔空牢騷)[23]라는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허무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처음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허무하게 사라지고 실패하는 영웅들의 최후를 보면 "재수없는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야말로 인생무상.


실제로 유비의 촉은 명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 망해버리고, 조조의 위는 힘은 강했지만 (소설상으론)찬탈로 건설된 나라인만큼 신하였던 사마씨에게 무력하게 찬탈당하며[24], 오나라도 결국엔 세력이 밀려서 멸망한다.


중국 현대 정치사상사 전공이긴 하지만 엄연히 중국정치를 전공한 학자인 피터 R. 무디 주니어는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and Popular Chinese political thought"는 이 엔딩과 전체 구성을 보고 시니컬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건 삼국지연의라는 문학 작품에 드러난 심성에 대한 평가.


이는 애초에 동양의 군담과 서양의 기사 이야기들은 그 테마가 좀 다른데서 기인하는 평가로, 삼국지에 대해 서양식 기사 이야기를 일컫는 단어인 Romance를 붙여 번역하긴 하지만[25] 서양식 기사 이야기가 강적, 특히 이교도와 맞서 싸우며 기사도를 지켜내는 절대선에 가까운 용사를 칭송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동양식 군담은 대개 권력다툼과 영웅들의 활약이 긴 역사 안에서 갖는 본질적인 허망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악 대립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선악의 구별이 희미하고 선도 악도 세월 속에서 스러져버리는 동양식 세계관을 염세주의적이라고 느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예 인생무상을 아주 잘 나타냈다고 평가받는 명문으로 시작하는 헤이케모노가타리나 괜히 뒷사람이 영웅들을 추억하는 쓸쓸한 이야기라 강조하며 시작하고 끝나는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인 예시.[26]


5. 일관성이 없는 부분들[편집]


삼국지연의는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삼국지연의에서 구전 화소들을 상당부분 채택한 결과이다. 개개의 구전 화소들이 덕지덕지 붙다 보면 역사적 사실이라든지 다른 화소들과 비교할 때 일관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27] 그래서 현대의 삼국지를 다루는 매체들은 이 부분을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꽤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의 동남풍 드립은 사실 천문을 유심히 관찰해서 타이밍에 맞춘 쇼맨십이었다던가.


장각이 과거에서 떨어졌다고 서술이 나오는데, 실제로 과거제는 수나라때부터 나온다.

정원의 관직은 병주자사이며 형주자사가 아니다.(낙양입성 직후 집금오에 임명) 참고로 형주자사로 유명한 유표는 동탁 집권기에 형주자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관우의 천리행을 지도에 그려보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가고 있다.

서서가 계책으로 조인을 물리치던 시점에 조인이 뜬금없이 번성에 주둔하고 있다. 번성은 유표의 거점인 양양의 바로 이웃에 있는 성인 만큼 유비가 주둔한 신야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길도 하나뿐이라 조인이 신야를 우회해 번성으로 가서 주둔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불게 하여 이 동남풍을 이용하여 화공을 사용해 조조군을 격퇴시켰다고 묘사되었지만 그런 능력을 장합이나 사마의에게는 써먹지 못했다. 심지어 안개가 낄 것을 예측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북벌중에는 소나기가 내릴 것도 예측 못해 상방곡에서 거의 다 잡을 뻔한 사마의를 놓치기도 한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받은 직후 패주하다가 복병을 여러 번 만나는데[28] 연의 내용을 보면 조조는 남군 강릉으로 가기 위해 남이릉 길을 택하는데, 하늘에 기도를 해 동남풍을 불게 하고 유비 진영으로 귀환한 제갈량이 조운에게 형주/남군 가는 길 중 형주 가는 길을 막고, 장비에게 남이릉/북이릉 가는 길 중 북이릉 길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퇴각하던 조조는 조운을 만나 털리고[29], 남이릉 길로 가던 중 장비에게 습격당한다(…)

적벽대전 이후 주유가 남군성을 공략하는 도중에 유비군에게 강릉, 양양, 남군을 스틸당하는데 그중 양양은 어느새 관우가 형주공방전으로 공격할때 어느새 조조의 땅으로 나온다.

