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2 – 파우스트 (Faust) /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괴테 개인의 성장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보배인 이 작품은, 괴테가 젊은 질풍노도시대로부터 출발하여 고전주의를 거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즉 괴테 자신의 모든 인생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존재의 방황. 갈등. 구원 등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거대한 노력의 산물로,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인간은 자기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방황하지만, 이것을 계속하는 한 결국에는 하늘에 의해 구원된다는 그의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영혼의 구원과 구원을 향한 구도자로서의 괴테의 총체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나고 난 후 한 말이다.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영원한 로맨티스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신성 로마제국의 추밀원 고문관을 지낸 부친에게서 엄격한 기풍을, 프랑크프르트 시장 딸인 모친에게서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적 성격을 이어받았다. 또한 부유한 상류가정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 뒷날 천재적 대성을 이룰 바탕을 마련하였다. 부모의 나이 차이는 21년이었고, 괴테는 학교가 아닌 아버지한테 교육을 받았다. 15세에 그레첸이라는 소녀와 첫사랑을 경험한 이후 생애 동안 9명의 여성과 애정관계를 가졌다. 라이프치히 대학 법대 재학시절에는 미술과 문학에 심취하여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으며 1768년 중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다. 요양중 46세의 경건주의적 신앙이 두터운 노처녀인 클레텐베르크를 만났고, 건강을 회복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로 유학,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5년 선배인 헤르더를 알게 되어, 민족과 개성을 존중하는 문예관의 영향을 받아 후일 슈트품 운트 드랑(질풍노도) 문학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 순진한 목사의 딸인 브리온과의 연애는 숱한 새로운 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나, 괴테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쫓겨 연인을 버린다. 이것은 괴테의 가슴에 언제나 지워지지 않고 남아, 그의 시작의 테마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고, 이즈음 베츨라르에서 샬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이 여인은 이미 약혼자가 있어 이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막을 내린다. 직후 그의 친구인 빌헬름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 끝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 이 두 사건을 혼합시켜 주인공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전 유럽의 독서계를 강타했다. 이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질풍노도라는 문학운동의 시발로서 큰 문학적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75년초 괴테는 셰네만과 사랑하여 약혼까지 했으나, 곧 파혼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초청되어 그곳에 갔는데, 결국 이곳이 그의 평생 안주지가 되었다. 이곳은 인구 10만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었으나, 문화에 대한 의욕과 학문적 분위기가 가득 찬 곳이어서, 영주의 고문관이 되어 많은 치적을 쌓았다. 이즈음 괴테는 슈타인이라는 부인을 만난다. 26세의 괴테에 비해 33세인 그녀는 괴테의 누나이자 연인이고, 조언자였다. 이미 7자녀를 둔 그녀와의 사랑은 지금까지의 어느 사랑과도 달랐으며, 이들의 관계는 괴테의 질풍노도적인 격정을 진정. 순화시켜 질서를 존중하는 고전주의로 향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0년에 걸친 바이마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고대예술과 고대인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었다. 한편 그는 독일의 동시대인과의 연대를 상실해갔다. 괴테는 독일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임했다. 동시대인도 괴테를 백안시했다. 요컨대 이탈리아는 괴테를 독일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다.

1788년(39세)에 크리스티아네를 만나 결혼, 자녀도 두고 비로소 가정의 행복을 맛보았다. 1794년(45세)부터 시작되는 실러와의 교우관계는 침체했던 그의 창작활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괴테가 직관적이고 소박한 데 비해, 실러는 사변적이고 의식적이었다. 이처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이 두 천재의 협력은 독일문학사에 새로운 고전주의시대를 초래했다. 특히 파우스트 (1부)와 빌렐름 마이스터는 실러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쉴러가 타계했을 때 괴테는  내 존재의 절반을 잃었다면서 탄식했다.

1816년(67세)아내가 죽었으나, 70이 넘은 괴테는 심신의 쇠약을 보이지 않고 그 정신적 시야는 점점 확대되었다. 74세 때 19세의 꽃다운 처녀 레베초를 만나 열렬히 구애했으나 거절당했는데, 그가 만년에 쓴  마리엔트바의 비가는 이 사랑을 표현한 서정시의 백미다. 1829년(80세)에 빌헬름 마이스터를 완성했고,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무려 60년이나 걸린 생애 최고의 대작인  파우스트 (2부)를 1831년(82세)에 완성했다. 그는 혁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나, 인류의 진보와 행복에 대해서는 정열을 바쳤으며, 낭만주의의 병적 경향을 싫어하여 고전주의로 전향하였으나, 만년의 작품에는 다분히 낭만적 요소가 실려 있다. 요컨대 괴테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금욕주의자도, 신비주의자도, 성인이나 은자도 아니며, 돈 주앙과 같은 호색한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절제된 감성적 인간의 지고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분투했던 것이다.


b. 파우스트의 전설

 파우스트 는 비극 제1부(1806)와 비극 제2부(1831)로 구성되어 있다. 이 희곡의 소재는 파우스트 전설에서 유래했다. 원래 15세기 말에 살았다는 학자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각 지방에 여러 형태로 전해내려오던 것을 16세기 말 영국의 작가 말로가 연극화하면서부터 널리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퍼졌다. 그는 약간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한 마술사로 각지를 유랑한 인간인데, 여기에 갖가지 마술사 전설이 부가되면서 소위 파우스트 전설 이 등장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파우스트는 마력의 힘을 빌어 천지의 신비를 캐고 거부를 얻으며 향락을 맛보면서 잠시만이라도 신과 필적하는 자가 될 것을 염원하여 악마와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에 따르면 24년간은 악마가 그에게 봉사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반대로 파우스트를 악마가 마음대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부터 파우스트는 악마를 따라 여러 곳을 구경하고, 마법의 힘으로 여러 가지 향락을 맛보며, 공작의 궁전에 살면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공작부인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속으로부터의 만족은 얻지 못한다. 회개할 생각이 든 그가 신에게 간구하려 하였으나, 그때는 벌써 계약기간이 지나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그는 악마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영혼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전설이 비로소 저서 형식으로 나온 것은 1587년.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의 서점인 쉬피스에서 간행한 것인데, 이것이 영역되어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였던 말로의 눈에 띄어, 포스타스 박사의 비화 라는 비극이 탄생하였다. 이것이 영국 여행자에 의해 독일에 역수입되어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른 것이다. 소년시대에 이미 인형극이나 민중극을 통해 파우스트의 전설과 친했던 괴테가 자신도 파우스트를 써보기로 결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c. 주요 등장인물

노력하며 방황하는 인간의 구원을 그린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파우스트: 16세기의 전설적인 마술사, 학자, 지칠 줄 모르는 인생 탐구자. 제1부에서는 학문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고 사랑에서 보람을 찾는다. 제2부에서는 미와 행위의 단계를 체험하고 승천한다.

메피스토펠레스: 파우스트 전설의 악마. 파우스트의 길동무가 되어 그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한다. 중간 무렵에 추하게 생긴 마녀 포르키아스가 된다.

바그너: 파우스트의 심부름꾼으로 공부를 하는 심리주의자. 제2부에서는 대학자가 된다.

마르가레테(그레첸): 청순하고 매력적인 서민의 딸.

헬레네: 그리스의 최고의 미인. 파우스트와 결혼한다.


d. 작품의 주요내용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다 

 참된 인간은 잠시 어두운 충동에 동요할지라도, 옳은 길을 망각하지 않는 법이다 

 항상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파우스트 는 비극 제1부(1806)와 비극 제2부(1831)로 구성된 총 1만 2천여 행의 극시이다. 그 제1부만 놓고 본다면 다른 명작이나 다름없다. 파우스트의 사상적 고민, 거기서부터 자연과 인간생활에의 탈출, 그리고 그 유명한 그레첸의 비극의 사랑체험 등 작은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제2부가 되면  거대한 세계의 체험이 되면서 무대는 더욱 확대되는 것이다. 제1부의 그레첸의 비극에 대응하는 헬레나의 비극을 거쳐, 파우스트는 드디어 간척지를 개간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2부는 너무 난해하여 작가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썼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작품은 천상의 서곡으로 시작된다. 분량은 짧지만 작품 전체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요약하고 있어 중요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주님 앞에 나타나, 신의 걸작인 인간도 대단한 것이 못되며 허락만 한다면 신의 종인 파우스트마저 신에게서 뺏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말에 신은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한,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라면서 파우스트를 유혹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의기양양한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친구에게 쓰레기를 먹일 것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파우스트에게 무가치한 향락으로 유혹하여, 그의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의 주인인 신이 왜 신의 위업을 부정하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가 하는 문제도 여기에서 설명된다. 인간의 활동은 원래 이완되기 쉬운 것이어서 무제한의 휴식을 바란다.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매개물을 내세워 그들을 자극하고 재촉하는 악마로서의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천상에서의 신과 악마와의 내기 대화를 통해, 인간의 욕구는 일시적으로 잘못을 낳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신이 다스리는 세계의 질서와 조화하게 된다는 괴테의 낙관적인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제1부 

제1부의 막이 오르면서 하늘 위에서의 내기 따위는 전혀 모르는 파우스트 교수가 서재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시작된다.  아! 어느새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쓸데없는 신학까지도 속속들이 연구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가엾은 바보꼴이구나, 그렇다고 예전보다 똑똑해진 나라는 인간은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모든 학문에 통달하였으나, 이에 실패했음을 한탄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우주와 인간존재의 규명에 대한 학문적 노력에 회의를 느끼면서 새로운 충동을 느낀다. 즉 천국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과 땅 위의 쾌락에 빠지고 싶은 욕망으로 번민한다. 그때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그를 땅 위의 쾌락으로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파우스트는 악마와 목숨을 건 계약을 맺고 정욕의 세계로 빠져든다. 악마는 그의 종이 되어 그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되, 만약 파우스트가 향락에 빠져서 정진을 그만두고 거기에 만족해버리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을 빼앗아도 좋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대로 나는 망해도 좋다.고 파우스트는 약속한다. 이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그 영혼을 앗아가려는 악마와, 오히려 그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넓은 세계를 마음껏 체험하고 학문으로써 도달치 못한 우주의 근본이치를 규명해보려는 파우스트는 인생수업의 길을 떠나게 된다.

악마의 힘으로 젊어진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인 그레첸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악마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진실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 지식보다 중요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게 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사랑의 정열을 그레첸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자아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그녀의 절대적 헌신성과 숭고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인식하게 되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비상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악마의 농간으로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육체관계를 맺게 되고, 그레첸은 임신하게 되어 사생아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는 그레첸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다. 하늘로부터 그 소녀는 구원되었다. 는 소리가 들리고, 승천하는 그레첸은  하인리히! 하인리히! 하고 파우스트를 부른다. 이러한 그레첸의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죄도 진실한 인간성과 양심으로써 정화될 수 있다는 괴테 특유의 종교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해서 제1부는 막을 내리고,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영원한 인간적인 사랑이 다음 제2부의 마지막에서 파우스트를 궁극적으로 구원하는 열쇠가 된다.


 제2부

제2부는 5막으로, 제1부에 비해 내용이 훨씬 복잡하다. 제1부가 주인공의 가슴 속에 사는 두 영혼의 상극, 사랑의 기쁨과 거기에 유래하는 죄라는 개인적 체험(소세계)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제2부에서는 주인공의 개인적인 세계가 아닌 넓은 외부세계(대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성장해가는 도정이 그려진다. 

파우스트와 악마는 신성로마제국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재정난에 빠진 로마제국을 위해 지폐를 마구 찍어내게 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황제의 궁정에서 영화를 누리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황제는 파우스트를 현자로 믿고, 그리스의 대표적 미남미녀인 파리스와 헬레네를 불러내보라는 분부를 한다. 이에 따라 파우스트는 악마와 상의하여 우주의 끝에 가서 헬레네의 형태만을 불러온다. 헬레네를 사랑하게 된 파우스트는 그녀를 소생시키기 위해 고전미의 세계인 그리스로 간다. 이 장면에서는 특히 괴테의 해박한 지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으로 발휘되고, 전대미문의 스펙터클이 벌어진다. 이곳의 묘사는 극의 진행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괴테의 세계관과 그리스의 미의 발생과정이 엿보인다. 드디어 현실의 연인이 된 헬레네는 파우스트와 결혼하여, 그들 사이에 오이포리온이 태어난다. 이 오이포리온은 영국의 천재시인 바이런을 암시하고 있다. 이 아이는 즉시 날 수 있게 된다. 자, 저를 뛰어오르게 해주세요, 아무리 높은 공중에서라도 치솟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벌써 그런 소원에 사로잡혀버렸어요 하며 하늘 높이 날아다니다가 그리스의 이카루스처럼 언덕에 떨어져 죽는다.

오이포리온의 죽음을 계기로 파우스트와 헬레네의 사랑도 끝을 고한다. 행복과 아름다움은 줄곧 합쳐 있을 수 없다는 옛말이 섭섭하게도 이 한 몸으로 증명되었습니다라고 헬레네는 말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육신은 사라지고 의상과 면사포만 그의 팔에 남는다.

