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08 – 무기여 잘있거라(A Farewell to Arms) /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록 허드슨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절리 알려진 이 작품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종교. 문화. 역사가 그 의미를 상실한 20세기 초 미국의 뿌리 잃은 세대의 비극적 삶을 다룬 헤밍웨이의 대표적 소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경험을 토대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펼쳐진 미군중위와 영국 간호사 사이에 피어난 비극적 운명의 사랑을 묘사함으로써, 전후 젊은 세대의 상실감과 허무주의를 그려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가인 헤밍웨이는 미국의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신앙심이 돈독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내성적인 어머니보다는 야성적인 부친을 닮아 고교시절에는 축구. 육상. 권투 등 모든 스포츠를 즐겼고, 한편으로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셰익스피어. 디킨스. 스티븐슨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 무렵 시카고에서는 라트너라는 작가가 미국 중부지방의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간결한 문장, 스토리의 빠른 전개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헤밍웨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라트너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고교를 졸업하던 1917년, 미국은 제1차대전의 참전을 위해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지원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와 시력장애로 단념해야 했다. 곧 이어 <스타>지의 기자가 되어 뜨거운 종군열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한다. 밀라노 전선에서 전쟁의 실상을 처음으로 체험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진흙탕 속을 달리는 병사와 피난을 떠나는 난민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1918년 7월에 부상을 입어 영웅적 행위에 대해 훈장을 받고 밀라노에 입원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적십자사의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연상인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거절한다. 그 일은 19세 청년인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결국 무기여 잘 있거라 의 모티브가 된다. 

파리 특파원 시절, 현지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 등 일류문인들에게 간결한 문장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문장수업을 받았다. 1925년 우리들의 시대 가 출판되는데, 이 작품은 헤밍웨이 문학이 성장과정에서 볼 때 이때까지의 습작시기에 종지부를 찍는 금자탑적인 존재다. 이 책을 분수령으로 그는 그의 창작력이 가장 활발한 의욕적 창작시대를 맞게 된다.

1926년 파리와 스페인을 무대로 찰나적이고 향락적인 남녀의 전후풍습을 묘사한 그의 첫 장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출판되었는데, 이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위치를 굳혔다. 

1928년에는 1차대전의 체험을 배경으로 추고에 추고를 거듭하여 무기여 잘 있거라를 펴냈는데,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물론 곧 이어 연극화. 영화화되었다. 당시 미국은 1929년의 대공황으로 사회불안과 노사대립이 격화되어, 작가들도 사회문제에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헤밍웨이도 이같이 변화하는 사회상황에 적응하여  빈부를 발표한다. 1932년에는 동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쓴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은 그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1936년 스페인에 내란이 일어나자, 그는 정부군을 돕기 위해 특파원으로 참전했고, 전쟁은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그는 이를 배경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1940년에 발표하였다. 1939년 제2차대전이 발발하자 콜리어지 특파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말년에는 쿠바에 가서 낚시를 즐기곤 했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노인과 바다를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사상과 예술추구의 작가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으로 헤밍웨이 문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 상과 1954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53년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서 투우를 즐기고, 아프리카로 가서 수렵을 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도 못했다. 요양중 의문의 엽총자살로 62세에 최후를 마쳤다. 평생 네 번의 결혼을 했고, 결혼할 때마다 거주지를 옮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b. 주요작품과 작품세계

1920년대의 문학사조는 냉소주의와 비극적 운명에 대한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러한 사조는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로서 깨어진 이상을 가지고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젊은이들을 대변하였다. 이러한 잃어버린 세대를 표현한 작가로는 소설가 헤밍웨이, 시인 엘리어트, 극작가 오닐 등이 있다. 제1차대전이란 엄청난 전쟁에 휘말려 환멸과 절망과 좌절에 빠진 지성인들을 잃어버린 세대 라 지칭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본 것처럼 헤밍웨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스스로 죽음의 고비와 위험을 자초하곤 했다. 그의 문학에서 죽음의 문제는 어디서고 나타난다. 그의 초기단편 인디언 부락 에서조차 탄생과 죽음의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잃어버린 세대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b-1.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전후세대들이 전쟁으로 인한 환멸과 허무에 허덕이던 시대에 전후세대 예술가들은 현재의 감각적 도취로 잊어버리려 애쓰지만, 파리의 환락가도, 스페인 투우장의 열기도, 폭음과 자유분방한 성생활도 그들로 하여금 권태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즉, 그들의 방황은 정신적 안주를 찾아 헤매는 방황이었으나, 끝내 황무지의 퇴폐 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세대의 젊은이와 작가들의 도피적 개인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b-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미국 청년 로버트 조던이 겪는 사랑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미국의 지식인 청년을 상징하는 조던은 스페인 내란에 참가, 정부군에 가담하여 싸운다. 상대는 19세의 스페인 처녀 마리아로 스페인 여성 특유의 열정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긍정하여 인간이 져야 할 인류의 공동운명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영화화 되었는데,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이 있다. 특히 1952년에 제작된  누구를... 는 게리 쿠퍼와 잉글리드 버그만의 주연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28세의 잉글리드 버그만의 화장기 없는 청순한 얼굴과 짧은 머리는 관객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명을 주었고, 이들의 키스신은 애정영화의 교본으로 남아 있다.


b-3.  노인과 바다 

쿠바 해안에 사는 한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서 자기의 고깃배보다 더 큰 고기를 발견하고 이틀 낮밤을 그 고기와 싸운 끝에 겨우 잡아가지고 돌아오나, 새벽에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상어떼의 습격으로 머리와 뼈만 남은 채 배에 매어져 있을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나,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 이라고 말하는 노인의 말을 통해, 고난을 이겨낸 인간의 전형과 패배를 모르는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탁월한 문체와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작가의 만년의 대표작이다.


c. 주요 등장인물

제1차 세계대전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배경으로 전쟁과 사랑과 죽음을 묘사한 걸작으로,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전쟁문학의 걸작으로서,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의 고백형식으로 씌어진 장편소설이다.

헨리: 죽음의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에 몸을 던진 탈주병.

캐서린: 영국 출신의 지원 간호사로 청순하고 지순한 처녀.


d. 작품의 주요내용

작품의 마지막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미울 뿐이라고 말한 캐서린, 그녀는 가고 없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하이네와 함께 그녀가 남긴 이 말은 오랫동안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왔다. 이 작품은 전쟁에 강요당한 슬픈 이별의 이야기다. 전쟁, 아니 미래에 걸었던 꿈이 깨지는 이야기요, 사랑에 걸었던 모든 것이 죽음과 허무로 끝나는 이야기다. 이 장편소설이 전체 5편으로 구성된 것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비극이 5막으로 구성된 것과 상통한다. 영광이니 희망. 명예 등등 전쟁을 로맨틱하게 생각하고 이탈리아 군에 지원. 입대하여. 위생부대 수송장교로 근무하던 미국청년 프레드릭 헨리는 장기전에 차차 권태와 환멸을 느끼던 차에, 마침 현지에서 알게 된 야전병원 간호사에 마음이 끌린다. 캐서린 버클리라는 간호사는 약혼자가 전사하자, 이탈리아로 병원근무를 지원하고 나온 영국처녀였다. 둘은 이탈리아에서 서로 영어가 통했다. 가볍게 시작된 만남은 어느새 강한 그리움으로 변한다. 헨리는 작전에 나갔다가 부상당하고 후방병원으로 이송되어 그녀와 재회한다. 내일을 기약 못하는 전쟁 분위기는 서로의 사랑을 재촉한다. 남자는 이 사랑에서 절망을 벗어나 광명을 찾는다. 숱한 아쉬움을 안고 외롭게 과거만 되씹던 여자에게도 영과 육이 합친 이들의 사랑이 그 삶의 전부가 되고 만다. 헨리가 퇴원하게 되자 다시 이별이 불가피했고, 여자는 임신, 남자는 원대복귀 도상에서 전군후퇴의 난장판 속으로 끼어들어 전쟁의 추악한 비리를 목격한다. 카포레토 지구의 후퇴장면이 드라이한 문체로 인상깊게 전개된다. 혼란 통에 자기 부대를 찾지 못한 장교들이 헌병대에서 이탈죄로 무조정 총살당하는 판국에 끼여든 헨리는, 자기 차례가 되기 직전 강물로 뛰어든다. 위기를 모면한 그는 젖은 군복을 벗어 던지고 모든 공포와 임무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밀라노 시로 애인을 찾아간다. 그는 이제 자기만은 전쟁을 그만두기로, 이를 테면 개별강화를 맺고 군대생활과 결별한다. 도망장교 신세가 된 헨리는 애인을 데리고 비오는 밤 보트로 국경호수를 건너 중립국 스위스로 탈출한다. 빗속의 노를 젓는 긴박한 순간순간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은 스위스 산중에서 한참 사랑과 평화를 즐기지만, 여인은 병원에서 해산하다 죽고, 헨리 혼자 빗속을 걸어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전상과 실연으로 끝난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어지며, 서부전선 이상없다 와 함께 전쟁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작품은 실로 현대 인류의 비극을 파고들어 인간의 조건 자체를 재음미해보고 인간해방의 길을 찾아보려는 안타까운 소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볼 때 이 소설은 20세기의 문제작으로 엄청난 비중을 갖게 된다.


f. 하드 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이런 큰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그의 재능이 돋보인다. 이른바 하드 보일드 문체와 상징적 배경이라는 두 가지 수법으로 한 줄의 낭비도 없이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수식이나 형용사를 모두 배제하고 리듬과 스피드에 넘치는 신선한 문체, 이러한 필법은 소위 헤밍웨이  문체라 하여 영어 산문 문체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고, 이는 그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지게되는 근거가 된다.


g. 상징적 수법

이 글을 쓰기 전의 작가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작가로 간주되었으나 이 작품에 의해 작가의 로만티시즘이 새삼 주목을 받았고, 더욱 최근에는 작품 속에 나오는 상징수법이 주목되고 있다. 재난이 닥쳐올 때, 불행이 예감될 때는 비가 온다. 산의 눈은 몸과 건강과 마음의 건전을 상징하고, 산은 평화와 신성을, 평야는 전쟁과 재앙을, 도시는 타락을 상징하고, 춘하추동 사철의 변화는 그 철에 어울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훌륭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심리묘사를 극도로 피하고, 거의 외면묘사로 시종했으며, 카메라와 같은 비정성으로 자연과 인간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많이 쓰인 대화도 간단명료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동시에 전쟁의 비인간성과 가혹함, 낡은 미덕에 대한 불신, 개인과 사회와의 배반, 현대인이 빠져 있는 불행 및 비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순애와 결말의 허무감으로, 비극으로서의 여운을 최대한 살리고 있는 걸작이다. 또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카포레토의 퇴각장면은 세계전쟁문학 중의 으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조상에 이별을 고하고 있는 듯했다. 한참 후에 병실을 나와 병원을 뒤로 하고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로 끝나는 마지막 구절은 몇십 번이나 퇴고한 유명한 문장이다. 어떻든 현대 미국문학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그 영향력은 프랑스의 카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와 소련 및 동구에까지 미치고 있다. 창작에의 집념을 버리지 않고 항상 체험의 세계를 넓히면서, 그는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와 인간의 처지를 깊이 생각하며 예술을 닦아나간 대소설가였다.



