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50 – 성 (Das Schloss) /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문호의 한 사람인 카프카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 K를 통해 단순히 차별 받는 유태인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암울함을 고발하고 있다. 즉, 측량사로서 채용되기 위한 K의 노력은 오직 제자리를 맴돌 뿐 아무런 진전이 없다. 현대사회의 소외와 부조리를 통해서 인간존재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 현대소설이다. 


a.생애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이자 20 세기 최고의 문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카프카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독일계 유태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럽의 진주 또는 황금의 도시 라고 불리어지는 프라하에도 유태인의 거주지인 게토 라는 어두운 뒷골목은 있었다. 거기서 카프카는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얼굴이 못생기고 괴팍한 카프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친인 유리에는 유태교 목사집안의 경건한 부인이었다. 동생 둘은 요절했고 세 명의 누이동생은 그보다 오래 생존했으나,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개처럼 학살되었다. 카프카는 서구화한 유태인이 흔히 그러하듯이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고, 프라하 대학에 법률공부를 하며 후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카프카 전집의 편집자가 된 막스 브로트와 친교를 맺게 된다. 졸업 후 노동재해보험회사에 취직하여 창작과 근무의 이중생활을 계속했다. 1908--1916년까지 여기에 근무하면서 대부분의 작품을 쓸 수 있었는데, (성)을 낳은 12페이지의 스케치인 (마을에서의 시련), 그리고 (성)과 함께 미완성의 3부작으로 되어버린 (심판) (아메리카), 또는 단편소설 (사형선고) (관찰) (소송) (변신) (유형지) (시골의사) 등이다.

1912--17년 사이에 그는 베를린 출신의 M. J라는 여자와 두번이나 약혼했다가 두 번 다 취소했다. 그 후에 있었던 다른 소녀와의 약혼도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취소되었다. 그는 또 다른 여성과 일시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그 여성들은 아무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마지막 베를린 시절에 그는 도라 디맨트라는 유대교의 네덜란드 여자와 행복한 관계에 있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인 목사가 카프카가 정통적인 유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결혼을 금했던 것이다. 1차세계대전 후의 가난으로 점점 심해진 폐결핵 때문에 1917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지요양을 했으나, 병세가 회복되기 어렵게 되자 1923년에 나머지 짧은 여생을 창작에 전념하고자 베를린으로 갔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비엔나 교외의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b.작품세계

단테나 스위프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곧 그의 생애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나 괴테와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작가론에서는 오히려 그의 생애에 대한 고찰이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에 작가가 처해 있던 개인적 사회적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외모가 추하고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부친으로부터 받은 그에 대한 몰이해는 평생 동안 그를 괴롭혔고, 가장 가까운 것이 오히려 단절을 심각하게 할 뿐인 상황 이라고 말한 마르트 로베트 부인의 말마따나 그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숙명적인 이방인 같은 상태에서 일찌감치 정신병에 걸려버렸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고독감 불만감 억압감 같은 악감정에 시달리며 조숙 또는 민감해졌고, 드디어는 폐병에 걸려 고향과 가족과의 관계를 끊고 전지요양에 들어간다. 흔히 키에르케고르와 카프카를 정신적 쌍둥이 라 하는데, 그들의 운명 성격 고독 불운 그리고 인생이나 문학에 대한 관념이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중환자였다. 그는 막다른 상황에서의 돌파구로 결혼과 유부녀 어린 소녀와의 연애를 시도해보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거기다가 사회적으로 유태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대우는 그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다. 당시 체코 거주 유태인들은 타고난 근면성으로 부를 축적, 프라하의 상류사회로 진출하지만, 체코 인들은 그들이 체코 어를 쓰지 않고 독일어를 쓰는 데 비해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로 늘 적대시했고, 또 독일인들은 유태인들이 독일의 문화와 사회에 기생하는 부류라고 생각해 업신여겨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고독은 아예 그의 일부였다. 성자들이 신앙 속에서 살듯이 그는 고독 속에서 살았고 드디어는 자기 작품만을 위해 자기 작품만을 먹고 살아가는 설화적인 동물의 생태를 가지게 되었고, 프루스트처럼 산 채로 그 속에 묻혔다. 단테가 14세기에 그랬듯이 카프카는 20세기를 철저히 체험한 작가였다.


c.작품의 주요내용

어느 겨울 흰눈이 내리는 날 밤에 K로 불리는 주인공은 한 마을에 도착한다. 측량사로서 성에 초빙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성에서도, 그리고 성의 지배를 받는 마을에서도 측량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K가 성에 도전한 투쟁이 받아들여진 것만은 확실하고 K는 마을에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다음 날부터 성에 도달하려는 K의 온갖 노력이 시작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성으로 가는 길이 성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 K에게 성으로부터 두 사람의 조수가 파견된다. 그러나 조수란 이름 뿐이고 어리석은 수작을 부리는 감시원에 지나지 않는다. K가 호의를 갖고 희망을 걸어보는 성의 사자 바르나바스는 사실인즉 마을사람들로부터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K는 성의 관리 클람이 있는 술집 신사장에서 프리다를 애인으로 삼지만, 직속상관인 면장으로부터 이상스런 성의 지배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결국 국민학교의 사환직을 얻는다. 신사장의 앞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클람과 담판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 다른 조수들과 함께 프리다를 데리고 학교 건물로 이사온 K가 교원들과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조수와 프리다의 관계에 의심쩍은 점이 있어서 무능한 조수 두 사람을 해고해버린다. K는 바라나바스의 집에 가서 자매인 아말리아가 성의 관리로부터 사랑을 강요당해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 집안이 몰락의 비운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자 그 사이에 프리다가 K를 배신하고 조수 한 사람과 신사장으로 거처를 옮겨 버린다. 그날 밤 K는 성의 어느 관리로부터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데, 잘못해서 비서 뷔르거의 방으로 들어갔을 뿐더러 피로한 나머지 이 비서가 도와주겠다는 제의까지도 놓쳐버린다. 이처첨 미완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브로트가 말하는 바에 의하여 주인공 K가 기진맥진하여 죽는 그 순간, 성으로부터 정식으로 마을에 거주하는 것은 안되지만 이 마을에서 잠정적으로 일하며 사는 것만은 허가해주겠다는 결정서를 전달되게 되었다고 한다.


d.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의 무대가 된 프라하의 오세크 성(현재는 정신병원으로 쓰이고 있음)은 카프카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으로 어린 시절 카프카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찾아왔던 곳이며, 훗날 유태인으로서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 (성)인 듯싶다. 여기에서 카프카는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 K를 통해 단순히 유태인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사회 속에서 철저히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암울함을 고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와 같은 집단의 억압과 횡포에 대해 항거하면서  인간성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발표시킨 브로트에 의하면 주인공 K가 임종할 때에야 비로소 성에서는 비록 그에게 정식으로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저 마을에서 살고 일해도 좋다는 정도의 허락을 내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막스 브로트는 성을 신의 은총 내지 고귀한 지혜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성에 도달하려던 K의 노력을 곧 인간계(마을) 밖을, 절대의 세계를 구하려는 노력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그의 편력은 (지옥계) (연옥계) (천국계)를 거친 단테의 편력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K의 숙명적인 좌절상태는 실제로 괴로움을 참을 수 밖에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조건에 해당되면서, 단테의 (신곡)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그것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카프카 자신이면서 (성)의 주인공인 K의 존재상태는 카프카가 약혼자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다음과 같은 몇 마디 말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저는 저의 가족 속에서 이방인처럼 아주 낯설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에게 인사말 외의 다른 말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누이들과는 절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널드 피어스가 말했듯이 단테의 (신곡)이 하나의 탐구서였다면 카프카의 (성)도 하나의 탐구서다. 단테가 (신곡)에서 그의 시대와 인간조건을 요약해놓았다면, 카프카는 (성)에서 20세기와 20세기의 인간조건을 요약해놓고 있다. (성)은 곧 카프카의 (신곡)이다. 

사실 카프카는 생존시 무명의 작가였다. (성)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선 프랑스에서 그 진가가 인정되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로 세계 각국의 문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사후 20여 년이 지나서였다. 그의 유고도 카프카의 유언에 따라 불태워질 운명이었으나, 막스 브로트의 극성스런 노력으로 오늘날 카프카의 붐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또는 순수 문학적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점점 브로트와 같은 종교적인 해석보다는 개별적 비유적인 요소에 구애 받지 않는 문학적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따라서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작품의 영향을 말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한 감이 있으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단테와 비유되고 철학적인 면에서는 실존주의로 해석되며 방법론상의 비유의 문제는 특이하고도 완벽한 상징주의로 해석되고 있다. (이방인)을 쓴 카뮈가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실제로 카프카 내지 (성)에 대한 해석이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학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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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Franz Kafka

생몰년

1883년 07월 03일 ~ 1924년 06월 03일

국적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현 체코)

출신지

프라하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다.[1]



1. 개요

2. 일생

2.1. 유년기

2.2. 작품 활동

2.3. 죽음

3. 사후

4. 작품 목록

5. 여담

6. 각종 매체에서의 카프카

6.1. 오규원의 시


1. 개요[편집]


독어권의 대문호.[2]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이 예술적 감각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 중의 천재로 평가된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현 체코 지역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썼던 유대인 소설가라는 꽤 복잡한 출생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이건 오늘날 현대인 시점에서 바라본 관점이며 체코 또는 보헤미아 지역에는 혈통이 게르만이든 슬라브든 독일어 화자가 매우 많았다.[3] 물론, 이들은 유대인이면서 체코어를 할 줄아는 체코(보헤미아)인이고 독일어를 제 1 언어로 사용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인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은 카프카 특유의 사회적 소외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2. 일생[편집]


2.1. 유년기[편집]


1883년,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부유한 상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4](Hermann Kafka, 1852~1931)는 자수성가한 유대인 상인이었고,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감성적이었던 프란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걸핏하면 프란츠에게 고함을 질렀고 마구 때리며 키웠는데, 이는 프란츠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5] 헤르만이 이런 식으로 아들을 기른 것은, 현실적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한 자신과는 프란츠가 매우 달랐는데다가, 세 아들 중 두 명이 일찍 죽고 남은 프란츠에게 건 기대가 크기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을 보통 사람들이 다녔던 체코어를 쓰는 학교 대신, 당시 지배층이 주로 사용했던 독일어[6]를 사용하는 학교에 보냈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소설을 쓴 배경이 여기에 있다.


2.2. 작품 활동[편집]


프라하에 보존된 생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학교를 다니고, 프라하에서 직장 생활을 했으며 죽어서도 프라하에 묻힌 '프라하 토박이'였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지만 독서를 즐겼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게 된다. 그의 창작 활동을 배려하지 않고 수시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글을 쓰는 등 틈틈히 저작 활동을 이어가 영감을 받고 하룻밤 만에 변신을 완성하기도 한다. 말이 적었지만 불친절한 성격은 아니어서 직장에서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재정적으로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가난한 노동자들에겐 종종 친절과 선의를 베풀었다. 실제로 노동자 실태 파악을 위해 출장을 다니고, 노동 조건 개선 등에 힘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인형을 잃어버려 울고 있던 이웃집 소녀를 위해, 여행을 떠난 인형이 쓴 편지라며 자기가 쓴 편지를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7]


생전에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평생 전업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기도 했는데, 글은 돈벌이나 인기몰이 대신 사람과 예술을 위해서만 써야 한단 신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별도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힘겹게 작가의 꿈을 이어갔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카프카는 글만 쓰며 사는 삶을 모색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4년 7월 펠리체 바우어와 파혼을 한 뒤, 친구와 함께 덴마크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부모님께 편지를 썼는데 프라하를 떠나 독일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향을 묻는 편지였다. 그러나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고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노동 보험 공단은 박봉이었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보람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인 짧은 근무 시간 때문에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기업의 이의 제기에 대한 반박문 작성, 보험 회사 홍보나 기업 변호를 주로 맡았다. 2시쯤 퇴근하고 귀가한 후 3시부터 7시 반까지 잠을 자고, 밤 11시경부터 3시간쯤 글을 쓰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두 번 잠을 잤다는 말.


아인슈타인 평전에 따르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체코를 방문했을 때, 한 유대인 문화 예술 모임에서 프란츠를 만났다고 하는데 무슨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생전 카프카가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다고 생각하면, 꽤 기적적인 세기의 명사들의 만남인 셈.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1887~1960)란 여성과 약혼과 파혼을 반복하다가 결국 완전히 헤어지고 만다. 이후 다른 여자들과 여러번 연애를 하나 결국 결혼하지는 못했다. 바우어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가난에 시달리는데, 카프카가 죽은 후 그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자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와 주고 받았던 연애 편지를 모두 공개해 출판했다. 하지만 그에 따라 그녀는 비난까지 덩달아 받았고 생각보단 큰 돈을 받지 못했기에 결국 그녀는 비참하게 살다가 미국에서 죽었다.


훗날 카뮈와 사르트르에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하고 관련 논문이 쏟아질 정도로 유명해졌지만[8],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인지 생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못했다. 애초에 본인이 발표한 작품이 몇 편 없기도 했고. <변신>, <유형지에서>, <성>, <실종자>, <시골 의사> 등 걸작들이 가득했으나 그 중 출판된 단편은 극소수였고, 몇몇 평론가들이 소설을 호평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호평 수준에서 끝났을 뿐 그의 작품을 깊숙히 탐구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그나마 받았던 호평도 시간에 묻혀 잊혀졌다.


그의 장편 소설들은 전부 미완이다. 스스로 상당수 작품을 찢거나 불태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자신의 글을 갈기갈기 찢어 휘날리면서 미치도록 웃다가 경찰들에게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의사가 입원이 아닌 안정이 필요할 뿐이라고 하여 강제 입원은 면했다고 한다.


2.3. 죽음[편집]


신경쇠약으로 발작까지 일으키던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그를 평생 괴롭혔던 아버지는 아들보다 7년이나 더 살았다. 카프카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란 지위의 폭력성이 언급될 때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9] 소설 대부분의 절망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석하는 이론도 있으며, <심판>(Prozess) 같은 소설은 대놓고 억압적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그대로 투영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여동생들은 나치 정권의 광기를 피하지 못한 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카프카는 숨을 거두며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10]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 소설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브로트는 유언을 어기고 원고를 모두 보존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재출판했다. 현재 프라하 성의 황금 소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서점이 되어 있고 그 곳에서 집필한 <시골 의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카렐교 근처에는 카프카 박물관도 있다.


물론 처음에 출간된 장편들도 성한 모습은 아니었다.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가 친필 원고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초기 판본들은 원문을 브로트가 편집한 형태로 나왔다. 브로트의 말로는 카프카와 나누었던 논의를 더듬어서 수정했다고 하지만 학자들이 신빙성과 적합성을 항상 의심했다. 브로트의 사후 원고는 1961년 유족들에게 넘겨졌고, 다음 해에 원고 실소유자인 여조카 마리안네 슈타이너의 요구대로 영국 독문학자인 M. 패슬리의 중재 하에 옥스퍼드대학 보들리언 도서관에 보존되었다. 패슬리가 이 원고들을 토대로 브로트의 편집본이 아닌 순수한 원고를 토대로 책을 간행한 것은 1982년부터의 일이었다.


아무튼 브로트에게 작품 일부가 간 것이 행운인 셈. 카프카는 <성>, <소송>,(혹은 심판이라는 제목으로도 출판되어 있다) <실종자>(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고쳤다.) 등 총 3편의 장편을 썼으나, <소송>의 경우, 결말은 썼지만 부분적으로 미완, <성>과 <실종자>의 경우 결말이 없다. 그리고 특이한 것이, 이 3편 중 <성>, <소송>의 주인공의 이름이 K이며, <실종자>에서는 카알 로스만(Karl Roßmann)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는 훗날 작가들의 패러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장편들이 모두 미완이기는 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평론가들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완벽한 작품으로 카프카의 장편들을 꼽는다.


3. 사후[편집]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꿈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냄으로써 생의 기괴한 그림자 놀이를 비웃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웃음이, 비애의 그 웃음이 우리가 가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최상의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카프카의 이러한 응시의 결과물들이 세계 문학이 낳은 가장 읽을 만한 작품들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 토마스 만


카프카의 소설은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도 극찬했고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르케스는 변신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카프카의 인생과 문학관에서 소재를 따온 장편 <해변의 카프카>를 쓰기도 했고 이 작품은 체코에서 프란츠 카프카 상을 받았다. 현대 문학의 최고봉 중 한 명이라고 불리오는 밀란 쿤데라도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카프카에게서 따온 소재를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카프카에 대한 연구는 국적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사실 이것도 현대의 국가를 소급할 경우에) '체코 문학'의 세부 분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독문학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독일에서 출판된 <독일 문학사>에도 독일 작가로 기술이 되어 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기본적으로 작가론 연구에서는 그 작가가 사용한 언어를 기준으로 문학을 분류하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쓰였는데 어떻게 체코어 문학으로 간주하겠는가?[11] 실제로 카프카는 보헤미아 출신이지만 프라하 이주 후 독일계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과 독일계 대학을 나왔다. 게다가 당시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국이었으므로 독일 문화권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12] 하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므로 '독일 작가'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독일어권 작가'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편 체코에서는 지금도 체코 작가로 여겨야 할 것인가 독일 작가로 여겨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유대인인데다가 독일어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그는 중국계 한국인 작가로서 서울에서 일본어 작품을 남긴 것과 마찬가지인 셈.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온갖 유럽 민족이 섞인 국가였던 탓이기도 했지만. 한 술 더 떠 이스라엘에서는 유태인이니까 이스라엘 작가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해외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그러나 브로트와 사귀던 여성 에스터 호페(1906~2007)와 이스라엘이 브로트가 공개하지 않은 카프카의 여러 유품 및 친필 원고의 소유권을 서로 주장하여 국제적인 논쟁이 된 바 있다. 1988년 소더비 경매에서 198만 달러라는 거액으로 (위에 나오듯이 심판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소송> 친필 원고는 독일 현대 문학 박물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자 이스라엘은 인정하지 않아서 독일과 논란을 빚기도 했다. 낯짝 참 두껍네 텔 아비브 도서관장 다비드 블룸버그는 유대인들의 자랑인 카프카의 자료는 이스라엘이 소장하는 게 옳다는 말을 하다가 당시 뉴욕 도서관장에게 개소리라며 카프카 본인이 그런 유서라도 남겼냐고 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브로트가 이스라엘에 카프카의 모든 것을 기부한다고 했다고 주장하지만 호페는 생전 브로트의 유서를 공개하며 자신에게 상속권을 넘겼다고 반론했다. 호페가 죽고 나서 호페의 딸들이 계속 주장하던 와중인 2012년 10월, 이스라엘 법원은 카프카의 모든 유품은 이스라엘이 가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호페의 유족들은 항소하며 계속 맞서고 있다. 당연하지만 세계 곳곳으로 퍼진 유품을 소장한 측도 어이가 없다면서 개무시하고 있다.


영국의 작가 윌 셀프는 데일리 미러 지에서 "이스라엘이 카프카를 시오니즘의 성자로 둔갑시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카프카 본인이 본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분노하고도 남을 일이다."라고 말하며 카프카를 자국의 작가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소설 어디에서도 유태인 찬양과 관련된 것은 절대 보이지 않는 소설들을 썼던 카프카를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출신을 이유로 그를 시오니즘 성자로 만든다는 국제적 비난과 비웃음과 외면을 당하고 있으며, 그를 이스라엘 작가로 간주하는 국가는 오로지 이스라엘 뿐이다. 국제 정치에서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는 대다수의 중동 아랍 국가들도 죽은 사람의 국적을 위조하는 것이냐고 비난하며, 친이스라엘 국가로 유명한 미국도 이러한 주장은 무시하니 시오니스트들의 독자적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작품 목록[편집]


장편소설

심판(Der Prozess)

성(Das Schloss)

아메리카(Amerika)

중/단편소설 및 기타 작품

변신(Die Verwandlung)

유형지에서(In der Strafkolonie)

시골의사(Ein Landarzt)

학술원에의 보고(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

굴(Der Bau)

법 앞에서(Vor dem Gesetz)

판결(선고)(Das Urteil)

단식 광대 (Ein Hungerkünstler)

작은 우화(Kleine Fabel)

돌연한 출발(Der Aufbruch)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Wunsh, Indianer zu werden)

승객(Der Fahrgast)

회랑 관람석에서(Auf der Galerie)

황제의 전갈(Eine kaiserliche Botschaft)

화부

선고

추가바람


5. 여담[편집]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카프카가 노동자용 안전모를 만들었으며, 당시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던 카프카는 이 일로 1912년에 미국 안전 협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체코 출신의 또 다른 유명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도 카프카처럼 체코어가 아닌 다른 언어(프랑스어)로 소설을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 카프카는 체코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체코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고, 그에 반해 쿤데라는 체코어를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도 모국어로 사용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실 쿤데라는 처음에는 체코어로 소설을 썼었으나, 1970년 이후부터는 그의 책의 출판이 금지되었고,[13]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줄곧 프랑스어로 집필하고 있다. 외국에서 번역할 때에도 프랑스어판을 원본으로 여긴다. 그렇게 체코어의 명성은 더욱 어둠 속으로...

'카프카'라는 성씨의 본 의미는 '검은 까마귀'를 뜻하는 체코어 단어인 Kavka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Kafka와 거의 같은 발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kavka가 가리키는 것은 일반적인 까마귀 보다는 작으며 비둘기 정도의 크기인, 목 부분이 회색으로 칠해진 까마귀의 일종으로, 프라하에서 서울에서 비둘기 보기가 쉽듯이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성씨는 당시 카프카가 유대계의 독일어 구사자라는 상황 속에서도 체코 지역에서 별 차별 없이 사는 데 도움이 되었던 존재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의 명성 때문인지 다양한 곳에 적용되는 이름이기도 하며, 예를 들어 만화가 이우일은 고양이에게 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6. 각종 매체에서의 카프카[편집]


1992년 스티븐 소더버그에 의하여 영화 『카프카』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주인공이 카프카(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했다)이긴 하지만 줄거리는 카프카 소설들의 소재로 꾸며진 허구의 내용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내 주요 인물인 에드몽 웰즈의 외모가 카프카를 닮았다고 표현된다.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 2 에서 카프카의 격언이 자주 인용된다.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변신>을 모티브로 피아노 곡을 썼고, <유형지에서>와 <소송>을 오페라로 작곡했다.

일본의 만화 도쿄 구울에서 카프카의 작품들이 인용되며 에토는 타카츠키 센으로서 데뷔할 때 쓴 책의 타이틀이《친애하는 카프카》였다.

6.1. 오규원의 시[편집]


제목은 카프카, 내용 자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파격적인 시이다. 공식적으로는 1987년 오규원이 출판한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에 처음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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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애초에 내로라하는 저술가들의 이름에다 가격을 매기고 그것을 메뉴마냥 나열했다는 것만 하더라도 충격적인데 그들 중에서도 특히 문학가들은 싸구려로 취급되는 데서 이 시는 문학이 현대에서 얼마나 찬밥을 받고 있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시를 공부하겠다는 제자를 '미친 제자'로 표현한 것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렌치 카페 값싸도 많이 팔리는 게 안팔리는 것 보다는 나을 지도


[1] 필적감정사가 카프카의 엽서를 보고 필적의 주인공은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 말에 대한 카프카의 대답.

[2]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유대계 체코인...이라고 보기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인이라고 보는게 옳다.

[3] 실제로 나치 독일이 체코를 병합할때 내세운 명분이 바로 이 보헤미아 지역이 속한 주데텐란트 때문이였다.

[4]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는 야코프 카프카(Jacob Kafka)라는 축산업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 원래는 체코어를 모어로 사용했으나, 유대인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독일어를 학습하여 사용한다. 병역을 끝마친 그는 프라하로 이주했고, 이후 율리 뢰비(Julie Löwy)라는 부유한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 아내의 자산을 바탕으로 그는 사업을 시작했고, 그의 가게는 곧 번성하여 그의 가정 역시 부유해졌다.

[5] 때문에 문학사에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라고 그러면 헤르만 카프카가 자주 언급된다.

[6] 프라하의 약 10퍼센트 정도의 지배 계층만 사용했다고 한다.

[7]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키다리 아저씨

[8] 수잔 손탁은 이런 상황에 대해 카프카가 집단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다고 대놓고 깠다.

[9]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보면 양육 방식부터 시작해서 원망이 가득하다.

[10] Max Brod, 1884~1968. 이스라엘 건국을 도우면서 시오니즘 찬양과 팔레스타인 학살을 찬양하는 글을 쓰면서 이스라엘 바깥에서 매장당하고 오로지 친구였던 카프카의 소설을 발굴하여 알린 사람으로만 알려졌다. 노엄 촘스키는 나치에게 당한 유태인이 나중에 팔레스타인에서 나치처럼 구는 경우로 브로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11] 러시아 출신 작가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노문학이 아닌 영문학으로 분류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12] 보헤미아가 오래 전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부속 왕국으로 있었던 만큼 독일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군다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붕괴 이후에도 1945년까지 주데텐란트는 독일계 주민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코의 일부 지역은 독일어권 지역이었다.