그러나 고전주의적 세계의 방문으로 이상이 풍부해져서 돌아온 파우스트는 미적 탐닉으로 이루지 못한 만족을,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자신의 헌신적 노력으로써 얻으려 한다. 이 지구에는 아직도 위대한 일을 할 여지가 남아 있어. 놀랄 만한 일을 해내겠다. 사업이 전부일 뿐 명성은 허무한 것이다고 말하며 건설사업에 착수한다. 그는 황제로부터 광대한 습지를 받아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로 만들어보려는 의욕에 불탄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로운 민중과 함께 자유로운 토지에서의 삶을 꿈꾸고 전력을 다해 노력함으로써 지상에서의 정신적 만족을 얻는다. 100세가 된 파우스트는 요녀가 뿜어낸 입김으로 눈까지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지만, 마음의 눈은 더 밝아져 그때야 비로소 인생의 참된 의의를 발견한다. 이제 곧 완성될 새 땅에 오곡이 무르익고 만백성이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고 행복한 예감에 싸여,  자유도 생명도 싸워서 차지하는 자만이/그것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나는 그러한 인간의 집단을 바라보며/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그렇게 되면 나는 순간을 향하여 이렇게 부르짖어도 좋을 것이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라고.하고 숨을 거둔다. 악마는 당연히 파우스트의 영혼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파우스트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향락이나 물질적 만족을 얻은 것이 아니라, 최후까지 시련을 잘 이겨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구원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항상 노력하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 고 약속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악마로부터 보호하면서 그의 시체 위에 꽃송이를 뿌린다. 그러나 인간영혼의 궁극적 구원은 자력으로서는 한계가 있고, 천상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테의 구원관이었다. 그의 영혼이 천국에 오르기까지에는 하늘로부터의 은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속죄하고 있던 옛 애인이자, 단테에게 있어 구원의 여인상인 베아트리체에 해당하는 그레첸이 파우스트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성모 마리아에게 은총을 빈다. 성모는 그 기원을 들어주며 자, 이리 오너라, 보다 높은 하늘로 오르라! 그 사람도 너인 줄 짐작하면 따라오리라! 고 말한다. 뒤이어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신비의 합창으로 장편시극  파우스트 는 막을 내린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세계문학사의 거인 괴테는 유럽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르네상스 거장다운 다재다능함과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80년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신의 경지를 넘나들었고, 사랑이나 슬픔에 기꺼이 그의 존재를 내맡기곤 했다. 내적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적인 생활규율을 엄수하면서도 삶. 사랑. 사색의 신비가 투명할 정도로 정제되어 있는 마술적 서정시들을 창조하는 힘을 잃지 않았다. 마침내 그에게는 원하는 대로 창조력을 샘솟게 하는 자신조차도 신비스럽게 여긴 재능이 생겨나, 60년 가까이 노력해온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죽기 불과 몇 달 전에 완성한 파우스트 의 마지막 2행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는 인간존재의 양극성에 대한 작가자신의 감성을 요약한 말이다. 여성은 그에게 있어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었다.


f. 파우스트적 인간

중세에 신에게만 향해졌던 사랑과 정열이,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적이며 지상적인 것으로 지향하게 된다. 나아가 인간은 자연계의 비밀을 끝까지 탐구하려 하였고, 정신면이나 물질면에서 인간성을 확장하여 그 해방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이런 인간을 가리켜  파우스트적 인간 이라 한다. 괴테는 이러한 파우스트를 영원히 생성. 변화되어가는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무한히 노력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그러는 한 인간은 구원된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파우스트의 형상속에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사랑의 모티브를 적용시켜 인간한계의 극복과 구원의 문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자기의 영혼을 최고의 향락, 최고의 지식과 맞바꾼 전설의 파우스트 박사가 분에 넘친 욕망 때문에 파멸한 비극적 운명의 어두운 이야기를, 괴테는 밝은 빛으로 다시 조명하여 무한한 높이를 찾아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고난 속에서 정진을 계속하는 진취적 인생의 드라마로 바꿔놓고, 여기에 청순한 처녀 그레첸의 참사랑과 고전적인 헬레네의 이야기를 곁들여 근대문학의 최고 걸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심오한 깊이와 서로 뒤섞여 진행되는 구성으로 작품해석이 어려워, 오늘날까지 작품평가가 극히 어려운 상태이나, 문학언어의 가능성을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보여준 극이라는 점에서는 비평사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g. 신의 은총에 의한 인간구원

그러나 독자들은 악마에게 혼을 판 파우스트가 어떻게 구원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파우스트의 영혼구원의 문제는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만년의 괴테는 파우스트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천사들의 노래인 영의 세계의 귀하신 분이/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우리는 구할 수가 있습니다/게다가 이분에겐 천상으로부터의/사랑의

은혜가 관여하여 왔으니/축복받은 사람들의 무리가 진심으로 환대할 것입니다 의 구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구 속에 파우스트 구원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있다. 파우스트 그 사람 속에는 점차로 높은 차원에 올라가 순수하게 되는 활동이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행해지고, 또 하늘로부터는 그를 도우려고 하는 영원한 사랑이 내리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종교적 관념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것에 따른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하늘의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은총이 내려질 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C11 – 구토 (La Nause) /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며, 끊임없는 사유와 참여를 통해 영원한 자유를 꿈꾸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르트르가 쓴 첫 번째 문학작품. 로캉탱이라는 역사 연구가의 일기 형식을 빌어 주인공이 존재의 무상성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형이상학적 소설은, 사르트르 초기 실존주의의 단초를 보여준다. 철학자. 극작가. 시사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르트르의 소설가로서의 면모가 가장 완결된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노벨상 거부,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마르크시즘과의 동반 및 결별, 행동하는 지식인, 1980년 사망시 전세계의 추모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르트르는 2차대전 후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외쳐, 전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20세기 최후의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는 해군장교 출신의 부친과 적도의 성자 시바이처의 사촌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친이 별세하여 그는 외가에서 자랐는데, 독일어 교사이나 독서가인 할아버지 아래서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3세 때 오른쪽 눈을 거의 실명하여 말년의 불행이 이때 잉태되었다. 19세 때에는 파리의 수재들이 모이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레이몽, 아롱, 메를로-퐁티 등을 만나게 되고, 23세 때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교사자격 시험에는 낙방하여 1년 후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는데, 이때 전후 세계여성의 지성의 상징인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의 작가)는 차석으로 합격하여,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시작된다. 세간의 화제를 뿌린 이들의 계약결혼은 애초 2년이었으나 2년후 재계약시 사르트르가 장기계약을 요청해, 결국 이들의 동반자적 관계는 80년 사르트르가 별세할 때까지 50년간 지속된다(이들은 이생을 통해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며 문학적. 정서적 반려자가 되었다).

28세에는 베를린에 유학하여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접하고, 인간존재의 총체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인간학의 정립을 모색했다. 이 시기에 상상력 자아의 초월 등을 썼는데 그의 사상적 기초는 이때 형성되었으며, 이후 1938년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장편소설 구토 를 발표하여, 철학이 뒷받침된 대담한 주제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그의 초기철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와 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념비적인 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철학서 사상 유례가 없는 성공을 거두어 이 책 한 권으로 중학교 교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철학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는 2차대전중 소집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퐁티 등과 레지스탕스 조직을 만들어 독일의 나치즘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1945년 잡지 <현대>를 만들어 문학. 철학은 물론 정치. 사회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상운동을 전개하여, 그의 존재는 전후 혼란기의 젊은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후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사회 참여문학(앙가주망)을 제창한 시기였다. 당시는 미. 소의 심한 대립이 세계의 정치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제3의 길을 모색하여 혁명적 민주연합 이라는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행동은 거의 소득이 없었다. 그 무렵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던 장편소설 자유를 위한 길 이 미완성으로 끝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제3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긴 논문 공산주의자와 평화에서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라고 강조한 후, 공산당의 동반자가 되어 반전 평화운동에 참가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는 함께 일해오던 메를로-퐁티, 카뮈 등과 결별하게 된다. 퐁티는 공산주의 국가가 침략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한 반면, 사르트르에게 한국전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일 뿐, 중요한 것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좌파 지식인이 뭉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로 보았다. 1956년 소련공산당의 스탈린 비판과 헝가리 의거, 그후의 알제리 독립전쟁 등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의 입장을 표명하여 그때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알제리 독립전쟁시 식민지독립을 지지한 것은, 제3세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1964년에는 자전적 소설 말로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노벨 상이 서구작가들에 치우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말년에는 하나 남았던 왼쪽 시력까지 약해져 독서는 물론 집필도 못했다. 그는 작은 키에 유머 감각으로 남을 잘 웃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으며,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싸울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1980년 4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르트르의 죽음은 한 철학자의 죽음도, 한 소설가의 죽음도, 한 극작가의 죽음도 아닌, 한 시대를 마감한 최후의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해에 그를 추모하는 세미나. 심포지엄 등이 전세계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서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9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사르트르 추모 강연회는 극우반동의 도시 한복판에서 새로 나온 극좌 지식인에 대한 구애와 애도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이 참석하여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연상시켰으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었고, 사르트르가 항상 그의 글로써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b.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실존주의문학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구토는 사물의 존재에 직면했을 때의 불안과 실존의식을 묘사하면서 인간존재의 부조리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런 불합리한 존재를 깨달았을 때의 느낌을 구토 라고 표현하였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실존. 자유. 주체성 등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그의 방대한 철학서인 존재와 무에 제시되어 있다.


c. 실존주의

실존이란 원래 본질에 대한 현실 존재라는 뜻이다. 본질은 무엇이냐?를 문제삼지만, 실존은 가능성을 문제삼는다. 현실 존재는 물건의 경우에는 상대적이지만, 인간존재의 경우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물건이나 동물인 경우에는 서로 바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대신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남과 대신될 수가 없다. ‘나’라는 무엇인가, 나 라는 개인,  나 라는 주체는 남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그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독자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대로 남과 바꿀수 없는 단독자, 즉 있는 그대로의 엄연한 본래적인 자기를 실존이라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철학이란 인간이 자기초월에 의해서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이요, 위기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본래적 자기를 되찾으려는 자기회복의 철학이다.


d.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요, 다른 하나는 ‘실존은 주체성이다’이다.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한 후, 기독교의 창조론적 세계관이 의심받자 이들의 반격은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대자적 존재, 인간)와 의식이 없는 존재(즉자적 존재, 사물)로 나눌 수 있다. 책상의 겨우 미리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목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게 되어, 잠시 후에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 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의 본질을 미리 생각하고 규정해서 만들어낸 존재, 즉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으로서 인간을 파악하였다. 즉 실존은 주체성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e. 작품의 주요내용

실존주의 문학을 창시한 이 소설은 소설 속의 주인공인 역사학자 로캉탱이 외계의 사물이나 인간에게서 느끼는 구토감을 일기로 극명하게 기록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추구한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30대의 역사학자 앙트완 로캉탱은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부빌이라는 도시의 도서관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인물들의 전기를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물가에서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흉내를 내려고 돌을 집는 순간, 갑자기 구역질 같은 것을 느끼고 손을 떼고 만다. 이 손 안의 구역질 은 그 뒤에도 그를 자주 엄습한다. 그때마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2년 1월 말부터 약 1개월간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의 생활은 무미건조한 나날들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로르봉 후작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하거나, 카페에서 들려주는 언제나 가까운 날에 란 음악을 듣는 것이 고작인, 그야말로 혼자만의 생활이었다. 간혹 그는 일상생활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살피기도 했고, 이 지방 특유의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그는 자기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가 살아온 것은 경험이 아니라 말의 잔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거와 합일점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자기자신은 과거의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그는 정녕 한 사람의 전기를 쓸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가 이러한 난해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옛날 자신과 헤어졌던 여인이 파리에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내온다. 그녀는 예전에 완벽한 자아의 충실을 기대하며 꿈꾸던 여인이었다. 그는 옛 여인을 만남으로써 자기에게 희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기묘한 감각은 쉴 사이 없이 일어난다. 그의 손이 닿거나 눈길만 주어도 일어나는 이상한 감각은 그의 몸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 강력한 증오감과 함께 구토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마로니에의 나무뿌리를 보며 명상에 잠기다가 마침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구토의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 그가 마로니에라는 나무뿌리를 생각했을 때, 마로니에 나무뿌리는 그 마로니에 나무뿌리라는 말의 형체를 벗고, 모든 부위를 통해 그의 몸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구토란 인간이나 사물의 언어에 의해 성립되는 의미나 본질을 박탈당하고 괴물처럼 흐물흐물한 무질서의 덩어리였다. 또는 무섭고 음탕한 벌거숭이의 덩어리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체계였고, 세계를 체험한 본질의 것이었다. 그가 드디어 생각해낸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전혀 존재 이유를 가지지 않고, 또 존재의 의지조차 가지지 않은 채 단지 사실상 우연히 거기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 즉 하나의 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도 이러한 생명체인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실존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옛 여인 아니를 만나게 된다. 그녀도 이제는 그 실존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가 꿈꾸던 완벽한 순간을 단념한 채, 단지 살아 있는 고독하고 비만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기집필을 포기하고 부빌을 떠나 파리도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가까운 날에를 들으며, 소설을 집필하는 행위가 부조리와 대항하는 정당한 방법임을 알고 또다시 새로운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된다. 즉, 모든 존재에는 존재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깊은 절망에 사로잡히나, 소설을 쓰는 것이 하나의 구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면서 이 소설을 끝맺는다.


f.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부빌이라는 가공의 도시를 중심으로 역사학자인 앙트완 로캉탱의 일기형식을 빌려 쓴 작품이다. 그는 바닷가에 널려 있는 조약돌이나 문의 손잡이 따위 등에도 구토를 느끼는 인물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간의 내면의식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이다. 그는 또 외계의 사물이나 인간에게서 자신이 느끼는 현실을 토해버리고 싶은 진한 구토감을 일기에 상세히 기술한다. 여기서 구토란 바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이 어떠한 존재 이유도 없이, 나아가 존재의 의미마저 없이 다만 사실상 그곳에 존재하는 여분의 것 이라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징표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궁극적으로 그가 찾아낸 이러한 인간의 절망감을 해소하는 방안이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희미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겪게 되는 어둠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원의 희망을 품는다. 음악은 물질성이 전혀 없는 순수존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구체적인 사건에는 관심이 없고 주인공의 인식의 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카뮈는 사르트르가 삶의 추함을 과장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에로틱한 대목들이나 여성을 죽은 뱀의 가느다란 입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소름끼치는 표현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사르트르의 삶에 대한 고발의 힘을 인정했으며, 인물과 길거리들의 독특한 냄새와 같은 그의 관찰의 신기함과 정확성을 인정했다. 그들은 또한 별 차이가 없는 나날 속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우둔함과 걸음걸이를 느꼈거나 보았다. 여기에 집요하게 들려오는 하나의 새로운 목소리가 있다고 그들은 동의했던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우리가 읽어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시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이 서로 혼합되어 있는데, 현대작가들 사이에서 이 작품은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꼽히고 있다.  구토는 사르트르가 주장하고 있는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이 실존과 존재의 부조리 및 삶의 형태를 비롯한 인간의 깊은 절망감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g.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세기적 계약결혼

20세기 대표적 지성들인 이들의 계약결혼은 사르트르의 제안으로 우선 2년간 살아보고, 좋으면 재계약한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졌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아 자식도 두지 않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혼 모델이었다. 공동생활의 이점은 취하되 단점은 버리는 가운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50년 동안 확고한 애정관계를 유지했다. 둘은 작품활동에서나 사회활동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는데, 그들은 생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서로가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들이 평생 동안 한지붕 밑에서 잔 것은 딱 하루뿐인데,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면 그날 일은  우연한 사고였다고 한다.



C10 –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 플로베르(Gustove Flaubert, 1821-1880)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a. 작가: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한 여인이 이상을 갖는데서부터 환멸과 절망에 빠지는 과정까지의 내용을 정확한 작품구성과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했다. 낭만적인 환상에 빠진 한 여인이 남편 아닌 남자와 사랑을 하다 결국 파멸하고 자살에 이른다는 진부하기조차 한 소재로 플로베르는 당대의 부르주아 사회와 그 사회가 양산해낸 인간유형을 일체의  로마네스크한 요소를 제거하고 너무도 산문적 으로 보여주고 있어, 작가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사실주의 소설의 한 전범으로 간주되고 있다.


b. 생애와 작품활동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오직 하나뿐인 올바른 낱말을 고집하며, 동의어를 부정했고, 작가는 작품의 어디에도 존재하나 어디서도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며 철저한 객관성을 추구했던 작가 플로베르. 그는 명의로 소문난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낭만적이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병원의 부속건물에서 태어나 자란 관계로 인간의 생사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서 자연현상에 대해서 냉정하고도 깊이 있는 관찰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0세에 희곡을 창작하기도 했고, 그 희곡으로 친구들과 같이 연극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방면에 놀라우리만큼 조숙했다. 18세에는 부당하게 퇴교당한 급우를 구제하는 운동에 앞장섰다가, 자신도 퇴학을 당하게 되어 집에서 입학시험공부를 하여 파리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강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대부분 고향에서 빈둥거리며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열중했다. 24세경에는 신경증 발작으로 법률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에 몰두하면서 문인들과 사교를 넓혀갔다. 25세 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도중 부뤼겔의 그림 성 앙투안의 유혹 에 감명을 받고 같은 제목의 작품을 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가정적으로 불행이 닥쳐와 그가 존경했던 아버지가 죽고, 곧 이어 사랑하는 여동생이 산욕으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조카딸 캐롤린과 함께 외부세계를 외면하면서, 고독하고 침울한 가운데 작품 쓰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열 살 연상인 여류작가 루이즈 콜레와 깊은 관계를 잊고, 플로베르 자신의 문학관이 피력된 많은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친의 제자 중에는 들라마르라는 의학도가 있었다. 그는 의사면허를 얻은 후 노르망디의 벽촌에서 개업하고, 델핀이라는 아름답고 재능있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런데 그녀는 평범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껴 애인을 두고 남편 모르게 돈을 빌려 쓰다 음독자살을 한다. 아내의 부정을 안 들라마르는 비탄 끝에 그녀를 따라 죽는다. 이것은 들라마르 사건 이라하여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이었다.

