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壽(수)목숨



- 참고 : 타인을 아는 자는 똑똑하지만, 자신을 아는 자는 밝다. 타인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하다. 만족할줄 아는 자는 이미 부자이고, 힘써 해나가는 자는 의지가 있고, 제 자리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가고, 죽어도 도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



- 참고자료 : 타인을 아는 자는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 것이다. 족함을 아는 자래야 부한 것이요, 행함을 관철하는 자래야 뜻이 있는 것이다. 바른 자리를 잃지 않는 자래야 오래가는 것이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래야 수하다 할 것이다. 

 

* 지혜란 본시 장황한 논리적 전개가 아니다. 모든 지혜는 평범한 삶의 문제에 대한 단순한 통찰 몇 마디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아는 것이야 말로 밝음(明)이다. 인간의 앎이란 어려서부터 타인에 대한 앎으로부터 시작된다.


* 스스로 아는 것 즉, 남의 전제가 없이 나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삶의 지혜란 곧 자기를 아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란 대립적 구분이 없어진 나의 삶, 그 자체요, 나의 체험 그자체이다. 내가 체험해 보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결국 지혜란 것은 타인을 아는 것이요, 나를 아는 것이다. 타인을 아는 사람은 단지 지혜롭다 말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지혜를 초월하여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만 같지 못한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스스로를 이기는 것, 나홀로 이기는 것 즉, 나를 이기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자기와의 싸움이다.


* 인류의 역사는 가난과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부를 위한 드라이브였다. 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부가 무엇인가? 진정한 부의 순간은 족함을 아는데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부의 확장을 추구하는 한에 있어서 부는 찾아올 길이 없다. 밝음으로써 자신을 살피고 자기의힘의 정도를 올바르게 헤아려 행동으로 옮기고, 그 자기자리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영구함을 얻게 될 것이다. 신체가 사라져 버려도 그의 도가 지속되는 삶이야말로, 짧던 길던, 비로써 장수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준이해석 : 타인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총명하다. 타인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고, 자신에게 이기는 자는 강한 사람이다. 넉넉함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강하게 실행에 옮기는 자는 뜻이 있는 자이다. 자신의 (있을)자리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가고, 죽어도 잊혀 지지 않는 자는 장수하는 것이다. 


- 준이생각 :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듣던 말인데 그 출처가 바로 도덕경이었구나. 타인에 대해 조금 알 수는 있어도, 자신을 진정 안다는 것 – 아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 이야 말로 제대로 된 슬기로움인 것 같고, 어쩌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만나 몇 번 이길 수는 있어도 진정 자신의 뜻을 추스려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힘, 즉 나약함이나 두려움이나 오만함을 떨쳐 내는 것이야 말로 강한 사람이고, 족함을 아는 것 – 자신이나 타인의 욕망에 노예가 되지 않는 것, 그리고 나눌줄 아는 것이야 말로 부유한 것이고, 실천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의지를 지닌 자이며, 자신이 있을 곳을 잘 판단해서 찾아 가는 사람이야 말로 오래 가는 것이고 죽음에 이르러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장수라고 노자는 이야기 한다. 사실 이 짧은 글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포괄적인 모든 강령이 다 나온다고 보인다.

32.道常無名, 樸, 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도상무명  박  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손  천지상합

樸(박)순박할,1. 순박하다(淳朴ㆍ淳樸ㆍ醇朴--) 2. 질박하다(質樸ㆍ質朴--: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3. 다듬다 4. 통나무 (복)나무 빽빽할/賓(빈)손,1. 손, 손님 2. 사위(딸의 남편을 이르는 말) 3. 물가 4. (손으로)대접하다(待接--) 5. 객지살이하다(客地----) 6. 복종하다(服從--), 따르다 7. 인도하다(引導--) 8. 따르게 하다, 굴복시키다(屈服---)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均(균)고를,(운)운,(연)따를/旣(기)이미,(희)쌀


知止, 可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지지  가이불태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譬(비)비유할,1. 비유하다(比喩ㆍ譬喩--), 설명하다(說明--) 2. 깨우치다, 인도하다(引導--) 3. 깨닫다 4. 비유(比喩ㆍ譬喩) 5. 비유컨대/猶(유)오히려, 가히, 다만, 이미



- 참고 : 도는 늘 이름이 없다. 소박하고 비록 작지만, 천하의 그 무엇도 (도를) 신하 삼을 수 없다. 만약 왕후가 이를 지킬 수 있으면, 모든 것이 스스로 따를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모여, 단 이슬을 내리듯, 백성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가지런히 한다.(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에 걸맞는) 이름이 생기니, 이미 이름이 있다면, 무릇 멈출 줄 알아야 하고, 멈출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을 비유하자면, 계곡물이 강과 바다를 향하는 것과 같다.