조비가 5로 침공전에 남만에게 촉을 공격하라고 애기하는데, 낙양과 익주의 거리가 멀고 가는 길이 험하고, 사신이 남만에 도착한다고 해도 최소 1년이 걸린다. 그럼 맹획에게 도착한 사신은 등애인가? 차라리 그 재능으로 유선이나 제갈량를 암살하지 실제로 5로 침공은 허구이며, 맹획의 거병은 손권의 명을 받고, 사섭의 권유로 통해 옹개가 끌어들여서 한것이다.

6. 조선전래 및 유행[편집]


대략적으로 연의가 조선에 들어온 시기는 16세기 초중엽 쯤으로 추정되는데 2000년대에 16세기 중엽 판본으로 추정되는 삼국지연의의 금속활자본이 발견된 적이 있다.해당기사, 이후에도 적벽가 등에서 보듯이 어느 정도 조선만의 독자적인 삼국지 관(?)이 형성되었던 듯 하다.


비슷한 시기 조선왕조실록에도 잠깐 언급되는데, 선조 2년(1569년)에 기대승이 선조 임금 앞에서 '삼국지연의라는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라고 이런 책이 인출(印出, 인쇄)되기까지 했다며 개탄하고 연의와 함께 초한지, 전등신화와 태평광기까지 싸그리 모아서 깐다. 이 말 이전에 선조가 '장비의 고함에 만군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연의에는 있다고 들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어쨌거나 임금인 선조도 연의가 유행한 것을 주위에서 들었을 정도로 금세 알려진 책이던지, 아니면 선조도 실제로 봤는데(…) 대놓고 봤다고 하면 좀 그러니까 그렇게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해당 실록기사 어쨌거나 유학자의 입장에서, 실제의 역사가 아닌 창작물이 그럴싸하게 회자되는 세태가 우려되었던 듯 하다. 근데 솔직히 그만큼 재미있긴 하다. 온갖가지 오락물이 넘쳐나는 지금도 수많은 삼덕후가 양산될 정도인데, 조선시대 사람에게 이게 얼마나 흥미진진했을지는 알 만하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자료를 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삼국지 문화는 현대에 별로 전달되지 못했다. 후일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정도로 문체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정조는 삼국지를 잡스러운 책이라고 나는 삼국지(연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이순신을 칭찬하면서 '제갈공명과 싸워도 누가 이길지 모른다'고도 했다지만 애시당초 조선이 성리학 국가였고 그 때문에 촉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애초에 조선에서 그리도 떠받들던 주자가 정리한 역사서 강목도 촉한정통론늘 주장하니 진짜 역사서만 보고 연의는 안 봤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홍재전서를 보면 어떤 신하가 연의의 오로침공전 에피소드와 제갈량 거문고 공성계(…)[30]를 얘기했는데 그냥 넘어갔다. 이런 걸 보면 진짜로 안 봐서 지적을 못 한 걸 수도 있다.[31]


7. 번역[편집]


현대에 들어서도 한국에선 월탄 박종화, 김구용 등 많은 작가들이 삼국지 번역을 시도했으며, 근래에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등이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문학적 가치를 높였다 하여 유명해졌다. 하지만 의미를 올바르게 번역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본 삼국지, 정원기 교수의 정역 삼국지, 그리고 박기봉의 완역 삼국연의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환빠들을 위한 맞춤형 장정일 삼국지도!


어째서 한학이나 중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이들 작가들이 삼국지를 번역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텐데, "삼국지연의" 원문은 사서삼경 원문을 독해할 정도의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다만 한자학, 중국어문학, 역사학 등 전문적인 배경 지식을 갖고 번역된 게 아니므로 이들 작가들의 번역본에는 대개 '평역'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말하자면 아마추어 번역이다. 대신 작가들이 번역한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읽기 쉬운 문장을 쓰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한학이나 중문학 전공자들이 번역한 작품은 번역이 충실하고 오류가 적지만 대체적으로 문장이 딱딱하고 읽기 어렵다는 단점이 생긴다.