플로베르는 당시 성 앙투안의 유혹을 완성하고 친구인 브이에와 뒤캉에게 작품평을 부탁했는데, 졸작이므로 불에 던져버려라 라는 평을 받는다. 실망한 플로베르는 뒤캉에게  들라마르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 뒤캉과 함께 18개월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점차 낭만과 이념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문을 돌려, 보바리부인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1851년 여행에서 돌아온 플로베르는 크로아세에 틀어박혀 하루 평균 12시간씩 이 작품에 매달린 끝에 5년 후에 완성을 보았다. 이 소설이 <파리>지에 연재되는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다가, 1857년 풍속문란과 종교모독 등으로 기소되었다. 결국 승소하였으나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 책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렸고, 이 작품으로 그는 프랑스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지위를 확립했다. 이어서 성 앙투안의 유혹의 제2고, 살람보 성 앙투안의 제3고 등을 완성한다. 1878년 말  부바르와 페퀴셰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모파상과 함께 프랑스 북부해안을 여행하고 나서 계속 집필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뇌일혈로 급사했다.


c. 리얼리즘 문학과 플로베르

183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세계의 지배적인 문예사조는 리얼리즘이었다. 고전주의는 이제 완전히 후퇴하고 로만주의(낭만주의)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기서가 두드러지게 약화되었다. 1870년경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한편으로 자연과학의 발전과 철학적 합리주의 경향에 호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짙은 감상주의로 타락한 낭만주의에 반발하였다. 

그럼으로 리얼리즘의 특징은 #1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상에 대해 반대했다는 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연적 선과 자연의 신성함을 믿었다. 그들은 현실을 도피하여 과거속에서, 이국적 배경속에서, 스스로의 상상 속에서, 아름다움과 위안 그리고 흥분을 찾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서적 이상에 비추어 생활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리얼리즘 작가들은 실제로 본 것을 충실하게 묘사하여, 사실을 미화함이 없이 인간의 경험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표현하려 하였다.

#2리얼리즘은 심리문제 또는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작가들은 인간행위의 상충하는 경향들을 상세히 분석하였으며, 환경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투쟁을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문학작품은 이와 같은 깊은 사회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일종의 고발문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3리얼리즘 작가들은 대개 당시의 유행하는 과학이론 내지 철학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 작가들은 인간이 환경과 유전의 희생물이라는 결정론의 입장을 취하는가 하면, 다른 일부 작가들은 인간의 본성이 대체로 짐승과 같은 선조로부터 물려 받은 동물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진화론 에 동조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일부 사람은 사회개혁의 정열에 불타서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악과 불평등을 규탄하는 작품을 썼다. 

이와 같은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징조는 먼저 프랑스에서 나타났다. 특히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 등은 새로운 문학사조를 대변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중에서도 리얼리즘의 전통을 정확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가가 플로베르였다. 그의 걸작 보바리 부인은 인간의 향락에 관한 냉철한 분석으로, 낭만주의적 꿈과 현실과의 괴리를 보여줌으로써, 낭만주의적 생활철학의 부적당함을 비판한 작품이었다. 비록 이 책이 외설적이라고 비난받고 작가가 부도덕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공격받았으나, 일부 문학평론가들은 그것을 근대문학상 최대의 소설 중 하나로 손꼽고 있는 것이다.


d. 주요 등장인물

사랑의 열정과 성도덕의 타락을 통해 당대 부르주아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엠마: 부농의 딸로 현실을 싫어하고, 몽상세계에서의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여인.

샤를 보바리: 엠마의 남편으로 평범한 의사.

레옹: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 청년으로 엠마의 정부.

로돌프: 유복한 생활을 즐기면서 여인들을 농락하는 호색한.


e. 작품의 주요내용

노르망디의 시골의사인 샤를 보바리는 엠마라는 시골 부농의 딸과 결혼한다. 그녀는 미션스쿨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상이 높은데다 소설을 즐겨 읽었으므로, 화려함에 대한 동경과 정열적인 낭만을 가슴 속에 품어왔다. 그런 엠마는 이웃마을의 의사로서 그저 호인이고 평범한 소시민인 샤를 보바리가 상처한 후, 그녀에게 청혼하자 그의 아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녀에게 환멸만 줄 뿐이었다. 단조로운 생활, 몰취미한 남편 곁에서 그녀는 공상만 일삼으며 점점 우울증에 빠져든다. 샤를은 아름답고 젊은 아내의 침울함을 걱정하여 보다 쾌적한 도시 용빌로 이사를 간다. 엠마는 그곳에서 순정을 느끼게 하는 레옹이라는 청년과 교제를 갖는다. 그러나 그가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자 마음이 공허함을 느낀다. 남자는 훨씬 자유롭다. 흥이 나는 대로 자기의 욕정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만든 법률이나 도덕에 얽매여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엠마는 어린애를 낳았지만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기에 위로를 얻지 못한다. 남자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마음대로 여행도 떠나고 마음껏 향락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의 운명은 남편과 가정이라는 굴레에 얽매인 채 사회적 관행과 여성 특유의 소심 때문에 활개를 쳐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엠마가 이러한 불만, 막연한 정열의 솟구침, 부도덕한 유혹의 심리적 갈등을 겪어낼 때에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 운명을 휘저어놓는다. 로돌프는 이 지방에서 비교적 유족한 생활을 하면서, 여인을 농락하는게 취미인 난폭한 호색한이었다. 그는 여인의 정숙이란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내로서, 아름다운 엠마를 아무렇게나 다루었다. 엠마는 다른 남자와의 접촉을 통해서 심신이 현격히 변모해간다. 차츰 정숙함이란 걸 잃어버린 엠마는, 로돌프와의 불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드디어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로돌프는 엠마의 탐스런 육체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올가미에 빠질 남자가 아니어서 매정하게 배신해버린다. 한번 터진 둑에서 쏟아지는 물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일까? 많은 덕성있는 사람들은 엠마의 한번 실수를 용서하며, 이런 실패를 거울삼아 정숙한 여인에로의 복귀를 희망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작가 플로베르가 그려내는 인물은 보다 더 실제세계 편에 선다. 이웃사람이며 이 세상 속물의 표본 같은 약제사 오메의 권유로 엠마는 오페라를 구경하러 갔다가 거기서 연정의 추억이 아련한 레옹을 만나, 또다시 정열을 불태운다. 순진했던 레옹도 이미 여인들과의 경험을 거친 후이기에 둘의 애정유희는 한층 노골적이다. 둘은 마차를 타고 교외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그 속에서 정사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탈선행위도 얼마 가지 못한다. 엠마는 낭비벽과 탈선에 소요되는 과다한 경비지출로 막대한 빚을 지고 파산에 이르게 되는데, 로돌프와의 관계를 유지하느라 그 도시의 악덕상인이며 중개업자인 뤼르에게 진 빚이 레옹과 접촉하는 동안에 더욱 불어난 것이다. 뤼르나 오메 등은 그녀를 둘러싼 부르주아 사회의 속악한 무리의 대표적 인물이다. 결국 재산이 차압되는 사태에 이르자 엠마는 창피를 무릅쓰며 로돌프에게 돈을 빌려보려 했으나 냉담하게 거절당한다. 헤어날 길 없는 절망 속에서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그때야 비로소 아내의 부정을 안 샤를은 절망과 쇠약으로 고민하다가 망처의 뒤를 따른다. 그후 약제사 오메 등을 비롯한 용빌의 부르주아들의 저속하면서도 평화로운 나날이 변함없이 계속된다.


f.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보바리 부인, 그녀는 바로 나였다고 실토한 플로베르의 말을 생각해본다면, 이 소설 속에서 그는 그의 이상과 좌절, 또한 그가 전부터 품고 있던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을 작품 전면에는 노출시키지 않고, 엠마의 절망과 그녀를 이토록 만든 부르주아 사회의 냉담한 객관적 묘사를 통해서 은밀히 노출시키고 있다.


f-1. 보바리즘

작품 속의 여주인공의 성향을 본따 보바리즘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는데, 이것은 철학자 쥘르 고티에의 주장으로, 현실적인 자아가 이상적인 자아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상적인 자아가 현실적인 자아의 덫에 걸려 숙명적으로 난파하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이 작품은 신문의 사회면을 확대한 것처럼 실제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주제를 배후에서 힘차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플로베르의 정밀한 객관적 사실수법이다. 원래 플로베르는 현실적이기 보다는 살람보 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낭만적. 유미적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그가 이 작품에서는 흘러 넘치려는 자기의 감정을 극력 억제하고, 이 마을을 몇 번이나 실제 답사까지 하여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다음, 이것을 바탕으로 들라마르 사건 에 나온 인물이나 장소를 사실에 가깝게 재현했다. 작가는 여주인공 엠마의 동경과 환멸을 중심으로 남편 샤를의 범속함, 약제사 오메를 비롯한 주위의 어리석은 부르주아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엠마의 비애는 플로베르 자신의 염세관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며, 스토리 전체는 단순한 통속적 사건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시대와 인간에 공통된 인간적 진실을 지닌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플로베르는 이것을 묘사하는데 있어 임상학적 입장에 서서, 과학자와 같은 엄정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것은 그가 부친에게 물려받은 의학자의 혈통 때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f-2. 정선된 언어구사

객관적 수법과 함께 이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의 문체일 것이다. 그는 진실을 표현하는 말은 단지 하나밖에 없다고 믿고, 매일밤 프로아세의 서재에서 한 줄의 문장을 쓰는 데 몇 시간을 소비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이렇게 정선된 말을 다시 저자 자신이 몇 번이고 낭독한 다음, 추고를 거듭한 결과 다른 것에는 유례가 없는 면밀하면서도 생동하는 독특한 리듬을 가진 문체를 창조하게 되었다.


f-3. 사실주의 작품

이 작품의 출판 직후에는 찬반이 엇갈렸으나 후세의 비평가들은 대체로 문학성을 인정하였고, 19세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 의의이다. 그가 보바리 부인을 쓸 때의 태도는 대단히 순수하고 성실했으며, 문장을 구성하는 데 있어 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소설이 갖는 산문예술로서의 의의를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며, 예술을 위한 생활을 작가가 몸소 실천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종래의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며, 사실주의의 승리를 초래케 한 요인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보바리 부인을 프랑스 근대소설의 기원으로 보는 이유이다. 그는 발자크의 사회적 사실주의의 뒤를 이어 예술적 사실주의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졸라의 과학적 사실주의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소설은 사실주의 작품이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는 데 힘쓴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C09 –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 스탕달(Stendhal, 1783-1842)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1830년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프랑스의 1830년 7월 대혁명 직전의 지배자 교체에 따른 격동의 시대에, 한 평민 청년의 야심을 통하여 귀족. 승려. 대부르주아의 3자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사회의 반동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심리학과 역사철학의 연구서다. 주인공 쥘리맹 소렐이 가진 야심의 좌절과 옥중에서 성취되는 그의 내면적 구제를 통하여 역사를 통찰하는 작가의 리얼리즘과 그 역사를 넘어서는 낭만주의가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Arrigo Beyle, Milanese, Scrisse, Amo, Visse.). 전자는 로마의 영웅인 시저가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로마에 보낸 전보의 내용이고, 후자는 스탕달의 유언에 따라 몽마르트 언덕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그의 묘비명이다. 스탕달은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소설가로서, 발자크와 함께 근대소설의 개조로 불리며, 문필활동 외에도 나폴레옹 시대에 군인. 외교관을 지내고 수많은 연애편력으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파란이 많았다.

본명은 마리 앙리 베일레(Marie-Henri Beyle).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 베일레의 정신생활은 매우 특이해서, 어머니를 열애했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는 자서전의 한 구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를 7세 때 잃었다. 아버지와 그 친척인 셰라피 아주머니, 가정교사였던 랠란 신부 등 세 폭군을 평생 동안 싫어한 반면, 외가 쪽 사람들은 좋아했다. 특히 그가 진정한 아버지로 생각했던 외조부는 그에게 18세기의 합리주의적 사상을, 외숙부는 돈 주앙적(쾌락주의적) 인생관을, 외종 조모는 고매한 영웅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는 17세에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그곳에서 자유와 사랑. 쾌락. 미와 음악을 알았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그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그는 19세부터 문학수업에 정진, 22세부터는 여배우 멜라니와 동거하면서 수입 식료품상의 점원, 27세에는 나폴레옹 제정에 참가, 29세에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에 종군, 나폴레옹이 몰락한 31세부터는 문필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는 휴직 군인, 38세에는 사랑에 빠지나 계속적인 실연, 43세에 작가생활, 48세에 다시 관직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영사를 지내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소유했다. 35세에 알게 된 메틸드 덴보스키는 생애 최고의 애인이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경험으로 연애론 을 탄생시킨다. 

1814년(31세),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한 그는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문필활동을 계속한다. 1821년 이탈리아로부터 추방당하여 영국을 여행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영국여행에서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었고, 파리에서는 사교계에 출입하여 르라크루아, 메리메 등과 사귀었다. 왕정복고하의 파리에서 그는 실의에 빠진 문단의 방랑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몇몇 작품을 쓰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적과 흑(1830)은 그의 대표작이었지만, 발자크와 소수의 독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었다. 기나긴 불우한 생활이 끝나고, 1830년 7월혁명과 더불어 반동정치가 붕괴됨에 따라 그는 오랫동안 숙원이던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보사상과 자유주의는 곧 오스트리아 당국의 경계를 받게 되어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협의로 축출되었다. 그후 10년 동안을 교황령의 소항구인 치비타 베키아영사로 주재하면서 권태롭기 이를 데 없는 세월을 보냈다. 차츰 노쇠를 자각하고 고독을 느끼기 시작하여 몇 차례에 걸쳐 결혼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한 권태기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파리로 돌아오거나, 영국여행을 하며 에세이류를 집필했다.