- 참고자료 : 도는 늘 이름이 없다. 통나무는 비록 작지만 하늘아래 아무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 제후 제왕이 이 통나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이 스스로 질서 지워질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단 이슬이 내리듯이, 백성들은 법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제 길을 찾는다. 통나무에 제한을 가하여서 비로소 이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니, 이름이 일단 생겨난 후에는 대저 또한 그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침을 알아야 위태롭지 아니할 수 있다.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을 비유하면, 온갖 계곡의 시내들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과도 같다.


* 도(道)는 이름이라고 하는 분별적 기(器)의 세계이전의 사태이므로 무명(無名)이요, 무명은 곧 박(樸,통나무)의 별칭이다. 박은 통나무요, 모든 것이 구체화되기 이전의 가능태이다. 절대 공(空), 절대 무(無)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실체를 우리는 “박(樸)”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박은 분명 무명(無名)이요, 무형(無形)이요, 무물(無物)이다. 그러나 없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천지(天地)는 자연계를 가리키고, 천하(天下)는 인간세 즉, 인간중심적 사회를 가리킨다. 통나무를 껴안고 무위를 실천하며, 구체적인 물로써 그 참된 모습을 구차스럽게 하지 않으며, 욕망으로써 그 신령함을 해치지 않으면, 곧 만물이 스스로 손님노릇을 잘하고 또 도는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다. 발견은 “앎”의 확충이다. 발견 그자체로는 아무런 죄가 없다. 발명은 “작”의행위이다. 발명에는 발명자의 윤리적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노자는 발견에서 발명으로 연결되는 인간의 고리를 곧 인간의 욕(欲,욕망)이라고 파악한다. 그 욕의 끊임없는 절제가 곧 문명의 과제상황인 것이다. 제한을 가하여서 이름이 생겨나면 첨예한 대립을 하면서 싸움을 벌리는 인간세가 전개된다. 그래서 이름이 생겨난 후 에는 대저 또한 그침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 준이해석 :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질박하고 비록 작으나 천하(인간)는 누구도 이를 신하로 할 수 없다, 제후나 왕이 만약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장차 스스로 따를 것이고, 천지(자연)는 서로 어울릴 것이다. 단 이슬을 내려주고 백성은 명령(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균형을 맞출 것이다. 만듦을 시작함에 이름이 있다. 이름은 역시 이미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역시 장차 멈추어야 함을 안다. 멈추는 것을 아니, 위태롭지 아니할 줄 안다. 도를 천하에 있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가히 강과 바다로 흘러가는 계곡물이라 한다.


- 준이생각 : 道는 질박하고 작다. 도를 신하로 둘 수 있는 자는 없으나 도를 지키고 따른다면 세상만물을 스스로 따라 오고, 자연은 서로 어울리고, 백성들도 스스로 평화롭다. 이는 도를 내세워 곡학아세한다는 것이 헛된 것이고, 도를 따르는 것이 천하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니 자연히 세상 만물이 함께 가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계곡에 물이 흘러 가듯, 세상 만물 속을 흐르는 도의 기운을 그려 본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가 형태를 띄고 나타 날 때는, 즉 아마도 무엇인가에 쓸 용도로 일부를 잘라내어 손을 댔을 경우에는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도 알고, 그 쓰임을 다 하면 다시 돌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도...그리하여 그 자체로는 소박하고 질박하나 그것은 만물의 근원이고 끝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1.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夫(부)지아비,1. 지아비 2. 남편(男便) 3. 사내, 장정 4. 일군, 노동일을 하는 남자(男子) 5. 군인(軍人), 병정(兵丁) 6. 선생, 사부 7. 부역(負役) 8. 100묘(畝)의 밭 9. 저, 3인칭 대명사(代名詞) 10. 대저(大抵: 대체로 보아서), 발어사(發語辭) 11. ~도다, ~구나(감탄사)

12. 다스리다 13. 많다/佳(가)아름다울, 좋다,훌륭하다,좋아하다/或(혹)혹,나라, 또, 어떤경우에는, 어떤이, 있다, 괴이쩍어하다, 의심하다, 미혹하다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별자  불상지기  비군자지기  부득이이용지  염담위상  승이불미  이미지자

恬(염,념)편안할/淡(담)맑을,(염)질펀히 흐를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시요살인  부요살인자  즉불가득지어천하의  길사상좌  흉사상우

尙(상)오히려, 더욱이, 또한, 아직, 풍습, 숭상하다, 높이다, 자랑하다, 장가들다, 꾸미다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언이상례처지  살인지중  이애비읍지  전승  이상례처지

偏(편)치우칠, 속이다, 나부끼다, 보좌



- 참고 : 무릇 훌륭한 군대는 조짐이 안좋은 도구이니, 만물이 종종 이것을 싫어하여, 길이 있는 이는 머무르지 않는다. 군자가 머무를 땐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군대를 쓸 땐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군대는 조짐이 안좋은 도구이며, 군자의 도구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써야할 때는, 담담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이겨도 좋아해서는 안된다. 이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무릇 사람 죽이는 것을 즐겨 해서는 하늘 아래에서 뜻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좋은 일은 왼쪽을 우선하고, 안좋은 일은 오늘쪽을 우선한다. 지위가 낮은 장군은 왼쪽에 머무르고, 지위가 높은 장군은 오른쪽에 머무르니, 죽은 자의 예의로 대함을 이른다. 사람들을 죽이면, 슬픔에 울고, 전쟁에서 이겨도, 죽은 자의 예의로 대한다.