일본의 경우, 삼국지 통속연의라는 제목으로 에도 시대에 널리 퍼졌다. 근대에는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번역한 판본(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이 널리 읽혀졌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국내 삼국지 번역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우영 삼국지 등 만화로 번역되는 경우도 많다. 대상 연령층을 낮게 잡은 것이 많으며[32]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미없을 것 같거나 만화로 표현하기 적당치 않은 부분을 뭉텅 잘라먹는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 왜곡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입문서로는 쓰되 맹신하지 말자.


한국 삼국지연의의 번역본에 관해서는 삼국지/관련 작품 문서 참조.


7.1. 조루 현상[편집]


삼국연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번안 과정에서 조루 현상을 일으킨다. 작가들은 초반부에는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적극적으로 섞으며 맛깔나게 창작한다. 이 때는 자신이 나관중을 능가할 수 있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이 패기는 대개 적벽대전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적벽대전이 끝나고 나면 모든 작가들은 이 마귀 같은 대하소설에 손 댔다는 것을 후회하며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 듯. 그도 그럴 것이 적벽대전을 지나도 삼국정립 까지는 한참 멀었다(…). 원판 연의에선 삼고초려가 37화에 펼쳐지고 화용도가 50화인데, 추풍오장원이 104화다. 즉, 적벽대전은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33] 추풍오장원 까지만 쓰더라도 지금까지 쓴 만큼 더 써야 한다.


서천 정벌 이후 관우, 장비, 유비가 차례대로 죽고, 메인 악역인 조조마저도 죽어버리는 84화의 이릉대전, 85화의 유비 사망에 이르면 처참한 비극에 작가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의욕을 상실한다. 그렇다고 이릉대전이 오가 대활약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이후 오의 비중은 급감.


그 뒤로는 어떻게든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본래 연의의 내용에 따라 적당히 진행하게 된다. 다행히도 제갈량이 있어서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이제 부터는 제갈량 원 톱이다![34]


남만 정벌은 개그 캐릭터 맹획과 타사대왕, 올돌골 같은 정겨운 이민족들의 도움으로 근성 있게 버텨나간다. 사실 이미 판타지 소설이 되었으나 작가들은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다(…). 바로 전의 이릉대전이 줄초상인 걸 감안해 남만 정벌은 특별히 죽는 네임드 없이 가볍게 진행된다.


그리고 제갈량의 북벌. 드디어 최종보스인 사마의가 등장했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치열한 대결이 벌어지자 작가들은 가까스로 남만의 독기에서 빠져나와 그나마 제정신인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상대가 조조의 뒤를 책임질 "지장 스타일의 적"인 사마의라서 제갈량과 계략을 주고 받으며 싸운다. 조조와 유관장 시절 만큼의 간지폭풍 전개는 아니더라도 군담 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전의 이야기들이 호쾌한 활약으로 앞날이 기대되는 희망찬 전개(특히 삼고초려-적벽대전-서천정벌로 이어지는 유비군 전성기.)였다면, 북벌은 그 제갈량이 나섰는데도 온갖 사건사고로 발목 잡히고 조운도 세상 뜨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속 터지는 전개(…).


결국 제갈량은 가을 바람 타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한계를 느껴 붓을 꺾고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죽여라 사마의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어도 사마의는 후반부에 툭 튀어나온 감이 있고, 상대하는 인물들이 기껏해야 조상 정도라 길게 진행하기가 힘들다(다만 하후돈-조인-조진 + 조휴-조상 등으로 이어지는 범 조씨 일족과 사마씨 일족 사이의 병권 다툼은 정치적인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충분히 많은 내용을 쓸 수 있다.). 이미 최강자인 제갈량과 맞수로 싸웠는데 그의 상대로 던져줄 자가 마땅치 않다.