1839년 단시일에 명작 파름의 수도원을 탈고했는데, 그는 생전에 문명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단 두 편의 소설로써 백 편이상을 쓴 발자크와 비견할 만한 자리를 문학사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위고, 발자크보다 더 많은 애독자를 가졌고, 보다 더 현대인에 가까운 선구적인 천재로서 각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는 동시대의 냉담과 몰이해에 대해서 끝까지 경멸했으며, 자신의 굳은 신념을 잃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메리메는 시종일관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특히 1840년에 발자크는 스탕달을 찬양하는 기사를 발표하여 문인으로서 불우했던 그에게는 더없는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도 만년에 이르러서는 연애와 방랑 속에서 추구하던 행복의 획득 에도 지치고, 고독의 무게를 덜 길이 없어, 자기가 기르던 두 마리 개에게 애정을 쏟으며 삭막한 만년을 담담하게 살아갔다.

1841년 요양차 파리에 머물다 이듬해 거리에 쓰러진 채 사망, 몽마르트르 언덕에 안장되었다. 사망 당시 주머니 속에는 나는 백년 후에나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예언대로 당시 언론은 그의 죽음을 철저하게 외면했으나, 19세기 말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세인들은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었다.


b.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

b-1. 시대적 배경

이 작품은 프랑스 역사상 1814-30년 사이의 루이 18세와 샤를 10세에 의한 왕정 복고기라는 시대적 배경하에 씌어진 작품이다. 1799년부터 1814년까지의 유럽사는 프랑스 역사, 특히 나폴레옹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는 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곧 1799-1804년의 공화정시대와 1804-1814년의 제정시대다. 전자는 나폴레옹이 제1집정관으로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보존하면서 프랑스를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강화한 시대이며, 후자는 나폴레옹이 정치체제를 주로 군사력으로 유지하며 전쟁. 정복. 동맹이란 수단에 의해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한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은 주권재민. 국민개병. 국민교육제도. 애국심. 대의제, 특히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유럽 각지에 전달하였고, 그 반응은 심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폴레옹은 자기가 정복한 국가 안에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씨를 뿌림으로써 마침내는 자기자신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 대한 대륙봉쇄령, 각국의 저항운동, 러시아 전쟁의 실패, 유럽 각국의 해방전쟁으로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프랑스 혁명중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왕정 이 부활되었다. 망명귀족들이 속속 귀국하여 혁명 이전의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였고, 왕은 무능하여, 많은 사람들은 물러난 지 9개월도 안된 나폴레옹을 동정하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에 자극받은 나폴레옹은 재집권의 뜻을 불태워 에바 섬을 탈출, 군중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파리에 입성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여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는 막을 내린다. 이후에도 부르봉 왕가의 원정은 1830년 7월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적과 흑은 이러한 왕정복고의 후반기, 샤를 10세 시대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b-2. 문학세계

소설가 스탕달의 공적은 근대소설에서 사실주의의 한 형태를 수립했다는 점에 있다. 적과 흑의 부제인  1830년 연대사가 암시하는 대로 작가는 프랑스의 현실묘사를 과제로 했다. 이것은 인간은 이제 소설을 통해서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성찰과 소설, 그것은 거리에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울이다 라는 그의 유명한 경구에서 확인된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발자크의 소설처럼 사회전체의 파노라마를 묘사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 한사람의 주인공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많다.

스탕달의 거울은 시대와 사회를 비추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주인공이라는 렌즈를 통해서였다. 작품 중에서 내적 독백을 많이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창작 노트에서 풍속의 묘사는 소설 중에서 재미없는 것이다. 묘사를 놀랍게 바꾸는 것이 좋다. 묘사는 하나의 감정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현실에 직면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신속하게 글로 옮긴다는 것이 스탕달의 창작의 최대 비밀, 즉 심리적 사실주의의 뼈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 안에서 특권적인 렌즈에 지나지 않는 스탕달의 주인공은 작가의 이상화된 모습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작가 자신의 내면의 모순과 명민을 지향하면서도 감성의 발작에 발이 걸려 넘어진 실패의 패턴은, 작중인물에서 조금도 완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소설의 줄거리는 대부분 주인공의 실패에서 그 원동력을 얻는다. 주인공에 대한 야유 또는 주석이라는 형태로 가끔 나오는 작가 개입의 기법, 내적 독백의 다양함, 인물의 놀람을 표현하기 위해 원인을 빼고 결과만을 서술하거나, 반대로 결과를 생략하는 도약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는 심리적으로는 매우 사실적인 서술법과 여러 비연속적 수법으로 자신의 소설을 구축해갔다. 발상과 수법의 참신함 때문에 생전에 많은 이해는 얻지 못했지만 죽은 뒤 그의 작품은 점차 폭넓은 독자를 획득하였다.


c. 주요 등장인물

이 작품은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사랑보다, 내적인 자아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아울러 위계화된 사회의 모순과 부당성을 폭로하고 좀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염원을 불러일으킨다.

쥘리앵: 지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귀족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는 비련의 인물.

레날 부인: 읍장의 부인으로 귀족적인 삶에 예속된 남편을 버리고 쥘리앵을 사랑하다, 오해로 그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여인.

마틸드: 라몰 후작의 딸로 창백한 귀족을 싫어하고 쥘리앵을 사랑하는 여인.


d. 작품의 주요내용

이 작품은 작자의 고향인 도피네 지방에서 1827년에 일어난 베르테 사건 에 토대를 두고 있다. 미남 청년인 베르테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서 미슈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런데 미슈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이번에는 코르동가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도 그 집 딸과 문제를 일으켜 쫓겨났다. 출세길이 막힌 그는 분노와 질투로 미사중인 미슈 부인을 피스톨로 저격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는 사형을 당했다. <법정> 신문에 연재된 이 사건의 기록을 보고 베르테를 쥘리앵으로, 미슈 부인을 레날부인으로 하여 이 소설을 썼다.

주인공 쥘리앵은 목재상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난폭한 아버지와 두 형에게 학대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그의 연약한 몸과 섬세한 외모의 그늘에는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탐욕스런 지배계급에 대한 끈질긴 증오가 숨어 있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숭배자로 노사제 셸랑 신부에게 접근하여 라틴 어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부가 되려고 결심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하던 시절에는 빈민도 재능이 뛰어나면 출세할 수 있었지만, 왕정복고 시대에는 성직자만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제의 추천으로 시장 레날 씨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레날 부인은 신앙심이 두터운 정숙한 부인이었는데, 남편이나 남편의 동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진한 청년의 인품에 감동하게 되고, 격렬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쥘리앵은 처음엔 그녀를 경계했지만, 무례한 레날 씨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부인과 친하게 되고, 나중에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부인도 쥘리앵이 신분은 낮지만 의연한 태도와 인품에 있어서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숨은 영웅을 만난 듯 대한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그녀는 곧 자기가 노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여 쥘리앵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다. 한편 쥘리앵은 그토록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실연의 괴로움에 부대껴 그녀의 사랑을 되찾는 데 온 정력을 쏟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레날 씨는 그를 더이상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다시 쥘리앵은 부장송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피라르 신부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는 피라르 신부의 추천으로 파리에 있는 라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후작의 딸인 마틸드는 기품이 높은 여성으로 사교계의 창백한 귀공자들을 경멸하는 여성이었고, 좀 별난 쥘리앵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밀회를 청하게 된다. 쥘리앵은 마틸드를 정복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증오가 섞인 묘한 연애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마틸드가 임신을 하게 되자 후작은 하는 수없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여, 쥘리앵은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때 쥘리앵의 과거를 폭로한 레날 부인의 편지가 날아들어 모든 것은 끝장이 나고 만다. 화가 난 쥘리앵은 성당에 있던 레날 부인을 저격하여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옥중에서 그는 레날 부인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고, 자신을 진실로 사랑한 여인은 레날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미련없이 단두대에 오른다. 쥘리앵은 세상에서 흔히 불리어지는 식의 단순한 출세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항상 자기의 존엄을 중히 여기고 그러한 자기를 긍정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정신적인 귀족이다. 그러니만큼 그는 최후의 순간에서도 고고한 마음으로 단두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물질보다 정신세계에 사는 시골청년 쥘리앵은 가정교사로 들어가 시장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파리에 가서는 후작의 딸 마틸드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쥘리앵은 이 두 여성을 대상으로 사랑의 꿈을 추구함으로써 자기가 멸시하는 지배계급에 대하여 복수하고 있다. 레날 부인에 대한 사랑도 따지고 보면 레날 시장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레날 부인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쥘리앵을 사랑함으로써 행복감에 젖는다. 신앙심. 정절. 모성애 때문에 자책하면서도 쥘리앵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때문에 내심의 갈등을 안고서도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으로 쥘리앵을 대한다. 쥘리앵은 이 괴로워하는 여성에게서 영혼의 위대성을 발견한다. 그는 후에 마틸드와의 사랑의 체험을 통해서 레날 부인의 참된 사랑의 추억을 되살려내는데, 독자들은 이 작품에 나타난 쥘리앵의 두 번의 연애과정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행복추구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쥘리앵과 마틸드는 연애관계는 호감보다는 반감에서 시작되고, 두 자존심의 상극과 친화력으로서 나타난다. 즉 마틸드는 머리로서 사랑하는 여성인 데 반해, 레날 부인은 가슴으로 사랑하는 여인으로 대립된다.

살해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쥘리앵은 감옥 속에서 사회와 자기를 대립시키면서 살아온 자기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도 아직 위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는 말로  있는 그대로 자기를 보지 못하고 위선에 빠져 있는 자기를 비판한다. 쥘리앵은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사회적 존재일 때는 날카로운 이성의 소유자이고 유물론자이며 반항자이지만, 자기자신과 대면할 때는 자신이 진실하게 살지 못하고 참된 사랑을 저버린 것을 후회하는 인간인 것이다.

쥘리앵의 생애는 이처럼 외면적. 물질적 행복, 파리. 미녀. 지위. 명성. 돈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되어 외부와 격리됨으로써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행복에 도달하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에서는 한 개인의 행복추구라는 문제와 특정한 시대환경을 살면서 겪는 인간의 본질적인 과제인 자아문제에 대한 작가의 훌륭한 고찰이 엿보이고 있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그는 이 작품에 1830년대사라는 부제를 달아놓고 있는데, 이것은 왕정복고 시대에 대한 그의 정치적 견해가 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음을 뜻한다. 열렬한 나폴레옹 숭배자였던 그는 나폴레옹 실각 후 귀족. 성직자. 중산계층의 3자가 좌지우지하는 왕정복고 시기의 정치적 현실을 철저하게 비판했다.


f.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주인공 쥘리앵은 사회에 저항하다가 그 대가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현실주의자로서 작자의 관점이 있으나, 낭만주의자로서의 작자는 비극의 쥘리앵을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위선에 젖어버릴 수 없는 순결한 심정과 불굴의 의지, 또 거기에 존재하는 총명함과 행운을 가지고서도 도리어 불행한 최후를 마치지 않으면 안되는 주인공을 설정함으로써 작자는 오히려 프랑스 당시의 사회풍조를 매섭도록 비판하고 잇는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비속한 독자에 대한 경계심과 타고난 수치심에서 간결하고 비정한 문체를 쓰고 있음을 아울러 알 수가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하류계층 출신이지만 재능이 뛰어나고 야심에 불타는 한 청년의 성공과 좌절의 이야기를 통해 왕정복고 시대의  암흑기를 묘사한 소설로, 작가의 대표작인 동시에 사실주의의 선구로 평가되고 있다.  심리소설 의 걸작으로서 정평이 나있으나, 부제가 암시하듯 사회소설. 정치소설로서의 측면도 있다. 시대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였지만 발자크 풍의 사회조감도와는 달리, 명석하고 냉철하게 그리고 위선을 무기로 출세와 영달을 위해 사회와 맞서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양심과 감수성에 굴복하게 되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주관적 사실주의의 구현이다. 책 제목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적은 제정시대의 영광을, 흑은 왕정복고시대의 암울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작가는 평소 정력을 예찬했다. 이 정열 예찬은 그로 하여금 나폴레옹과 16세기의 이탈리아를 좋아하게 했다. 한 개인 속에 가장 많은 정열이 응집된 모델을 나폴레옹에게서 보고, 열광적인 정열의 나라를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 묘사된 주인공 쥘리앵의 정열과 반항은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상을 동경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야심에 찬 19세기 청년의 한 모습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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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의 프랑스[편집](출전:위키피디아)

 이 부분의 본문은 근대 초기의 프랑스입니다.

위그노 전쟁[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위그노 전쟁입니다.


위그노 전쟁.

16세기 후반 무렵, 프랑스의 개신교신자들인 위그노와 기존의 로마 가톨릭세력들간에 대립이 격화되어, 위그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무려 36년간에 크고 작은 전쟁이 격렬해져갔다. 그러던중 위그노 세력의 지도자인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즉위하여 종교간의 대립을 중재하고자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낭트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은 종결된다. 이후 앙리 4세는 국내산업을 진흥시키고자 해외진출등 추진에 힘을써 프랑스의 왕권강화, 즉 절대왕정의 기초를 마련한다.


절대왕정 시대[편집]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강력한 절대군주제와 왕권의 강력통치를 위해 관료제와 상비군 체제를 정비하여 재정확보를 위해 장바티스트 콜베르를 중용하여 중상주의경제 정책을 실시해나아간다. 그럼에따라 프랑스는 국내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해외무역을 장려하여 국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등에 참전하는등 대외 팽창정책으로 유럽의 강국으로 변하여 갔다. 그렇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짓느라고 지나치게 많은비용을 소비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칙령을 폐기함으로써, 상공업에 주로 종사하던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로 대거이주하게 된다. 이후 국력이 크게 소요되고, 루이 14세의 말년에는 국력이 서서히 약해져 가면서, 이후 프랑스는 전쟁,대외정책에 너무 무리하게 많은돈을 쓰는바람에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과 제1제정[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제1제정, 나폴레옹 전쟁입니다.

프랑스 대혁명[편집]

배경[편집]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구제도의 모순이 심화되어있었다. 구제도 아래에서 제 1신분인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은 여전히 면세특권을 비롯하여 봉건적 특권을 소유하고, 제3신분인 평민만이 모든 재정적인 부담들을 안고있었다. 여기에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재정상태는 사치스러운 궁정생활과 미국의 독립전쟁등 대외 전쟁 자금비용에 쏟아부을대로 쏟아부어서 파탄 상태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귀족들은 면세특권을 주장하여 재정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사회적 대립과 함께 루소같은 계몽사상가들의 혁명사상이 시민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미국의 독립혁명 소식도 이들을 크게 자극하였다.


전개[편집]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감옥

장 피에르 루이 로렌트 휴엘, 수채화, 37,8 x 50,5 cm, 1789년 작.