[13] 이후 22년만인 2006년, 체코에서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다시 출간되었다.



B049 –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Hemlet, Othello, King Lear, Macbeth) /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 ~ 1616)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 내면세계의 극한을 추구하면서 시적 표현으로 가득 찬 최고의 운문을 보여준 셰익스피어.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내면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리하게 그려냈다. 언어의 마술사인 작가의 절묘한 철학적 주제가 잘 어루어진 이 작품들은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장대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a.생애

세계 연극사상 최대의 극작가이며 영국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이다. 18세기 이래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발전했고, 모든 비평원리의 선례로 이용되며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 극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되어 있다.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인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의 중부지방에 있는 워릭셔의 스트랫퍼드 온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반농반상으로 한때는 공직으로 재직했으며 어머니는 농가의 딸로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1568년 읍장으로 선출되어 유복한 시민의 아들로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며 마을의 문법학교에서 공부했으나 13세 때 집안이 몰락하여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 때 8살 연상인 헤서웨이와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으나 그들은 모두 요절, 18세기 이후 그들의 자손은 단절된 것으로 추측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년시절에 대해서는 더이상 기록이 없고 연극과의 관계도 분명치 않으며 런던으로 나온 이유나 연대도 자세하지 않다.

런던 시절 배우로서의 생활은 1580년대 말(10대 후반의 나이)로 추정된다. 런던의 극장 고용원이 되어 어깨너머로 연극이나 문학에 대한 소질을 익혔다. 레스터 백작 밑에서 일을 하다가 엘리자베스 1세 사망 이후 배우단에 가담하여 무대에도 출현하는 한편, 상연용 각본을 가필하는 극단 전속작가로 근무하다가 차차 독립하여 희곡작가가 되었다. 1590년부터 약 20년 동안 극작에 전념하여 모두 37편을 발표하는 등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1608년(40대 중반)부터 창작력이 쇠퇴하여 1611년에 (눈보라)를 끝으로 붓을 꺾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평화스런 여생을 보내다가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온화한 셰익스피어 라고 불리지만 인간심리의 통찰에는 깊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과정에 있던 근대 영어의 잠재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의 최고를 창조했다.

그의 희곡은 총 36편이며 시집은 3권을 남겨 극시인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국이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다 해도 셰익스피어를 지킨다고 자랑할 만큼 그는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b.작품과 시대구분


 1. 제1기: 습작시대

선배배우의 영향을 받은 시대로 3부작 역사극 (헨리 6세)를 그의 처녀작으로 보고 있다. 그 속편에 해당하는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에 많은 영향을 준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싸움인 장미전쟁(1455--85)의 최종단계를 그린 것으로 주인공 리처드 3세를 창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수의 작품을 번안한 (실수의 희극)과 익살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당시 인기있던 유혈비극의 로마 사극 (타이터스 앤 드로니커스) 등이 초기 작품이다.

1592년부터 3년에 걸쳐 런던에 유행한 페스트 때문에 극장은 폐쇄되었고, 셰익스피어는 그동안 2편의 서사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사우샘프턴 백작에게 바쳐 그로부터 인정받았다. 극장이 폐쇄된 후 런던극단의 대규모 재편성은 그에게 유리한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평생 이 극단을 위해 희곡을 쓰게 되었는데 최초의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2. 제2기: 역사극과 희극의 완성기

1590년대 후반(20대 중반), 인간에 대한 통찰이 나타나는 시기다.

(리처드 2세): 시인기질이 있으며 자기도취적인 국왕이 수많은 고난을 겪고 비극의 주인공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극.

(한 여름밤의 꿈): 아테네 교외에서 밤의 숲을 무대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 낭만적인 희극.

(헨리 4세): 대표적인 역사극을 리처드 2세한테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성립한 헨리 4세 치하의 음모와 혼란의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방탕생활을 하는 무뢰한이자 늙은 기사 폴스테프는 햄릿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성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헬 왕자와 함께 벌이는 만행은 도덕적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18세기 이래 셰익스피어의 성격론의 중심이 되어왔다.

(베니스의 상인): 감미로운 연애희극 속에 욕심 많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등장시켜 사회통념에 따라 악인의 운명을 겪게 하면서도 소수 피압박민족의 슬픔과 분노를 강하게 호소하여 인간에 대한 온정과 공정한 사회의 관찰의 시각을 보여준다.

(뜻대로 하세요): 아덴 숲을 무대로 궁정에서 쫓겨난 공작과 가신의 전원목가적인 생활이 배경이 되어 젊은 남녀의 연애를 낭만적으로 그린 걸작 희극이다.

(십이야): 16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최고의 희극으로 평판이 높다. 작품 전체가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익살재담해학 등 희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십이야)를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줄리어스 시저)를 썼는데, 이때부터 몇 년간을 비극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제3기: 4대 비극의 탄생시기

복수의 비극을 그린 (햄릿), 질투의 비극을 그린 (오셀로), 야심의 비극을 그린 (멕베스), 어리석음의 비극을 그린 (리어 왕) 등이 있다. 이 4대 비극은 각각 소재도 다르고 다루는 방법도 다양해서 4대비극에 대해서 반드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장대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죽음과의 관련에서 인간적인 가치탐구를 시도하여 세계 연극사상 최고의 비극을 창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셰익스피어는 비극뿐만 아니라 (끝이 좋으면 다 좋지)와 같은 희극도 썼는데, 결말이 희극이지만 줄거리를 억지로 끌고간 부자연스러움과, 작품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으며 도덕성에도 혼미함이 보여 문제희극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 마지막 비극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등이 있다.


 4. 제4기: 전기극이 시대

폭풍우가 지난 다음의 체념과 화해의 심경을 반영한 전기극의 시대로 (겨울밤 이야기) (템페스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시집으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죽음)이 있다. 특히 시집 (소네트 집)은 154편으로 된 14행시로서, 정묘한 서정 속에 그의 내면생활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 영국 소네트의 정화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c. 햄릿(1601)

 1. 등장인물

햄릿: 부왕의 독살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방황과 고통 속에 살다 죽는 왕자.

거투루드: 남편인 왕을 독살하고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는 부정한 여인.

클로디어스: 햄릿의 숙부로 형의 아내와 간통하고 형을 독살한 뒤 왕이 된다.

오필리아: 햄릿을 사랑하는 재상의 딸로 부친의 죽음으로 광란 상태에서 익사함.


 2. 작품의 주요내용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얼마전 갑자기 죽은 햄릿 왕과 왕비 거투루드의 아들이다. 왕비는 남편이 죽고 얼마 후 왕위를 물려 받은 시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하는데, 이는 아들 햄릿에게 있어 부친의 죽음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마침내 부왕의 망령이 아들을 찾아와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거투루드를 유혹하고 자신을 독살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복수를 부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햄릿은 그 망령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려는 악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복수하기를 주저한다. 그는 숙부의 의심스런 눈길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척하며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에게도 냉랭하게 대한다. 마침 그곳에 유랑극단이 들어오자 햄릿은 숙부를 떠보기 위해 국왕살해의 연극대본을 써서 상연케 한다. 그것을 본 클로디어스는 안색이 변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후 햄릿은 기도를 올리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숙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죄를 확신하게 되지만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햄릿은 문 뒤에서 숨어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숙부로 오인하여 그를 죽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오필리아는 머리가 돌아 물에 빠져죽는다.

이윽고 이 일로 햄릿을 의심하게 된 클로디어스는 그를 영국으로 보내고 영국왕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부탁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국하고 왕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독을 바른 칼로 왕과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햄릿과 펜싱시합을 하게 한다. 햄릿은 상처를 입지만 그 칼을 빼앗아 레어티스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죽어가는 그의 입을 통해 왕의 음모를 알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왕비는 국왕이 햄릿에게 마시게 하기 위해 준비해둔 독주를 마시고 숨이 끊어지며 햄릿 역시 국왕을 죽인 뒤 숨을 거둔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 마리의 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신의 섭리다. 


이 작품은 중세 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영국문학은 물론 세계문학 속에 항상 새로운 문제를 제공해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햄릿에 관한 연구논문이 방대한 것처럼 이 작품을 복수비극, 성격비극, 사랑의 비극, 문제비극, 정치극이라고 다양하게 불리는 이유도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햄릿은 부친의 죽음이 자기 모친을 왕비로 삼고 현재 왕이 된 숙부에 의한 것이라는 망부의 음성을 듣고 고민 중, 이 말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극중극의 계략을 꾸며 숙부가 당황해하는 행동을 보고 망령이 한 말이 진실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놓쳐버릴 수 없는 것은,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그가 머뭇거리면서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논쟁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햄릿이 사색적일 뿐 성격의 담대성이 없었다는 성격적 무능설, 삶에 대한 비판의식이 너무나 예리해 행동이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비관론, 또는 도탄에 빠진 덴마크를 우선 구해야 되겠다는 구국사명설, 햄릿은 복수를 부도덕이라고 치부하여 고민에 빠졌다는 양심설, 심지어 숙부이지만 지금은 부왕이 된 왕에 대한 시기심으로 어명에 복종하고 싶지 않았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햄릿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남기고 있는데, 이 인물의 특징은 19세기 이래 돈키호테의 행동형(투르게네프의 분류)과 대조되어 문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찍이 괴테와 콜리지가 지적한 대로 순수하고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 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강한 햄릿의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햄릿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된 빛나는 대사다. 햄릿이 마지막 대사 “남은 건 침묵뿐이로다”하고 읊으며 숨졌을 때 고요하고 한없이 숭고한 심정에 젖게 되며 그 순간 우리의 영혼은 그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한다.


d.(오셀로)(1604)

 1. 등장인물

오셀로: 베니스정부에 근무하는 귀족출신으로 무어 인. 단순하고 소박한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이아고의 간계에 속아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자살함.

데스데모나: 순진하고 아름다우며 자아 각성을 할 줄 아는 여성. 오셀로의 아내.

이아고: 교활하고 야망이 많은 오셀로의 기수.

카시오: 충실한 군인이며 오셀로의 부관.

브라반시오: 원로원 의원이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2. 작품의 주요내용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시오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여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키프로스 섬을 향한다는 보고를 받고 오셀로는 그 섬의 수비를 위해 아내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출발한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바라고 있던 부관 지위를 카시오에게 빼앗기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키프로스 섬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정이 심한 카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마시게 하고 소동을 일으키게 하여 오셀로로부터 파면당하게 하는 한편, 데스데모나를 통해 카시오의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유한다. 그뒤 오세로에게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애중인 것처럼 보고하고,

오셀로가 그녀에게 부었던 귀한 손수건을 아내 에밀리아를 시켜 훔쳐오게 하여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두고 거짓 증거를 만든다. 인간심리의

약점을 이용한 이아고의 교묘한 거짓말을 믿어버린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목졸라 죽인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게 된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품인 (베니스의 무어 인)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가정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햄릿이나 리어 왕의 경우처럼 주인공이 겪는 갈등으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고, 주인공의 죽음과 더불어 사회질서도 회복되고 주인공의 영혼도 구제된다는 내용과는 달리, 주인공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흑인 중년남자와 백인처녀 사이의 결혼은 비극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비평가 토머스 라이머가 지적한 대로 (오셀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1 신분을 초월한 축복받지 못한 결혼의 비극 #2 여자들은 손수건을 잘 관리할 것 #3 남편들은 질투를 하기 전에 과학적인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두 남녀의 결혼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악의 화신인 이아고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조화된 음악의 세계였다. 흔히 오셀로를 사랑의 비극이라고 평하는 것은 흰눈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이 오래된 탑처럼 무너져가는 실상이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질투심에 불타는 오셀로가 연연한 꽃잎처럼 잠든 데스데모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의 감정과 배신감이 부딪쳐 내적 투쟁이 일어나고 결국 자신의 삶의 보람이자 등불이었던 아내를 죽인다. 그러면 이아고는 왜 그와 같은 음모를 꾸몄을까? 그것은 동기가 없는 악 즉, 이아고는 악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는 콜리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셀로의 영혼을 어둡게 했던 절망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구제된다. 그가 데스데모나의 시체 위에 쓰러져 통곡하며 이아고의 흉계를 깨달았을 때, 데스데모나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직 자기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각성했을 때, 자기의 과오를 뼈저리게 느끼고 여지없이 패배했음에 눈을 떳을 때 오셀로는 사랑의 살인자인 이아고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즉 절망 속에서 죽은 멕베스와는 달리 오셀로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영혼을 구제받고 있으며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질투의 올가니를 벗어나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우리 앞에 찬연하게 떠오른다.


e.리어 왕(1605)

 1. 등장인물

리어 왕: 성미가 급한 늙은 왕으로 두 딸에게 배신을 당하고 생을 마치는 인물.

고네릴: 리어 왕의 첫째딸로 아버지를 배신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주.

리건: 리어 왕의 둘째딸로 아버지를 배신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주.

코델리아: 리어 왕의 막내 딸로 진실하고 솔직하여 부왕을 매우 사랑하는 공주.

켄트 백작: 리어 왕의 충직한 신하로 끝까지 왕을 섬기다 최후를 마친 인물.

에드먼드: 글로시스터의 사생아로 의리가 없고 사악한 인물.


 2. 작품의 주요내용

영국의 전설상의 왕인 리어에게는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의 세 딸이 있는데 늙었기 때문에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주려 했다. 두 언니가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하는 것을 보고 진실한 코넬리아는 화가 나서 일부러 매정하게 응답했으므로 부왕에게 추방당한다. 리어는 두 딸들에게 교대로 머물기로 했으나 양쪽 모두에게 심한 학대를 받게 되자 궁정의 광대와 충신인 켄트 백작 두 사람만을 데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한다. 여기에서 리어는 결국  왕도 역시 일개의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은 벌거벗은 동물 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부왕의 참상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영국으로 가지만 리어와 함께 포로가 되고 그녀는

죽는다. 리어는 딸의 주검을 보고 슬퍼하며 절명한다. 두 딸은 불륜의 사랑으로 신세를 망치고 고네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이 왕위에 오른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두번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작품으로,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아버지와 자식간의 애정과 신뢰에 관한 문제를 다원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고 있는데 충성과 미덕의 인물(켄트, 글로스터 백작, 셋째딸)은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식의 전환을 보여 주고, 배은과 악덕의 인물(에드먼드, 둘째셋째딸)은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다. 이 작품에서는 선만이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 악도 비참하게 끝을 맺는다.

리어 왕의 처절한 비극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지혜의 부족이다. 한 국가의 왕에게는 가식과 진실, 명과 암, 옥과 돌을 구별할 수 있는 명철한 지혜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별력이 결여되어 비극의 원인을 자초했다. 리어 왕의 비극은 명철함의 결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군을 이끌고 온 코델리아의 선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간악한 에드먼드의 군대가 승리하는 데에도 있다. 결국 리어 왕은 광증에 빠져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황야에서 헤매는 그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참담하다. 그가 황야에서 보고 들은 것은 천둥소리와 번갯불이며 비바람과 무한히 펼쳐진 어둠과 하늘이다. 이러한 자기분열의 고통 속에서 이윽고 인간의식의 부싯돌은 빛을 발하게 된다. 일종의 깨달음인 것이다. 허식에 눈을 가리어 인간실존에 눈이 어두웠던 그는 비로서 명철함을 얻게 되고 신의 섭리까지도 의식하게 된다. 리어 왕이 광증에 빠지고서야 인생을 올바르게 관조하게 되었듯이 글로시스터 역시 두 눈을 뽑히고 맹인이 되어서야 적자인 에드거의 효심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위선에 눈이 멀어 진실을 모르다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은 가혹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셰익스피어는 리어 왕의 죽음을 통해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다.


f.(맥베스)(1605)

 1. 등장인물

맥베스: 마녀의 예언대로 왕위를 가지게 되나 또 다른 예언대로 왕위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물.

맥베스의 아내: 남편을 사주하여 왕위에 오르게 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하는 여인.

뱅코: 맥베스의 동료였으나 예언에 겁이 난 맥베스에게 죽음.


 2. 작품의 주요내용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는 개선 도중 3명의 마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들은 맥베스에게 코다의 영주, 미래의 왕, 뱅코우에게 자손이 왕이 되실 분 이라고 부른다. 맥베스는 첫번째 예언이 쉽게 들어맞자 그 다음 예언도 하루빨리 이루고 싶다는 야망을 품게 되어 마침내 남편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아내와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한다. 국왕 던컨 부자가 손님으로 자신의 성에 방문한 것을 호기로 삼아 마침내 그는 잠들어 있던 던컨을 살해한다. 그리고 도망친 왕자들에게 그 혐의가 돌아가게 흉게를 꾸며 맥베스는 왕위에 오른다. 그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뱅코 부자를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낸다. 하지만 뱅코우만 살해되고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그후 뱅코의 망령에 시달리고 귀족들에게도 의심을 사게 된 맥베스는 다시 마녀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예언을 내려줄 것을 청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맥베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며 버넘 숲이 던시네의 언덕을 향해

움직이기까지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맥더프가 잉글랜드에 있는 왕자 맬컴 곁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는 그의 처자들을 모두 살해한다. 이로 인해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되고 맥베스의 부인은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맬컴을 옹립한 잉글랜드 군이 진격해들어오고 거기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까지 합세한다. 그들이 버넘 숲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꺾어 몸을 숨기며 성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 맥베스는 버넘 숲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전장에 나가 맥더프와 만나게 되는데, 맥더프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찢어진 어머니 태내에서 꺼내진 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의 손에 의해 처치되고 맬컴이 왕자에 오른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4대비극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취재한 것으로 1606년 덴마크 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상연하기 위해 쓴 것이다. 외형상으로 볼 때 가장 짧으며 단일한 내용, 급속한 전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죄를 더해가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고독이 표현되어 있는 대사의 시적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살인에서 시작하여 살인으로 끝나며 피가 피를 부르고 무대 한쪽이 피바다를 이룬다. 어떤 이는 (맥베스)를 실제로 상연해서 세계가 피의 바다로 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 연극인 실패작 이라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중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경향이 매우 특이하게 장식되고 있는데, 주인공인 맥베스와 그의 부인에 대한 성격묘사가 그러하다 맥베스는 애초에 야심은 있었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부족하고 마음이 약하여 고민한다.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 반역죄임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인간적인 번민에 사로잡히게 되나 그의 부인은 이와 반대로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욕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자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양심이 남아 있던 맥베스는 미래의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위험인물들을 처단하며, 그의 아내는 지난날의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몽유병환자가 되어 비참한 생의 종말을 고한다.

한마디로 이 비극은 야심의 비극임과 동시에 양심의 비극이다. 장군인 맥베스가 던컨 왕을 죽이고 왕관을 쓰지만 자식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반격과 신하들의 반란으로 무참히 죽는다는 인과응보의 비극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 분수에 넘어 지나친 야심을 갖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인간파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맥베스)가 그리스적이라는 극평가들의 자격은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작품들 역시 공통적으로 인과응보 의 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B048 – 데카메론 (Decameron, 부제: "Principe Galeotto") / 보카치오(G. Boccacio, 1313 ~ 1375)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단테의 (신곡)에 비해 (인곡)으로 불리어지는 작품.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흑사병이 돌자 이를 피해 10명의 남녀가 교외의 별장에서 머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 1인당 1편씩 열흘간 이야기한 것을 기록한 (데카메론)은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중세적 시각과는 달리 보통사람의 육체적 욕망을 제재로 하고 있다. 거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100편의 이야기는 외설과 교훈, 풍자와 관용, 로맨스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교차하면서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하는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3대 인문주의자 보카치오는 서정시, 서사시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다. 단테의 (신곡)에 비해 (인곡)이라 불리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1313년에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체르탈도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서 보내다가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가 있던 피렌체에 가서 살았다는 설이 있다.

1321년에 단테가 죽었을 때 보카치오는 8세였으며 가정교사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이 교사가 열렬한 단테 숭배자였으므로 어릴 때부터 말년에 피렌체 시의 요청으로 (신곡)을 강의하게 되었을 때까지 중세 최대의 문학자는 단테였다. 보카치오는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시를 지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직업을 잇게 하기 위해 보카치오가 12세가 되자 상업술을 가르칠 목적으로 나폴리로 보냈다. 문화의 중심지인 나폴리에서 보카치오는 정서적 생활에 반해 상업술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 공부에만 전념했다. 1333년의 부활제 전야, 그는 나폴리의 로베르토 왕의 딸인 미모의 마리아를 만났다. 첫눈에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일생을 통해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늘 피아메타라는 이름으로 마리아를 그리워하고 찬양했다. 1350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피렌체 공화정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아 중요한 외교관 직책을 맡기도 했다. 이때 그는 로마 교황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황제와 황후 등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동안에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문주의의 창시자인 페트라르카와 친교를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데카메론)은 1348년에서 1353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문단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민중으로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곧 외국에까지 퍼졌고, 거리의 변사들까지도 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정도였다. 인쇄술도 없고 종이도 귀한 시대에 설화형식의 단편소설이 퍼진 것이었다.1348년 피렌체에서 괴질 페스트가 만연하여 수만 명의 시민이 죽어갔으며, 부유층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할 형편이었다. 환자와 미처 피신하지 못한 빈곤한 사람들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카치오 또한 그때 아버지를 잃었으나, 그 자신은 나폴리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재난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그 참담한 광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다. 교외의 화려한 별장으로 피난 가 10일 동안 계속 매일 열 명의 남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꾸며 (데카메론)을 쓴 것이다. 이 소설을  10일 이야기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정신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대체로 문장표현이 거친 편이다. 이야기에 때때로 나오는 외설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생활을 솔직히 묘사하다 보니 자연히 나오게 된 것뿐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데카메론)에 나오는 100편의 이야기는,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스운 이야기로부터 도덕적인 훈화,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의 수도자들에 대한 풍자, 그리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 등 아주 다채롭다.

1370년 보카치오는 교화인 체르탈도에 돌아와 머무르다가, 1373년에 피렌테 영주의 부탁으로 성 스테파노 디 바디아 성당에서 단테의 (신곡)을 상의했다. 그것은 보카치오가 소년 단테의 위대성에 대해 강력한 인상을 받았으며, 평생토록 단테를 존경했음을 증명한 일이었다. 보카치오는 몇달 후 병 때문에 체르탈도에 돌아와 있다가 1375년 12월에 숨을 거두었다.


a.작품의 주요내용

1348년경 페스트가 피렌체를 휩쓸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꽃의 도시라 불리던 피렌체는 페허가 되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를 버리고 피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황량하게 시체만 뒹구는 도시의 어느 성당 안에서는 7명의 귀부인이 모여 살아갈 궁리를 모색하던 끝에 피난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들만이 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남자들을 같이 데려가자고 의견을 모으고, 이들이 토의하던 도중에 세 명의 잘생긴 청년이 성당을 찾아오게 된다. 여자들에게 설명을 들은 청년들이 찬성을 하고, 이리하여 열 명의 남녀는 교외에 있는 피에졸 언덕의 별장으로 가게 된다.

별장에 도착한 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2주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수난날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쉬시로 했기 때문에 총 백 편의 이야기를 서로가 하게 된다. 또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 부르는 발라드가 매일 한 편씩 총 열 곡이 된다.

한 사람씩 번갈아하며 하는 이야기는 변화가 풍부하고 그 무대에고 유럽 각지에서 동방에까지 걸쳐 있으며, 인물이나 성격기질 따위도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또 이야기의 내용도 우스운 이야기, 비련 이아기, 잔혹한 이야기,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이야기 등 기발한 줄거리와 기상천외한 장면이 교차되고, 아이러니와 풍자, 간지러운 선정적인 무드를 풍기면서 진행된다. 그 속에는 중세의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려는 애욕의 기쁨이 대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봉건적인 세력에 대한 신흥 부르주아 서민계층의 쌓이고 쌓인 울분이 깔려 있고 그것이 너털웃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섹스의 해방과 기쁨, 성직자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조소, 낡은 지배계급에 대한 서민의 평등한 감정이다. 여기에 나타난 여성의 매력은 그때까지 천상적인 플라토닉한 베일을 벗겨버리고 육욕과 직결되는 매력일 뿐 아니라, 간통조차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으로 시인되고 있다. 사랑의 모험이나 테크닉, 소위 색정 이야기는 이 책의 이름을 높게 만든 특색이기도 하다. 또 신의 권위로 서민에겐 금욕과 인내를 강요하면서도 성직의 특권으로 현세적인 인간의 욕망에 도취되어 있던 교회나 신부의 타락과 기만성이 비웃음거리로 통렬히 폭로되어 있다. 이것은 이윽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까지도 의심하는 부르주아의 허무적인 의식이 현실적으로 죽음이란 보편적인 사실과 대치된다.여기서는 제왕이나 교황도 똑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란 합리적인 해석이 나온다. 그러므로 마부가 왕비를 범하는 논리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적인 실리주의로부터 인간의 가치란 벼슬이 아닌 재능이므로 합리적인 두뇌가 존중된다. 선량한 우둔함보다 스마트한 잔꾀가 모럴로서 인정되고 속는 자보다 속이는 자가 갈채를 받는다.