나관중도 제갈량 사후는 지루했는지 1권으로 압축했다. 제갈량이 죽는 부분이 연의 104화인데, 나머지 10여 화가 그 후 50여 년을 다룬다. 시대 전체로 보면, 제갈량이 사망한 시점은 삼국지에서 다루는 시기의 중간 쯤이다. 연의가 총 100여 년의 역사를 다루는데, 제갈량이 사망한 시점이 딱 오십년 쯤 흘렀을 때다. 역사적으로 분량을 제대로 맞추려면 제갈량이 죽었는데 지금까지 쓴 만큼 더 써야 한다는 것. 게다가 그 1권의 비중도 편차가 심하다. 대부분이 제갈량이 사망한 뒤 촉이 멸망하는 30년 정도만 크게 다루고 위의 멸망부터 진이 오를 정벌하여 천하통일하는 부분은 119화 마지막 몇 장 정도와 120화로 압축되었으며[35] 1권의 20분의 1 분량에 불과하다.


물론 후반부에도 강유나 등애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인물들은 많으나, 이전 세대의 인물들이 워낙 캐사기급 포스를 가지고 있어서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무엇보다도 제갈량 사후의 삼국은 전쟁을 일으키는 횟수가 많지 않았다. 촉은 다시 내정에 힘 썼고 타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국이 개국 초기의 혼란기를 지나 안정기에 들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전 만큼의 재미난 장면-전쟁, 암투-이 많이 나올 수도 없다. 애초에 강유나 등애[36] 또는 다른 인물들이 자신의 포스를 발휘할 무대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예 재미나게 쓰기가 힘든 부분이다.


그래도 나관중은 조방의 폐위와 사마소의 위왕 시해, 제갈탄의 난 제갈각, 손준의 분쟁 등 위나라와 오나라의 중요 사건들도 한 둘씩 다루며 어떻게든 결말을 맺었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여기에서 근성이 다 떨어지며 제갈량 사후는 다룰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삼국지 관련 창작물들이 제갈량의 죽음을 삼국지의 종료로 취급하고 있다. 책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영웅 삼국지, 드라마 삼국은 제갈량이 죽고 다음 화에서 사마의가 쿠데타에 성공한 직후 사망하며 끝난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역시 전 60권 분량 중 제갈량 사후 내용은 마지막 60권, 딱 한 권 뿐이다. 그나마도 촉이 멸망하는 시점까지만 다룬다.


대한민국의 판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요시카와 에이지본을 원작으로 한 고우영 삼국지, 장정일 삼국지 등은 원작대로 제갈량의 사망과 함께 작품이 끝나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제갈량 사후 부분이 나오기는 하지만 원본에 비해 4분의 1 정도의 분량으로 축약되어 있고, 작가가 직접 축약하겠단 뜻을 밝히는 구절이 있다. 즉 1/4권만 할애하고 바로 사마염의 통일. 참고로 제갈량 사후의 비중은 자치통감에선 1/4, 모종강 본 삼국연의에선 1/8 정도라 알려져 있다.


한국의 삼국지 번역 가운데 그나마 조루 기운이 없는 건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박종화 삼국지(여섯 권 중 마지막 권 전체가 제갈량 사후 이야기다.), 본 삼국지, 정원기 정역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정도. 본 삼국지와 정원기 삼국지야 괜히 창작 같은거 안 넣고 연의를 그대로 번역했으니 당연한 이치고 황석영 삼국지도 그나마 나관중본 중심 번역이라 제갈량 사후 부분에 한 권 반(15%)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니 이 정도면 연의에 비해 조루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상당수는 강유에게 할애되어 있는데, 위와 오를 다룰 만 하면 다시 촉으로 넘어가고 강유가 나타나는데 사실 연의도 뭐 비슷하고.