C07 –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 E.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씌어진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이 로맨스풍의 작품은 주제 및 기법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많은 소설들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소설의 역사에서 견고한 고유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18세기 말 요크셔의 외딴곳에 살고 있던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히스클리프라는 부랑아가 몰고온 파문을 짤막한 서술이 삽입된 제3자의 회상체로 그리고 있다. 요크셔의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제인 에어의 작가를 언니로 두고, 평생 동안 한 작품을 써서 명작으로 남긴 여인, 에밀리 브론테. 영국의 소설가 자매로 유명한 브론테 자매는 3녀인 샬롯 브론테, 4녀인 에밀리 브론테, 5녀인 앤 브론테를 말하는데, 야구경기로 말하면 3. 4. 5번의 트리오에 해당한다. 따라서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그녀의 자매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에밀리 제인 브론테는 1818년 7월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를 나온 유능한 성직자였으나, 넉넉하지 못한 수입으로 이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힘에 겨웠다. 더욱이 그의 교구는 요크셔 지방에서도 가장 빈한하고 황량한 마을 호워드였다. 단조롭고 거친 자연에 둘러싸인 황량한 이 고장의 구릉은 기복을 이루고 있어, 들녘에는 항상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이런 풍토로 인해 이 고장 주민들은 침울하고 거칠어 야성적인 데가 있었다. 훗날 호워드는 폭풍의 언덕 의 자연적 환경의 배경이 된다. 그러나 에밀리와 그의 자매들은 일찍부터 이 거친 자연을 사랑했으며, 나중에 그녀들이 작품을 쓸 때 무대로 삼은 것도 이 거칠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호워스로 이사온 뒤 1년 반이 지난 1821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막내딸인 앤 브론테가 태어난 지 1년도 못되었고, 에밀리도 3세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에밀리 자매들은 이모인 엘리자베스 부랜웰에 의해 양육되었다.

1842년 6세가 된 에밀리는 세 언니를 따라 웨스트멀랜드의 코윈브리지에 칼스 윌슨 목사가 설립한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 학교는 가난한 목사의 딸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학비는 매우 싼 편이었으나, 불결한 위생환경과 시설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브론테 자매들도 건강이 나빠져 집으로 돌아왔으며, 다음해 초여름에 첫째. 둘째 언니가 병사하고 말았다. 세상 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도 이에 놀라 에밀리와 샬롯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 기숙학교는 후에 샬롯이 정열적인 고아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제인 에어 에서 분노에 찬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는 자녀의 교육이나 사랑에는 무관심했다. 고작해야 식사 때 이따금 아일랜드의 전설이나 들려줄 정도였고, 대체로 혼자 서재에서 지내는 편이었다. 이모 역시 언니 샬롯과 가까이 지냈고, 언니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했다. 

1831년 에밀리와 앤은, 로헤드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집을 떠난 뒤 18개월 후 사숙의 과정을 끝마치고 돌아온 언니 샬롯에게서 공부하였다. 1835년에는 언니 샬롯이 로헤드의 기숙학교에 조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따라서 에밀리도 이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향수병에 걸려 3개월 만에 귀향하였다. 에밀리에게는 냉랭한 인간사회보다는 황야의 자유로움이 더 알맞은 듯했다. 그 당시 호워스로 돌아가고 깊은 일념에서 에밀리는 40여 편의 시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서, 시를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충동에서 썼을 뿐 발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1845년 가을, 샬롯은 에밀리가 미처 간수하지 못한 시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감명을 받아 발표할 것을 권했다. 샬롯의 끈기있는 설득으로 1846년 세 자매의 시를 모은 시집  커러, 앨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자비로 출판하였으나 2권밖에 팔리지 않았다. 남성적인 필명 벨(Ball)이란 이름으로 런던에서 출판된 이 시집은 전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집필을 계속하고 있던 에밀리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과 샬롯의 교수, 앤의 애그네스 그레이가 때를 같이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소설들을 런던의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간행이 거절되었다.

1847년 샤로트의 두번째 소설 제인 에어 가 런던의 유명한 출판업자 스미스의 눈에 들어 출판되어 큰 반응을 얻은 데 자극을 받아 뉴비사는 폭풍의 언덕과 애그네스 그레이 를 출판했다. 그러나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은 그 당시 너무나 야만적이고 동물적이며 구성이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였다.

 제인 에어 로 성공한 스미스 엘더 사에서 세 자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불우했던 브론테 가에 행운이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1848년 9월 재주는 출중했으나 술과 아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한 오빠 브랜웰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심신이 허약했던 에밀리는 오빠를 잃은 충격과 장례식 때 걸린 감기 때문에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해 12월에 거실 소파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의 유일한 작품이 유명해진 것도 모르고 겨우 30세에.


b. 주요 등장인물

원한에 사로잡힌 히스클리프가 언쇼와 린턴의 가족을 점차로 멸망시키고 그 전재산을 뺏는 보복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과 캐서린의 열렬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책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힌들리 언쇼: 언쇼 집안의 아들로 거칠면서도 심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

히스클리프: 언쇼가 주워온 아이로 캐서린을 사랑하나 이루지 못하자, 이에 대한 복수극을 펼치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인물.

캐서린: 언쇼의 딸이자 힌들리의 누이동생으로 정열적이며, 순수한 감정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현실적인 면이 있어 옛 정을 버리고 불행한 가계사를 만드는 인물.

에드거 린턴: 귀족적이며 신사적인 기품의 소유자로 캐서린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되지만,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에 휘말려 희생되는 인물.

이사벨라: 철없는 눈먼 사랑으로 인하여 비인간적으로 이용당하는 인물.

헤어튼: 힌들리 언쇼의 아들로 거칠게 자라 히스클리프에게 이용당하는 인물.

넬리: 포근한 모성애를 지닌 가정부로 섬세한 재치와 포용력이 있는 인물.

캐디: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 사이에 난 따로 정열적으로 히스클리프의 아들인 린턴과 정을 나누다, 린턴이 죽고 난 후에도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여인.

로크우드: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다가 가정부 넬리 딘으로부터 폭풍의 언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인물.


c. 작품의 주요내용

염세주의자 로크우드 씨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살게 되는데, 그 저택의 주인인 히스클리프에 대해서 가정부인 넬리에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주워온 아이 히스클리프는 아버지 언쇼의 정을 흠뻑 받으며 자라난다. 그 때문에 친아들인 힌들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으나 언쇼의 딸인 캐서린과는 친하게 지내고, 그들은 또 청순한 애정을 갖게 된다.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는 힌들리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인 조제프의 권유로 대학에 보내게 된다. 얼마 후 언쇼 씨는 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러자 평소에 히스클리프를 미워하던 힌들리는 그를 양아들의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머슴의 위치로 전락시켜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캐서린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허약하던 힌들리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목숨을 잃게 되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더욱더 가혹하게 학대한다. 한편 캐서린은 이웃인 에드거 린턴과 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와 친하게 되는데, 이것이 히스클리프에게 있어서는 불만이었다. 결국 히스클리프가 염려했던 대로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은 결혼약속을 한다. 캐서린은 린턴의 집안이 좋은 이유로 결혼승낙을 했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히스클리프 때문에 고민한다. 그런 고민을 알고 있는 히스클리프는 가출을 하고 만다. 저 자질구레한 사내가 80년 동안 전력을 기울여 사랑해도 나의 단 하루의 사랑에도 미치지 못해 라고 생각하면서.

3년이 지난 후 히스클리프는 상당한 재력가가 되어 돌아오고 그때부터 그의 냉혹한 복수가 시작된다. 캐서린의 마음은 여전히 히스클리프에게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에드거 린턴은 히스클리프와 다투게 되는데, 이를 본 캐서린은 실성하게 된다. 한편 힌들리는 부인이 죽은 후 술과 도박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잔뜩 빚을 지게 되는데, 히스클리프는 이것을 이용하여 결국 워서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에드거 린턴의 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캐서린에게 접근하여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임신 7개월 만에 딸 캐디를 낳고 죽는다. 그러나 캐서린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의 복수는 계속된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가 죽자 그의 아들 헤어튼에게 그가 받은 고통을 복수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곁을 떠나버린 이사벨라가 런던에서 아들 린턴을 낳고 12년 뒤에 죽자 그는 그 아이를 워서링 하이츠로 데리고 와 린턴 가의 재산을 목적으로 캐디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병약한 린턴은 어느새 죽고 히스클리프가 워서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 모두를 차지한다. 에드거도 어느새 조용히 죽어간다. 그러나 그는 한밤중에 집을 나가 즐거운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가까이에 누군가가 있는 행동을 하며, 밤마다 밖으로 나가 캐서린의 무덤에 갔다 오곤 했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을 모두 불태워버린 나머지 캐서린의 망령과의 완전한 합일을 꿈꾸며 일부러 4일 동안 굶은 후 편안하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언쇼 가외 린턴 가에 남은 헤어튼과 캐디 사이에 사랑이 싹터, 3대에 걸친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위에서 본 것처럼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집시와 같은 풍모를 한 매력있는 사나이로, 매너 또한 신사적이다. 그러나 그 외모나 매너의 배후에는  번갯불 과 같은 격렬한 성격과, 그리고 예의도 교양도 없는 잔인성이 숨어 있다.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면에 원색적인 정열을 감춘 사내, 이것이 히스클리프다. 말하자면 그는 무한한 동적 에너지의 화신이고 그런 의미에서 초인이다. 따라서 그의 애증도 또한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해 있다. 사랑은 죽은 애인의 무덤을 파서 그 시체를 포옹하리만큼 강렬하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체감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격렬하다. 그리고 증오는 두 가족을 몽땅 파멸의 나락으로 몰아넣을 만큼 강렬하다. 히스클리프와 운명적인 사슬로 맺어져 있는 캐서린도 또한 인간적인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다. 히스클리프 못지않게 강렬한 성격과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연약하고 차가운 달빛과 같은 평범한 사내에게는 만족하지 못하다. 번갯불 같은 뜨거운 영혼을 가진 히스클리프만이 그녀에게 완전한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달빛에 지나지 않는 에드거를 선택한 그녀의 과오는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그럼으로 해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영원성을 가진다.


d.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몸에 의해 세계 10대 소설에 선정되었던 이 소설이 발표 직후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몇 년 뒤에 나온 미국의 백경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 깊이있는 작품은 종종 동시대인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하겠다.