- 참고자료 : 대저 아무리 훌륭한 병기라도 그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물일 뿐이다. 만물은 모두 그것을 혐오할 뿐이니, 그러므로 도 있는 자는 그것에 처하지 않는다.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전쟁 시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란 것은 도무지 상서롭지 못한 기물이며, 군자의 기물이 아니다. 부득이해서 그것을 쓸 뿐이니, 초연하고 담담한 자세가 제일 좋은 것이다. 개가를 올려도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곧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대저 살인을 즐기는 자가 어떻게 천하에 뜻을 얻을 수 있겠는가? 길사 때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흉사 때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잡고 최고상장군은 오른쪽에 자리잡는다. 이것은 곧 전쟁에는 상례로써 처하라는 말이다. 사람을 그다지도 많이 죽였으면 애통과 자비의 마음으로 읍해야 할 것이다. 전쟁엔 승리를 거두어도 반드시 상례로써 처할 것이다.


* 왕필이 단 한글자의 주석도 달지 않은 유일한 장으로 “도덕경”의 미운 오리새끼와 같은 장이다. “전쟁에서는 승리가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31장의 병가적 지혜로부터 1장과 같은 노자사상의 추상적 가치체계가 형성되어 나갔다는 그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


* 희랍사상가들은 인간 지혜의 기준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지성의 쾌거로 바라보았으나, 전국시대에 형성된 중국인의 지혜는 전쟁이라고 하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을 근원적으로 어떻게 초월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31장의 주제는 한마디로 “전쟁에는 승리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 준이해석 : 무릇 훌륭한 군대라는 것은, 상스럽지 않은 도구다. 만물은 혹 그것을 싫어하기에 도를 가진 자는 그에 머물지 않는다. 군자가 머물 때 곧 좌측을 귀히 여기고, 군대를 사용함에는 곧 우측을 귀히 여긴다. 군대라는 것은 상스럽지 않은 도구이고 군자의 도구가 아니기에 부득이할 경우에 그것을 쓰고, 편안하고 맑게 함이 상책이고, 승리하더라도 미화하지 말고, 그리고 그것을 미화하는 자는 살인을 좋아하는 것이고, 무릇 살인을 좋아하는 자는 곧 천하의 뜻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길한 일은 좌측을 받들고 흉한 일은 우측을 받든다. 편장군(부관장군)은 좌측에 거하고, 상장군은 우측에 거한다. 상례가 그 곳에 처하게 말을 하고, 살인의 무리(아마도 죽거나 다친 사람들?)에게는 서럽고 슬피 울어 주어야 하고, 전쟁에서의 승리는 상례를 그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상례를 치러주어야만 한다.)


- 준이생각 : 군대라는 것은 상스럽지 않은 도구라고 했다. 부득이하게 그것을 쓰야 할 때도 편안하고 맑게 쓰고 승리해도 자랑하지 말고, 죽은 자를 예를 갖춰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무릇 무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대로 자연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것을 보면... 자연은 서서히 그 수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여 전체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데, 인간이란 종은 유독 다른 생물을 도륙하고 멸종시키고, 심지어 자신 끼리도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너무도 많이 하고 있는 참 유별난 생물이다. 어찌보면 그 이기심이나 살해본능이 이미 유전자 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자연을 보고 느끼고 자연의 사는 방식대로 따라가고자 한다면, 다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노자는 부득이한 경우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만, 그 경우에 마저도 예를 갖추어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사랑의 유전자를 지켜 내자고 설파한 거라고 생각해본다. 



30.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  형극생언  대군지후  필유흉년

佐(좌)도울,보좌하다,권하다,도움,속료/荊棘 ①나무의 가시②고난(苦難)의 길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荊(형)가시나무,곤장,아내/棘(극)가시/還(환)돌아올


善有果而已, 不敢以取强,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선유과이이  불감이취강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과이부득이

勿(물)말,(몰)털/矜(긍)자랑할, 불쌍히 여기다, 괴로워하다, 아끼다, 엄숙하다/驕(교)교만할/果(과)열매, 실과, 결과, 시녀, 과연, 마침내, 만약, 과단성이 잇다, 이루다/伐(벌)칠, 베다,북을치다,찌르다,비평하다,모순되다, 자랑하다,치료하다,방패


果而勿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과이물강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이