재정문제가 심각해지면서 1789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1614년이래로 단 한번도 소집하지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하였다. 삼부회에서 특권신분과 평민층의 대립으로 파행을 치닫다가 제3 신분 대표들끼리 독자적으로 테니스 코트선언을 하여 국민의회를 구성하게된다. 이에 국왕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탄압하게 되는데, 이때 파리시의 시민들이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국민의회는 서둘러 봉건제의 폐지를 선언하였고, 이어서 프랑스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혁명의 기본이념을 천명하였다. 국민의회는 1791년 입헌 군주제와 제한선거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고 해체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헌법에 의해 소집된 입법의회가 탄생하였는데, 혁명에 온건파세력인 지롱드 당이 주도권을 장악하였는데, 1792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프랑스 혁명에 간섭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와중에 파리시민들이 왕궁을 습격하여 국왕과 왕비를 잡아가둬 왕권이 정지되었고, 입법의회가 대외적,대내적으로 미온한 태도를 보이면서 곧 해산된다. 1792년 9월에는 국민공회가 소집되었다.



처형되는 루이 16세

국민공회는 강경 혁명파인 자코뱅 당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화정을 선포하고, 1793년 1월 21일 국왕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공개처형식을 하는 등 유럽전역에 충격을 주었다. 1793년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국내의 반혁명 세력들을 처형하거나 탄압하고, 봉건적 공납의 무상폐지등 급진적인 개혁등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지나친 공포정치에 대한 반발로 인하여 로베스피에르는 1794년 7월 28일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다시 온건파 지롱드 당 세력들이 장악하게 된다.


1795년 입헌 공화정과 제한선거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여 5인의 총재가 협의하여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는 총재 정부를 구상하였다. 하지만, 총재 정부는 재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고위층들의 무능과 부패함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게 된다. 결국, 나폴레옹이 이를 이용하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통령 정부를 세우게 된다.


프랑스 제1제정[편집]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799년 나폴레옹은 쿠테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통령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이어서 철저한 중앙 집권 정책을 추진하고 언론과 사상을 통제하여 독재권력을 확립하였다. 그는 대내적으로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고,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여 혁명의 성과를 정착 시켰으며, 대외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을 격파하고 영국과 타협하여 정권을 안정시켰다. 이렇게되자, 그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게되고, 나폴레옹은 독재에 야망이 커져 종신 통령이 되었다가, 1804년 국민투표에 의해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여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제1 제정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편집]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1 제정이 시작되었고, 이에 오스트리아,프로이센등은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여 나폴레옹에 대항하자, 나폴레옹은 이들 국가와의 전쟁에 나섰다. 나폴레옹은 해전에서 영국 넬슨 제독한테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를 겪었으나, 육전에서는 오스트리아를 무너뜨리고 빈껍데기뿐인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켰으며, 프로이센과 러시아 제국을 굴복시켜 유럽대륙을 제패하였다.


유럽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폴레옹이었지만, 오직 영국만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1806년, 영국과 유럽대륙간의 무역을 금지하는 이른바 '대륙봉쇄령'을 내리게 된다. 이 대륙봉쇄령은 성과를 거두지못하고 오히려 몰락의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1812년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비밀리에 무역을 했던 러시아 제국을 응징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대원정길에 나섰지만,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등으로 참패를 하였고, 뒤이어 대프랑스 동맹군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격렬하게 맞붙어 패전함으로써 제1제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고, 유배생활중 나폴레옹은 다음해에 엘바 섬에 탈출하여 재기를 꾀했으나,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다시 크게 패하여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각지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주의가 전파되고 크게 영향받아 민족주의 의식이 각성되게 된다.


왕정 복고와 제2제국[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부르봉 왕정복고, 프랑스 7월 혁명, 7월 왕정, 프랑스 2월 혁명입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7월 혁명때 그린 그림이다.

1814년, 나폴레옹 1세가 실각함에 따라 프랑스 제1제정이 몰락하고, 유럽에는 빈체제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따라 프랑스 혁명으로 멸망한 프랑스의 기존왕실인 부르봉 왕가가 복귀하여 루이 18세가 국왕으로 즉위한다. 그렇게됨으로써 프랑스는 혁명이전과 다름없는 궁정정치를 하게되었지만, 루이 18세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하여 노동자나 농민등 하층민들에 대해서 온건 정책을 취함으로써 국내 안정을 도모했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 시절의 자유주의 사상도 제한적이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해 주었다.


그러나, 루이 18세가 사망한뒤 샤를 10세가 왕이되면서 자유주의,평등사상의 혁명정신과는 달리 선거권 제한과 로마 가톨릭의 복권 등 반동적인 정책등 특권정치를 펴게된다. 1830년7월 국민들은 이에 봉기를 하여 샤를 10세를 국외로 쫓아내게 된다.


이어서 자유주의사상과 평등주의 사상에 입각한 루이 필리프 1세가 국왕으로 즉위(1830년)한다. 루이 필리프는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는 등 나름 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게 되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바램과는 달리 몇몇 세력있는 부르주아(자본가)계층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특권정치를 부여하게되자, 1848년 2월, 프랑스 국민들은 또다시 혁명 봉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국왕 루이 필리프역시 국외(영국)으로 도망간다. 그 이후 프랑스는 왕정복고체제에서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제 2공화정과 제2제정[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프랑스 제2공화국, 프랑스 제2제정입니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 3세

2월 혁명이후, 1848년 제 2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이 나폴레옹[2]은 쿠테타를 일으켜 독재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는 1852년 국민투표로 황제로 즉위하여 나폴레옹 3세라 칭하면서 제 2제정을 열었다.



보불전쟁.

그가 즉위하자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그의 황제 등극을 열렬히 축복했으며, 프랑스가 다시금 유럽의 지배자로 우뚝 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의 기대대로 나폴레옹 3세는 전임 왕들의 폐단 정리와 내정개혁을 단행하고 대외 팽창을 통해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할려 했으나,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나폴레옹 3세는 포로로 잡히는등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 뒤 패전국이 된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독일 제국에게 넘겨주게 되었으며, 독일이 프랑스에 배상금인 50억 프랑을 요구하였으나 단 몇개월만에 이를 갚아 전 유럽과 독일, 그리고 비스마르크 수상을 놀라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독일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이후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에서 패한뒤 포로로 잡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자, 왕정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 있던 당시 프랑스 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파리코뮌 봉기[편집]


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이 부분의 본문은 파리 코뮌입니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의 패전 혼란속에 수도인 파리는 온갖 이념과 각종 정치세력의 대결의 장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으며, 더욱이 '야만인의 나라'이라고 무시했던 프로이센에게 점령당한 수치로 인한 파리 시민의 소요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이로 인해 당시 일반 시민들중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무리가 무장을 하고 봉기, 1871년 파리를 장악한후 3월 18일 그들만의 사회주의적 자치 정부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로 불리는 파리 코뮌이라 한다.


파리시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파리 코뮌을 수립하고 정부에 대항하였으나, 얼마못가 정규군에 의해 1871년 5월 28일 진압되었고, 이후 제 3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파리코뮌 봉기는 마르크스나 레닌등 사회주의 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제 3 공화정[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프랑스 제3공화국입니다.

프랑스는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에서 패배해 제2제정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를 내쫓고 1871년 아돌프 티에르 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을 수립했다.


같은 해에 일어난 코뮌주의자들의 반란을 진압하고(파리 코뮌) 해군을 함정정비에 대한 계획을 세워 해군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제3공화정 8대 대통령인 레이몽 푸앵카레 대통령 재임 중이었을 때 1914년 8월, 독일 제국이 프랑스에게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독일제국은 전쟁초기에 단숨에 프랑스를 정복할 거라 확신했었지만, 프랑스는 과거 1870년때의 보불전쟁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게 불타올랐기에 저항이 강했다. 그럼에따라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면서 전쟁의 양상은 참호전형식으로 장기전에 접어들었으며 또한 전쟁이 고착화되어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1917년까지 독일군과 대치 상황을 두고 지겹게 싸웠고 어느 한쪽 밀리지 않는 양상이 되었다. 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부으면서 독일군을 격파하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베르사유조약을 통하여 가혹하게 다뤘는데, 이는 프랑스가 전쟁을 두려워했었기 때문이었다. 이 베르사유 조약은 뒷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후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일어났을때 프랑스도 역시 불황의 늪에 시달렸었는데, 이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식민지들 하고 무역형식으로 하는 블록 경제체제로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편, 1930년대에 독일에서 나치스가 집권하고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국제연맹 탈퇴, 재군비선언, 라인란트 비무장 지대 점령,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주변나라를 합병하는 데에도 프랑스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제 2차 세계 대전[편집]


에투알 개선문에 진입하는 독일군

 이 부분의 본문은 비시 정부, 자유 프랑스, 레지스탕스, 프랑스 국내군,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입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이틀 뒤인 9월 3일 영국과 함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에 참전하였다. 1940년 5월 11일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스에 대한 전격 공격을 개시하면서, 베네룩스를 침공하게 된다. 그리고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점령당하고 본격적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해 6월 4일에는 영국군과 싸우던 됭케르크 전선에서 패함으로써 됭케르크 철수 작전을 펼치게 된다. 6월 14일에는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고, 결국 프랑스의 국가 원수인 앙리 페탱은 6월 22일 독일에게 항복을 선언한다. 프랑스 북부지역은 독일에 의해서 직접 통치되었고, 남부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앙리 페탱에 의해 통치되는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비시정부는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개인독재에 입각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하자, 드골은 몇 안되는 이들을 데리고 간신히 프랑스를 탈출, 영국에 망명정부를 두어서 독일이 세운 남부 프랑스 지역에 세운 괴뢰정권 비시 정부에 대항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프랑스에서는 이들이 결국 프랑스의 정권을 장악해 지금의 프랑스 정부를 만들었다.


1943년 7월 10일 미국과 영국군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고, 그해 9월 3일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프랑스를 되찾는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통해 프랑스 상륙에 성공하면서, 노르망디 지방을 되찾았다. 이후 코트다쥐르를 시작으로 한 용기병 작전도 이어지면서 연합군은 프랑스를 수복하기 위한 공세를 펼쳤으며, 1944년 8월 25일에는 자유 프랑스군 제2기갑사단을 선봉으로 한 연합군의 공격과 레지스탕스의 궐기로 파리가 해방되면서 완전히 수복하였고 곧 이어 자유 프랑스 정부가 파리로 귀환하여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다.


1945년 이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프랑스 제4공화국, 프랑스 제5공화국, 프랑스 1968년 5월 혁명입니다.

제4공화국[편집]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한때 임시 정부의 총리였던 드골은 전쟁 뒤의 총선거 뒤에 정당간의 협정에 실패해 하야했다. 그 뒤 제4공화국이 발족했다. 제4공화국 때의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나[3]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했다. 또한 8년간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과 그에 이어 계속된 알제리 문제등으로 내전의 위험까지 안고 있었다.


제5공화국[편집]

1958년 6월 국민의회에서 절대 다수의 신임을 얻은 샤를 드골은 12년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후 드골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한 새로운 헌법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에서 통과되자 1959년 1월 제5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된 뒤 알제리 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프랑스를 세계에서 네 번째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등 미국-소련이 세계를 분할해 지배하는 이른바 '냉전' 상황에서 드골은 '프랑스의 영광'을 회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프랑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프랑스 1968년 5월 혁명[편집]

파리 교외의 낭테르에 있는 파리 대학 분교의 문학부를 1968년 5월 3일 대학 당국이 폐쇄했다. 1967년 11월부터 이 학교에는 시설 개선을 둘러싸고 급진파 학생과 대학 당국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1968년 3월 22일 '빨강 머리 다니'라는 애칭으로 일컬어지던 콩방디를 지도자로 하는 학생 그룹이 대학 당국의 금지령을 어기고 학내 집회를 열었고, 이에 대해 대학 당국은 경찰을 불러들여 유혈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5월 2일에 분교를 점거했고 이것이 분교 폐쇄로 이어졌다.


콩방디의 처분을 둘러싼 조사가 본교(소르본)에서 열렸지만, 본교 당국은 다시 경찰을 불러들였다. 항의하는 무리에 마침내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해 경찰과 충돌을 벌였다. 그리하여 학생 약 600명이 체포되고 본교도 폐쇄됐다. '3.22'운동의 결과, 1907년에 결성된 '프랑스 학생 전국동맹(UNEF)'도 지원을 강화했고, 학생 시위도 더욱 격렬해졌다. 5월 11일 오전 2시, 카르티에라탱 거리에는 학생 시위대와 경찰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학내 처우 개선 요구에서 비롯된 3.22 운동과 5.3운동은 학내 문제에 머물지 않았고 대학 교직원 조합, 노동 총동맹 들을 끌어들여 드골 정권을 뒤흔드는 전국 규모의 파업으로 발전했고, 이 시위로 드골 정권이 무너졌다.


C08 –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록 허드슨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절리 알려진 이 작품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종교. 문화. 역사가 그 의미를 상실한 20세기 초 미국의 뿌리 잃은 세대의 비극적 삶을 다룬 헤밍웨이의 대표적 소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경험을 토대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펼쳐진 미군중위와 영국 간호사 사이에 피어난 비극적 운명의 사랑을 묘사함으로써, 전후 젊은 세대의 상실감과 허무주의를 그려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가인 헤밍웨이는 미국의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신앙심이 돈독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내성적인 어머니보다는 야성적인 부친을 닮아 고교시절에는 축구. 육상. 권투 등 모든 스포츠를 즐겼고, 한편으로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셰익스피어. 디킨스. 스티븐슨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 무렵 시카고에서는 라트너라는 작가가 미국 중부지방의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간결한 문장, 스토리의 빠른 전개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헤밍웨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라트너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고교를 졸업하던 1917년, 미국은 제1차대전의 참전을 위해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지원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와 시력장애로 단념해야 했다. 곧 이어 <스타>지의 기자가 되어 뜨거운 종군열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한다. 밀라노 전선에서 전쟁의 실상을 처음으로 체험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진흙탕 속을 달리는 병사와 피난을 떠나는 난민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1918년 7월에 부상을 입어 영웅적 행위에 대해 훈장을 받고 밀라노에 입원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적십자사의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연상인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거절한다. 그 일은 19세 청년인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결국 무기여 잘 있거라 의 모티브가 된다. 

파리 특파원 시절, 현지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 등 일류문인들에게 간결한 문장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문장수업을 받았다. 1925년 우리들의 시대 가 출판되는데, 이 작품은 헤밍웨이 문학이 성장과정에서 볼 때 이때까지의 습작시기에 종지부를 찍는 금자탑적인 존재다. 이 책을 분수령으로 그는 그의 창작력이 가장 활발한 의욕적 창작시대를 맞게 된다.

1926년 파리와 스페인을 무대로 찰나적이고 향락적인 남녀의 전후풍습을 묘사한 그의 첫 장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출판되었는데, 이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위치를 굳혔다. 