이 책은 당시에도 너무 음란하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그 말에 대해 작가는 세상의 부인들이 좀더 도덕적인 화제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도 좀더 도덕적인 것을 썼을 것이다 라고 응수했다. 이말로 미루어 보면 이 책이 애로틱한 사랑의 모험이나 음란한 이야기로 메워져 있는 까닭도 수긍이 간다.


b.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데카메론)은 토막 이야기가 형식을 취해 10일 100회의 기상 천외한 단편 이야기들을 엮어냄으로써 초서나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후세의 유럽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문학사상 이처럼 모방변형표절을 당한 작품은 없다. 존스의 말에 의하면 각국에서 100여 종의 유사작품이 나왔다고 한다.

(데카메론)은 작품 속에 넘치는 통렬한 성직자 비판정신으로 말미암아 보카치오의 가치관이 인간의 사랑에 두어져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똑같이 격렬한 교황권력 비판을  하느님의 사랑 에 기준을 두면서 전개한 단테의 (신곡)(신성한 비극)에 비해 종종 (인곡)(인간의 희극)이라고 일컬어진다. 한때 이 작품이 카톨릭 윤리에 어긋난다 하여 소외된 적이 있으나 소위 사실주의 문학관이 대두됨에 따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 작품은 10일 동안에 전개되는 열 편의 발라드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세분화된 이야기가 독립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격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연관된 사회적 현실의 바탕은 엄연히 한 작품으로 존립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는 완전한 의미에서 문학적인 창작이 아니라, 그 당시 떠돌던 이야기와 보카치오 자신이 이전에 써놓았던 소설들의 집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무작위로 모은 이야기가 질서를 지키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작가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예술론에 입각한 통일성과 인간의 지성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성을 초월한 인상을 주는 조건이 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고발정신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신랄한 풍자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뚜렷이 읽을 수가 있기에 더욱 더 새로운 오늘날에도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보카치오가 고대문학과 고대역사의 보존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때까지 신부나 수도자의 손에만 독차지되었던 고대작품들은 자칫하면 그 보존조차 걱정되는 상태에 있었다. 보카치오는 각 수도원을 찾아 다니며 이것을 손수 베껴 후세의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또 라틴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호메로스 등의 고전문헌을 해독하려 한 점에서 페트라르카에 못지않은 최대의 인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책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의 산문으로 씌어진 최초의 작품으로 이런 점에서 중세와 인연을 끊은 근대의 인간적인 자각을 연

여명이라 평가되고 있다.



B047 – 신곡  (神曲, La divina commedia) / 단테(Dante Alighieri, 1265 ~ 1321)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세의 모든 학문을 총괄하고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쌓은 장편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저술한 불멸의 고전.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방문하여 천태만상의 인간들의 죄와 벌을 목격하고, 구원의 여인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의 비전을 보는 것을 중심 플롯으로 하는  신곡 은 단테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와 당대의 정치상황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독교가 삶의 틀이었던 중세의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a.작자의 생애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일컬어지는 단테, 그리고 (신곡)은 밀턴의 (실락원)이나 번연의 (천로역정) 등과 더불어 최상의 기독교 문학이라 불리어진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유럽 중세문학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출신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 대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게 되었다. 세레명은 두란테(Durante)인데, 후에 생략하여 단테(Dante)라고 고쳤다. 단테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계모의 손에 키워져 그는 모성애를 알지 못한 채 동경의 마음만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했으나 장남인 단테의 교육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게 된 단테는 책임감이 있고 학구심에 불타는,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신곡)에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지옥, 연옥을 안내하는 데서도 나타나듯, 단테는 그리스 로마 고전작가들의 문장을 규범으로 삼았다. 동시에 새로운 사조에도 민감했다. 당시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일어난 속어시에 눈을 돌렸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시법을 익혀 그 분야에서 제 1인자임을 자인했다. 그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베아트리체는 그가 9세가 되던 해에 만났다. 그후에도 단테는 그녀의 모습을 가슴 속에 새기며 성장했는데, 고독한 청년의 마음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현실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연인이었기에 그 사랑은 더 깊었고 어느덧 성모 신앙과도 같은 마음의 지주가 되었다.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녀는 단테의 영원한 연인이 되고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승화되었다.

단테의 역작 (신생)은 그녀가 죽은 뒤인 1292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책 끝머리에서 그녀에게 품은 지극한 사랑에 부응할 예술작품을 쓰겠다는 결의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있어서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단테의 청춘시대는 이상과 같이 교우와 학문과 시와 슬픈 사랑속에서 지나갔다. 그러나 필생의 대작 신곡의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앞길에는 뜻하지 않은 기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테가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참가한 것은 1295년 카피타노 델포플로의 일원이 되면서부터였다. 동시에 그는 통령선출 심의위원회의 고문을 겸했고  의사 약제사 조합 에도 가입했다. 이것은 귀족 출신자가 공적 정치활동을 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또 이듬해에는 1백인 위원회 위원이 되고, 그뒤 3년간 도시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단테에게 있어서 운명의 해라고 할 수 있는 1300년 그가 (신곡) 서두에서 노래한 인생의 반을 맞이한 해다. 그의 나이 35세, 그해 6월 14일 그는 도시국가의 최고지위인 통령에 선출되었다. 공직에 참여한 지 불과 5년인 그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이 제도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해 피렌체 공화국이 채택한 것으로, 시내 6지구를 대표하는 6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무렵 피렌체에서는 집권세력인 겔프 당이 백당과 흑당으로 갈려 또다시 격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백파에 속해 있던 단테는 통령의 임기가 끝나자 2명의 피렌체인과 함께 로마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 동안에 국내의 사태가 급전했다. 흑파가 정권을 잡아 백파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1302년 1월 27일, 그는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되어 벌금과 공직추방, 그리고 2년간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출두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단테는 출두하지 않았다. 이에 3월 10일에는 영구추방이 결정되는 한편, 시 정부에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가혹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런 이유로 단테는 그리운 조국의 땅을 두번 다시 밟지 못했다. 1302년 봄은 단테에게 있어서 정말 쓰라린 시기였다. 고국에 돌아가 마음의 준비라도 한 뒤 처벌을 받았다면 그래도 좀 나았을 텐데 여행길에서 가혹한 추방의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단테는 고독한 천애의 표랑생활이 시작되었다.

단테는 이 무렵 대서사시 (신곡)의 완성을 목표로 하여 외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추방 후 얼마 되지 않아 붓을 들기 시작한 걸작은 (지옥) (연옥)으로 진행되어 마침내 (천국)의 가경으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편은 특히 신학적인 논의를 초래할 만한 대목인 만큼 용의주도한 학문적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맑은 심경에 도달한 시인은 한걸음 한걸음 정진해나갔다.

1315년 피렌체 공화국은 단테가 개심의 뜻을 보이고 일정기간 금고형에 응한다면 은사를 내리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단테가 이를 거절하자 또 다시 그의 죄상을 추인함과 아울러 자식들에 대해서도 영구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만년의 단테에게는 파란 많은 반생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조용한 안주의 땅 라벤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1317년 여름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 기도 노벨로 공의 작은 궁전이 그를 따뜻이 예우해주었던 것이다.

1321년 여름,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이웃나라 베네치아 공화국과 불화가 시작되자 기도 노벨로 공은 그 화평교섭을 단테에게 요청했는데, 단테는 이 교섭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말레리아에 걸려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은 9월 13일 밤 파란 많은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에 탈고되었다. 기도 노벨로 공은 이 시인의 머리 위에 월계수 화관을 정중히 바쳤다. 그의 관은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단테가 숨진 이후 뒤늦게 단테의 위대성을 깨달은 피렌체 시민들은 단테의 유골을 옮겨가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실패하자, 그 대신 사원에 등을 달고 해마다 단테가 세상을 떠난 날 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그렇게도 피렌체의 개관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단테의 소망이 후에 뒤늦게나마 이루어진 셈이다. 단테의 사후 수년 뒤 피렌체에서는 국보와 같은 대인물을 이유 없이 괴롭힌 것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사원이나 일반에게 널리 읽도록 하고, 주해하게 했다. 그리하여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가 이를 최초로 주해했다.


b.작품의 주요내용

지옥편: 9개 지옥으로 분류

연옥편: 하의 연옥, 상의 연옥, 지상낙원 하의 연옥(제1환도--제7환도)

천국편: 제1천--제10천

(신곡)은 단테가 작중의 인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지옥과 연옥천국 등 내세의 영혼의 세계를 두루 편력하면서 내세의 이상한 모습을 모두 목격하고 거기서 심판을 받고 있는 명사들의 모습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35세 되던 해 성 금요일 전날 밤 단테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언덕 위에 빛이 비쳐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막아 올라갈 수 없었다. 그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길을 인도했다. 그는 우선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 이 산의 꼭대기에서 단테를 베아트리체를 따라간 단테는 천국에 이르러 성 베르나르의 안내로 천상 속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맛보게 된다는 줄거리의 내용이다. 전 일정은 7일 6시간이다.


1. 지옥편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로 이곳에 있는 영혼들은 죽을 때까지 악과 이웃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지옥에 이르기 전에 지옥의 안뜰이라고 하는 컴컴한 들판이 있는데, 여기는 태만한 자들이 있다. 이어 카론이 사공이 되어 지키고 있는 아케론강이 나타난다. 이 강은 지옥문을 지나 곧이어 펼쳐지는 지옥 안뜰과 본 지옥을 구분짓고 있다.

제1지옥: 이곳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무신론자 이교도들이 벌을 받는 곳인데, 아담, 하와,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 왕 등은 특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호메로스, 헥토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등이 그 지옥에 있었다.

제2지옥: 여기서부터가 진짜 지옥인데 여기에는 애욕의 죄를 지은 자들의 지옥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 즉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 원인이 된 미녀 헬레나 등이 등장한다. 반인반수의 얼굴을 한 한 미노스가 공정하게 심사를 한다.

제3지옥: 이곳은 미식가와 폭식가의 지옥으로 실컷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체르베로스라는 삼두견이 살을 찢고 있었다.

제4지옥: 재산을 모은 자와 낭비자가 모여 있는 지옥이다.

제5지옥: 여기는 분노에 몸을 맡긴 자들의 지옥이다.

제6지옥: 이곳부터 하부지옥이다. 독신죄, 이교도의 쾌락을 생활최고의 원리라고 주장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벌받고 있다.

제7지옥: 이곳에는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미노타우루스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

제8지옥: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자를 사기친 죄인들이 있는데 10개의 골짜기로 나뉘어져 있다.

제9지옥: 반역의 죄, 폭정의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 아우를 살해한 카인, 단테의 정적인 황제당의 죄상을 다룬다.


2. 연옥편

연옥은 정죄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Peccata), 곧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폭식 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제를 받게 되고 이어 지상낙원으로 오를 수 있다. 이 연옥에서 정죄하고 있는 죄들이 지옥에서 벌받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것임을 보고 당혹감을 느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지옥의 죄들은 뉘우치지 못한 자들의 것이고 연옥의 죄들은 구원받은 영혼들로서 천국에 올라가기에 앞서 이곳에서 정죄할 수 있는 죄인 것이다. 이 지상낙원은 지상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교회와 군주국의 보편적인 권력들을 조화시킬 줄 안다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엠피레오에 몸을 씻고 선행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에우노에 강물을 맛보는 정화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으로 오른다. (연옥편)은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신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3. 천국편

천국은 빛과 춤과 노래와 완전한 덕이 있는 왕국이다. 여기 있는 영혼들의 본거지는 정화천이나, 단테가 도착하자 그에게 축복의 여러 계층을 알려주기 위해 각각 그들에게 적합한 지역으로 내려가 그를 맞는다. 천당은 10개의 천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8천에서 영혼의 구원에 가장 중요한 신학상의 질문을 받는다. 성 베드로가 신앙에 대해, 성 야고보가 희망에 대해, 성 요한이 사랑에 대해 각각 질문하는데, 단테는 훌륭히 합격하여 제9천으로 승천한다. 베아트리체는 여기서 관조

의 상징인 성 베르나르에게 안내역을 넘겨준다. 새로운 안내역 성 베르나르는 성모 마리아에게 단테의 염원을 무언중에 전달하고 이리하여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게 되어,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중에 시성의 눈앞에 하나의 바퀴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셋이면서 하나인 바퀴가 빛을 낸다. 그 바퀴 속에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 배례하며 법열에 취한다. 성자들의 기도하는 동작은 마치 대성당의 집사를 집례하는 성직자들의 조용한 동작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하여 단테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신곡)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신곡)은 풍부한 지식과 깊은 인생체험을 가진 희귀한 재능에 의해 씌어진 중세문학의 보석이다.


c.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신곡)은 조국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해 방랑지에서 19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전곡 14,233행 100가로 나누고, 다시 (지옥)편 34가(서곡 포함),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구성되어 있다. 33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가 속죄에 오른 연령에 해당하는 수이며 100은 완전수 10의 자승수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신곡은 일시에 발표된 것이 아니고 (지옥)편이 1300--1308년에, (연옥)편이 1313년에, 천국편은 사후에 유고작으로 발표되었다. 

제명은 최초에는 (코메디아Comedia)라고만 발표되었으나 16세기 중엽 이후 후세인들이 내용이 숭고함에 연유하여 디비나(Divina;신성한)를 붙여 신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작자가 코메디아라고 붙인 것은 시가 고뇌와 증오로부터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그친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며, 그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회오와 증오로부터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그친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며, 그 내용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회오와 정화로 다시 염원의 복지에 도달한다는, 항상 정진의 여로를 그린 자유의식의 일대 신비적종교적 환상의 시다. 단테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청춘기에 큰 영향을 중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고한 플라토닉 러브에서 연유되는데, 그의 사망이 준 충격을 종교적 차원에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애사건은 위대한 작품을 쓰게 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 10년 동안에 걸친 단테의 타락한 생활에 대해서는 (신곡) 첫머리의 캄캄한 숲을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지상낙원에 모습을 나타내어 단테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지옥)편과 (연옥)편에 걸쳐 단테의 동반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상징한다. 천국을 편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간적 능력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천국까지 인도자의 구실을 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인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베아트리체는  신앙의 지식과  신학 및 종교적 상념 을 상징하고 있다.

(신곡)에서 골짜기는 (지옥)편, 언덕은 (연옥)편, 하늘은 (천국)편을 시사한다. 아홉 구역으로 분류된 지옥은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의 세계이다. 일곱 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연옥은 구원받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그 죄를 깨끗하게 하는 곳이다. 열 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는 천국은 인간들이 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그 결말은 기쁨으로 넘쳐흐른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지옥에 울고, 연옥에서 기대했으며, 천국에서 웃었다.

또 하나는 추방당해서 20년이나 표랑한 그로서 정치이상과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작용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다음으로는 언어학적 의의이다. 라틴 어가 주로 사용되던 당시에 단테는 토속어인 이탈리아 어로 (신곡)을 쓴 것도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이는 당대의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유럽에 민족주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자료는 성서, 그리스로마의 모든 고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오거스틴의 신학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곡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창작 중 하나이며 인류 문학사상 불후의 금자탑이다. 이로써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 어로부터 분리, 국민문학이 완성되며 단테는 국민문학의 비조가 되었다. 괴테도 이 시를 가리켜 인간의 손으로 된 최고의 것 이라 했고, 헤겔, 쇼펜하우어, 셀링 같은 철학가도 이 연구를 평생 동안 놓지 않았다. 중세기 사상의 총괄인 동시에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의 지적 심오, 신비주의자의 정신적 비약, 문예부흥의 선구자로서의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을 인곡 이라 한 것은 단테의 (신곡)에 대한 대칭 개념이며, 보카치오, 페트라르카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작가로 지칭하는 것도 그의 문학이 모든 중세사상을 총체적으로 정리, 새로운 세계로 비약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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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출처: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17-07-28 22:42:06


동음이의어·다의어/ㅅ



1. 新曲

2. 神曲

2.1.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2.1.1. 신곡 읽기의 어려움

2.1.2. 신곡 읽기의 즐거움

2.1.3. 줄거리

2.1.3.1. 지옥편

2.1.3.2. 연옥편

2.1.3.3. 천국편

2.2. 아사키 1집 앨범, 혹은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

2.3.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에서 나오는 노래

2.4. 일본의 인터넷 용어

3. 神麯


1. 新曲[편집]


새로 나온 노래.

단테 신곡 들어봤어? / 어 노래 좋더라


2. 神曲[편집]


2.1.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Michelino_DanteAndHisPoem.jpg


단테 알리기에리의 시집으로 단테가 저승 세상(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게 줄거리.


영어로 하면 Divine Comedy다. 본래 고전 시대 그리스에서 Comoidia(코미디의 어원)라는 말은 희극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비극과는 반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극 장르를 의미했다. 또한 극중의 단테가 천국에 이르게 되므로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다. 또 당대에 진지한 책은 전부 라틴어로 쓰여졌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적힌 것은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당시 단테가 이탈리아 방언을 섞어서 만든 이탈리아어로 쓴 이 책은 commedia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절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죄인들을 비웃으며 개드립을 치는 내용이 아니다.[1]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단테는 <희곡(La Commedia)>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1555년 베니스판 이래 희곡 앞에 "Divinia"가 추가되어 <신곡>이 되었다.[2]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옥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각각 3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서곡이 더해져[3] 총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문어인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쓰여져 이탈리아어의 생성과 발전이 있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근대까지 유명한 저작들은 모두 라틴어로 쓰여졌다는 점을 볼 때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당대에 당시의 지역 언어로 작품을 쓴 덕에 이탈리아어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실제로 당대의 이탈리아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미노타우르스나 케르베로스 등이 지옥의 악마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웬만한 고어물 저리 가랄 정도의 잔인한 묘사로 인해 말이 많다. 또한 무함마드와 그의 사위 알리가 기독교의 분열을 조장한 죄로 지옥에 있다는 설정 때문에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취급이 안 좋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종교차별, 우월주의의 구역질나는 시를 명작이라고 언급하는 게 어이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다만 이건 시대가 시대니 그러려니 하자. 교황을 포함한 성직자들도 대놓고 지옥에 있다고 묘사한 등 과연 700년 전에 쓴 게 맞는지 파격적인 점도 많아서인가, 곳곳에서 금서로 지정할 때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가 대접받고 있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트로이 전쟁에 대해 호메로스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는 것.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가 원래 트로이 옹호론자였고 그것에 영향을 받았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단테는 정치가이기도 했는데 로마의 제정과 기독교의 이상이 절대적으로 조화되기를 꿈꾸었다. 로마의 시조인 아이네이아스의 고향인 트로이를 옹호하고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삼은 것은 어느 것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복합적인 원천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고통 없는 림보에서 편히 지내고,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이스카리옷 유다와 동급의 처벌을 받고 있는 등, 로마 제정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단테의 신곡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지옥이나 천국을 바라본 게 아닌 개인적인, 즉 주관적인 시점에서 쓰여진 부분이 더 많음을 알 수 있고, 이 때문에 단테가 말하는 지옥, 연옥, 천국은 실제의 모습으로서 비추어지기보다는 문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지옥편에 비해 연옥편과 천국편은 난해한 내용으로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천국편은 특히 수비학적이나 신비주의적 묘사, 중세 시대 신학적 관점이 잔뜩 들어있어서 혼란스럽게 하고, 특히 3주덕(믿음 소망 사랑)이 나오면 미친다(...). 애초에 단테도 천국편의 시작에서 천국편은 '좀 되는' 사람만 읽으라 말하는데 하단의 신곡 읽기의 어려움 문단에 자세히 설명되 있지만 천국편은 해석본의 각주 보느라 머리가 아파온다(...).

서양에서는 Comedia Divina라고 해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따로 분리해서 파기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지옥편의 세계에 대한 묘사는 촥촥 들어오는데 연옥과 천국은 뭔가 두루뭉실하며 이해가 안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가리켜서 '현실이 지옥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더라.


지옥편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단테 클럽'이라는 소설 등 많은 이야기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로뎅의 '지옥의 문'도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고전 RPG 울티마 시리즈의 4편도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단테스 인페르노도 제목부터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게임.


한국의 '새벗' 이란 출판사[4]에서 아동용(!)으로 이 책을 번안한 적이 있다. 제목은 '낮도 밤도 없는 곳'. 주인공은 한국인 소년으로, 원작에서는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인도하는데 한국판에서는 김삿갓(…)이 길을 인도하신다. 대체 조선의 김삿갓과 기독교의 지옥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겠지만, 아마도 저자가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인을 꼽느라고 그랬던 것으로 추측한다. 지옥편에서는 원서를 그대로 따르는 편이지만, 한국인 독자에게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한국인 죄인(주인공의 옆집 아저씨)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김삿갓이 지옥과 연옥[5]을 안내하고 천국편은 주인공의 어릴적 담임 선생님이 인도하시는데, 원서든 한국판이든 연옥편과 천국편은 재미가 덜하다(…). 삽화가 옛날식이라 붓과 먹을 사용해 아동이 보기에 무리가 없지만, 삽화가의 필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겉보기에 엉성해 보여도 굉장히 그로테스크해서 무섭다(…). 특히 얼굴이 돌아간 죄수들의 모습은 삽화와 소설을 같이 읽어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


게임 바이오하자드 레벌레이션스의 테러조직 벨뜨로는 이 작품의 빠 수준(…)이긴 하다만 현실은 그저 "이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깨닫게 해주겠다능!" 이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는 주제에 감히 이 작품의 구절들을 지껄이며 테러를 벌이고 다니는 중2병 환자들.


이 신곡과 비교해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인곡(人曲, Human comedy)'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선 지옥편 하나만 파는 학과도 있는 모양이다(…). 단테의 작품만 연구하는 학자가 따로 있을 정도니 그만큼 서양문학연구계에서 인정받는 대작이라고 봐야 한다.

단테의 신곡이 이처럼 대작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서양문화의 두 원류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하나로 통합한 고전작품이기 때문이다.


1d4chan에서는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 지옥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 최초의 자캐 삽입 팬픽을 쓴 거니까[6]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다(...)고 까고 있다. 단테 항목에는 대신 Warhammer 40,000의 등장 인물인 챕터 마스터 단테가 설명되어있다.


세인트☆영멘에서는 하계에 머무르는 영들을 위한 천계 관광 가이드북으로 소개되는데, 하필 1권이 지옥편이라 다들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오는 사람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구성이라고...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다며 흔히 인용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보통 정치적 무관심이나 잘못된 형태의 양비론을 비판할 때 인용한다. 그런데 정작 신곡에서는 이런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비슷한 문구를 찾자면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았지만 반항하지도 않은, 불쌍한 영혼과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언급하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이 아니라 연옥에 가깝다. 위치도 림보보다 오히려 더 위에 있다.


이렇게 왜곡된 이유에 대해선 존 F. 케네디에게 책임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케네디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및 1963년 평화봉사단 연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한 형태로 저 문구를 언급하였다. 케네디가 단순히 신곡의 구절을 잘못 읽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맥을 무시한 인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는다.


2.1.1. 신곡 읽기의 어려움[편집]


단테의 신곡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끝까지 읽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다. 괜히 단테학자들이 있는게 아니다.


작품과 주변적 상황의 이해-당시 언어, 문학의 특징 단테의 짠내나는 인생과 당시 피렌체의 상황, 단테 이전의 고전들에 대한 지식 등등이 필요하다.[7] 이것을 계기로 다른 교양상식을 키울 수 있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복잡성-거의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와 단테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이러니 일반적으로 등장 인물을 물으면 단테와 버질, 비아트리체 정도만 나올 수밖에.

그리스 로마의 신화 및 고전 작품들의 인용- 위에 언급된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요 베르길리우스, 토마스 아퀴나스등에 대한 단테 나름대로 받아들인 관념론이 나온다.

서사시의 전통-굳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호메로스만 생각해보자.

미주의 압박. 예전 번역본은 한 곡이 끝나면 주석이 마지막에 몰아서 기재 되 있어서 한 곡 읽고 주석 보고(...) 요즘 책은 한 페이지 아래에 깔끔하게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가 신곡을 읽는건지 주석을 읽는건지 구분이 안된다(...)


2.1.2. 신곡 읽기의 즐거움[편집]


서로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음 - 최소 문자적, 알레고리, 도덕적, 신비적의 네 가지 방법론으로 읽을 수 있다.

생생하고 효과적인 묘사 - 지옥의 묘사가 매우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사디스트?