따뜻한 면은 거의 없고, 폭풍과 같은 사랑. 증오. 보복을 위한 일념 잔학성이 작품 전반을 압도한다. 또한 노골적이고도 거친 문장과 격렬함을 싸고 감추는 상냥함이 결여되어 있어. 초기의 비평은 이것을 야만스러운 것, 반기독교적인 속악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남성적인 색채 때문에 이 작품은 그녀의 유일한 오빠인 브랜웰이 썼다는 오해가 있기도 했다.

 폭풍의 언덕 의 진정한 가치는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걸쳐 차츰 인정받기 시작하여, 에밀리는 진정한 천재,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빅토리아 왕조 소설 가운데 발표 당시 평이 나빴다가 현재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폭풍의 언덕 외에는 지금까지 없다.


e. 격렬한 애증묘사

에밀리가 이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구체적인 현실의 세계다. 이 작품의 의의는 자기의 정념에 끝내 충실히 살다 죽어가고, 온 정성을 다해 애증한 히스클리프에게서 자아의 최상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들의 무섭고 격렬한 애증이다. 캐서린과 힌들리의 오만함과 난폭함, 그리고 이기심,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자연적 모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히스클리프의 강한 의지력은 거의 악마적이다. 에드거의 나약함, 이사벨라의 어리석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그려내는 에밀리는 그들의 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1926년에 발표된 L. P. 생거의 폭풍의 언덕의 구조에 의해서 에밀리 브론테의 놀라운 구성력과 주의깊은 집필은 남김없이 증명되었다. 작가는 히스클리프의 언쇼 가와 린턴 가의 재산횡령에 대해서 주의깊게 법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합법적인 사실성을 획득하였고, 또 사건의 발생시기에 대해서도 정확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에밀리 브론테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사상적 경향은 바이런적 격정이 담긴 낭만주의를, 구성면에 있어서는 호프만의 괴기소설이나 공포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처음으로 개화된 일면을 갖는 이 작품은 강렬한 이성에 의해 계산된 리얼리즘에 뒷받침되어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언니의 작품과 함께 여성의 입장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에 대한 반역, 강렬한 자아정신의 존중을 나타낸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f. 인간의 본질 탐구

궁벽한 시골구석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무명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융합하고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장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이 바로 증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C06 –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의 신분상승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꿈꾸는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막대한 재산과 인위적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 있음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핍이 오랜 방황 끝에 매형 조에게 깨달은 위대한 유산 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작품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이 소설은 여러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적 작품이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는 디킨스는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있는 사람들, 빈민이나 여왕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가져, 생전에도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하인출신인 조부, 그리고 해군 경리국에 근무하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남부영국의 군항 포츠머스 교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은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남의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된 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부터 공장에 나갔다. 어린 시절 한때 살았던 채텀은 잉글랜드의 정원 이라 불리는 아늑한 도시로, 그의 어린 심성에 깊은 인상을 주었고, 훗날 채텀 시대를 거의 유일한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할 정도였다.

자본주의의 발흥기였던 19세기 전반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뒤안길의 심각한 빈곤과, 어린이와 부녀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사회전반을 어둡게 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디킨스는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15세기경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화,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떴는데, 여기에 기자생활로 인한 많은 여행은 풍부한 관찰과 식견을 더해주었다. 1833년 어느 잡지에 단편을 투고하여 채택된 힘입어 계속 단편. 소품 등을 여러 잡지류에 발표하고, 1836년 이들을 모은 보즈의 스케치 집이 출판되어 24세의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 완결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은 4명(도중부터 5명)의 인물이 여행하는 도중, 곳곳에서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는 단순한 줄거리였으나, 그의 뛰어난 유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 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뒤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들의 호응에 보답하여 니콜라스 니클비, 골동품 상점, 크리스마스 캐럴  등 중. 장편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이렇듯 문명이 높아진 것은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된 사회 밑바닥 생활상과 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지적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비판한 점에 있었는데, 그의 소설에 영향을 받아 연소자 학대와 재판의 비능률이 개선되기도 했다.

1850년에 완결한 자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 를 쓸 무렵부터 작품의 질이 조금씩 변하여 그의 후기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음 작품 황폐한 집 이 그 좋은 예로 이전의 작품처럼 주인공 한 사람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사회 각층을 폭 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 사회소설로 다가갔다. 작품 속에서 앞을 가로막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사회체제의 벽에 가로막혀, 디킨스의 장기인 유머도 어딘지 쓴웃음으로 바뀌고, 무력감. 좌절감이 전편에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아 공장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버너드 쇼에 의해  자본론 보다도 위험한 책이라고 평가된 어두운 사회소설인 어린 도릿, 프랑스 혁명을 다룬 두 두시 이야기, 다소 자전적인 위대한 유산  등의 장편 외에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다. 또 잡지사의 경영과 편집, 자선사업에의 참가, 연극상연, 자작 공개낭독, 각지로의 여행 등 쉴 사이 없이 정력적 활동을 계속하여 건강을 잃었으나 쉬려 하지 않았다. 또한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며 10명의 아이를 낳은 아내와 별거하는 등 정신적 고통도 겹쳐 70년, 추리소설풍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 그의 소설은 1세기에 걸쳐 각 나라말로 옮겨져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되고 있다.


b.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소설과 디킨스의 주요작품

빅토리아 여왕(재위기간:1837-1901) 시대에 영국은 부르주아 계급의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고,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등 경제대국이 되었다.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이성보다 감성,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로 시작하여, 현실을 객관적. 과학적인 태도로 묘사하고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사실주의로 끝났다.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소설가로는 디킨스와 허영의 시장을 쓴 새커리, 올터 로크를 쓴 킹즐리, 조지 엘리어트, 하디 등이 있다. 이중 디킨스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로 사회비판 및 항거의 기풍이 전 작품을 흐르고 있다. 그는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특히 산업팽창의 지나친 사회악과 사회불의에 항거하는 기인들,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디킨스는 근본적인 낙관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존의 산업제도에서 유래하는 빈민굴과 빈자의 비참한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하였는데, 거기에서 낭만주의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킨스는 영국문학의 위대한 민주주의자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c.  데이비드 코퍼필드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나의 모든 책들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정력이 절정기에 있던 때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데이비드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딛고 작가로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디킨스 특유의 유머가 전편에 스며 있고, 쓸쓸하고 슬픈 이야기를 밝게 처리하고 있다. 어느날 디킨스가 실수로 동네 꼬마의 인형을 망가뜨려 새로운 인형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례로 그 꼬마의 어머니는 좋은 책이라며 디킨스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했는데 펴보니 이 책이었다고 한다.


d.  두 도시 이야기 

근대 시민운동의 핵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변호사 시드니 커튼과 그 주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보기 드문 역사소설이다. 여기서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를 지칭한다.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유폐되었던 의사 마네트는 석방되어 런던으로 가서 점차 이성을 되찾는다. 한편 그의 딸 루시를 사랑하여 결혼한 프랑스 귀족은 전에 자기 집에 있던 충실한 머슴을 구하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혁명정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은밀히 루시를 사모하던 시드니 커튼이 대신 희생하여 그를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개인이 조직에 대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의 저항과 사랑, 또는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신념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연재될 당시에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여, 기차역까지 나와 신문을 기다렸다고 한다.


e.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피크위크 클럽의 회장인 피크위크 씨를 중심으로 네 사람의 회원이 정처없는 여행을 다니면서 그 견문을 보고하는 형태의 소설이다. 또한 18세가 이래로 전해 내려온 이른바 악한소설의 수법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의 착상은 디킨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어느 만화가의 연재그림에 덧붙여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피크위크 씨가 고용한 마부 샘 웰러의 터무니없는 커다란 웃음소리 등은 이 소설을 영국 소설사상 가장 생기있고 독창적인 해학 소설로 손색이 없게 만든다.


f.  올리버 트위스트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소년 올리버가 런던에 나오자마자 도적단 마수에 걸려 갖은 고생을 겪다가 후에 죽은 아버지 친구의 양아들이 된다는 줄거리이다. 구성은 디킨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조잡하지만, 정의감과 선의에 넘치는 사회의 순화를 그린 박력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g.  주요 등장인물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디킨스의 독특한 풍자 속에서 한 인간의 이성의 회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물질적인 풍요나 인위적인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핍: 가난한 고아로 성장해, 신분상승의 강박관념 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다, 이성과 사랑을 되찾는 인물.

에스테일러: 미스 허비샴의 양녀로 부유하게 자라 가난한 핍의 사랑을 물리치고 드러믈과 결혼하게 되나, 실패하고 다시 핍과 사랑하게 되는 여인.

허비샴: 결혼하는 날 아침에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평생 동안 결혼예복을 입은 채,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여인.

탈옥수: 자신을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난하나 핍에게 도움을 주어 신사로 자라나게 하는 죄수.


h.  작품의 주요내용

이 작품은 고아 출신의 주인공 핍이 자기 일생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핍은 부모가 없는 고아로 누이의 손에서 길러지는데, 대장장이인 매형 조 아래서 견습공 노릇을 하며 고독하게 살아간다. 성격이 매우 고압적이고 포악한 누이는 핍에게 언제나 큰 소리를 쳤고 따뜻한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보여주지 않아, 핍은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묘지에서 슬픔에 겨워 울고 있던 핍은 위압적이고 협박조인 말투로 무섭게 대하는 탈옥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핍은 겁에 질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누나집에서 먹을 것을 구해다 주었다. 이 죄수와의 만남이 후에 얼마나 중요한 사건으로 전개되는지는 핍 자신도 독자 자신도 알지 못한다. 핍이 사는 마을에는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부가 살고 있었다. 거부의 이름은 허비샴으로 그녀가 기거하는 집은 거대한 저택인 서티스 하우스였다.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에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지금은 허름하게 되어버린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는 양녀 에스테일러가 있었다. 핍은 에스테일러와 함께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에스테일러는 마치 여왕처럼 핍에게 군림했고, 핍은 그녀에게 자신의 더러운 몸과 신분 등에 대해서 무시를 당하며 지내야 했다. 핍은 이때 자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자각하고, 그 수모와 수치감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비샴의 변호사 제이거슨은 핍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것과 또 신사교육을 받으러 런던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핍은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한다.