이 조루 현상을 깨고 정상적으로 삼국지 정사와 연의를 섞어서 후반부를 풀어나간 창작물이 2010년대에 하나 나오긴 했다. 바로 웹툰 삼국전투기. 작가 최훈은 제갈량 죽었으니 삼국지 끝이라는 독자 앞에서[37] "아직 삼국지 1/4이나 더 남았는데"라고 말하는 컷을 그렸으며, 실제로 1/4을 채우고 결국 에필로그로 황건적의 난을 그려 삼국지 100년을 모두 묘사하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제갈량 사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재평가의 바람도 불고 있다. 여담으로 독발수기능의 난 등을 표현할 때는 오히려 정사 삼국지를 넘어서 진서 자료에서 구해서까지 쓰며, 최소한 삼국전투기 만큼은 그의 작품 중 조루라 불리지 않을 입지를 쌓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 연의와 정사를 혼합한 만화이니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삼국전투기 문서에도 나오지만 삼국지 후반부의 조명을 잘했다는 점은 칭찬 받을 만 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미숙한 점을 후기에 인정했을 만큼 비판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사실 삼국전투기도 아주 조루가 없던 건 아니고 시즌 2는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로 구성한다고 해 놓고는, 정작 제갈량은 이도 저도 아닌 색기담당으로만 굴려지다 오장원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어 지각을 기다리며 매주 챙겨 본 독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중간에 쉬는 기간도 있었고 악명 높은 지각 연재에 결국 10여 년을 끌어 간신히 완결시켰으니... 삼국전투기 후기의 이 작품을 그리려고 참고한 서적들이나 애시당초 연의에 정사 섞어서 쓰려고 했던게 실책이었다는 최훈의 토로만 봐도 창작물에서 삼국지 관련 매체를 다루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삼국전투기 후기


한편, 중화권(홍콩)에선 또 하나의 삼국지 만화가 제갈량 사후 사마의의 사망까지 그리려 하고 있는데 바로 화봉요원이 그것이다. 연의와 역사적 사실을 섞은 비교적 가벼운 그림체로 그린 삼국전투기와는 달리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한 플롯과 각종 고전들을 인용해가면서 극화체로만 삼국전투기에선 나올수 없었던 대규모 전투신을 묘사해가면서 그려가고 있는데 15년 연재하고도 이제야 유비의 형남 4군 평정을 그리고 있으니 갈 길이 멀다. 더군다나 최훈과는 달리 이 작품의 작가 진모는 진짜 성실하게 그리면서 60여 권 가까이 그렸는데도 아직도 완결까진 한참 남았으니 가히 창작물에서 삼국지를 다루는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코에이의 삼국무쌍 시리즈도 이런 면을 보였지만 6편에선 이 점을 해결하고자 했는지 사마사, 사마소 등 종반기의 인물도 등장시키고 있다.


7.2. 정사드립 주화입마[편집]


삼국지연의를 개역하다가 흔히 빠지는 함정. 작가가 정사드립을 치기는 하는데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나머지 주화입마에 걸리는 현상을 뜻한다.


정사랍시고 인용은 했는데 기전체의 특성을 잘 모르고 정사의 일부만 참조하여 다른 부분에 나온 기사를 보지 않고 "이런 일은 실제로 없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예.


정사와 연의를 뒤죽박죽으로 뒤섞어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연의의 인물상을 중심으로, 정사의 에피소드를 끼워넣어서 캐릭터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예. 이렇게 되면 흔히 자기가 좋을 대로만 정사를 끼워넣고, 또 자기가 좋을 대로만 연의를 인용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이런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어서 욕을 먹었는데, 사실 전문적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8. 관련 작품[편집]


2차 창작물[38]등의 자료는 삼국지/관련 작품 문서 참조.