여러 교양과 지식을 넓힐 수 있음 - 중세 민중들의 세계관이나 당시 지리, 천문학 등. 물론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지만, 어디서 아는 척 좀 할만하다. 근데 신곡을 완전히 마스터할 정도면 아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지식인이 된다.

죄인들과 선인들의 모습은 일종의 사회적 풍자라고 볼 수 있기도 해서, 단테 본인과 당대의 정치관을 알아볼 수 있다.


2.1.3. 줄거리[편집]


단테가 35세 때 밤날에 길을 걷다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영어로는 버질)가 내려와 지옥, 연옥을 안내하고, 이후 베아트리체가 그를 이끌어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2.1.3.1. 지옥편[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50px.png

이 문단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지옥편(으)로 검색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단테가 35세 때 밤날에 길을 걷다 산짐승들에게 위협당할 때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 영어로는 버질)가 나타나 단테를 구해주고 그를 지옥으로 인도해준다. 지옥의 뱃사공 카론이 꾸물거리는 죄인들을 노로 후려 차며 배에 태우고 있다.


이후 단테는 그를 지나서 지옥의 문과 거기에 새겨진 글귀를 보게 된다.[8] 가장 유명한 구절인 제 3곡 첫번째 부분은 마지막의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라샤떼 오녜 스페란자, 보이 낀뜨라떼: 모든 희망을 버려라, 들어오는 그대들이여)'.[9]


(나무위키에 기재되어 있던 역본)

나를 지나는 사람은 비탄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하느님의 권능과 최고의 지성과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 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그대, 모든 희망을 버려라.


(민음사 역본)

나를 거쳐서 길은 황량의 도시로

나를 거쳐서 길은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서 길은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나의 창조주는 정의로 움직이시어

전능한 힘과 한량없는 지혜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드셨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홍신문화사 역본)[10]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한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파멸한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 최고의 지혜, 그리고

태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오직 무궁(無窮)이 있을 뿐,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학원출판사 역본(1984년출판)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자 있거든 나를 거쳐가거라.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 가거라.

파멸의 사람들에게 끼이고자 하는 자 나를 거처가거라.


정의는 지존하신 주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 없나니

오직 무긍만이 있을 뿐, 나는 무궁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 가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구글 번역본)

나로 말미암아 너희는 불행의 도시로 빠져 나간다.

나를 통하여 당신은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됩니다.

예를 들어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통해서.


내 직물 이동의 창시자 :

나를 뒤엎 으려면 힘의 신의 임무가 있었다.

최극 지혜, 그리고 원시 사랑.


나보다 먼저 만드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물건을 저장하는 것이었다.

영원하고 영원한 나는 견디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십시오.


(이탈리아어 원본)

Per me si va ne la citta dolente,

per me si va ne l'etterno dolore,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Giustizia mosse il mio alto fattore;

fecemi la divina podestate,

la somma sapienza e 'l primo amore.


Dinanzi a me non fuor cose create

se non etterne, e io etterno duro.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영어 역본)

Through me you pass into the city of woe: 

Through me you pass into eternal pain: 

Through me among the people lost for aye. 


Justice the founder of my fabric moved: 

To rear me was the task of Power divine, 

Supremest Wisdom, and primeval Love. 


Before me things create were none, save things 

Eternal, and eternal I endure. 

Abandon all hope, ye who enter here.


예수가 내려오기 전의 그리스/로마 시대의 위인들도 등장하는데, 단순히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도덕적인 문제들로 인해 추락한 것으로 묘사되며, 같은 연유로 연옥이나 천국에 있는 비기독교인들도 보인다. 천국만큼은 안 되더라도 적어도 고통이 없는 림보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헥토르, 살라흐 앗 딘 같은 인물은 궁전에서 살며 대접받는다. 다만 그들도 생활은 편할지라도 천국에 가서 하느님을 대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지옥에는 단테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던 사람이나 그의 정치적 라이벌도 많이 들어있다(…). 심지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살아 있었는데도 영혼은 이미 지옥에 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뭐야 이거. 단테가 지옥의 몇몇 죄인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것도 특징. 반대로 몇몇 죄인들에겐 꼴 좋다는 식으로 비웃어주기도 한다.


지옥의 최하층에는 마왕 루키페르가 파묻혀 있다. 루키페르는 그 입에 3명의 악인을 물고 있는데, 가운데에 물려있는 것은 이스카리옷 유다이고, 양 옆에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물려 있다.


루키페르의 몸을 타고 올라가(…) 지옥을 빠져나가고 나면 연옥산이 있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루키페르의 몸이 지구 한 가운데에 있어서 아래 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 작중 단테도 이 부분에서 약간 헷갈려한다. 연옥산을 오르는 내용이 연옥편이다. 연옥산을 오른 다음에는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대신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와 함께 천국을 여행하게 된다. 이 부분이 천국편.


지옥의 구조는 다음과 같으며 역피라미드의 원추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들 계속 추가바람.


지옥의 문

아케론 강

뱃사공 카론이 죄인들을 강너머 지옥으로 실어나른다.[11] 강주변에는 생전에 어느편에도 가담하려들지 않았던 기회주의자들이 생전의 죄과에 대한 업보로 말벌, 말파리등 독충, 해충들에게 마구 쏘이며 한 폭의 깃발 뒤를 우르르 쫓아다니는 벌을 받고 있다.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이런 자들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나. 이들 중 '겁을 먹고 큰 지위를 버린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해설에 의하면 이 사람이 교황 첼레스티노 5세라고 한다(...)교황을 지옥에 처넣는 단테의 위엄[12][13]

제1층: 림보(변옥, Limbo)

고대인이나 아기 등 세례성사는 받지 않은 선한 자가 가는 곳으로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고 고급대우를 받으나 대신 하느님을 볼 수 없다. 비록 지옥이지만 죄를 짓지 않은 아기, 또는 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운이 아주 좋으면 연옥을 갈 수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 들를 수 있는 정도인 듯(단테의 길잡이 베르길리우스 등). 잠깐 모든 희망을 버리라면서[14]

등장인물: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자 대부분(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제논, 디오스코리데스, 오르페우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15], 히포크라테스, 리노스, 키케로[16], 세네카[17], 갈레노스 등등. 에피쿠로스 양반은 6층으로 낙오되셨다. 안습.), 엘렉트라, 카밀라, 펜테실레이아, 라티누스 왕과 라비니아 공주[18], 유니우스 브루투스[19], 루크레티아[20], 율리아, 마르차[21], 코르넬리아[22], 율리우스 카이사르, 살라흐 앗 딘, 이븐 루시드#, 이븐 시나@ 등. 그 외에도 아이네이아스, 헥토르 등의 트로이 측 인물들[23], 위대한 다섯 시인 중 4명(호메로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24]

미노스의 심판 - 여기서부터는 진짜 죄인들이 떨어지는 지옥으로 꼬리 달린 괴물 미노스가 망자의 죄를 판단해 그 꼬리로 자신의 몸을 감는 횟수대로 그에 해당하는 층으로 떨어져간다.

제2층 색욕 지옥

색욕에 빠져 간통 등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놓은 자들이 가는 곳으로 시도 때도 없이 폭풍에 흽쓸려야 한다.

등장인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또는 프란체스카 다 플렌타)와 그녀의 남편의 동생이다 연인인 파올로 말라테스타[25], 세미라미스, 디도, 클레오파트라, 헬레나와 파리스, 아킬레우스 헥토르는 바로 위 림보에 있건만... 그나마 그리스 측 영웅 중에는 제일 좋은 대우다, 트리스탄 이졸데는?

제3층 폭식 지옥

폭음폭식과 중독에 빠진 자가 가는 곳. 죄인들이 더러운 비를 맞고 흙탕물에 누워 신음하고 있으며 케르베로스가 시도 때도 없이 죄인들을 물어뜯는다.

등장인물: '치아코'[26]라는 별명을 쓰는 피렌체 출신 남자, 교황 보니파시오 8세[27]

제4층 탐욕 지옥

탐욕 지옥으로 내려가는 길에 늑대의 모습을 한 부(富)의 악마 '플루투스'가 짖어댔지만 베르길리우스의 일갈에 깨갱한다. 탐욕 지옥에는 재물로 죄를 지은 자들, 즉 낭비가 심했거나 인색했던 죄인들이 갇혀 있다. 가슴으로 무거운 짐[28]을 굴리면서 서로 몸이 부딪히면 서로의 죄를 탓한다. 성직자들도 여기에 많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단테가 알 만한 사람도 있을것이지만 이미 얼굴이 시커멓게 칠해진 상태라 알아볼 수가 없다.

제5층 분노 지옥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곳. 스틱스 강[29]이 주변을 두르고 있으며 중심부에는 디스의 성벽이 있다. 죄인들은 이 스틱스 강에 빠져 서로를 물어뜯으며 허우적대고 있다.

등장인물: 플레기아스[30] 필리포 아르젠티[31]

제6층부터 시작되는 지옥의 하부는 특별히 '디스 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디스 시에 진입하려 할 때 악마들이 단테 일행을 방해하나[32], 천사의 도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위의 지옥들이 간접적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인들이 간 곳이라면 여기부터는 이곳부터는 직접 피해를 끼친 사람들이 간다.

제6층 이단 지옥

이단자들이 가는 곳. 죄인들은 뜨거운 관 속에서 신음하며, 죄악의 정도에 따라 열의 세기가 심해진다.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면 관의 뚜껑이 영원히 닫힐 것이라고...

등장인물: 에피쿠로스[33], 파리나타 델리 우베르티[34], 카발칸테 데이 카발칸티[35], 프리드리히 2세[36], 이름 모를 추기경[37], 교황 아나스타시오 2세[38]#

6옥에서 7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미노타우르스가 막고 있지만 역시 베르길리우스의 일갈로 물리친다(...)

제7층 폭력 지옥

폭력을 휘두른 자들이 타인에게 해를 끼친 자,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 하느님과 자연에게 해를 끼친 자로 나뉘어져 고통받고 있다.

제1원 플레게톤 강 - 타인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는 곳. 폭군과 독재자들도 여기에 있다. 죄인들은 끓고 있는 피의 강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죄악의 정도에 따라 다른 깊이에 놓여진다. 강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자들은 켄타우르스가 화살로 쏘아 맞춘다.

등장인물: 알렉산더 대왕[39], 디오니시우스 1세[40], 에첼리노 다 로마노[41], 오피초 다 에스테[42], 구이도 드 몽포르[43], 아틸라, 피로스 1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44], 리니에르 다 모르네토/리니에르 파초[45] 그리고 켄타우로스인 케이론, 네소스[46], 폴루스[47]

제2원 자살자의 숲 -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자살자들과 재산 탕진자들)이 가는 곳. 자신의 육신을 저버린 죄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에 최후의 심판 후에도 몸을 되찾지 못하고 나무가 된 자신들에 스스로의 육신을 매달게 된다. 재산 탕진자들은 숲 속에서 괴물에게 쫓긴다. 다만 신념에 따라 자살한 사람들은 예외. 예를 들어 로마 시대 카이사르에 맞서 공화정을 옹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카토. 단테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카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는지, 그를 림보도 아니고 연옥의 섬을 지키는 수호자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다른 망자들과는 달리 연옥의 산을 올라갈 수는 없다고.

제3원 - 하느님과 자연 순리에 해를 끼친 자들이 가는 곳. 신성 모독자, 동성애자[48], 고리대금업자[49]들이 뜨거운 사막 위에서 불의 비를 맞으며 고통받고 있다. [50]] ]

제8층 사기 지옥 (말레볼지아)

사기로 주변 사람들을 파멸으로 몰아놓은 자가 10개의 구덩이에서 10종류의 벌을 받고 있는 곳.

제1원 - 인신매매자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제2원 - 아첨꾼들은 오물에 처박혀 역한 냄새를 맡고 오염된 손으로 자신의 몸을 긁으며 신음하고 있다.

제3원 - 성직 매매자들은 거꾸로 처박히고 발에 불이 붙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다음 대상자가 이 지옥에 떨어지면 현재 벌받는 죄인은 밑으로 떨어진다.[51]

제4원 - 마법사, 점쟁이, 거짓 예언가들은 머리가 뒤로 뒤틀린 상태로 걷고 있다.[52]

제5원 - 탐관오리(부패한 정치인들)들은 끓는 역청 속에 빠진다. 빠져나오려고 하면 악마들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악마들은 인간인 단테를 잡으려고 하지만 악마의 대장이 그들을 막으며, 단테와 버질 일행을 에스코트 할 열 명의 악마를 뽑는다. 여기서 악마들을 따돌리고 빛의 속도로 도망치는(…) 용자스러운 죄인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를 잡으려다가 놓쳐서 알리키노라는 악마와 칼카브리나 라는 악마가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역청에 빠져 버린다.[53] 다른 악마들이 재빨리 갈퀴로 건저내지만 이미 속까지 까맣게 타버렸다. 단테 일행은 이 광경을 보고 악마들을 내버려둔 채 자기들끼리 갈 길을 간다.

제6원 - 제5원에서 한참 깎아지른 절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구역. 악마들은 단테 일행을 추격하지만, 버질은 단테를 안고 절벽 밑을 미끄러지듯 뛰어내려간다.[54] 위선자들은 겉은 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속은 납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옷을 입고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유대인 제사장은 땅바닥에 못박힌 채로 다른 죄인들한테 끊임없이 밟혀야 한다. 베르길리우스에게 제6원의 한 죄인에게서 제5원과 6원을 잇는 다리는 끊어져 있다고 말하자 베르길리우스는 악마들이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한다. 그리고 단테와 함께 맨몸으로 절벽을 올라 7원으로 건너간다. 지친 단테에게 여기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 독촉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덤.

제7원 - 도둑들은 뱀과 도마뱀 같은 파충류들에게 물리고 있으며 자신들도 끊임없이 뱀과 도마뱀으로 변한다.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저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발이 6개 달린 뱀이 덤벼들어

우리 밑으로 다가온 세 망령 중 하나를 휘감았다.


가운뎃발로 배를 휘감고 

앞발로 두 팔을 움켜잡더니,

두 뺨을 이리저리 물어뜯었다.


......(중략).......


마치 뜨거운 초가 녹아내리듯

두 몸은 서로 엉키더니 색깔이 뒤섞여

이전에 지녔던 각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중략).........


다른 두 망령이 그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저런, 아뇰로. 네 몸이 변하고 있어!

완전히 둘이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아닌걸!"

제8원 - 사기와 기만을 저지른 자들은 화염에 휩싸여 괴로워한다.

등장인물: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관[55]

제9원 - 분열을 조장한 자들은 구역을 끝없이 돌며 악마들에게 칼로 썰리고 재생하길 반복한다.

등장인물: 무함마드와 그 사촌 알리[56]

제10원 - 위조자들은 온갖 종류의 질병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이 질병 중에는 정신병도 포함된다.[57]

제9층 배반 지옥

지옥 가장 깊숙히 있는 곳. 지옥의 강들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코키투스라는 얼음 호수[58]다. 국가, 가족, 친구, 스승, 은인 등을 배신한 배신자들이 가는 곳으로 영원히 차가운 얼음 속에 쳐박혀 신음해야 한다. 루시퍼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1구역 '카이나' - 가족과 친족들을 배반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제2구역 '안테노라' - 조국, 정치적 신념 또는 동료들을 배반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제3구역 '프톨로메아' - 손님[59]을 배신한 사람들이 얼굴만 뺀 채로 얼음속에 누워 갇혀 있다.[60] 왜 손님을 배신한 죄가 따로 있는지는 접대의 관습 참조.

제4구역 '주데카' - 유래는 이스카리옷 유다. 자기 은인은 배반한 배반자들이 몸 전체가 얼음 속에 쳐박혀 있다. 그래서 말도 못 건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루시퍼가 얼음 속에 앉아 있는 곳이다. 지구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루시퍼의 하체(…) 쪽으로 내려가면 남반구[61][62]의 연옥섬으로 갈 수 있다.

등장인물: 이스카리옷 유다, 마르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롱기누스 카시우스.[63] 루시퍼는 이 3명을 야금야금 씹고 있다.

2.1.3.2. 연옥편[편집]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대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다시 햇살을 받으며 연옥(煉獄, Purgatorio)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연옥의 구조는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각 층은 일곱 가지의 대죄,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할당되어 있다. 참회가 늦었던 자들은 연옥에 바로 입장할 수 없고, 연옥의 바깥에서 그 세월 만큼 기다려야 한다.


문지기 천사는 P 일곱 개를 단테의 이마에 새겨준다. 이것은 '죄'를 뜻하는 'Pecatti'의 머릿글자로, 대죄가 일곱 가지이기 때문에 일곱 개를 새긴 것이다. 단테가 각 층을 통과할 때마다 천사들이 하나씩 지워준다. 지옥편에 비해 평화로운 분위기로 그려져서 그렇지, 방법 자체만 놓고 보면 지옥편 못지 않게 그로테스크한 형벌도 있다.


제1층 - 교만의 죄를 지은 자들이 등에 바위를 짊어지고 있다. 바위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가슴이 무릎에 닿을 정도. 죄의 무게에 따라 바위의 무게도 다르다고 한다.

등장인물: 오데리시[64]

제2층 - 질투의 죄를 지은 자들이 눈꺼풀이 철사로 눈이 꿰매진 채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사피아, 구이도 델 두카, 리니에르 다 칼볼리

제3층 - 분노의 죄인들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롬바르디아 사람 마르코

제4층 - 나태의 죄인들이 계속 달려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 산제노 수도원장

제5층 - 탐욕의 죄인들이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등장인물: 교황 하드리아노 5세, 위그 카페, 스타티우스[65]

제6층 - 탐식의 죄인들이 비쩍 마른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다.

등장인물: 포레세 도나티

제7층 - 색욕의 죄인들이 둘레를 돌며 인사하며 서로의 죄를 각인시키고 있다.


연옥의 꼭대기에서 단테는 지상 천국에 도달하여 성서와 교리를 상징하는 행진을 목격한 후, 마침내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2.1.3.3. 천국편[편집]


천국은 옛 유럽인들의 믿음에 따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하늘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되며, 각각의 죄에 따라 벌을 받는 지옥과 연옥처럼 각각의 선에 따라 행복을 누리고 있다. 등장 인물 중 단테와 말을 나눈 자는 볼드 처리.


화염천 - 지구와 달의 중간 경로

제1영역 월성천 - 착하긴 한데 끝까지 충실하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피카르다 도나티[66], 콘스탄자 왕비.

제2영역 수성천 - 야심있는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유스티니아누스 1세, 로메오.

제3영역 금성천 - 사랑에 불탄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샤를 마르텔, 쿠니차 다 로마노, 포르케 드 마르셀, 유녀 라합.

제4영역 태양천 - 지혜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토마스 아퀴나스, 대 알베르토, 그라치아노, 피에트로, 솔로몬, 디오니시오, 파올로 오로시오, 세비니오 보에시오, 이시도로, 베다, 리카르도 산 빅토르, 시지에리 드 브라방, 보나벤투라, 일루미나토, 아우구스티노[67], 우고 다 산 비토레, 피에트로 만지아도레, 교황 요한 21세, 예언자 나산, 대주교 안셀모, 요한 크리소스토모, 도나토, 라바노, 지오바키노.

제5영역 화성천 - 용감한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카치아구이다[68], 여호수아, 마카베오, 샤를마뉴 대제, 오를란도, 구일리엘모, 레노아르도, 고티프레디, 로베르토 구이스카르도.

제6영역 목성천 - 정의로운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독수리(다윗, 트라야누스, 히즈키야, 콘스탄티누스 1세, 구일리엘모 2세, 리페우스).[69] 목성천에 등장하는 영혼들은 천국의 다른 하늘들과는 다르게 개개인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독수리의 일부로서 등장하며, 독수리 자체가 하나의 인격체로 나와 자신의 어느 부위에 어느 영혼이 속해 있는지 말해 준다.

제7영역 토성천 - 사색에 빠진 자들이 머물고 있다.

등장인물: 베드로 다미아노, 베네딕토.

제8영역 항성천 - 단테는 쌍둥이자리(단테의 별자리)에서 지구와 지금까지의 천국의 7 영역이 다 보인다고 한다. 또 사도들과 삼주덕(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서 의논한다.

등장인물 : 초대 교황 베드로, 야곱, 사도 요한, 아담.

제9영역 원동천 - 물리적 우주의 마지막 영역.

등장인물 : 세라핌, 케루빔을 비롯한 천사들.

최고, 지고(至高)천 - 하느님의 영역이자 천국 그 자체. 천국의 모든 영혼들의 본 거주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단테는 하느님의 모습을 산 상태에서 볼 수 있도록 빛에 감싸진다(...).

등장인물: 하느님/예수, 노인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성모 마리아, 이브, 라헬, 사라, 레베카, 유디트, 룻, 베아트리체, 세례자 요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우구스티노[70], 가브리엘 천사, 아담, 루치아 등.

2.2. 아사키 1집 앨범, 혹은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편집]


神曲 항목을 참조.


2.3.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에서 나오는 노래[편집]


정령들의 힘을 채워주고, 때론 감정을 고양시킨다. 연주자가 원하는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약하지만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신곡의 유무로 정령의 힘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외로 천국, 지옥편의 이름이 붙은 특수한 신곡이 따로 있다. 알려진 작곡자는 처음 정령악사가 되었다던 단테.


2.4. 일본의 인터넷 용어[편집]


명곡의 한 단계 위.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에서 널리 퍼졌지만 그 전에도 있었던 단어. 니코동의 특성상 주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관련곡이 신곡으로 자주 언급된다. 팬들의 특성상 AKB48과 같은 남성향 여자 아이돌의 노래도 신곡으로 불린다. AKB48의 두번째 베스트 앨범의 제목이 "신곡들"일 정도.


니코동에서는 곡이 자기 마음에 들면 신곡 타령을 하는 등 남용되는 바람에 노골적으로 불쾌해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에 따라 같은 발음(카미쿄쿠)을 사용하는 종이 노래(紙曲)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주관적인 개념이라 어떤 사람한테는 신곡인 게 다른 사람한테는 쓰레기곡일 수 있다. 특히 태그 전쟁이 치열. 해당 곡의 팬들이 신곡 태그를 붙이면 태그 타고 들어온 사람이 "별로 좋은 곡도 아닌데" 하면서 지워 놓는 식.


비슷한 표현으로 良曲(양곡)등의 표현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갓곡' 정도.



B046 –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Iliad, Odyssey) / 호메로스(Homeros, BC 800년경)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두 작품 모두 트로이 전쟁과 그 여파를 다룬 한 쌍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신과 영웅에 대한 찬양과 인간정서의 심오한 표현이 도달하는 시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서양정신이 문학이라는 형태를 통해 표현된 최초의 사례로서 문화사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 서사시들에서 헬라스 세계의 통일성과 영웅주의 상징을 발견했고, 도덕적 가르침과 실제적인 지혜의 원천을 보았으며, 이 작품들은 우리가 아는바 서양문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a.생애와 작품

서양 최고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작자로 알려진 그리스의 시성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학자들 중에는 그를 실재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 시인, 또는 개인이 아니고 편력시인의 집단명, 장님인 걸식 시인이라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 두 서사시가 과연 호메로스의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의 철학자 크세노파데스와 역시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인 헤로도토스의 저서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증거를 비롯, 근대의 역사학고고학적 발견과 연구 및 언어학상의 조사연구에 의해 호메로스는 실재 인물이고, 이 두 서사시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었다. 

이 설에 의하면 호메로스는 기원전 900-800년경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변의 스미르나 또는 키오스 섬에서 살았으며,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의 시인들은 음유시인들로서, 군중 앞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시들은 구전, 전승되었다. 호메로스도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장님 음유시인으로, 자기 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구비문학을 집대성하여 자신의 천재성과 위대한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이 두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완성했다.

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두 편의 서사시는 완전한 예술적 구성으로 당시 문화에 대한 지주적 존재였고, 서구의 시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그의 이름은 시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문예사적인 면에서의 두 서사시는 다 함께 용의 주도하게 짜여진 플롯, 시적 음악성, 상상력에의 호소, 성격묘사의 박진감, 정서적 긴장감 등에서 수준 높은 문학성이 깃들어 있다.

 

b.서양사상의 2대 원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영국의 비평가 매튜 아널드는 세계역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서양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2개의 지주를 그리스 정신과 크리스트교 정신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 사상은 인간 중심사상으로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존중하고 인간의 현세적 의미의 긍정과 자아를 강조하여 후에 서양의 철학과 과학문학(사실주의)예술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반면 크리스트교 사상은 신 중심으로 특히 영성과 덕성을 존중하고 내세적인 성격을 띠는데, 이는 뒤에 신학과 예술문학(낭만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락원) 등은 그리스 신화나 크리스트교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그 이해가 어렵고, 번연의 (천로역정)도 크리스트교 사상이 그 밑바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역사나 철학 등을 통해 접근할 수도 있으나, 우선 흥미있고 자유로운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그리스 신화를 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문명의 모든 분야, 곧 문학조형예술회화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자들도 그들의 추론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해결책으로 신화의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신화는 이성과 신앙의 중간에서 고유의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들에게는 영원이나 내세의 개념이 없었기에 인간보다 더 많은 신을 섬겼다. 그들은 신도 인간과 똑같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질투하는 존재로 보았다. 다만 불사라는 점만 달라, 신들은 불사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먹고 발효된 벌꿀로 만든 넥타를 마실 뿐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이라는 독특한 신관을 가졌다.