런던에 온 핍은 갑자기 돈이 생기자 그의 몸에는 벌써 허영이 가득 차 있었고,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매형 조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고, 자신의 옛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런던의 사교계에는 이제 우아한 숙녀로 성장한 에스테일러가 눈부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그녀를 따르는 남자가 즐비했고, 그녀는 그중에서도 아둔하기 이를 데 없는 드러믈과 친해졌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핍은 자신만이 아는 사랑의 고통으로 질투와 슬픔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폭풍이 세차게 불던 날, 옛날에 그를 협박하던 탈옥수가 찾아오게 된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핍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을 모함하여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유배지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돈을 벌어 핍에게 신사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주던 은인이 허비샴이 아니라 탈옥수임이 밝혀지자 거대한 유산자 의 꿈은 사라지고 핍은 깊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훌륭한 신사가 되어 아름다운 에스테일러와 결혼하려고 하였던 꿈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신사가 된 핍의 모습을 보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몰래 숨어들어왔던 탈옥수는 이제 빨리 국외로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탈출에 실패하고 잡히게 되는데, 그는 감옥 안에서 마지막으로 핍의 모습을 보며 평온한 마음으로 숨을 거둔다. 그럼으로써 핍은 인간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허비샴은 자신의 양녀 에스테일러를 이용해 핍에게 사랑의 상처를 줌으로써, 자신이 입었던 사랑의 상처에 대해 복수한 것이었다. 핍은 그녀의 계획대로 상처를 크게 입었고, 그녀는 이런 핍의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회한과 눈물로써 용서를 구했다. 그런 다음날 난로의 불이 그녀의 옷자락에 붙어, 집이 모두 타 없어지게 되었다. 핍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불로 뛰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게 된다. 한편 그와 함께 신사의 과정을 밟은 허버트는 부친으로부터 무엇이 진짜  신사 인가를 배운다. 마음으로부터 신사가 아닌 사람은 태도에서도 진짜 신사가 될 수 없다고 허버트는 믿고 있다. 하류계급 출신의 핍이 에스테일러를 쫓아다니는 동안, 허버트는 일부러 돈 한푼 없는 클라라와 약혼함으로써 자기자신에 속해 있는 위선적인 계급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진정한 신사는 시골 대장간에서 묵묵히 정직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핍의 매형인 조다. 이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려 의지할 곳이 없는 핍을 유일하게 간호해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조였다. 조는 비록 대장장이이기는 하나, 내면에는 진정한 신사만이 가질 수 있는 온화함이 넘쳐흐른다. 그는 영원한 핍의 보호자다. 자신을 비난하고 떠난 핍이 런던에서 죄수, 에스테일러, 빚과 열병으로 고생할 때 그는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폈다.

조와 함께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비디인데, 그녀는 시골학교 선생으로 조의 부인이 부상당했을 때 집안사람들을 돌봐주어 결국 조의 아내가 된다. 핍이 오랜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매형 조와 비디 사이에 난 딸을 핍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다름아닌 자기에 대한 사랑의 표시임을 알게 된다. 핍은 매형에게서 위대하고 진실된 참인간을 보게 된다. 핍은 비로소 자신이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i.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소년기의 핍은 누나 때문에 불행했고 허비샴으로 인해 야심을 갖기도 했으며, 에스테일러로 인해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또한 제이거슨이 가져온  위대한 유산 의 소식 때문에 유혹을 당하기도 했다. 핍은 이러한 유혹과 좌절을 맛보면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깨달아갔던 것이다.


j. 신사의 본질 제시

독자는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디킨스의 독특한 풍자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물질적 풍요나 인위적인 교육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러한 감동을 느끼는 것도 그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정부관리의 아들로 비교적 평온한 신분을 보장받고 자라났으나 가계의 파탄으로 극심한 고통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구두약 공장의 노동자가 된 것처럼,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왔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것이다.


k. 부조리 속의 인간관계 묘사

디킨스가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점은 작가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체험한 금전문제나 사회부조리의 문제들을 그의 작품에서 예리하게 지적한 데 있다. 그는 해학과 사회적 모럴에 대한 반항적인 작품도 서슴없이 썼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에 갖가지 사회악이 난무하는 한편 물질적 풍요에 대한 갈구가 강하던 시기였는데, 여기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던 악의 양상이 점차 사회적인 차원으로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인간과 사회를 좀더 깊이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아마 영국 문학사에서 디킨스만큼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흔치 않다. 당시 모임석상 등에서 나는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 고 말하면 대화에서 소외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는 죽기 직전에 빅토리아 여왕을 단독으로 만나는 영예를 가졌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른 작가들이 생전에 얻지 못한 인기를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중년 이후는 풍족했다.



C05 –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 오스틴(Jane Austin, 1775-1817)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영국 최초의 위대한 여성작가 오스틴이 19세기 초의 영국 중류사회의 풍자적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4쌍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19세기를 전후한 영국 중산층의 결혼관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와 다시라는 두 주인공이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로,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 반향과 내면의 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정수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인 오스틴은 햄프셔 주의 스티븐턴에서 신앙심이 깊고 온화한 아버지와 유머가 풍부한 어머니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고 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문학적 성향이 뛰어난 가족들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풍자적인 습작을 쓰다가, 점차 본격적인 소설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재치있는 여성으로 시와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재주로 유명했다. 이 대가족이 즐긴 오락은 연극이었는데, 오스틴 일가와 이웃들은 스티븐턴 극단을 만들어 여름휴가 때는 목사관 헛간을 소극장으로 개조해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활기차고 애정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는 그녀의 창작을 자극했는데, 부친의 은퇴와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한동안 방황했으나. 제2의 고향인 초턴에서 작품활동을 재개하여 경이적인 활동을 한다.

이전의 원고를 고쳐 출판한 분별과 ‘다감(1811)’에서 이성과 낭만적 감성 사이의 갈등을 풍자했고, 젊어서부터 첫인상으로 구상해두었던 소설을 다듬어서 ‘오만과 편견(1813)’으로 출판했다. 그뒤 ‘맨스필드 공원(1814)’, ‘에머(1815)’를 연속 출판했다. 그러나 1816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1817년 5월 눈을 감았다. 사후에 출간된 노생거 사원 은 18세기 후반에 유행하여 낭만주의를 선도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괴기소설인 고딕소설의 과잉을 풍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오스틴은 주로 18세기 후반의 중류계급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 중, 특히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방어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는 소재의 빈약함과 작품공간의 협소함을 극복함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특히 오만과 편견 은 두 남녀 주인공의 오만과 편견으로 인한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시골의 여러 가족을 중심으로 한 중상류층 남녀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통하여 마침내는 여주인공이 많은 과오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밀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소재도 좁은 편이고 동시대의 스콧과 같은 화려한 표현도 없지만, 18세기 특유의 도덕의식을 바탕에 둔 인생비평, 제한된 세계를 묘사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한 우수한 인물의 창조,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는 절묘한 서술방법으로 영국 소설사상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스틴에 대해 19세기의 마코레나 테니슨은 셰익스피어와 견주기도 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버지니어 울프도  셰익스피어라는 사람 그 자체는 그 작품에서 종잡을 수 없는데, 오스틴의 경우에도 그와 흡사하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물됨이 아무리 정겹고 허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격상 종잡을 수 없는 면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신선하고 예술 심리적인 문학으로 그 예술성이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b. 시대적 상황과 작품세계

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는 영문학사상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문학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감상적인 탐미주의에 흐르고 있었는데, 오스틴은 그러한 낭만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18세기의 고전적 정서를 강하게 지닌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는 풍경의 묘사보다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교한 인물묘사를 통하여 무조건 중세를 동경하거나 병적인 감상에 흐르던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비웃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있었으며 이에 따른 각 분야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다. 

문학사적으로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관과 인생관이 일기 시작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전통의식과 더불어 질서와 상식, 보편 타당한 합리성이 인생에 있어서나 문학에 있어서 목표가 되었던 18세기의 고전주의에 비해, 이 새로운 움직임은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이 모든 판단의 기본임을 천명하고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발판으로 차츰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초기 낭만주의의 기수들은 대부분 시인들로서 이들의 낭만정신은 자연에 심취한 워즈워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이국정서를 동경한 콜리지, 아득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정신을 강조한 셸리, 미를 추구한 키츠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학운동은 기존의 고전주의와는 정반대의 문학적 특징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문학적 조류 속에서 작가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그러한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이색적인 작가였다. 그녀는 오히려 18세기 초의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문학세계를 펼쳤다. 그녀는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 해석이나 서술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삶의 묘사에 주력하였으며, 과거에 대한 동경, 꿈과 관념의 감상주의적 경향보다는 이성적인 현실의 세계를 지향했다. 이처럼 오스틴의 생애와 작품세계는 그녀가 살았던 19세기 초 영국의 정치상황이나 사회 제반문제와는 무관한 것 같다. 현대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소설이 지닌 빈틈없는 짜임새에 매료되고, 겉보기에 평범하고 제한된 사건과 배경을 가진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희비극을 드러낼 수 있게 한 기법상의 성취에 높은 평가를 한다.


c.  주요 등장인물

인간의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는 소설로, 사람을 재산과 신분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통념에 반대하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다시의 오만에 편견을 보이다가 사회의 편견에 편견을 가졌음을 깨닫게 되고, 재산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가의 아이러니컬한 서술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제인: 장녀로서 솔직성과 조심성, 포용력을 가진 정적인 인물.

엘리자베스: 둘째딸로 생기발랄하고 재기가 넘치며 인습에 맹종하지 않는 동적인 미인으로, 후에 편견 을 버리고 참된 사랑을 얻는 검은 눈동자의 소유자.

다시: 명문집안의 남자로 약간은 오만 하나, 정직하고 자상한 인물.

리디아: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꿈과 동경에 싸여 있으며, 심성이 착하고 정열적인 인물.

베네트 부인: 즉흥적이고 부드러우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두는 인물.