1928년에는 1차대전의 체험을 배경으로 추고에 추고를 거듭하여 무기여 잘 있거라를 펴냈는데,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물론 곧 이어 연극화. 영화화되었다. 당시 미국은 1929년의 대공황으로 사회불안과 노사대립이 격화되어, 작가들도 사회문제에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헤밍웨이도 이같이 변화하는 사회상황에 적응하여  빈부를 발표한다. 1932년에는 동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쓴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은 그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1936년 스페인에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정부군을 돕기 위해 특파원으로 참전했고, 전쟁은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이를 배경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1940년에 발표하였다. 1939년 제2차대전이 발발하자 콜리어지 특파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말년에는 쿠바에 가서 낚시를 즐기곤 했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노인과 바다를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사상과 예술추구의 작가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으로 헤밍웨이 문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 상과 1954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53년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서 투우를 즐기고, 아프리카로 가서 수렵을 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도 못했다. 요양중 의문의 엽총자살로 62세에 최후를 마쳤다. 평생 네 번의 결혼을 했고, 결혼할 때마다 거주지를 옮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b. 주요작품과 작품세계

1920년대의 문학사조는 냉소주의와 비극적 운명에 대한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러한 사조는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로서 깨어진 이상을 가지고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젊은이들을 대변하였다. 이러한 잃어버린 세대를 표현한 작가로는 소설가 헤밍웨이, 시인 엘리어트, 극작가 오닐 등이 있다. 제1차대전이란 엄청난 전쟁에 휘말려 환멸과 절망과 좌절에 빠진 지성인들을 잃어버린 세대 라 지칭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본 것처럼 헤밍웨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스스로 죽음의 고비와 위험을 자초하곤 했다. 그의 문학에서 죽음의 문제는 어디서고 나타난다. 그의 초기단편 인디언 부락 에서조차 탄생과 죽음의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잃어버린 세대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b-1.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전후세대들이 전쟁으로 인한 환멸과 허무에 허덕이던 시대에 전후세대 예술가들은 현재의 감각적 도취로 잊어버리려 애쓰지만, 파리의 환락가도, 스페인 투우장의 열기도, 폭음과 자유분방한 성생활도 그들로 하여금 권태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즉, 그들의 방황은 정신적 안주를 찾아 헤매는 방황이었으나, 끝내 황무지의 퇴폐 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세대의 젊은이와 작가들의 도피적 개인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b-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미국 청년 로버트 조던이 겪는 사랑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미국의 지식인 청년을 상징하는 조던은 스페인 내란에 참가, 정부군에 가담하여 싸운다. 상대는 19세의 스페인 처녀 마리아로 스페인 여성 특유의 열정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긍정하여 인간이 져야 할 인류의 공동운명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영화화 되었는데,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이 있다. 특히 1952년에 제작된  누구를... 는 게리 쿠퍼와 잉글리드 버그만의 주연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28세의 잉글리드 버그만의 화장기 없는 청순한 얼굴과 짧은 머리는 관객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명을 주었고, 이들의 키스신은 애정영화의 교본으로 남아 있다.


b-3.  노인과 바다 

쿠바 해안에 사는 한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서 자기의 고깃배보다 더 큰 고기를 발견하고 이틀 낮밤을 그 고기와 싸운 끝에 겨우 잡아가지고 돌아오나, 새벽에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상어떼의 습격으로 머리와 뼈만 남은 채 배에 매어져 있을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나,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 이라고 말하는 노인의 말을 통해, 고난을 이겨낸 인간의 전형과 패배를 모르는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탁월한 문체와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작가의 만년의 대표작이다.


c. 주요 등장인물

제1차 세계대전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배경으로 전쟁과 사랑과 죽음을 묘사한 걸작으로,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전쟁문학의 걸작으로서,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의 고백형식으로 씌어진 장편소설이다.

헨리: 죽음의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에 몸을 던진 탈주병.

캐서린: 영국 출신의 지원 간호사로 청순하고 지순한 처녀.


d. 작품의 주요내용

작품의 마지막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미울 뿐이라고 말한 캐서린, 그녀는 가고 없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하이네와 함께 그녀가 남긴 이 말은 오랫동안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왔다. 이 작품은 전쟁에 강요당한 슬픈 이별의 이야기다. 전쟁, 아니 미래에 걸었던 꿈이 깨지는 이야기요, 사랑에 걸었던 모든 것이 죽음과 허무로 끝나는 이야기다. 이 장편소설이 전체 5편으로 구성된 것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비극이 5막으로 구성된 것과 상통한다. 영광이니 희망. 명예 등등 전쟁을 로맨틱하게 생각하고 이탈리아 군에 지원. 입대하여. 위생부대 수송장교로 근무하던 미국청년 프레드릭 헨리는 장기전에 차차 권태와 환멸을 느끼던 차에, 마침 현지에서 알게 된 야전병원 간호사에 마음이 끌린다. 캐서린 버클리라는 간호사는 약혼자가 전사하자, 이탈리아로 병원근무를 지원하고 나온 영국처녀였다. 둘은 이탈리아에서 서로 영어가 통했다. 가볍게 시작된 만남은 어느새 강한 그리움으로 변한다. 헨리는 작전에 나갔다가 부상당하고 후방병원으로 이송되어 그녀와 재회한다. 내일을 기약 못하는 전쟁 분위기는 서로의 사랑을 재촉한다. 남자는 이 사랑에서 절망을 벗어나 광명을 찾는다. 숱한 아쉬움을 안고 외롭게 과거만 되씹던 여자에게도 영과 육이 합친 이들의 사랑이 그 삶의 전부가 되고 만다. 헨리가 퇴원하게 되자 다시 이별이 불가피했고, 여자는 임신, 남자는 원대복귀 도상에서 전군후퇴의 난장판 속으로 끼어들어 전쟁의 추악한 비리를 목격한다. 카포레토 지구의 후퇴장면이 드라이한 문체로 인상깊게 전개된다. 혼란 통에 자기 부대를 찾지 못한 장교들이 헌병대에서 이탈죄로 무조정 총살당하는 판국에 끼여든 헨리는, 자기 차례가 되기 직전 강물로 뛰어든다. 위기를 모면한 그는 젖은 군복을 벗어 던지고 모든 공포와 임무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밀라노 시로 애인을 찾아간다. 그는 이제 자기만은 전쟁을 그만두기로, 이를 테면 개별강화를 맺고 군대생활과 결별한다. 도망장교 신세가 된 헨리는 애인을 데리고 비오는 밤 보트로 국경호수를 건너 중립국 스위스로 탈출한다. 빗속의 노를 젓는 긴박한 순간순간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은 스위스 산중에서 한참 사랑과 평화를 즐기지만, 여인은 병원에서 해산하다 죽고, 헨리 혼자 빗속을 걸어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전상과 실연으로 끝난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어지며, 서부전선 이상없다 와 함께 전쟁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작품은 실로 현대 인류의 비극을 파고들어 인간의 조건 자체를 재음미해보고 인간해방의 길을 찾아보려는 안타까운 소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20세기의 문제작으로 엄청난 비중을 갖게 된다.


f. 하드 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이런 큰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그의 재능이 돋보인다. 이른바 하드 보일드 문체와 상징적 배경이라는 두 가지 수법으로 한 줄의 낭비도 없이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수식이나 형용사를 모두 배제하고 리듬과 스피드에 넘치는 신선한 문체, 이러한 필법은 소위 헤밍웨이  문체라 하여 영어 산문 문체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고, 이는 그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게되는 근거가 된다.


g. 상징적 수법

이 글을 쓰기 전의 작가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작가로 간주되었으나 이 작품에 의해 작가의 로만티시즘이 새삼 주목을 받았고, 더욱 최근에는 작품 속에 나오는 상징수법이 주목되고 있다. 재난이 닥쳐올 때, 불행이 예감될 때는 비가 온다. 산의 눈은 몸과 건강과 마음의 건전을 상징하고, 산은 평화와 신성을, 평야는 전쟁과 재앙을, 도시는 타락을 상징하고, 춘하추동 사철의 변화는 그 철에 어울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훌륭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심리묘사를 극도로 피하고, 거의 외면묘사로 시종했으며, 카메라와 같은 비정성으로 자연과 인간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많이 쓰인 대화도 간단명료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동시에 전쟁의 비인간성과 가혹함, 낡은 미덕에 대한 불신, 개인과 사회와의 배반, 현대인이 빠져 있는 불행 및 비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순애와 결말의 허무감으로, 비극으로서의 여운을 최대한 살리고 있는 걸작이다. 또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카포레토의 퇴각장면은 세계전쟁문학 중의 으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조상에 이별을 고하고 있는 듯했다. 한참 후에 병실을 나와 병원을 뒤로 하고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로 끝나는 마지막 구절은 몇십 번이나 퇴고한 유명한 문장이다. 어떻든 현대 미국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그 영향력은 프랑스의 카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와 소련 및 동구에까지 미치고 있다. 창작에의 집념을 버리지 않고 항상 체험의 세계를 넓히면서, 그는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와 인간의 처지를 깊이 생각하며 예술을 닦아나간 대소설가였다.



C07 –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 E.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씌어진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이 로맨스풍의 작품은 주제 및 기법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많은 소설들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소설의 역사에서 견고한 고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18세기 말 요크셔의 외딴곳에 살고 있던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히스클리프라는 부랑아가 몰고온 파문을 짤막한 서술이 삽입된 제3자의 회상체로 그리고 있다. 요크셔의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제인 에어의 작가를 언니로 두고, 평생 동안 한 작품을 써서 명작으로 남긴 여인, 에밀리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 자매로 유명한 브론테 자매는 3녀인 샬롯 브론테, 4녀인 에밀리 브론테, 5녀인 앤 브론테를 말하는데, 야구경기로 말하면 3. 4. 5번의 트리오에 해당한다. 따라서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그녀의 자매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에밀리 제인 브론테는 1818년 7월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를 나온 유능한 성직자였으나, 넉넉하지 못한 수입으로 이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힘에 겨웠다. 더욱이 그의 교구는 요크셔 지방에서도 가장 빈한하고 황량한 마을 호워드였다. 단조롭고 거친 자연에 둘러싸인 황량한 이 고장의 구릉은 기복을 이루고 있어, 들녘에는 항상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이런 풍토로 인해 이 고장 주민들은 침울하고 거칠어 야성적인 데가 있었다. 훗날 호워드는 폭풍의 언덕 의 자연적 환경의 배경이 된다. 그러나 에밀리와 그의 자매들은 일찍부터 이 거친 자연을 사랑했으며, 나중에 그녀들이 작품을 쓸 때 무대로 삼은 것도 이 거칠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호워스로 이사온 뒤 1년 반이 지난 1821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막내딸인 앤 브론테가 태어난 지 1년도 못되었고, 에밀리도 3세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에밀리 자매들은 이모인 엘리자베스 부랜웰에 의해 양육되었다.

1842년 6세가 된 에밀리는 세 언니를 따라 웨스트멀랜드의 코윈브리지에 칼스 윌슨 목사가 설립한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학교는 가난한 목사의 딸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학비는 매우 싼 편이었으나, 불결한 위생환경과 시설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브론테 자매들도 건강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왔으며, 다음해 초여름에 첫째. 둘째 언니가 병사하고 말았다. 세상 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도 이에 놀라 에밀리와 샬롯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 기숙학교는 후에 샬롯이 정열적인 고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제인 에어 에서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는 자녀의 교육이나 사랑에는 무관심했다. 고작해야 식사 때 이따금 아일랜드의 전설이나 들려줄 정도였고, 대체로 혼자 서재에서 지내는 편이었다. 이모 역시 언니 샬롯과 가까이 지냈고, 언니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했다. 

1831년 에밀리와 앤은, 로헤드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집을 떠난 뒤 18개월 후 사숙의 과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언니 샬롯에게서 공부하였다. 1835년에는 언니 샬롯이 로헤드의 기숙학교에 조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따라서 에밀리도 이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향수병에 걸려 3개월 만에 귀향하였다. 에밀리에게는 냉랭한 인간사회보다는 황야의 자유로움이 더 알맞은 듯했다. 그 당시 호워스로 돌아가고 깊은 일념에서 에밀리는 40여 편의 시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충동에서 썼을 뿐 발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1845년 가을, 샬롯은 에밀리가 미처 간수하지 못한 시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감명을 받아 발표할 것을 권했다. 샬롯의 끈기있는 설득으로 1846년 세 자매의 시를 모은 시집  커러, 앨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였으나 2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남성적인 필명 벨(Ball)이란 이름으로 런던에서 출판된 이 시집은 전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집필을 계속하고 있던 에밀리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과 샬롯의 교수, 앤의 애그네스 그레이가 때를 같이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소설들을 런던의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간행이 거절되었다.

1847년 샤로트의 두번째 소설 제인 에어 가 런던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미스의 눈에 들어 출판되어 큰 반응을 얻은 데 자극을 받아 뉴비사는 폭풍의 언덕과 애그네스 그레이 를 출판했다. 그러나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은 그 당시 너무나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였다.

 제인 에어 로 성공한 스미스 엘더 사에서 세 자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불우했던 브론테 가에 행운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1848년 9월 재주는 출중했으나 술과 아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한 오빠 브랜웰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심신이 허약했던 에밀리는 오빠를 잃은 충격과 장례식 때 걸린 감기 때문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해 12월에 거실 소파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의 유일한 작품이 유명해진 것도 모르고 겨우 30세에.


b. 주요 등장인물

원한에 사로잡힌 히스클리프가 언쇼와 린턴의 가족을 점차로 멸망시키고 그 전재산을 뺏는 보복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과 캐서린의 열렬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책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힌들리 언쇼: 언쇼 집안의 아들로 거칠면서도 심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

히스클리프: 언쇼가 주워온 아이로 캐서린을 사랑하나 이루지 못하자, 이에 대한 복수극을 펼치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인물.

캐서린: 언쇼의 딸이자 힌들리의 누이동생으로 정열적이며, 순수한 감정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현실적인 면이 있어 옛 정을 버리고 불행한 가계사를 만드는 인물.

에드거 린턴: 귀족적이며 신사적인 기품의 소유자로 캐서린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되지만,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에 휘말려 희생되는 인물.

이사벨라: 철없는 눈먼 사랑으로 인하여 비인간적으로 이용당하는 인물.

헤어튼: 힌들리 언쇼의 아들로 거칠게 자라 히스클리프에게 이용당하는 인물.

넬리: 포근한 모성애를 지닌 가정부로 섬세한 재치와 포용력이 있는 인물.

캐디: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 사이에 난 따로 정열적으로 히스클리프의 아들인 린턴과 정을 나누다, 린턴이 죽고 난 후에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여인.

로크우드: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다가 가정부 넬리 딘으로부터 폭풍의 언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인물.


c. 작품의 주요내용

염세주의자 로크우드 씨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게 되는데, 그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에 대해서 가정부인 넬리에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워온 아이 히스클리프는 아버지 언쇼의 정을 흠뻑 받으며 자라난다. 그 때문에 친아들인 힌들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나 언쇼의 딸인 캐서린과는 친하게 지내고, 그들은 또 청순한 애정을 갖게 된다.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는 힌들리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인 조제프의 권유로 대학에 보내게 된다. 얼마 후 언쇼 씨는 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러자 평소에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던 힌들리는 그를 양아들의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머슴의 위치로 전락시켜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캐서린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허약하던 힌들리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게 되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더욱더 가혹하게 학대한다. 한편 캐서린은 이웃인 에드거 린턴과 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와 친하게 되는데, 이것이 히스클리프에게 있어서는 불만이었다. 결국 히스클리프가 염려했던 대로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은 결혼약속을 한다. 캐서린은 린턴의 집안이 좋은 이유로 결혼승낙을 했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히스클리프 때문에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알고 있는 히스클리프는 가출을 하고 만다. 저 자질구레한 사내가 80년 동안 전력을 기울여 사랑해도 나의 단 하루의 사랑에도 미치지 못해 라고 생각하면서.