- 참고 : 도를 가지고 임금을 도우려는 사람은, 군사로 천하를 강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일은 되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군사가 머문 자리에는 가시덤불만이 무성하고, 큰 군사를 일으킨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군사에 능한 자는 이루면 곧 그치며, 감히 힘에 기대지 않는다. 이루되 뽐내지 않고, 이루되 자랑하지 않고, 이루되 교만하지 않고,이루되 어쩔수 없었다고 하고, 이루되 힘으로 누르지 않는다. 장성하면 곧 늙는 법이므로, 이는 도에 맞지 않는지라. 도에 맞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



- 참고자료 : 도로써 사람의 주인을 잘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무력의 댓가는 반드시 자기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군대가 처한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겨나고, 대군이 일어난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른다. 부득이 해서 난을 구해줄 뿐 무력으로 세상을 억누르지 않는다. 좋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아니하면, 좋은 성과가 있어도 으시대지 아니하면, 성과가 있었던 것도 단지 부득이 해서 그리된 것일 뿐이니,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해서 강함을 과시하려 하지마라. 모든 사물은 강장하면 할수록 일찍 늙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도답지 아니하다고 한다. 도답지 아니하면 일찍 끝나버릴 뿐이다.


*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할 수는 없다. 도가 있는 자는 항상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 무위를 한다. 이겼다 하는 것은 단지 부득이해서 한 것의 결과일 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싸움의 승리가 나의 강함의 과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 준이해석 : 도道로서 사람들의 주인(왕)을 보필하려는 자, 군사로 천하를 억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일은 곧잘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군대가 있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겨나고, 대군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온다. 결실이 있어 좋다면 이미 그런 것이고, 감히 무력을 취하려 하지 말라, 결실이 있어도 자랑하지 말고, 결실이 있어도 떠벌리지 말고, 결실이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결실이 있어도 어쩔수 없이(부득이) 그렇다고 하라, 결실이 있다고 힘으로 어찌하려 하지 말고, 만물은 장차 이제 나이가 드니, 이러한 것이 도가 아니다(不道)라고 하며, 부도는 일찍 끝난다. 


- 준이생각 : 무력을 사용하여 억누르고 강제 한다는 것 자체가 도가 아닌 것이라고 말하고, 자랑하고, 으스대고, 교만해 하지 말고, 어찌하다 보니 어쩔수 없이 좋은 결과가 나왔노라고 말하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 자랑이나 떠벌림이나 자기 과신 같은 행위는 도에 맞는 행위가 아니라 하고 세상 모든 만물은 나이를 먹는다(즉 변하고 늙는다?)고 했다. 도에 따라 산다는 것은 소박하고, 겸손하고, 조용한 것이다. 

23.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天地 天地尙不能久 而況於人乎 故從事於道者 

   희언자연 고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希[ xī ](희)바랄,(稀)적다, 드물다,희소하다, 극히, 매우/飄(표)나부낄, 빠르다,회오리바람/驟(취)달릴, 빠르다, 몰아가다, 자주/尙(상)오히려, 더욱이, 아직풍습, 숭상하다, 높이다, 자랑하다, 주관하다, 장가들다, 꾸미다/況(황)상황, 하물며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 참고 : 말이 적은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갑작스런 비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늘과 땅마저 변치 않을 수 없으니, 하물며 사람이야. 따라서 길을 따라 일을 좇을 때,[2]도를 따르면 도와 같아지고, 덕을 따르면 덕과 같아지며, 잘못을 따르면 잘못과 같아진다. 도와 같아지면, 도 또한 이를 즐거이(편히) 받아들이고, 덕과 같아지면, 덕 역시 이를 즐거이 받아들이며 잘못과 같아지면, 잘못 역시 이를 즐거이 받아들인다. 믿음이 넉넉치 않으면, 믿지 않음이 있을 뿐.



- 참고자료 : 말이 없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오리 바람은 아침을 마칠 수 없고, 소나기는 하루를 마칠 수 없다.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도 이렇게 오래 갈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서랴! 그러므로 도를 따라 섬기는 자는 알아야 할 것이다. 도를 구하는 자는 도와 같아지고 얻음을 구하는 자는 얻음과 같아지고 잃음을 구하는 자는 잃음과 같아진다. 도와 같아지는 자는 도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얻음과 같아지는 자는 얻음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잃음과 같아지는 자는 잃음 또한 그를 즐거이 얻으리.


* 도(道)에 종사하는 자는 도에 같아지고, 덕(德)에 종사하는 자는 덕에 같아지고, (失)에 종사하는 자는 실에 같아진다. 도를 얻는 자는 도 또한 그를 얻을 것이요. 도를 잃는 자는 도 또한 그를 잃을 것이다.



- 준이해석 : 말이 드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로 회오리 바람은 아침을 다 하도록 지속치 않고, 쏟아지는 비는 하루를 다 하도록 지속치 않는다. 누가 이러한 것들을 하는가 ? 천지다. 천지는 오히려 영원할 수 없음에 하물며 인간에게는 어떠할 것인가? 고로 일을 따름에 도로 행하는 자는 도자는 도에 같아지고 덕을 행하는 자는 덕에 같아지고 실失을 행하는 자는 실에 같아진다. 도는 도를 얻음에 즐거움이 있고 이는 덕을 행하는 자에게도 같으면 덕은 덕을 얻음에 즐거움이 있고 실을 행하는 자에게도 같아서 실 또한 실을 얻음에 즐거움이 있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불신이 있음이다.