9. 기타[편집]


워낙 대작인 터라 이에 얽힌 야사도 많은데, 나관중이 이걸 쓰는 동안 반쯤 미쳐서 돌아다녔다든가(뭘 묻기만 하면 소설 내용을, 그것도 앞뒤가 안 맞게 이야기했다는 정도로), 사실은 처음에 관우를 신나게 까다가 진짜 관우가 내려와버려서 놀라 다시 썼다든가(…)하는 이야기 등이 전해내려온다. 물론 이는 그만큼 나관중이 이 작품을 잘 썼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서양에는 19세기에 소개되었는데 처음 연의가 소개될때 가장 인상깊게 소개된 인물은 제갈량이며, 이후에 나관중은 동양의 호메로스, 타키투스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삼국지연의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중국의 모든 시기를 따져도 역사와 소설을 혼동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 사실 삼국시대가 정작 역사적으로는 시기가 짧고 비중도 적은 시대인 주제에 소설만 무지하게 유명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더 커지는 것이다. 웬만큼 배웠다는 사람도 자주 혼란을 일으키며, 정사 삼국지를 조금 읽은 사람은 무슨 마공인지 주화입마에 빠져서 연의와 정사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건 예사다. 예를 들면 낙봉파[39]에서 방사원을 어쩌고하는 시를 지었다가 소설가지고 시짓는다고 바로 깨갱하는 사태 등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졌다.


이걸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전문 연구가나 골수 삼덕후들 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도 가끔 혼란을 일으킨다(…).


중국이야 뭐 말할것도 없지만 한국의 사극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2000년대 대형 사극에서 의형제 3인방 트리오 포지션이 나오면 빼박(...)


작품 내에서 상대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이끌고 온 군주가 오히려 적은 수의 적군에게 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관도대전의 원소, 적벽대전의 조조, 이릉대전의 유비 등), 사실 대군이 패배한 경우가 묘사가 많고 임팩트가 크게 남아서 그렇지 실제 연의에서는 대병력에 발리거나 항복하는 약소군주가 훨씬 많다. 유대, 교모, 한복, 여포, 원술, 유표, 마초, 장로, 맹획, 공손연 등 이외에도 대군에게 발린 경우가 수도 없이 많고 유비조차 조조의 대병력에 숱하게 박살나며 초창기의 조조 역시 서영의 대병력에게 박살난다. 선택적 기억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군담소설이기 때문에 문신들은 비중이 공기에 가깝다. 제갈량이 굳이 군사의 포지션이 된 것은 후반부의 주인공인 그가 역사대로 문관이 되면 혼자 비중이 적어지기 때문일지도. 그런데 이것마저도 그나마 문신들이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해석은 알아서.


충무공 이순신이 애독했던 책이기도 하다. 청성잡기에 따르면 이순신에게는 은거기인 친구가 있었는데 충무공이 그 재능을 아껴 편지를 보내 같이 나랏일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 친구가 거절하면서 '중국의 선비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숙독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며 삼국지연의를 충무공에게 보냈다고 한다. 실제 난중일기에도 가정본 삼국연의를 인용한 구절이 존재한다.#



[1] 원말명초에 나관중이 완성한 나관중 원본의 삼국지연의는 현재 소실되었다.

[2] 심지어 삼국지 문서에도 역사책에 관한 서술과 연의에 관한 서술이 함께 있다.

[3] 후한말-위촉오시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로그라인 명문으로 꼽힌다. 다만, 의외로 국내외 삼국지 평역 작품들 중에 이 문장이 그대로 인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래도 서두에 해당하는 지라 작가마다 개인의 감상을 적어 넣기 때문인 듯. 평역이 아닌 일반적인 번역의 삼국지는 이 문장이 있다.

[4] 이십이사차기라는 서적을 지어 청대까지 남아있는 정사서 22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비판을 남겼다.

[5] 달리 말하면 관우, 제갈량처럼 아예 신으로 섬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유관장 등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후대의 온갖 서적에서 이런저런 대조를 위해 회자되는 이러한 인물들이 후대에 사회/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장각 등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나관중 등의 필터링을 거친 형상이긴 하지만. 당장 현대에도 동아시아 3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유비, 조조, 공명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6] 반대로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그러니까 아무하고도 상대를 하지 말란 말이다 삼국지에 워낙 온갖 교활한 술수와 책략과 사기질(…)이 넘쳐 흐르다보니 삼국지를 3번이나 열독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7] 다만, 삼국지평화를 읽어보면 삼국지연의와 얼마나 다른 지를 알 수 있다.