베네트: 과묵하면서도 사색적이며 자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

빙글리: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주관이 강한 인물.

위컴: 남을 공모하지만 진실된 사랑 앞에서 참회하는 인물.


d.  작품의 주요내용

 상당한 재산을 가진 남자에겐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다.  이 소설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어느 작은 마을의 베네트가에는 베네트씨 부부와 다섯 딸이 함께 살고 있다. 베네트 씨는 냉소적이며 농담을 즐겨 하는 편이지만, 바탕은 온화한 사람이다. 어머니 베네트 부인은 삶의 의미를 딸들의 결혼에 두고 있는 여자다. 장녀인 제인과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혼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나깨나 그들의 결혼 문제만을 생각한다. 마침 근처의 네더필드라는 곳에 독신청년 빙글리가 찾아든다. 그의 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베네트 부인과 가족은 이에 솔깃한다. 이윽고 빙글리를 환영하는 마을 무도회가 열리고 베네트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여기에 참석한다.

드디어 여기서 빙글리의 친구인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용모가 훤칠하고 부유한 미남청년인 다시는 뭇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 한 태도에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에게서 예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춤을 출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후부터 엘리자베스는 다시와 관련된 모든 것에 우선적으로 편견을 갖고 적대감을 키우게 된다. 반면 다시는 그녀에 대해 처음에는 무관심했다가 차츰 그녀에게 감탄하게 되고, 그녀의 재치와 기지에 끌려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존심과 진실된 자아실현의 의지를 지닌 엘리자베스는 어머니나 세상사람들이 품고 있는 돈 많은 청년이 제일이라는 편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대신 특유의 독립성과 지성으로 진실한 삶과 사랑을 이루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은 네더필드의 빙글리의 집으로 언니 제인을 데리러 가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어느 날 네더필드에서 제인에게 놀러오라는 초대장이 온다. 본인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한다. 그리고 제인이 네더필드로 간 뒤 비가 와서 하룻밤이라도 더 묵게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제인이 비를 맞아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이 온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며 언니를 데리러 간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행동에 빙글리의 여동생인 캐롤라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괜한 짓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시 역시 그녀의 행동에 놀라면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캐롤라인은 다시에게 호의를 품고, 다시와 오빠인 빙글리가 베네트 집의 딸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차츰 엘리자베스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끌려가고 있던 다시는 캐롤라인에 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다시는 런던의 재산가의 아들로서 귀족으로 자랐기 때문에 오만한 태도가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엘리자베스에게는 호의를 가지면서도, 그녀의 부모나 마을여자들을 경멸한다. 그런 다시에게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반감을 갖는다.

이즈음 베네트 가의 먼 친척이 되는 콜린스라는 젊은 목사가 찾아온다.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네트 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이다. 그는 캐서린 영부인의 알선으로 조그만 교회의 목사직을 갖고 있으며 아내 될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이 청년은 몹시 경박한 인물이어서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베네트 가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해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한다. 베네트 부인은 그 제의에 맞장구를 치고 엘리자베스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어느 날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 구혼을 하나,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에 콜린스는 기대했던 것이 어긋나자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로트 루카스와 결혼해버린다.

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은 근방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내왕하고 있었는데, 그 군인 중에는 위컴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컴은 명랑한 성격인데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 엘리자베스는 다소 호의를 갖게 된다. 그녀는 위컴으로부터 다시와 가까운 사람이며, 다시의 냉대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원래 의협심이 있는 엘리자베스는 더욱 다시를 미워하게 되고, 위컴을 동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컴의 모함으로, 후에 위컴은 엘리자베스의 동생인 리디아와 도망을 간다.

이즈음 다시는 뜻밖에도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다. 그는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억울하지만, 사랑은 막을 도리가 없으므로 당연히 엘리자베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흠모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자신의 사랑과 거기에 그의 부유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함을 알고는 거절해버린다. 동시에 제인으로부터 빙글리를 갈라놓은 일과 위컴을 냉대한 일에 대해 비난한다. 두 사람이 서로 길러온 오만과 편견이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다시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거기에는 위컴에 대한 상세한 비리와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편지를 받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또한 샬로트와 콜린스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다소 놀라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즉 그것은 지금까지 스스로 타인의 기분을 측정하고 타인의 특성과 개성을 판단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이다. 이 점은 그녀가 다시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되는 것과 상통한다. 결국 그녀는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서 자아발견의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다시의 타고난 오만도, 엘리자베스의 편견도, 참된 사랑에 의해 극복되고 두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맺게 된다.


e.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의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를 주된 흐름으로 하고 있다. 즉 다시가 오만이라면, 엘리자베스는  편견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교차되는 두 인물이 어느 한 가지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뜻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가

이 작품을 이끄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을 중심으로 5명의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평생과업인 베네트 부인, 아첨꾼 목사 콜린스, 그리고 위풍당당한 귀부인 캐서린 등등의 인물군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생생한 중류사회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조용한 환경에서 작가의 경험을 주요 토대로 한 것들이며, 작품의 무대나 등장인물도 그녀의 삶 속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녀의 소설무대는 18세기 말 그녀가 태어난 영국 남부의 고요한 시골마을이고 등장인물도 대부분이 그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귀족과 목사. 군인 등이다. 그들이 빚어내는 평범한 생활상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이러한 소설의 일상성은 그녀가 시골마을의 서너 집안 일이 바로 작품소재다 라고 조카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소설을 가정소설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 최초의 여성작가인 그녀의 소설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정이 있다. 그녀는 등장인물의 행동 자체보다도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동기라든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가정생활. 사랑. 결혼 등을 경험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내적 성장을 섬세하게 그렸는데, 이것은 오스틴 작품의 내면적 탁월성을 말해준다.

그녀의 소설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발전과 영광이라는 화려한 전면에 의해 감추어진 영국 중류계급의 퇴폐적인 치부를 풍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오스틴의 문학세계가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질적. 양적인 면에서 그녀의 천재적인 작가역량이 발휘된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 반향과 내면의 자아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특성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다. 이른바 오스틴 문학의 정수요. 세계문학의 보석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사와 결혼, 사랑의 과정을 풍자와 아이러니 수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 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이 소설을 결국 외양과 실제 차이를 두 주인공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을 아이러니와 풍자적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두 주인공의 자기발견의 과정을 꿰뚫어보게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시를

외모로만 판단하여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갈등이 생겼던 것처럼, 다시도 큰딸인 제인을 빙글리에게 시집보내려고 애쓰는 베네트 부인의 저속함을 보고, 다른 딸들도 저속하리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엘리자베스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사물의 실체나 진실이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오스틴의 명랑하고도 위트 있는 유머와 풍자 속에서 우리는 삶의 실체와 진실을, 그리고 당시 영국사회의 인간상과 시대상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지니고 있는 재질은 평범한 사건의 뒤에 숨어 있는 심리적 깊이를 파헤치는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극히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관찰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가 담담한 필체로 인생의 깊이를 포착하고 은근한 유머를 담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한 여류작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C04 – 리시스트라테(Lysistrate) /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50-385)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에우리피데스가 아테네 문명의 해체에 대해 비극적으로 반응하였다면, 동시대인이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적 희극으로 반응하였다. 아테네가 시라쿠사에서 대패한 다음해인 기원전 412년에 씌어진 이 작품은 아테네가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을 막아보려는 용감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이 구식 희극의 대표작은 당대의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많이 담고 있지만, 그 풍부한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통하여,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건강한 정신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서양고대 그리스의 희극시인. 페리클레스가 다스렸던 아테네 황금시대에 태어났지만, 청장년 시절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간이어서 그의 작품은 정치색이 짙다. 그는 전쟁으로 농지가 황폐해지자, 고통받는 농민의 입장에서 평화론을 주장하고, 수공업자층에서 갑자기 출세한 선동정치가를 증오하며 당시 유행한 사상과 윤리를 풍자하였다.

작품 제목은 44편이 알려져 있지만,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11편이다. 현존하는 작품을 주제별로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카르나이 사람들 에서는 국가의 계속적인 전쟁정책에 실망한 한 시민이 개인적으로 적국 스파르타와 화평을 맺어 행복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농부가 풍뎅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평화의 여신을 찾아내어 평화를 실현하는 평화 여자의 평화 등은 반전을 주제로 한 것이다. 또한 기사 에서는 야비한 방법으로 출세한 정치가 클레온을 비판하였고, 벌에서는 선동정치가에게 조종된 어리석은 사람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엉터리 재판으로 다스리는 재판제도를 비판하였다. 어리석은 인간세상을 버린 두 사람이 하늘에 이상국가를 세우는 새는 유토피아 환상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젊은 시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은 작가는 개구리들 에서 에우리피데스가 그리스 비극을 망치는 것으로 묘사하였고, 또한 선동정치가들이 펠리클레스의 민정을 파괴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구름 에서 소피스트들이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또한 소크라테스를 풍자하기도 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뒤부터는 그의 작품에서 격렬한 공격성이 사라졌으며, 소재도 아테네라는 지역을 벗어나 인간성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넓어졌다. 또한 재산공유와 여성에 의한 남성 공유를 노래한 여성회의에는 플라톤의  국가 에서 전개된 공산제 사상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며  복의 신은 세태극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격렬한 개인공격, 저속한 언어와 성적이미지의 빈번한 구사, 초윤리. 초자연적 발상의 기발함은 오늘날 일반적인 희극의 관념에서 보아도 놀랄 만하다 그의 젊은 시절의 작품  바빌로니아인에서 당시의 권력자 클레온 등을 비난하여 위험에 처하였는데, 기사에서 또다시 클레온을 공격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이는 그의 희곡이 권력자로부터 적대시되었던 것 이상으로 아테네 사회로부터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의 희곡은 평소에 억압되어 잇는 폭력이나 저속성에 대한 시민들의 욕망을 무대 위에서 분출시켜, 평화나 세상변혁의 환상을 잠시나마 맛보게 하였고, 말장난과 기발한 발상으로 웃음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소재를 찾아 궁리하였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작품마다 기발한 소재를 준비하였고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최대한의 희극적 기교를 사용하였다.


b.  주요 작품내용

아테네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리시(군대를 해산시키는 여자 라는 뜻)는 적국인 스파르타의 여인 대표 람피트와 중대한 결의를 했다. 전쟁에만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들에게 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섹스 스트라이크를 하자는 의논이었다. 처음에는 난처한 표정을 짓던 여인네들도 나중에는 그 말에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람피트는 고향인 스파르타로 돌아가고 리시는 여인들을 데리고 아크로폴리스 신전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잠그고 말았다. 남성들에 대한 섹스를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결의도 한때여서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여자편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여자들은 몰래 성문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닌가. 리시는 그 여자들을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여자들은 자기 남편이 있는 곳에 보내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시는 그녀들을 타이르기에 진땀을 뺀다.