인간의 감정과 지혜의 보고인 그리스 신화가 오늘날 인류공동의 재산으로 남게 된 것은 호메로스를 비롯한 몇몇 사람의 공로가 그 밑받침이 되었다.

먼저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 신화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의 신과 영웅들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신화에 활력과 생명력을 주었고, 이어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일과 나날),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인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신화를 충분한 이성적 고찰에 의해 심화시켰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대한 현재의 체계적인 모습은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c.트로이 전쟁과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공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한 쌍의 서사시들이다. 그런데 18세기까지만 해도 호메로스의 두 작품에 기록되었던 그리스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에게 해 문명(미케네 문명과 크레타 문명)이 과연 실재했을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슐리만은 어릴 적부터 호메로스의 시 속에 그려진 트로이에 흥미를 갖고, 언젠가는 트로이의 웅장한 성벽을 발굴하리라 결심하고 돈을 모은 다음, 드디어 40세가 되어서야 소년시절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870년 그는 호메로스가 그의 시에서 묘사한 트로이의 유적들을 발굴하여 그 실재성을 입증했던 것이다.

그러면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의 공통적인 배경인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의 결혼신장에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난 그는 이 사과를 최고의 미인에게 라는 말과 함께 황금 사과를 식장 안에 던졌다. 이에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 딸들인 아케나와 아프로디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곤란하자 축하차 온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권을 주었다. 자기가 선택받기 위해 헤라는 재물과 권력을, 아테나는 무인의 영광을,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의 최고의 미인을 제의하자 결국 아프로디테가 선택된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의 최고의 미인은 헬레나였는데,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파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나를 트로이로 납치하자, 메넬라오스의 친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트로이 원정대가 출발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원정을 피하기 위해 정신이상을 가장했으나 곧 탄로가 났고, 아킬레우스도 여장을 하여 피했으나 오디세우스에 발각되어 함께 원정대에 참여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비록 자기 아들이 발꿈치를 제외하고는 불사신이지만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피신을 시켰던 것이다. 그후 전쟁 10년째에 발생하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사랑과 분노, 그리고 트로이의 총대장 헥토르의 죽음을 다룬 것이 (일리아드)이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10년동안 방랑하면서 온갖 모험을 하고 20년 동안 수절해온 부인 페넬로페와 상봉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다.


d.(일리아드)

 1. 등장인물

아킬레우스: 그리스의 젊은 영웅으로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여 적장 헥토르를 죽이고 복수를 하는 인물.

헥토르: 선량한 마음을 지닌 트로이 군의 용장으로 용감한 성격을 지닌 인물.

테티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여신으로 아킬레우스를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

아가멤논: 그리스 군의 총수로 성직자 크리세스의 딸을 해방하라는 아킬레우스의 부탁을 거절하여 신으로부터 전염병을 불러오게 한 인물.


 2. 주요내용

아폴론의 신관 크리세스는 포로가 된 딸의 석방을 그리스군의 총수 아가멤논에게 간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신에게 복수를 청했다. 신은 전염병을 그리스 군에게 보내 많은 병사가 앓게 되었다. 이에 고심하던 그리스 군 제1의 용사 아킬레우스는 회의를 열고 전염병의 원인을 예언자로부터 교시받아 아가멤논에게 소녀의 반환을 부탁했다. 그러나 화가 난 아가멤논은 아길레우스의 여자 브리세이스를 탈취한다. 명예를 훼손당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 때문에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를 통해 대신 제우스에게 그리스 군의 패배를 청원하고 전쟁에서 물러나 버린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받은 묘욕을 갚기 위해 제우스에게 그리스 군의 패배를 약속하도록 한다. 이윽고 그리스 군의 전세가 약화되어 아가멤논은 보물과 함께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여자를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때 트로인 군은 그리스 군의 진지로 육박하여 많은 배에 불을 지르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정하여 트로이 군을 패주시키지만, 트로이의 대장 헥토르에게 패해 갑옷을 빼앗긴다.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자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복수를 다짐하고,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헥토르를 죽이면 아킬레우스도 죽게 된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외친다. 

기선을 제압한 트로이 군사는 아킬레우스의 고함에 놀라 진군을 멈추고 야영한다. 아킬레우스는 분노를 풀고 아가멤논과 화해하게 되지만, 앞서 화해를 거절했을 때 이미 비극의 씨는 뿌려져 있었다. 아길레우스는 전차를 타고 싸울 준비를 한다. 이때 불사의 명마 크산토스는 그에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예고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한편 트로이 군은 성내로 후퇴하고 헥토르만 성 밖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싸움터에 있는 사람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신 아폴론 뿐이었다. 헥토르는 쫓아오는 아킬레우스를 맞이하며 싸우게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해버린다. 두 사람은 트로이의 거리를 쫓고 쫓기면서 세 번을 돌고, 결국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헥토르는 자신이 죽으면 매장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아킬레우스는 이를 거절하고 그의 시체를 끌고간다.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매일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돌지만, 신 아폴론은 헥토르의 시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러한 폭거를 중지하도록 테티스를 보내 아킬레우스에게 전한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제우스의 명에 따라 헤르메스 신에 이끌려 황금을 실은 마차를 끌고 밤에 평원을 가로질러 아킬레우스의 진영에 도착한다. 젊은 영웅 아킬레우스는 노왕을 정중히 맞이했으나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의 불행을 알고 슬퍼한다. 새벽에 프리아모스 왕이 성내로 도착하자 트로이는 온통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젊은 영웅 헥토르의 장례는 장엄하게 거행된다.


 3. 작품 해설

(일리아드)는 그리스 군의 트로이 공격 10년 중의 불과 수십일간의 사건을 15,693행으로 표현한 장편 서사시다. 이와 같이 (일리아드)는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격전 중의 일어나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노여움과 그 결과 생긴 친구의 죽음과 그 복수를 중심으로 하고, 이 두 사건을 통해 알킬레우스의 순수한 용자다운 성격이 차례차례로 부각된다. 그의 너무나도 저돌적인 마음은 신들조차도 막을 수 없다. 그와 대조적인 존재가 헥토르다. 그 상냥한 마음씨와 아름다운 행동에 의해 아킬레우스 이상으로 그의 용기를 그리고 있다. 두 젊은 용사는 자신들의 운명을 알면서도 끝까지 용사다운 정열과 순수한 행동으로 일관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진실된 의지와 인간의 비극을 일깨우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장편 서사시는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록하고 거의 모든 작품들의 전형이 되었으며, 오늘날 현존하는 작품, 즉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의 선조가 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호메로스가 그리스 신들과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썼다는 자체로 새로운 역사의 실마리, 즉 트로이 전쟁이 실존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신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인간들의 정신에 존재해 있었고, 이것이 작품으로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오디세이아)

 1. 등장인물

오디세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아테네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를 괴롭히는 청혼자들을 물리치는 용감한 무사. 

페넬로페: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궁내의 청혼자들이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하고 20년 동안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

텔레마코스: 오디세우스의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를 구한 용감한 소년.

아테네: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가슴 아파하여 그를 구해주고 도와주는 여신.


 2. 작품의 주요내용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되었으나 지혜가 많은 영웅 오디세우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대신 제우스는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가슴 아파하는 여신 아테네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를 귀향시키고자 한다. 한편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에서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에게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청혼자들이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위도식하며 궁전의 재물을 탐하고 살림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에게대항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신 아테네의 권고로 은밀히 오디세우스의 행방을 찾으러 집을 떠나 어렵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듣는다. 여신 칼리프소는 오디세우스를 자기의 섬에 붙들어놓고 못 가게 말리고 있었지만 제우스의 명령으로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풀어준다. 그러나 배가 바다의 신 포세아돈이 일으킨 폭풍으로 침몰하게 되고, 간신히 살아난 파이에쿠스 인들의 나라에 표류해 도착하게 된다. 마침 강으로 빨래하러 나왔던이 나라의 공주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를 도와서 아르키노스 왕의 환대를 받게 해준다. 오디세우스는 왕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지금까지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애꾸눈 거인인 퀴플로프스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람의 이야기와, 사람을 돼지로 바꾸어버리는 마녀 카르케와 함께 1년간 지낸 이야기 등의 모험담을 이야기해준다.

아르키노스 왕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여신 아테네로부터 페넬로페에게 청혼한 청혼자들의 폭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략을 써서 그들을 물리치기로 한다. 아테네는 오디세우스를 거지의 모습으로 바꾸어 충성스런 양돈가 에오마이오스의 오두막으로 보낸다. 그곳으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찾아온다. 오디세우스는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텔레마코스와 함께 청혼자들을 퇴치하기 위해 계략을 짠다. 텔레마코스는 궁전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의 귀환을 비밀에 부친다.

오디세우스는 거지행색을 하고 궁전으로 들어가 페넬로페와 시녀들 앞에 나타난다. 일찍이 오디세우스의 유모였던 노파가 오디세우스의 발을 씻기다가 발에 난 상처를 보고 한눈에 그를 알아본다. 하지만 궁전에는 청혼자들과 내통하는 시녀들이 있어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비밀에 부쳐달라고 노파에게 말한다. 한편 시달림에 못 이긴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강한 활로 12개의 도끼를 관통할 수 있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궁전의 넓은 방에 모인 청혼자들은 차례로 이것을 시도하지만 한 사람도 시위에 살을 메기기 위해 활을 휘게 하지 못한다. 이어 오디세우스가 나서서 자신이 해보겠다고 제의한다. 청혼자들은 거절하지만 페넬로페는 이를 허락한다. 텔레마코스로부터 활을 건네 받은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활시위에 활을 메긴 뒤 12개의 도끼를 보기 좋게 관통시킨다. 그러자 실내에 모여 있던 청혼자들은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선언하고 나서 그는 방 안에 있던 청혼자들을 하나씩 없앤다. 텔레마코스도 무장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싸운다. 넓은 방은 삽시간에 도살장으로 변하고 청혼자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만다.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재회를 하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이튿날 오디세우스는 포도원으로 가서 연로한 아버지 라에르테스와 재회한다. 여기에 피살된 청혼자들의 가족들이 쳐들어오지만 여신 아테네의 중재로 화평이 맺어진다.


 3, 작품해설

12,110행의 (오디세이아)의 대서사시는 각각 24권으로 그리스 알파벳 순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디세이아)는 트로이가 함락된 후 지혜로 유명한 오디세우스가 돌아가는 도중에 경험하는 10년 동안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그는 괴물이나 악한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또한 신에서 노예들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유형의 인물도 만나게 된다. 그가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고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등 그가 겪는 갖가지 모험은 곧 인생의 축소판이나 크게 다름없다. 항해도중 그가 겪게 되는 방황과 모험은 인간이라면 으레 겪게 되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의 모험에는 유혹과 도전, 투쟁과 고통, 그리고 승리가 깃들어 있다.오디세우스의 삶의 여정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겪게 되는 것은 갖가지 고통과 역경, 좌절과 절망, 순간적인 기쁨과 승리감의 총화가 곧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호메로스의 유머와 슬픔, 스릴의 아기자기한 맛,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수법을 구사하여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신축자재한 문체와 필치, 구성의 치밀함과 스케일의 방대함을 맛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시는 그가 발표한 뒤 곧 국민적인 서사시가 되었고, 그 언어와 기법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라틴 문학을 비롯하여 근대문학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서구문학 전체가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의 언어는 오랜 전통의 결과인 기교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순박함과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와 명쾌함은 성좌처럼 빛난다.



B045 – 아큐정전 (阿Q正傳) / 노신 (魯迅 루쉰,1881 ~ 1936)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국현대소설의 아버지인 노신의 중편소설로 과거 구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아큐 라는 중국의 전형인물을 주인공으로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봉건사회의 몰락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인의 나약 석비 극성 비굴성 등 중국인의 약점을 고발하여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주인공의 정신승리법 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자학을 뜻하는 말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반봉건반제의 기치 아래 전개된 54 운동의 기수가 되고, 중국혁명의 사막인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중국민중의 길고 긴 잠을 깨운 그는 문학으로 중국인의 우매성을 해부했다.


a.생애와 작품활동

중국의 작가사상가인 노신은 1881년 예부터 절경으로 소문난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주수인. 필명인 노신은 투르게네프의 루딘을 모방한 것이었다. 당시 이름만 대도 다 알아주던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 가족과 하인들의 애지중지 속에서 자랐다. 출생배경인 이런 노선이 급진적인 혁명사상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글 잘하는 수재로 소문난 노신이 13세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한 과거시험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아버지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병을 얻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의 동시에 모두 사망,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된다. 훗날 노신은 나는 그때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진면목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충격을 회고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 소흥은 실패로 끝난 두 혁명인 태평천국의 난(1861)과 신해혁명의 중심 영향권에 들었고, 당시 중국대륙을 유린한 외세진출의 통로 앞에 늘 놓여 있었다. 급진 혁명사상에 눈뜬 노신이 신학문을 배워 쓰러져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길을 오른 것은 스무 살인 1900년, 당시 우매한 중국 한의술 때문에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 노신은 서양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구국을 생각했다. 그러나 세균학 시간에 우연히 본 러일전쟁 시사영화에서 한 중국인이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경한 하고 있는 중국군중을 본 뒤, 그는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민족적 자각을 지키는 일, 즉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고 의학을 중단하고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후 신문화운동에 참여하여 동경에서 (신생)을 발간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동생 주작인과 공동으로 성외소설집을 번역했다. 성외소설이란 당시 외국(유럽) 소설을 의미한다. 이때 그는 유럽의 약소민족의 문학, 슬라브 민족의 저항시, 니체 철학에 심취했다. 잠시 귀향하여 인습적인 결혼을 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북경에 가서 채원배에 초청되어 교육부 직원으로 일하면서 처녀작 (광인일기)(1918)를 썼다. 잡지 (신청년)에서 활동하는 한편 백화운동문화혁명에 참가했으며, 북경대학 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경사 도서관장을 겸했다. (광인일기)는 낡은 봉건왕조를 청산하려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중국 신문예를 탄생시키는 출발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발표된 (아큐정전)은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소설로서,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냉철하게 묘사한다. 찬반이 일어나지만 반봉건의 신문화운동을 기원하는 젊은 진보파들에 의해 옹호되었으며, 54 운동, 비공 운동의 기수로 앞장서기 시작한다.

1925년에는 청년지도기관인 주명사를 설립하여 계속 문학혁명에 앞방섰으며, 그가 관계한 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그에 동참, 당시 단기서 정부의 탄압(체포령)을 피해 북경을 탈출하여 교직을 광동 중산대학으로 옮겼다. 1927년 4월 국공분열 후 다시 국민당의 탄압이 시작되자 불안한 사회정세를 피해 상해조계에 숨어서 운동을 계속했다. 1931년 여름에는 뉴욕에서 열린 노동자문화 연합대회의 중국측 명예주석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그는 북경대학 근무 당시의 제자 허광평과의 동거로 중국 인습을 깨뜨렸다. 그는 중국작가동맹 좌익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극좌(창조사채양사)와 대립하여 참된 프롤레타리아 문학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문학은 초기의 소설에서 차츰 평론수필로 옮겨갔고, 이른바 쫓겨 다니면서 발바닥으로 쓰는 시기를 맞았다. 우의 양실추두형 등의 예술 지상주의를 계승한 임어당의 공격을 받았다. 중일전쟁 발발의 전년 1936년, 폐결핵과 천식이 악화되어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만국 빈의관에 옮겨 1만 명의 조객과 7천의 옹위를 받으면서 만국공묘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비석에는  민족혼 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b.노신의 문학세계

중국문학사에 수많은 별들이 있으나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흔치 않다. 그것은 노신이 누구보다 강렬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평생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또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많지 않다. 노신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 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껴안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노신의 문학생애는 전후 2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기(1918--1927)는 실험적 문학창작기로서 이 기간에는 (광인일기) (약) (고향) (아큐정전) 등 노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들이 나왔다. 후기(1928--1936)는 문학 논쟁기로 단평, 장갑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체를 개발했으며, 노신이 문단의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노신은 혁명가 이전에 뛰어난 문학가로서의 정신이 더욱 추앙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짧고, 가장 길다는 것이 (아큐정전)이지만 이것도 중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취를 더하며 그 깊은 뜻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장의 에세이조차에서도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비록 혁명을 위한 문학일지라도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지 않는 향기 높은 문학, 그것이 노신문학의 위대성이다. 문학이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읽히지 않는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이 아니다.

노신은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운동에 대하여)란 글에서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적 혁명전쟁 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내세워 기치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 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노신은 불행한 사람들의 정신개조를 생각하고 소설을 썼지, 결코 정치를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인간이 바뀌지 않고는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는 그 정신이 중국민족의 전형으로서 이 소설을 쓰게 한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을 묘사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음으로써 노신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용기를 불어넣는 점이다.

그가 남긴 문학은 체제가 어떻게 바뀌던 불멸이다. 사회 때문에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변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금세기 사가들이 노신을 중국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영수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신중국 정신건설의 지주라고 하기도 하고 중국 근대문학의 시점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c.작품의 주요내용

아큐는 이름도 성도 없이 조씨 댁에 얹혀살면서 조씨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인물로 떠돌이패의 한 사람이다. 전형적 노예근성을 지닌 무지몽매한 쿨리(중국 하층민)의 상징이다. 아큐에 대해서는 이름과 출신지, 그리고 행적에 관해서도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는 집도 없이 웨이장에 있는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그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는 일과는 달리 매우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어서, 마을사람들이 그를 건드려도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일관한다. 그의 신체적인 결함은 머리가 조금 벗겨진 대머리라는 것이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결점에 대해서 언급해, 노름에서 많은 돈을 잃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큐는 매사에 자신있게 처신했고 따라서 자연히 승리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아큐가 유명해진 것은 마을의 세도가 자오씨의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난 뒤부터다. 그에게는 매우 싫어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거지인 왕과 첸, 그리고 지주인 첸가의 아들이 그들이다. 특히 첸가의 아들은 서양식 학교와 일본유학을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 듯했고, 변발도 잘라버렸기 때문에 아큐는 그를 양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아큐의 욕이 그의 귀에 들어가 화가 난 첸의 아들이 지팡이로 아큐를 두들겨 팬 것이다.

아큐는 장난도 몹시 즐겼다. 한번은 그가 비구니를 놀리려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는데,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큐가 여자를 안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큐의 변화는 자오씨의 집에 쌀을 찧으러 갔을 때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자오씨의 집에서 일하는 젊은 과부 우마에게 수작을 걸어, 우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오씨는 아큐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고, 결국 아큐는 금 2천 문과 이불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그런 아큐는 우마와의 사건이 있은 후부터 잘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여자들은 아큐만 보아도 도망갔고, 남자들은 아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전에는 친하던 사당 당지기도 아큐를 보면 언짢아하고, 더구나 그를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가 당시 웨이장으로 돌아온 것은 중추절 직후였는데, 그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 산 옷에다 모든 거래를 현찰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여자들은 아큐가 가지고 온 물건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은근히 만나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큐가 도둑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러한 흥미는 자연히 시들해지고 말았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해, 9월 14일에 뜸으로 갑판을 위장한 파이 어른의 배가 자오씨의 선착장에 닿게 되었다. 혁명당을 피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아큐는 혁명당을 알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혁명당에 놀라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아큐는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4, 5일이 지나자 민심은 가라앉고 혁명당이 온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안심하게 된다. 아큐가 혁명당에 가입하기 위해 첸가의 아들을 찾아간 날 밤에 자오씨의 집이 습격을 당했다. 아큐는 자신을 내쫓은 자오씨에 대해서 감정이 있었고, 마을사람들도 자오씨의 집이 습격당한 것을 은근히 속으로는 기뻐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두려운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아큐가 체포되었는데 누가 누명을 씌웠는지 몰라도 아큐가 자오씨의 집을 습격한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아큐는 생전 처음 붓을 들고, 서명하는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군중 속에 서 있는 우마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큐는 무수한 인파들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을 받았다.


d.작품해설

이 작품은 신해혁명 전후의 무기력한 중국인을 회화화한 작품으로 노신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잡게 해준 대표작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싱거운 이야기에 불과하나, 이 작품이 그려내는 이른바  정신승리법 이라는 독특한 인간심성과 작품의 바탕이 된 시대성 때문이다. 신해혁명의 쓰디쓴 좌절을 맞본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버리는(소화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아큐를 보고, 모두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청조말기의 침체된 봉건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노신은 등장 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호도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승리법 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기탄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써 질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인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민족 결의를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아큐정전)은 작가의 이러한 구국혼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다. 따라서 어리석고 불쌍한 아큐, 그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려 보였다. 그런 아큐의 모습이 그때도 그랬지만 중국민중들에게는 각성 보다 위안을 더 많이 주고 있어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닌 수가 없다.

노신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푸념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여운으로 남아 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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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출전:나무위키)


최근 수정 시각: 2017-07-16 12:28:3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StoryofAQreprint.jpg


중국어:阿Q正傳

영어: The True Story of Ah Q

프랑스어: La Véritable Histoire de Ah Q

독일어: Die wahre Geschichte von A Q

몽골어: А-Кьюгийн үнэн түүх 

일본어:阿Q正伝(あきゅせいでん)


중국 작가 노신(魯迅, 루쉰)이 쓴 찌질열전 소설로 중국 현대 소설에선 처음으로 유럽이나 여러 나라로 번역, 수출되면서 중국 문학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아구이(아Quei, 줄여서 아Q[1])라는 인물의 인생을 그린 단편 소설로 성밖 낡은 사당에서 살며 낮에는 마을로 들어와 노가다를 하고, 번 돈을 술과 도박에 꼴아박는다. 툭하면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잡역부 아Q가 신해혁명에 꼽사리 끼며 인생역전...을 할 뻔하다가(그나마도 도둑 패거리와 결탁한 것) 나중에는 하지도 않은 뇌내망상 속 강도짓을 자백하고 총살당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아Q는 당시 중국인들의 패배 근성, 노예 근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루쉰이 중국 인민들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청 말에 서구 열강에게 쥐어터지면서도 천조라는 타이틀을 고집하며 근대화를 거부, 중체서용이니 동도서기니 하는 피상적 모방을 비판한 작품이다.


아Q는 깡패들에게 얻어 맞아도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격이다."라고 하며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저들이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므로 내가 정신적으로는 저들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을 사용하며, 그 정신승리법이 깨질 때마다 새로운 정신승리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에는 한계가 있는법. 아무리 거짓말을 거짓말로 숨기려고 해봤자 결국 거짓말도 극단에 다다르면 '이건 다 내가 꾸며낸 거짓말일 뿐이구나.'라는 당연한 진리에 도달한다. 합리적 회의의 끝이자 극단이 '적어도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는구나. 세상이란 그렇게 거짓말투성이인 건 아니구나.'라면 비논리적 자기합리화의 끝은 '결국 난 자기합리화를 했던 것뿐. 다 나의 뇌내망상이였을 뿐, 물질세계는 내 생각과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구나.'를 깨닫고 자살하는 것이다.(...)징하다 하지만 여승이나 어린 아이 같은 "약자"에게는 강한 척하며 폭력을 휘둘러 그들을 괴롭힌다. 우리가 말하는 정신승리법, 정신승리란 말은 이 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아Q는 피해의식도 엄청 강했는데 특히 머리의 흉터에 대해 엄청난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흉터라는 말을 할 때에만 발끈하다가, 점점 뇌내망상이 심해져 나중에는 '빛나다', '밝다' 등등의 말까지 자신의 흉터를 욕한다고 생각하여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니가 무슨 주원장이냐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조작왕 모 BJ가 생각난다면 그건 기분 탓일 게다.


아Q정전에서 루쉰은 아Q나 소D 등의 인물상을 통해 중국인의 우매하고 꽉 막힌 성향을 풍자한다. 미장 마을의 하층민들 모두는 깨어날 줄 모르는 중국 인민들을 대변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소D로, 아Q가 조씨 댁에서 식모를 건드리다 쫒겨난 후 아Q 몫의 품팔이를 하는 인물이다. 소D는 '아Q에서 정신승리만 뺀' 인물로 아Q처럼 왜소하고 별 볼 일 없는 하층민이며 아Q처럼 피해 의식과 노예 근성에 사로잡힌 자였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이런 특성으로 루쉰은 그 당시부터 찌질이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라고 하며 극찬했다. 아Q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비판, 혹은 비하할 때 즐겨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루쉰이 워낙 중국에서 대접받는 작가인지라 중국인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린 이 소설 역시 중국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한다. 극복해야 할 인간상, 반면교사의 의미로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교육되는 듯하다.