- 준이생각 : 맹자의 말을 대충 들여다 보면 여러 가지 가치관이 나오는데, 이번 장에만 봐도 도, 덕, 그리고 실失까지. 그런데 재밌는 것이 이러한 가치관들이 무엇은 더 낫고 무엇은 나쁘고 하는 그런 표현 보다는 그냥 등가물로서 병렬로 나열된다는 점이 특색있다고 보여진다. 도를 가까이 하고 이를 행하려는 사람은 도와 비슷해지고 또 즐거이 도를 얻고, 덕을 가까이 하고 행하려는 자도 덕과 비슷해지고 또 덕을 얻음에 즐거움이 있다 까지는 대충 공맹의 사상과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들어오는데, 난데 없이 실失을 행하는 자도 이와 똑같다, 그리고 그것이 더 좋다 나쁘다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 나는 좀 색다른 의견을 내어 본다. 도니 덕이니 실이니 하는 것들은 결국엔 같은 것이 아닐까? 좀 다르게 표현해 본다면, 태초부터 있던 혼돈, 황홀, 돈돈한 것임에 결국은 한 몸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는...하지만 이 모든 자연의 법과 체를 이해하고 순응한다는 것으로서 악당의 또는 루저로서의 길보다는 도와 덕을 따르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하나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시시각각 그 모습이 바뀌어 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속에서만 규정되어 지는, 대국적으로 본다면 상대적인 것에 불과한... 내가 제대로 가는건지 잘 모르겠다. 


25.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료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混(혼)섞을,혼탁하다,흐리다,가장하다,[ hùn ]혼합하다, 되는데로 살다, 함께교류하다, 함부로, 되는대로, 남을 속이다, 더럽다/寂[ jì ](적)고요하다, 쓸쓸하다/寥[ liáo ](료)쓸쓸할, 공허하다, 적다,드물다/寂寥[ jìliáo ]조용하다,고요하다,광활하다, 넓디넓다/殆[ dài ](태)위태로울, 거의, 대체로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고도대  천대  지대  왕역대

逝(서)갈,죽다,날다,달리다,맹세하다,[ shì ](물,시간등이)지나가다, 흐르다, 죽다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法[ fǎ ] 법,방식,본보기로 삼다, 적법한, 모범, 도리/域(역)지경, 구역, 나라, 국가, 경계



- 참고 : 모든 것이 섞여있었으니,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이었다. 조용하고 알 수 없구나! 변함없이 홀로 서있네. 두루 미치나 쉬지 않으니 우주의 어미가 될 만하구나. 나는 그 이름을 알지못하나, 억지로 쓰자니 도라 쓰고, 억지로 부르자니 크다고 한다. 큰 것은 가는 것이요, 가는 것은 널리 미치는 것이며, 널리 미치는 것은 되돌아옴이다. 그리하여 도가 크고, 하늘이 크며,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크다. 우주엔 큰 것이 네 개 있는데 사람도 그 한자리를 얻는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스스로 그러하다.



- 참고자료 : 혼돈되이 이루어진 것이 있었으니 천지보다도 앞서 생겼다. 적막하여라! 쓸쓸하도다! 외로이 서있건만 함부로 변하지 않는다. 가지 않는 데가 없건만 위태롭지 아니하니 천하의 어미를 삼을 만하네. 나는 그 이름 알 길 없어, 그것을 글자로 나타내어 ‘도’라 하고 억지로 그것을 이름 지어 ‘크다’고 말하지. 큰 것은 가게 마련이고 가는 것은 멀어지게 마련이고, 멀어지는 것은 되돌아오게 마련이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은 크고, 땅은 크고, 왕 또한 크도다. 너른 세계 속에 이 넷의 큼이 있으니, 왕이 그 중의 하나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데,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을 뿐이지.


* 우주 구상이 전국중엽에 이미 명료하게 보편화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사상적으로 가장 포괄적이고, 핵심적인 장이다.


* ‘도’라는 카오스가 천지(天地)라는 우주에 대해 가치론적으로 더 본질적이며, 더 근원적이다. 모든 사물은 극에 도달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는 자연 순환사상이 있다. 자연을 비실체적으로 파악하는 도(道)의 자연주의 개방주의 즉, ‘스스로 그러함’의 철학이 천지 코스몰로지적인 세계관의 틀 속에서 매우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다.


*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 창조”이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천지(天地)를 창조해낸 것이다. 하지만, 노자사상은 천지(天地)이전에 혼성자(混成者)가 있었고, 그 혼성자가 또 역으로 천지로 변형되었음을 말하는 상호작용 관계를 설명하는 생(生)에 불과한 것이다.