 우린 남자와의 접촉을 삼가야 해. 저런, 왜 돌아서는 거지? 어딜 가는 거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가로 젓고, 왜 얼굴빛은 하얗게 되는 거지? 눈물은 왜 흘리는 거지? 자, 그렇게 하겠어, 못하겠어? 왜 꾸물거리는 거야. 이런 바보같이! 거짓말은 집어치워. 남편이 보고 싶어 그런 게 뻔하지. 하지만 남자들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아? 괴로운 밤을 지내고 있단 말야. 난 잘 알아. 그러니까 참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승리는 우리 것이야. 이러한 설득을 듣고서야 여인들은 다시금 할 수 없이 성 안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나이가 성 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성벽 위에서 보였다. 그 사나이는 리시와 함께 있는 뮤리네의 남편인 키네시아스였다. 뮤리네는 남편을 곯려줄 대로 곯려준 뒤에 성 안에 다시 들어왔다. 키네시아스가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퇴장하자, 이번에는 아테네의 관리와 스파르타의 사자가 등장한다. 스파르타의 사자 말에 의하면 람피트의 음모로 해서 스파르타의 여성들이 일제히 남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쩔쩔매고 있지요. 바람 속에 등잔을 들고 다니듯 모두 꾸부정하게 걷고 있는 판이요. 여편네들은 우리가 평화조약에 동의하기 전에는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오. 

그 말을 들은 아테네 관리는 스파르타의 사자에게 전권대사를 보내주면 이편에서도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스파르타의 사자에 뒤이어 아테네의 사자가 등장하였다. 어느 편이든 여성들의 섹스 거부로 울상이 되어 있다. 거기에 리시가 등장하여 그녀의 중재로 강화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녀는 우리 여인들이 정성들여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 서약하고 보증서를 교환하십시오. 그리고 난 뒤에 각자 자기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하며 남성들을 성내의 연회장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일동이 기쁨 속에 노래하며 춤추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기원전 419년에 재개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중 기원전 415-413년의 시칠리아 섬 원정의 실패는 아테네측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희극은 그 2년 뒤인 411년에 상연된 것으로서, 작가는 직접적인 정치비판은 지양하고, 뒷면에서 전쟁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과는 달리 전쟁은 악화일로를 치달아 기원전 404년에 드디어 패배의 잔을 든다.


c.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희극의 여주인공 리시는 젊고 아름다운 아테네의 유부녀로 교양을 갖추고 있는 여성 이다. 음탕스러운 대사가 터져나오고 외설스러운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그녀 자신은 그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녀는 남성들보다 뛰어난 지도력과 결단력, 그리고 관대한 마음을 지닌 여성으로 이 극을 이끌어간다.

작품 중간중간에 리시가 가족들을 잊지 못해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탈자들을 설득하는 장면,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 아내를 찾아온 남자들을 따돌리고 동료들과 합류해 강화조약을 성립시키는 여자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또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성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와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작품 자체가 재미있게 짜여져 있다. 이처럼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와 재기발랄함을 통해 현실의 잘못된 점을 비꼬고 있다. 아테네의 3대 비극작가와는 달리 이 세 사람을 풍자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그 문제의식과 표현방식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어서, 전원의 소박함과 평화를 사랑하는 반면, 유행과 전쟁을 증오하고, 선동정치가. 소피스트. 변론술. 민중재판. 비극시인 등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열렬한 반전주의자인 그는 부정에 대한 분노를 풍자의 웃음 속에 감추었고, 전원에 대한 애착은 서정성 풍부한 웃음 속에 실어 표현한 것이었다. 감미로운 서정성을 지닌 그는 천재적인 패러디를 작품 곳곳에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C03 – 메데이아(Medeia) /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406)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14년간의 평화에 뒤이은 펠레폰네소스전쟁의 와중에서 아테네 문명의 와해를 감지하며 쓴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감정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남녀 사이의 대립적 관계와 사회제도의 기본적 불안정성을 천착하고 있다. 도시국가라는 문명세계가 평소에 가까스로 억제할 수 있었던 감정이, 갑자기 격렬한 힘으로 폭발하여 인간과 국가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분석이고 반응일 뿐만 아니라, 인류와 인류가 이루어낸 사회구조나 문명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시인으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는 천성이 명상적이고 사람을 싫어하는 고독한 성격이었음이 전기에 나타나 있다. 그러한 성격은 그의 작품이나 조각상에 나타나 있는 침울한 표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두 번 결혼하였으나 상대는 한결같이 음란스런 여자들이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여성을 비꼬는 말이 많다. 때문에 그는 미소지니(여성혐오)의 대명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감히 따르지 못하는 여성심리의 예리한 통찰자였다.

소재는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신화. 전설에서 빌려왔지만 여러 신과 영웅은 비범한 존재가 아닌,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남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메데이아와 히폴리토스만 해도 등장인물의 정념이 다소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격렬하지만 가정 내의 비극에 지나지 않고, 이온같은 작품도 본질적으로는 오늘날의 홈드라마와 같다. 여성의 굴절된 심리를 묘사하는 그의 수법은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소포클레스까지의 그리스 비극의 경향, 즉  신과 영웅 을 주제로 하지 않고, 신이 내리는 정의로부터 인간중심의 도덕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의 희곡은 문제를 다루는 희곡이며,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판을 하였으나 합리성을 찾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 중 바카이의 주인공인 테베왕 펜테우스는 미친 여자들에게 붙잡혀 사지가 찢기지만, 작가 자신도 마케도니아에서 야밤에 미소년 집을 찾아가던 중 여자들에게 붙잡혀 사지가 찢겨 죽었다고 한다.

총 92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19편이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메데이아, 히폴리토스,  헤카테, 헬레네, 트로이의 여인, 바카이  등이 있다.


b.  그리스 3대 비극시인과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 3대 비극작가를 페르시아 전쟁과 관련시켜 이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전쟁에 병사로서 참전했고, 적군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소년 소포클레스는 소년 합창단을 지휘하였으며, 에우리피데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를 쟁취하던 날 태어났다 한다. 이런 이유로 이들 3대 비극시인을 흥륭. 전성. 쇠퇴기의 시인으로 보아, 그들의 작품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신의 섭리와 신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체험한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신의 의지가 인간의 의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오히려 신이 극의 주역이 되고, 인간은 신의 의지의 구현도구로서 결국 신의 의지에 순응하고 귀의한다. 반면, 페르시아 전쟁에 뒤이은 조국 아테네의 가장 영광된 시기와 더불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하여 아테네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불안한 시기를 겪어야 했던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인간의 위대함이 주제를 이루고 있고, 신의 의지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극의 주역이 되고 있다. 반면, 조국의 영광스런 순간을 단지 전해들었을 뿐인 에우리피데스는 전통적인 세계관과 종교관에 회의적이고 사변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c.  작품의 주요내용

메데이아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인 코르키스 왕 아이에테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인 이다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메데이아라는 이름은 ‘빈틈없는, 교활한’의 뜻이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메데이아는 이국의 땅 코린토스에서 이 나라 왕가의 딸과 약혼한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 받을 처지에 있다. 한때 그녀는 흑해 동부해안의 고향 콜스키에서 황금양털을 구하려고 그리스 군사들을 데리고 원정온 이아손에게 반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을 돕고 사랑의 도피를 하였다. 그런데 이아손의 고국도 안주의 땅이 되지 못하여 겨우 이곳으로 낙향해 있는 지금 눈앞에 사랑의 파국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구하게 되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고 황금양털을 구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 것이다. 때마침 찾아온 구면의 아테네 왕에게 부탁하여 도피처를 확보한 그녀는 배반당한 사랑과 상처 입은 자존심으로 증오에 불타는 복수를 계획한다. 우선 독약을 바른 예복과 황금의 관을 자기의 아이를 시켜 공주에게 선물로 보낸다. 독약에 취하고 관에서 뿜어내는 불길로 불투성이가 된 공주는 그녀를 돕고자 한 부왕과 함께 불타 죽는다. 이어 자기 자식의 목숨도 끊으려 하지만, 미소 짓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눈동자를 보자 마음이 흔들려, 모성애와 복수의 악마 사이에서 한동안 고민한다. 그러나 마침내 분노가 이성을 누름으로써 그녀는 칼을 잡아 자식을 죽인다. 메데이아는 죽은 자기 자식들을 품에 안고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높은 지붕 위에 선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은 합창단이, 다음에는 메데이아의 남편 이아손이 하늘의 신과 대지의 신에게 극악무도한 잔학행위를 한 메데이아에게 복수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신들은 전혀 메데이아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양의 신은 전차를 내려보내 메데이아를 개선장군처럼 아테네의 피난처로 태워다 준다. 남편에 대한 복수로 아이를 죽일 것인가를 망설이던 끝에 드디어 정념의 힘에 꺾여 죽이는 장면의 묘사는 시인의 창작이라고 하는데, 그로 인해 이 극은 정념의 비극 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내면의 비극적인 갈등을 묘사하는 데에 뜻을 둔 이 시인에게 어울리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d.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작품의 결말을 두고 불합리하다고 비난했는데, 그러나 그 불합리하다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아닐까? 작가의 비극이 지닌 구조는 세련되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적이지 않다.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이 정확하고 논리적인 우주 속에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선정적인 것을 피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과묵해지려고 애쓰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스 비극에 있어서 아이스킬로스를 비극의 창시자,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완성자로 본다면, 에우리피데스는 많은 면에서 정통을 벗어난 이른바 데카당스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합창대의 처리방법을 비롯하여 구성면에서나 인물의 취급면에 있어서나 선인들과의 수법차이가 현저하다. 당시로서는 극단적으로까지 사실적인 수법을 썼고, 다분히 아이러니를 포함한 합리적인 해석으로 전통적인 신화와 전설에 새로운 모습을 부과하려 했다. 그 결과 신이나 영웅이 천상에서 일상의 현실적인 세계로 끌어내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생전에 받은 불평의 주된 원인이 되었지만, 근대인이 그의 예술에 공감하는 것은 이 허황된 세계가 현실적인 세계로 바뀌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있어서보다 사후에 새로운 평가로 각광을 받은 작가로서 3대 비극시인 중 그는 가장 연소자였고, 특히 인간적인 갈등을 주제로