이전에 중국에서 나온 영화 《아Q정전》의 마지막 장면에는 "아Q는 자손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자손이 아주 많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아Q의 자손이 있다." 라는 씁쓸한 말이 나온다. 요즘에는 normal majority라고 불린다. 아무것도 하는것이 없이 남을 욕하거나 남을 따라하거나 하는 깨인 대중을 욕보이는 멍청한 대중을 뜻한다. normal이란 평범하다는 긍정적 뜻 외에도 아무런 특색이 없다는 부정적인 뜻도 있다. 아Q는 종잡을 수 없이 아무 특색이 없다는것을 풍자한 이름이므로 얼추 들어맞다.


프랑스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로맹 롤랑(1866~1944)은 이 작품을 엄청나게 호평했는데, "가련한 아Q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보통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상대도 못하는 중국인들을 다루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디 중국인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아Q란 모습은 현대인들, 많은 사람들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왕가위의 영화 아비정전(아B정전)의 제목은 바로 이 소설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다. 



[1] 루쉰 시대의 로마자 표기법 Quei는 현재의 한어병음방안의 gui(kuei)(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구이")에 해당하는 표기이다. 아Q정전 초반부에서 여기에 대응시키려 한 글자들이 "桂貴"(모두 guie)에 해당 됨을 보면 알 수 있다.



B044 – 홍루몽 (紅樓夢) / 조설근 (曹雪芹, 1715? ~ 1763?)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조설근의 120회본 90만자라는 엄청난 양 속에 가보옥을 중심으로 총 448명이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장회체 소설이다. 전반80회까지 조설근이 쓰고 후반 40회는 고악이 썼다고 한다. 남녀 주인공의 애정비극과 귀족가정의 흥망사가 주요내용이나, 청대 귀족 가정의 문화 풍속 교육 혼인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귀족사회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자 예술적 기교도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a.생애

중국 청나라의 소설가 조설근의 이름은 점, 호가 설근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작종 직물의 직조구입공급 등의 일을 맡아보았고 황제의 이목이 되다시피 했다. 그의 조부의 두 딸은 왕비로 선발되어 궁중에 들어갔다. 이로 보아 조씨의 가문은 호화롭게 지냈으리라고 추축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설근의 조부 조인은 시사화곡에 능한 명사이자 이름난 장서가였다. (전당시)는 바로 그가 주도하여 찍어낸 것이다. 조인은 조설근의 문학수양에 도움을 주었다. 조인이 죽은 후 조설근 부친의 형제들이 조부가 하던 일을 맡아 했는데 그 무렵은 왕실내부의 싸움이 격렬한 때였다. 그의 집안도 싸움에 연루되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조설근이 살았다.

그는 13세 이전까지는 남경에서 임금의 은혜와 조상의 덕분으로 비단옷을 입고 고량진미의 호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3세 이후 북경으로 이사한 후 온 집안이 죽을 먹으며 외상술을 마시는 처지에 몰렸다. 귀족가정은 조설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선 심각한 계급의 낙인을 찍어놓았는데, 그는 자기 본래의 계급에 대한 향수의 정을 품게 되고, 그의 세계관은 허무적이고 비관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족가문의 흥성으로부터 쇠망에 이르는 엄청난 변화와 그 자신이 겪은 빈곤한 생활이 그의 사상감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의 본래 계급의 추악한 면에 대해 심각한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생활과 인식은 그의 (홍루몽) 창작에 충분한 생활적 기초를 제공했다.

(홍루몽)은 그가 만년에 곤궁한 상태에서 어릴 적의 추억을 바탕으로 약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나 마무리를 하지는 못했다. (홍루몽) 창작에 대해  10년 동안 보면서 다섯 번이나 수정을 했다. 실로 글자마다 피어난 10년의 고생이 예사롭지 않도다 라고 말했다. 생활이 어려운데다가 단 하나뿐인 어린 자식마저 요절하니, 작자는 그 고통 때문에 병이 나서 (홍루몽)을 80회까지밖에 못 쓰고 50세도 못되어 세상을 하직한다. 그가 세상을 뜨면서 남긴 것이란 벽에 걸린 거문고와 칼 한 자루 뿐이었고 하며, 그의 부인은 의탁할 곳이 없게 되고 써놓은 원고도 정리할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장례도 한두 벗이 대강 지냈다고 한다. 후에 고악이 40회를 덧붙여 (홍루몽)은 120회본이 되었다.


b.홍루몽의 성립

(석두기) (금옥록)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홍루몽)은 120회, 90만자라는 엄청난 양 속에 가보옥을 중심으로 총 448명이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소설이다. 18세기 초 백년망족이요 시예지가로 불리는 가가, 그 중에서도 영국공 가원과 영국공 가원 집안에서 겨우 8년 동안 벌어지는 인간 및 가세의 흥망쇠사로서, 다시 줄거리를 좁히면 영국부의 주재자인 가정의 2남인 가보옥, 그의 고종사촌인 임대옥과 외종사촌인 설보채가 여자들의 왕국인 대관원에 살면서 벌어지는 삼각연애의 비극이다. 즉, 가보옥과 임대옥의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이다. 가보옥은 귀족가정의 반역자로 봉건도덕의 범위를 벗어나 행동하는 과벽한 성격의 소유자요, 임대옥은 우수와 병이 많은 재녀로 애정을 지상시하고, 설보채는 현숙다정한 숙녀로서 여덕을 표방함으로써 그 개성이 선명하다.

여기서 보옥을 사이에 두고 암투가 벌어지는데, 보옥의 조모는 보옥이 대옥을 사랑함을 알면서도 그녀의 병약을 빙자해 보채와 결혼시키자 이를 안 대옥은 피를 토하며 죽고, 보옥 또한 대옥의 죽음에 상심한 나머지 명예와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기에 이른다. 한편 (홍루몽)의 구성과 성격에 있어 조설근의 자전석 소설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홍루몽)은 곧 그의 가문의 부침이요 조설근 개인의 체험이다. 따라서 (홍루몽)은 인생의 부귀귀천을 바라 보면서 남녀의 애정과 가정의 갈등을 그린 회한과 애상의 책이지, 결코 시대를 풍자하고 역사를 반영한 소설은 아니다.


c.작품 내용

과거가 가씨 성을 가진 두 형제는 국가의 창업기에 공을 세워 영국공과 영국공의 벼슬을 받아 그들의 대저택에서는 지금 그들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영국부의 주재자인 가정의 2남인 가보옥은 태어날 때 아름답고 투명한 5색이 찬란한 구슬을 입에 품고 출생했다 하여 보옥이라 이름 지었다. 살갗이 희고 귀공자다운 우아함에 보는 사람마다 모두 귀여워했다. 보옥은 매우 영악했는데  여자의 몸은 물로 되어 있으나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되어 있다. 나는 여자아이를 보면 시원스러우나 남자의 몸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고 말할 정도였다.

보옥의 누나는 궁중의 귀비로 들어갔으며 친정에 다니러 온 기념으로 뒤뜰에 대관원이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대관원에서 보옥은 그의 아름다운 누이들, 사촌자매들과 함께 그곳에서 살며 꽃을 사랑하고 시와 술 음악을 즐기는 생활을 계속한다. 보옥을 둘러싼 젊은 미녀들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여자는 임대옥과 설보채 두 사람이었다. 대옥은 고종사촌으로, 일찍 조실부모하여 보옥과 함께 자랐다. 우수가 담긴 찌추린 얼굴과 지나칠 만큼 날카로운 신경을 가진 감상적인 그녀와는 달리, 보채는 남경의 부호집에서 태어난 만큼 대범하고 침착하며 합리적인 여자다. 미모에 있어서도 대옥에 못지않은 모란꽃 같은 여자였다. 대관원에는 이들 말고도 많은 미녀들이 있었다. 보옥은 이러한 미녀들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지만 가씨집안도 비극적인 운명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한다. 자살사건이 잇따르자 다감다정한 소년 보옥은 혼자 상심에 젖는다(이상이 80회 줄거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옥은 구슬을 잃어버려 넋을 잃고 바보와 같은 상태가 되는데 이를 돕고자 보옥의 혼담이 진행된다. 병약한 대옥을 택하지 않고 보채를 맞아들이자 대옥은 실망한 나머지 보옥이 결혼하는 날 피를 토하고 죽는다. 한편 보옥은 결혼 상대자가 대옥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보채임을 알고 비관한 나머지 병을 앓는다. 그 즈음에는 이미 대관원도 쇠퇴해버린다. 보옥의 병세가 점점 악화될 즈음 어느 날 한 승려가 보옥이 잃어버린 구슬을 가지고 나타나자 보옥은 다시 소생하여 미혹의 세계를 벗어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후 갑자기 행실이 좋아지고 학문에 열중하여 장원급제한다. 보채는 당시 임신중이었으나 시험장에서 나온 보옥은 그대로 집에도 들르지 않고 출가한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d.(홍루몽)의 작품성

(홍루몽)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유토피아와 인간세계, 대관원의 세계와 그 밖의 세계 등 양면의 세계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가운데 인간의 현실을 허무와 무상으로 종결짓고 있다. 이 작품에서 조설근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수법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낭만주의 수법으로 신비의 색채를 깔았고, 사실주의 수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성격을 전달했다. 동시에 그 제재 또한 늘 두 가지 주선을 지키고 있다. 하나는 삼각으로 벌어지는 애정이요, 하나는 가씨가 몰락하는 사회적 변동이다. 하나는 낭만 이상유토피아의 추구요, 다른 하나는 현실과 오염과 음욕 등 쇠락이다.

이처럼 (홍루몽)은 전체적으로 탈속의 의지가 번지르한 가운데 작자의 인생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그는 만년에 이미 사회개조의 능력이나 사회에의 적응력을 상실하여 현실로부터의 도피는 불가피했다. 한편 그에게도 예술적 방법을 통한 사회에의 적극 참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윤리나 교육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반영으로서 시대가 주는 교훈이 그것이다. 즉, 그는 종교나 운명으로 통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현실을 통해서 군주시대의 외척귀족 등이 문란한 사치와 호화로부터 몰락하는 과정을 폭로했고, 나아가서 장원과 농노들의 경제적 빈곤상을 넌지시 파헤치기도 했다.

이밖에도 (홍루몽)은 가정에 있어 5대가 동거하는 대가족제도의 종법도덕이 붕괴하는 말로를, 정치에 있어서 법의 강조를, 혼인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사회에 있어서 3계층을, 종교에 있어 불교도교로의 편향을, 경제에 있어 세가의 몰락 원인을 직접 간접으로 설파하여 후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 바도 적지 않다.

90만 자나 되는 대하소설이 복잡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선명한 개성과 구성 면에서 예술적 성공요인이 되고 있다. 비극소설이 일반적으로 시작해서 종결까지 한 차례의 클라이맥스를 갖게 되는 데 반해, (홍루몽)은 스토리가 변할 때마다 클라이맥스를 거듭해서 보여주다가 끝내는 파멸에 돌입했다. 

또 하나는 대화를 통해서 훨씬 생동적인 분위기 전달을 꾀한 점이다. 이밖에도 수사 및 기교에 있어 외곽으로부터 서서히 핵심으로 몰고가는 방법이나, 한가지 사건의 묘사로써 기타 사건을 연대시키는 일석이조법, 서로 관계없는 일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순통시키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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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출전: 나무위키)



1. 개요[편집]


紅樓夢 / Dream of the Red Chamber


중국의 고전소설. 청나라 때 조설근(曹雪斤)이 저술한 장편소설. 그리고 중국문학의 결정체이자 끝판왕.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1715~1763)이 쓴 고전소설. 등장인물만 500명에 달하며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이 되었다. 많은 중국 학자들도 홍루몽에 대해 연구해 "홍학"(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중국사대기서에서 수호전의 에로 동인지 금병매를 제외시킨 '사대명저'의 하나로 친다. 사실 홍루몽의 문학적 가치는 다른 사대기서보다 더 높으며 인기도 가장 많다.


2. 제목[편집]


소설의 제목인 '홍루몽(紅樓夢)'의 뜻을 직역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며, 紅樓는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며[1] 작중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으나 이들은 거의 모두 안습한 결말을 맞는다(...). 즉 홍루몽이라는 제목은 주역들의 안습한 결말과 함께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설근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가장 먼저 언급된 제목인 <석두기>는 주인공인 가보옥이 여와가 쓰다가 남은 돌의 화신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승록>은 속세의 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된 <풍월보감>과 <금릉십이차(금릉십이채)>는 각각 작중에서 언급 및 등장한 보물 및 등장인물들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이 <홍루몽>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청대에 일시적으로 홍루몽이 금서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옥연>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3.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편집]


홍루몽의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의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1791년 정위원이 기존의 80회본에 고악이 쓴 40회본을 결합해서 120회본으로 간행한 것이 "정갑본"이고, 이듬해에 이 120회본을 개정한 것이 "정을본"이라 한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 이전에는 필사본의 형태로 유포되었는데, 문제는 작가인 조설근이 원고가 출간되기 전에 사망해 버려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설근이 최초로 작성한 원고 중 유실된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못한 정위원은 지인인 고악(1763~1815)에게 흩어진 필사본의 내용을 수집,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1791년과 1792년에 거쳐 '홍루몽'이라는 제목이 붙은 120회본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악은 자신이 쓴 후반부가 조설근의 원고를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고악이 진시를 통과하고 한림원에 들어가기도 할 정도의 정통 한학자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조설근이 쓴 80회본까지만 읽었을 때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조설근이 쓴 부분까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많은 자칭 후속편 동인지들이 나돌았는데, 정위원이 그 가운데 가장 작품성 있는 고악의 버전을 공식 후속편으로 '지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실된 내용이 많았던 탓에, 2006년에는 중국에서 고악이 후반부 40회의 내용을 변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기사 링크


4. 국내 출판본[편집]


국내의 홍루몽 번역은 1884년 역관 이종태를 위시한 문사들이 120회본을 처음 완역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로 홍루몽이 완역된 사례이다. 그 이후에도 국내에 여러 차례 번역되었으나 대개 불완전한 번역 내지는 일어 번역본의 중역인 경우가 많았는데, 1990년대에 연변대학의 조선족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된 현대어 완역본이 예하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청계출판사 판과 나남출판사 판이 2000년대에 들어 출간되었다. 번역의 정확성은 1990년 나온 예하출판사 판이 좋은 평을 듣고 있으나,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절판된 상태라 그 희소성 때문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책팔이들에 의해서 100만 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나남출판사 판본과 비교할 때 둘 중 하나가 떨어진다기보다는 각 판본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정도라 굳이 일부러 저 가격을 지불하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에 올재에서 연변대학 번역본이 교보문고에서 한정으로 풀렸고, 같은 번역집단의 수호지가 2015년에 한정으로 팔다 2016년에 상시판매로 풀린걸 보면 홍루몽도 상시판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2013년에는 솔출판사에서 7권으로 구성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5. 줄거리[편집]


홍루몽의 줄거리는 난징인 금릉을 기원으로 둔 부유한 가(賈)씨 일족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는 영국공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차(설보채)[2]의 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3]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4]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5]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병크들[6]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진시황이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다,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잉여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남성 가문원들이 대부분 잉여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7]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은 그거 먹는 건가요? 취급을 하며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를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임대옥은 돌이 가보옥으로 태어나기 전에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을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의 눈물로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자신도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하였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미소녀였으나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설보차(설보채)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8]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태어났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고 두 명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의 봉호를 받은 가원춘은 특별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 공간으로 두기 아깝다고 여겨 가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가보옥은 임대옥, 설보차와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각각 거처를 두게 되어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나이를 먹게 되자, 가보옥은 설보채에게도 일정한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치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차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왕희봉과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이 돌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 가보옥은 정줄놓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귀비 가원춘도 같은 시기에 병사하자 사태군 등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보옥의 측근 시녀였던 화습인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감정이 보통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9]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것을 알게된 가보옥은 멘탈붕괴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문원들의 병크가 겹친 결과 가씨 가문은 공작위들과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10],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렸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가보옥은 한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한채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6. 등장 인물[편집]


등장인물의 수는 주역부터 조역, 이름만 언급되는 단역까지 포함하여 500여 명에 달하며, 주요 인물들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다. 남성 인물들도 여럿 등장하지만 대부분 막장이며 주색잡기에 빠져 지내는 잉여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왕희봉의 남편인 가련과 설보차(설보채)의 오빠인 설반.


그리고 비중 있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결말이 영 좋지 못하다(...). 왕희봉의 경우 일족이 몰락하고 후원자인 가모(사태군)마저 노환으로 사망하자 권력을 잃고 병까지 겹쳐 안습한 죽음을 맞은데다가 딸인 가교저는 인신매매단에 팔려갈 뻔 했으며[11], 영국공 가사의 딸인 가영춘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요절했고 가보옥을 짝사랑했던 비구니인 묘옥은 도적단에게 검열삭제당한 후 행방불명, 가보옥의 측근 시녀 중 한 명인 청문은 다른 하인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 후 병사[12]했으며 임대옥은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병이 악화되어[13] 선물받았던 손수건과 자신이 쓴 시집을 태우고 죽어 버렸다(...). 


작중에서 죽지 않은 캐릭터도 안습한 결말을 맞는 게 대부분이며, 가보옥은 계략에 휘말려 설보차를 임대옥으로 착각하고 아내로 맞았다가 멘붕에 빠진 후 아내를 두고 가출해 버렸고 녕국공 가진의 여동생인 가석춘은 현시창스러운 상황을 보고 비구니가 되었다. 가보옥의 형수인 이환은 아예 시작부터 과부로 등장했으며 사상운은 결혼 직후 남편이 요절해 버렸다. 이환과 사상운, 그리고 설보차의 경우 과부의 개가를 금지하던 풍습과 맞물려 그야말로 현시창인 상황.


방랍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간 수호전의 양산박 108호걸들처럼 한꺼번에 많은 인물들이 사망 또는 퇴장하지는 않지만, 작중에서 인물들이 죽거나 퇴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구체적으로 처절하게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가 임대옥과 왕희봉으로 여러 회에 거쳐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그 외의 정보는 홍루몽/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할 것.


7. 작가에 대하여[편집]


작가인 조설근은 팔기군 정백기에 소속된 한족 출신으로, 선조는 오늘날의 랴오닝 성에 거주하다가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정복되어 한인 팔기에 편입되었다. 이후 조설근의 증조모가 강희제의 유모가 되면서 황실과 연이 닿게 되었고, 조설근의 할아버지인 조인(삼국시대의 조인과는 당연히 다른 인물이다)의 대에 이르러서는 난징일대를 관리하는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다른 가문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영하였다. 


하지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가 즉위한 후, 조씨 가문은 옹정제가 벌인 숙청작업에 휘말려 망했어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조설근의 대에 이르러서는 베이징으로 가문 전체가 이주하였으며 조설근 자신은 베이징 외곽의 기인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홍루몽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나 조설근은 이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하였고, 필사본으로 유포되던 홍루몽이 활자본으로 출간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 년이 지나서였다.


민국시대의 학자인 후스(胡適, 1891~1962)등의 연구로는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전적인 소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조설근이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8. 홍학(紅學)의 역사[편집]


본격 대륙의 설정싸움


홍루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당대 중국의 독자들은 임대옥vs설보차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와 같은 VS놀이에서부터 조설근 및 홍루몽에 최초로 평론을 단 지연재[14]의 실존인물 여부, 판본 연구,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 및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논쟁을 벌였고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홍학(홍루몽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겨난 홍학계의 분파는 평점파와 색은파였는데, 평점파는 홍루몽의 내용에 대한 감상, 평론을 통해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색은파는 책의 내용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청복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거나 강희제~옹정제 교체기간의 권력다툼에 대한 은유, 심지어 순치제와 후궁 동악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등의 괴랄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후스(胡適, 1891~1962)는 기존 홍학, 특히 색은파의 해석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였고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소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후스의 견해를 지지한 이들에 의해 고증파라는 분파가 생겼는데, 고증파는 연구를 통해 조설근의 실존여부를 밝히는 한편 홍루몽의 판본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같은 시기에 루쉰 등은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홍루몽을 평가하려 했고 이들은 비평파로 불리게 된다.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홍학의 명맥은 계속 이어졌으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어서 홍학의 여러 분파들 중에서 특히 고증파가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고 4인방은 홍루몽을 반봉건적 내용이 담긴 소설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였다. 이후 4인방이 실각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홍학 연구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9. 대중매체에서[편집]


1998년에 대만에서 <紅樓夢之十二金釵>#라는 제목의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제작된 적이 있으며, 2009년과 2010년에는 중국에서 <红楼梦:林黛玉与北静王>이라는 제목으로 비주얼 노벨화되기도 했다.##


1977년에는 쇼 브라더스에서 금옥양연홍루몽(金玉良緣紅樓夢)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임청하의 초기 주연작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임청하는 남주인공인(…) 가보옥을 연기했다.


또한, 1977년과 1987년, 2010년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는데, 1987년판 드라마에서 임대옥을 연기했던 진효욱(陈晓旭,1965~2007)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뒤 암으로 사망하자 중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북한의 피바다가극단에서 리메이크한 홍루몽의 가극판이 이듬해 중국에서 순회 상연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측의 기록으로는 1961년에 조령출의 대본과 이면상의 작곡으로 완성되었고, 평양예술단에서 상연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저 두 인물 모두 친일파-월북 루트를 타면서 능숙한 처세술로 평생 잘 먹고 잘 산 케이스로 손꼽힌다.)


다만 저 가극도 북한에서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는데, 북한과 중국이 우호 관계였을 때 창작되었다가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고 난 뒤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공연 목록에서 버로우하고 말았다. 이후 1970년대부터 뽀글이가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기존 가극이 가진 봉건성을 타파하겠네 어쩌네 하면서 '혁명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밀어주게 되자 거의 듣보잡이 되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을 최고 권력자의 지시로 다시 리메이크해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가서 순회공연을 한다는 것은 북한 음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북한이 중국에게 더욱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씨왕조 치하의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작중 가씨 일족의 막장행보가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과 묘하게 연관되어있다. The Garden of the Forking Path라는 작품은 유 춘이라는 중국인 스파이가 독일에게 정보를 흘리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인데, 이 유 춘이라는 캐릭터의 묘사가 홍루몽에 나온 비슷한 이름의 캐릭터와 흡사하다.


영화 스잔나(1967년)[15]에서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이 극중극으로 홍루몽의 임대옥을 연기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영화는 유독 국내에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인기를 크게 끌었고, 여주인공 스잔나 역으로 출연했던 이청(李菁) 은 이 영화 한 편으로 국내에서 인기스타가 되었으며, 내한하여 몇 편의 영화를 찍기도 하였다. 올드팬들에게는 이청이라기 보다는 리칭이라고 부르는게 더 친숙하겠지만...... 


문명 5의 두 번째 확장팩인 멋진 신세계에서는 위인의 유형으로 위대한 작가가 추가된 후 랜덤으로 출현하는 작가의 이름 중에 조설근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동방프로젝트 온리전 행사 중 관서지방에서 개최되는 동방홍루몽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름이 똑같다. 딱히 큰 관련은 없지만 이름 자체는 여기서 따온 듯하다.



[1] 절대 홍등가가 아니다! 중국에서 홍등가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단어는 청루이다.

[2] 이름에 쓰인 釵(비녀 채)는 채 또는 차로 읽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국내에 번역된 홍루몽의 번역본들에서는 설보채 또는 설보차로 표기가 제각각이며 청계출판사는 설보채, 나남출판사와 솔출판사는 설보차로 번역했다.

[3]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임대옥<가보옥<설보차의 순서로 1~2살씩 많다.

[4] 형제 중에서 형이 녕국공, 동생이 영국공의 작위를 받았다.

[5] 가보옥이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부모자식뻘이었다.

[6] 작중에서 묘사된 모습은 주색잡기와 사치는 기본인데다 밖에서는 권력을 악용하며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뇌물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가며, 안에서는 똥군기, 내리갈굼, 근친상간, 집단괴롭힘 신부 속이기와 같은 막장이 벌어지는 곳으로 그려져 있다.헬게이트

[7] 여와는 36,501개의 돌을 만들었으나 하늘을 복구할 때 36,500개의 돌이 사용된 탓에 한 개가 남아 버렸다.

[8] 가보옥의 어머니와 설보차의 어머니는 친자매였다.

[9]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의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면사포를 푹 눌러쓴 채 얼굴을 가려야 했던데다가, 왕희봉 등이 진짜 신부가 설보차라는 것에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에 가보옥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0] 나중에 작위를 돌려받긴 했다.

[11] 다행히 팔려가기 직전에 왕희봉에게 신세를 진 사람에 의해 구출되었다.

