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얄팍한 유럽 1,2차 대전사의 한 부분에 대한 안목을 새로 심어 준 영화였다.
단순히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연합하여 2차 대전을 이끈 것으로만 생각하였는데....
그 안에서도 독일 내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태인에 대한 박해는 동시에 진행 되었고
비엔나에 살던 부유한 유대인 가족의 따님이었던 이 아줌마도 그 때문에 새신랑과 함께
부모를 남겨 두고 비엔나를 탈출해서 미국땅에 50년 넘게 살아온 아줌마에게
오스트리아 정부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그리워 했던 자신의 숙모라고 해야 하나 암튼 숙모뻘 되는 초상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을 입은 여자' 작품 반환에 나서게 된다.
그리 유복하지 않은 살림에 친구 아들을 변호사로 고용하는데....이들은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살기 위해
미국으로 도망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잇다만....
처음 오스트리아 방문때는 이 젊은 변호사 친구는 워낙에 막대한 금액의 그림이라 돈에 대한 욕심으로 찾아 간 것이었고
아줌마는 처음에는 자신의 잃어 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그리고 두번째 방문에는 마음이 변하여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을 통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타
오르는 젊은 변호사에 의해 끌려 가다 시피 한다.
물론 거듭된 재판과 심리를 통하여...
이 아줌마는 그 그림에 대한 권리를 찾게 되고 그 그림은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에서 미국으로 옮겨 지게 된다...
물론 그 선택은 소송에서 싸운 아줌마의 선택이었지만... 미국으로 가져 오게 되고, 미국의 유명한 갤러리에 엄청난 고액으로 팔게 되고
하지만 그 돈은 자신의 친지와 오스트리아를 위한 여러 곳에 재정지원으로 기부되고 이 아줌마는 살아온 방식 그대로 작은 옷가게를
하며 살가 운명한다고 나온다.....
내 생각은 그래도 그 그림이 굳이 현재 세계 최대 강대국으로 옮겨져 와야 했는가....그리고 최대 강대국의 시민으로서 오스트리아와
법정다툼에서 이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유럽 음악, 미술의 중심지이자 보고 였던 비엔나가 유럽 세계대전 이후 그닥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해 내지
못하는 점은 또 왜 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하였다.
나찌에 의해 모든 것을 유린당한 유태인들에 대한 나름의 반성촉구의 영화였지만.... 그시대 유럽 부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세계 대 공황의 시대를 호의호식했던 유태인에 대한 비판의 눈이....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부분 설명에서 나온
숙부의 직업이 '설탕 공장' - 그 시대 설탕 산업이야 말로 노예와 식민지 시대의 최대의 산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 들이
누렸던 부의 향락이 수많은 힘없는 인간들의 피와 땀 위였다는 것을 잊을수 없으리라 본다...
역사는 이래서 쉽지 않은 것인가 싶다.
우리나라는 독립을 위해서 해외에서 국내에서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후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차별을 당한것과
일제 수탈의 앞잡이 노릇을 해서 호의오식했던 수많은 친일파들이 공산당 토벌 과정을 등에 업고 새로운 권력층으로 그대로
진행된 점... 이 둘이 있는 한 역사의 왜곡속에 온전할 길이 없는 것이다...
201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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