3년이 지난 후 히스클리프는 상당한 재력가가 되어 돌아오고 그때부터 그의 냉혹한 복수가 시작된다. 캐서린의 마음은 여전히 히스클리프에게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에드거 린턴은 히스클리프와 다투게 되는데, 이를 본 캐서린은 실성하게 된다. 한편 힌들리는 부인이 죽은 후 술과 도박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잔뜩 빚을 지게 되는데, 히스클리프는 이것을 이용하여 결국 워서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에드거 린턴의 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캐서린에게 접근하여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임신 7개월 만에 딸 캐디를 낳고 죽는다. 그러나 캐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의 복수는 계속된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가 죽자 그의 아들 헤어튼에게 그가 받은 고통을 복수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곁을 떠나버린 이사벨라가 런던에서 아들 린턴을 낳고 12년 뒤에 죽자 그는 그 아이를 워서링 하이츠로 데리고 와 린턴 가의 재산을 목적으로 캐디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병약한 린턴은 어느새 죽고 히스클리프가 워서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모두를 차지한다. 에드거도 어느새 조용히 죽어간다. 그러나 그는 한밤중에 집을 나가 즐거운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가까이에 누군가가 있는 행동을 하며, 밤마다 밖으로 나가 캐서린의 무덤에 갔다 오곤 했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을 모두 불태워버린 나머지 캐서린의 망령과의 완전한 합일을 꿈꾸며 일부러 4일 동안 굶은 후 편안하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언쇼 가외 린턴 가에 남은 헤어튼과 캐디 사이에 사랑이 싹터, 3대에 걸친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위에서 본 것처럼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집시와 같은 풍모를 한 매력있는 사나이로, 매너 또한 신사적이다. 그러나 그 외모나 매너의 배후에는  번갯불 과 같은 격렬한 성격과, 그리고 예의도 교양도 없는 잔인성이 숨어 있다.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면에 원색적인 정열을 감춘 사내, 이것이 히스클리프다. 말하자면 그는 무한한 동적 에너지의 화신이고 그런 의미에서 초인이다. 따라서 그의 애증도 또한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해 있다. 사랑은 죽은 애인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포옹하리만큼 강렬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체감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격렬하다. 그리고 증오는 두 가족을 몽땅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만큼 강렬하다. 히스클리프와 운명적인 사슬로 맺어져 있는 캐서린도 또한 인간적인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다. 히스클리프 못지않게 강렬한 성격과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연약하고 차가운 달빛과 같은 평범한 사내에게는 만족하지 못하다. 번갯불 같은 뜨거운 영혼을 가진 히스클리프만이 그녀에게 완전한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달빛에 지나지 않는 에드거를 선택한 그녀의 과오는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그럼으로 해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영원성을 가진다.


d.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몸에 의해 세계 10대 소설에 선정되었던 이 소설이 발표 직후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몇 년 뒤에 나온 미국의 백경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 깊이있는 작품은 종종 동시대인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따뜻한 면은 거의 없고, 폭풍과 같은 사랑. 증오. 보복을 위한 일념 잔학성이 작품 전반을 압도한다. 또한 노골적이고도 거친 문장과 격렬함을 싸고 감추는 상냥함이 결여되어 있어. 초기의 비평은 이것을 야만스러운 것, 반기독교적인 속악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남성적인 색채 때문에 이 작품은 그녀의 유일한 오빠인 브랜웰이 썼다는 오해가 있기도 했다.

 폭풍의 언덕 의 진정한 가치는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걸쳐 차츰 인정받기 시작하여, 에밀리는 진정한 천재,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빅토리아 왕조 소설 가운데 발표 당시 평이 나빴다가 현재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폭풍의 언덕 외에는 지금까지 없다.


e. 격렬한 애증묘사

에밀리가 이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다. 이 작품의 의의는 자기의 정념에 끝내 충실히 살다 죽어가고, 온 정성을 다해 애증한 히스클리프에게서 자아의 최상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들의 무섭고 격렬한 애증이다. 캐서린과 힌들리의 오만함과 난폭함, 그리고 이기심,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자연적 모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히스클리프의 강한 의지력은 거의 악마적이다. 에드거의 나약함, 이사벨라의 어리석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그려내는 에밀리는 그들의 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1926년에 발표된 L. P. 생거의 폭풍의 언덕의 구조에 의해서 에밀리 브론테의 놀라운 구성력과 주의깊은 집필은 남김없이 증명되었다. 작가는 히스클리프의 언쇼 가와 린턴 가의 재산횡령에 대해서 주의깊게 법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합법적인 사실성을 획득하였고, 또 사건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도 정확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사상적 경향은 바이런적 격정이 담긴 낭만주의를, 구성면에 있어서는 호프만의 괴기소설이나 공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처음으로 개화된 일면을 갖는 이 작품은 강렬한 이성에 의해 계산된 리얼리즘에 뒷받침되어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의 작품과 함께 여성의 입장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 대한 반역, 강렬한 자아정신의 존중을 나타낸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f. 인간의 본질 탐구

궁벽한 시골구석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무명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융합하고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장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이 바로 증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C06 –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의 신분상승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꿈꾸는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막대한 재산과 인위적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 있음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핍이 오랜 방황 끝에 매형 조에게 깨달은 위대한 유산 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작품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이 소설은 여러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적 작품이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는 디킨스는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있는 사람들, 빈민이나 여왕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가져, 생전에도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하인출신인 조부, 그리고 해군 경리국에 근무하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남부영국의 군항 포츠머스 교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은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남의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된 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부터 공장에 나갔다. 어린 시절 한때 살았던 채텀은 잉글랜드의 정원 이라 불리는 아늑한 도시로, 그의 어린 심성에 깊은 인상을 주었고, 훗날 채텀 시대를 거의 유일한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할 정도였다.

자본주의의 발흥기였던 19세기 전반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뒤안길의 심각한 빈곤과, 어린이와 부녀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사회전반을 어둡게 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디킨스는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15세기경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화,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떴는데, 여기에 기자생활로 인한 많은 여행은 풍부한 관찰과 식견을 더해주었다. 1833년 어느 잡지에 단편을 투고하여 채택된 힘입어 계속 단편. 소품 등을 여러 잡지류에 발표하고, 1836년 이들을 모은 보즈의 스케치 집이 출판되어 24세의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 완결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은 4명(도중부터 5명)의 인물이 여행하는 도중, 곳곳에서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는 단순한 줄거리였으나, 그의 뛰어난 유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 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뒤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들의 호응에 보답하여 니콜라스 니클비, 골동품 상점, 크리스마스 캐럴  등 중. 장편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이렇듯 문명이 높아진 것은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된 사회 밑바닥 생활상과 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지적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비판한 점에 있었는데, 그의 소설에 영향을 받아 연소자 학대와 재판의 비능률이 개선되기도 했다.

1850년에 완결한 자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 를 쓸 무렵부터 작품의 질이 조금씩 변하여 그의 후기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음 작품 황폐한 집 이 그 좋은 예로 이전의 작품처럼 주인공 한 사람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사회 각층을 폭 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 사회소설로 다가갔다. 작품 속에서 앞을 가로막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사회체제의 벽에 가로막혀, 디킨스의 장기인 유머도 어딘지 쓴웃음으로 바뀌고, 무력감. 좌절감이 전편에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아 공장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버너드 쇼에 의해  자본론 보다도 위험한 책이라고 평가된 어두운 사회소설인 어린 도릿, 프랑스 혁명을 다룬 두 두시 이야기, 다소 자전적인 위대한 유산  등의 장편 외에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다. 또 잡지사의 경영과 편집, 자선사업에의 참가, 연극상연, 자작 공개낭독, 각지로의 여행 등 쉴 사이 없이 정력적 활동을 계속하여 건강을 잃었으나 쉬려 하지 않았다. 또한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며 10명의 아이를 낳은 아내와 별거하는 등 정신적 고통도 겹쳐 70년, 추리소설풍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 그의 소설은 1세기에 걸쳐 각 나라말로 옮겨져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되고 있다.


b.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소설과 디킨스의 주요작품

빅토리아 여왕(재위기간:1837-1901) 시대에 영국은 부르주아 계급의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고,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등 경제대국이 되었다.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이성보다 감성,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로 시작하여, 현실을 객관적. 과학적인 태도로 묘사하고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사실주의로 끝났다.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소설가로는 디킨스와 허영의 시장을 쓴 새커리, 올터 로크를 쓴 킹즐리, 조지 엘리어트, 하디 등이 있다. 이중 디킨스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로 사회비판 및 항거의 기풍이 전 작품을 흐르고 있다. 그는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특히 산업팽창의 지나친 사회악과 사회불의에 항거하는 기인들,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디킨스는 근본적인 낙관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존의 산업제도에서 유래하는 빈민굴과 빈자의 비참한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하였는데, 거기에서 낭만주의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킨스는 영국문학의 위대한 민주주의자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c.  데이비드 코퍼필드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나의 모든 책들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정력이 절정기에 있던 때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데이비드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딛고 작가로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디킨스 특유의 유머가 전편에 스며 있고, 쓸쓸하고 슬픈 이야기를 밝게 처리하고 있다. 어느날 디킨스가 실수로 동네 꼬마의 인형을 망가뜨려 새로운 인형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례로 그 꼬마의 어머니는 좋은 책이라며 디킨스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했는데 펴보니 이 책이었다고 한다.


d.  두 도시 이야기 

근대 시민운동의 핵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변호사 시드니 커튼과 그 주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보기 드문 역사소설이다. 여기서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를 지칭한다.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유폐되었던 의사 마네트는 석방되어 런던으로 가서 점차 이성을 되찾는다. 한편 그의 딸 루시를 사랑하여 결혼한 프랑스 귀족은 전에 자기 집에 있던 충실한 머슴을 구하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혁명정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은밀히 루시를 사모하던 시드니 커튼이 대신 희생하여 그를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개인이 조직에 대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의 저항과 사랑, 또는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신념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연재될 당시에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여, 기차역까지 나와 신문을 기다렸다고 한다.


e.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피크위크 클럽의 회장인 피크위크 씨를 중심으로 네 사람의 회원이 정처없는 여행을 다니면서 그 견문을 보고하는 형태의 소설이다. 또한 18세가 이래로 전해 내려온 이른바 악한소설의 수법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착상은 디킨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어느 만화가의 연재그림에 덧붙여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피크위크 씨가 고용한 마부 샘 웰러의 터무니없는 커다란 웃음소리 등은 이 소설을 영국 소설사상 가장 생기있고 독창적인 해학 소설로 손색이 없게 만든다.


f.  올리버 트위스트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소년 올리버가 런던에 나오자마자 도적단 마수에 걸려 갖은 고생을 겪다가 후에 죽은 아버지 친구의 양아들이 된다는 줄거리이다. 구성은 디킨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조잡하지만, 정의감과 선의에 넘치는 사회의 순화를 그린 박력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g.  주요 등장인물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디킨스의 독특한 풍자 속에서 한 인간의 이성의 회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물질적인 풍요나 인위적인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핍: 가난한 고아로 성장해, 신분상승의 강박관념 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다, 이성과 사랑을 되찾는 인물.

에스테일러: 미스 허비샴의 양녀로 부유하게 자라 가난한 핍의 사랑을 물리치고 드러믈과 결혼하게 되나, 실패하고 다시 핍과 사랑하게 되는 여인.

허비샴: 결혼하는 날 아침에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평생 동안 결혼예복을 입은 채,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여인.

탈옥수: 자신을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난하나 핍에게 도움을 주어 신사로 자라나게 하는 죄수.


h.  작품의 주요내용

이 작품은 고아 출신의 주인공 핍이 자기 일생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핍은 부모가 없는 고아로 누이의 손에서 길러지는데, 대장장이인 매형 조 아래서 견습공 노릇을 하며 고독하게 살아간다. 성격이 매우 고압적이고 포악한 누이는 핍에게 언제나 큰 소리를 쳤고 따뜻한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보여주지 않아, 핍은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묘지에서 슬픔에 겨워 울고 있던 핍은 위압적이고 협박조인 말투로 무섭게 대하는 탈옥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핍은 겁에 질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누나집에서 먹을 것을 구해다 주었다. 이 죄수와의 만남이 후에 얼마나 중요한 사건으로 전개되는지는 핍 자신도 독자 자신도 알지 못한다. 핍이 사는 마을에는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부가 살고 있었다. 거부의 이름은 허비샴으로 그녀가 기거하는 집은 거대한 저택인 서티스 하우스였다.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에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지금은 허름하게 되어버린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는 양녀 에스테일러가 있었다. 핍은 에스테일러와 함께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에스테일러는 마치 여왕처럼 핍에게 군림했고, 핍은 그녀에게 자신의 더러운 몸과 신분 등에 대해서 무시를 당하며 지내야 했다. 핍은 이때 자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자각하고, 그 수모와 수치감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비샴의 변호사 제이거슨은 핍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것과 또 신사교육을 받으러 런던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핍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한다.

런던에 온 핍은 갑자기 돈이 생기자 그의 몸에는 벌써 허영이 가득 차 있었고,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매형 조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고, 자신의 옛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의 사교계에는 이제 우아한 숙녀로 성장한 에스테일러가 눈부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그녀를 따르는 남자가 즐비했고, 그녀는 그중에서도 아둔하기 이를 데 없는 드러믈과 친해졌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핍은 자신만이 아는 사랑의 고통으로 질투와 슬픔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폭풍이 세차게 불던 날, 옛날에 그를 협박하던 탈옥수가 찾아오게 된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핍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을 모함하여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유배지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돈을 벌어 핍에게 신사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주던 은인이 허비샴이 아니라 탈옥수임이 밝혀지자 거대한 유산자 의 꿈은 사라지고 핍은 깊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훌륭한 신사가 되어 아름다운 에스테일러와 결혼하려고 하였던 꿈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신사가 된 핍의 모습을 보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몰래 숨어들어왔던 탈옥수는 이제 빨리 국외로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탈출에 실패하고 잡히게 되는데, 그는 감옥 안에서 마지막으로 핍의 모습을 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숨을 거둔다. 그럼으로써 핍은 인간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허비샴은 자신의 양녀 에스테일러를 이용해 핍에게 사랑의 상처를 줌으로써, 자신이 입었던 사랑의 상처에 대해 복수한 것이었다. 핍은 그녀의 계획대로 상처를 크게 입었고, 그녀는 이런 핍의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회한과 눈물로써 용서를 구했다. 그런 다음날 난로의 불이 그녀의 옷자락에 붙어, 집이 모두 타 없어지게 되었다. 핍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불로 뛰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게 된다. 한편 그와 함께 신사의 과정을 밟은 허버트는 부친으로부터 무엇이 진짜  신사 인가를 배운다. 마음으로부터 신사가 아닌 사람은 태도에서도 진짜 신사가 될 수 없다고 허버트는 믿고 있다. 하류계급 출신의 핍이 에스테일러를 쫓아다니는 동안, 허버트는 일부러 돈 한푼 없는 클라라와 약혼함으로써 자기자신에 속해 있는 위선적인 계급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진정한 신사는 시골 대장간에서 묵묵히 정직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핍의 매형인 조다. 이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려 의지할 곳이 없는 핍을 유일하게 간호해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조였다. 조는 비록 대장장이이기는 하나, 내면에는 진정한 신사만이 가질 수 있는 온화함이 넘쳐흐른다. 그는 영원한 핍의 보호자다. 자신을 비난하고 떠난 핍이 런던에서 죄수, 에스테일러, 빚과 열병으로 고생할 때 그는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폈다.