[12] 병에 걸려 앓아누운 상태에서 말 그대로 맨몸으로 쫓겨났으며, 가보옥은 "그 몸으로 쫓겨난 건 난초를 돼지우리에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한탄했다.

[13] 작중에서 얼굴에 열기가 올라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거나, 피 섞인 가래를 뱉고 각혈을 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결핵으로 여겨진다.

[14] 지연재에 대해서는 조설근의 가족설, 친척설, 지인설 등의 가설만 제기되었을 뿐 평론을 제외하면 자료가 부족하여 실존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

[15] 홍콩 영화이며 1976년작인 사랑의 스잔나와는 다른 작품이다.


B043 – 서유기 (西遊記) / 오승은 (吳承恩, 1500 ~ 1582)

 (출처 :  동서고전 200선 해제(반덕진, 가람기획))



중국 명대의 오승은이 이전의 자료를 취합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편찬한 소설로, 삼장법사 및 손오공 등이 81종의 고난을 겪으면서 불경을 가져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한한 중국적인 상상력과 낭만적 정신이 나타나 있는 중국 최초의 소설이다. 작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낭만감성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사실은 이들의 성격이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서유기의 성립과 저자

중국의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이 소설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당나라 태종 때 현장삼장(596--664)이 서역을 거쳐 인도에 가서 전후 17년 동안에 100여 나라를 순방한 끝에 600여 부의 산스크리트 어 불교경전을 중국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여행기 (대당서역기)를 지었다. 이 여행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것인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아서, 당나라 말엽(7세기 이후)에는 이미 그것을 신비스럽게 전설화시킨 설화까지 민간에서 생겨났다. 그것은 시대와 더불어 꼬리가 붙어서 자꾸 늘어났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최고의 텍스트는 (대당삼장취경시화, 大唐三藏取經詩) 3권으로 남송말기의 것으로 보인다. 문장이 예스럽지만 줄거리가 간단하여 (서유기)의 축소판 같다. 손오공도 후행자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고, 사오정도 심사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원말이 되어 거기에 살을 더 붙인 이야기로 된 책이 간행된 듯하며, 그 단편이 명나라의 (영락대전) 속에도 들어 있는데, 여기서는 후행자도 다시 손오공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원대에는 이 이야기가 극에 도입되어 양경현의 (서유기잡극) 같은 것이 생겨났다.

저자 오승은은 이들 민간에서 발달된 설화를 근거로 삼아서 100회의 장편소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오승은의 조부는 학관벼슬을 지냈으나 부친대에 와서는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던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영민하여 많은 책을 읽었으며 붓을 들면 시문이 이루어졌으나 과거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43세 때 어머미가 늙고 가정이 가난하여 조그만 벼슬을 했을 뿐 글을 팔아 자급자족하는 청빈한 생활을 했다.

이런 생활경력은 그로 하여금 당시 민중들이 당하는 질고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민중의 불행은 모두 지배층이 조성한 것 임을 알고 일찍이 사악한 것을 베는 칼을 휘둘러 나라와 인민을 해치는 악당들을 없애버리려고 했으나 힘이 모자람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영웅과 호걸들에게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호할 희망을 기탁했다. 이런 사상을 갖고 있는데다가 어려서부터 야사나 신화 이야기를 즐겨하던 그는 중년시절에 지괴소설 (우정지)(제목만 전해짐)를 썼고, 만년에는 (서유기)를 써서 당시 사회의 암흑성을 폭로, 풍자한 동시에 그에 대한 반항자의 형상을 부각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유가의 봉건사상이 있었고 작가의 이러한 극적인 사상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b.주요 등장인물

손오공: 화과산에서 태어난 돌원숭이로 5백 년 동안 오행산 밑에 깔려 있다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천축구에 사는 삼장의 제자가 된다. 

저팔계: 천궁의 천봉원수로서 월궁의 상아를 건드린 죄로 하계에 태어난다. 입이 뾰족하고 이빨이 삐져나온데다 귀가 커서 돼지의 모습이다.

사오정: 천궁의 권렴대장으로 죄받아 하계로 내려와 유사하의 요괴가 된다.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삼장의 제자가 된다.

삼장법사: 전생에는 여래의 제자인 금성장로였으며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난다. 후에 정과를 얻어 전단 공덕불이 된다.


c.주요 내용

이야기는 3부로 나누어진다. #1 손오공이 천궁에서 심술궂게 행동하는 이야기(1--7회) #2 당태종이 지옥을 순례하는 이야기(8--12회) #3 삼장법사와 3종자가 인도를 향해가는 도중에서 만난 81가지의 대란(13-100회)

화과산 바위에서 태어난 원숭이가 신선 밑에서 수업을 쌓은 뒤 손오공이란 이름을 받는다. 그는 한번 공중제비를 돌면 10만 8천리를 날아간다는 술법(근두운)이나 자기 몸을 여러 개로 분산시키는 신외신의 술법 등 72가지의 도술을 터득한 뒤, 바다 밑 용궁의 용왕에게 금테를 두른 무게 1만 3천 5백 근짜리 여의봉(일격에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다)을 얻는다. 이 여의봉은 크기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막대기다. 신통한 힘을 얻은 손오공은 천궁으로 달려가서 제천대성이라 자처하며 심통을 부린다. 천궁에서 이를 말리지 못하고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마침내 서방정토의 석가여래의 법력으로 손오공을 오행산 밑에 가두어버린다. 그뒤 5백 년이 지나 당의 삼장법사는 당태종의 명령을 받고 서방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떠나게 되었다. 법사는 오행산 기슭을 지나다가 그 산 밑에 깔려 있는 손오공을 구출해준다. 이래서 손오공은 삼장의 제자가 되어 인도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이어서 저팔계라는 돼지의 영물과 사오정이라는 물귀신의 영물들이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다. 이것들은 모두 천상에서 쫓겨나 요괴의 무리 가운데 숨어 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백마 한 마리, 이것 역시 천상에서 추방당한 용의 화신이다. 삼장법사는 이 용마를 타고 3종자를 거느리고 인도를 향해 가는데, 도중에서 81가지의 크고 작은 난을 만나게 되어 온갖 요괴화신들과 싸운다. 손오공은 그때마다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그다지 도움이 못되는 저팔계나 사오정과 힘을 합쳐서 스승인 삼장법사를 지킨다. 마침내 인도에 무사히 도착, 많은 경전을 얻어가지고 일행은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 공으로 주종 4인과 백마는 모두 훌륭하게 성불한다.


d.작품해설

삼장법사와 3종자란 멤버의 구성이 재미있다.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은 역시 손오공인데 천의무봉하고 난폭하다. 행동이 민첩해서 대단히 통쾌하다. 그러나 약은 만큼 매우 타산적인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연법칙의 제한에서 벗어나 절대적 자유 의 경지에 이른다. 이런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경지는 봉건적인 압박에서 벗어나며 자연을 정복하고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쥐려는 당시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저팔계는 돼지의 영물이니만큼 본래 대단히 착하고 정직한 자다. 톡톡히 천심도 가지고 있으나 어쨌든 음식과 여자라면 주책이 없다. 몸이 둔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다. 항상 손오공에게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뒷처리를 맞기지만 애교가 있어서 이 녀석이 모습을 나타내기만 하면 독자는 배꼽을 쥐게 된다. 

그런데 사오정은 말이 없어 묵상하는 철학자 같다. 멋은 없으나 매우 성실하고 온순한 영물이다. 이 3종자는 이미 원대의 설화 속에서 나오지만, 거기에다 이만큼 명확한 성격을 부여한 것은 오승은의 공적이라 하겠다. 한편 삼장은 실제로는 그와 같은 모험적인 대여행을 해낸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요괴나 악마와 직면했을 경우 오직 합장하고 염불밖에 외지 못하는 매우 무기력한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소설에 나오는 대개의 주인공들, 예를 들면 (삼국지연의)의 유비나 (수호지)의 송강 등이 모두 어리석게 보일 만큼 무기력한 인물(이것은 중국 사람이 생각하는 덕자의 상이기도 하다. 사려깊은 행위가 겉으로는 이렇게 표현된다)의 대명사란 점에서 미루어볼 때 흥미롭다.

(서유기)에서 기발한 구성과 묘미 있는 문장이 가장 발휘된 곳은 81난의 장면일 것이다. 실로 오만가지의 요괴와 악마들이 삼장일행의 앞길을 가로막고 손오공 등이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물리치며 뚫고 나가는데, 그 변화무쌍한 장면의 변화가 의표를 찔러서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심의 싸움(57--58회), 화염산의 싸움(59--61회) 등 작자의 공상은 신출귀몰하면서도 매우 동화적인 색채에 넘쳐 있다. 그 까닭은 작가 오승은이 문장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해서 세상을 우습게 풍자하는 성격도 작용한 것 같다. 악마와 싸우는 장면 등에도 유머가 넘쳐 저절로 웃음짓게 된다. 그 때문에 신선은 물론 악마나 요괴들까지 모두 인간미가 넘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명대 이후 소위 신마소설 이 숱하게 나왔으나 모두 (서유기)를 능가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서유기)의 예술성과 평가

(서유기)는 독특한 예술적 풍치를 갖춘 걸출한 낭만주의적 고전소설이다. 작자는 사회생활에 기초한 자기의 염원의 이상을 대담한 환상과 낭만적인 수법으로 표현했다. 그는 신화 전설 잡극 및 자신의 풍부한 상상을 결부시켜 신화적인 손오공 등 인물형상을 창조했을 뿐더러 그들의 활동무대인 천궁 등 신화세계를 그려냈으며, 그들의 투쟁대상인 각종 신선과 요마의 형상을 그려냈다.

(서유기)의 낭만주의적 특색은 또 인물형상을 부각함에 있어서 인간의 개성, 동물의 특징과 초자연적인 신성을 하나의 형상에 잘 융화시킨 데서 표현되었다. 자유를 사랑하고 신권에 반항하며 인간을 해치는 요괴와 투쟁하는 손오공의 정신은 봉건통치를 반대하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유머와 풍자는 (서유기)의 또 한 가지 예술적 특색이다. 손오공은 이런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것은 또한 손오공의 낙관주의적인 정신과 투쟁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손오공과 저팔계의 전형적 형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손오공이 천궁을 뒤흔들다 세 번만에 파초선을 얻어내다 백골정을 세 번 치다 이야기들은 일반대중들 사이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서유기)를 비평한 책으로는 청나라 오일자의 (서유진전), 장서신의 (서유정지), 오원도인(유일명)의 (서유원지) 등이 있다. 모두가 서유기의 주된 뜻을 해석하고 유학을 해명하기 위해, 또는 불교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도교를 선전하기 위해 썼다는 등 갖가지로 평하고 있다. 그러나 작자 자신은 별로 그처럼 어렵게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닌 듯하다. 작자는 원래 유학을 배운 선비로서 심심풀이로 이 소설을 쓴 것이다. 5행설을 이따금 섞고 있으나 특히 도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자의 불교에 대한 지식이 어설퍼서 당시의 상식 이상의 것이 아니다. 유불선 3교의 혼합은 당시의 풍조이기도 하나 작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직 우습고 재미있게 소설을 꾸미면서 붓장난을 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 듯하다.

(서유기)의 속작으로서는 (후서유기) 6권 40회가 있다. 작자는 알 수 없으나 명말청초의 것인 듯하다. 내용은 화과산에 또 돌원숭이가 태어나 신통력을 얻은 후 소성이라 자칭하며 대전화상을 따라 인도로 향한다. 도중에 저일계와 사미를 만나 함께 여러 악마를 정복하고 영산에 도달, 마침내 진해를 얻어서 돌아온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요컨대 (서유기)의 재탕에 불과하며 문장도 신통치 않다. 

그러나 (서유보)는 걸작이다. 모두 16회로 명말청초의 문인 동설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서유기) 제61회의 뒤를 이어 손오공이 시주를 받으러 가서 청어의 영물에게 홀려 몽경에 들어간다. 거기서 손오공은 진시황을 찾아 화염산을 달리고 만경루에 들어가 물구나무서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구한다. 또한 미녀로 변하거나 염라대왕으로 변하기도 하나 마침내 허공주인의 부름으로 몽경을 떠나면서 전부가 허무임을 깨닫는다는 것이 그 줄거리다. 이 책은 명나라 말엽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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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遊記 / Journey to the West  (출전 : 나무위키)


1. 개요

2. 각국의 서유기

2.1. 대한민국

2.2. 일본

2.3. 그 밖의 나라

3. 주요 등장인물

4. 등장하는 국가

5. 대중문화 속의 서유기

6. 각색

6.1. 주요 파생작품들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승은이 지은 중국의 고전소설. 당나라 승려 현장(삼장)법사가 서역에 불경을 얻으러 가면서 81가지 고생을 겪는 수난기이다. 단편으로는 서유보가 있고 속편으로 후서유기가 존재하지만, 둘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 장르로 분류한다면 로드 무비다. 같이 4대 기서로 손꼽히는 《수호지》, 《삼국지》처럼, 《서유기》 이전에도 작품의 바탕이 되는 무수히 많은 설화들, 극본, 전설 등이 있는데, 작자인 오승은이 거의 혼신의 힘을 쥐어짜서 이들을 엮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어낸 작품.


전반적으로 비장미 넘치는 영웅들의 영고성패(榮枯成敗)를 다룬 대하소설 같은 《삼국지》나, 백성들을 쥐어짜는 권력가들에 대한 분노와, 법과 질서를 마음껏 유린하는 피카레스크적 전개를 지닌 《수호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색다른 작품. 전반적으로, 읽다보면 겉으로는 판타지/개그물 같은 작품인 듯하지만, 내용을 깊이 파보면 상당히 깊이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이해하기에 따라 다른 것이며, 가볍게 판타지/개그물로 즐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무능한 황제부터 시작하여 관리나 도적에 이르기까지, 평범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유린하는 힘 있는 자들을 활계를 통해 풍자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바르게 쓰여야할 깊이 있는 가르침을 오히려 혹세무민하는 데 악용하여, 관리나 도적 같이 백성들을 쥐어짜는 유불도의 인물들을 삼장의 고난과 모험으로 대차게 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곡해되고 있는 세상의 여러 가르침의 본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다루는가 하면, 또 살뜰하게 손오공이 이런 쳐 죽일 놈들을 무수히 때려잡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를 대리만족까지 시키고 있다. 애초에 작자로 칭해지는 오승은은 명나라가 한창 개막장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에, 탐관오리 누명까지 쓰면서 졸지에 잉여가 된 인물이기에, 대차게 깔 거리는 차고 넘치는 양반이었다. 이러한 분노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


완역판을 보면 알겠지만, 오늘날의 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재미있는 개그물이다.[1] 포인트는 손오공의 발목을 잡는 무능한 울보 현장법사.[2] 초반에는 손오공의 뻔뻔함과 잔혹성이 싫어지지만, 나중에는 귀 얇고 몸 얇은 현장이 발암이다[3]. 《지 더구나 》의 현장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려졌나 보면 참 보면 하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손오공에 대한 질투심 + 아둔함으로 무장한 저팔계.


사실 중국어를 이용한 언어유희도 상당히 많이 등장. 손오공이 가장 처음 얻은 벼슬명인 필마온 자체가 언어유희이다.[4] 그 외에도 중국어에선 토지(土地)와 제자(徒弟, 도제)가 동음이의어라서, 삼장법사가 악몽을 꾼 뒤 깨어나서, ‘으아아! 제자들아!’ 라고 부르면 저팔계가 투덜거리며 일어나면서, "아따, 스승님은 무슨 꿈을 꾸셨길래 토지신[5]을 찾으십니까?" 라며 중얼거린다.


도교와 불교의 신선(부처)들이 우수수 등장하는 크로스오버의 선구자적 작품이며, 그럼에도 전혀 이야기 진행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논어의 "공자께선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 라는 가르침에 의해 이 작품에 대한 취급은 그다지…. 그래도 작중에서 유교를 무시하지도 않고, 공자를 선생으로 칭하긴 한다.


사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실상 삼장법사 갈굼이다. 사실 서천이란 곳은 손오공은 하루에도 네댓 번은 족히 날아서 왕복할 수 있으며,[6] 그보다 느린 저팔계나 사오정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진경은 고난 끝에 얻어야 성의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삼장법사가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서천까지 가야하는 것. 손오공의 목적은 '서천으로 가는 것'이 아닌 '삼장법사를 서천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이다.[7][8][9] 게다가 손오공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요괴가 아니라 삼장법사다.[10][11] 작중에서 요괴가 먼 곳으로 납치해간 걸 도로 데려오거나, 요괴가 꼼수를 부리자 어쩔 수 없이 손오공이 삼장법사 일행을 순식간에 산 너머로 이동시킨 것을 빼면, 단 한 번도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도술로 이동시킨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고생하는 곳은 커다란 강.


게다가 스포 주의 마지막에 서천에 도착한 그들은 마침내 원하던 진경도 얻고 편하게 구름 타고 당나라로 돌아가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이 삼장법사가 겪은 고난의 수[12]를 보니 80개로 딱 한 개가 모자라고, 걸린 날짜도 8일 정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한 번 떨구라고 한다.[13] 행보관이냐! 그렇게 해서 영감대왕과 싸웠던 통천하 부근에서 한번 떨궈서, 강 건너다가 그때 만났던 자라를 만나 고생하게 만들고[14] 며칠 지나자 다시 구름에 태워서 남은 길은 마저 편하게 가게 해주어 5천 48일의 수를 맞추는데, 이 무슨 고약한 심보인가. 그것도 마지막에 아난, 가섭 두 존자[15]가 자신들에게 선물을 달라고 했다가 주지 않자 삐쳐서 아무 것도 안 써진 진경인 무자진경을 줬다가, 삼장법사가 탁발할 때 쓰던 밥그릇[16]을 시주하자 제대로 된 진경을 주기까지 했었다. 주기 싫은 건가?[17][18]


중국 본토에서 만든 애니메이션도 있다. 대륙답지 않게 자연스럽다 후술하는 대로 무려 1941년에 중국에서 아시아 최초인 유성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장법사의 부하들은 오늘날로 따지면 하나같이 고관대작들밖에 없다. 이들이 삼장을 만나기 이전의 직함들이라는 게 오늘날로 따지면 대통령, 해군참모총장, 수도방위사령관이다.


손오공(孫悟空): 제천대성(齊天大聖: 원숭이로 이루어진 화과국을 다스리는 임금 및 72동 요괴들을 통솔하는 맹주, 천계에서 벼슬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화내며 돌아가 버린다. 이에 진노한 상제가 벌을 주려 잡아오려다가 천병(天兵)들이 줄줄이 깨지자, 달래는 의미에서 준 벼슬이름도 제천대성으로 명실상부 상제 다음의 지위에 맞먹는다. 실권은 없는 명예직이지만.)[19]

저팔계(豬八戒): 천봉원수(天蓬元帥: 하늘의 강인 은하수를 지키는 수군사령관)

사오정(沙悟淨): 권렴대장(卷簾大將: 옥황상제의 궁전을 지키는 경비총책임자)


2. 각국의 서유기[편집]


2.1. 대한민국[편집]


고려 말, 조선 초의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 언해, 노걸대》에서 《서유기》가 언급된다. 이 문헌은 서유기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최초의 문헌으로, 서유기의 수용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 사상이 거의 지배적이던 시기라, 서유기의 존재가 크게 알려지지 못한 편이나, 조선 시대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었다. 궁궐 지붕 위에 액을 막기 위해 세우는 잡상들 중에 대당사부(삼장),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 등 서유기의 주인공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1798년(정조 22년) 무렵 제작된 경남 양산 통도사 용화전(龍華殿) 벽화에서, 《서유기》의 주요 장면을 소재로 한 그림이 확인되었으며, 《서유기》가 석탑의 부조 형태로 표현된 예도 있다.


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으나(물론 《금병매》보다는 훨씬 높았지만), 근현대에 들어 일본의 서적이나 사상 등이 들어옴에 따라 서유기 또한 인지도가 올라갔다.


국내에는 주로 아동용의 다이제스트 버전의 소설이 널리 알려진 편이라서, 81가지 고행이 전부 등장하지 않는 책이 많다. 현재 원전을 번역한 10권 분량의 소설이 2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20]


참고로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번역한 서유기도 필독을 권한다. 상당히 유려한 문체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 원작을 충실히 고증하면서, 현 시대의 병맛이 짬뽕된 작품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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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박영일 감독이 맡은 선화공주와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건 37분 정도로 잘려나간 버젼임을 알아두자. 삼부비디오를 통해 출시한 비디오판을 보면 원래 시간은 70분 정도니 절반 가까이 잘려나갔다. 참고로 이 애니 동화에 참여한 게 바로 김청기. 잠뿌리는 그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한 수작이라고 호평했다.


그밖에 1978년작인 한헌명 감독이 맡은 손오공과 별들의 전쟁이란 작품도 있다. 포스터와 달리 공주가 아니라 삼장법사가 주역(?)이다. 여기서 살생을 금하라던 삼장이 손오공에게 외계인에게는 가차없이 해치우라고 말을 하여 손오공이 살생을 금하라고 했잖습니까? 이러자 삼장법사가 하던 명대사.


오공아, 살생을 금하는 건 지구인에게만 해당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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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비디오로는 SF 서유기 스타징가처럼 나와서 헷깔리게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없다》라는 책자에서 이 비디오 표지를 싣으면서 이 애니가 SF 서유기 스타징가 표절작처럼 엉터리로 쓰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외계인 나오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 이외에는 오히려 원작 서유기랑 매우 비슷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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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표절이 아니라 무단도용이 하나 있긴 하다. 이 포스터에 SF 서유기 스타징가에 나오는 사 조고가 타는 우주전투기를 멋대로 도용했다. 하지만 정작 애니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으니 표절은 절대 아니다. 꼴에 애니메이터들이 썼다면서 작품 확인도 안하고 썼다

날아라 슈퍼보드도 결국 서유기가 원작인 셈.그러고 보면 삼국지와 더불어 한,중,일 3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1967년에 한국영화 손오공과 철선공주가 만들어졌고 후술하는 대로 KBS인형극 서유기도 만들어졌듯이 여러 미디어로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2.2. 일본[편집]


묘하게도 일찌감치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서유기의 판본이 일본에 있을 정도다. 불교가 일상화된 사회와 환상적인 분위기, 기묘한 스타일의 모험삼장법사의 기묘한 모험에다, 거기에 일본에서 친숙한 원숭이 주인공(…)이라는 요소가 일본인들에게 꼭 맞아 떨어졌는지, 일본 사람들이 더 좋아해서 여러 차례 일본에서 TV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다. 묘하게 삼장법사가 여성화되어서 이후엔 여자 삼장법사로 누가 나오느냐로 화젯거리가 변질된 면이 없지 않지만.[21] 가장 유명한 것은 78년부터 80년 사이에 방영된 니혼 TV 《서유기》.[22] BBC에서 79년부터 이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서구(西歐)에 본격적으로 《서유기》가 알려진 것은 이때. 참고로 BBC에서는 『MONKEY』(…)라는 무식하고도 간단무쌍하기 짝이 없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참고로 이박사의 노래로 알려진 《몽키 매직》은 사실 일본 드라마 서유기 1기 때의 오프닝 곡이다. 7~80년대 일본의 인기밴드였던 고다이고(Go Diego)가 불렀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가 만화로 그렸는데, 제목은 《나의 손오공》.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80년대 초반에 KBS-2에서 방영했고 이후 리메이크 되었으며,


파일:external/www.koreafilm.co.kr/sonogong_11.jpg

2003년, 극장판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국내에 《손오공 돌원숭이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더빙 개봉된 바 있다.


사실상 현대 만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품. 일단 소년만화에는 비록 뒤로 갈수록 이름 빼면 아무 관련도 없는 만화가 돼버리지만 그 유명한 《드래곤볼》이 있고, 청년 만화 쪽에선 《최유기》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2.3. 그 밖의 나라[편집]


영국에선 데이먼 알반과 제이미 휴레트 손에 뮤지컬 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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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부도(Abudoe Software)라는 업체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도스 및 윈도 3.1, 95게임이라, 지금 실행하자면 도스박스를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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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미원 인터렉티브라는 업체에서 《손오공탐험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정식 발매된 바 있다. 원제목은 《Wu Kung: A Legendary Adventure》. 문제는 그야말로 망해서 지금은 희귀게임이 되어서인지, 이베이에서 100달러가 넘는 값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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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방식은 전형적인 당시 어드벤처 게임 형식. 게임이 짧은 편이고 난이도가 좀 있긴 하다. 공략을 보면 쉽긴 하지만. 손오공은 중국 발음인 Sūn Wùkōng(쑨우쿵)으로 제대로 나오는 반면에, 저팔계는 에디, 사오정은 시모어라는 영어 이름으로 나온다.