* 기독교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시간 밖에 있다. 하지만, 혼성은 시간 내에 있다. 즉, 천지에 앞선다는 것이 시간에 앞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성자는 시간 안에 있다.


* 어지럽게 섞여 있어 그것을 도무지 규정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또 그 혼성자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다”라고 말한 것이다. ‘적막하다’니 ‘쓸쓸하다’니 하는 표현들은 모두 형체가 없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道)적인 세계에는 짝지을 만한 구체적 물상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외로이 서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과 끝은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변화하지만, 그 항상 됨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함부로 변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 것이다. 두루 다니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면서도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항상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 큰 모습을 온전하게 한다. 그러므로 “천하의 어미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한 것이다.


* 도(道)는 근원적으로 혼성된 것이어서 어떠한 형체적 규정성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글자로 나타내어 도라고 했다.”고 한 까닭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일컬었다한 바로 그 사실에서 취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그 글자가 규정하는 바의 말미암음을 정확히 따지려고 든다면 우리는 또다시 그 “크다”고 하는 말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하기를 “억지로 그것을 이름지어 크다”라고 한 것이다. “도”라고 말한 것은 이미 그것이 말미암음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미암음이 있고 나서 연후에 “도”됨을 일컬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도”는 결국 언어문자로 일컬을 수 있는 것 중에서 “큰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언어문자로 일컬을 수 없는 무칭의 큼이 아니다. 일컬을 수 없으며, 얻어 이름할 수 없는 것을 말하여 노자는 “역(域)”이라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역(域) 속에 사대(도, 천, 지, 왕)가 있는 것이다.” 이 질

서적 구현 이외의 구현의 가능성도 무한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천지 이전의, 천지를 구현시키고 있는 그 바탕, 그 우주론적 최고 궁극의 가능태의 양(陽)을 왕필은 역(域)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없을 때 나온 말이요, 그 극을 다했을 때 나온 말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라가기에 하늘은 그로 인하여 도를 말미암고, 하늘은 도를 본받기에 땅은 그로 인하여 하늘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기에 사람은 그로 인하여 땅을 본뜨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왕이 되는 것이다. 도야 말로 “혼성(混成)”의 궁극자요, 더 이상본받아야할 대상을 지닐 수 없는 궁극적 무엇이라는데 있다. 무엇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나 본받을 수가 없다. 노자는 이에 대하여 현명한 대답을 제시한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은 부름이 없는 말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상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스스로 그러하다 함은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사태에 대한 유일한 언어적 표현인 것이다. 즉, 언어가 단절된 곳에서 피어오르는 언어인 것이다. “스스로 그러함, 自然”이란 “함이 없음(無爲)”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러함”이란 표현은 무위보다는 개방성이 강조되어 있다.


* “궁극”이란 결국 그 인간의 합리성의 극한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그러함”이란 인간의 합리성이 그 극한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초극하는 최후적 발설이요, 그 발설이란 초합리적인 개방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 자체로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지(地), 천(天), 도(道)를 거쳐 자연(自然)에 나아가는데 있다.



- 준이해석 : 천지가 생기기 전에 마구 섞여 있는 것이 있으니 고요하고 쓸쓸하며 홀로 서 있으면서도 개변하지 않고 두루 다니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어머니 같도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글로 쓰자면 도道라 불리우고 굳이 이름을 붙여 본다면 크다(大)라고 하고, 대는 가는 것(逝)이고, 서는 먼 것(遠)이고, 원은 반대(또는 돌아 온다,反)라고 하니, 고로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땅위에 있는 네 가지 큰 것, 그리고 왕 또한 그 중 하나이니, 사람은 땅의 법을 따르고, 땅은 하늘의 법을 따르고, 하늘은 도의 법을 따르고, 도는 자연의 법을 따른다(자연 = 스스로 그러하다)


- 준이생각 :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던 마구 섞여 있는 것... 이것이 자字가 도라 하고 명名이 대라고 하였다. (우리가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名字.) 이 도라는 것은 조용하고 쓸쓸하며(마치 우주공간과도 같은 느낌이랄까?),독립불개 하고 주행이불태라고 하는 속성을 지니며 이것은 크다고 하였다. 대라는 것은 이름에 해당 되는 것으로 이 성질을 설명하며 (크다)-(서서히 가다)-(멀다)-(돌아오다) 이 네가지 성질이 서로 이어져 있는 마치 하나를 가지면 자연히 다른 셋이 따라 오든가, 아니면 이 네가지 성질을 동시에 띄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 하면서, 여기에 다시 (도)-(하늘)-(땅)-(왕) 4가지 큰 것을 이야기 하고 다시 (인간)-(땅)-(하늘)-(도)의 순으로 그 법을 따르며 도는 결국 그 자체로 따른다(자연)이라고 이야기 한다. 


(크다)->(서서히 가다)->(멀다)->(돌아오다)  = (도) (구름인가 ?)