[8] 이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이전의 삼국지평화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강담사들이 다음 번에 또 들으러 오라고 절단신공을 구사한 흔적이기 때문.

[9] 참고로 보통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184년부터 오가 멸망하는 280년까지를 삼국지 배경으로 삼는데 이 기간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사마부(180년 ~ 272년)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나서 서진 건국까지 보고 죽었다.

[10]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삼국지연의 마지막 주인공이 강유인 점도 납득할 수 있다. 그는 높은 뜻을 품은 사대부이자 신의를 위해 목숨도 태연히 버리는 남자였으니까.

[11] 일례로 조조가 여포, 원소등과 싸우는 부분이나, 손책이 강동을 정벌하는 부분이나, 혹은 합비공방전.

[12] 연의에서 제갈량의 첫 활약이었던 박망파 전투는 사실 유비의 작품이다. 유비가 복병을 설치해, 하루아침에 자기 병영을 불사르고 거짓으로 달아나니 하후돈 등이 이를 추격하다 복병에게 격파당했다.

[13] 수호지의 작가 시내암은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4] 중국 속어중에는 유비가 아두를 땅에 던진 것은 인심을 매수하기 위해서라거나 유비는 울어서 강산을 차지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속담들은 연의의 유행 이후 등장한 것이다.

[15] 물론 중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나 도교 단 하나만이 아닌 유불도 삼교를 모두 이해해야만 하며, 무위의 치 개념도 따라서 유교와 도교 양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도교적 해석의 무위의 치는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즉 순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정치를 말하고, 유교적 해석으로는 공자가 요순에 대해 평가했듯이 공손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자신의 몸 가짐을 바르게 하며, 어진이들을 불러 모으는 정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요순 시대를 극찬하던 것도 공자이기도 하고 여기서의 무위의 치 개념은 도교라기보다는 유교적 개념에 가깝다. 다만 그렇다고 도교와는 전혀 관련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물론 아니다. 노자와 공자의 대화… 혹은 대화했다는 전설이라던가 초기 유교와 도교 개념들은 상당히 겹치는 것들이 많다.

[16] 후대에 갈수록 관중 악의보다 거의 전설상의 인물들인 이윤과 여상에 제갈량이 자꾸 비유되는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전설적인 군주 탕왕의 재상 이윤이나 주문왕의 재상 여상도 이런식으로 재야에 머물다가 덕망있는 군주에게 등용된 케이스이기 때문. 제갈량은 여기에 더해서 선비로서 사심없이 충심을 다해 왕으로부터 전권을 이임받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는 플러스 포인트도 추가된다.

[17] 본디 나관중본은 구전적 성격이 많이 남아있었고, 당연히 통속적인 성격을 지닌다. 때문에 위/촉/오의 구성이 비교적 평균적이라 어느 소속이든 슬기롭고 충성스러우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통속연의>이고, 아무튼 각 인물들이 멋있으면 그만이었다. 나관중본의 경우는 관우의 죽음도 그냥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이를 적토마가 올가미에 걸려 넘어져 관우가 붙잡히고, 손권 앞에서 영웅적 최후를 맞는 것으로 소설적 성격이 강하게 각색한 것은 모종강본이다.

[18] 그러나 리동혁은 모종강본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본 삼국지에서 12가지 각종 판본을 모조리 뒤섞어놓아서 내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쓸데없이 나관중본을 문맥에 맞지 않게 끼워넣어 독자들에게 혼란을 가져 왔다. 비판자들은 리동혁 본 삼국지는 초판본 11권 부록밖에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 할 정도.