조와 함께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비디인데, 그녀는 시골학교 선생으로 조의 부인이 부상당했을 때 집안사람들을 돌봐주어 결국 조의 아내가 된다. 핍이 오랜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매형 조와 비디 사이에 난 딸을 핍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다름아닌 자기에 대한 사랑의 표시임을 알게 된다. 핍은 매형에게서 위대하고 진실된 참인간을 보게 된다. 핍은 비로소 자신이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i.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소년기의 핍은 누나 때문에 불행했고 허비샴으로 인해 야심을 갖기도 했으며, 에스테일러로 인해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또한 제이거슨이 가져온  위대한 유산 의 소식 때문에 유혹을 당하기도 했다. 핍은 이러한 유혹과 좌절을 맛보면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깨달아갔던 것이다.


j. 신사의 본질 제시

독자는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디킨스의 독특한 풍자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물질적 풍요나 인위적인 교육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러한 감동을 느끼는 것도 그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정부관리의 아들로 비교적 평온한 신분을 보장받고 자라났으나 가계의 파탄으로 극심한 고통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구두약 공장의 노동자가 된 것처럼,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왔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것이다.


k. 부조리 속의 인간관계 묘사

디킨스가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점은 작가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체험한 금전문제나 사회부조리의 문제들을 그의 작품에서 예리하게 지적한 데 있다. 그는 해학과 사회적 모럴에 대한 반항적인 작품도 서슴없이 썼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에 갖가지 사회악이 난무하는 한편 물질적 풍요에 대한 갈구가 강하던 시기였는데, 여기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던 악의 양상이 점차 사회적인 차원으로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인간과 사회를 좀더 깊이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아마 영국 문학사에서 디킨스만큼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흔치 않다. 당시 모임석상 등에서 나는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 고 말하면 대화에서 소외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는 죽기 직전에 빅토리아 여왕을 단독으로 만나는 영예를 가졌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른 작가들이 생전에 얻지 못한 인기를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중년 이후는 풍족했다.



C05 –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 오스틴(Jane Austin, 1775-1817)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영국 최초의 위대한 여성작가 오스틴이 19세기 초의 영국 중류사회의 풍자적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4쌍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19세기를 전후한 영국 중산층의 결혼관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와 다시라는 두 주인공이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로,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 반향과 내면의 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정수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인 오스틴은 햄프셔 주의 스티븐턴에서 신앙심이 깊고 온화한 아버지와 유머가 풍부한 어머니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고 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문학적 성향이 뛰어난 가족들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풍자적인 습작을 쓰다가, 점차 본격적인 소설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재치있는 여성으로 시와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재주로 유명했다. 이 대가족이 즐긴 오락은 연극이었는데, 오스틴 일가와 이웃들은 스티븐턴 극단을 만들어 여름휴가 때는 목사관 헛간을 소극장으로 개조해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활기차고 애정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는 그녀의 창작을 자극했는데, 부친의 은퇴와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한동안 방황했으나. 제2의 고향인 초턴에서 작품활동을 재개하여 경이적인 활동을 한다.

이전의 원고를 고쳐 출판한 분별과 ‘다감(1811)’에서 이성과 낭만적 감성 사이의 갈등을 풍자했고, 젊어서부터 첫인상으로 구상해두었던 소설을 다듬어서 ‘오만과 편견(1813)’으로 출판했다. 그뒤 ‘맨스필드 공원(1814)’, ‘에머(1815)’를 연속 출판했다. 그러나 1816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1817년 5월 눈을 감았다. 사후에 출간된 노생거 사원 은 18세기 후반에 유행하여 낭만주의를 선도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괴기소설인 고딕소설의 과잉을 풍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오스틴은 주로 18세기 후반의 중류계급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 중, 특히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방어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는 소재의 빈약함과 작품공간의 협소함을 극복함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특히 오만과 편견 은 두 남녀 주인공의 오만과 편견으로 인한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시골의 여러 가족을 중심으로 한 중상류층 남녀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통하여 마침내는 여주인공이 많은 과오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밀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소재도 좁은 편이고 동시대의 스콧과 같은 화려한 표현도 없지만, 18세기 특유의 도덕의식을 바탕에 둔 인생비평, 제한된 세계를 묘사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한 우수한 인물의 창조,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는 절묘한 서술방법으로 영국 소설사상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스틴에 대해 19세기의 마코레나 테니슨은 셰익스피어와 견주기도 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버지니어 울프도  셰익스피어라는 사람 그 자체는 그 작품에서 종잡을 수 없는데, 오스틴의 경우에도 그와 흡사하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물됨이 아무리 정겹고 허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격상 종잡을 수 없는 면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신선하고 예술 심리적인 문학으로 그 예술성이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b. 시대적 상황과 작품세계

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는 영문학사상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문학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감상적인 탐미주의에 흐르고 있었는데, 오스틴은 그러한 낭만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18세기의 고전적 정서를 강하게 지닌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는 풍경의 묘사보다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교한 인물묘사를 통하여 무조건 중세를 동경하거나 병적인 감상에 흐르던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비웃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있었으며 이에 따른 각 분야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다. 

문학사적으로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관과 인생관이 일기 시작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전통의식과 더불어 질서와 상식, 보편 타당한 합리성이 인생에 있어서나 문학에 있어서 목표가 되었던 18세기의 고전주의에 비해, 이 새로운 움직임은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이 모든 판단의 기본임을 천명하고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발판으로 차츰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초기 낭만주의의 기수들은 대부분 시인들로서 이들의 낭만정신은 자연에 심취한 워즈워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이국정서를 동경한 콜리지, 아득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정신을 강조한 셸리, 미를 추구한 키츠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학운동은 기존의 고전주의와는 정반대의 문학적 특징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문학적 조류 속에서 작가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그러한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이색적인 작가였다. 그녀는 오히려 18세기 초의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문학세계를 펼쳤다. 그녀는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 해석이나 서술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삶의 묘사에 주력하였으며, 과거에 대한 동경, 꿈과 관념의 감상주의적 경향보다는 이성적인 현실의 세계를 지향했다. 이처럼 오스틴의 생애와 작품세계는 그녀가 살았던 19세기 초 영국의 정치상황이나 사회 제반문제와는 무관한 것 같다. 현대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소설이 지닌 빈틈없는 짜임새에 매료되고, 겉보기에 평범하고 제한된 사건과 배경을 가진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희비극을 드러낼 수 있게 한 기법상의 성취에 높은 평가를 한다.


c.  주요 등장인물

인간의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는 소설로, 사람을 재산과 신분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통념에 반대하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다시의 오만에 편견을 보이다가 사회의 편견에 편견을 가졌음을 깨닫게 되고, 재산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가의 아이러니컬한 서술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제인: 장녀로서 솔직성과 조심성, 포용력을 가진 정적인 인물.

엘리자베스: 둘째딸로 생기발랄하고 재기가 넘치며 인습에 맹종하지 않는 동적인 미인으로, 후에 편견 을 버리고 참된 사랑을 얻는 검은 눈동자의 소유자.

다시: 명문집안의 남자로 약간은 오만 하나, 정직하고 자상한 인물.

리디아: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꿈과 동경에 싸여 있으며, 심성이 착하고 정열적인 인물.

베네트 부인: 즉흥적이고 부드러우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두는 인물.

베네트: 과묵하면서도 사색적이며 자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

빙글리: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주관이 강한 인물.

위컴: 남을 공모하지만 진실된 사랑 앞에서 참회하는 인물.


d.  작품의 주요내용

 상당한 재산을 가진 남자에겐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다.  이 소설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어느 작은 마을의 베네트가에는 베네트씨 부부와 다섯 딸이 함께 살고 있다. 베네트 씨는 냉소적이며 농담을 즐겨 하는 편이지만, 바탕은 온화한 사람이다. 어머니 베네트 부인은 삶의 의미를 딸들의 결혼에 두고 있는 여자다. 장녀인 제인과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혼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나깨나 그들의 결혼 문제만을 생각한다. 마침 근처의 네더필드라는 곳에 독신청년 빙글리가 찾아든다. 그의 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베네트 부인과 가족은 이에 솔깃한다. 이윽고 빙글리를 환영하는 마을 무도회가 열리고 베네트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여기에 참석한다.

드디어 여기서 빙글리의 친구인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용모가 훤칠하고 부유한 미남청년인 다시는 뭇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 한 태도에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에게서 예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춤을 출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후부터 엘리자베스는 다시와 관련된 모든 것에 우선적으로 편견을 갖고 적대감을 키우게 된다. 반면 다시는 그녀에 대해 처음에는 무관심했다가 차츰 그녀에게 감탄하게 되고, 그녀의 재치와 기지에 끌려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존심과 진실된 자아실현의 의지를 지닌 엘리자베스는 어머니나 세상사람들이 품고 있는 돈 많은 청년이 제일이라는 편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대신 특유의 독립성과 지성으로 진실한 삶과 사랑을 이루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은 네더필드의 빙글리의 집으로 언니 제인을 데리러 가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어느 날 네더필드에서 제인에게 놀러오라는 초대장이 온다. 본인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한다. 그리고 제인이 네더필드로 간 뒤 비가 와서 하룻밤이라도 더 묵게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제인이 비를 맞아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이 온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며 언니를 데리러 간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행동에 빙글리의 여동생인 캐롤라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괜한 짓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시 역시 그녀의 행동에 놀라면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캐롤라인은 다시에게 호의를 품고, 다시와 오빠인 빙글리가 베네트 집의 딸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차츰 엘리자베스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끌려가고 있던 다시는 캐롤라인에 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다시는 런던의 재산가의 아들로서 귀족으로 자랐기 때문에 오만한 태도가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엘리자베스에게는 호의를 가지면서도, 그녀의 부모나 마을여자들을 경멸한다. 그런 다시에게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반감을 갖는다.

이즈음 베네트 가의 먼 친척이 되는 콜린스라는 젊은 목사가 찾아온다.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네트 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이다. 그는 캐서린 영부인의 알선으로 조그만 교회의 목사직을 갖고 있으며 아내 될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이 청년은 몹시 경박한 인물이어서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베네트 가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해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한다. 베네트 부인은 그 제의에 맞장구를 치고 엘리자베스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어느 날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 구혼을 하나,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에 콜린스는 기대했던 것이 어긋나자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로트 루카스와 결혼해버린다.

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은 근방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내왕하고 있었는데, 그 군인 중에는 위컴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컴은 명랑한 성격인데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 엘리자베스는 다소 호의를 갖게 된다. 그녀는 위컴으로부터 다시와 가까운 사람이며, 다시의 냉대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원래 의협심이 있는 엘리자베스는 더욱 다시를 미워하게 되고, 위컴을 동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컴의 모함으로, 후에 위컴은 엘리자베스의 동생인 리디아와 도망을 간다.

이즈음 다시는 뜻밖에도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다. 그는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억울하지만, 사랑은 막을 도리가 없으므로 당연히 엘리자베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흠모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자신의 사랑과 거기에 그의 부유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함을 알고는 거절해버린다. 동시에 제인으로부터 빙글리를 갈라놓은 일과 위컴을 냉대한 일에 대해 비난한다. 두 사람이 서로 길러온 오만과 편견이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다시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거기에는 위컴에 대한 상세한 비리와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편지를 받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또한 샬로트와 콜린스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다소 놀라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즉 그것은 지금까지 스스로 타인의 기분을 측정하고 타인의 특성과 개성을 판단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이다. 이 점은 그녀가 다시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되는 것과 상통한다. 결국 그녀는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서 자아발견의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다시의 타고난 오만도, 엘리자베스의 편견도, 참된 사랑에 의해 극복되고 두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맺게 된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의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를 주된 흐름으로 하고 있다. 즉 다시가 오만이라면, 엘리자베스는  편견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교차되는 두 인물이 어느 한 가지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뜻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가

이 작품을 이끄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을 중심으로 5명의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평생과업인 베네트 부인, 아첨꾼 목사 콜린스, 그리고 위풍당당한 귀부인 캐서린 등등의 인물군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생생한 중류사회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조용한 환경에서 작가의 경험을 주요 토대로 한 것들이며, 작품의 무대나 등장인물도 그녀의 삶 속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녀의 소설무대는 18세기 말 그녀가 태어난 영국 남부의 고요한 시골마을이고 등장인물도 대부분이 그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귀족과 목사. 군인 등이다. 그들이 빚어내는 평범한 생활상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이러한 소설의 일상성은 그녀가 시골마을의 서너 집안 일이 바로 작품소재다 라고 조카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소설을 가정소설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 최초의 여성작가인 그녀의 소설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정이 있다. 그녀는 등장인물의 행동 자체보다도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동기라든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가정생활. 사랑. 결혼 등을 경험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내적 성장을 섬세하게 그렸는데, 이것은 오스틴 작품의 내면적 탁월성을 말해준다.

그녀의 소설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발전과 영광이라는 화려한 전면에 의해 감추어진 영국 중류계급의 퇴폐적인 치부를 풍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오스틴의 문학세계가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질적. 양적인 면에서 그녀의 천재적인 작가역량이 발휘된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 반향과 내면의 자아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특성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다. 이른바 오스틴 문학의 정수요. 세계문학의 보석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사와 결혼, 사랑의 과정을 풍자와 아이러니 수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 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이 소설을 결국 외양과 실제 차이를 두 주인공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을 아이러니와 풍자적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두 주인공의 자기발견의 과정을 꿰뚫어보게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시를

외모로만 판단하여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갈등이 생겼던 것처럼, 다시도 큰딸인 제인을 빙글리에게 시집보내려고 애쓰는 베네트 부인의 저속함을 보고, 다른 딸들도 저속하리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엘리자베스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사물의 실체나 진실이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오스틴의 명랑하고도 위트 있는 유머와 풍자 속에서 우리는 삶의 실체와 진실을, 그리고 당시 영국사회의 인간상과 시대상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지니고 있는 재질은 평범한 사건의 뒤에 숨어 있는 심리적 깊이를 파헤치는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극히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관찰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가 담담한 필체로 인생의 깊이를 포착하고 은근한 유머를 담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한 여류작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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