 (도) =    (하늘)   = (땅) = (왕,인간)

29.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우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 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고물  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

隨(수)따를, 추종하다,추구하다/歔(허)흐느낄,숨내쉬다/吹(취)불/羸(리,이)파리할, 고달프다, 괴로워하다,약하다/挫(좌)꺽을, 부러지다,꺽이다/隳(휴)무너뜨릴,훼손하다, 황폐해지다,(타)떨어질/奢(사)사치할,낭비하다,과분하다,지나치다/泰(태)클/去(거)갈, 버리다, 물리치다, 거두어 들이다


- 참고 : 천하를 얻고자 하여 뭔가를 한다면, 나는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이라, 뭔가 할 수가 없다. 억지로 하면 실패할 것이고, 잡으려 하면 잃을 것이다. 그리하여 물건이 앞서 갈 때도 있고 따라갈 때도 있으며,바람이 따듯하게 불기도 하고 차게 불기도 하며,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며, 꺾이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심한 것, 사치한 것, 지나친 것을 버린다.



- 참고자료 : 천하를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자를 보면 나는 그 얻지 못함을 볼뿐이다. 천하란 신령스러운 기물이다. 도무지 거기다 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자는 패할 것이요, 잡는 자는 놓칠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는 앞서 가는 것이 있으면, 뒤따라 가는 것이 있고, 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 내 뿜는 것이 있고, 강한 것이 있으면 여린 것이 있고, 솟아나는 것이 있으면 무너지는 것이 있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극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한 것을 버리고 과분한 것을 버린다.


* 왜 영향력이 있고자 하는가?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천하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묻는다. 천하를 취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천하를 얻으려고 발버둥친 모든 자들이 천하를 얻지 못함을 볼뿐이다”라고 노자는 말한다.


* 왜 그런가? 천하는 신기(神器)이기 때문이다. 신(神)한 기(器)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작위(作爲)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神)이란 무엇인가? 수리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어떤 성질의 발현에 대하여 우리는 보통 “신령스럽다”는 형용사를 붙이게 된다. 천하는 신령스러운 그릇이로다. 그것은 내가 위(爲)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만들거나 주무르거나 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격의 그릇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에 대해서는 일체의 위(爲)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우리는 노자를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삶의 현장이란 반드시 상황과 맥락과 형식을 갖는다. 노자는 사회적 영향력이 지고한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는 말들인 것이다. 이 세계는 결코 그대가 변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신령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인성적인 것이 아니라 신성적인 것이다.


* 천하(天下)라는 신기(神器)에다 작위(作爲)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노자는 말한다. 하는 자는 패할 것이요, 잡는 자는 놓칠 것이다.



- 준이해석 : 천하를 가져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자, 내게는 그것이 부득이하게 보인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이라, (그로 무언가를)할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려 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잡아 쥐려는 자는 그것을 잃게 된다. 따라서 만물은 때론 (스스로 앞서) 가고 때론 따라 오고, 때론 약하게 불고 때론 강하게 불고, 때론 강하고 때론 (약하여)괴로워하고, 때론 꺽이고 때론 무너진다. 이리하여 성인은 심甚한 것, 사치奢스러운 것, (지나치게)큰 것을 물리친다.


- 준이생각 : 천하를 가져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자가 있다 치더라고 천하는 마치 신기한 그릇과 같아서 절대로 맘대로 되지 않는다. 천하는 앞서기도 하고 뒷서기도 하고, 불어 오기도 하고 불어 가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고 때론 부러지고 때론 무너지고...무언가 이를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작위의 마음은 ‘자연’이라는 천하의 속성앞에 자연스레 무너진다라고 말한다고 보인다. 작위가 인간의 의도이자 고집이자 정열이라 한다면 무위는 자연의 모습 그 자체. 그러하니 치우쳐 있는 것들 - 심한 것, 사치 스러운 것, 큰 것-을 사양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세상의 구성물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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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婴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谿(계)시내,산골짜기,(혜)다툴/離(리,이)떠날,떼어 놓다, 갈라지다, 흩어지다, 가르다, (려,여)붙을,(치)교룡/孀(상)홀어머니, 과부,수절하다/兒(예)성씨,(아)아이/婴(영)어린아이/婴兒 영아, 젖먹이, 갓난아기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忒(특)틀릴,어긋나다,의심하다,사악하다,변하다,매우/弋(익)주살,홰,말뚝,빼앗다,사냥하다/極(극)극진할,다할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辱(욕)욕될,1. 욕되다(辱--), 수치스럽다(羞恥---) 2. 더럽히다, 욕(辱)되게 하다 3. 모욕(侮辱)을 당하다(當--) 4. 욕보이다(辱---) 5. 무덥다 6. 황공하다(惶恐--) 7. 거스르다 8. 치욕(恥辱), 수치(羞恥)/乃(내)이에,곧,도리어,비로소,도리어,다만(애)노젓는 소리/樸(박)순박(淳朴ㆍ淳樸ㆍ醇朴)할,질박하다,다듬다,통나무,바탕,(복)나무빽빽할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大制不割-制,制作器物,引申为政治;割,割裂。此句意为:完整的政治是不割裂的。