많은 부분을 할애한 작가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에 자신의 생활은 매우 비사교적이었으며, 자신의 소유지인 동굴에서 하루종일 바다를 보는 사색적이고 고독한 생활로 일관했다고 한다. 또한 그가 다른 작가들보다 작품을 적게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오래 지속되어 현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후에 그의 극이 붐을 이루어 부활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C02 –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us) /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정신분석 용어의 원산지가 된 이 작품은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에 의해 씌어진 서양문학의 대표적인 분석극으로서, 친부살해, 어머니와의 결혼 등을 소재로 한 운명비극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과 그 장난, 자신의 파멸을 예견하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의 자세를 볼 수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아테네 교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29세 때 처음으로 비극경연대회에 나가 우승한 이래, 18번 우승을 차지하고 2등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한다. 그는 처음으로 제3의 배우를 사용했고, 무대배경을 개량하였으며, 합창단의 구성원 수를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용모와 재능은 물론,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로 아테네의 우상이었으며, 정치가로서도 재무장관 등의 고위직을 지내고, 만년에는 신관까지 지낸 덕망 있고 행복한 생애를 보냈다. 그가 죽은 다음 아테네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비극작가로서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 기원전 480년 적군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소년 소포클레스는 소년 합창단을 지휘하였다. 이때 아이스킬로스는 이 전쟁에 병사로서 직접 참전하였고,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군이 승리를 쟁취하던 날 태어났다 한다. 죽기 직전인 90세까지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총 120여 편의 작품을 썼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7편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식어버린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려다 반대로 남편을 죽이게 되자 자신도 목숨을 끊는 트라키스의 여인들, 겉보기에는 행복한 왕이 진실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파멸하는  오이디푸스 왕, 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위해 동생과 함께 복수를 하는 엘렉트라 외에도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이 있다. 이중 오이디푸스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은 사실상 그의 3부작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축복받은 신의 총아 소포클레스는 인간 고뇌의 극한까지 묘사하여, 온화하고 명랑한 인물에게서 가장 순수한 비극성이 생긴다는 역설을 성립시켰다. 소포클레스는 죽음과 고뇌는 인간존재의 실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죄없는 사람들의 고뇌를 그대로 묘사하였다. 주인공은 결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대결하며, 굴욕적인 삶보다는 죽음과 파멸을 선택한다. 이처럼 강하고도 고귀한 인간이 고뇌하는 데에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있다. 극의 줄거리는 신화 그대로여서 관객은 사건의 진전과 결말을 알고 있다. 앞일을 모르고 있는 극중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과 대조를 이루어 극적 효과를 크게 하는 수법은 소포클레스적인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b.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우리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통해 오이디푸스와 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에 친숙하고, 그의 제자인 C. G. 융으로 인해 아가멤논의 딸인 엘렉트라보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물론 이 말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하는 오이디푸스 왕과 엘렉트라의 비극적 운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c.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이 생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근거한 것으로, 남자아이는 특히 3-5세에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적의를 품고 어머니에게는 애정을 구하고자 하는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지금까지 꿈속에서 자기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라는 유명한 대사는 프로이트의 이론보다 2천 년이나 앞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성적 욕망이 일어나는 시기를, 오이디푸스기 또는 남근기라고 한다. 아버지에게 적의를 품기 때문에 남자아이는 그 보복으로 거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를 갖는다고 한다. 이 공포가 계기가 되어 아버지처럼 되려고 하는 동일자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점차 잠재기로 이행되어간다. 또한 사춘기에 이르면 성적 충동이 강해지고 오이디푸스적 욕망은 되살아나는데, 이 욕망은 다른 이성에게로 옮겨져 극복된다. 프로이트는 도스트예프스키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강하게 느꼈던 듯,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친이 마을 사람들에게 죽자,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강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은근히 부친의 사망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자기가 실제로 범인인양 착각하게 되어, 훗날 그에게 나타난 낭비벽과 도박병 등의 이상한 행동양식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스탕달 역시 이런 경향이 농후했는데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는 그의 자서전의 한 구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d. 엘렉트라 콤플렉스

여자아이는 반대로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는 성향을 띠게 된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후 귀국하여 그의 아내에게 살해되는데, 그의 딸인 엘렉트라가 남동생과 협력하여 모친을 죽이고 복수한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끌어내어  엘렉트라 콤플렉스 라고 융이 명명하였다.


e.  주요 등장인물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한 운명의 힘 앞에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력한가, 또 인간의 욕망. 공명심. 오만이 얼마나 허망하고 보잘것없는가를 생각케 하는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오이디푸스: 버려진 자식으로 자라나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신의 눈을 뽑은 뒤 방랑의 길을 떠나는 비극의 주인공.

이오카스테: 불길한 예언을 지니고 태어난 아들을 버리고,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아들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어 자살한다.

라이오스: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로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오이디푸스의 지팡이에 맞아 죽게 되는 인물.


f. 작품의 주요내용

테베의 왕이 라이오스는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이가 태어나자 하인에게 명령하여 못으로 아이의 발꿈치를 뚫어 키타이론 산에 버리게 한다.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부어오른 발)란 말이 생겼다. 하인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맡겼고, 양치기는 왕자가 없던 코린토스 왕에게 넘겼다. 그곳 왕가에서 왕자로 성장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어느 연회에서 그가 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진실을 알기 위해 델포이를 방문한다. 그는 똑같은 내용의 신탁을 듣고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결코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방랑길을 떠난다. 도중에 어느 삼거리에서 낯선 노인 일행과 싸우게 되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인다. 그런데 그가 죽인 노인이 그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였다. 그가 도착한 테베에서는 괴물 스핑크스가 버티고 있어, 스핑크스가 제시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의 먹이가 되었다. 수수께끼란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이냐 였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 문제를 풀자 스핑크스는 자살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위와 왕비를 얻는다. 생모인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맞이하여 안티고네 등 4명의 아이까지 낳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은 이 시점에서 시작되어 과거의 무서운 진실의 폭로를 향하여 전개된다. 테베를 휩쓸고 있는 역병은 선왕을 살해한 자를 벌하여야 없어진다는 신탁에 따라, 살해자 수사가 급선무가 된다. 선왕 라이오스가 살해되었을 당시 곁에 있던 심부름꾼의 말과, 테베에서 가장 믿을 만한 예언자의 말을 들으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델포이에서 들었던 신탁이 자신이 예전에 들었던 신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비밀을 캐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비밀을 한겹 한겹 벗겨나가고 결국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된다. 진실이 밝혀지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로 맞이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처남이자 삼촌인 크레온을 섭정으로 남기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두 딸의 안내를 받아 방랑의 길을 떠난다.


g.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과실에 의해서 파멸하고 마는데, 비록 인간적인 결함을 갖고 있긴 하나, 대체로 영웅적이고 고상한 동기에 의하여 움직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포클레스는 이상적인 인간을,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말한 까닭도 필경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 극의 대화들은 단순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그의 이상주의적 주인공들의 성격에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 나오는 서정적 부분들은 아이스킬로스의 그것들만큼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매우 우아하고 장엄한 편이다. 서양문학의 대표적인 분석극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친부살해와 어머니와의 결혼이라는 극의 중요한 사건들은 극이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고, 극 자체는 단순히 비극적 분석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분석은 극의 서두에서 인자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던 오이디푸스가 거리에서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과 동일인이고, 오이디푸스가 아내라고 믿었던 이오카스테가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이고, 생부가 살해되던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오이디푸스를 갖다 버린 인물이며, 선왕의 살인범을 찾아내겠다는 오이디푸스의 성실한 노력이 오히려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과 같은  비극적 아이러니를 통하여 관중이나 독자를 숨막히게 하고, 짧은 시간에 극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고조시키는 분석극 특유의 효과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흔히 그리스 비극을 운명비극이라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의 단순한 제물은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맹목적인 생존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을 포기할 수 있었다면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파멸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비극이란 신 또는 외부로부터의 의지와, 인간 또는 내부로부터의 의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절망적이고 가망없는 투쟁 속에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파멸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위대함과 존엄을 지키고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C01 – 오레스테이아(Oresteia) (3부작) / 아이스킬로스(Aeschylos, BC 525-456)

(출전 : 도서명: 동서고전 200선 해제2 / 편자명: 반덕진 /   출판사명: 가람기획)




그리스 비극 전체를 통틀어 현존하는 마지막 3부작인 이 작품들은 비극의 창조자인 아이스킬로스의 심오한 사상과 종교관이 농축된 인간정신의 위대한 성취로 간주된다. 그중 아가멤논은 웅장한 구성과 심오한 종교관, 음악적인 언어, 대담한 비유로 가득차 있으며, 코에포로이는 인간의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이 자손에게까지도 나타난다는 교훈을 준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과 고난을 통하여 지혜에 도달한다는 그의 기본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a.  생애와 작품활동

괴테가 훔볼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가멤논이야말로 예술품중의 예술품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짜놓은 양탄자 라고 극찬한 작품.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의 하나로, 이들은 대대로 전승되어오던 구비문학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신들과 그리스 건국영웅들의 이야기를 비극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세 작가가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참주정치 시기에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새로운 민주정치가 확립되어가는 격동기에 청년시절을 보냈다. 페르시아와 벌인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칠리아에 있는 그의 묘비명에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는 시인으로서보다 마라톤의 전사로서 기억되기를 원했을 만큼, 역사적인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이 전쟁을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표현처럼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자유와 예속의 투쟁으로 보았으며, 그리스 인들의 기적 같은 승리를 인간의 교만을 응징하는 신의 섭리로 보았던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현존하는 7개의 비극은 모두 페르시아 전쟁 이후의 작품들인데, 그의 어느 작품도 그가 이 전쟁에서 몸소 체험한 신의 섭리라는 근본사상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기원전 499년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제의 비극경연에 참가한 이래, 12차례나 우승을 차지하였다. 기원전 471년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의 초청을 받아 시칠리아를 여행하였으며, 기원전 468년의 비극경연에서는 후배 비극시인인 소포클레스에게 우승을 넘겨주었다. 그는 두번째 시칠리아 여행 도중 죽었다.평생 90여 편의 작품을 썼으나 현존하는 것은 7편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의 패배를 주제로 한 페르시아인, 오이디푸스 전설을 모방하여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형제를 죽이는 것도 불사한 에테오클레스의 비극을 묘사한  테베로 향한 7장군,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코에포로이 에우메니데스), 다나오스의 딸들이 사촌과의 결혼을 싫어해서 이집트에서 아르고스로 도망하여 그곳의 펠라스고스 왕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이야기를 그린  도움을 청하는 여자들, 제우스의 뜻을 거역하고 천상에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준 죄 때문에 카프카스 산의 바위에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를 묘사한  결박 당한 프로메테우스  등이 그것이다.