3. 주요 등장인물[편집]


손오공(손행자)

삼장법사(현장법사)

저팔계(저오능)

사오정

백마

인간계(당나라)

당태종 이세민 - 서유기 본편의 당나라 시대는 모두 이 사람의 재위기간이다. 경하 용왕과 얽힌 일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저승에 대해 알게 되고 중생을 구원할 진경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삼장법사에게 경을 가지러 서천에 다녀오도록 명하고, 의형제를 맺는다.

위징 - 당태종의 신하인 동시에 옥황상제의 명도 받드는 명신(名臣). 옥황상제의 명에 따라 경하 용왕의 사형을 맏는다. 경하 용왕은 당태종에게 위징을 사형 집행을 못하게 붙잡아놓아 달라고 부탁하고 당태종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당태종은 그가 말한 사형 시각쯤에 위징에게 바둑을 두자고 하는데, 바둑을 두던 위징이 잠이 들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위징이 혼 만 빠져나가 사형을 집행, 경하 용왕의 목을 쳐버린 것. 이 일로 당태종이 경하 용왕 귀신의 시달림에 죽게 되자, 저승의 판관으로 있는 의형제 최각을 알려주면서 당태종이 살아 돌아올 수 있게 해준다.

장초, 이정 – 어찌 보면 만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학문은 뛰어나지만 벼슬엔 뜻이 없어서 장초는 물가에, 이정은 산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둘이서 길을 가면서 서로 어부로서의 삶과 사냥꾼 + 나무꾼으로서의 삶 중 뭐가 더 좋은지 시를 읊으며 옥신각신한다. 그런데 헤어지려는 순간 장초가 장안의 어느 도사에게 금잉어를 한 마리 주면서 어디서 물고기가 잘 잡히는지 말해주는데 그게 백발백중이라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다고 자랑을 하고, 근무시간인데 두 사람 말싸움하는 걸 느긋하게 듣고 자빠져있던 순찰하던 야차가 그걸 듣고는 깜짝 놀라 경하 용왕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결국 당태종이 죽다 살아나고, 삼장법사는 서천에 경을 가지러 가는 계기가 된다.(…)

원수성 - 그 당시 흠천감 장관 원천광의 숙부로, 장안에서 제일가는 점쟁이다. 장초에게 금잉어 한 마리를 받는 대신 그날그날 물고기가 잘 잡히는 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 것 때문에 젊은 선비로 변장하고 찾아온 경하 용왕과 내기를 하게 되고, 내기에선 지지만 경하 용왕은 천명을 어겼으니 사형을 당할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용왕이 데꿀멍하곤 살 방법을 알려달라고 빌자, 당태종에게 부탁해서 위징이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준다. 아마 그렇게 해도 어차피 죽게 되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희망고문 쩌네.

천계(도교)

옥황상제 - 이래저래 손오공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인물. 손오공이 태어나면서 쏜 빛 때문에 깜짝 놀란 것부터 시작해서 기껏 불러 올려서 벼슬자리를 줬더니 연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천궁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 때문에 식겁한다. 손오공이 오백년 넘게 오행산에 봉인되었다가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 뒤로는 가끔 와서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을 빼곤 골치를 덜 썩여서 그나마 다행.

사해용왕

마앙태자 - 서해 용왕의 아들이다. 타룡 에피소드에서 손오공 일행을 도와 싸워 이긴다. 그 후 쇠머리 귀신 에피소드에서 코뿔소 요괴들이 서해로 도주하자 다시 참전한다.

경하 용왕 - 경하를 다스리는 용왕. 어느 날 부하 야차(물귀신) 하나가 원수성이라는 도사가 물고기가 잘 잡히는 자리를 예언해준다는 보고를 하고, 그걸 듣고는 그놈 때문에 수족(水族)이 씨가 마르겠다고 발끈한다. 그런데 원수성을 엿 먹이겠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명(天命)을 어기는 병크를 저질러버린다.[23]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생기자, 사형 담당관인 위징을 붙잡아 놓아달라고 당태종에게 애걸한다. 그러나 당태종이 실패하자, 귀신이 되어서도 그걸 트집삼아 저승에서 삼자대면을 하자고 당태종을 못살게 군다. 결국 이 것 때문에 당태종은 병을 얻어 사망하지만 위징, 최각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경하 용왕은 당태종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냥 환생당한다. 여러모로 찌질한 용왕. 여담으로 자식이 여덟 명이나 있는데, 그 중 막내인 타룡이 또 문제아라 후반부에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려 한다.

태상노군 - 작 중 가장 고생하는 신선. 손오공이 천계에서 깽판 부리던 시절, 실컷 고생하며 거의 다 구워가던 단약(丹藥)을 손오공이 술김에 죄다 처먹어버린다. 이에 빡쳐 손오공을 잡아다가 팔괘로에 넣고 구워 죽이려했으나 실패하고 팔괘로만 뒤집어진다.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혀있다가 삼장법사의 제자가 된 뒤에도 두 시종은 관세음보살님이 삼장법사 일행한테 시련을 준다고 빌려 금각은각형제가 되서 길을 막으러 가질 않나, 타고 다니는 자가용(?)인 판각청우도 금강탁을 훔쳐다가 도망가서 독각시가 된 데다가, 나중엔 대뜸 손오공이 찾아오더니 사람을 살려내는 단약을 달라고 어거지를 써서 결국 준다.(…) 처음엔 안 주려다가 손오공이 순순히 물러나니, 저거 물러난 다음 죄다 훔치러 오는 거 아닌가 걱정해서.(…)

탁탑천왕 이정

나타

이랑진군

태백금성 - 천계 최고의 대인배. 손오공의 세력이 커지자, 하늘에 벼슬자리를 하나 주어 달래자고 제안하고 손오공을 데리러 갔던 인물이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안 손오공이 필마온 자리를 내팽개치자 다른 신하들이 그를 처단하자고 하지만, 태백금성만이 그를 잘 타일러서 제천대성으로 삼고 반도원 복숭아지기를 시키자고 하기도 했다. 근데 그 결과는… 그 뒤로도 삼장법사 일행의 서천행에 가끔씩 나타나 도움을 준다. 이런 인물이기에, 그 손오공도 태백금성만큼은 존중해주고 그의 말은 거의 따라준다. 저팔계 역시 술에 대취해 월궁(月宮) 항아(姮娥)를 희롱했을 때, 태백금성 덕분에 가까스로 사형만은 면했었기에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진원대선

왕천군

이십팔수

불교

석가모니 - 부처님. 초반 천계의 연회에 참석하러 왔다가 손오공이 깽판을 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제압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유명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일화로 단숨에 손오공을 손 밑에 깔아뭉개고, 손을 오행산으로 바꾼 뒤 부적을 붙여 완전히 제압한다.

관세음보살 - 석가모니 부처님의 명을 받들어 삼장법사가 서천으로 진경을 구하러 오도록 하고 관리하는 중간관리직보살. 작 중 손오공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가장 많이 도움을 준다. 가짜 손오공 육이미후 사건 때를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이분 선에서 사건이 해결될 정도.

지장보살

목타

보현보살

수보리 - 손오공의 첫 스승. 손오공이 영특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것을 보고 수제자로 기르지만 자랑하기 좋아하는 품성을 보고는 언젠가 분명 사고를 칠 놈이라는 걸 알아보고 파문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어디가서 자신에게서 도술을 배웠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손오공은 비록 쫓겨났지만 그 말만큼은 지켜서 손오공이 누구에게서 도술을 배웠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요괴

혼세마왕

우마왕

홍해아

금각은각형제

삼청관 도사

흑풍괴

나찰녀

남산대왕

가짜 손오공

칠대성

구령원성

독각시

새태세

영감대왕

풍류괴

황풍마왕

황포괴

칠절산 구렁이

구두충

황미대왕

사타동의 세 마왕

쇠머리 귀신

청모사자

백골정

우융왕

사타왕

붕마왕


4. 등장하는 국가[편집]


보상국: 황포괴와 싸운 곳.

오래국: 손오공이 태어난 곳인 화과산이 여기에 소속되어있다. 손오공이 도술을 배운 후 이 나라 도성에서 무기들을 훔쳐 부하 원숭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오계국: 문수보살이 데리고 있던 청모사자가 왕을 죽이고 대신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손오공은 왕을 살려내 다시 왕좌에 앉히고 청모사자는 문수보살이 데려간다.

차지국: 삼청관 도사들과 겨룬 곳. 저 요괴들에 의해 숭도억불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나 이후 삼교(유,불,도)를 고루 숭상하게 된다.

서량여국: 여자들만이 사는 나라. 오우 야오 유후. 남자가 없지만 '자모하'라 불리는 강물을 떠 마시면 임신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멋모르고 자모하 물을 마신 삼장과 팔계가 임신하자, 손오공과 사오정은 낙태천을 지키고 있던 여의진선[24]을 제압하고 물을 떠와 아이를 지운다. 안 지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후 도성을 지나갈 때 서량여국 여왕이 삼장에게 홀랑 반해 청혼한다. 삼장 일행은 계교를 써서 거짓으로 장가들 것처럼 흉내를 내다가 냅다 도망친다. 그런데 갑자기 웬 암컷 전갈 요괴가 나타나 삼장법사를 납치해가긴 하지만, 어쨌든 손오공 일행은 이렇게 서량여국을 벗어났고 여왕도 결국 삼장법사를 포기한다.

제새국: 구두충과 싸운 곳.

주자국: 새태세와 싸운 곳.

비구국: 집집마다 새장 속에 어린아이를 넣어 기르는 곳. 국왕의 병을 어린아이 1만 명의 간을 뽑아 만든 약으로 고쳐야 한다기에, 각 집마다 약으로 쓸 어린아이를 그렇게 가두어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손오공은 아이 1만 명을 감추어 두고, 국왕은 삼장의 간을 뽑아 약으로 먹으려 한다. 손오공은 그런 간악한 의견을 내는 요괴를 제압하는데, 그 요괴의 정체는 남극성노인이 타고 다니던 흰 사슴. 결국 국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국왕의 병은 남극성노인이 선물한 대추 세 알로 완치된다.

멸법국(滅法國): 이름 그대로 불교를 멸하려는 나라. 멸법국왕은 불교 승려 1만 명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삼장 일행이 오기 전까지 9,996명을 처형했다. 삼장 일행 네 명을 처형하면 딱 1만 명을 채우게 되는데, 이 사연을 들은 손오공은 일행을 장사치로 변장시키고 큰 나무 궤짝을 구해 그 안에서 네 명이 포개져 잔다. 그런데 도둑떼가 들이닥쳐 삼장 일행이 든 궤짝과 용마를 훔쳐 좋아라고 가다가 군대에게 들켜 도망가고, 궤짝은 국왕에게 보고할 량으로 궁정으로 옮겨진다. 정체가 들통나면 처형당할 것을 걱정한 일행을 위해서 손오공은 꾀를 내어, 상자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분신술을 펼쳐 궁정 인물들의 머리카락을 남녀 할 것 없이 홀라당 밀어내 몽땅 까까중으로 만들어 놓는다. 다음날 아침 멸법국왕은 이 변괴를 겪고 천벌이라 여긴다.[25] 이후 삼장 일행과 대면한 멸법국왕은 개심하여 나라 이름을 흠법국(欽法國)으로 바꾸고, 불교를 숭상하기로 한다. 물론 불교만 숭상하는 게 아니고, 유, 불, 도교를 모두 고루 받들기로 한 것.

천축국: 인도

사합리국: 화염산 에피소드에서, 저팔계가 "서역에는 사합리국이라는 해가 지는 곳이 있는데, 엄청 덥다더라."라는 식으로 지나가듯 언급한다. 시칠리아라는 설도 있는데 근거는 희박하다. 애초에 작가인 오승은이 머나먼 유럽에 있는 시칠리아에 대해 알았을 턱이 없다.


5. 대중문화 속의 서유기[편집]


수많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초능력을 이용한 배틀을 선보인다는 점 때문에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경향이 많아서, 만화는 물론 영화, 인형극 등 다양한 매체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본고장 중국만 해도, 아시아 첫 장편 애니로 바로 이 《서유기》를 1941년에 유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정도이다! 《철선부채 공주(鉄扇公主)》가 바로 중국 첫 장편 애니로, 유튜브에도 72분 풀버전으로 올라와 있다. 만뢰명(萬籟鳴), 만고섬(萬古蟾) 감독(쌍둥이 형제)이 만들었던 작품.


80년대에는 KBS에서 방영된 《어린이 인형극판 서유기》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푸른하늘 날아라~ 손오공 손오공 악당들을 물리쳐라 손오공 손오공 여의봉을 휘두르면 겁낼 것이 없네 겁낼 것이 없네 저팔계 사오정은 초능력 삼총사 알라달라 말라틸라 달라알라 말라틸라 셋이라면 세상은 우리세상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 ~~라는 주제가를 아직 기억하는 분도 있을 듯. 바로 《날아라 슈퍼보드》나 《나의 손오공》에서 손오공을 연기한 박영남이 여기서도 손오공을 연기했었다. 90년대에는 만화가 허영만이 서유기를 참신하게 재해석한 작품인 《날아라 슈퍼보드》로 빅히트를 쳤다.


실사 영상화 작품들 중에도 원전의 스토리라인을 따르지 않고 변주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유진위 감독, 주성치 주연의 《서유기-월광보합》과 《서유기-선리기연》은 명작으로 꼽힌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인 《서유기-항마편》 역시 중국 영화사(映畵史)상 가장 빠르게 한화로 1,700억 원을 벌어들인 성공작이다.


TVB에서 제작하고 장위건이 주연을 맡은 《신무협 서유기》는, 《서유기》 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한국에 잘 알려진 드라마이다. OBS와 iTV에서 방영해주었으며, 《서유기》의 스토리를 가장 잘 반영한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Ninja Theory에서 제작중인 《Enslaved: Odyssey to the West》는 미래판 서유기라고 할 수 있다. 로봇들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주인공 멍키가 트립이라는 여자에 의해 머리에 고리가 씌어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서쪽으로 함께 가게 된다는 내용.


6. 각색[편집]


《서유기》는 《삼국지연의》보다 훨씬 많은 각색이 시도되는 작품[26]으로, 기본적으로 핵심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고 플롯이 매우 느슨하기 때문에 각색이 쉬운 편이다.


일단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역할만 있으면 대략 《서유기》다운 꼴은 되며, 플롯은 중간의 고난을 줄이거나 변형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탄력성 있게 대응할 수 있다. 각색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삼국지》와는 달리 대놓고 컨셉을 판타지로 잡았기 때문에,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 상당히 자유롭다. 그런 데다가 누구의 관점이냐에 따라 주인공이 달라지는 삼국지와는 달리, 《서유기》는 손오공이 주인공이라는 고정적인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창작하기가 《삼국지》보다 훨씬 쉽다. 사실상 《서유기》는 항상 손오공이 고정적인 주인공이다. 이말년도 그래서 삼국지를 다 그려놓고도, 삼국지가 아닌 서유기를 발표했다.


6.1. 주요 파생작품들[편집]


《Dear Monkey 서유기》

《SF 서유기 스타징가[27]

《S.Y.K ~신설서유기~》

《SECRET JOURNEY》

《갓 오브 하이스쿨》[28]

《고우영 서유기》

《날아라 슈퍼보드》[29]

《도라에몽 극장판 노비타의 패러랠서유기》

《드래곤볼》

《드래곤 킹덤》

《록맨 메가 월드》

오리지널 보스 버스터로드.G, 메가워터.S, 하이퍼스톰.H

《마법천자문》

《몽키 매직》

《무쌍 오로치 마왕재림》, 《무쌍 오로치Z》

《반 서유기》

《삼투사》

《손손》

《서울 손오공》 - 신문수화백의 명랑만화 각색.

《서유기(KOEI)》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서유기 ~여행의 끝~》

《서유기 월드》

《서유기-월광보합》/서유기-선리기연》 - 이 작품 이후로 중국판 짝퉁비슷한 영화에서 손오공 이미지가 다 비슷해졌다.

《서유기-정전대성》

《서유기 리턴즈》(주연 김병만)

《서유기전 대원왕》 - 테라다 카츠야가 그린 작품. 굉장한 디테일에 오공, 팔계 등이 리얼한 짐승형태로 그려지고 피와 살이 튀는 물건이다.

《서유항마록》

《서유석액전》

《서유요원전》

《서환유기》 - RTHK의 풍자 TV쇼인 두조신문의 오프닝, 엔딩코너로 삽입된 서유기 패러디(?). 삼장법사와 손오공 분장을 한 진행자가 그날의 방송분에 관련한 멘트를 한다.

《신서유기》

《신서유기 손오공 대전비인》#

《신 무협 서유기》

《아소봇토 전기 고쿠》

《오공도》

《오공의 대모험》 - 1980년대 초반, 손오공하면 많이 기억하는 이미지. 동아제약에서 생산하는 건강식품인 미니막스의 표지로 쓰였을 정도였다.(이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때였지만.) 여기서는 사오정이 다른 작품과는 달리 할아버지 캐릭터다.

《이말년 서유기》 원작을 알아도 스포일러를 못한다 카더라.

《이스트 로드 퀘스트》

《인슬레이브드》

《최유기》

《채지충 서유기》

《파라티로 서유기》

《후서유기》


7. 관련 문서[편집]


사유기

북유기 / 남유기 / 동유기

신서유기



[1] 한편으로는 요괴와 인간의 혼혈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을 때려죽이는 등, 근대적 관점에서만 볼 때는 몰상식하고 잔인하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도 많다.

[2] 요괴 상대든, 인간 상대든 전투력은 0에 수렴하며, 심심하면 인질로 잡혀가는 히로인 포지션(…). 게다가 잡혀가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일반인들과 교제할 때에는 스님이라는 신분이 도움이 되는 편이다. 일반인이 손오공 일행을 보면 아예 요괴라고 피해다니니까.

[3] 아닌게 아니라 읽다보면 현장이 요괴들에게 납치되어 감금된 장면을 보고 "당해도 싸다!"란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보면 대개가 현장의 외골수적 원리원칙주의, 즉 불교의 계율에 너무나도 집착하여 일어난게 원인이다.

[4] 해당 문서 참조.

[5] 작중에서 토지신을 '토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6] 사실 그것때문에 지루함을 느낀 손오공은 도망을 시도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용왕의 외침을 듣고 참게된다는...

[7] 혜초가 인도를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은 4년이다.

[8] 당연히 지명이 동음이의어고 다른 거지만, 충남 서천도 남부지역에서 서쪽이다!!!! 舒[펼 서

[9] 《이말년 서유기》 댓글에 실제로, 장항선 서천은 대한민국에서도 오래 걸리지만, 중국에서 도보로 오니 얼마나 멀겠냐는 드립도 있다.-_- 여러분 정차횟수 적은 역은 시간을 놓치면 이렇게 곤란합니다

[10] 이 때문에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은 불경 배달 따위가 아니라,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초강력 마물인 손오공을 인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반 우스개 주장도 있다.

[11] 작품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요괴가 변신해서 일행 유인 → 손오공은 대번에 간파하고 혼내거나 걍 가자고 함 → 삼장이 혼내면서 요괴 도와주라고 함 → PROFIT(…) 저팔계 합류 이후엔 삼장과 저팔계가 쌍으로 손오공을 갈군다.(…)

[12] 삼장법사가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일이 제 1의 고난이다. 그 이후로 겪은 모든 고난들이 일일이 기록되어있다.

[13] 고난의 수를 구구 팔십일, 81개의 수효에 맞춰야 완성되며, 여행에 걸린 날짜는 5천 40일로 나눠준 진경 5천 48권에 비해 8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고생 한 번 더 시키라고 한 것.

[14] 영감대왕항목 참조.

[15] 석가모니의 제자이자 1대, 2대 의발전인(衣鉢傳人)인 그 가섭과 아난 맞다.

[16] 이래봬도 당태종이 삼장을 배웅하며 준 물건이다.

[17] 귀중한 불경을 너무 싸게 주면 후손이 벌 받는다는 핑계를 대는데(판본/번역본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이런 목적인 것도 있다), 이는 사실 저자 오승은이 천계나 서천에서도 뇌물이 존재한다고 비꼬는 의미로 그랬다고도 한다. 실제로 작중에서 부처를 호위하는 신장(神將)들이 이걸 보면서 가섭과 아난을 보고 손가락질하자, 둘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못한다. 여담으로, 이들이 가짜 무자경을 주는 것을 알아채고, 손오공 일행을 간접적으로 도와준 존재는 전불(석가모니 이전 시대의 부처)인 연등불.

[18] 가섭과 아난이 석가모니를 대신해, 삼장법사가 없는 몸에서도 내려놓을 줄 아는지를 시험해 보았다는 설도 존재한다.

[19] 실제로 원숭이 중에서는 상당수의 종류가 단체생활을 하고 실제로 리더도 있다.

[20] 하나(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임홍빈 역본)은 문어체로, 다른 하나(솔출판사에서 낸 서울대학교 번역조 역본)는 구어체(문장의 말투를 XX요 식으로 끝냈는데, 대하소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물론 구어체를 잘 살려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방식이 더 좋다는 평가도 있으니 읽는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로 번역했다.

[21]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 배우를 썼지만 일단 남캐 설정이다. 이 기믹은 매우 흥해서 일본에서는 삼장법사를 여성적인, 아니면 여자로 그려 넣는 게 대세가 되었다. 일본 드라마 《서유기》 1대 삼장법사는 나츠메 마사코(夏目雅子)로, 1985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의 삼장법사에 대해서는 추가 바람. 2006년 후지테레비의 삼장법사는 후카츠 에리.

[22] 젊은 세대에게는 후지테레비에서 2006년에 방영한 카토리 싱고 주연의 드라마도 유명하긴 하지만….

[23] 원수성이 내일 몇 시에 어느 정도의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하자, 용왕이 그게 맞으면 복채를 주고 틀리면 집을 박살내겠다고 내기를 건다. 그러곤 돌아와서 비를 내리는 건 자기 관할인데 그걸 어떻게 맞히냐고 낄낄대는데, 갑자기 그 일대에 비가 안 온 지 좀 됐으니 몇 시에 어느 정도 내리라는 원수성의 예언과 딱 맞는 천명이 내려온다. 거기서 그냥 졌다는 걸 인정했으면 쪽만 팔리고 끝났을 텐데, 괜히 이기겠답시고 시간도 다르게, 비의 양도 다르게 내린다.

[24] 우마왕의 아우이자 홍해아의 삼촌이다. 홍해아가 관세음보살의 수하로 들어간 것에 앙심을 품어 물을 떠가지 못하게 막았다.

[25] 여담으로 이 왕이 승려 1만 명을 죽이기로 한 이유는, 예전에 어떤 스님에게 모욕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6] 영화나 드라마야 말할 것도 없고 만화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경우 삼국지는 코에이 테크모의 삼국지 시리즈가 과반수인 반면, 서유기는 많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만화의 경우, 서유기는 《이말년 서유기》, 《날아라 슈퍼보드》, 《서유기 스타징가》, 《최유기》 등 정말 많지만, 《삼국지》의 경우 《고우영 삼국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등 《서유기》만큼 많지는 않다.

[27] 국내에서는 《오로라 공주와 우주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방영되었다. ‘대우주~ 대우주~ 옳은 세상 밝은 나라 세우러 간다~’ 라는 주제가를 기억하는 분들 있을 것이다. 이후 《별나라 손오공》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TV 방영되었다.

[28] 주인공인 진모리의 정체가 손오공이며, 과거 언급을 종합해봤을 때 기본적인 틀에 몇가지 추가적인 설정만 붙었다고 봐야한다. 천계에서 깽판을 쳤던 건 여기선 천마대전으로 바뀌었으며, 마지막 부처가 되기 전 석가여래와 싸워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차이.

[29] 연재 초반에는 《미스터 손》이라는 제목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에 만화의 타이틀을 교체했다. 아마도 애니화와 관련되어 임팩트가 있는 제목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드래곤볼》과 비슷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사실 초반에 손오공이 천계와 저승 등에서 깽판치는 부분 이후의 주인공은 미스터 손과 미로라는 소녀였다. 스커트의 그림자로 까맣게 칠해버리긴 했지만, 국내 만화로는 드물게 팬티노출이나 다름없는 각도의 연출(미로가 산에 깔린 미스터 손의 발을 밟고 놀라는 장면)도 있었고, 미로가 손오공을 유혹하는 듯한 장면이나, 미로의 목욕장면 비슷한 것도 있었다. 《드래곤볼》과 유사한 분위기이긴 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당시 연재본을 본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느닷없이 중간에 미로가 사라지고 삼장법사가 갑툭튀한다. 이 시기는 제목이 바뀐 것이 거의 일치한다. 왜 바뀌었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나오지 않았고,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만화의 성공과 애니화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으로 볼 때,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긴 하다. 그러나 확실하진 않다는 것에 주의. 여담이지만, 허영만의 다른 만화 《제7구단》은 실사화되면서 《미스터 고》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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