- 참고 : 남자됨과 여자됨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어,

덕이 언제나 나뉘지 않으면,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희고 검은 것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모양이 된다.천하의 모양이 되어, 덕이 언제나 어긋나지 않으면, 다시 무극으로 돌아간다.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알고 또 거두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어,

덕이 비로소 늘 넉넉해지면, 다시 통나무로 돌아간다.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되고, 성인을 그릇으로 쓰면, 장관이 된다. 이렇기에 크게 만드는 것은 쪼개지 않는다.



- 참고자료 : 그 숫컷됨을 알면서도 그 암컷됨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떠나지 아니하니, 그리하면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간다. 그 밝음을 알면서도 그 어둠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어긋나질 아니하니, 그리하면 다시 가 없는 데로 되돌아간다. 그 영예를 알면서도 그 굴욕을 지키면 천하의 골이 된다. 천하의 골이 되면 항상스런 덕이 이에 족하니, 그리하면 다시 질박한 통나무로 되돌아간다. 통나무에 끌질을 하면, 온갖 그릇이 생겨난다. 성인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하여 세속적 다스림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그러므로 위대한 다스림은 자름이 없는 것이다.


* “박산위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삶에는 “이중성”이 숨어있다. 삶속에는 이미 죽음이 포섭되어 있다고 하는 그 이중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는 모든 순간에 나는 죽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할 줄 알면서도 약할 수 있는 것, 때릴 수 있으면서도 맞아주는 것, 이러한 이중성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지혜의 양면성이다. 인생에는 밝음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어둠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터무니없는 억울한 상황이 계속 닥친다. 노자는 말한다. “밝음을 알되 그 어둠을 지키라” 어두움을 지킬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천하의 모범이 된다.


* 통나무란 그 질박한 원래의 참된 모습을 말한다. 그 참된 원래 모습이 흩어지게 되면 백가지 형태가 생겨나고 온갖 특이한 종류가 생겨난다. 그것을 그릇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박산위기”는 문명의 질서의 창조로 보고, 그 문명의 질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정치제도나 문물을“관장(官長)”이라 본 것이다. “대제불할(大制不割)” 위대한 다스림은 가름이 없고 자름이 없는 것이다. 위대한 다스림이란 천하의 마음으로써 그 마음을 삼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른다 함이 있을 수 있을 손가?



- 준이해석 : 그 수컷성을 알면서 그 암컷성을 지켜 천하의 골짜기가 되게하라, 천하의 골짜기가 되게 하라, 늘 덕이 떠나지 않게 하여 갓난아이로 다시 돌아 가라.  그 흰 것을 알고 그 검음을 지켜, 천하의 기준이 되게 하라, 천하의 기준이 되게 하라, 늘 덕이 어긋나지 않게 하여 무극(끝이 없음, 도가에서 말하는 천지사물의 근원 상태)으로 다시 돌아 가라. 그 영화로움을 알고, 그 욕됨을 지키어(내어), 천하의 계곡이 되게 하라, 천하의 계곡이 되게 하라, 늘 덕이 이내 충분케 하여 통나무樸로 다시 돌아 가라, 통나무는 부숴지면 그릇이 된다.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즉 관장(지도자)이 된다, 따라서 큰 다스림(大制)은 나뉨이 없다(不割).


- 준이생각 : 수컷과 암컷, 백과 흑, 영화와 굴욕,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들을 어느 한쪽을 알면서도, 다른 한쪽 또한 지키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골짜기가 되게 하고 규범이 되게 하고 계곡이 되게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언제나 덕이 떨어지지 않고, 어긋나지 않고, 이내 충만하게 하여 갓난아이, 무극, 통나무 이러한 것으로 돌아 가라고 했다. 이러한 댓구를 통해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본시 덕이라고 부르는 것은(물론 도가에서), 수컷과 암컷, 백과 흑, 영화와 굴욕, 어찌 보면 대별자로 보이는 것들 모두이고, 심지어 이러한 개념들 또한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덕으로서 간주 될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반된 성질들이 한 몸이 된 덕의 근원은 마치 갓 태어난 갓난아이나, 이 세상만물의 법칙이나,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커다란 통나무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지금 힘든 시간들이 계속해서 불어 닥친다고,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될 일이라 본다. 정치가 어지럽고 세상의 금전만능주의가 더럽다 하더라고 이를 외면하고 못 본 체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노자의 말씀을 통해 보자면 이 모든 한쪽 성질은 반드시 그 반대 성질의 또 다른 표현이자, 씨앗이기도 하고, 매개 이기도 하고, 더 넓은 시간과 공간의 잣대를 대어 본다면 하나의 소용돌이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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