b.  그리스 비극과 아이스킬로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 에서 밝힌 것처럼 그리스 문학의 최고의 성취는 비극에 있다. 왜냐하면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사시는 귀족체제, 서정시는 참주정, 그리고 비극은 민주정의 산물이며, 대상의 측면에서 보면, 서사시는 신화탐구에, 서정시는 자연탐구에, 비극은 인간 그 자체의 탐구에 상응하는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다. 많은 위대한 작품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리스 비극도 종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그리스의 비극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제례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로마 신화의 바쿠스에 해당하는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그리스 신화에서 매우 이색적인 존재다. 격렬한 도취상태에서 광적인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포교를 위한 편력과 박해에 대한 싸움으로 일생을 보낸다. 그래서 마시고 떠드는 감정형을 디오니소스 형이라 부르고, 이와 반대로 조용하고 냉정한 지성형을 아폴론 형 이라 부른다. 아테네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가행사인 대디오니소스 제의 일부로 3명의 비극시인이 3편의 비극과 1편의 사티로스 극의 4부작으로 우열을 가리는 비극 경연대회가 열린다. 이 숭배의식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반인반수의 주색을 좋아하는 숲의 신, 사티로스, 또는 양인(goat-men)의 가면으로 분장하고 합창하면서, 제단앞에서 신들의 행적을 서정시로 노래하였다. 이리하여 산양(tragos)을 뜻하는 합창대(tragodoi)에서 비극(tragodia)의 형식이 나왔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극은 아이스킬로스에 와서다. 그는 합창과 낭송만으로 이루어진 초기의 극예술을 노래와 대사. 행위가 어우러진 완전한 극예술로 끌어올렸다. 이전의 그리스 연극은 한 장면에 한 배우가 나와 합창단과 대화를 주고받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 연극에 별도의 역할과 대사를 가진 두번째 배우를 도입하여 1명의 배우와 합창단만으로 이끌어가던 관례를, 배우 2명의 연기와 합창의 역할을 줄여, 대화가 비극의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 혁신으로 그리스 연극은 줄거리 구성과 대사에서 훨씬 다양해졌고 역동적인 긴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합창단의 규모를 줄이고, 12명을 표준으로 하여 이전의 합창단에 비해 배우의 비중을 늘려 연극성을 높였다. 동시에 그는 안무가의 도움을 마다하고 합창단을 직접 훈련시켰으며, 합창단이 연기할 새로운 무용스텝을 직접 고안하기까지 했다.


c.  주요 등장인물

트로이 전쟁을 전후해 가문과 권력의 복수극에 희생되는 전쟁영웅 아가멤논의 비극적인 최후를 그린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아가멤논: 오랜 트로이와의 전쟁 끝에 승리하여 돌아오나, 부정한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인물.

클리타: 아가멤논의 왕비로 남편이 전쟁에 나가자,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한 후 개선한 남편을 살해하는 여인.

아이기: 왕비와 정을 통하고 왕이 돌아오자, 왕을 살해한 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부정적인 인물.

오레스테스: 아가멤논의 아들로 어머니와 그 정부를 살해함으로써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

엘렉트라: 아가멤의 딸로 오레스테스의 누이. 동생의 살해계획에 가담한다.  엘렉트라 콤플렉스 라는 심리학적 용어의 기원이 되는 인물.


d.  작품의 주요내용

 비극은 호메로스의 풍부한 식탁의 찌꺼기로 만들어진다 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소재는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에서 취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대체적인 줄거리는 오레스테스가 자기 아버지인 아가멤논을 죽인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에게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이다.


e. 아가멤논

트로이 원정(트로이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본서의 제1권, 호메로스 편 참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왕이 왕비와 그 정부에 의해 살해된다는 내용이다. 아가멤논을 총대장으로 하는 그리스 군의 트로이 원정 10년째되던 어느 날 새벽, 아르고스의 왕궁에는 멀리 트로이로부터 번갈아 운반된 횃불이 도착했다. 그 신호는 그리스 국민이 애타게 기다리던 승리의 신호였다. 얼마 후 사자가 나타나 원정군의 총수인 아가멤논 왕의 귀환소식을 알렸다. 이윽고 왕궁 앞에 모인 장로들은 오랜 전쟁이 끝난 것을 기뻐하면서도 한가닥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가멤논이 왕궁을 비운 사이 왕비 클리타가 아이기와 정을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가멤논이 등장하자 클리타는 엄청나게 비싼 진홍의 천을 깔고 남편을 맞이한다. 아가멤논은 지나치게 호화스러운 개선은 신들을 업신여기고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오만한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나 클리타의 교묘한 말수작에 넘어가 진홍의 천을 밟고 왕궁에

들어간다. 이 진홍의 핏빛 천은 불길한 예감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편 개선한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를 포로로 데리고 왔는데, 그녀는 신 아폴론으로부터 예언의 힘과 능력을 부여받은 여자였다. 조국을 잃고 왕족의 신분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이국에 끌려온 그녀는 신의 가혹한 운명 앞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가멤논과 클리타가 왕궁으로 들어간 뒤, 문 앞에 서 있는 아폴론 신상을 보고 갑자기 반 미치광이 상태로 슬프게 울부짖으며 불길한 예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왕궁 안에서 흉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가멤논과 자신이 제물이 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내용의 예언을 중얼거린다. 얼마 후, 카산드라는 제정신을 차린 뒤 자기의 죽음을 신이 정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순히 왕궁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왕궁 안에서 아가멤논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시체 옆에 서 있는 클리타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녀는 속죄의 기색이 전혀 없이 아가멤논을 맹렬히 비난하고, 자신이 아가멤논을 죽인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아가멤논이 일찍이 그리스 군을 괴롭히는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딸 이피게니아를 산 재물로 바쳤는데, 오늘 그 대가를 받았다며 그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에 그녀의 정부 아이기가 나타나, 아가멤논의 살해계획을 세운 것은 자기이며, 그 살해동기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가멤논의 부친으로부터 받은 고통에 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가멤논을 살해한 것은 선대로부터 이어진 원한의 연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같은 행위를 장로들은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타는 자신을 비난하는 장로들에게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승리를 확언한다.


f. 코에포로이(공양하는 여인들)

아가멤논의 딸인 엘렉트라와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이다. 부친의 살해 당시 국외로 도피하여 성장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의 명령과 가호를 받아 귀국하여 부친의 무덤 앞에서 누이인 엘렉트라를 만나게 된다. 엘렉트라 역시 어머니 밑에서 굴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 남매는 부친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한편 클리타는 양심의 가책으로 매일밤 무서운 악몽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오레스테스 사망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한 것은 나그네로 변장한 오레스테스 자신이었다. 그는 교묘한 책략으로 클리타의 정부인 아이기를 살해하자, 어머니는 그것을 알고 젖가슴을 드러내며 애원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죽고 만다. 오레스테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으나, 생모 살해죄를 면할 길 없어 복수의 여신인 에리니에스에게 쫓기게 된다.


g. 에우메니데스(자비로운 여신들)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를 그리고 있다. 복수의 여신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임무인 복수를 하기 위해서 어머니와 계부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를 쫓아다닌다. 비록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그의 의무였지만, 어머니를 죽인 것은 복수의 여신들의 눈에는 끔찍스런 죄였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신의 도움을 받아, 아테나 여신이 연 법정에서 무죄를 인정받는다. 아테나 여신은 분노한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고 복수의 여신들이 앞으로 자비의 여신으로 숭앙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여 화해한다. 아테네 시의 번영을 축원하는 대합창 속에 3부작 비극의 마지막 편의 막이 내린다.


h.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드라마는 크고 웅장한 서사시적인 규모를 가진 오레스테스 이야기다.  아가멤논 에 나오는 파수병의 암시적인 대사로부터 작품 전체를 뒤덮는 어두운 그림자는 최후까지 계속되고, 합창대의 막연한 근심, 신들의 힘, 인간의 덧없는 운명 등은 드라마를 깊은 우수로 휩싸고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처럼 구성에 긴밀하고 합리적인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견실한 구성보다는 분위기를 중시하고, 장대한 합창단의 노래로 전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3부작을 통하여 색채의 배분 또한 효과적이다. 진홍색으로 색칠된 제1부와는 대조적으로, 제2부에서는 검은 상복의 여자들이 무리지어 등장하고, 이야기 또한 검은 핏빛으로 물들어져 있다. 그러나 극의 구성으로서 가장 흥미있는 것은 오레스테스가 태양신인 아폴론의 요구에 따라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결과 땅의 신들의 추적을 받아 쫓기는 장면이다. 제3부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환상적인 색채가 강하다. 신들과 인간의 구별이 흐릿해지고, 양자 모두 우주적인 정의와 자비의 세계에 병존하게 된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원령들의 모습은 처참하여 관객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원령들의 합창대에서 소용돌이치는 기묘하고 끈질긴 리듬은 오늘날에도 그 본문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이 작품은 극시적이라기보다는 서사시적이라 하여 별로 적극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그의 비극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행하여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클로델과 미로에 의한 음악시적인 재현, T. S. 엘리어트의 성당의 살인과 일가족 재회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그의 작품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사상은 인간행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죄 하는 관념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이유이든 비록 신이 내린 명령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신이 명령한 일을 실행하여 죄로 문책당하는 결과가 되면 그 인간은 두려운 딜레마에 빠진다. 이것이 시인이 만들어낸 비극적 상황이며, 최종적으로는 제우스의 정의에 의해 인간은 구제받고 신의 지혜를 배운다고 되어 있다. 그는 신들의 최후의 정의를 믿고, 인간의 정의가 언젠가는 신의 정의와 일치한다는 점을 비극에서 노래하였다. 그의 가장 진지한 희곡인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에서 아이스킬로스가 묘사한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위협까지도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는 독립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반항적 인간의 모습이다. 그것은, 고귀하고 명예로운 행위는 항상 혹심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또 불굴의 정신에 의해서 그 진정한 가치가 인식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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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blog.daum.net/seonomusa/2385

       http://blog.daum.net/seonomusa/3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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