[19] 그러나 황석영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면 이게 과연 순수하게 가정본을 가지고서만 번역한 것으로 볼수있는가에는 의구심이 드는 수준이다. 실제로 다른 번역본들의 오류들이나 수정한 정도이고 전개되는 내용은 모본을 번역한 다른 번역본들과 다른 게 거의 없다.

[20] "운장은 인간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옥황상제의 조칙이 있으니 범부와 승부를 겨루지 말라"라는 목소리를 하늘에서 듣고는, 싸우다말고 승천한다.

[21] 흔히 알려진 관우의 최후는 바로 모종강본의 모습이다.

[22] 한고조가 백사를 벤 고사를 뜻한다.

[23] 삼국지연의의 결말은 연의 전체를 되돌아보는 고풍이라는 장편 시가 장식하는데, 이 시의 마지막 수이다.

[24] 실제 작중 묘사를 보면 헌제가 한을 빼앗기는 모습과 비슷하게 묘사된다. 아예 사마소가 "너희도 한에게서 찬탈했잖느냐"면서 빈정거릴 정도.

[25] 삼국지뿐만 아니아 동아시아권 고소설들은 대체로 로망스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하는 편이다.

[26] 다만 보통 역사 군담 소설이 이런 경우고, 창작 군담 소설(유충렬전 같은)들은 서양식 기사 이야기와 비슷하게 볼 수 있는 면도 꽤 많다.

[27] 구비 문학으로 시작한 문학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를 나관중, 모종강 같은 이가 정리한다고 해도 개개의 화소들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지라 통일성을 해친다고 무작정 쳐내지는 못하니 앞뒤 안 맞는 서술들이 남게 되는 것.

[28] 이 부분도 허구. 실제로는 복병을 만나기 전에 조조군이 무사히 퇴각하고 이후 뒤늦게 도착한 유비군이 불을 질렀다고 한다.물론 정사에서 유비네가 공을 날로 먹은건 아니고 강남을 장악한 손권이 겨우 3만 군사를 준비해올 때 한낱 객장 신분으로 2만명이나 되는 군사(+휘하 명장들)를 동원해서 온다.

[29] 이 부분은 조조가 최초에 형주/남군 중 어느 쪽으로 가는지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조조가 형주 길로 가던 중 조운의 복병을 만나 패주한 후 남군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도 있다.

[30] 이 공성계가 연의의 창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배송지가 인용한 제갈량과 관련된 '곽충오사'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배송지 본인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신빙성을 대놓고 의심하는데 왜 주석으로 달아놨는지는 불명(…).

[31] 근데 재밌는 부분은 정작 정조가 칭찬한 이순신은 삼국지연의를 봤다는 점이다(…).

[32]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다. 일단 고우영 삼국지부터가.

[33] 아동용 삼국지 중 5권으로 편집된 판본들에선 대개 적벽대전이 4권 쯤에 벌어진다. 엄청난 분량 삭제를 볼 수 있는 부분. 이런 삼국지들은 대개 촉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다시 말해 촉 하나만 중심으로 해도 5권이나 되고, 위, 촉, 오 전부 다루려면 분량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

[34] 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독 띄워진 건 후반의 재미를 책임져야 할 원 톱이라 그런 걸 지도.

[35] 118~119화의 강유의 한복~종회의 난과 맞먹는다.

[36] 이들은 그나마 진태와 더불어 강유의 북벌 장면에서 활약하기라도 한다. 그 외에는 모조리 지못미.

[37] 여담으로 이 소리를 하는 독자는 최훈이 야구친구와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그렸던 최민규 캐릭터와 똑같이 생겼다.

[38] 사실 삼국지연의는 삼국지평화나 당시 떠돌던 민담, 정사 등을 섞었기에 2차 창작물이라기보다는 3차 창작물에 가깝다.

[39] 낙봉파라는 지명 자체가 허구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는 삼국지의 허구 지명들이 속속 다 생겨있다. 제갈량의 거처인 융중을 자처하는 곳도 여럿이고(이쪽은 실존했던 지명이지만). 이게 다 관광객들 대상으로 하는 돈벌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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